2014년 6월 28일 토요일

제국의 몰락, 오대의 폭풍 (11) 투신 전류의 활약, 주전충과 이극용의 만남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는 와중에 미래의 군웅들은 속속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는 미래의 오월왕(吳越王) 전류도 있었다.


 앞서 짦게 언급한 바 있지만, 전류는 이 당시 동창이라는 인물의 부하로 있었다. 동창은 항주(杭州)의 여러 인물들을 모아 자신의 세력을 만들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동창의 이 세력을 항주팔도(杭州八都)라 일컫었다. 당초 동창은 항주팔도를 이끌고 천하에 격문을 보낸 고변과 합류, 황소 토벌에 합류할 작정이었지만 이는 "고변은 황소 토벌에 나설 마음이 없다." 는 전류의 충고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따라서 이극용과 주전충 등이 황소 토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을때 동창은 가만히 항주를 지키고 있었다. 사실은 항주를 지키는 일만 해도 정신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항주를 공격해오는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소가 한참 세력을 키우며 강릉을 집어삼킬 당시, 유한굉이라는 관군의 인물이 수비를 포기하고 도주하여 도적이 되었다는 사실은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유한굉은 세력을 상당히 키우며 이곳저곳을 노략질하다 당나라에 항복을 받아달라고 하였는데, 황소 토벌에 여념이 없었던 당조는 이를 허락하고 안휘 숙주의 절도사로 삼았다. 그러나 유한굉이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하자 멀리 절동 관찰사로 삼아 보낸 참이었다.


 헌데 이 유한굉은 절동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절서까지 침범해 오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동생 유한유에게 군사 2만을 주어 절서 겸병을 명령했다. 그러자 동창은 전류를 파견하여 이를 막게 했는데, 전류는 882년 8월 13일 안개가 낀 틈에 재빨리 장강을 건너 적들의 영채를 습격, 2만 군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거의 전멸시키는 공훈을 세웠다.


 그러자 유한굉은 수하 왕진에게 무려 7만이라는 엄청난 병력을 주어 또다시 공세에 나서게 했다. 대체 유한굉은 어디서 이런 대병력을 얻었을까? 본래 도적 집단이나 다를 바 없었던 유한굉의 상황을 고려할때, 이는 혼란기에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유민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류는 또다시 강을 건너 기습하여 7만 군대를 격파하여 1만명을 참살하는 엄청난 공적을 올렸다.


 수하들이 많은 병력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패배하자 883년에는 유한굉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러나 전류는 유한굉의 부장들을 수차례 격파한 후, 유한굉의 본진 역시 공격하여 말 그대로 짓밞아 버렸다. 간신히 도주에 성공한 유한굉은 10월 경 또다시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 왔지만, 10월 25일 전류는 강을 건너 적을 공격하여 여지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고, 유한굉은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의 복장을 한채 천신만고 끝에 도주하였다.


 그렇게 도망친 유한굉은 그래도 남은 병력 4만을 다시 수습하여 다음날 또다시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전류는 이 병력 역시 완벽하게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유한굉의 동생인 유한용을 잡아 죽이고 부하 장수 신약 마저 참수했다.


 이렇게 압도적인 패배가 이어지자 유한굉의 세력도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한굉의 부하였던 왕진은 전류에게 항복 하겠다는 연락을 보냈는데, 이를 알고 화가 난 유한굉은 다른 장수인 누뢰를 파견하여 왕진을 죽이고 그 역할을 대신하게 했다. 그러나 전류는 이 누뢰마저 또다시 격파하고 사로잡아버렸던 것이다. 이후 886년 11월에는 전류가 월주에서 유한굉을 또다시 격파했는데, 도망치던 전류는 태주 자사 두웅에게 잡혀 동창에게 보내졌고, 그대로 목이 잘려 죽었다.


 비록 유민들이나 도적때를 모은 수준이라고 쳐도, 수만의 군대를 끊임없이 동원한 유한굉의 세력은 만일 그대로 두었다간 제2의 황소가 되었을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전류는 혼자 힘으로 이를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승리 이후, 전류의 상관인 동창은 현재의 소흥(紹興)인 월주로 자리를 옮겨 절동군부의 업무를 처리하게 되었으며 전류는 지향주사가 되어 항주의 업무를 처리하게 되었다. 이는 전류가 자신의 세력을 만들게 되는 기틀이 되었다.






주전충




 전류가 유한굉을 무참하게 짓밞아 버리고 있을 무렵, 황소는 무려 300일 동안 진주를 포위하고 있었다.


 진주의 주변에는 성을 포위한 황소군과, 그들로 인한 약탈, 용마채의 만행 등으로 인하여 지옥과 같은 모습이었다. 진주를 지키는 자사 조주는 성을 포위한 황소군과 300일 동안 무려 수백번을 넘게 싸우고 있었으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무기와 식량 역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넝마가 되어가면서도 조주의 그의 병력은 꿋꿋하게 버텼다.


 그런데 이 무렵, 황소에게는 청천지 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저 악마같은 이극용이 연합 병력을 이끌고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884년 4월 이극용은 상양이 지키고 있던 태강을 함락시켰고, 이어서 황소의 부장인 황사업 역시 격파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이극용에 두려움을 느낀 황소는 마침내 진주의 포위를 풀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직 이극용은 도착하지도 않았지만, 사타 군대의 압력은 이토록 강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진주의 포위가 풀렸을때, 가장 먼저 진주에 입성한 것은 하남 부근에서 끊임없이 황소 군대와 교전하던 주전충이었다. 주전충은 진주 자사 조주의 환대를 받으며 성 내에 잠시 입성했지만, 이내 주전충은 황소 군대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자신의 치소인 대량으로 돌아갔다.


 5월, 주전충의 생각대로 황소 군은 변주, 즉 지금의 개봉으로 이동했다. 황소군이 개봉으로 이동하는 동안의 길은 그들의 약탈로 인하여 참혹하게 유린되었다. 주전충은 황소 군대의 침공에 대비를 하면서도, 이극용에게 서둘러 구원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884년 5월 6일 움직이기 시작한 이극용은 8일, 중모현 북쪽에 도착하여 주전충을 만나게 되었다.


 이극용과 주전충, 주전충과 이극용. 이 두 남자의 역사적인 만남은 바로 이 순간에 이루어졌다. 다만, 그 둘이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모두 경황이 없었던 처지였다. 이극용과 주전충은 서로 만난 즉시 군사를 이끌고 황소 군을 기습하여 적을 크게 격파하고 1만여명을 참살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주전충과 이극용을 힘을 합친 보기 드문 경우였다. 이에 상양을 비롯한 황소군의 최측근마저 주전충에게 항복하게 되었다.


 주전충은 여타 항복한 세력을 수습하여 변주에 남았으나, 이극용은 자신의 사타 기병대를 이끌고 곧바로 황소 군을 미친듯이 축격하기 시작했다. 경악한 황소군은 동쪽으로 황급하게 달아났으나, 이극용은 10일 밤부터 11일 밤에 이르기까지 황소군을 악귀처럼 뒤쫓았다.


 이때의 이극용은 단 하루 만에 무려 200리를 주파했다. 이는 일일 80km의 속도로, 일반적인 군대의 이동속도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경악스러운 속도다. 너무나 미친듯한 속도로 움직이다보니 대다수 병력은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쳐지고 말았으며, 강행군을 이겨내고 이극용의 주변에 남아 있었던 병력은 고작 수백여 명에 불과했으나 그 수백여명도 말과 사람이 모두 지쳐있었던 판이다. 여기에 더해 식량까지 바닥나자 이극용은 황소 추격을 그만두고 변주로 귀환하였다. 이러한 강행군 동안 이극용은 1만의 포로를 잡았지만 지칠대로 지친 상황이서는 이들을 관리할 여력도 없었기에 결국 놓아주고 말았다.


 3일 뒤, 폭풍처럼 달려갔다온 이극용은 다시 변주 주변에 나타나 군영을 만들었다. 그런데, 변주 성 내의 주전충은 그런 이극용을 성 안으로 초대했다. 승전을 같이 한 사이, 서로 술자리를 함께 하자는 것이다.





 이극용은 이에 마음을 열고 변주 성내에 들어왔다.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이극용의 이름값 때문이었을까? 주전충은 이극용에 대하여 대단히 공손을 태도를 취하면서 술과 음식을 내주었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극용에게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바로 술에 취하면 주사가 심하다는 것이다.


 이날의 연회에서도 이극용은 술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한껏 술이 들어간 상황에서 젊은 자신에게 주전충이 굽신거리고 있자, 이극용은 술기운을 빌려 할 소리, 못 할 소리를 마음껏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말 중에는 주전충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 주전충은 이 젊은 애송이에게 모욕을 당해 낯빛이 변했지만, 일단 그 자리에서는 태연함을 가장했다.


 주전충이 마련한 술자리는 대단히 성대하여 참가했던 사타군의 장수들은 모두 대취하였다. 이극용 혼자만 변주에 들어왔을리는 없었고, 그 주변에는 설지근, 곽경수 등의 측근들이 300여명이 넘는 사람을 데려왔었는데, 그러한 무리들 마저 완전히 취했을 정도니 주전충이 얼마나 거하게 한 턱을 냈는지 알 법 하다. 여하간 이들은 모두 흥겹게 취해 잠자리를 차자 귀환하고 있었는데, 그때 주전충은 무서운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이극용과 일행이 술자리를 파하고 돌아갈 무렵, 주전충은 수하인 양언홍을 불러 조용히 모의했다. 주전충의 지시를 들은 양언홍은 변주 시내의 주요 골목길을 수레와 나무, 그리고 목책을 동원하여 바리케이트를 쳐서 막아버렸다. 이렇게 이극용의 퇴로를 막은 양언홍은 이후 부대를 동원했는데, 그 부르짖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고 한다.


 "이극용을 죽여라! 이극용을 죽여라!"


 이때 이극용은 완전히 만취하여 침상에 늘어져 있던 판이었다. 어찌나 대취했는지 자신을 죽이려는 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어도 그는 눈을 뜨지 못했다. 그 사이 친병이었던 설지근, 사경사 등 10여명은 이극용의 침소를 기습하는 적들과 치열한 결투를 벌였고, 그 사이에 곽경수는 침상의 불꽃을 숨겨 이극용이 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그를 침대 아래로 끌어내렸다. 침대 아래에서 곽경수는 이극용의 얼굴을 물로 씻어주면서 인사불성인 이극용에게 현재의 사태를 어렵게 어렵게 설명했다.


 "뭐라고?"


 이극용은 이야기를 듣자 간신히 눈을 뜨고 활을 잡고 일어섰지만, 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어 곽경수가 부축해주어야만 했다. 그 사이에도 이극용을 죽이려는 병사들의 공격은 계속 되고 있었고, 설지근 혼자서 변주 병사들을 수십명을 죽이는 괴력을 보이며 분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간 모두 죽는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때, 이미 어둑어둑하던 하늘에서 비와 천둥 번개가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습이 벌어지며 사방에서 불을 지르고 연기가 퍼져 앞을 보기 힘든 판에, 이렇게 난리가 벌어지자 주위는 완전히 캄캄하여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빗소리, 간간히 번개 사이로 보여지는 참혹한 결전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기회를 살려 설지근은 자신이 직접 이극용을 부축하고, 좌우에 있던 수십명만 이끌고 담장을 넘어 적의 포위를 돌파해서 도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외침, 연기, 대혼란, 번개, 깜깜한 밤, 쏟아지는 비. 그야말로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불을 가지고 달릴 수도 없고, 설사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적의 추격이 있는데 불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 지옥같은 밤중에 이극용 일행은 오직 번갯불에 의존하여 도망쳤다고 하니, 당시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천근이 만근 같은 도주였을 것이다.


 이렇게 도망치던 이극용 일행은 마침내 성문으로 가는 다리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도 주전충이 배치한 병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병력을 배치하진 못한듯 설지근 등은 그들과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간신히 적의 수비진을 돌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뒤에서 적군은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먼저 가십시오!"


 결국 일부 사람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주군을 보호하기 위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이극용이 도주하는 무렵, 친병이었던 사병사는 적을 막기 위해 남아 싸우다가 죽으면서 시간을 끌었다.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마침내 이극용은 성의 남문인 위지문까지 도착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이극용은 망치를 들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문을 두드렸다.


 마침내 문을 열렸다. 이극용은 마지막 남은 죽을 힘을 다해 달려 성에서 빠져나왔고, 이제 날이 밝아오를 무렵에야 간신히 자신의 군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300여명의 병사들은 모두 변주를 빠져나오지 모하고 한 밤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이다.


 "주온! 주온 이놈!"


 온 몸이 비에 젖고 지옥같은 전장을 빠져나와 엉망이 된 이극용은 돌아오자마자 군대를 동원해 변주를 공격, 주전충을 없애버리려고 했다. 그때, 이극용의 부인이었던 유씨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렸다. 사실, 유씨는 지난 밤 부터 이극용이 공격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 사투를 간신히 빠져나온 병사가 유씨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남편이자 군대의 사령관인 이극용이 죽을 위기에 처했음에도, 놀랍게도 유씨는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씨는 자신에게 그 소식을 알린, 변주의 지옥을 빠져나온 병사를 참수해버렸던 것이다! 만일 유씨가 그 소식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 즉시 변주와 이극용의 군대는 직접적인 전투에 나설 수 밖에 없기에, 일부러 소식이 퍼져나가 군대가 동요하지 않도록 하며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유씨는 이극용의 분노를 가라않이며 말했다.


 "이 일은 조정에 하소연하면 됩니다. 만일 군사를 마음대로 일으켜 변주를 없애면 천하에서 과연 누가 옳고 그런지 확실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변주를 공격하게 된다면, 그 진상이 이상하게 흐려질테고 저들도 변명할 말이 생깁니다."


 생각을 하던 이극용은 그 말에 동의했고, 대신 지옥같은 변주를 떠나 다른곳으로 이동하며 주전충에게 서신으로 이를 책망했다.


 이렇게 되자 애매하게 된 것은 주전충이었다. 주전충은 군사를 일으켜 같은 황소 토벌군인 이극용을 공격했음으로, 명분에서 완전히 밀리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주전충은 자신의 지시를 잘 이행 못해 이극용을 살려 보낸 수하 양언홍을 불렀다. 일전에 양언홍은 사타 무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오랑캐들은 상황이 급하면 말을 타고, 말 탄 사람을 보면 쏘아 버립니다."


 주전충의 앞에 나타난 양언홍은 말을 타고 있었다. 양언홍의 말마따나 '사태가 급한' 주전충은 '말을 탄' 양언홍을 쏘아서 죽여버렸다. 이렇게 양언홍을 희생양으로 죽인 주전충은 천연덕스럽게 이극용에게 답신을 보냈다.


 "전날 저녁의 변고란 제가 알지 못한 일입니다. 단지 조정에서 파견한 사자와 양언홍이라는 놈이 모의한 일입니다. 양언홍은 제가 이미 죽였습니다. 공께서는 이를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주전충은 자신은 이 일과 관계 없다는 움직임을 취한다. 주전충은 이극용을 놓치고, 이극용 역시 주전충을 곧바로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날을 기점으로 두 사람은 완전하 원수가 되어 남은 평생을 걸쳐 대립하게 되었다.


 한편, 이 밤의 사투에서 이극용의 옆을 지킨 인물 중에는 이사원(李嗣源)이라는 풍채가 당당한 17살의 젊은이가 있었다. 오랑캐 출신이었던 이사원의 본명은 막길열(邈佶烈)로, 당초의 그는 아무런 성씨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말이 적고 공손하며 풍채가 당당한 그를 마음에 들어한 이극용은 막길열을 양자로 삼아 이씨 성을 주고, 이사원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이사원은 화살과 돌이 비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이극용을 도와 탈출에 앞장을 섰다.


 그리고 이 젊은이야 말로 훗날의 후당 명종 이었다. 미래의 동량들이 하나 둘 씩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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