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8일 토요일

제국의 몰락, 오대의 폭풍 (10) 몰락하는 황소와 양행민의 등장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등장인물이 있는 법이고, 등장인물들은 그 이야기 속에서 대두 될 시간과 사라질 시간이 정해져 있다. 양전피에서의 대전투는 황소라는 등장인물이 이 이야기에서 사라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황소 군단에게 있어서 이극용의 갈까마귀 군단은 '자연재해' 와 같았다. 그들이 가진 힘으로써는 도저히 대적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는, 재해 앞에서 무력한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계속되는 패배로 인해 황소 군단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으며, 좁은 장안에 갇힌 무리들은 극도로 굶주리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상양은 다시 3만 군대를 이끌고 3월 6일, 화주(華州)를 구원하여 활로를 찾기 위해 나섰다. 화주에는 황소의 동생 황규가 농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움직임 역시 독안룡에게 포착되었다.  이극용은 왕중영과 함꼐 군사를 이끌고 이 군대와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두어, 그들을 다시 한번 장안으로 뒷걸음칠 치게 했다. 황소 군단은 이제 도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화려했던 장안은 이제 육지 속의 지옥과 같은 형세가 되었다. 위교(渭橋) 부근까지 압박해온 이극용은 천천히 황소 무리의 목줄을 잡고 옥죄어가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 장안의 성내에 깔려올때면, 이 불길할 정도로 시커먼 갈까마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이면 밤마다 이극용의 부장이었던 설지훈, 강군립은 성내로 소수의 별동대를 이끌고 침입하여 기껏 쌓아놓은 양식들이나 바리케이트를 모두 불사르고, 당혹해 하는 황소 군단을 습격해 왔다.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자, 황소 무리는 극도로 공포에 질릴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황소 군단의 본대가 장안에서 숨을 죽이는 동안, 화주에서는 이극용의 다른 부대들이 맹공을 퍼부어 황규를 쫓아버리고 성을 장악했다. 이극용은 때로는 폭풍처럼 몰아쳤고, 때로는 사냥감의 뒤를 잡으려는 늑대처럼 황소 무리를 천천히 물어 뜯고 있었다.


 4월, 마침내 이극용은 충무군, 하중군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장안 내부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 선두는 이극용 본인이었다. 위수 남쪽에서 펼쳐진 전투에서 황소군은 이 악마 군단을 성내에 들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이는 태풍 앞에서 촛불을 키는 행위처럼 무력하기만 했다. 이극용은 황소군과 하루에만 세 번 싸워 세 번 모두 승리를 거두고 파죽지세로 광태문(光泰門)까지 도달해왔다.


 황소는 몰려드는 검은 군단을 막기 위해 온갖 힘을 다했지만, 결국 광태문이 무너지자 장안의 궁실을 불태우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60만 대군을 이끌며 위풍당당하게 장안에 입성한 지 2년 4개월 만이었다.


 쫒겨가는 도적들과 광기에 차서 진입하는 관군. 어느쪽이건 이 유서깊은 위대한 도시는 참담하게 유린되었다. 거리의 곳곳에서 미처 탈주하지 못한 수 많은 황소군의 일원들이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있었으며, 불타오르는 거리들 곳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항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극용이 이끄는 사타 군단 등 관군들 역시 잔혹하게 약탈하기는 도적 무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와 불타 오르는 소리, 죽어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지옥에서 황소가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때문이다. 목숨보다 귀한 재물은 없으므로 황소는 도망치면서 길바닥에 수 많은 보물을 뿌렸고, 관군은 이를 다투어서 줍고 자기들끼리 빼앗느라 미처 황소를 추격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장안의 수복 소식은 망명 정부에도 크게 알려져 백관들은 이를 축하하였다.


 60만 황소군을 장안에서 뽑아내고, 불타오르는 도시에 정복자로서 입성한 이극용의 당시 나이는 고작 28세. 이는 황소 토벌에 나서거나 중국 전역에 미치는 여타 군웅들 중에서는 가장 어린 나이였지만, 이 젊은 독안룡보다 황소 토벌에 있어 큰 공훈을 세운 사람은 없었다. 또한 그의 갈까마귀 군단의 힘 역시 제장들 중에 가장 강력하여, 사람들은 모두가 그를 두려워 했다.


황소는 이런 이극용을 피해 헐레벌떡 하남으로 도주했다. 몰락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수만의 군대와 맹해, 상양 등의 장수가 남아 있었다. 이 중 맹해는 1만 군대를 이끌고 선봉으로 채주를 쳐 절도사 진종권을 항복시켰다. 진종권은 일단 살기 위하여 황소에게 신하가 되겠다고 말을 했고, 이에 황소는 진종권의 병력을 더해 진주(陈州)를 치게 되었다.


 그런데, 진주는 이미 막강한 방어력이 갖추어진 상태였다. 이는 진주 자사인 조주가 미리 대비를 했던 탓이다. 조주는 황소가 장안에 있을 무렵부터 그가 도주한다면 결국 진주가 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아 성과 참호를 완성하고 갑옷과 무기를 수선하며 물과 곡식을 쌓고, 용사들을 많이 모집하여 막강한 세력을 갖추었다.


 이런 영문을 모르고 맹해는 위풍당당하게 진주로 공격해 왔으나, 자사 조주는 일부러 방비가 약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 적을 끌어들인 후 갑자기 기습, 이를 전멸시키고 맹해를 참살했다. 그러자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 황소는 진종권과 함께 전군을 동원하여 진주를 포위하였다.



 



 수만의 황소 군단은 진주를 무려 다섭 겹으로 포위한 후 사방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진주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 했지만, 조주는 이들을 타일렀다.


 "우리는 맹세코 이 주와 함꼐 살든지 죽든지 할 것이다. 남자는 마땅히 죽음 가운데서 살 길을 찾는 것이고, 기왕이면 역시 나라를 위해 죽는 편이 도적에게 신하가 되어서 사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다른 뜻이 있는 사람은, 마땅히 참수할 것이다!"


 그렇게 말한 조주는 포위망에 갇혀 있는 와중에서도 되려 간간히 정예병을 이끌고 성문을 열어 기습을 감행, 수차례 황소군을 격파했다. 그러자 더욱더 화가 난 황소는 진주 북쪽에 군영을 만들고 궁실까지 세우고는, 진주 포위를 지속하였다. 다만 문제는 역시 군량이었다. 이미 부군의 식량은 조주가 모두 진주 내로 끌어왔고, 계속되는 전란과 기근으로 여타 농작물들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황소군은 백성들을 습격하여 남은 식량을 모두 빼앗았는데, 급기야는 사람을 산 채로 맷돌 속에 넣어 갈아, 뼈까지 먹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것이 바로 '용마채(舂磨寨)' 다. 황소는 하남, 당, 허, 여, 등, 맹, 정, 변, 조, 복, 서, 연 등 수십 개에 이르기까지 약탈을 감행하며 사람들을 잡아와 갈아버리는 극악무도한 행보를 보였다.





좌측 상단으로부터 시계 뱡항으로 이극용, 주전충, 양행밀, 왕건, 당나라 소종




 이 무렵, 황소와 진종권에 의하여 지옥이 되어 가고 있는 하남으로 한 사령관이 불과 수백의 병사와 함께 도착했다. 그의 이름은 당조로부터 '전충' 의 이름을 하사 받은 주온, 곧 주전충이었다.


 주전충이 하남에 온 이유는 물론 황소토벌을 위해서였다. 조정에서는 아직 황소가 토벌되지 않았다 하여 주전충에게 동북면도 초토사라는 직함을 내려 토벌에 힘을 쓰도록했다. 그런데 이 무렵 하남성 부근은 기근이 들어 완전히 곡식들이 말라버린데다, 황소군의 만행과 더불어 현지의 병사들마저 독립적인 행보를 보이려는 듯 하여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부족하다 못해 열악한 자원을 가지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황소군의 잔당과 싸우며 내부에서는 교만한 병사들까지 통제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였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불안해 하는 와중에서도 주전충은 홀로 용기있는 태도를 취하며 무리들을 통솔했다. 구오대사에서는 이때의 주전충이 '크고 작은 전투만 40여차례' 를 겪으며 황소와 교전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황소군이 있는 와자채를 급습한 주전충은 적에게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는데, 그 숫자가 무려 수만에 이를 정도였다고 하니 주전충은 대단히 격렬하게 적과 싸우고 있었던 셈이다.


 황소가 이극용에게 쫓겨나고 한때의 부하였던 주전충과 싸우고 있을 무렵, 합비(合肥) 출신인 양행민(楊行愍)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양행민은 여주의 아장(牙將)으로 대단히 용감하여 수 차례 전공을 세운 역전의 용사였다. 그러나 이러한 양행민이 전공을 세울수록 그의 상급자였던 장교는 양행민을 껄끄럽게 여겨, 일부러 여주 자사에게 안 좋게 보고를 하여 그를 수자리나 서게 만들었다.


 어느날, 이 장교는 길을 지나가던 중 수자리를 서던 양행민을 보게 되었다. 양행민은 장교에게 깍뜻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장교도 무안한지, 일부러 좋은 말을 하며 양행민을 기쁘게 하려고 하다가, 이런 말을 꺼내었다.


 "그래, 자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러자 양행민은 대뜸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네 목 뿐이다!"


 양행민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장교의 목을 베어버렸고, 곧바로 무리를 규합하여 스스로를 팔영통지(八營都知) 병마사라고 일컫었다. 당시 여주 자사는 낭유복이라는 인물이었으나 그는 양행민의 이러한 기세를 도저히 감당 할 수 없어 근처의 대세력 고변에게 양행민을 천거, 자신을 대신하게 해 달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고변은 양행민을 여주 자사로 삼았고, 조정에서도 이를 따라 양행민을 여주 자사로 임명했다.


 이 괴력의 양행민이 훗날 오대(五代) 오(吳) 나라의 태조인 양행밀(楊行密)이었다. 이렇게 여주를 장악한 양행민은 왕옥이라는 인물이 여주에서 현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채용하려고 했는데, 왕옥은 이를 거부했다. 임용을 거부하는 사람을 억지로 쓸 수도 없었기에 양행민은 왕옥을 쓰는 일은 그만두었지만, 대신 그 자식들은 어떠한지 물어보았다. 주위의 평판을 이러하였다.


"왕옥의 아들인 왕잠은 학문을 좋아하고 신중하여서 일을 맡길 만 합니다. 조카인 왕임은 기질과 절개가 있어서 장수로 삼을만 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양행민은 왕잠을 자신의 문하에 두고, 왕임과 정원 사람 계장을 기병장수로 임명하여 난세에서의 첫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훗날의 오 태조라 해도, 이 무렵에는 대세력 고변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처지였다. 만일 고변의 세력이 견고하였다면 양행민도 어려운 점이 많았겠지만, 당시의 고변은 주의의 도사들 때문에 판단력을 상실해가던 처지였다.


 고변을 미혹시키던 도사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여용지다. 그 여용지를 고변에게 추천한 사람은 바로 좌교웅군사 유공초였는데, 워낙 여용지의 평판이 좋지 않다보니 여용지를 고변에게 소개한 유공초도 욕을 먹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에 유공초는 간간히 여용지를 볼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네 때문에 말이 많으니, 조금쯤은 스스로 자제하고 물러날 줄을 알게. 피차 서로 연루되지 말게 하자는 말일세."


 이렇게 꾸지람을 들을 때마다 여용지는 모멸감으로 이를 악물었다. 또한, 우교웅군사 요귀례 역시 여용지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워낙 기질이 곧은 요귀례라 고변의 총애를 받는 여용지에게도 두려워하지 않고 비난을 퍼부었고, 심지어 틈만 나면 여용지를 직접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하루는 기생집에 있던 여용지를 요귀례가 사람을 풀어 기습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죽었지만 여용지는 옷을 바꾸어 입어 간신히 살아났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변은 여용지와 유공초, 두 장수로 하여금 병졸 3천명을 이끌고 도적때를 소탕하라고 명령했다. 이때를 기회로 여긴 여용지는 즉각 여주의 양행민에게 이러한 연락을 넣었다.


 "유공초와 요귀례는 여주를 습격하려고 떠난 것입니다!"


 소식을 전해들은 양행민은 즉각 군사를 이끌고 이 두 장수를 습격했다.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한 두 장수는 그야말로 전멸의 피해를 입었는데, 여용지는 이틈을 타서 이들 두 명이 사실 모반을 하려 했다고 날조하여 고변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고변은 이 말을 믿고 양행민에게 감사하다며 큰 상을 내려주었다. 고변의 상황은 이러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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