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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7일 화요일

다시 생각해보는 위안부 문제

언젠가 위안부 얘기를 하겠다고 했었기에 내가 아는 범위에서 쓰고자 한다. 몇 가지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미심쩍어 책도 한 권 사서 읽었다.

이 방에서도 위안부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마이크류님이 첫 발제를 했었고, 내가 두 번째 발제를 했었다. 그 때 나를 친일파라고 욕하며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여성도 있었고, 친일파 논리를 그대로 사용한다면서 내게 절교를 선언한 사장님까지 있었다. 그래도 난 상관 없다. 내가 쓴 글이 진실(팩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진실이 어떤 가치나 확신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안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가치나 확신의 포로가 되어 그것이 진실을 가리기 때문이다. 니체는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다. 확신이다” 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건방진 말이지만 위안부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위안부 문제는 민감하고 그만큼 성역화되어 있다. 나는 그 성역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위안부는 정신대와 다르다. 위안부는 성노예 생활을 했던 가난하고 무학(無學)의 여성이었지만, 정신대는 공장에서 일했던 교육 받은 여학생들이었다. 위안부는 제법 나이가 들었지만(평균 25세), 정신대는 중학교 재학생이거나 중학교를 갓졸업한 소녀였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위 사실만으로도 많은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이런 추론을 포함하여 위안부에 대한 진실과 우리들의 오해를 열거해보겠다.

1. ’위안부소녀상’은 잘못 만들었다. 위안부는 소녀가 아니었다. 당시 위안부들은 지금의 윤락여성들처럼 제법 나이가 들었던 것이다.(예외는 있지만 이를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논지를 흐리게 하므로 앞으로도 예외는 무시하겠다.)

2. 위안부 문제를 좌지우지하는 권력기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이름도 그래서 잘못 만들어졌다. 참고로 전쟁이 터지면 일손이 부족해지므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한다. 일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그 정신대도 사실은 대부분 일본 여학생들이었고 조선인 여학생들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 위안부는 불법적이었지만 정신대는 합법적이었다. 위안부도 조선인 여성들만 있었던게 아니었다. 초기에는 주로 일본여성들이었고, 전선이 넓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조선인 여성들의 비중이 커졌다. 위안부와 정신대가 다르다는 것은 이제 ‘정대협’조차 인정하고 있다.

3. 위안부 숫자가 20만명이라는 설도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사실 20만명이라면 위안부 문제가 1990년대에 와서야 공론화되었을 리가 없다. 일제시대라고는 하지만 20만명이 끌려가는 동안 사회문제화된 적도 없었고, 또 일제패망 후 20만명이나 귀국했는데도 사회문제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추가] 위안부 할머니로 등록된 숫자가 234명 뿐일 리도 없다(2012년 기준). 정신대 숫자를, 그것도 일본인 정신대까지 포함한 숫자를 위안부 숫자로 둔갑시켜 우리들의 집단기억으로 남은 것일 가능성이 아주 많다.

4. 일본정부는 위안부 모집에 관여하지 않았다. 증거도 없다. 일본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광범위하게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갔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이게 핵심이다. 만약 20만명이나 되는 우리 자매나 딸을 강제로 끌고 갔다면, 그 여성들의 가족들이 아무 저항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을 리도 없다. 우리 조상들이 항의하거나 저항했다는 기록도 정황도 없다. 그러므로 일본정부에게 위안부 배상을 하라는 주장은 잘못이다.

5. 심지어 위안부 모집에 일본군이 개입했다는 증거도 없다.(이 부분은 삭제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개입을 한 것 같습니다.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만.)  물론 위안소가 군부대 내외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일본군이나 행정기관에서 위안소를 관리하기는 했다. 예를 들면 위생검진을 한다거나 위안소를 장교용과 사병용으로 구분했던 사례가 그것이다. 때로는 포주가 위안부들을 과도하게 착취하지 못하도록 일본군 부대장이 관리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 역시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6.25 때 북진하는 국군을 따라 매춘여성들도 올라갔었고, 종전 후에도 군부대나 동두천 기지촌 같은 곳은 위생증(맞나?)을 가진 여성들만 매춘에 종사하도록 행정지도까지 했다. 이런 유곽이 자영업이었던 것처럼 일제시대 위안소 역시 기본적으로는 자영업이었다. 위안소 역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자들과 군(軍)의 현실이 접목되어 나타난 자본주의적 사업이었던 것이다.

6. 시골 여성들을 속여 끌고갔던 사람들은 일본정부나 일본군인이 아니라 조선인 인신매매범이나 조선인 윤락업소 포주였다. 그들이 배움의 기회가 없어 무지하거나 쌀밥을 그리워할 정도로 가난했던 시골 여성들을 속여서 끌고 갔다. 이건 60, 70년대 우리나라 매춘여성들의 경우와 같다. 지금도 스마트폰과 예쁜 옷 때문에 속아서 매춘여성이 되는 여자들이 많다.

7. 따라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오도 일본정부나 일본군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분들의 증오는 순진하고 무지하고 가난했던 자기를 속여 지옥으로 끌고갔거나 지옥에서 성노예로 부려먹은 인신매매범 및 윤락업소 포주들을 향해 있다. 물론 일제 공무원이나 일본군이 와서 데리고 갔다는 증언은 있지만, 아마도 그건 인신매매범들의 위장술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위안부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일제가 아니라도 지금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나 매춘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8.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소설이나 영화에서 일부 다루기는 했지만 전국 규모의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식의 서술은 없었다. 기껏해야 위안부들의 비참했던 생활이나 사랑 이야기였다. 1990년대에 위안부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문제제기를 한 사람들도 일본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위안부에 대한 연구는 일본이 훨씬 광범위하고 깊이있게 다뤘다.

9. 뒤늦게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문제가 되자 일본정부도 책임을 느끼고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위안부 배상(보상인가?)에 대한 법을 만들려고 했지만 일본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국회에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할 수 없이 일본정부가 꺼낸 카드가 국민들 성금을 모으고 거기에 정부예산을 보탠다는 것이었다. 그게 한일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묘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일본국민들이 동참해서 만든 기금이 ‘아시아여성기금’이었다.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수상의 사과편지와 함께 위로금을 주는 것을 시도했다.

그런데 강성 일변도의 정대협이 전면에 나서면서 수령거부 운동을 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사실 상당수 할머니들이(60명인가? 30명인가?) 위로금과 수상의 사과편지를 받기도 했다. 참고로 2012년 현재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수는 234명이었다.

10. 정대협이 설치면서 위안부할머니들이 정대협 눈치를 보았다. 그러자 강성이 아니면 버티지 못하게 되었다. 위로금을 받은 할머니들조차 침묵하고 ’수요집회’에 나서야 했다. 게다가 일본대사관이나 외국에 톡 쏘는 눈을 가진 ‘위안부 소녀상’까지 세웠다(정말 치졸한 대응이다).

그러자 ‘언제까지 사과해야 한다는 말인가’라는 인식이 일본인들에게 퍼졌다. 대유행했던 한류가 사라지고 혐한류가 판을 채웠다. 아시아여성기금에 성금냈던 일본인들까지 혐한류로 돌아섰다. 일본은 군국주의자들이 설치는 세상이 되었다. 그 반작용으로 한국에서도 대일적개심이 널리 퍼졌다. 한일이 서로를 증오하는 지금의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그 사이에 정대협에서 활동했던 리더들은 장관, 국회의원, 심지어 총리까지 되었다.

결국 누가 이익을 보았고 누가 손해를 보았나? 이게 도대체 정상인가? 참으로 안타깝고 원망스럽다.        

11. 기타 몇 가지 사실 : 위안부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하루에도 수 십명의 군인을 받아야 했고, 죽음의 전투를 앞둔 일본군의 폭력적, 변태적 성행위에 시달리기도 했다. 포주나 일본군에게 매를 맞기도 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일본군과 막장의 인생이 상호 연민으로 작용하여 일본군과 같이 울고 사랑에 빠진 위안부도 있었다. 일본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일본군 장교의 현지처 같은 생활을 즐기며 함께 말탔던 추억을 그리는 위안부도 있었다.  반면 악착같이 돈을 모은 사람도 있었다. 빌린 돈을 다 갚고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도 남아 있으려는 위안부도 있었다. 이상은 지금도 흔히 있는 윤락녀들의 모습이다.

일본군은 점령지의 여성들을 약탈물로 간주하여 강간을 하고 죽이기도 했지만, 조선인 위안부는 기본적으로 약탈물이 아니었기에 동료 또는 군수품같이 생각하여 적국 여성들처럼 대우받지는 않았다. 일본군이 전투에 나가면 반드시 이기라며 일본군을 응원하는 위안부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12.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배상할 일이 아니다. 당시 위안부 모집은 엄연히 불법이었다. 그러므로 돈벌이에 눈이 멀어 불법에다가 비도덕적 상행위를 했던 인신매매범이나 포주가 비난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바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착취, 즉 페미니즘적 시각 또는 사회안전망 시각에서 접근해야 맞다.

2016년 9월 25일 일요일

사드 배치와 중국의 경제보복

사드(THAAD)배치로 인한 지정학 논란은 다음에 살펴보고 이번 글에서는 중국 경제보복 문제를 집중 분석하기로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이 한국경제에 차지하는 위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정 관계를 떠나서 이상하게도 이 문제를 낙관적으로 보는 기류가 팽배해있다. 마치 중국증시가 폭락하도록 중국정부가 절대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투자하다 막대한 손실을 본 투자자가 연상된다. 합리적 논리와 냉정한 상황인식보다는 그렇게 믿고 싶으므로 그렇게 보는 것 같다. 그럼 무역, FDI, 금융, 기업, 관광, 생활 및 행정 등 6개 분야에 걸쳐 한국경제에 미치는 심각한 결과를 차근차근 풀어본다.


무역

미국은 2001년까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었지만 2002년에 중국(홍콩 포함)에 넘겨주었고 다음 해에는 중국본토만으로 미국을 능가했다. 2004년에는 수입규모 역시 중국이 미국을 앞서며 명실상부한 최대 무역상대국이 됐다. 2009년 중국(홍콩 포함)에 대한 한국의 수출입 규모는 1,621억 달러로 667억 달러에 그친 미국보다 2.4배 크다. 중국본토 단독으로도 1.410억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을 멀찍이 따돌렸다. 그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90% 이상을 중국이 차지했다. 한국은 2009년 중국과의 거래에서 506억 달러를 남겼지만, 미국과의 거래에서는 86억 달러의 이문에 그쳤다. 중국의 1/6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당시 세계경제 주도권은 여전히 미국이 틀어쥐었지만, 한국으로 그 범위를 좁히면 중국이 지배권을 행사했다.

이런 기조는 2015년 현재에도 계속 이어진다. 한국의 무역총액에서 중국의 비중이 27%인데 반하여 미국은 12% 정도에 불과하다. 대중 무역규모가 대미 무역규모보다 2.3배 정도 큰 셈이다. 무역흑자를 살펴보면 중국의 위상은 한층 도드라진다. 2015년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258억 달러 흑자를 실현했지만 중국(홍콩 포함)과의 무역에선 758억 달러 이익을 남겼다. 한국은 2015년 전체 무역흑자의 84% 정도를 중국과의 무역에서 달성한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중국과 국부적 무력충돌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벌어져 중국과의 무역통로가 완전히 막힌다면 한국은 일순간 무역적자국으로 뒤바뀔 수 있다.

직접투자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대중 직접투자규모는 370억 달러 내외다. 이는 같은 중화권인 대만보다 80억 달러 정도 많다. 최근 5년만 놓고 보면 한국의 대중직접투자가 미국보다 크며 일본보다는 단지 20~30억 달러 낮을 뿐이다. 한국과 미•일 경제규모를 고려할 때 한국의 대중 투자비중은 극히 높다. 2010년 이전에도 한국의 대중직접투자 비중은 이미 높은 수준이었는데 그 이후도 식을 줄 몰랐다. 2011년과 2012년 각각 37억과 36억 달러 정도 투자했고 2013년에는 이보다 많은 51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한국수출입은행 자료에 의하면 2013년 기준 한국의 대중 직접투자 규모는 467억 달러 정도로 집계됐다. 물론 이도 상당히 보수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치까지 고려하면 600억 달러 이상이라고 말해도 그리 큰 과장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반하여 중국의 대한 직접투자는 누계로 50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서로 상대국 투자자금에 대한 동결조치를 취하면 한국의 피해규모가 중국의 10배 정도다.  

금융시장

중국이 한국에 경제보복을 하면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친다. 중국의 압박 강도에 따라 한국증시는 반 토막 날 수 있다. 국내외적으로 각종 아메게돈적 뉴스가 넘쳐나며 신용등급은 가파르게 떨어질 것이다. 나라를 기업으로 보고 설명하자면 적자 전환을 넘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약 투자자라면 매출이 급감에 손실을 기록하며 자본잠식 우려가 있는 종목을 매수하겠는가? 너도나도 투매에 나설 것이 뻔하다. 심할 경우 거의 2년 치 정부예산에 달하는 700조 원이 증발할 수도 있다. 외환시장이라고 안전하지 않다. 달러당 1,500원을 넘어 20년 정도 만에 2,000원을 지켜볼 수도 있다. 채권시장도 물론 들썩일 것이다. 중국이 보유한 국채만 내다 팔아도 채권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일례로 기획재정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3월 현재 외국인이 보유 국채규모는 102조 원 정도로 미국계 자본이 18.7조 원으로 가장 많고 중국계 자본이 16.1조 원으로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2013년 만해도 미국이 20조 원으로 중국보다 8.5조 원 정도 많았지만 불과 2년도 못되어 3조 원 이내로 줄었다.

무엇보다 미국계 자본 대부분은 민간펀드지만 중국계 자본은 중국인민은행이 다수를 차지한다. 미국계 자본은 오바마가 무슨 말을 하든 자신의 투자논리에 따라 국채를 매매하겠지만 중국계 자본은 시진핑의 말 한마디면 군사훈련을 하듯이 투자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최대한 빨리 전량 매각할 수 있다. 일단 중국이 보유채권을 처분하기 시작하면 채권가격은 내려가고 금리는 올라간다. 금리가 올라가면 대체로 투자자들의 요구수익률이 높아져 주식시장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 물론 현재와 같은 경기침체기에 금리 인상은 부동산을 필두로 한 실물경제에 직접 타격을 미친다. 앞서 무역과 직접투자 손실을 합해도 금융시장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인 상황이 벌어진다.  

기업

중국도 이제는 시장경제 논리를 존중해 기업보복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한심한 소리를 하는 인사도 있다. 중국이 한국에 경제보복을 하는 이유는 안보논리에서다. 무역 불균형 해소 즉 대한(對韓) 장기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 보복카드를 꺼내는 것이 아니다. 시장논리와는 별개로 한국이 중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응수단 가운데 유효한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는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그룹을 타켓팅해 때릴지 중소기업을 융단폭격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부작용을 고려하고라도 사태를 빨리 수습하려면 삼성, 현대, LG 등 재벌기업을 중심으로 강력한 제재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시간을 두고 점점 강도를 높일 생각이면 중소기업을 잡을 것으로 생각한다. 국가 사이 무역에선 비관세장벽을 동원해 한국정부를 압박하겠지만, 개별기업의 경우는 다양한 행정수단을 통해 직접 압박을 가할 것으로 판단한다. 세무조사와 같은 수단도 동원되겠지만 그보다는 ‘노동’과 ‘환경’ 이 두 영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것으로 생각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과 같은 다국적 기업엔 가장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중국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도 노동학대와 환경오염 기업을 제재하는 중국에 대해 다른 소리를 못한다. 국제정치에서 ‘자유’, ‘민주’가 만능보검과 같은 역할을 하듯이 경제에선 ‘노동’과 ‘환경’이 상방보검 역할을 한다. 만약 중국정부가 삼성전자를 표적으로 독하게 손을 쓴다면 삼성전자는 최소 3,600억원에서 최대 7.6조원 정도의 각종 벌금고지서를 받을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도 중국에서 반한 정서가 크게 일어나면 판매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2015년 현대자동차의 해외 판매량은 425만대 정도인데 1/4 가량을   중국에서 판매했다. 참고로 현대차의 국내 판매량은 70여만대 수준으로 국내 전체 판매량보다 중국 판매량이 30만대 이상 많다. 그 외 화장품 업체 등을 포함해 ‘중국진출’이란 한 마디로 주가가 폭등한 기업들이 부지기수다

관광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 수는 600만 명 정도로 전체 관광객의 45% 전후를 차지한다. 특히 중국 관광객의 평균 소비금액이 다른 관광객보다 2배 정도 높으며 이들로 인한 경제수익이 국내총생산의 1.6%인 22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쉽게 말해서 서울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닫지 않는 지역은 거의 없으며 이들이 지역상권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하고 있다. 일례로 2015년만 해도 메르스 사태로 중국 관광객이 발길을 끊으며 명동 상권이 휘청거린 적이 있다. 중국은 한국과 시스템이 달라 시진핑의 말 한마디면 600만 명이 일순간 제로로 될 수 있다. 앞서 무역, 직접투자, 금융시장, 기업보다 피해규모는 적겠지만, 직접적인 피해당사자는 가장 광범위할 수 있다. 중국관광객에 기댄 수많은 소상공인들과 여행업체들이 대거 장사를 중단할 수도 있으며 이는 적지 않은 사회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생각 없는 인사는 중국이 한국관광을 금지하면 우리도 중국관광을 금지하면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도 상당해 중국관광 산업도 조금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입을 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국이 입을 타격은 미미하다. 1월 중국관광연구원이 발표한 중국관광경제청서에 따르면 2015년 중국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1.3억 명 정도다. 이 가운데 한국 관광객이 400만 명이 좀 넘는다. 즉 3% 정도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해외관광객 3%가 떨어져 나간다고 중국 관광산업이 휘청거리지는 않지만 45%가 사라지면 한국 관광산업은 괴멸적 타격을 받을 것이다. 즉 두 나라의 피해 강도가 판이하게 다른 셈이다.

생활 및 행정

실제적 수치로 정확히 잡히지 않지만 그 외 각종 애로가 발생할 수 있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인사는 우리도 중국산 불매운동을 벌이면 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중국수입품과 한국수출품은 그 구조가 매우 다르다. 중국산 제품은 저가품 중심으로 한국의 생활물가를 낮추는 역할을 하지만 한국산 제품은 중국입장에서는 대체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중국은 캘럭시 대신에 아이폰으로 대체하면 그만이지만 한국은 중국산 생활용품과 농산물을 다른 나라 제품으로 바꾸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우방인 미국이 중국정부에게 동맹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중단하고 중국인이 아이폰 대신에 캘럭시를 사도록 장려하라고 권고할 리는 만무하다.  

또한, 중국비자 발급 등을 포함해 다양한 행정 불편을 겪을 수 있다. 몇 년 전에 이미 중국 거주 한국인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한국 거주 중국국적자(조선족 포함)도 100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 둘의 성격이 다르다. 중국 거주 한국인은 현지 주재원과 가족, 유학생 및 이들을 주 고객으로 한 자영업자들이 대다수고 한국 거주 중국국적자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로자, 유학생 등이 대부분이다. 즉 한쪽은 중국 현지공장을 움직이기 위한 인력이 중심이고 다른 쪽은 한국의 사양산업과 소규모 가게에 필요한 인력이 대다수다. 달리 말해서 서로 비자발급을 중단하면 중국보다는 한국의 피해가 더 크다. 극단적으로 말해 한국은 안팎으로 모두 타격을 입지만 중국은 한국기업이 떠난 빈자리를 현지기업이 채울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기술 차이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으며 오히려 중국이 한국을 넘어선 분야가 대다수다. 특히 현지 중소기업의 경우 중국기업과의 가격 및 기술경쟁력에서 점차 밀리는 상황이다.


2016년 9월 19일 월요일

한 민족은 누구인가? (1) 북한은 고구려 후손이 아니다

북한 사람들을 고구려 후손이라고 하셨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소제 북한은 고구려 후손인가를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북한은 현재 명칭이지요.  그 전으로 올라가면 조선의 북부 지방입니다. 북한은 이상한 이름 양강도 자강도를 만들어 놓았지만, 실제는 자강도는 평북이고 양강도는 함북입니다.

함경도 사투리를 보면 그 맥은 강원도에 이어집니다.  강원도 사투리를 더 강하게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강원도 사투리는 경북 지방으로 가면서 약간 달라지지면 맥은 연결됩니다.  결국 경상도 - 강원도 – 함경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예전에 하나로 수렴된다고 유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유추되는 원점은 경상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면 평안도는 어떨까요?  이것은 사투리로 찾아가기에는 조금 힘든 면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 나라를 과거로 추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선은 고려의 후손입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국경선이 북쪽으로 조금 더 확장됩니다. 육진을 개척할 때 그 지역들(고려의 국경선에서 압록강 두만강 까지)는 중국인들의 영토가 아니라 후에 만주 족이라고 일컬어지는 여진 족들이 사는 땅이었습니다.  여진족들이 사는 땅에 고려나 조선인들이 들어가서 농토를 만들어 어울려 살았습니다. 이것을 빌미로 영토를 확장한 것이 지금의 국경선임은 우리가 이미 배워서 알고 있죠.  그러면 겨우 서경(평양)까지 영토를 삼고 있던 고려는 바로 통일신라의 후손이며, 통일 신라의 후손이 거의 지금 한국인의 싱크로율 99% 인 것입니다.  약간의 여진족과 외국인들을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면 삼국 시대에서 신라가 통일하였을 때, 백제인은 전원이 통일 신라로 복속되었지만 고구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고구려는 원래 국민의 구성이 복잡합니다.  집권 세력은 부여 족이라고 할 수 있고, 동쪽에 부여나 동예나 옥저 출신들이 있었지만, 그 외에 말갈, 거란, 여진 족의 조상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망했을 때, 기록에 의하면 겨우 10 만 명의 유민이 신라로 들어 왔을 뿐입니다. 고구려 주민의 다수는 그대로 남아 발해 건국에 이바지합니다.  나중에 발해가 망했을 때, 발해 유민의 거의 대부분은 고려에 들어 오지 않았습니다.  (일본에는 고구려 유민이 20 만명 건너감)

즉, 고구려를 근간으로 하는 민족 중 한국민족과 관련이 있는 부여, 동예, 옥저 출신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지금의 한국민으로 후손을 거의 남기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통일 신라의 후손들이 올라가서 퍼진 것입니다.  사람들의 성의 분포를 보면 그것은 자명합니다. 북한 통계는 확실히 나와 있지 않지만, 김이박최정의 구성 비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보입니다. 한국인의 분포는 이미 조선 시대에 국가 전체로 동질적(Homogenious) 이었습니다. 거기에 약간 여진족의 후손들이 섞인 상태입니다.

알고 보면 사는 땅의 위치에 관계 없이 북한이나 서쪽 지방이나 우리는 모두 통일 신라 인의 후손입니다.

2016년 9월 17일 토요일

한민족은 누구인가? (2) 언어학적 추적

어족을 추적하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근원을 추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학계에서는 별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는 못하다.  하나의 민족이 그 언어를 버리고 다른 언어로 갈아타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연구가 전혀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경우 그 사용 언어를 어느날 갈아탔다고 볼만한 근거를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략적으로 추정 정도만 알게 되고 굳이 결론을 내지 않더라도 아주 많을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어는 교착어로 분류되며, 알타이 어족으로 분류된 적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대략 어족 구분하는 법을 살펴 본다.

먼저 유형적 분류법에 의하면 세계에는 중국어, 타이어 같은 고립어가 있으며, 한국어, 일본어, 몽골어 같은 교착어, 독일어, 프랑스어,러시아 어 같은 굴절어로 크게 3 대 분류가 있다.  교착어는 SOV (주어-목적어-동사) 형 문법 체계를 가지며 현란한 어미 변형으로 상당한 문법체계를 갖춘다.

20 세기 초 핀란드 언어학자인 람스테트가 일본에서 일본어를 연구하다가 거기에 온 조선 유학생의 조선어를 채취하면서 조선어를 연구하고 그 결과 그는 한국어가 우랄 알타이어 족에 속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930 년 대 이후로 우랄어와 알타이어는 연관 관계가 없어져서 우랄 알타이어 라는 말은 공식적으로 페기되고 한국어 일본어 등은 알타이어 계통일 것으로 오래 동안 믿어져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한국어와 일본어는 알타이어 족에서도 빠지게 되고 불분명한 소속으로 남게 된다.

한국어가 알타이어 족에서 빠지게 되면, 복잡한 일이 생긴다.  몽골어를 비롯해서 만주어 등 북방 계통 사람들이 모두 알타이어 족에 속하는 데, 한국어는 같은 어족이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과 적어도 언어학적으로는 연관성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언어학자들이 어족 분류로 중요하게 보는 요소는 그 문법 요소가 아니라 단어들의 유사성을 따진다.  가령 불이나 물같이 초기부터 생성되었을 법한 단어들은 그 발음들이 약간 달라질 수 있지만 매우 유사해야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인데, 몽골어의 단어들과 한국어의 순 한국어(한자어 파생이 아니라)의 발음 연관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같은 교착어로 분류되지만, 같은 형식의 문법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5,000 년전 북유럽에서부터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빗살무늬토기 출토 지역은 또한 알타이어 족의 분포와 매우 비슷하게 되고, 북방계 민족의 이동으로 손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 알타이어 족 배제가 됨으로써 힘을 잃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어와 일본어는 바로 옆에 알타이어 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이 있음에도 그들 언어와 관계없이 매우 독립적으로 또한 자생적으로 우연히 교착어적 특성, 유사 알타이어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어설프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생각해 보았다.

언어는 엄마한테 배운다. 아빠는 씨를 뿌리고 돌아다닐 수도 있다. 청동기를 손에 쥔 남자 정복자들은 마을들을 쳐들어가서 이 민족 종족의 남자들을 모조리 살육하고 여자들에게는 자신의 씨를 뿌린다.  그리고 잠시 후에 또 다른 마을을 정복하러 다닌다.  아이는 남자의 아이이지만 엄마의 말을 배운다.  아이가 배우는 것은 문법 구조이며, 어쩌다 한 번 씩 들리는 아버지와 소통하기 위해서 단어들을 배운다. 단어를 배우는 것은 쉽지만, 문법을 배우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문법 구조를 오랜 기간 엄마한테 배우고, 가끔 들리는 아버지의 말은 단어만 배운다.   이 가설에 의하면 엄마는 주로 알타이어 족 사람들이지만, 남자들이 누군지 헷갈리게 된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인데, 청동기도 역시 비파형 청동기를 사용한 사람들이 또한 북방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중국인도 북방계도 아닌 제 3의 종족이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삼한 지역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북방계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삼한 사람들이 북방에서 온 사람들을 정복 (남자가 여자를)하였는 지 모른다. 역사 유물로 보면 납득이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를 하나의 가설로 남겨 놓고 싶다.

2016년 9월 15일 목요일

싸드 결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주권의식, sovereignty 의식이 손상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말 전자파가 유해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와 같이 시위하는 것인가?

국가안보에 관한 사안임에도 정치권에서도 여야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야당은 너무나 익숙한 모습으로 정부만을 비판한다. 본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부의 의사결정 및 대응 과정을 둘러싸고 잡히는 꼬투리만 물고 늘어진다. 오로지 현 정부의 실패 부각, 그들의 집권 가능성, 자기 당세 확장, 자신의 차후 당선에 이 사안이 어떻게 작용할 지에만 관심이 있다. 누구도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우리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걱정하지 않는다. 안보가 정쟁의 대상이 된지 오래이고, 그들 간의 어떤 쟁점보다 덜 중요해진 지도 한참 되었다.

이러는 사이에 일부인사들을 새로운 루머와 정부비판을 확산시키고 있고, 시위를 부추겨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자 획책하고 있다. 언론도 진실 여부를 거르는 역할은 포기한 채 이들의 언행을 충실하게 전달하기에 바쁘다. 사회 지도층 인사나 지식인들은 언제나처럼 냉소적으로 방관하면서 유체이탈식 화법을 구사한다. 정말, 이래도 되는가?

우리 내부의 문제점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스스로에게 침을 뱉는 일이라 그만두고자 한다. 대신 외부의 시각에서 우리를 한번 바라보고자 한다. 그 동안 우리끼리 서로의 주장에 사로잡혀 외부의 시각에서 객관화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수출과 한류로 쌓아온 국가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것 같은 우려도 있다. 과연,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면 우리를 어떻게 볼까?


외국인들이 본다면?

외국인들이 첫 번째로 궁금해 할 것은 “왜 반대하지?”일 것이다. 북한은 10개 이상의 핵무기를 개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탄도미사일에 탑재하여 공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경량화’하는 데 성공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탑재한 탄도미사일, 즉 ‘핵미사일’로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이를 방어하기 위한 무기인 사드의 배치는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난 6월 22일 북한은 무수단 미사일을 1400km 이상의 고고도로 발사하여 400km 거리의 표적을 타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것은 패트리어트(PAC-3)로는 요격할 수 없고, 사드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사드는 너무나 중요한 방어수단인데, 그것을 배치하는 것을 반대한다? 외국인 같으면 당장이라도 구매하여 배치하라고 정부를 채근했을텐데, 주한미군이 자신의 사드를 배치하여 방어해 주겠다는 것을 한국 국민들이 반대한다는 것을 외국인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중국이 반대하는 것을 정부가 강행하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반대한다고 대답할 것인가? 미군 것이라서 반대한다고 대답할 것인가? 외국인들은 재차 물을 것이다. 한국은 자주독립국 아니냐고. 국방정책도 중국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느냐고, 한미동맹이 필요없는 것이냐고. 아마 우리 국민 중 누구도 이와 같이 질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당당하게 답변하지는 못할 것이다.

두 번째 외국인들이 궁금해 할 사항은 “성주군민들이 왜 저렇게 격렬한 시위를 하지?”일 것이다. 전자파의 유해성 여부는 과학이라서 따져보면 금방 밝혀질 사항이기 때문이다. 사드 레이더 전파자의 경우 국방부는 100미터만 떨어지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전자파 전문가들도 텔레비전에서 전자파가 그렇게 유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전자파의 유해범위가 500미터나 되는 그린파인 레이더의 전자파를 기자들이 방문하여 측정한 결과 30미터 앞에서 허용치의 4.4%에 불과하다고 보도한 바도 있다.

일본에서 배치된 동일한 X-밴드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거의 무시할 수준이라는 자료도 있다. 곧 기자들이 괌(Guam)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를 확인하여 보고할 것이다. 성주군민들이 이러한 과학적 자료보다 일부 인사들의 의혹을 더욱 신뢰하는 것을 보면 외국인들은 물을 것이다. 정부가 제공하는 자료의 어떤 요소가 실제와 다른 지를 과학적으로 제기하면 되지 않느냐고. 시위를 하면 전자파가 무해해지고, 시위를 하지 않으면 전자파가 유해해지느냐고.

성주군민들은 외국인들에게 시위하는 분위기라서 시위한다고 대답할 것인가? 지역에 대한 더욱 큰 지원을 바라서 시위한다고 할 것인가? 일부 반정부 인사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시위한다고 할 것인가? 성주군민 중에서 왜 시위하는 지를 당당하게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8년 그렇게 처절하게 시위했던 광우병에 관한 모든 사항이 루머로 들어난 전력을 갖고 있는 우리다. 이제 또 그와 유사한 사례를 반복하려는가? 외국인들은 우리의 지성을 어느 정도로 평가할까?

더욱 실감나게 나라로 구분하여 외국인들이 현재 한국에서 사드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한번 유추해보자.


미국 국민들이라면?

미국은 한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고, 2만 8500명의 군대를 한국에 배치하여 동맹공약을 이행하겠다는 결의와 태세를 과시하고 있다.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라는 개념 하에 만약 북한이 한국을 핵무기로 공격할 경우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비핵 및 핵무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에게 응징보복을 하겠다고 언명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에게는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지상과제이다. 그렇게 되면 핵무기로 위협하면서 한국을 공격하여 적화통일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7일 만에 남한을 석권하겠다는 “7일 전쟁계획”을 수립하여 훈련까지 실시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데 주한미군의 주둔을 지속하기 위한 전제조건 중 하나는 그들의 안전, 군대용어로 생존성(survivability)이다. 미군은 물론이고, 모든 군대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노동미사일이나 무수단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여 공격할 경우 아무런 방어책이 없다면 주한미군이 어떻게 한국에 주둔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미군은 북한이 핵실험을 시작하자마자 패트리어트(PAC-3) 요격미사일을 배치하였고, 노동미사일이나 무수단 미사일을 고고도로 발사할 경우 그것이 방어할 수 없다고 판단하자 사드의 배치를 추진한 것이다.

그런데 동맹국인 한국은 주한미군을 보호해줄 수 있는 별도의 방안도 없으면서 사드의 배치를 2년 이상 지체시켰다. 동맹국 군대인 주한미군의 안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은 채 중국이 미국을 향하여 발사하는 대륙간탄도탄(ICBM)을 요격할까봐 걱정하고, 미군이 구매해둔 것을 한국으로 재배치하는 사안인데도 마치 미국이 한국에게 비용을 요구할 것으로 추측하였다. 자신들이 규정에 근거하여 인체에 유해하지 않도록 만들었고, 괌에 배치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을 마치 살인무기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 국민이라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중국 국민들이라면?

중국은 한국과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고, 무역거래도 활발하며, 대규모 중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고, 한류의 열풍에 빠져 있다. 그리고 과거에 비해서 북한을 덜 지원하고 있고, 유엔의 경제제재에도 협조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는 물론이고, 통일을 위한 중국의 적극적 지원을 획득하고자 노력해오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우리와 동일하게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국가이다. 남한과도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좋지만, 북한도 버릴 수 없다. 비록 순수한 방어무기이고, 그들의 ICBM을 요격할 수도 없으며, 레이더의 탐지 범위도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는 것보다는 배치되지 않는 것이 편안한 것은 분명하다. 한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불안하다는 사정은 알지만, 그것은 한국의 사정이지 중국이 걱정할 바가 아니다.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끝내지 않으려니까 북한에게 불리한 사드 배치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섭섭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중국에게는 굳이 한반도 사드 배치를 환영해줄 이유가 없다.

자신들이 국익을 최우선시하기 때문에 중국 국민들은 한국도 당연히 위와 같은 중국입장보다는 한국의 국익, 즉 북핵에 대한 자신의 방어를 우선시할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예상과 달리 중국의 입장을 더욱 존중하는 데 매우 놀랐을 것이다. 사드 배치 반대의 이유를 제대로 제시하지도 않았음에도 한국 내에서 다수의 중국 대변자들이 자청하여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주었고, 2년 이상 논란을 벌여오는 데 대하여 감사하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1636년부터 1984년까지 청나라가 조선과 맺은 군신관계 및 사대주의의 영향력이 이와 같이 강하게 남아있다면서 흐뭇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고집을 부리면 미국과의 동맹도 파기시킬 것으로 기대하지 않을까? 한국을 우습게 보지 않을까?


일본 국민들이라면?

일본은 한국과 동일하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북한이 노동미사일과 무수단 미사일을 사용하면 일본을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은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하자마자 탄도미사일 방어(BMD: Ballistic Missile Defense)에 나섰고,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어서 비행하자 미국과 함께 최적의 탄도미사일 청사진을 연구하였으며, 2003년 이를 확정하여 그 동안 상당한 노력과 예산을 투자하여 체계적인 BMD를 구축해왔다(한국에서는 MD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세계적으로는 BMD라고 한다).

일본은 다층방어에 의하여 BMD를 구축하고 있는데, 하층방어로 패트리어트(PAC-3) 17개 포대를 주요 도시마다 배치해두었고, 탄도미사일 요격 가능한 SM-3 해상요격미사일이 구비된 이지스함을 4척 운영하고 있다(이를 8척까지 증대시킨다는 계획이다). 즉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일본은 SM-3로 해상에서 제일 먼저 요격하고, 실패하면 지상의 PAC-3로 요격함으로써 2회의 요격기회를 갖는다는 개념이다. 이것도 불안하여 일본은 사드나 지상용 SM-3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추가로 배치함으로써 3번으로 요격기회를 늘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평시부터 미국과 함께 BMD 작전을 수행하고 있고, SM-3의 사거리와 성능을 더욱 개량한 SM-3 Block II를 미국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드 배치 논란을 보면 놀랄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동맹관계라면서 미국과의 협력없이 BMD를 추진한다는데 놀랐을 것이다. 한반도의 전쟁억제 및 승리를 위하여 한미연합사령부까지 보유하고 있으면서 가장 심각한 위협인 핵미사일 대응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조하지 않는다?

사드에 의한 중국의 ICBM 요격이나 중국 군사활동 탐지를 걱정해주는 것을 물론이고, 중국에 의한 경제압력까지 우려하는 데도 놀랐을 것이다. 2006년 일본이 미국의 X-밴드 레이더를 배치할 때도 중국이 반대하였지만, 일본은 일언 지하에 무시하였고, 이후부터 중국은 일본의 BMD에 대해서는 제대로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기를 주저하지 않음에도 중국의 대일본 무역규모는 홍콩, 미국에 이어 3위이다.

일본 국민들은 사드 배치를 둘러싼 전자파와 그를 빌미로 한 시위에 대해서는 너무나 놀랐을 것이다. 왜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고, 과학자들이 검증하도록 하지 않을까? 왜 주민들은 시위부터 하고볼까? 그리고 마음 속으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기억과 한말에 갈갈이 분열되었던 조선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까? 35년 동안에 겪은 조선인들도 그랬었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유사한 상황이 오면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 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스라엘과 스위스의 국민들이라면?

미국, 중국, 일본 이외에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한국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이스라엘과 스위스의 국민들은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라크가 핵발전소를 건설해 나가자 1981년 세계의 이목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이를 폭격하여 파괴시켜 버렸다. 시리아가 비밀리에 건설하고 있었던 핵발전소도 2007년 동일하게 파괴시켜 버렸다. 지금도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징후가 있을 경우 폭격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음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다. 1994년 영변 핵발전소를 파괴시키자는 계획을 한국 국민들이 반대하였다고 말하면, 이들은 너무나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들이 언젠가는 핵미사일을 만들어 공격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오래전부터 BMD를 구축해왔다. 이스라엘은 사드와 유사한 위력을 가지는 애로우(Arrow)라는 요격미사일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2000년부터 배치한 다음에 지속적으로 성능을 향상시키고 있고, 패트리어트(PAC-3)를 미국으로부터 구매하여 2회의 요격을 보장하고 있다. 이것도 불안하여 이스라엘은 데이비즈 슬링(David's Sling)이라는 이름으로 애로우와 패트리어트 사이에서 한번 더 요격하도록 계획하여 금년부터 배치해 나가고 있고, 로켓탄이나 포탄까지 요격할 수 있는 아이언 돔(Iron Dome)도 개발하여 배치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총력을 기울여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고자 노력해야할 상황인 것 같은데, 미군이 배치해주겠다는 사드를 반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남한 1/4 정도의 국토에 그와 같은 수많은 무기를 배치하고 있는 이스라엘로서 한국이 전자파 피해가 두려워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드의 5배가 넘은 유해범위를 가진 그린파인 레이더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이스라엘 아닌가?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고, 어느 국가도 그들을 공격하겠다고 말하지 않지만, 국민개병제를 유지하고 있고, 대규모 민방위대를 조직해 두고 있다. 스위스는 1990년 대에 이미 국민의 100%가 대피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하였고, 대표적인 공공대피소인 소넨베르그 터널은 2만명을 동시에 수용하여 2주간을 견딜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으며, 각 가정별로도 유사시를 대비한 대피소와 필요한 장비들을 준비해두고 있다. 한국 서초동의 트라움 하우스라는 빌라는 이 스위스의 기준을 적용하여 대피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스위스 국민들의 입장에서 북핵 위협에 대한 한국의 무심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드와 같은 방어무기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러한 논란을 어떻게 생각할까? 스위스 국민들이 한국에 왔다면 당장 대피소가 어디 있는지부터 찾을 것이다.

우리가 외국인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지만, 객관성은 가질 필요는 있다. 우리 내부의 갈등에 지나치게 함몰될 것이 아니라 세계의 보편적 기준으로 우리를 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사드 배치가 아닌 핵대비 토의

현 상황에서 우리가 자문해야할 질문은 사드 배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북한이 핵미사일로 공격한다면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가?”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모르겠으나 불안하다면 개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답답한 이야기지만, 현재 상태에서 북한이 핵미사일로 공격한다면 한국은 이로부터 국민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나 자신, 내 가족, 내 후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국론을 결집하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 나가야 한다.

정부부터 북핵 대응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국민들이 안심할만한 대응전략을 수립하여 보고해야 한다. 태세가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하고,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하여 보강해야 한다. 청와대 조직은 물론이고, 국방부, 국가정보원, 외교부, 국민안전처 등도 업무의 우선순위와 조직도 북핵 대응 측면에서 전면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관련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여의치 않을 상황에 대비하여 필요한 조치를 식별하여 구현해 나가야 한다.

정치인,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의 대오각성과 변신이 필요하다. 국가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그 어려운 국회의원에 도전하여 성공하였다면, 현재의 언행이 국가를 위한 일인지 아니면 자신의 영달만을 위한 것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상당수는 그들이 당리당략에 함몰되어 있고,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국가안보도 희생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전에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두고 당에 따라 의견을 달리했던 과거 역사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삼권분립’을 명분으로 국회의 권한을 주장 및 행사하고자 한다면, 국정에 관한 3분의 1의 권리에 수반되는 3분의 1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무조건 정부만을 비판하고, 오히려 국민들의 갈등을 조장해서는 곤란하다.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민중의 지팡이’로서 사실 여부를 따져서 보도했는지 아니면 일부 인사가 제기한 루머를 전달하는데 급급했는지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결정하지 않으면 무책임하다고, 결정하면 졸속 결정이라고 어떻게든 비판할 꼬투리를 잡고자 노력하지 않았는지? 정부가 공개하지 않으면 불통이라고 하고, 공개하면 국가기밀을 노출시켰다면서 결국은 모든 것을 정부의 책임으로 몰아가지 않았는지? 일부 인사가 의도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지는 않았는지? 특종이라는 유혹에 국익을 너무나 쉽게 포기하지 않았는지? 작은 글재주로 표시나지 않게 오히려 의혹과 불신을 키워오지 않았는지?

그러나 반성과 분발이 가장 필요한 국민들의 집단은 지식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과학적 평가로 정확한 사실을 규정해주면 루머가 발생할 수 없을 것인데, 그들은 계속 방관과 3자적 관점만 지속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광우병, 천안함 폭침 원인과 같이 명백히 과학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그들은 수수방관함으로써 루머가 나라를 휩쓸도록 하였다. 사드의 전자파도 너무나 명백한 과학적 사항이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과학자들은 소수이다.

오히려 어떤 지식인들은 일부 인사들의 루머를 추종하거나 퍼트리고 있는 것 같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처럼 나라를 바로 이끌어야할 집단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필요하다면 국민들에게 듣기 싫은 말도 해야할 것이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도 주(周)나라의 고사리를 먹을 수밖에 없었듯이, 아무리 고고한 지식인이라고 국가라는 공동체에 의존하여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배운 지식으로라도 그 공동체에 보답해야하는 것 아닌가?


>질문과 부탁

아직도 나라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인사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까지 주장한 의혹 중에서 한 가지라도 맞은 것이 있는가? 도대체 왜 이러는가? 정말 스스로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 주변의 몇몇이 아닌 다수의 국민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가? 광우병 사태나 천안함 폭침 때 본 재미를 재현하고자 하는가? 여러분들의 자식과 손자들에게 지금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을 자랑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가? 사진을 찍고 앨범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여러분과 여러분들의 자식과 손자를 지킬 수 있는 복안을 갖고 있는가?

성주군민들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필자도 고향이 그 근처라서 성주에 배치된다는 결정을 들었을 때 기뻤습니다. 우리 고향도 보호될 것이고, 우리 일가친척도 더욱 안전해질 것이라면서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내 고향에서는 언제나 나보다는 가정, 가정보다는 동네, 동네보다는 지역, 지역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성주군민들은 당연히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주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기대와 너무나 달라서 실망이 큽니다. 자초지종도 듣기 전에 반대하고, 아주 오랫동안 시위해온 사람들처럼 익숙하게 시위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낯설었습니다. 정말 전자파가 유해해서 시위하나요, 아니면 지역적 이익을 더 챙기기 위해서 시위하나요? 후자라면 법도에 맞는 건가요? 성주의 서당에서 여러분들을 가르치시던 어르신들이 보시면 호통을 치지 않을까요? 제발 양반의 고을, 성주를 되돌려 주세요.

성주가 반대한다기에 나는 아직도 형수와 내 일가친척이 살고 있는 고향의 군수에게 전화할 생각까지 하였다. 대신 배치를 자청해달라고. 레이더는 절대로 유해하지 않고, 오히려 북한의 핵미사일로 지역주민들이 보호받을 것이라고. 북핵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이 되어 투자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조금 지나 북핵 위협이 더욱 심각해지면 서로가 사드를 배치해달라고 할 것이라고.


2016년 7월 6일 수요일

이슬람 문명은 왜 자유주의 문명에 비해 미개한가?



http://wspaper.org/article/17336?utm_source=dlvr.it&utm_medium=facebook

링크한 노동자연대의 해당글은 전형적인 <이슬람 대 서구제국주의>라는 진부한 진보주의적인 대립구도 하에서 작성된 글이다.

물론 (레닌과 트로츠키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식민지 분할전쟁이 그 본질인 1, 2차 세계대전과 그것의 결과물인 전후세계질서는 그와 같은 대립구도 아래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올랜도 학살사건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이슬람과 서구문명의 충돌 및 대립은 그런 도식 아래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

예전에 사무엘 헌팅턴은 9.11 사건을 도화선으로 한 '테러와의 전쟁"을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 간의 충돌로 진단한 바 있다. 이것은 두고두고 까였고 특히 좌파들이 나서서 비판했다. 확실히 사무엘 헌팅턴의 진단은 잘못된 진단이다. 왜나하면 진짜 충돌은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 아닌 <자유주의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양심과 선택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서구식 자유주의 문명은 어디서 왔는가? 기독교에서 왔는가? 아니다. 자유주의  이념은 기독교 문명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나 기독교의 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유럽 기독교 문명이 좁아터진 땅덩어리에서 신교와 구교로 갈라져서 서로를 학살한 "30년 전쟁"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전쟁으로 인한 기근과 전염병 그리고 학살로 독일 인구의 절반이 죽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끔찍한 전쟁이었다. 그 끔찍한 참사를 겪은 이후에야 저 야만적인 유럽 오랑캐들 사이에서 정치적 권력을 (종교전쟁이나 일삼는 교회가 아닌) '주권자'에게 몰빵하자는 홉스의 논리와 더불어 그 주권자는 '교회'도 '국왕'도 아닌 '인민'이라는 미국/프랑스 혁명 이후의 로크와 루소식 인민주권설이 도래한 것이다. 그 이후 서구문명에서는 정교분리의 원칙과 더불어 개인의 권리가 종교적 공동체보다 우선한다는 사상이 우여곡절 끝에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근대적 상식은 오히려 유럽인들이 서로 싸움박질이나 쳐 하던 애미 애비도 없는 근본 없는 오랑캐들이었기 때문에 더 일찍 도래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밖에 없다는 것을 (쌈박질 밖에 모르던 야만인 오랑캐들답게) 몸으로 먼저 깨달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유럽놈들과 똑같이 서로 간에 칼질이나 하던 별 볼일 없는 동쪽의 쪽바리들도 비슷한 내전인 '세이난 전쟁'을 겪고서야 비로소 일본인들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한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조선인들을 침략할 힘을 갖추었다. 수백 수천년 동안 쪽바리들보다 더 우월한 문화를 갖춘 조선인들은 현재의 전후 일본인들과 그 격차를 지금도 메우지 못하고 있다.

수백 수천년간 있었던 문명의 오랜 우위와 열위는 현재의 사태를 설명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한편 저 유럽의 오랑캐들과 달랐던 이슬람 문명의 사정은 어떤가? 이슬람 문명은 평화와 관용의 종교라고 혹자는 말한다. 확실히 그렇다. 20세기 전까지 대량학살과 인종청소를 일삼았던 유럽의 야만인 놈들과 달리 이슬람 문명은 그와 같은 대량학살을 피했다. 이슬람에도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차이만큼 성격이 다른 시아파와 수니파 등 교리상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들 종교 내의 파벌의 공존공영을 지역적으로 모색했기 때문이다. 종교가 달라도 상대의 지역적인 지배권을 인정하고 자기 지역의 소수종교도 세금만 내면 거주권을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근동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페르시아 반도는 유럽보다 더 선진적이었다. 그러한 여건 속에서 이슬람 문명은 과학기술과 학문의 꽃을 피우고 중세의 문화적 단절을 겪은 유럽 오랑캐놈들에게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 유럽 고전문화의 원류를 전달해 주었다.

한편 이슬람 내의 갈등과 테러가 격화된 결정적인 계기는 물론 서구 제국주의 때문이다. 그들이 이슬람 문명의 지역적인 질서를 어지럽히고 열강의 이해에 따라 공존공생을 추구한 기존의 이슬람 문명의 민족적 생활권을 무시한 채 국경선을 제 멋대로 구획했고 그 덕분에 이슬람 내에서 테러와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그 때문에 터키의 아르메니아 쿠르드 대학살이 유발된 것이다. 그 이후 제멋대로 국경선이 정해진 이슬람 문명은 군사독재 아니면 사회주의 이념이라는 더 빡센 종교이념에 의해 부족과 종파간 갈등을 억누르고 비로소 평화를 찾았다. 물론 소련이 붕괴한 이후 이슬람은 다시 1, 2차 세계대전 못지 않은 혼돈의 카오스가 되었다.

하지만 일단 민족적 경계가 획정되고 주권재민의 원칙이 확립된 이후 쟁점은 더 이상 서구 제국주의와 이슬람 문화의 갈등이 아니다. 나는 노동자연대의 활동가들에게 되묻고 싶다. 과거 제멋대로 식민지 사이의 경계를 분할한 서구 제국주의가 잘못되었다고 하면 다시 지금의 이라크와 시리아 사이의 국경을 재분할할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일단 국가의 경계 내부에서 갈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것이다. 이때 이슬람 문화는 갈등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슬람 인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슬람이 아닌 서구 자유주의 문명이다.

사람들은 이슬람이 전통적으로 평화와 관용의 종교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때의 관용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말해야 한다. 이슬람이 관용하는 것은 공동체 내부의 종교적/문화적 관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 문명은 유럽과 달리 중세와 근세시기 종교전쟁과 내전 및 제노사이드 같은 야만을 겪지 않았다. 오히려 십자군 전쟁에서는 유럽인들이 불관용의 가해자들이었다. 반면 서구 자유주의 문명에서 관용의 대상은 '공동체'가 아닌 '개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 공동체의 문화를 따르지 않아도 공동체가 개인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것(ex명예살인, 투석형, 등등)을 법이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자유주의 문명의 사상은 종교의 차이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극단의 후진성과 야만을 오히려 역사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반면 이슬람 문명은 그 같은 일을 정작 역사적으로 심각하게 겪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서구보다 더 후진적인 것이다.

나는 좌파들이 오히려 이슬람의 문명적 후진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으면 좋겠다. 이것은 절대 이슬람 대상의 인종주의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구약성경에서도 현재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도) 저질렀던 여성에 대한 '명예살인'을 전통적으로 저질러왔다는 증거를 <장화홍련전>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조선인들이 공동체=가족 내의 여성이 순결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하거나 살해에 동조하는 야만적인 짓을 그만 둔 것은 개인의 권리가 공동체의 종교적/문화적 관습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법으로 천명한 이후부터이다. 아무리 늦어도 6.25 전쟁 이후부터이다.

이슬람 문명은 교리상으로 공동체의 문화적 차이를 전통적으로 보장했을지는 몰라도, 공동체 내부에서 개인의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데 인색했다. 물론 근대 이전의 기독교는 더 심했다. 미국의 청교도들은 19세기 말까지 마녀사냥을 저질렀다. 그러니까 미국에는 아직도 도널드 트럼프 같은 불한당을 지지하는 야만인 오랑캐들이 많다. 하지만 서유럽에서는 기독교도들간의 피의 내전을 통해 비로소 자유주의와 개인우선의 세속주의를 터득했다.

다시 말해, 개인우선과 세속주의 문화를 수용하지 않는 이슬람은 자유주의 세속국가의 보호 및 관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무슬림은 정교분리의 세속국가의 법을 따르는 무슬림이다. 나쁜 무슬림은 그것을 따르지 않는 무슬림이며 난민이라 해도 수용해서는 안된다. 유럽은 시리아 난민들에게도 그 원칙을 철저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유럽인들은 지젝의 말대로 위선자들이다. 무슬림들이 그것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은 그 공동체와 가족 내부에서 무슨 짓을 저질러도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소리이다. 나는 좌파들이 그런 위선적인 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가 아들 딸을 때리고, 선생님이 학생을 때리는 것이 인권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들이 이슬람 문화 내지는 전통문화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적이라고 생각된다. 평범한 무슬림 교도라면 당연히 아들 딸을 무슨 이유에서건 학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평범한 무슬림 교도라면 국가가 가족=공동체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해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저들과 우리 사이의 문명적인 차이이다.

[출처] 이슬람 문명은 왜 자유주의 문명에 비해 미개한가?|작성자 박가분http://blog.naver.com/paxwonik

2016년 6월 12일 일요일

높은 최저임금의 여러 가지 문제들

 근래 최저임금 관련하여 워낙에 이야기가 많고, 제 블로그에도 최저임금 키워드나 그에 관련하여 찾아오시는 분이 많아 이에 관련한 추가적인 포스트를 작성합니다.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더 높은 최저임금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느냐,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느냐, 그리고 누구에게 도움이 되느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만일 당신이 최저임금 노동자라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싶어서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한다면, 그럴 만한 일자리로 이직을 하거나 사업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건 바람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더 많은 최저임금을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싶다고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면 대단히 곤란합니다.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자면 높은 최저임금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특정 소수에게만 이익이 됩니다. 많은 이들은 더 높은 최저임금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고, 총체적으로는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우선 최저임금은 그 자체로 시장 불균형을 만드는 일종의 규제입니다. 사업자나 회사는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으로는 합법적으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습니다. 해당 노동자의 노동력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와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내년 최저임금이 6030원으로 결정되었는데, 이것은 노동자의 노동력이 시간당 6030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6030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적잖은 경우에 노동자의 노동력이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부가가치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건 쉽게 말하면 어려운 사업자나 기업이 많다는 것이지요. 생계를 위해 사업을 하는 개인 및 영세사업자가 참으로 많습니다. 정책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릴 때는 임금 노동자들과 동등한 정도로 이들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최저임금도 못줄 사업자는 빨리 망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사악하고 모질고 못되어먹은 사람들이지요. 조금이라도 건강한 이성과 감성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대규모의 사업체 및 사업자 도산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이 정말 나쁜 건, 그 방식이 ‘가난한 사람이 또 다른 가난한 사람을 의무적으로 보조하도록’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이 말을 바꾸면 ‘가난한 사람이 다른 가난한 이를 착취하게 한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은 유일하게 훌륭한 재분배 정책도 아니고, 경제학적으로 훌륭한 분배 정책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도 가난한 이를 구제하거나 도와줄 방법은 참으로 많습니다.

 실제 생계형 사업자들은 사업이 망했을 때 재취업이 어려운 연령대인 경우가 많으며, 사례를 보면 50대 사업자들의 다수가 사업에 실패합니다. 그리고 이 망한 50대는 평생 쌓아둔 재산을 잃고, 재취업의 기회도 차단당한 암울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또 대체로 이 연령대는 자녀가 있고, 노부모를 봉양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업자들에게 돈을 빌려준 수많은 사람들이 또 있지요. 그 사람들도 물론 대체로는 가족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저임금제는 평균적인 노동자에게도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빠르게 증가하는 최저임금은 일자리를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 관련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최저임금 인상 시엔 실업률이 다소나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파급은 단순한 실업률 문제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있는 사업체는 보다 규모가 크고, 조직적이며 유사시 손실을 다른 쪽에 떠넘길 수 있는 집단일 확률이 높습니다. 즉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자영업자 비율을 줄여야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골목 상권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더 장악해야한다. 재래시장도 망하고, 음식점도 줄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본인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겠습니다만.

 사업체 숫자의 감소, 독과점화되는 시장은 당연히 노동자에게도 좋을 게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노동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으려면 성공하는 사업체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성공적인 기업이 노동자에게 많은 임금을 주는 건 그들이 천사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기업의 장기적 성공 및 시장에서의 경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은 신규 기업 및 사업자가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문턱을 높여버립니다. 그 어떤 사업체라도 초반에는 힘들기 마련이며, 힘든 시기도 있기 마련입니다. 대다수의 사업자들은 창업 후 한동안은 실질적으로 전혀 수익이 없습니다. 투자원금만 회수하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

 요약하자면 저소득층이 더 많은 소득을 얻으려면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가 생겨야 합니다. 그런데 급속도로 높아지는 최저임금은 그러한 일자리가 생길 가능성을 낮출 확률이 높습니다. 인건비가 매년 6~7% 수준으로 늘어나는데, 그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기란 어렵습니다. 인건비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아마 그런 사람들도 통신비, 가스비, 교통비 같은 게 매년 7%씩 오른다면 미치려고 할 겁니다. 사업자에게 인건비 비중은 저런 것보다 결코 낮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층의 평균 소득을 높여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속적인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10명중 실업자가 1명만 생겨도, 그의 근로소득은 0이 됩니다. 더구나 최저임금 노동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올라서는 데도 가파른 최저임금 상승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책이나 규제를 검토할 때는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 및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합니다. 혹여 어떤 정책이 다수에게 이익을 주더라도, 소수에게 너무 큰 피해를 준다면 그런 정책은 재검토해야합니다.

 또 고려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진짜 빈곤층 가장은 최저임금 일자리에 머무르려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더 많은 임금을 벌기 위해 노력합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런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건 불합리한 일이지요. 현실적으로는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리고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제조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특근, 잔업, 주휴수당 등으로 어느 정도 생계가 가능한 임금을 챙기는 경우가 많은데,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은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한국 최저임금은 21세기 들어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최저임금이 이렇게 올라간다면 그 부작용이 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시간당 5000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노동과, 시간당 10000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은 더 많은 숙련도를 요구할 확률이 높고, 강도도 더 높을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 최저임금이 시간당 10000원이라면 자유 시장에서 시간당 10000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퇴출됩니다. 최저임금제는 사실 저생산성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는 제도가 아니고, 저생산성 노동자를 노동 시장에서 반영구적으로 퇴출시키는 제도일 수 있습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제도와 최저임금제는 본질적으로 다른 제도입니다.

 그리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내수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그건 그야말로 아무런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을까? 라는 가설로는 제안이 가능합니다만, 그 입증은 전혀 다른 문제지요.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인상이 내수경제활성화에 좋은 영향을 줄 확률은 낮고, 그 반대일 확률은 높습니다.

 최저임금이 늘면 최저임금 노동자는 분명 소비를 더 하긴 합니다. 다만 문제는 최저임금 지급자가 그만큼 소비를 덜 하고, 투자자본에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데 있지요.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건 돈의 회전속도가 빠르고, 투자자본이 불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업자가 투자자본 손실을 입게 되면, 그것은 결코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호황일 때 폐업하는 점포가 많은 건 상식적으로 이상하잖아요?

 게다가 최저임금 노동자의 소비양상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최저임금 노동자는 대기업 계열 점포에서 대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생각합니다. 편의점에서 담배 사 피우고 캔맥주나 삼각김밥에 사발면 사 먹는 라이프스타일이 더 많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대기업의 곳간에 돈을 채워 넣습니다. 대조적으로 시장에서 생선, 채소, 과일을 사서 요리해 먹으면 훨씬 복잡한 유통 구조를 거치면서 경기 활성화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됩니다.

 또 임금이 생산성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것은 곧 경제위기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높은 임금은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이 경우 예후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은 제조업 국가라 생산성 향상 이상의 임금상승은 큰 문제가 되기 쉽습니다.

 진정으로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게 하고 싶다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많아지도록 유도해야합니다. 사업체 및 사업자는 결코 노동자가 창출하는 부가가치 이상의 임금을 장기적으로 지급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자동화와 전자화는 사회의 정말 많은 분야에서 인력의 필요성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 인건비의 강제적인 증가는 사업자들에게 자동화 투자 의욕을 높이는 결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 인상론자들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그것이 ‘착한’ 것이라는 성급하고 오만한 결론에서 벗어나십시오. 모든 걸 원점에서 재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진지한 반대론자들이 왜 반대하는지 그 이유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최저임금 인상 말고도 다양한 분배 수단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소액의 기본소득이 낫습니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 정책을 강화하고 경기를 활성화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입니다.

 세상이 단순한 몇 가지 규제로 쉽게 좋아질 수 있는 곳이었다면 이미 이 곳은 거의 유토피아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책은 결코 입안자의 의도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정책의 장단점과 예상되는 결과를 냉정하고 신중히 살핀 후 진행해야합니다. 섣부른 기대와 선의만으로 정책을 입안하게 되면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 열리는 게 정치 및 경제입니다.

출처: 해양장미의 블로그 /http://oceanrose.tistory.com/548

2016년 6월 11일 토요일

화폐의 역사와 자본주의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특히 많은 청년들이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그리고 돈에 관하여 막연하게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이에 본문을 작성합니다.

 우선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게, 자본주의는 사실 ~ism이라 하기 어려운 자연발생적인 현상입니다. 애초에 자본주의라는 말을 발명한 것도 시장경제에 비판적이었던 그 마르크스이며, 그의 자본 및 시장에 대한 파악 및 정의는 불완전하고 작위적인 데가 있었기에 단어 자체가 광범위한 오해의 기원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학자들은 - 좌파 비주류들을 제외하면 - 자본주의라는 말 자체를 거의 안 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언급 자체가 나오는 문서는 아예 보지도 않는다고까지 합니다. 즉 자본주의라는 말은 그 자체로 공산주의자들이 현실 시장-화폐경제에 대해 찍은 일종의 낙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는 시장-화폐경제는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우리 인류는 국가 형성 이전부터 이미 상업 활동을 해왔습니다. 옛 공산주의자들의 비과학적 오인이 현재까지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면이 많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건 긍정하던 관계없이, 시장과 화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먼저입니다.

 이를 위해 선사 시대의 일부터 이야기해보지요. 우리 먼 조상들은 정착 생활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이웃 부족과 자연스럽게 거래를 하게 됩니다. 이런 원시적 상행위는 삶의 질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었는데요, 현대 선진국인들과는 달리 본래 인류의 삶이란 매우 큰 불안정성 위에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안정성의 일차적인 원인은 농사에 있습니다. 농사라는 건 사실 이 동네는 잘 되는데 옆 동네는 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작물은 전멸하는데 어떤 작물은 멀쩡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즉 상업행위는 흉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지요. 산 위의 A 부족은 수수와 조를 키우고 도토리, 밤을 줍고 토기를 굽습니다. 그리고 산 밑 바닷가의 B 부족은 물고기를 잡고, 해산물을 채취하며 신발을 만듭니다. 이 경우 A와 B 부족의 거래는 서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생존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유용한 것입니다. A부족이 농사가 망했을 때는 토기를 팔아 물고기를 사올 수 있고, B부족의 어획이 엉망일 때는 신발을 팔아 수수, 조 등을 사올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는 다양한 부족이 다양한 물품을 거래하게 되기 때문에, 계급 사회 형성 이전의 원시사회에서 상행위란 수렵, 채집, 농사, 목축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중요한’ 생존 행위였습니다.

 실제 상업이 발달하지 못한 지역에선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들어서도 기근 시 대규모의 사망자가 나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런 사례에는 북조선도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 상행위에 대한 인류의 열망은 공산주의자들조차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시장경제를 통제할 수 있었던 옛 동구권 공산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거래는 인류의 본능이고,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생깁니다.

 물론 상행위의 기본은 물물교환입니다. 그렇지만 서로 필요한 물건만을 그 때 그 때 교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각자가 매 순간 원하거나 필요한 건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모두에게 필요하거나 모두가 좋아할 법한 물건이 교환수단이 되게 됩니다. 화폐, 즉 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실물 화폐에는 크게 3종류가 있습니다. 식량, 섬유-피혁, 금속이 그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생존에 중요한 것으로, 한반도에서도 꽤나 최근까지 쌀과 면포를 화폐로 사용했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점차 ‘화폐’의 통상적인 정의에 점차 가까워진 것은 금속입니다. 금속이 식량이나 섬유보다 보존성이 더 좋고 가치에 비해 부피가 작기 때문에 화폐로 보다 더 좋은 기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금속은 식량, 섬유보다 사용이나 거래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원전 7세기경에 우리가 잘 아는 주조화폐, 즉 주화(=coin)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 기원은 순도와 중량을 통일하고, 그것을 군주가 보장하는 금속조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주화는 오랜 기간 동안 화폐의 기본이 됩니다.

 이런 주화는 우리가 잘 아는 금, 은, (청)동으로 주로 만들었고, 청동으로 된 게 주로 유통되다보니 동전이라는 언어가 대표적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청동은 흔한 오해와는 달리 부식되지 않는 한 우리가 잘 아는 구리 색깔이며, 자연적으로는 쉽게 부식되지 않습니다. 부식이 된 후에야 청동 미술품에서 볼 수 있는 청록색이 나옵니다. 그 밖에 연(납), 아연, 철 등으로도 주화를 만들었습니다만, 주화를 만들기에 적합한 소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조화폐 역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동전을 많이 가지고 거래를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건데, 이게 자루 하나에 담길 정도가 되면 꽤 무겁습니다. 양이 좀 많아지면 운동 기구나 무기가 따로 없을 정도지요. 또 화폐를 발행하는 데 자원이 많이 들다 보니 마음대로 발행하기도 힘들고, 테두리를 깎아서 따로 사용한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문제보다 결정적으로 큰 문제는 금속의 시세는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화는 엄연히 액면가가 있는데, 액면가와 실제 금속 조각의 가치가 다르다보니 혼란과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현상은 화폐의 본질과 맞닿아있기도 합니다. 근래에도 10원 동전을 모아 녹여 판 일당이 적발된 사례가 있는데, 10원 동전의 금속 가격이 10원보다 꽤 비싸기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보다 현대적 의미에서 발달한 의미의 화폐는 사실 고대부터 거래되었습니다. 위에 이야기한대로 화폐는 교환의 매개수단이며, 이 매개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크레딭, 즉 신용입니다. 실물이 화폐로 쓰였던 건 그것이 매우 높은 신뢰성, 즉 현물로서의 실효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확실하게 이행을 한다는 신뢰만 있다면, 사실 시간차가 있는 재화교환에 있어 현물이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신용 거래 자체는 사실 매우 일반적입니다. 외상으로 물건을 산다거나, 품앗이를 한다거나 하는 것 모두가 신용 거래입니다. 위의 A, B 부족 이야기로 돌아가 보지요. A부족이 어느 해 흉년이 들어 B부족에게 식량을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B부족에는 이미 A부족이 만드는 토기가 남아도는 상태였고, A부족은 당장 B부족에게 줄 게 없습니다. 그래서 B부족은 A부족에게 ‘내년에 조와 수수 열 자루씩을 받겠다는’ 약속을 받고 물고기를 줍니다. 그런데 그냥 말로만 하는 약속은 안 지킬지도 모르니까, 신의 이름과 조상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증서’를 받아둡니다. 이 경우 이 ‘증서’는 일종의 화폐나 다름없습니다. 수표나 어음과 비슷한 신용화폐지요.

 시장에서 통하는 신용화폐, 지폐는 일종의 지급보증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큰 규모의 거래가 발생할 경우, 그 지불을 주화로 하는 것은 사실 꽤 어렵고 비효율적입니다. 공식적인 최초의 지폐는 (조)송에서 시작되었습니다만, 신용 거래의 특성상 리스크가 있다 보니 실패를 거듭하긴 했습니다.

 지폐가 신용화폐인 건 지폐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크레딭 없는 지폐는 온갖 낙서가 적히거나 인쇄된 작은 섬유조각일 뿐이지요. 이후 지폐는 현물과 연계되는 금, 은본위제와 함께 점차 보편화되게 됩니다.

 화폐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화폐를 이해해야만 크래딭(신용)을 이해할 수 있고, 크래딭을 이해해야만 캐피탈(자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공산사회주의가 얼마나 큰 오해를 사람들에게 주입했는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화폐를 설명하기 위해 유럽사 속의 시장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서로마가 붕괴한 후, 중세는 흔히 이야기하는 암흑시대가 됩니다만 사실 상공업은 도시를 중심으로 계속 발달합니다. 상공업은 토지와 날씨가 주요 변수가 되는 농업과는 달리, 보다 사람과 기술에 의존적입니다. 사람이 모여야 기술이 발달하고, 상행위가 쉽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공간적으로 식량 등을 자급자족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더더욱 상업이 중요해지게 됩니다.

 중세 초기의 도시들은 대체로 봉건 영주들에 속해있었으나, 점차 독립하게 되어 자치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화제는 도시의 제도였고, 그렇기에 ‘시민’이라는 어휘는 공화정과 관련이 깊습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상업이 없으면 데모크라시도 없습니다. 자본을 부정한 모든 체제가 민주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걸 기억하세요.

 한편 근대 이전의 모든 도시는 담수를 가까이합니다. 사람이 살려면 물이 필요한데, 도시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큰 수원이 필요했습니다. 이 수원은 대체로 강이고, 일부 운하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물길을 따라 교역이 이루어지곤 했지요.

 그런데 점차 유럽의 상업이 발달하다 보니, 1300년대쯤에는 주화에 쓸 귀금속이 부족해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 주화가 귀해지게 되지요. 그리고 이후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1500년대에 들어서는 아메리카산 은이 유럽에 대량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는 위에 이야기했던 ‘주조화폐의 해당 금속 시세문제’를 본격적으로 일으키게 됩니다. 비쌌던 은값이 공급증가로 싸지게 된 것이고, 그래서 은화에 대한 문제가 복잡해진 것이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사실 은 유입으로 신나하던 에스파냐 사람들, 즉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중상주의자들이 가졌던 경제와 화폐에 대한 인식 수준은 이 시대의 어린 사회주의자들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 아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 왜 돈 그 자체였던 은을 많이 가졌는데도 충분히 부유해지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시대의 멍청한 사회주의자들을 욕할 수는 있어도, 당시에 중상주의자들이 했던 착각을 욕하긴 힘듭니다. 돈의 본질에 대한 통찰은 그 시대에는 힘든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현명한 현대인이라면 이 문제를 어렵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화폐는 독립된 기준 - 그러니까 액면가 - 을 가지는 것이 시장 경제를 안정적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실물화폐는 해당 실물의 가격이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기준이 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완벽한 신용화폐가 등장하지는 못했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세계에 신용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예시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만일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극도로 억제되어있다면 - 이는 사실 경제성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옛날엔 이런 시대가 길었지요. - 쌀값은 매년 작황에 따라 크게 변화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쌀 20kg에 해당하는 쌀본위제 하의 5만원권 지폐가 있다면 (그러니까 그 지폐를 정부 기관에 가져가면 쌀 20kg랑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액면가에 (5만원이라는 표기와는) 관계없이 지폐의 가치는 신용이 낮은 사회의 경우 쌀 시세에 맞춰 변화하게 됩니다. 이리 설명하자면 어렵지만, 실거래가를 거의 통제하지 않는 상장주식의 경우 액면가는 거의 무가치한 것이니 그에 연관 지어 생각하면 좀 더 쉽습니다.


 화폐가 그 본질인 크레딭으로 이해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 이해의 차이에서 중상주의와 자유주의가 구분되고, 그 유명하고 위대한 1723년생 애덤 스미스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중상주의자들은 귀금속을 부로 생각해 중시하고 귀금속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걸 막으려 했지만, 애덤 스미스는 그것을 반박하고 총생산량과 교환가치야말로 중요한 것이라 주장하며 경제학의 아버지가 되지요. 그렇지만 지폐를 실물인 금과 연계하는 금본위제는 극히 최근인 1970년대까지 계속됩니다. 금본위제 하에서 현금은 본질적으로 신용화폐가 아닌 금화의 변형된 형태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러한 금본위제는 시한부일 수밖에 없었는데, 여러 복잡한 모든 이유들을 생략하고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 원인만을 꼽는다면, 금은 한정적인데 화폐는 점점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걸 꼽아야겠습니다. 가장 선명한 예로, 현 시점에서 전 세계의 GDP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추정 황금 시세의 총합을 초과합니다.

 결국 1970년대에 금본위제는 폐지되고, 신용 화폐의 시대가 열립니다. 신용 화폐는 지금껏 인류의 최대 발명품중 하나일 것입니다. 오랜 오해를 풀고 결국 인류는 돈의 본질을 마주한 것입니다. 이후 많은 오해와 낙인, 그리고 각종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는 꽤 많이 부유해집니다.

 지금껏 설명하였듯 화폐는 재화의 매개수단이며, 이 본질은 크레딭(신용)입니다. 그런데 화폐는 거래의 수단이기 때문에, 거래가 발생하지 않으면 실물이 아닌 신용화폐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결국 유통화폐, 즉 통화는 흘러 다니는 신용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다시 한 번 바꿔 말하면 통화량이 많다는 건 시장에 신뢰가 가득하다는(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시장의 신뢰란 곧 재화에 기대라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호황일 때는 통화량이 많고, 불황일 때는 통화량이 적습니다. 이걸 뒤집으면? 통화량을 늘리면 세상에 신뢰가 늘어나고, 호황이 옵니다. 어지럽나요? 언어유희 같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이런 식으로만 이야기하면 세상이 너무 해양장미빛일수 있으니 또 하나의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많은 경우 과도한 신뢰는 위험합니다. 믿음이 항상 진실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과한 믿음과 기대는 인플레이션을 촉진하고, 버블을 생성하며 그건 곧잘 터지곤 합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위 아나바다 이벤트 시장을 열고, 모든 참가자에게 일정한 액수의 (많은 분들이 한 번쯤 써 보셨을) ‘달란트’ 단위 이벤트 화폐를 나눠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모든 참가자에게 적은 액수의 달란트를 지급한다면, 참가자들은 가장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고 적은 물건만을 사는 경향이 생깁니다. 그 경우 물건이 얼마 안 팔리다 결국 막판에 많은 물건이 떨이로 처리되는 불황 및 디플레이션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가자 모두에게 넘치도록 많은 달란트를 준다면? 보이는 대로 막 사니까 전체 물건이 아주 잘 팔릴 겁니다. 다만 한정적인 물건을 두고 누군가 경매를 시작한다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실제 가치보다 훨씬 비싸게 살 수도 있겠지요. 이런 예시가 너무 간단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만, 현실 시장도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사람 본능과 습성이 거기서 거기거든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맨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시장이란 자연스러운 거래의 필요성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거래의 교환수단인 화폐는 곧 서로간의 신용(현실적으로는 기축통화국의 - 이 시대에는 미합중국의 - 신용)입니다. 누군가 만들어낸 악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만약 돈이 사악하다면, 그것은 인간이 사악한 겁니다. 모든 돈 뒤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해가 어디서부터 빚어졌을까요? 마르크스나 엥겔스 등이 보았던 산업 사회 초기의 온갖 사회 문제들은, 그냥 당시의 사회 문제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자동화 기기의 발달로 인해 기계가 많은 노동력을 대체하게 되면서, 농장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도시로 나온 대규모 인력이 저임금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던 게 당시 시대상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고, 당시의 시대상이 만들어냈던 일자리-노동력 시장 불균형의 문제라 보는 게 맞습니다. 그 문제는 생산성이 향상되고, 경제가 성장하며 개선되게 되지요.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공산주의 계열의 사상은 경제사에서 단순한 잡음이었을 뿐입니다. 자본주의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자연 발생적인 시장경제가 있었을 뿐이며 경제학은 꾸준히 발전하였고, 온갖 실패를 겪고 문제를 고쳐가면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지금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그것을 작위적으로 나쁘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뿐이지요.

 또 좌파들이 주장하는 ‘수정 자본주의’ 역시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주류경제학에 속하는 케인즈주의를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제멋대로 부른 말에 불과합니다. 케인즈 이후 모든 주류경제학은 케인즈의 영향을 받았고, 케인즈를 부정하는 건 비주류들뿐인 게 또 현실이고요.

 세상엔 비교적 자유로운 시장경제활동을 보장했던 정부와, 그렇지 않았던 정부가 있었을 뿐입니다. 어떤 사상 및 체제는 상공업을 통제하고 철저한 농업 중심으로 갔고, 또 어떤 사상 및 체제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는 코뮤니즘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유로운 시장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정부가 성공하였고, 인류의 본성적 생존활동인 상공업 행위를 지나치게 규제하는 시도들은 예외 없이 실패하였습니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수만 년을 쌓아온 본성을 섣부르게 통제하려 드니 결과가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시장 경제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착취적이었고, 시민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출처: 해양장미의 블로그
http://oceanrose.tistory.com/510

2016년 6월 10일 금요일

박근혜정부 최악의 정책 - 가계대출 조이기

본문을 읽기에 앞서 일단 이 기사부터 보시길 바랍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8395045&isYeonhapFlash=Y

 이런 사태는 처음부터 예상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현 정부가 갑자기 정책을 바꿔, 가계대출을 조인 시점에 이런 참사가 생길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제1금융권 상품이 막히면 당연히 제2금융권으로 뛰어갑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대출을 받는 건 말 그대로 돈이 필요해서고, 정부는 제2금융권까지 일괄적으로 조이긴 어렵습니다.

 특히 거치만기로 인한 문제는 복잡한데, 강제적인 원금 상환을 위해 소비를 줄이는 건 물론이고 더 나쁜 경우 계획에도 없는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이 경우 현 시스템에서는 2금융권 이하로 갈아타거나 추가대출을 받을 확률이 높은데, 개인적으론 정부가 이런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고 행동했는지 대단히 의심스럽습니다.

 더욱 골치 아픈 문제는 정부의 이러한 갈지자 행보(DTI, LTV 완화한 직후 저랬으니까요.)와 독단을 견제하고 바로잡을 단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곳곳에서 우려의 소리가 안 나온 건 아닙니다만, 힘을 가지고 이리 예측하기 쉬웠던 문제를 막으려 한 집단이 없습니다. 특히 야당은 한 게 없습니다. 이런 정책이 실제 소위 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이 있다는 걸 몰라서 그런 건지,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가계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당위에 동조해서인진 모르겠습니다만, 실제 시민들 생활에는 어떤 이슈나 담론보다도 이런 게 큰 영향을 준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이렇게 주택거래가 침체되고 시민들이 제2금융권으로 몰리는 상황에서도 이에 대해 바른 말 하는 정치인이 없습니다. 현실 파악 못 해서 가계대출금이 상업이나 산업엔 안 들어갈 거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이래서야 박근혜 다음 정부에도 딱히 기대를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제1금융권에 내려졌던 제약을 풀어야합니다.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이유는 경기가 나쁘고 이율과 각종 투자 수익률이 낮으며, 전세 제도가 쇠퇴중이기 때문입니다. 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경기부양을 해야 하는 상황에, 1금융권 담보대출을 비거치식으로 조이는 건 앞뒤도 맞지 않고 신뢰를 잃는 동시에 부작용만 불러일으키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이 어리석음이 지속된다면 가계 채무의 질은 점차 낮아질 테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증가할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런 사태를 관련 공무원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오락자락 정책이 추진된 건 골치 아픈 일입니다. 정책이 협의되고 결정되고 구현되는 과정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거지요.

2016년 6월 8일 수요일

여성의 안전과 남성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를 자세하게 하면 밑도 끝도 없어서 조금 러프하게 이야기합니다.

 과거의 남성과 현재의 남성을 비교해보면, 의외로(?) 현재의 평균 남성이 압도적으로 평화적입니다. 현대 한국 소년 중 랜덤한 한 명을 200년 전의 세상에 던져 놓는다면, 굉장히 높은 확률로 계집애 같다는 소리를 듣기 알맞을 겁니다.

 현대화된 남성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많이 여성화되었습니다. 문화적/정서적인 면만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신체적으로도 옛날 남성에 비해 작은 턱, 체격대비 더 약한 근력, 보다 여성화된 얼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평균 이야기입니다만, 인류의 수명 대비 꽤 빠른 속도의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추세대로 수백 년쯤 지나면 미래 남성들은 현재와는 꽤 다른 모습 및 문화양식을 지닐 확률이 낮지 않습니다.

 이런 변화가 왜 일어났을까요? 사견으로는 적어도 많은 부분은 여자들의 작품입니다. 과거에 비해 남자아이들은 어머니, 여성 교사 등 여자와 매우 오랜 시간을 보내고 교육받습니다. 이 기간에 두뇌 시스템의 대부분이 자리 잡고, 후성유전적인 많은 것들도 결정됩니다. 그리고 산업 사회 이후 여성들의 남편 선택 권한이 증가함에 따라, 그리고 근래 들어 사회가 평화롭고 풍요로워짐에 따라 여성들이 보다 예쁘장하게 생기고 가정적인 남자를 선택하는 양상이 생겼습니다. 유전적인 단계에서도 일종의 자연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과거대비 여성화된 남자들, 남녀는 평등하다고 교육받은 남자들은 옛날 남자들 같은 소위 기사도 같은 게 별로 없습니다. 옛날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더 계산적으로 굴고, 쉽게 여자를 무서워하며, 성차로 인해 손해 보는 것 같은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실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남성에게 자연 선택적 압력을 가하는 것은 여성이었습니다. 인간 특유의 특질 중 많은 부분은 양성 중 여성에게서 기인하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인류 특유의 부성애와 미래예측, 종교적 행위 등은 여성에게서 시작되어 남성에게로 전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에 비해 애매하고 불분명하게 표출되곤 하는 여성의 성욕과 구애 행동은 여성의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되었고, 남자를 여성의 공간인 가정에 끌어들였습니다. 부성애는 친자확인 문제 때문에 일부(일처 또는 다처) 가부장제가 정착된 후 자리 잡혔다고 할 수 있지요.

 과거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를 여성에 대한 억압 체계로 인식했습니다. 이런 인식은 지금까지도 다수의 여성주의자들에게 이어지고 있지요.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자연적으로 남성은 가부장적 특성이 강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강한 부성애는 포유동물 중에서도 이례적인 편이지만 그래도 통상 모성애만큼 강하지는 않고, 대부분의 남자는 여러 여자와 관계 맺길 원하지 한 여자에 평생 정착하는 것에 완벽하게 만족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일처 가부장제 모델을 좋아하는 것은 여성 쪽입니다. 믿음직스럽고, 돈 잘 벌고, 문제 해결 능력이 좋으면서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들에게 잘하는 남편을 원하잖아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가부장제 코르셋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여자들이 남자를 저런 데 협조적으로 만드는 데는 최소 수천 년, 아마도 수만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상당한 수준으로 있긴 했습니다만, 그 모델은 딱히 남성이 만든 건 아니며 남성들이 가부장제에서 받아온 압박도 상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근래 들어 생긴 성 갈등 양상은 오히려 가부장제의 파괴에서 시작된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가부장제의 파괴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여러 외부적 요인들을 후순위로 제치고 이야기하자면 이젠 여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들도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있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가부장제의 거부의 한 요인으로 저는 남성성의 약화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 남성성이 그 동안 여성들이 남자를 가부장제에 묶어둘 수 있었던 주된 이유였다면, 남성성이 약화됨으로 남자들이 가부장제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 수 있는 게 초식남이지요.

 나는 초식남 현상에 대해 좋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도덕적인 문제라는 게 아니고, 그 배경과 원인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초식남 현상으로 대표되는 남성의 여성화가 여성들에게 상당한 진화적 압력을 넣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여성도 기존 체계에서 누리던 일련의 권리를 상당 부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무가 줄어드는 대신 말입니다.

 한편으로 나는 여성주의 활동 가운데서도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누리던 특권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종종 발견합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만, 페미니즘이라는 큰 범주에서 보면 논리적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잘 정리된 일련의 가치 체계가 아니긴 합니다만, 이권을 추구하기 위한 모순이 반복되는 한 페미니즘 이미지가 좋아질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이건 나름의 대안이 필요하겠지요. 이 이야기는 자세히 풀면 복잡하니 나중에.

 여하튼 현재의 상황은 대략 이렇습니다.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고 덜 차별당하고 더 안전해지는 만큼, 다수의 여성이 기존의 남성들에게 원했던 만큼의 믿음직스러움과 강인함, 가정에 대한 책임감, 호혜적 태도 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모든 걸 얻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남자들은 점점 더 예쁘장해지고 다정다감해지는 동시에 (어머니를 포함한) 여자에게 더 의존하려 들 겁니다. 물론 평균적인 이야기고요. 소위 찌질남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겁니다. 줄어들 일 없을 거예요. 그래도 여자들이 겪을 평균적 위험성은 낮아지겠지요. 아직도 많은 여자들은 남자에게 바라는 수많은 로맨스들이 있지만, 그것을 충족하기란 확률적으로는 점점 어려워질 겁니다. 추세가 유지되는 한은 말입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는 남성이 받는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겁니다. 현재 제도적으로는 여성이 우대받는 부분은 많고, 손해 보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이 상황은 소위 역차별의 여지가 많아서, 계속 이어질 거라곤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남성들의 반발은 시작된 지 오래고, 상황이 돌아가는 추세를 고려해보면 아직은 수면 밑에 있는 남성차별 논란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 전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이긴 합니다. 미래의 인류는 과거의 인류에 비해 많이 진화할거고, 더 나은 생활양식과 삶을 가져야 할 테니까요. 개개인의 독립성과 자유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는 기존에 가졌던 걸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모두들 생각해볼 필요정도는 있겠지요.

http://oceanrose.tistory.com/552
해양장미의 블로그

2016년 6월 6일 월요일

안중근과 AOA 그리고 사이고 다카모리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보다는 안중근이 쓴 <동양평화론>이 더 대단하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이번 AOA 멤버들이 안중근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사건 때문에 갑자기 생각난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언론과 대중은 그렇다면 안중근의 사상과 그 시대적 배경에 대해 얼마나 '유식'한가?나 역시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것보다는 그것을 추동한 사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중근의 사상은 그의 '동양평화론'에 집약되어 있다. 그런데 실은 주류 미디어에서 안중근을 사상적으로 먼저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보았을 때에는) 일본인들이다. 90년대 중반 안중근을 특집 다큐멘터리로 다루었던 NHK의 방송은 사실 이전부터 이미 이뤄졌던 일본에서 이뤄진 사상적 재평가를 집약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3gViezMO5s&feature=youtu.b

일본인들이 안중근을 알면 알수록 반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안중근은 일본인들이 좋아라 하는 메이지 유신의 선각자와 지사들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카모토 료마'라든지 '사이고 다카모리' 같은. 그들은 메이지 유신 초기 일본에 닥친 근대화의 도전을 그 나름대로 사상적으로 파악하고 테러와 지역적인 반란과 같은 수단으로 돌파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은 개인적 카리스마에 의존한 방식의 한계에 부딪혀 살해당하거나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런 실패야말로 메이지 유신의 지사들을 낭만적인 인물로 만드는 것이다.

과연 내선일체답게, 일본인들만큼이나 한국인들도 일본인들만큼 지사적인 낭만주의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일본에 비해 능동적인 역사적 경험과 지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 차이이겠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것이 원리적으로 이후 있을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공영권>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싶다. 대동아공영권도 그 자체로는 훌륭한 사상이다. 그것을 사상적으로 입안한 기타 잇키1나 니시다 기타로2 그리고 미키 기요시3의 사상이 개인적으로는 매우 훌륭하듯이, 제 아시아 국가들이 상호연합해서 서구로부터 자립하여 공존공영하자는 대동아공영권도 매우 훌륭한 사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 벽두에 제출되었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동아공영권이 일본의 침략사상으로 활용되었듯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도 실제로는 현실에 비춰보았을 때 모순을 내포한 사상에 불과했다. 안중근 역시 그의 부친인 안태훈과 함께 동학농민군을 토벌하는 데 동참했다.

<동양평화론>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안중근은 원칙적으로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그것의 사상적 구심점이었던 천황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메이지의 원로들이 메이지 유신의 진정한 근본사상을 배반한 것이 결국 한일간의 을사조약과 같은 불행한 사건을 낳았다고 보는 것 같다. 안중근의 이러한 한심하고 나이브한 현실인식으로는 당연히 현실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결국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동양의 제국가가 취할 근대화의 기본모델로 삼았다는 점에서 안중근의 사상은 박정희의 '유신혁명' 즉 '조국근대화론'과도 원리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으다. 그리고 이후 일어날 태평양전쟁과 같은 인류사적 비극에 대해 안중근의 사상은 어떠한 해답도 주지 못한다.

안중근은 당시 조선인들에게 닥친 근대화의 도전을 그 나름대로 사상적으로 파악하고자 했고, 한 개인으로서 그것에 온 몸으로 부딪히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안중근은 메이지 유신의 여러 선각자들과 비슷한 인물이다. 그들과 비슷한 실패한=낭만적 영웅이다. 그렇기에 안중근의 사상을 깊이 이해하는 일본인들은 메이지 유신의 낭만적 측면을 떠올릴 수 밖에 없고 마땅히 안중근을 존경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애초에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는 안중근 따위보다는 차라리 정한론을 주창했던 사이고 다카모리 같은 메이지 시대의 지사가 훨씬 더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우리에게 정한론을 추장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이고 다카모리는 단순히 조선을 정벌하자는 인물이 아니라, 조선에도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일으켜서 근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인물이다. 러시아 혁명으로 치면 스탈린의 일국 국가사회주의에 맞서 혁명(=메이지 유신)의 수출을 주장했던, 이를테면 트로츠키 같은 급진적인 인물이다. 

정한론은 결국 당시 지배계급에 의해서조차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바보 같은 소리였지만, 내가 보았을 때에는 안중근의 나이브한 현실인식 따위보다 훨씬  급진적이면서 멋있는 인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마 내가 AOA 멤버였다면 안중근의 사진을 보고 '사이고 다카모리인가요?'라고 능청을 떨었을 것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paxwonik/220709901609

  1. 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D%83%80_%EC%9E%87%ED%82%A4
  2. http://www.artnstudy.com/SLectureFree/Lecture_sample_b.asp?LessonPart=philosophy&LessonIdx=jwlee30&code=06&line=200&sample=true
  3. http://windshoes.new21.org/person-miki-kiyoshi.htm

2016년 6월 3일 금요일

이제, 우리의 차례다: 혐오 사회의 중심에서, '일베 조각상'에 대한 단상

이제, 우리의 차례다
혐오 사회의 중심에서, ‘일베 조각상’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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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대학교 정문에 거대한 조각상이 등장했다. 극우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하 ’일베‘)’를 상징하는 손모양을 조각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조소과 4학년 홍기하 씨가, ‘환경조각연구’ 수업의 과제로 제작해 출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30일 설치된 이 작품은 6월 20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조각상은 설치 직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인터넷 상에서도 논쟁이 벌어졌고,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계란이나 음료수를 던지기도 했다. 자진 철거를 요구하고 조각상을 비판하는 종이쪽지도 붙었다. 홍익대학교 총학생회는 “작가는 작품의도를 설명해주기 바란다”며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홍기하 씨는 곧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홍 씨는 “‘일베’를 옹호하려는 것이냐, 비판하려는 것이냐 논란이 있는데 그런 단편적이고 이분법적 해석을 위한 작품은 아니”라며, “‘일베’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현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실재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재하지만 실체를 보이지 않는 ‘일베’를 실체로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처음 작품이 설치된 직후, 설치 뒤에 부수는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홍 씨는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학생들이 철거를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작가로서 작품을 철거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은 어떨까. ‘일베’가 어떤 커뮤니티인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일베는 여성에 대한 혐오, 특정 지역에 대한 폄하, 정치적 평향성, 민주화 운동에 대한 모욕, 역사 왜곡이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심지어 이런 행동이 범죄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베를 상징하는 거대한 조각상은 그 존재만으로도 불쾌감을 일으킨다.

 사람들에게 일베는 불쾌한 존재다. 드러내서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캠퍼스 한복판에 세워진 작품을 보고 얼마든지 불쾌해할 수 있다. 큰 피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작품에 계란과 음료수를 던지는 행위도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홍익대학교 학생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철거하라는 요구도 가능하다.

 흔히 이 작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표현에 대한 비판을 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쾌하면 불쾌하다고, 옳지 않으면 옳지 않다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또한 ‘표현의 자유’와 ‘공연의 자유’는 다르다. 이 작품이 설치된 곳은 홍익대학교 교정 한복판, 지나가는 사람 모두가 ‘봐야만 하는’ 공간이다. 공공장소다. 이런 경우, 다수의 불쾌감이 유발된다면 공동체 차원에서 얼마든지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그것이 사회 공동체의 역할이고, 그것이 윤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작가는 이것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베’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일베’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렬하다. 불쾌감에 가려 작가의 의도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일베’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대중 앞에 세울 때는, 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어쨌든 감상자의 몫이다. 그리고 감상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작품은 불쾌하다. 작가가 불쾌감이 아니라 성찰을 의도했다면, 이 작가는 무능하다. 작품 앞에 서서 성찰할 수 있는 기제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작품은 불쾌하며, 무능하고, 모욕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다른 시선을 선택해 보자. 작품이 사회에 던져진 이상 작품은 감상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 느껴지는 불쾌함은 온당하지만, 그 불쾌함을 조금 억누르고 작품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조금 더 진행해 보자.

 말했듯, 사람들에게 일베는 불쾌한 존재다. 지역 폄하, 정치적 편향성, 혐오발언 등은 누구에게나 불쾌감을 일으킨다. 특히 이것이 범죄로 이어지며, ‘실재하는 공포’로 확대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베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우리 곁에 있는 일베”를 부정할 수 있을까. 일베 회원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것은 사법 당국에 의해 처벌받아야 한다. 일베 회원이 혐오발언을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비판받아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안의 일베’를 부정할 수 있을까.

 우리 ‘안’에는 혐오가 존재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성찰하고 반성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를 혐오하고 있다. 언제나 혐오하는 자는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여성에 대한, 소수자에 대한, 약자에 대한 차별을 우리는 은밀하게 자행하고 있다. 무의식에 깔려 있는 혐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각하고 인정해야 할 문제이며, 늘 고민하며 고쳐가야 할 문제다.

 우리 ‘곁’에도 혐오가 존재한다. 그렇지 않아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혐오를 자행하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일베는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우리 곁에선 그 민낯을 감춘다.

 대체 왜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혐오의 늪에 빠질까. 그들은 어째서 누군가를 증오해야만 삶의 만족을 얻을까. 대체 어디에서 분노의 에너지가 기인하는 것일까. 우리는 제대로 질문조차 던질 수 없다. 그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흔적조차 알 수 없으므로.

 ‘우리 안의 일베’와 ‘우리 곁의 일베’는, 타인과 함께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선 반드시 성찰해봐야 할 문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지 않았는가, 내 곁의 누군가가 실은 혐오범죄의 가해자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만 한다.

 성찰하지 않는다면 일베와 우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게 보면 작가가 일베를 옹호하느냐 옹호하지 않느냐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이 작품은 일베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일베를 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상대에 대한 혐오, 그리고 그 왜곡된 분출에 관한 문제다.

 일베 사이트에 아이디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며, 어디 있는지 알 수조차 없는 혐오범죄의 가해자가 주변에 있을 수 있다는 반성이 중요하다. 일베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말했듯 우리는 얼마든지 이 작품을 보고 불쾌할 수 있다. 일베의 상징이 대학 캠퍼스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대단히 모욕적이기도 하다.

 불쾌함을 느끼고, 이 작품을 비판하고, 계란을 던질 수 있다. 철거를 요구하는 것도 온당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이 작품에 대해 고민해볼 수도 있다. 우리 안의 일베에 대해서 불쾌해볼 수도 있다. 우리 곁의 일베에 대해서 모욕감을 느껴볼 수도 있다. 작품 자체가, 그런 고민을 끌어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방향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지만 말이다.

 일베가 실재하는 상황에서, 일베의 상징을 교정 가운데 세운다는 것은 일베 회원들에게는 오히려 응원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오히려 조장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일베가 실재하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이 탄생할 이유도 없다. 결국 그것조차 그 작품을 바라보는 공동체가 껴안아야 할 문제다. 단지 일베 회원이 작품을 보며 인증샷을 찍고 낄낄대며 즐긴다면 작품의 의미는 딱 거기까지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일베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품을 보며 일베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성숙해진다면, 작품은 거기까지의 의미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일베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이 된다.

 작품의 의미는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결정한다. 이 작품이 그 정도의 역량을 가졌는지는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이다. 일베란 어디에 있는가. 대체 이 사회에 만연한 ‘일베성’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일베는 대한민국 인터넷 사이트 중 30위권의 트래픽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 중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 증오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탄생했는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베의 에너지를 진지하게 분석하려는 시도가 우리 사회에 몇 번이나 있었는가. 그런 의미에서라면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작품의 제목이 일베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석일 수 있다.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더 많은 고민과 분석이 필요하다. 일베의 원천을 알아야 대책을 세운다. 폐쇄든, 처벌이든, 보다 장기적인 해결책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 제대로 된 분석과 대책을 통해야만 일베와 그 뒤에 숨겨진 사회 전반의 혐오를 해소할 수 있다.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내려도 좋다. 고민과 성찰을 할 수도 있고, 불쾌해할 수도 있다. 계란이나 음료수를 던질 수도 있고, 책임을 질 수 있다면 망치로 부술 수도 있다. 학교 입장에선 공식적으로 철거할 수도 있다. 혹은 그저 일베 회원들이 사진이나 찍고 즐기기나 하는 작품으로 남을 수도 있다.

 감상자가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작품의 의미를 규정한다. 규정하기에 따라 이 작품은 대단히 불쾌한 작품이 될 수도, 일베를 상징하는 작품이 될 수도, 혹은 사회적 논의를 성숙시키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감상이 작품을 완성시킨다.

 이 작품이 가진 그릇은 대단히 작다. 하지만 그 위에 넘치도록 성숙한 논의를 부어내는 것도, 대중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무능하고 불완전한 작품을 어떻게 완성시킬지는, 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회의 몫으로 남아 있다.


출처: http://widerstand365.tistory.com/947

2016년 5월 29일 일요일

20대의 "혼자가 어때서?"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인 가구의 비중은 27%로 2020년에는 최대 29.6%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폭발적인 1인 가구의 급증 현상은 ‘혼자만의 시간’, ‘자신을 위한 투자’를 자연스러운 사회 문화로 만들어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 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과 함께 20대 남녀 1천27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혼자 어떤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지'를 묻자 74.7%가'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혼자 해본 활동이 있는지'를 묻자(복수응답) '혼자 쇼핑하기'(80.6%), '혼자 외식하기'(77.1%), '혼자 영화 보기'(58.8%), '혼자 술 마시기'(30.5%)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20대에서 소위 "혼밥족" 은 흔히 찾아볼수 있는 용어가 되었다. 1인 가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각자의 바쁜 스케줄로 인해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간에 쫒기면서 살던 사람들, 경쟁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 안에서 개인적 삶을 찾고, 자신을 위해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20대는 서서히 개인을 찾아가는 세대가 되어 있다. 이에 대한 우려는 주로 20대가 아닌 기성세대로부터 나오는게 현실이다. 그럼 기성 세대들의 우려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20대가 왜 이러한 상황이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386 세대가 말하는 인맥의 시대는 옛말이다. 
우리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일본은, 혼밥족과, 아웃사이더보다 더욱 심한 현상인 "히키코모리"가 정부 추산만 해도 360만명이 넘어간다고 한다. 부산광역시의 인구와 맞먹는 수준. 2ch 등지에서는 인구의 2%가 히키코모리다. "이제 우리도 다수가 된다." 등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히키코모리는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아싸와 대응된다기 보단 아무것도 안하고 방에만 틀어박히는 방콕 정도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저 정도로 심하지는 않지만, ‘인간’과 ‘맥주’ 한 잔 할 시간도 없는 20대는 차라리 인간관계에 ‘프리 선언’을 한다. 요즘 20대들은 심리적인 여유를 느끼지 못한다. 제대로 된 여가시간은 ‘남의 일’이 되어 버렸다. 운동과 여행, 악기 등의 취미생활은 ‘배부른 소리’라는 게 20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시간이 생기면 인턴과 공모전 준비, 봉사활동 등 취업 스펙 쌓기에 투자하기 바쁘다. 이렇다 보니 주변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도 못한다. 또래 친구 대부분 자신과 처지가 같기에 시간을 맞추기 어렵고 연락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20대로서는 인간관계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으며, 인간관계가 있어도 그닥 삶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A씨의 경우를 보자. A씨는 대학생으로, 공부를 하거나 대학에 가지 않는 상황을 제외하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sns서비스로 서로 친구를 만난다. 하루마다 매일 만나는 친구들은 아니지만, 정모도 하며,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유대관계를 다져나간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익명성과 서로가 조심스러운 문화가 조성되어 있고, 개인과 개인이 글로서 소통하는 곳이기 때문에 인간관계 유지가 더욱 쉽고, 주제별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취미 분야 커뮤니티에서만 활동하면 사회 활동을 대체할 정도로 자신의 대인관계를 탄탄하게 유지할 수 있다. 어짜피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비슷한 상황이라, 오프라인에서 대인관계를 신경쓰지 못하는건 피차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무료한 일상의 연속일 수 밖에 없었고, 당연히 아싸나, 은둔형 외톨이들도 집안에만 계속 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이 생기면서 이러한 외톨이들은 몇달이고, 몇년이고 하루종일 집에 있는 것이 가능해졌다. 결국 오늘날 상당수 은둔형 외톨이들은 집에서 하루종일 인터넷을 하는데, 특히 게임을 많이 한다 고 한다.

과연 기성 세대들의 시각처럼 혼밥족과, 자발적 아웃사이더, 또는 오타쿠 계열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히키코모리" 등이 사회에서 단절되었다고 말할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지도 않다고 본다.

술이나, 이성교제도 안 한다.
20대들은 술을 즐기지 않는 편으로 조사됐다. ‘일주일에 몇 번 술을 마시냐’고 물은 결과, 20대 초중후반 모두 응답자의 40% 정도가 ‘주 1회’라고 답했다. 20대 초반은 38.4%가 주 1회라고 답했고, 중후반은 각각 45.5%, 44%가 일주일에 한 번만 술을 마신다고 답변했다. ‘주 3회’라고 답한 응답자는 11% 정도였다(초중반 11.6%, 후반 11%).

20대는 한창 연애를 할 시기지만 경제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다. 조선비즈가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마크로밀엠브레인을 통해 전국 20대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65%가 ‘연애할 때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이별을 경험한 20대도 15%가 넘었다. 즉 우리나라도, 만혼 풍조를 반영하고 일본처럼 초식남이 늘어나는 까닭이 불안정한 경제상황과 남성들에게 이따르는 가부장적인 책임과 남성다움의 강요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결혼으로 꾸리는 가정에 부담감과 불안감을 느끼고, 차라리 포기하면 편해스러운 생각으로 그냥 혼자서 살자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경제난 이외에도 우선 소통의 수단이 사람을 만나지 않는 sns로 이동했기 때문이며, 부담감을 가지고 술을 마시기보단, 서로 편한 대화를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20대들은 '최근 관심사가 무엇인지'(복수응답)에 대해 62.5%가 '취업'이라고 했다.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복수응답)도 '다이어트, 외모 관리'(33.8%), '국내외 여행'(30.9%), '연애'(23.4%)' 등을 제치고 '취업(57.4%)'이 1위에 올랐다. 비록 청년고용률은 높아졌지만, 일자리의 질은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청년들은 제조업이나 숙박 및 음식점 쪽에 취업을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의 ‘청년층 부가조사’를 보면, 지난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하고 처음 가진 일자리가 1년 이하 계약직이었던 15~29살 청년은 76만1000명이나 됐다. 취업을 경험했던 389만5000명 중 19.5%로 5명 중 1명은 1년 이하의 계약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셈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15~19살 청년 중 69.5%는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으며 20~29살에서도 비정규직 비중이 32%에 이른다.

사회는 변해간다. 개인주의는 20대의 원죄(原罪)가 아니다.
절벽에서 경쟁 사회와 통신 수단의 변화, 금전적 어려움을 버티며 변화한 사회 구조들에 대해 그들은 원천적으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 하다. 이것은 이기주의적 풍조도, 개인사주의적 풍조도 아니다. 결국 이기주의적 풍조에 찌든다고 비판하는 기성 세대에게, "혼자가 어때서?" 라고 20대들이 반문할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저런 연유에서 온다는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 치부할수는 없는 문제이며,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한 반감, 경제적 문제, 그리고 통신 수단의 변화로 결국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너무나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이는 20대의 원죄로서 취급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하는 것이다. 왜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적 풍조"를 우리의 원죄이자 자연스런 특성으로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2016년 5월 28일 토요일

2016년 5월 27일 금요일

학벌사회 비판과 대안 없는 대학구조조정비판은 공허하다.

1. 학벌사회 비판

 최근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가 자진해산되었는데, 씁쓸하다. 이는 학벌이라는 '상징자본'을 가졌다 하더라도 취업이 녹록치 않는 각박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세간에서 더 이상 '학벌사회'라는 것이 교육문제의 중심의제로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과거 <학벌사회>를 출간한 김상봉을 위시한 많은 학자들이 학벌사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것이 민주노동당 시절 진보적인 교육정책의 핵심의제로 반영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까지 느껴진다. 최근에는 '학벌'보다는 반값등록금과 같은 '교육비'와 '대학기업화 비판'이 중심적인 의제였다. 하지만, 과연 학벌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해체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히려 최근의 진보진영이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 건가?

한편 SNS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학벌에 반대하며 출신학교를 기재하지 않습니다'라는 상태표시를 띄워놓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징자본'으로서의 학벌에 대해 여전히 사람들이 민감하다는 지표이다. "학벌 없는 사회"라는 시민단체는 해체되었지만 "학벌"은 여전히 해체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는 SNS상에서 개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학벌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학벌의 한 자리를 차지한 개개인에게 '죄악감'을 요구하곤 한다. 이것은 넷상에서 진보연하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병적인 멘털리티가 아닌가 싶다. 교육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전망과 처방이 이제는 없고, 진보진영이 그 동안 교육비 인하 처방에만 매몰되어 있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반편향으로 죄악감의 자기서사와 인정투쟁이 넘쳐나는 게 아닐까?

냉정하게 말하면, 저 "학벌사회에 반대하며 출신학과를 기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위선적인 자기과시를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를 일반화하자면 대안과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진보는 죄악감을 자신과 타인에게 강요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오갈 데 없는 분노가 부유하고 있는 넷상의 전반적인 정서이다.

  그렇다면 학벌이 나쁜 이유는 무엇일까?

2. 대학기업화시대의 학벌사회

 학벌사회가 나쁜 가장 큰 이유는 각자의 열패감과 우월의식을 떠나서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자원의 낭비"라고 생각한다. 학벌은 기본적으로 "위치재(positional goods)"이다. 위치재란 본질적으로 콘서트 티켓과 같다. 평소 동경하던 연예인을 남들보다 가까이 보기 위해, 맨 앞자리, 그게 아니라면 그 뒷자리, 그게 아니라면 그 뒤의 뒷자리라도, 남들보다 먼저 차지하기 위해 돈 몇십만원씩도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재화라고 보면 된다. 이런 앞자리 콘서트 티켓을 얻기 위한 출혈경쟁을 낭비적 군비경쟁에 비유하기도 한다(이준구).

 학벌도 본질적으로 그런 콘서트 티켓과 똑같다. 지금은 옛말이지만 SKY-서성한-중경외시와 같은 서열도 그러한 위치재의 속성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대표적으로 남들보다 한자리 석차 우위를 점하기 위해 돈 몇백 몇천만원도 아까워 하지 않은 사교육 열풍이었다(물론 이것도 호경기에서나 가능한 여유지만). 이러한 사교육 과열도 대표적인 "낭비적 군비경쟁"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비단 경쟁이라는 것이 수험생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학벌이라는 것이 "위치재"인 것은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대학 그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대학도 그런 의미에서 치열한 순위경쟁, "낭비적 군비경쟁"을 벌인다.

 학벌사회에서 비단 과거와 같은 "입시지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대학들도 "지옥" 같은 학벌경쟁을 한다. 무한경쟁의 시대가 개막된 이후로 과거의 SKY-서성한-중경외시 등의 서열은 이제는 더 이상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대학마다 대학평가 등의 지표로 나타나는 학벌상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그래서 건물도 화려하게 많이 짓고 유학생도 많이 유치하고 외국인 교수도 많이 초빙하고 국가 연구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로비도 많이 했다.

 이러한 대학 간 학벌경쟁의 궁극적인 결과는 특히 사립대학들의 "몸집 불리기"였고 결과적으로 교육비의 폭증을 가져왔다. 이게 왜 낭비인가? 개별 대학이 그 동안 자신이 잘해왔던 부분(비교우위)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자신의 장점을 특화하고 그렇게 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가로막고,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절대우위)"는 대학간판 특유의 허울 좋은 유명세를 알리는 데 급급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규모의 학생을 유치하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교수를 무리해서 초빙하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영강을 의무화하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건물을 증축해왔 던 것이다. 그 결과 비효율적인 교육비의 증가를 초래한 것이다.

  이런 몸집불리기는 학문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학벌장사로밖에 설명을 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당장의 학벌장사를 위해 돈을 갖다 바치겠다는 학생과 유학생 다 받아놓았는데 정작 그들의 복지와 편의를 위한 비용은 감당 못하겠으니, 매년 등심위에서 돈 없다고 징징대는 것이다.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조차 이와 같은 '발전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또한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무엇을 자신의 전공과 진로로 삼을 것인지를 동기로 대학진학이 정해져야지, 어느 대학을 갈 것이냐로 정해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무슨 대학을 갈 것이냐를 기준으로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도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몸집을 불려왔다.

  그렇게 해서 학벌을 득해봤자, 그 누구도 무슨 학문분야의 노벨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경직적이고 위계적인 노동시장을 재생산하는 데 일조할뿐이다. 또 소위 명문대생이라는 사람들도 직장 잡고 나서는 이게 내 진짜 적성인가 하고 고민하거나 그만 둬버리는 경우가 심심찮다. 대학 진학 당시에 했어야 할 고민을 유예시켜서 뒤늦게 사회적 비용을 치루게 하는 것. 이것이 학벌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다.

3. 학벌사회와 대학구조조정

 특히 지금 진행되는 지방대 비인기학과 위주로 진행되는 대학구조조정과 학과통폐합이 나쁜 이유는, 그것이 이 학벌구조를 더 강화시키는 데 일조할 뿐 진짜 자원의 낭비가 행해지도록 부추기는 학벌구조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낭비의 원인이 되는 학벌구조를 강화시킨다. 결국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학벌경쟁에서 도태된 대학들이지 저 학벌경쟁을 통해 몸집을 불려온 유명 사립대학들이 아니다.

 예컨대 고려대 학부생 2~3만에 대학원 재학생 수료생 1만이다. 합치면 3~4만명인데 과거 고대 그리스 폴리스(아테네) 인구도 이것보단 적을 것이다. 또한 현재 학령인구감소를 감안할 때 '대학이 쓸데 없이 많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대학생 입학정원' 수를 가장 많이 늘린 대학들은 수도권의 소위 명문 사립대학들이었다. 구조조정의 우선순위는 바로 이들이어야 한다.


1970년 이후 정원을 가장 많이 늘린 대학은?
◦ 대학교육연구소(소장 박거용)가 「대학학생정원령(대통령령 제5430호. 1970.3.1.시행)」에 명시된 1970년 사립대학 입학정원과 대학알리미에 공...
관련기사 : http://khei-khei.tistory.com/1286


진짜로 대학 구조조정을 할 거면 서울 주요 사립대학들의 정원부터 우선 줄여야 한다. 그랬는데도 돈이 모자란다고, 비용을 감당 못하겠디고 징징대면 국유화를 해서 기존의 국공립대학에 통폐합을 하면 된다. 이게 진짜 교육개혁이고 구조조정이지 않을까. 문제는 그와 같은 '진정한'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전망이 진보진영에 부재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대학이 추진하는 대학구조조정에 수세적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아닐까.

4. 나가며

  지금의 대학구조조정은 대학교육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중립적인 '재화'라고 보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사회에서 대학교육은 '학벌'이라는 위치재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학벌사회는 수도권 상위권 대학 위주의 불균등한 몸집불리기를 초래했다. 대학기업화라는 것도 사실은 학벌이라는 위치재를 중심으로 한 (대학 간의) 낭비적 경쟁을 골자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미명 아래 불필요한 자본투자를 남발한 대학기업화라는 현상도 '학벌사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현재에도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아래 지방대와 인문.예체능 비인기학과 위주의 학과통폐합이 자행되고 있다. 대학의 몸집불리기와 정원의 폭증을 주도한 책임당사자와 진짜 구조적 원인은 건드리지 않고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진보진영이 이 같은 학생들의 피해에 속수무책인 것은 어쩌면 (교육비 인하를 넘어서) '학벌사회'를 넘어서는 공공적인 교육시스템의 마련에 대한 전망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민주노동당 시절만도 못한 정책역량이 아닌가 싶다. 매우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출처] 학벌사회는 왜 나쁜가?|작성자 박가분

2016년 4월 19일 화요일

"이승만 국부론"과 "8.15 건국절"을 이승만 어록으로 격파하다.




대한민국은 건국절을 따로 두지 않는 대신, 3.1절을 그 연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3.1 운동을 계기로 하여 한반도를 비롯하여 해외 각지에서 존재하던 독립운동 구심체가 통일된 임시정부 수립운동으로 이어져, 서울의 한성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연해주 대한국민의회가 상하이 상해정부가 합쳐지는 형태로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연설에서 드러나는 그의 사상은 "정부 수립" 과 "민족 해방" 이라는 두가지 개념이 있고, 이는 광복절과 삼일절이라는 두가지 형태의 기념일을 제정함으로서 드러나지요. 3.1운동으로 민족적인 합의를 이룬, 민족자결주의에 기반한 민족의 정부가 설립되었으며, 이는 일제에 폭압에 밀려 중국 대륙에 피난하다가, 민족 해방으로 인해 실질적인 정부의 구성을 하였다 라는 관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설립은 1919년에 했는데, 나라가 없어 정부 구실을 못 하다가, 나라가 해방 된 뒤, 실질적인 정부 구성을 하였다는 요지의 주장을 합니다.

대한민국의 수립을 선포하는 이승만 박사

즉 정부 수립, 건국절은 이미 그분들이 주장하시는 국부가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역시 이승만 국부론으로 넘어가면, 어느 연설에서도 이승만은 자신이 국가를 세웠다고 주장하는 부분도 없으며, 국가의 창립의 공을 모두 민중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정부수립 자체의 공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백성들에게 있음을 시인하고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이는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framer)들이 쓴 저작과는 미묘하게 다른 부분입니다. 연방주의자 논집과, 제퍼슨의 연설, 그리고 워싱턴의 취임 연설(1차)와 고별사에서 나타나는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국가를 설계할까?" 라는 질문을 고민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는 달리, 이승만 자체는 정부 수립은 나 혼자만이 아닌, 민중들에 의해서 이미 설립되었고, 나는 국민들에 의해서 선출된 민주정부의 대통령이라는 나름대로의 계승의식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그의 대부분의 연설은, 민중들의 투쟁과 독립을 위한 열망아래 건설된 정부를 실질적으로 남부에서나마 실현했고, 어떻게 북쪽과 침략자로부터 자유를 수호할까 정도의 말만 되풀이됩니다. 즉 그는 "민주국가와 자유의 수호자"를 자칭했을지언정 "국가의 건설자"를 자처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러한 부분 말고, 여러분들이 다 아는 헌법 전문에서도 건국절과 이승만 국부론이 안 되는 이유를 한 문장에 압축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대한민국 헌법 서문

서론은 이쯤 하고, 그가 쓴 연설문들을 차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위에서 쓴 부분을 감안하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많은 부분 맟춤법과, 지금에는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대로 토씨하나 안 빼고 수록했습니다.

우리 국가의 자유를 1907년부터 1912년까지 우리 의병들이 싸우며 보호하라했고 1919년에 만세운동으로 우리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중국과 만주에서는 우리 국군의 잔병이 1945년까지 싸워오다가 마지막으로는 공화민주국가(共和民主國家)의 결실이 되여 지나간 4년 동안에 처음으로 민국정부(民國政府)를 건설케 된 것입니다.

제 2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 연설 중

30년 전 오늘에 13도 대표인 33인이 비밀히 모여서 독립을 선언하고 대한민주국의 탄생을 세계에 공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선열들이 용감스럽게 이 일을 행한 환경이 140여 년 전에 미국독립선언을 서명하던 그 때의 형편만 못지않게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와 독립을 사랑하는 정신은 어디서나 한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건설하는 민주국은 탄생한 지 아직 1년이 못되었으나 사실은 30세의 생일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제 30주년 삼일절 연설 중


다행히 UN감시 하에 민국정부가 수립된 것은 우리 민중이 3·1정신을 지켜나오다가 마침내 민주정부를 완전히 수립한 것이니, 실상 32년 전에 우리 3·1운동을 주창한 선열들이 세운 정신적 민주국가를 이번에 사실적으로 완수한 것이오, 우리 민주정부가 성립된 지 얼마 안에 세계 모든 문명국가들의 지지를 받아 오늘 UN군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과 전무한 물질력으로 우리를 도와주기에 이른 것입니다.

 제 32주년 삼일절 연설 중


삼십삼년전 오늘인 일구일구년삼월일일에 우리애국지도자 삼십삼대표가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여 이를 세계에 공포한 것임니다. 그때에 공포된 독립의 정신이 실지상으로 출현되여 일구사팔년 팔월에 대한민국 주국이 탄생된 것이니 지금에 우리는 이 독립을 유지하며 공고커 하기 위해서 혈전사수하고 잇는 중이며...(후략)

기미년, 삼월일일에 선포한 우리 독립선언서에 한 구절은 삼십삼년전에 적합한 것이 오늘에 와서도 적합한 것임니다. 이 구절로 내 말을 맛침니다.

『오등은 자에 아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하야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하노라

제 33주년 삼일절 연설 중

그러나 우리 독립은 우리 전민족의 간담(肝膽)과 정신 속에 사라잇섯던 것입니다. 이 독립이 우리 해외에 임시정부(臨時政府)에 사라 잇섯던 것입니다.우리 독립은 세계에 가장 오래고 위대한 역사의 일부입니다.우리 한인(韓人)된 자는 이날에 우리가 행한 일과 또 우리가 대표한 국가를 자랑하고저 하는 바입니다.

제 35주년 삼일절 연설 중

친애하는 동포여러분. 3월 1일은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 민국이 정신적으로 탄생한 날입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 우리가 존경하며 기념하는 33 선렬들이 서울 명월관에 모여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일본 경찰을 불러와서 잡아가라 한 것입니다.

제 38주년 삼일절 연설 중

독립선언을 발표한 이 날 우리가 다 같이 모여서 공동히 할 일은 그때 우리의 정형이 어떠하였던 것과 또 우리의 33선렬들이 죽기로 결심하고 이 운동을 시작해서 경향에서 일시에 일어나서 피를 흘리고 싸운 것과 또 한편으로는 임시정부를 공포한 열렬한 역사를 우리가 다 기념해서 그 정신을 이르켜야 되는 것입니다.

 제 40주년 삼일절 연설 중

1919년(기미년)에 우리 13도를 대표한 33인이 우리나라 운명 개조하기 위하여 1776년에 미국 독립을 선언한 미국 창립자들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 한국을 독립민주국으로 공포한 것입니다. 이 민주정부가 서울서 건설되어 임시로 중국에 가있다가 3년 전 오늘에 우리 반도남방에서 실현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 정부는 대부분 미국과 UN 각국의 도움으로 태생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한국 천지에 자유가 탄생한 이날을 경축하는 우리로는 이 역사를 이즐 수 없는 것입니다.

제 6주년 광복절 연설 중

즉, 3.1 운동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기에 건국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삼일절을 국가가 기뻐하는 국경일로서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승만 국부론을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 창립의 주체가 국민, 민중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오, 8.15 건국절을 주장함은, 3.1운동 당시에 "조선인민"의 마음속에 이미 건국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2016년 4월 15일 금요일

전작권없으면 한국 핵무장해도 무용지물



핵무장론의 자충수 전시작전통제권

2014년 10월 23일(현지시각)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미국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를 명시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뒤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에게 건네고 있다. 사진 제공· 국방부

‘로켓군(火箭軍).’ 중국 인민해방군이 1월 1일 공개한 핵·미사일 전담 부대의 새 이름이다.

1964년 10월 첫 핵실험을 실시한 중국은 이듬해 5월 탄두를 소형화해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폭발실험을 진행했고, 66년 6월 6일 기존 육·해·공군과는 별개의 핵전력 전담 부대를 창설해 ‘제2포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외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도록 지은 이 이름이 근 50년 만에 변경된 것이다.

1949년 첫 핵실험에 성공한 소련은 59년 ‘전략로켓군’을 창설해 핵과 미사일전력을 맡겼다.

2006년 1차 핵실험을 실시한 북한 역시 2012년 ‘전략로켓군’ 창설을 공개했고, 2년 뒤 ‘전략군’으로 이름을 바꿨다. 세계 최초·최대 핵 보유국인 미국은 1946년 창설한 전략공군사령부(SAC)를 거쳐 지금은 전략사령부(STRATCOM)에서 핵전력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주요 체계를 운용한다.

이렇듯 역사상 핵전력 보유에 성공한 모든 국가는 예외 없이 첫 핵실험 후 수년 이내 별도의 전략부대를 만들었다.

뒤집어 말해 이러한 군사적 운용체계를 갖춘 뒤에야 비로소 사전적 의미의 ‘작전배치’를 완료할 수 있었고, 핵무장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무도 몰래 산간벽지에 숨겨놓았다 갑자기 꺼내 쏘아 올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군사지휘구조 속에서 명확한 명령체계를 완비해야 국제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변수가 된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갈 수 없는 게 확실하다면, 주변국 누구도 신경 쓸 리 없다.

‘인식(perception)의 싸움’

이렇게 놓고 보면 명확한 사실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핵무장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사이의 절대적인 상관관계다. 한국이 핵무장을 선언할 경우 이어질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등 다양한 난관에 대한 논의는 일단 차치하기로 하자.

미국이 이를 용인해가며 한미동맹을 유지할 개연성이 극히 낮다는 사실 역시 무시해보자. 어렵사리 핵실험과 미사일 탑재, 전력화를 진행한 뒤 이를 운용할 부대를 ‘전략미사일사령부’라는 이름으로 창설했다고까지 가정해보자.

그리고 발생한 북한과의 전면전. 평양을 향해 진격해 들어가는 한미연합군의 공세에 몰린 북한 김정은이 핵미사일 발사단추를 눌러 서울이 폭격됐다.

수십만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이미 데프콘(DEFCON)3을 훌쩍 넘어선 상황에서 전작권은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넘어가 있다. 한국군 핵무기를 관장하는 사령부 역시 이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전 후 연합사령관은 한미 양국 대통령의 통수권 지휘를 받아 전략적 결정을 수행한다. 핵무기의 사용은 그 핵심 중 핵심이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핵무장에 성공한다 해도, 실제 전쟁 수행 과정에서 미국 대통령의 동의 없이 이를 사용할 방법은 없다.

국제정치는 본질적으로 ‘인식(perception)의 싸움’이다. 한국의 핵무장이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에게 유효한 변수가 되려면, 한국이 자신의 결정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그러나 전작권이 미국에 있는 현 상황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할 리 없다. 억제든 강압이든 공포의 균형이든, 핵무기의 효과에 대한 모든 의미도 유명무실해진다.

이렇듯 한국군의 전시작전 지휘체계가 지금처럼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서, 한국의 독자 핵무장과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것 사이에는 본질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핵 삼원체제(triad)로 상징되는 미국의 정교한 핵 운용체계와 비교하면, 독자 핵무장의 위력은 주변국에 오히려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다. 김정은이 핵우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한국 핵무기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전환 논의,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도

진짜 본론은 지금부터다. 한국의 핵무장 주장이 커질수록 이에 반응할 유일한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앞서의 논란을 뒤집어보면 이는 워싱턴 인사들에게 전작권을 한국에 돌려주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후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미국으로서는 통제할 방법이 사라지기 때문.

추후 전작권 전환 논의가 다시 본격화된다면 미국으로서는 2016년 한국에서 일었던 핵무장 논쟁과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맹이 유지되는 한 전작권 전환은 영원히 불가능해지는 지름길이 열리는 셈이다.

실제로 워싱턴 인사들은 2013년 전작권 전환 연기 합의와 관련해 “한국의 독자 행동을 통제할 수단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는 논리로 설명해왔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 전면전을 우려해 개입을 꺼렸던 미국은, 이후 남북의 우발충돌을 경계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가져갈 테면 가져가라”며 전작권 논의에 ‘쿨’한 태도를 보이던 워싱턴 분위기가 10여 년 만에 바뀐 배경이다. 핵무장 논의는 이러한 기류에 쐐기를 박을 공산이 크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최근 핵무장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이들이 대부분 전작권 전환 논의에서 가장 격렬히 반대해온 당사자들이라는 점이다. 2월 1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평화핵’을 주장한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대표적인 경우. 핵무장 논의를 공공연히 거론해온 일부 언론과 단체 역시 다르지 않다.

이들이 핵무장을 거론하기 시작한 시점이 전작권 전환 연기보다 앞서 있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잠시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본적인 논리구조가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듯하다.

2월 6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F-22 등 미군 전략 자산이 신속하게 한반도에 투입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워싱턴이 한국 내부의 핵무장론을 의식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이 ‘선을 넘지 않도록’ 동맹에 제공하는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케 해주는 것이라는 해석에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일각에서 핵무장론 역시 ‘미국의 적극적인 자세를 유도하는 레버리지로서 효과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근거다. 이를테면 ‘떡 하나 더 받으려는 아이의 울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맹점이 숨어 있다. 정말로 핵을 원하는 나라는 사전에 이를 입 밖에 내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1970년대부터 미국의 양해 아래 핵연료 재처리 능력을 보유해왔고 40t 이상의 재처리 플루토늄을 상시적으로 보관하고 있지만, 핵무장이라는 말만큼은 절대 금기시하는 일본이 대표적인 경우다.

일본 정부는 67년 ‘비핵 3원칙’을 선언한 이래 핵의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는 국내법을 제정했고, 94년 1차 북핵 위기 직후 ‘핵 옵션을 검토했으나 가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비밀문서를 언론에 흘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순수성’을 강조해왔다.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상대를 위협하기에 더없이 좋은 카드지만 자신도 다치기 십상이다. 핵무장이라는 극단의 민족주의와 동맹이라는 집단안보 메커니즘이 양립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국제정치의 냉정하기 짝이 없는 논리를 감안하면, 잠깐의 인기나 정서에 취해 함부로 이 칼을 꺼내 드는 건 위험천만한 행동에 불과하다.

그 칼날이 결국 겨누는 것은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권이기 때문이다. 핵무장을 말하지 않는 이들은 바보라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미군 전술핵 재배치, 한다면 어떻게?

▼ B61-3 탄두 오산공군기지 인근 배치가 최대치

1980년대 미국 의회 자료에 따르면, 당시 주한미군이 운용했던 전술핵전력의 총규모는 핵폭탄 60개와 9인치 대포용 탄두 40개, 155mm 대포용 탄두 30개, 핵 지뢰 21개 수준이었다.

미 육군이 경기 의정부 근처 도봉산 탄약창에 전진배치용 핵무기 저장소를 유지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기억할 것은 핵을 대포로 쏜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지금은 당시의 전술핵전력 대부분이 폐기됐다는 사실.

예컨대 2000년대 이후 미군이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전술핵탄두인 B61-3은 0.3kt부터 170kt까지 다양한 파괴력 옵션을 가졌으나 주로 B-52와 F-15E 같은 항공기에 장착한다.

2007년까지 200기가 작전배치돼 있었고 186기의 재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미국 측 자료로 확인되는 만큼, 한반도에 들여올 여유분도 충분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현실적으로 가장 개연성 높은 전술핵 재반입 시나리오는 2014년부터 F-15E 전력이 순환배치되고 있는 오산공군기지 인근에 B61-3 탄두를 상시배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의 조밀한 방공망을 감안할 때 미군이 실제로 이 탄두를 사용할 개연성이 높지 않다는 것.

한반도에서 전술핵이 철수된 1991년 이후 북한 지역에 대한 전술핵 보복 공격 임무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시모어존슨 기지에 주둔 중이던 제4전투비행단으로 이관됐지만, 98년 실시된 비행훈련 결과를 다룬 문서는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대신 미군 측이 주로 검토해온 시나리오는 태평양에 배치된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에서 전술핵탄두가 탑재된 트라이던트 D5 미사일을 발사하는 방식. 명령 후 13분 이내 발사가 가능하고 요격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결국 앞서 본 대로 오산공군기지에 전술핵탄두를 배치한다 해도 이는 ‘우리 땅에도 핵이 있다’는 심리적 안도감을 동맹국에 제공하는 정치적 목적이 전부일 뿐, 실제로는 잠수함 전력을 작전계획의 주축으로 둘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군당국 관계자들은 미국 측이 수용할 수 있는 전술핵 재배치 시나리오로 전략핵잠수함이 한반도 인근 해상에서 상시적으로 순찰 기동하는 방안을 꼽는다.

대(對)중국 압박 수위를 높이는 이중효과를 노릴 수 있는 데다, 작전배치 탄두 수를 늘릴 필요가 없으므로 ‘핵 없는 세계’를 공언해온 오바마 행정부로서도 거부감이 적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미군 핵잠수함은 태평양 멀리서도 똑같이 북한을 향해 미사일을 날릴 수 있으므로 가까이 기동한다 한들 군사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더욱이 위치 확인이 불가능한 잠수함의 특성상 워싱턴이 그 같은 원칙만 천명해놓은 채 실제로는 다른 해역으로 돌려도 파악하기 어렵다.

한 당국자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 측이 립서비스 차원에서 꺼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카드”라고 말했다.

별다른 군사적 효용도 없이 위치가 노출되는 해외 지상기지에 핵탄두를 보관하는 아이디어 자체를 미국 측이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핵무장론의 자충수 전시작전통제권
미군 전략사령부가 운용하는 대표적인 핵탄두 B61 모형.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영문판

황일도 기자 · 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출처 주간동아 10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