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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8일 목요일

대학 평가 세계 00위? 학생들은 불행하다

대학교 앞을 거닐다 보면 "OO대학교, 대학 평가 세계 △△위"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현수막들은 한국의 대학 교육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렇게 세계적으로 높은 순위를 가진 한국 대학들에 대해 정작 우리 학생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4년제 대학의 교수·학습 역량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전공 수업에 대한 만족도는 2011년 83%에서 2014년 64.3%로 4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 교양 수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기간 78.8%에서 54.5%까지 하락하여 절반가량의 대학생들이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등록금 비싼데, 교육 투자는 절반 

이처럼 대학 평가 순위와 실제 수요자인 학생들의 만족도 간에 괴리가 생긴다는 것은 대학이라는 하나의 교육제도가 수요자 중심이라기보다는 다른 측면들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크게 대학 내부적인 문제들과 정부와 사회라는 대학 외부의 문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대학의 재정 운용에 대한 불신이다. 우리 학생들이 감당해야 하는 등록금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투자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우리나라 대학의 78%는 사립대로서, 이들의 등록금은 8554달러에 이른다. 국공립대 역시 4773달러로 다른 나라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 금액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미국과 영국을 이어 3위이다. 국공립대 비중이 2%에 불과한 전문대학의 등록금까지 감안하면 순위가 더 높아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 <표1> 2012년 국공립대 및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단위 : 달러, 구매력지수 환산액. 출처 : Education at a glance 2015).


이처럼 학생들이 많은 등록금을 내고 있는데도, 교육에 투자되는 돈은 많지 않다. 사립대들이 5년간 건물을 새로 지을 때 들어간 비용들을 추계해보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산인 건축 적립금과 법인에서 들어오는 자산 전입금의 비중은 44.4%에 그쳤다. 즉, 나머지는 다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등록금으로 충당했다.

또한 우리 대학들은 교육보다 연구 실적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국립대의 경우 일 년에 쓰는 논문 편수에 따라 교수의 연봉이 산정된다. 뿐만 아니라 임용 및 승진도 연구실적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교수들이 학생들과의 학습보다 개인적인 연구에 급급하도록 만들었다. 대학 교육의 대부분이 토론식, 쌍방향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여전히 중등교육의 연속선상으로 불릴 만큼 일방향의 주입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러한 영향이 크다.

이처럼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등록금의 상당 부분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대학들의 토건 자산을 늘리는 데 투자되고, 연구 위주의 대학 운영 방식은 학생들의 대학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

대학에 성과 부풀리기 요구하는 정부  

대학의 이러한 운영 방식들은 정부 정책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1990년~2000년대 한국 고등교육 정책들의 목적은 대학들 간 경쟁체제의 확립이었다. 이를 위해 대학의 교육 및 연구 성과를 양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근거하여 공적 자원을 배분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대학 당국들이 '교육'의 관점이 아니라 성과를 양적으로 부풀리기 위한 '경영과 마케팅'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교육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경시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율화·특성화 정책들은 대학들의 경쟁을 가속화시켜 수익성 없는 학문이나 수량적으로 평가될 수 없는 대학의 고유한 가치들을 대학 밖으로 밀어냈다.

우리나라는 지출 구조상으로도 대학 교육의 상당 부분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다. <표2>를 보면 고등 교육에 대한 한국 정부 부담이 OECD 평균보다 작은 반면, 민간 부담은 거의 4배 정도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같이 재정적으로도 정부의 역할이 작은 상황에서 대학에 대한 자율화 및 특성화 정책은 대학들의 목소리만 더 키워왔다.



▲ <표2> 2012년 GDP 대비 교육비 비율(출처 : Education at a glance 2015).

이러한 상황에서 조·중·동 등 각종 언론에서 대학 평가 지표들을 개발하여 대학 서열화를 조장했다. 최근 6년간 전국 4년제 사립대학 홍보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213개 대학에서 언론 홍보를 위한 지출액은 1392억 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세계대학평가 기관의 수입 중 4분의 1은 한국 대학들이 충당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한 대학 간 경쟁이 치열하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적 문화도 한몫했다.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78%에 이르는 고학력 국가이다. 노동시장의 왜곡으로 인해 대학 졸업자와 고등학교 졸업자, 특히 명문대생과의 임금 차이가 커지면서 입시 경쟁이 과열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을 뽑는 위치에 있는 대학들이 갑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대학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인적 자원의 질을 형성하는 데 마지막 단계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중등 교육을 통해 생긴 경험들을 한층 더 심화된 지식으로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함께 공유하고 생산하게 된다. 세계은행에서도 대학 교육을 "국민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국가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고 강조하듯이 사회적 중요성이 크다. 이러한 역할이 있기에 대학 교육은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는 영역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사회로 진출하기 때문에 대학에서의 교육은 사회에서의 '생존'에 관한 교육(직업 교육)과 사회 구성원인 '인간'의 가치에 대한 교육(인문학이나 예술)이 조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재원과 정책의 영역에서 대학에 지나친 자율성을 부여한 결과 공공성이 매우 약하다. 이로 인해 돈이 되지 않는 후자의 교육은 경시되고 전자에만 집중되고 있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보다 공급자인 대학 위주로 성과에 급급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 키우는 교육 위해 대학 공공성 높여야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을 키우는 대학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대학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인 학생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싼 등록금에 허덕이며 교수가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지식에 우왕좌왕하는 수동적인 학생이 아니라, 교수와 다른 학우들과 함께 고민하며 지식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능동적인 학생이 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 진출했을 때 한층 더 발전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학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대학의 사회적 역할이 큰 만큼 정부는 공공 재원을 투자하여 대학들의 무분별한 경쟁을 막아야 한다. 지금처럼 재원 운용에 대학의 자율성이 큰 상황에서 반값 등록금과 같이 재원만 지원해주는 정책은 일정 부분 등록금 인상률은 통제할 수 있겠지만, 등록금 액수를 근본적으로 낮추기 어렵다. 재원의 운용이 전적으로 대학의 손에 맡겨져 있어 불투명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 재원을 투자하되, 대학들의 재정 운용 과정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학들 간의 불필요한 서열화 경쟁을 위한 홍보비, 건축비 등을 통제해서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들이 단기 성과 위주의 연구가 아니라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투자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심도 있는 고려가 필요하다. 대학 수가 포화 상태인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수년간 학생 수가 미달된 학교들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대학들이 취업률과 같은 양적지표에 의해 인문사회계열의 순수 학문 학과들을 통폐합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대학 교육에서 단지 취업을 위한 직업 교육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배우는 인문 철학 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단지 대학들이 양적 지표에만 급급해하지 않도록 정부가 완충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노동 시장에서 대학 졸업 여부에 따른 임금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들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야 과다한 입시 경쟁을 진정시키고 대학들 간의 서열화도 완화시킬 수 있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대학 진학률은 40% 정도로 우리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는 더 심화된 지식을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노동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면서 낭비되는 사회적 자원들이 많다. 따라서 대학 진학률을 낮추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이 노동시장과의 연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많은 대학들에서 경쟁력을 높인다는 미명하에 학과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상 취업률에 보탬이 안 되는 인문 사회계 위주의 통폐합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정책들로 몇 년 공부했던 학과가 없어지는 피해를 본다. 이 학생들의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단지 순위, 취업률 등 성과위주의 양적 지표에 급급해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의 사회 구성원을 양성한다는 관점으로 대학 교육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1939


2017년 5월 23일 화요일

다양성이 만들어낸 창조성과 경쟁력의 흔적들

유대인 품은 빈, 유럽의 문화수도로 
접점에서 나오고 연결로 완성되는 창조성

김용준 생활경제부 차장

서울대, 광운대, 한양대, 경북대.

작년 9월 말 기준 삼성전자 등기이사(사내) 4명의 출신 학교다. 모두 다르다. 임원 1029명도 분류해봤다. 이들의 출신 학교는 국내외 100곳이 넘는다. 처음 들어본 국내 대학도 꽤 된다. 삼성전자의 실력 중심 문화는 결과적 다양성으로 이어졌다. 이건희 회장이 주장한 ‘3불연’ 원칙의 결과다. 학연 혈연 지연을 용납하지 않는 것. 삼성 조직문화가 획일적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거친 환경에서도 다양성은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다양성과 경쟁력(창조성)의 관계를 증언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미국은 자체로 다양성의 보고다. 레바논,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와 그 자식들은 애플 테슬라 구글을 창업했다. 그리고 세계 시장의 지배자가 됐다.

오래전으로 가보자.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은 유럽의 문화 수도가 됐다. 15세기 피렌체와 비슷했다. 모더니즘은 이곳에서 태어났다.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 등이 빈의 공기를 함께 마셨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화려한 시대의 상징이다.

프랑스 파리를 유럽 문화의 변방으로 밀어낸 빈의 힘은 ‘공존’에서 왔다. 19세기 오스트리아는 유대인 차별을 없앴다.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갖고 있는 유럽의 인재들이 빈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들은 골방에 처박혀 있지 않았다. 살롱으로 모여들었다. 서로를 배웠다. 노벨상 수상자 에릭 캔델은 클림트가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를 이런 문화의 상징이라고 평가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 그리고 정자와 난자의 이미지는 의학, 정신분석학,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라는 얘기다. 클림트에 의해 융합이 일어난 셈이다. 다양성이 뒤얽혀 창조성을 낳았다.

17세기 네덜란드도 그랬다. 화가 얀 베르메이르의 ‘델프트의 풍경’이라는 그림. 그림에는 기독교와 가톨릭교회가 나란히 등장한다. 공존과 다양성의 시대였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다양성과 공존의 힘은 자연에서도 나타난다. 한 연구자들이 실험을 했다. 두 개의 닭장을 만들었다. 하나에는 알 잘 낳는 닭만 골라 넣었다. 다른 하나에는 잘 낳는 놈, 못 낳는 놈, 적당히 낳는 놈을 고루 넣었다. 우수한 닭 중 일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생산성은 떨어졌다. 치열한 경쟁심리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해석했다. 골고루 섞인 닭장 안은 평화로웠다.

이렇듯 다양성은 창의성과 경쟁력이 시작되는 샘과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변화는 빠르고, 전략은 미로가 됐다. 장기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 가지 전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생각이 만나는 ‘창의적 접점과 연결’을 찾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은 아닐까.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41925961

2016년 9월 27일 화요일

다시 생각해보는 위안부 문제

언젠가 위안부 얘기를 하겠다고 했었기에 내가 아는 범위에서 쓰고자 한다. 몇 가지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미심쩍어 책도 한 권 사서 읽었다.

이 방에서도 위안부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마이크류님이 첫 발제를 했었고, 내가 두 번째 발제를 했었다. 그 때 나를 친일파라고 욕하며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여성도 있었고, 친일파 논리를 그대로 사용한다면서 내게 절교를 선언한 사장님까지 있었다. 그래도 난 상관 없다. 내가 쓴 글이 진실(팩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진실이 어떤 가치나 확신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안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가치나 확신의 포로가 되어 그것이 진실을 가리기 때문이다. 니체는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다. 확신이다” 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건방진 말이지만 위안부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위안부 문제는 민감하고 그만큼 성역화되어 있다. 나는 그 성역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위안부는 정신대와 다르다. 위안부는 성노예 생활을 했던 가난하고 무학(無學)의 여성이었지만, 정신대는 공장에서 일했던 교육 받은 여학생들이었다. 위안부는 제법 나이가 들었지만(평균 25세), 정신대는 중학교 재학생이거나 중학교를 갓졸업한 소녀였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위 사실만으로도 많은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이런 추론을 포함하여 위안부에 대한 진실과 우리들의 오해를 열거해보겠다.

1. ’위안부소녀상’은 잘못 만들었다. 위안부는 소녀가 아니었다. 당시 위안부들은 지금의 윤락여성들처럼 제법 나이가 들었던 것이다.(예외는 있지만 이를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논지를 흐리게 하므로 앞으로도 예외는 무시하겠다.)

2. 위안부 문제를 좌지우지하는 권력기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이름도 그래서 잘못 만들어졌다. 참고로 전쟁이 터지면 일손이 부족해지므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한다. 일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그 정신대도 사실은 대부분 일본 여학생들이었고 조선인 여학생들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 위안부는 불법적이었지만 정신대는 합법적이었다. 위안부도 조선인 여성들만 있었던게 아니었다. 초기에는 주로 일본여성들이었고, 전선이 넓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조선인 여성들의 비중이 커졌다. 위안부와 정신대가 다르다는 것은 이제 ‘정대협’조차 인정하고 있다.

3. 위안부 숫자가 20만명이라는 설도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사실 20만명이라면 위안부 문제가 1990년대에 와서야 공론화되었을 리가 없다. 일제시대라고는 하지만 20만명이 끌려가는 동안 사회문제화된 적도 없었고, 또 일제패망 후 20만명이나 귀국했는데도 사회문제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추가] 위안부 할머니로 등록된 숫자가 234명 뿐일 리도 없다(2012년 기준). 정신대 숫자를, 그것도 일본인 정신대까지 포함한 숫자를 위안부 숫자로 둔갑시켜 우리들의 집단기억으로 남은 것일 가능성이 아주 많다.

4. 일본정부는 위안부 모집에 관여하지 않았다. 증거도 없다. 일본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광범위하게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갔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이게 핵심이다. 만약 20만명이나 되는 우리 자매나 딸을 강제로 끌고 갔다면, 그 여성들의 가족들이 아무 저항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을 리도 없다. 우리 조상들이 항의하거나 저항했다는 기록도 정황도 없다. 그러므로 일본정부에게 위안부 배상을 하라는 주장은 잘못이다.

5. 심지어 위안부 모집에 일본군이 개입했다는 증거도 없다.(이 부분은 삭제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개입을 한 것 같습니다.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만.)  물론 위안소가 군부대 내외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일본군이나 행정기관에서 위안소를 관리하기는 했다. 예를 들면 위생검진을 한다거나 위안소를 장교용과 사병용으로 구분했던 사례가 그것이다. 때로는 포주가 위안부들을 과도하게 착취하지 못하도록 일본군 부대장이 관리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 역시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6.25 때 북진하는 국군을 따라 매춘여성들도 올라갔었고, 종전 후에도 군부대나 동두천 기지촌 같은 곳은 위생증(맞나?)을 가진 여성들만 매춘에 종사하도록 행정지도까지 했다. 이런 유곽이 자영업이었던 것처럼 일제시대 위안소 역시 기본적으로는 자영업이었다. 위안소 역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자들과 군(軍)의 현실이 접목되어 나타난 자본주의적 사업이었던 것이다.

6. 시골 여성들을 속여 끌고갔던 사람들은 일본정부나 일본군인이 아니라 조선인 인신매매범이나 조선인 윤락업소 포주였다. 그들이 배움의 기회가 없어 무지하거나 쌀밥을 그리워할 정도로 가난했던 시골 여성들을 속여서 끌고 갔다. 이건 60, 70년대 우리나라 매춘여성들의 경우와 같다. 지금도 스마트폰과 예쁜 옷 때문에 속아서 매춘여성이 되는 여자들이 많다.

7. 따라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오도 일본정부나 일본군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분들의 증오는 순진하고 무지하고 가난했던 자기를 속여 지옥으로 끌고갔거나 지옥에서 성노예로 부려먹은 인신매매범 및 윤락업소 포주들을 향해 있다. 물론 일제 공무원이나 일본군이 와서 데리고 갔다는 증언은 있지만, 아마도 그건 인신매매범들의 위장술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위안부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일제가 아니라도 지금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나 매춘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8.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소설이나 영화에서 일부 다루기는 했지만 전국 규모의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식의 서술은 없었다. 기껏해야 위안부들의 비참했던 생활이나 사랑 이야기였다. 1990년대에 위안부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문제제기를 한 사람들도 일본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위안부에 대한 연구는 일본이 훨씬 광범위하고 깊이있게 다뤘다.

9. 뒤늦게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문제가 되자 일본정부도 책임을 느끼고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위안부 배상(보상인가?)에 대한 법을 만들려고 했지만 일본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국회에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할 수 없이 일본정부가 꺼낸 카드가 국민들 성금을 모으고 거기에 정부예산을 보탠다는 것이었다. 그게 한일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묘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일본국민들이 동참해서 만든 기금이 ‘아시아여성기금’이었다.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수상의 사과편지와 함께 위로금을 주는 것을 시도했다.

그런데 강성 일변도의 정대협이 전면에 나서면서 수령거부 운동을 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사실 상당수 할머니들이(60명인가? 30명인가?) 위로금과 수상의 사과편지를 받기도 했다. 참고로 2012년 현재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수는 234명이었다.

10. 정대협이 설치면서 위안부할머니들이 정대협 눈치를 보았다. 그러자 강성이 아니면 버티지 못하게 되었다. 위로금을 받은 할머니들조차 침묵하고 ’수요집회’에 나서야 했다. 게다가 일본대사관이나 외국에 톡 쏘는 눈을 가진 ‘위안부 소녀상’까지 세웠다(정말 치졸한 대응이다).

그러자 ‘언제까지 사과해야 한다는 말인가’라는 인식이 일본인들에게 퍼졌다. 대유행했던 한류가 사라지고 혐한류가 판을 채웠다. 아시아여성기금에 성금냈던 일본인들까지 혐한류로 돌아섰다. 일본은 군국주의자들이 설치는 세상이 되었다. 그 반작용으로 한국에서도 대일적개심이 널리 퍼졌다. 한일이 서로를 증오하는 지금의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그 사이에 정대협에서 활동했던 리더들은 장관, 국회의원, 심지어 총리까지 되었다.

결국 누가 이익을 보았고 누가 손해를 보았나? 이게 도대체 정상인가? 참으로 안타깝고 원망스럽다.        

11. 기타 몇 가지 사실 : 위안부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하루에도 수 십명의 군인을 받아야 했고, 죽음의 전투를 앞둔 일본군의 폭력적, 변태적 성행위에 시달리기도 했다. 포주나 일본군에게 매를 맞기도 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일본군과 막장의 인생이 상호 연민으로 작용하여 일본군과 같이 울고 사랑에 빠진 위안부도 있었다. 일본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일본군 장교의 현지처 같은 생활을 즐기며 함께 말탔던 추억을 그리는 위안부도 있었다.  반면 악착같이 돈을 모은 사람도 있었다. 빌린 돈을 다 갚고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도 남아 있으려는 위안부도 있었다. 이상은 지금도 흔히 있는 윤락녀들의 모습이다.

일본군은 점령지의 여성들을 약탈물로 간주하여 강간을 하고 죽이기도 했지만, 조선인 위안부는 기본적으로 약탈물이 아니었기에 동료 또는 군수품같이 생각하여 적국 여성들처럼 대우받지는 않았다. 일본군이 전투에 나가면 반드시 이기라며 일본군을 응원하는 위안부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12.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배상할 일이 아니다. 당시 위안부 모집은 엄연히 불법이었다. 그러므로 돈벌이에 눈이 멀어 불법에다가 비도덕적 상행위를 했던 인신매매범이나 포주가 비난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바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착취, 즉 페미니즘적 시각 또는 사회안전망 시각에서 접근해야 맞다.

2016년 8월 28일 일요일

국가의 흥망과 북한

‘강대국의 조건’이란 EBS 다큐를 보았다. 역사 속의 강국인 로마, 영국, 네덜란드, 몽골, 미국, 그리고 실패한 강국인 스페인, 나찌독일, 일본제국주의가 가지고 있거나 결핍하고 있는 공통요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다큐다. 공통요인은 ‘관대함’이었다.

관대함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말과 같은데, 다큐는 상기한 강대국들의 관대함을 여러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가장 성공적인 제국이라는 로마는 적의 포로를 10년간 노예로 부리고 나면 이후는 자유민으로 만들어줬고 그 자손은 시민권자가 될 수 있었다. 심지어 정복한 민족의 후손에서 로마황제가 나오기도 했다.

영국은 종교적 원리주의가 대세이던 유럽에서 신교를 받아들였고, 네덜란드는 스페인에서 쫒겨난 유대인과 상인을 받아들이는 관대한 정책을 폈다. 몽골은 정복한 민족이라도 능력에 따라 대우를 해줬으며, 당시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여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가 몽골 수도에서 함께 생활하며 종교토론을 하기도 앴다. (다큐에 나왔던 전문가 중 하나인 ‘잭 웨더포드’의 책은 읽은 기억이 있다. 제목은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미국은 아시다시피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며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모든 세계인들을 받아들여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를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자유, 평등, 인권 등의 가치를 추구하기에 미국패권은 더욱 지속가능할 것 같다.

요점은, 이상의 나라들은 모두 이웃나라, 이웃시민들에게 관대했기에 성공한 것이다.

반면 한 국가가 배타적, 폐쇄적이면, 즉 관대함을 잃어버리면, 활력을 잃고 쇠퇴한다. 스페인은 카톨릭 원리주의에 빠져 타 종교를 박해했고 유태인들을 탄압하고 내쫒았다. 나찌독일과 일제의 인종주의적, 국수주의적 광신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일본은 아직도 외국에게 폐쇄적이다. 중국도 그런 면이 많고, 북한은 더욱 그렇다. 이런 나라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관대함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으로 초점을 좁혀보자. 북한은 역사상 어느 나라보다도 배타적, 폐쇄적인데다가 극단주의적이기까지 하다. 관대함과는 상극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쇠퇴는 불가피하고 결국 망한다.

경제사학자 이영훈 서울대 교수의 ‘대한민국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다. 이 분은 조선의 쌀 생산량, 물가, 경작면적 등의 각종 경제지표를 도출하여 조선이 망한 원인을 밝힌 분이다. 이 분이 조선시대의 경제지표를 도출한 방법을 예로 든다면 이렇다.

조선 말 안동의 족계(族契, 친족끼리의 계) 활동을 수록한 기록물을 찾으면 쌀 구입비 등이 적혀 있다. 같은 시기 남원의 족계를 뒤져보면 역시 쌀 구입비가 적혀 있다. 만약 두 지역 간의 쌀값이 차이가 없다면 전국적으로 유통망이 잘 갖춰져서 전국의 시장이 통합되었다는 뜻이고, 차이가 많다면 유통망과 시장이 붕괴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전국의 물가, 5일장 수, 경작면적, 임목면적, 재정수지, 인구, 1인당GDP 등을 추론하여 당시의 외국자료와 비교한다.

이 분이 도출한 경제지표의 결론은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마침 이 분이 어느 토크쇼에 나와 같은 내용을 강의해서 주의 깊게 들었다. 이 쇼에는 탈북인 이애란 박사도 방청객으로 참석했다. (이하 수치는 기억에 의존했으므로 부정확함).

조선말에는 산림이 얼마나 황폐했는지, 밭 면적을 비교해보면 조선이, 2배나 넓은 국토를 가진 일본과 유사할 정도였다(이는 1910년대 일제가 조사한 조선의 산림면적 결과로도 증명된다). 그래서 비만 오면 토사가 논밭을 망쳤다. 호랑이도 그 때 사라졌다. 산림이 황폐화된 이유는 왕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왕의 소유란 임자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모두가 나무를 베어내 땔감으로 쓰거나 시장에 내다 팔았다. 게다가 인구까지 증가했으니….

제법 잘 살았던 영,정조 시대의 국가재정(쌀) 보유액도 일본의 일개 다이묘(大名) 수준에 불과했다. 조선말 1인당GDP는 당시 자료가 남아있는 세계 43개국 중 꼴찌였다(아프리카보다 못 살았다). 그렇게 가난한데도 백성들은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렸다. 5일장 수는 급감하여 시장이 붕괴되었다. 매관매직이 얼마나 심했는지 고종 치하 44년 동안 서울시장이 1000명이 넘었다(이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임).

요약하면, 조선 멸망의 원인은 인구증가와 식량부족, 땔감을 위한 벌목으로 인한 산림의 황폐화, 그로 인한 쌀 생산량 감소와 굶주림, 관리들의 착취, 매관매직이었다. 지금의 북한과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그래서그런지 이애란 박사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지금 북한과 너무나 똑같다. 그런데 왜 북한은 조선처럼 망하지 않은가?”

이 교수가 대답했다.
“국가는 쉽게 망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외부충격이 있어야 망한다. 조선은 열강들의 침략이라는 외부충격이 있었다.”

이 교수의 말이 맞다면, 그럼 북한을 망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부모순은 충분하게 쌓여 있다. 마지막 하나는 외부충격이다. 외부충격이란 내가 보기에 1) 북한이 도발하면 강력하게 응징하는 것, 2) 외부정보를 대량으로 유입시키는 것이다. 그럼 북한은 망한다. 그리고 북한주민들은 처참한 인권유린과 기아에서 해방된다.

“조선은 부족함이 없이 평화롭게 잘 먹고 잘 살고 오손도손 사는 착한 순둥이였는데, 열강들이 쳐들어와 망했다. 조선은 싸움질을 할 줄 몰랐던 착한 나라였다. 만약 사악한 열강들이 없었다면 조선은 자체개혁을 통해 아주 잘 나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열강들이 나쁜 놈들이다”.

이게 지금까지의 우리 역사관이었단다. 하지만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아니 망해야 했다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 교수는 그 경제적 근거를 최초로 제시했다고 한다.

2016년 8월 16일 화요일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글을 쓰려다 보니, 이 것이 마치 조선시대의 예송논쟁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질적 기대효과는 거의 없고 명분론적으로 친일이냐 하니냐를 그냥 구분하는 도구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예송논쟁도 왕의 정통성이 있냐 없냐 하는 것 이었으니까 일맥상통 하는 것이죠. 어떤 정책, 비젼 또는 사고체계가 국가나 사회에 이로울 것인가 하는 실질적은 부분은 전혀 없는 논쟁이지요.

식민지 근대화론은 1950 – 60년대 서구의 학자들에게서 시작된 이론입니다. 러너와 셔만이 대표적인 학자 입니다. 이 이론이 도입되던 당시 식민지 운영 경험이 있는 서구 국가들로서는 자신들의 식민지 경영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론이 전개 되었습니다. 이 이론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기 보다 식민지 발전론이란 명칭 규정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식민지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식민지를 근대화 시켰고 이런 근대화를 통해 식민지가 발전되었다는 발전론을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자신들 조상들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정당화 하게 된 것이겠지요.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항마로 개발 된 이론은 아니지만, 1960년대 남미를 중심으로 개발된 종속이론은 1970년대까지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항마 역할을 하다가 1990년 초 그 수명을 다하게 되었지요. 종속이론의 연장선상에서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수탈론 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 식민지 근대화론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서구 강대국의 식민지 시대 이루어진 근대화에 대하여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분석하게 된 것입니다. 즉, 근대화를 어떤 방향성을 갖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근대화 진행의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분석하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근대화를 발전과 진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식민지에서 기존의 사회체제로 부터 식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진행경과를 거쳐서 어떤 모습으로 사회체제가 변화했느냐를 분석하는 것으로 그 대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는 인간의 선의 같은 요소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이런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김기협의 글에 대하여 몇개의 문단만 간단하게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분석 대상이 되는 김기협의 글은 가가님이 댓글로 올린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입니다.  

<전략> ….. 191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3.6%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30년간 그만한 성장률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는 것은 한국경제가 그 기간에 꽤 활기찬 발전을 이뤘다는 인상을 주려고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 성장의 출발점이 어디인가? 거의 아무런 산업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던 1910년도다. 오늘날처럼 산업화가 이뤄질 만큼 이뤄진 상황에서도 연 5% 이하로 성장률 목표 낮추는 것을 놓고 온 국민이 서운해 하는 판인데, 아무것 없던 출발점에서 연 3.6%가 높은 성장률이라고? 1960년대 이후 20여 년간 한국경제가 이룩하던 연평균 7~8%보다도 높은 성장률이 근대화 출범 시점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일본인의 손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근대 기술은 어떻게든 들어오게 되어있었고 근대화는 진행되게 되어있었다.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산업화가 수십 년간 연 4% 미만의 성장률에 머물렀다는 것은 일제 통치가 도와준 결과라고 볼 수 없다. 억누르고 가로막은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임난 이후 감소되었던 농업생산은 점진적으로 상승하여 17세기 중반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주로 수리시설에 대한 개발과 보수가 거의 수행되지 않아서 19세기 후반이 되면 17세기 중반에 비하여 농업생산력이 거의 60% 수준으로 하락하게 됩니다. 이 의미는 한반도에서 산업 생산은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런 추세를 바꾸려면 노동이든 자본이든 대규모적인 투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대량의 생산요소 추가 투입이 없는 한 기존에 진행되던 마이너스 성장 Trend를 바꿀 수 없습니다. 따라서, 김기협이 이야기한 베이스가 제로 이므로 성장 초기 단계에서는 고도 성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것 입니다.

1910년 이후 한반도에서 산업생산이 다시 플러스 성장으로 변곡점이 형성된 것은 일제로부터의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한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고도 성장을 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경우 입니다. 얼마전에 중국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15년 연속 7% 이상 성장을 지속한 유일한 국가였습니다. 또한 근대기술은 공짜가 아닙니다. 돈을 주고 사오던지 아니면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돈도 없었고 식민지란 댓가를 치루고 근대기술이 유입이 된 것 입니다.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이 …. <중략> …. 연 3.6% 성장률을 밝혀낸 것은 훌륭한 연구 업적이지만, 이것이 마치 높은 성장률이었던 것처럼 들이대는 데 정략적 의도가 엿보인다는 말이다. 안병직·이영훈 대담집 144쪽에 이영훈의 말로 “결론을 말씀드리면 연간 2.3%의 실질 성장률에 따라 식민지기에 1910~1940년간 한반도의 총소득이 2.7배나 커졌습니다”라 하였다. 그러나 연간 2.3% 성장률로는 30년간 170%의 성장을 이룰 수 없다. 총소득이 170% 성장했다고 하는데, ‘인구’ 조에 따르면 그 기간 중 한반도 인구는 1313만 명에서 2439만 명으로 86% 증가했으므로 실질 성장률은 30년간 총 45%로 연평균 1.3%에 미치지 못한다. 현금 지출이 늘어나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총체적으로 비참한 상황에 틀림없다. 이영훈은 같은 책 142쪽에서 “1910~1940년간 연간 평균 3.6% 정도의 성장이 있었습니다. 동기간 인구 증가율은 연간 1.3%였습니다. 이를 빼면 1인당 실질소득은 연간 2.3%의 수준으로 증가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이영훈의 88~89쪽에도 거의 같은 내용을 적었다. 총생산이나 총소득의 근거 자료는 필자가 확인하지 못했으나 같은 기간의 인구증가율은 에 나타난 연평균 2.3%가 틀림없다고 본다. 이영훈이 인구 증가율과 실질소득 증가율을 뒤바꾼 것으로 보인다.

100을 기준으로 30년간 3.6% 성장을 하면 278%가 나옵니다. 2.7배 성장을 한 것이죠. 년 1인당 평균 소득 성장율이 2.3% 이란 것은 연평균 인구 성장율 1.3%를 경제 성장율 3.6%에서 뺀 것입니다. 조금 거친 계산 방식이기는 한데 평균값들 이기 때문에 1인당 소득 성장율 추세를 추정하는 방법으로는 틀린 것은 아닙니다. 위의 인구 Data는 김기협이 별도로 입수한 자료인 것 같습니다. 이영훈 교수가 제시한 자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위의 인구 숫자에 따라서 인구 증가율을 계산해 보면 CAGR로 2.1%가 나옵니다. 경제사학자인 이영훈 교수가 CAGR 계산에서 실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김기협은 경제성장율과 1인당 소득 성장율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전략> ….. 뉴라이트 측은 수탈론에 반대하면서 일본 식민 통치는 16~17세기에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있었던 것처럼 악랄한 착취 체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다수 수탈론자들도 그런 맹목적 착취 체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 성장의 수준과 방향을 결정하는 데 수탈 의도가 중점적으로 작용한, ‘합리적’ 수탈 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허수열 씨가 근대화론 비판서를 “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제목으로 냈지만, 식민지 경제체제와 관련해 더 널리 쓰이는 말은 “발전 없는 성장(growth without development)”이다. 식민지 경제가 성장한다고는 해도 덩치가 클 뿐이지, 발전의 주체로 자라날 길이 열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본국 경제체제의 부속품으로 식민지의 역할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 부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식민지 근대화론도 같은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합병 이전부터 대량의 한국 쌀을 수입하고 있었다.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쌀 공급은 극히 예민한 과제였다. 일본의 한국 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이 쌀 증산이었다. 해방 무렵까지 논의 70% 이상을 소수 지주가 소유하게 된 기형적 토지 소유 구조도 이 정책 목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농지 소유를 집중하고 농업 노동을 저임금에 묶어놓는 것이 쌀의 대량 반출에 편리했기 때문에 조세를 비롯한 모든 정책을 꾸준히 지주층에 유리하게 펼친 결과였다. 쌀의 생산도 수출도 늘어났다. 그러나 그 이익을 거둔 것은 상당수 일본인을 포함하는 소수 지주층이었고 그들은 일본제 공산품을 수입해서 썼다. 민중의 소비 수준은 별로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내의 공업 생산에 큰 자극을 주지 못했다.

식민지 기간 동안 발생하는 근대화에 참 기대하는 것이 많군요. 김기협씨는….  일제가 구한말 이래 조선 정부도 별 관심이 없었던 소득분배까지 개선해 주어야 합니까? 일본 식민지 지배기구는 천사들이 운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복무하는 기관이죠. 식민지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죠. 그리고 공업 생산에 영향을 주는 것은 투자 입니다. 민중의 소비 수준이 아니고요. 소비 수준이 공업 생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것 입니다. 김기협씨는 경제를 너무 모릅니다. 이 것이 우리나라 역사학자란 사람들의 수준입니다.

1930년대 들어 북한 지역에 중공업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일본이 괴뢰 만주국을 세우고 ‘대동아’ 건설에 나서면서 세운 입체적 개발 전략의 일환이었다.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주요 시설을 중국과의 분쟁 소지가 있고 통치 전망이 아직 불안정한 만주 땅보다 식민지 체제를 확립해 놓은 한국 땅에 배치한 것이다. 여러 개 대형 공장이 세워지고 이에 따라 한국의 공업 인구와 공업 생산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제국의 산업 구조 안에서 부속적 역할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내적 재생산 구조를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한국인의 소득 증대는 하급 인력의 노임에 그쳤고, 연관 산업의 발전 여지도 극히 적었다.

그렇죠. 그런데 김기협씨가 부정확 하게 알고 있는 것을 보충하면 한반도 동북부에 대규모 산업 단지가 개발된 것은 첫째, 압록강과 두만강의 낙차를 이용해서 전력 생산 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했기 때문이고요 둘째, 1940년대에 중화학 공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 지는데 이는 미군의 폭격으로 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이 한반도 동북부였기 때문입니다.  (문장 일부 수정)

식민지 시대 한국에 근대화 현상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고, 일본의 통치가 이 근대화에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일본이 꾸준히 노력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그 시기에 근대화가 진행되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수탈론이라 해서 근대화의 사실을 일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을 수탈 대상으로 만드는 방향의, 건전하지 못한 근대화였다고 하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일본의 한국 지배가 기본적으로 선의에 입각한 것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한국에서 실제로 진행된 근대화가 당시 상황에서 최선의 길이었다는 인상을 주려 한다. 식민 통치자를 ‘악마’에 가깝게 그리는 극단적 수탈론과 반대로 근대화론자들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려고 애쓰는 것이 그 까닭이다. 이런 대목에서는 ‘실증’이 실종되어버린다. …… <후략>

김기협씨는 50년대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90년대 이후 제기된 새로운 식민지 근대화론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케이를 비롯한 일본 우익에 의하여 남용이 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50년대식의 식민지 발전론 입니다.  또한 김기협씨는 낙성대연구소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일본 우익의 식민지 발전론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죠. 오히려 양자를 동일시 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양자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여기에 일본 우익은 식민지 발전론의 통치의 효율성 향상 같은 부분을 천사같은 일본인의 선의라는 감성적인 부분으로 치환시키고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것이죠. 그런데 김기협씨는 전혀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외곡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김기협씨도 식민지 기간중 근대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것이면 충분한 것이죠.  

<전략> ……. 일부 수탈론자들이 보여 온 지나친 편향성에 대한 뉴라이트의 지적에는 나도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도 식민 통치자를 짐승이나 악마보다 가능한 한 합리적 인간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의 ‘선의’에 너무 매달리는 것은 편향성의 보정이 아니라 더 심한 편향성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일본을 합리적으로 대하려 하지 않고 일본 우파에게 “우리가 남이가?” 식 추파를 던지다가 독도 문제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이 그런 사고방식의 문제점이다. 수탈론의 지엽적 문제들을 지적할 때는 그토록 떠받드는 ‘합리성’이 근대화에 대한 일본의 공헌, 그리고 그 공헌을 뒷받침한 일본의 선의를 강조할 때는 어디로 가버리는 것일까. 식민 통치자를 가능한 한 합리적 인간으로 보자는 당부가 일부 수탈론자들보다 뉴라이트 근대화론자들에게 더 절실한 것 같다. <중략>….. 대동아전쟁 당시 “민족의 활동 공간을 확보한다”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선전을 아직도 곧이듣고 있는 자칭 ‘역사학자’들을 21세기 한국에서 보는 것이 놀랍다. <후략>…….

김기협씨는 악의적으로 뉴라이트를 흡집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뉴라이트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전개하면서 일본의 선의 같은 요소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 우파에게 우리가 남이가하고 추파를 던지지도 않습니다. 김기협씨는 박헌영은 존경하고 여운형은 동정하며 이승만은 증오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쓴 “해방일기”를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뉴라이트에 위해를 가하기 위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왜곡하는 것은 일도 아닌 사람이죠.

식민지 근대화론과 수탈론은 양립이 가능한 이론 입니다. 서구의 학자들이 그들 조상의 식민지 수탈과 근대화를 등가에 놓고 분석하기 위한 이론이었으니까요. 즉, 수탈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식민지 지역에 대한 근대화도 동시에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영훈 교수가 주장하는 것은 서구의 식민지 운영 방식과는 달리 일본은 식민지에 대한 자본 투입량이 식민지로 부터의 자원 유출량보다 많다는 것 입니다. 이 것이 식민지 시절 한반도에서 경제 성장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났던 이유라는 분석 입니다. 일본이 좋은 나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즉, 식근론은 역사적 사건을 보다 실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이론인 것이죠. 이 것이 바로 식근론의 가장 중요한 의미 입니다. 친일파이기 때문에 식근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을 통해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오해가 아주 조금이라도 해소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2016년 8월 14일 일요일

대통령 면전서 광복군 노병이 전한 “건국절, 역사 왜곡” 발언 전문


박근혜는 아버지의 유지를 어기면서 까지 왜곡된 역사관을 강요합니다. 박정희는 결코 자신의 친일행위를 미화하지 않으려 했다고 합니다. 어떤 역사학자가 박정희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식으로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다고 ‘그런 일 없었다’고 만류한 일화는 잘 알려진 것이지요.

아래 92살이나 먹은 광복군 노병의 얘기를 들어 봅시다.

이런 분과 비교해 보면, 늙어서 망령된 얘기를 하는 극우 노인들은 젊어서도 그리 바른 생각과 자세를 가지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은 이날 김 선생의 발언 전문  


광복군 출신 김영관입니다. 정무에 바쁘신 데도, 특히 외교안보 문제, 국내 문제로 바쁘신 데도 시간을 내시어 이렇게 저희들을 오찬에 초청해 주신 데 대해서 먼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두 가지 문제만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대통령님께 감사의 말씀, 고맙다는 말씀 드리는 것이고, 대통령님께서 관심 좀 가져주셨으면 하는 사안에 대해서 말씀 좀 드리겠습니다.
먼저 대통령께서는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특히 독립운동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시면서 역사교육을 강화시키실 뿐 아니라 독립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셔서 중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 결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2014년 1월에 중국 하얼빈 역사 내에 개관되었고, 같은 해 5월에 시안에 광복군 제2지대 주둔지 터에 표지석을 건립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상하이에 임시정부청사를 정비했고, 올해에는 충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개보수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개발 계획을 지난 현충일 담화에서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광복군 총사령부 있던 건물도 유지․보전하고,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한 이후 전무한 일이었고 초유의 역사적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큰 업적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 저희는 대통령께서 관심 가져 주셔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광복군 출신으로서 여기에 참석하신 독립유공자 유족들을 대신해서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두 번째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기념일 문제입니다. 외면당하고 관심 밖에 있는 나라 기념일에 대해서 대통령께서 관심을 좀 써 주셨으면 하는 사안입니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조그마한 기념일을 거론하는 것은, 호언장담이나 거대담론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작은 것, 모순된 것부터 하나하나 시정해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그리고 기념일은 그 날에 정치․사회․문화․역사․국민의식을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둬야지 않겠나 이런 생각에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국치일 문제 입니다.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를 잃었는데 우리는 다짐의 행사 없이 이 날을 무관심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랏일은 (안 들림)에서 교훈을 얻어서 절치부심, 와신상담 앞날을 위해서 노력해왔는데 그런 모습은 요근래 보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많은 기념일이 있는 우리의 달력 어디에서도 이것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다만 보훈처나 광복회에서 인쇄하고 있는 일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10월 1일 국군의 날 말씀을 잠깐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면서 민족상잔의 6.25 전쟁에서 기념일을 택한 모순과 불합리를 아직도 시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뿌리 있는 강군을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10월 1일 국군의 날은 (안 들림) 되어야지 않는가,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대안으로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뜻이 있는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을 국군의 날로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거론되고 있는 건국절 논란 문제 입니다.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출범했다고 이날을 건국절로 하자는 일부의 주장입니다. 이는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 뿐 아니라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고, 역사 왜곡이고,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했음은 역사적으로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왜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국란 시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우리의 쓰라리고 아팠던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오늘과 내일에 대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감히 말씀 드렸습니다.

나라 안팎의 어려운 문제로 바쁘신 여러분께 외람되게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은 송구스럽습니다마는 대통령께서 바쁘시더라도 조금이라도 관심을 주셨으면 하는 충정으로 감히 말씀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8월 4일 목요일

이성민,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 서평



한국에서 현대인이 철학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양철학이든 동양철학이든 외국의 사상을 수입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선 독자적인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번역'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장벽을 뛰어넘는다 해도, '번역투'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평론가와 철학 전공자들은 이러한 '번역투'를 뛰어넘기 힘들다. '허지웅식 허세투'라고 인터넷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사실은 (대중에게 생소한) '번역투'에 다름 아니다. 나 역시 과거에 그러한 번역투를 애용했던 사람으로서 허지웅을 비난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성민은 과거 슬라보예 지젝의 다수 저작들(<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까다로운 주체>, 등등)을 번역함으로써 번역가의 이력을 쌓았던 사람이다. 신기한 것은 그가 번역한 글은 원문 그대로의 '직역'을 고집했던만큼 '번역투'의 전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평소에 자기주장을 쓰는 글은 '번역투'와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그는 충실한 번역가인 동시에, 번역투에 의존하지 않고 '한국어'로 자기 사유를 전개하고자 한 유일무이한 저자이다.

그가 집필한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바다출판사)은 바로 공식출판물 상에서 '한국어'로 자기 사유를 전개한 최초의 성공적인 시도이다. (솔직히 그의 전 저작인 <사랑과 연합>은 너무 난해했다.) 물론 한국말로 서구철학이나 동양철학을 자기 나름대로 소개하고 소화하려 한 시도들은 없지 않으나 대부분 애초에 자신이 소개하려 했던 철학보다 더 '천박'해지기 일쑤였다. 왜냐하면 애초에 자신이 소개하고자 하는 사상 이외의 자기 사상이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그것은 독일 관념론 철학의 전통에서 흔히 구분되는 '이념(idea)'과 '개념(concept)'의 차이를 해설하는 구절이다. 그는 일상적인 것들, 가령 아이들의 놀이, 직업선택의 자유, 이름과 성명, 언론의 자유라는 일상적이고 작은 주제에 주목한다. 나아가 그는 그러한 일상적인 것들이 '이념'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 원래 그의 책의 제목은 <작은 것들의 이념>이다. 비록 출판사의 상업적인 (동시에 매우 올바른) 판단 아래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그는 우리가 일상의 언어사용에 있어서 왜 우리가 '관념론자'일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가령 우리가 맛있는 순대국밥을 먹을 때 '이 집은 순대국밥을 참 잘 끓여'라고 말한다. 그것은 순대국밥이 순대국밥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헤겔식으로 말하면 '순대국밥의 개념에 부합'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순대국밥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고 개별적인 순대국밥들이 그 '개념'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이상, 우리는 이미 부지불식간에 칸트-헤겔주의자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순간 식습관이 바뀌어서 순대국밥을 찾지 않을 때, 순대국밥이 순대국밥답다는 '개념'은 의미를 잃는다. 그때 순대국밥은 길가에 채이는 돌맹이 같은 것이고 우리는 길가에 채이는 돌맹이를 돌맹이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우리가 순대국밥을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 라캉식으로 말해서 순대국밥이 더 이상 욕망의 대상-원인이 아니게 될 때, 순대국밥은 순대국밥으로서의 '이념'을 잃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독일관념론에서 '이념'과 '개념'의 차이를 이토록 쉽고 직관적으로 설명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순대국밥을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고 순대국밥이 순대국밥으로서의 이념을 잃는다 해도 순대국밥 식당 주인들 외에는 슬퍼할 사람들이 없다. 하지만 순대국밥만큼이나 일상적인 무언가가 자신의 이념을 잃고, 더 이상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을때 슬퍼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이성민이 <작은 것들의 철학>에서 한탄하는 것은 바로 이 작은 것들, 가령 아이들의 놀이, 아버지의 성을 따라 이름을 짓는 관행, 직업선택의 자유, 친구들 앞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유, 등등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세태이다. 특히 인권담론과 페미니즘이 이 작지만 중요한 문제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고 개탄한다는 점에서 이성민은 분명 보수주의자이기도 하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인권담론과 페미니즘은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고 스스로 자처하지만, 사실은 일상의 문화와 관행에 전혀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지금까지 성과 이름의 구분이 있었는지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는 주제에, 그냥 성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것을 번갈아 쓰면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지하고 멍청하다. 그들이 왜 멍청한지를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책을 읽으면 된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말로 다시 한번 스스로 사유해보기를 권한다.

여하튼 이성민이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에서 아이들의 놀이와 교육에 주목하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가 요새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동기간의 또래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문명'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또래 아이들이 서로 자신의 욕망과 아집을 타협하고 공통의 규칙을 세워가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어머니-아이 간의 수직적인 관계로 이야기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문명의 기초로 생각하는 정신분석학은 틀렸다. 오히려 문명이라는 것은 아버지-어머니와의 관계를 떠나,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다름과 같음을 인정하고 같이 놀이를 하면서 공통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성민이 보기에 사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동서양 공통의 황금률도 바로 이 아이들의 놀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공자와 마호메트 그리고 예수의 '황금률'도 바로 이 '아이들의 놀이'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공자와 마호메트를 그리고 예수를 사상적으로 길러낸 것은 그들의 부모가 아니라 그들과 '또래집단'을 형성한 동기-제자들이다. 인류의 문명은 바로 이 "작은 것들" 혹은 "일상적인 것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오늘날 더 이상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놀지 않는다. 피구왕 통키 놀이도, 땅따먹기 놀이도, 고무줄 놀이도 하지 않는다. 골목길과 놀이터에서 사라진 그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메갈과 일베라는 가상의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심증이다. 이것은 문명이 붕괴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출처] 이성민,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 서평|작성자 박가분

2016년 7월 30일 토요일

좌파 시민단체들의 ‘양심수 석방’ 성명과 그 진실에 대하여

 많은 청년들이 좌파에 호의적인 감정을 품곤 합니다. 아무래도 제법 자극적인 말을 하거든요. 이후 많은 사람들은 좌파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대외적 이미지만을 보기 때문에 한동안 그 성향을 유지하다가 점차 인생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돌아서곤 합니다. 그렇지만 좌파의 실체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면 그 돌아서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로 굉장히 심각하거든요.

 마침 이번에 그들의 실체를 알릴 수 있는 사례가 생겨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시민단체가 아니고, ‘민주노총’, ‘참여연대’, ‘전농’, ‘민가협’ 등 주류 중의 주류 단체들입니다.

 일단 이번에 정부가 오래간만에 광복절 특별사면을 하면서, 경제인 등을 사면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좌파 시민단체들이 “비리 재벌 사면 말고 양심수 석방하라!”라고 소리치며 나섰습니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려는 건 이 사건입니다. 관련 기사를 링크합니다.

시민단체들 “비리 재벌 사면 말고 양심수 석방하라” (클릭)

 이 기사만 보면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지요. 정부가 불공평하게 재벌 같은 기득권이나 사면하고, 양심적으로 노동운동 하던 사람들은 차별하는 것처럼 보이기 딱 좋은 기사입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발표하는 공식 보도자료 또한 링크해 드리겠습니다.

비리 재벌 사면 반대! 양심수 석방 촉구! 사회단체 기자회견 (클릭)

 그런데 이 기사 및 성명에 나오는 ‘2012년 화물연대 파업’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보기엔, 이건 참으로 어이없고 비겁한 언론 플레이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착한 척, 정의로운 척 하는 그들의 실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단 이 기사부터 보세요. 당시 파업 전날 보도되었던 KBS의 기사입니다.

화물차 20여 대 방화…화물연대 내일 총파업 (클릭)

 이 사건에 대해 당시 화물연대 울산지부장은 다음 기사처럼 오리발을 내밀었습니다만...

[화물연대파업] 김정한 울산지부장 "차량 연쇄방화는 우리와 무관"

 수사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비조합원들의 트럭을 골라 방화한 것이 드러났고 결국 저 오리발을 내밀었던 지부장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구속되고 몇 명은 실형을 살게 됩니다. 해당 기사 링크해드리지요.

경찰 "차량 연쇄방화는 화물연대 조직적 범행"

 어이없지요? 이번에 좌파 시민단체에서 석방하라는 양희성, 신해건, 김정한 씨가 바로 위의 기사에 나옵니다. 트럭 방화 범죄로 구속 수감 중인 양씨와 신씨 및 당시의 울산지부장 말입니다. 좌파 시민단체식 표현으로는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싸우다 옥고를 치르고 있는 양심수’ 되시지요.

 이제 제가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조금은 충격 받으신 분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울산 노동계의 전적은 정말 화려합니다. 방화, 절도, 도박, 횡령, 집단 폭행, 성폭력 등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과 지난 달에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이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었고, 이후 아니나 다를까 2차 가해까지 빚어지면서 해당 사건에 대해 본부 홈페이지에 사과문이 올라오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래봐야 조만간 또 비슷한 거 터질 테지만요. 워낙 빈번하거든요.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칭 진보라 하는 좌파 시민단체들은 선량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음흉한 행위나 범죄행위를 곧잘 합니다. 그러고 또 언론 플레이로 좋은 이미지를 만들곤 하지요. 물론 그들이 매사에 나쁜 짓만 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들은 자신을 선으로 & 타 세력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런 식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는 데 능하기에 사회적 문제가 됩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비조합원 트럭에 조직적으로 방화를 해서 징역 사는 중인 테러범죄자들이 과연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싸우다 옥고를 치르고 있는 양심수’일까요?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고, 조금이라도 제정신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한 시민단체가 아니고 특정 정치세력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지요.

 사실 진짜로 나쁜 사람들은 언뜻 봤을 땐 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나쁜 짓도 그냥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전후사정을 알고 나서 좌파 시민단체들의 성명을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천지차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본 블로그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착한 척과 호언장담에 속지 마세요. 정치사회 문제뿐만이 아니고, 어떤 경우라도 당신을 속이려는 사람은 좋은 모습으로 - 심지어 때로는 구세주처럼 -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그러한 위선에 속아 넘어가고, 그 후에는 자신의 인식을 합리화하는 식으로 확증편향을 보이게 됩니다. 그런 걸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출처: http://oceanrose.tistory.com/507

2016년 7월 28일 목요일

사드 반대, 님비 현상?

성주의 님비 마인드

사드 배치가 성주로 결정된 이후 새삼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님비란 발전소,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 하수처리장, 교도소, 철로 등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시설이지만 '내 뒷마당에는 안 돼'라고 얘기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사회는 이것을 '지역 이기주의'라는 말과 함께 쓰기도 한다. 사드 배치를 결정한 사람들, 그리고 사드를 찬성하는 정치인들은 성주 사람들이 님비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단순하게 성주의 반대를 설명할 수 있을까?

성주 사람들의 반대를 님비 현상으로 규정하려면 먼저 그들이 사드 자체에는 찬성하는지를, 나아가 그들이 성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 설치하라고 주장하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성주가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사드 자체에는 찬성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기존의 여론 조사에서 찬성이 반대보다 조금 높았던 것을 보면 이 짐작은 거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사드에 대한 부분적인 논쟁만 있었을 뿐 국민 전체에게 충분하고 명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찬성은 불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성주 사람들이 다른 곳에 배치하라고 주장하면 모를까(물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드에 대한 합리적 위험성에 근거해 성주 배치에 반대하는 현재의 상황으로 보면 님비라고 얘기하기 힘들다. 더욱이 땅값 하락과 농업 피해 등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고, 어떤 경제적 보상으로도 상쇄되지 않는 건강 위협을 염려해 반대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사드 배치 문제는 님비 현상, 또는 지역 이기주의라는 말을 적용할 수 없는 사례다. 대통령과 국방부는 사드가 없으면 곧 남한이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 쑥대밭이 될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또한 사드의 효율성에 대한 객관적 증거도 부족하니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볼 수가 없다. 무엇보다 사드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기존의 여론조사를 봐도 반대가 거의 반이다. 쓰레기 소각장, 하수처리장, 발전소 등은 필요성을 모두 인정하지만 사드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니 사드 배치 반대에 님비나 지역 이기주주의를 갖다 대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일이다. '님비' 거론은 불순한 물타기와 성주 사람들의 반대를 매도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공공갈등과 님비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과 성주의 반대로 대형 공공갈등이 시작됐다. 정부는 분명 갈등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안보'라는 명분으로, 그리고 국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해 갈등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사드 배치 갈등이 일단락되지는 않을 것이다. 성주가 아무리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지역이라도 생존의 문제가 걸린 문제를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주가 기존의 공공갈등 경험 지역의 전례를 따른다면 앞으로의 갈등 전개는 대충 예상할 수 있다. 성주 사람들은 한 동안 강하게 저항할 것이고 정부와 정치인들의 회유, 설득, 협상, 보상 언급 등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일부 사람들은 정부의 힘에 밀려 포기할 것이고(절대 찬성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끝까지 저항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계속 밀어붙인다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와중에 지역사회는 반으로 깨질 것이고 성주는 더 이상 참외 농사가 잘 되고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상호 비방과 증오가 난무하는, 그리고 이웃과 친척도 원수가 되는 반지옥이 될 것이다. 제발 성주가 이런 예상을 빗나가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성주의 선택에는 정부, 국회, 여론, 언론 등이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선택도 성주의 선택과 무관치 않게 될 것이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은 정책과 사업에 대한 사람들의 반대를 그냥 쉽게 님비나 지역 이기주의로 정의하면 다루기가 훨씬 쉬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정책이나 사업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고, 갈등을 유발했다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즉 문제는 '필요성'에 근거한 정책이나 사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기적인 생각과 태도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갈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해결도 되지 않는다. 설사 그것이 님비 마인드에서 비롯됐다 해도 당사자는 무엇이든 거부할 자유와 권리가 있고 그래서 갈등이 생겼기 때문에 그런 말로 갈등의 존재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니 손 쉬운 딱지 붙이기가 아니라 투명한 정보 공개, 당사자와의 지속적인 논의, 당사자 참여를 통한 결정 등을 통해 공공갈등에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만 성주의 사드 반대로 시작된 이번 공공갈등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그러니 갈 길도 험하다. 정부가 사드의 필요성 여부부터 재논의한다는 결정을 하지 않는한 성주와 정부의 갈등은 피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설사 성주 배치 결정이 취소되더라도 사드 배치 결정이 남아있는 정부는 다른 곳에서 계속 갈등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사드가 가진 치명적 영향 때문에 어떤 곳에서건 갈등은 고강도의 저항과 대결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출처: http://peaceconflict.or.kr/191

2016년 7월 26일 화요일

메갈족 사태의 배경과 안티페미니즘 선언

누군가는 짚고 넘어갈 이야기라 별로 말하고 싶은 화제는 아니었지만 정리합니다.

 근래의 메갈족 (메갈리아 및 워마드 등 메갈리아 파생 카페들과 실질적으로 메갈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여시, 디씨 메갤, 사회갤, 남연갤, 해연갤 등 포함) 사건사고 등을 보면 여성계 및 페미니스트들은 메갈족과 거의 선을 긋지 않고, 오히려 메갈족에 동조하고 찬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요.

 그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자면...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라는 게 이미 좀 가치나 힘을 잃고, 여성학은 학문으로의 가치 또한 잃고 있는 상황이긴 합니다. 한국도 물론 마찬가지고요.

 이게 왜 이렇게 되었냐하면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실질적으로 근 30년 사이에 여성 권리가 많이 올라간 데 있습니다. 적어도 이제 제도적, 법률적, 공적인 면에서는 여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고 현실적으로는 여성이 우대를 받는 면이 많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지난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여성에 대한 제도적인 차별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고요. 오히려 많은 우대만 남았습니다.

 물론 제도적인 차별이 사라졌다 해서 미소지니나 여성이 사회에서 불리한 면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근래에선 판례에서조차 여성에게 유리한 판결이 다수 나오게 되었으며, 결국 이런 현실은 페미니즘의 존재 의의를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근래엔 평균적으로 여성 범죄자의 형량이 더 낮게 나옵니다.

 더 나아가 페미니즘은 오랜 시간 가부장제를 타파할 대상으로 삼아왔는데, 근래 들어 가부장제는 급속도로 붕괴하여 만혼이나 독신이 일상화되었고, 서구 몇 국가에선 아예 결혼이 이례적일 정도로 그냥 동거문화가 발달하는 등 페미니즘이 타켓으로 삼을 대상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사실 결혼제도가 반쯤 붕괴한 데는 페미니스트들 책임이 크긴 한데 이건 일단 넘어가고요.

 실질적으로 이제 페미니즘이 다뤄서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만한 분야는 여성차별과 여성비하, 여성에 대한 범죄 정도만 남은 상황인데요.

 여기서 문제가 된 게, 일단 실제로 다수의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에 대한 비하나 차별발언을 일상적으로 해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기존 페미니즘의 수명은 끝났습니다. 더 나가려면 모든 비하나 차별을 아예 안 하는 쪽으로 가던지 해야 할 상황이 된 거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과 대조적으로 현실 페미니즘은 이미 많은 부분 기득권화 되었습니다. 일단 여성학과가 대학에 있고, 여성학 교수들도 있지요. 이건 TO가 계속 나오는 이상 일종의 기득권입니다. 정부나 공적 기관의 각종 여성계 인물, 단체도 기득권이고요. 이런 건 과거의 배경 때문에 지금도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여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싶어 할 리가 없잖아요?

 더구나 근 수십 년 간 전반적인 학문이 과학화되고 수준이 많이 올라가는 반면, 합리성과 설득력을 잃고 도태되어 가는 분야도 있는데요. 여성학은 명백하게 후자 쪽입니다. 여성학계는 과학적 합리성이 아예 없는 수준을 넘어서, 자료를 날조하거나 답정너식으로 자료를 취사선택하거나 하는 행위를 일상적으로 저질러왔습니다. 이게 고인 물에 기득권이 되어버려서 이런 면이 많은데요. 여성학에 발 담그려다가 떠나거나 담갔다 떠난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첨언하자면 한국에는 좀 드물지만 서구엔 여성학 전공에 남학생들도 좀 있는 편인데, 남학생에 대한 명백한 차별과 공격이 꽤 있다는 게 내부고발로 줄줄이 나옵니다. 질려서 여성학 교수하던 사람이 때려 치우고 나온 케이스까지 있을 정도죠.

 어쨌든 상황은 이런데, 미소지니가 없는 건 또 아니고 덤으로 성범죄 자체는 흔하다보니...

 점차 소위 페미니즘은 극단화되는 경향이 생겨나고, 페미나치 소리 듣는 사람들이 사회문제 일으키는 게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타오던 상황이긴 합니다. 이 사람들은 목적 자체가 폭력적 욕구의 충족과 한풀이, 피해망상에 의한 각종 행위들의 합리화, 집단적 소속감을 얻는 것 등에 있기 때문에 사실 별다른 그럴싸한 목적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막장행위 자체가 목적이라, 쾌락형 범죄자들과 정신구조가 거의 같습니다. 또 문제가 이 사람들은 적당히 피해의식 있는 여자들을 자극해 피해망상 생기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럼 소위 온건 페미니스트들은 어찌되었느냐 하면... 이젠 온건한 페미니스트들끼리 모여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뭐 할 게 있어야죠. 법 바꿀 것도 별로 없고... 여성 더 지원해달라고 하기엔 이미 제도적으로 여성 우대인 게 너무 많을 뿐더러, 그런 쪽에선 보수주의 여성단체들이 더 우세하고, 결국 다른 단체랑 연대해 차별반대나 평등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게 제일 아웃풋이 나은 상황이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페미니즘 자체는 좀 유명무실해지긴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계속 급진 페미니스트... 라고 하기도 뭐한 미친X들이 하도 별 짓을 다하니 요즘 들어서 서구에선 아예 적잖은 여자들이 페미니즘 간판을 포기했습니다. 안티 페미니즘, 안티 페미니스트 간판을 걸고 ‘우린 페미니스트 아니다. 평등주의자다’ 라고 나서게 된 게 근래 트랜드쯤 됩니다. 결국 기존 페미니즘은 목적 이룰 거 다 이뤄서 수명이 다했다는 식으로 정리도 가능합니다.

 실제 성차별 이슈에서도 근래 주로 다뤄지는 건 소득격차라거나 유리천장 같은 거고, 이 블로그에서도 주로 그런 이야기를 해오곤 했지요. 그거 말곤 미소지니밖에 없으니까요.

 사실 합리적으로 보면 이젠 페미니즘 접고 보편적 평등을 이야기하는 게 맞긴 합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옛날에 페미니즘이 주장하던 테마는 시대가 변해서 다 끝났어요. 차별이나 비하 같은 건 싸그리 못 하게 막는 게 맞고요. 소득격차나 유리천장 문제는 산업 구조나 지원, 창업 문제로 다뤄야 해결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성범죄 관련 문제는 범죄학 및 경찰행정 문제고요.

 어쨌든 이런 배경에서 남은 게 메갈족입니다.

 나는 전통적이고 올바른 페미니즘은 차별과 혐오, 폭력에 반대해왔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메갈족은 차별과 혐오, 폭력 모두를 행하고 옹호하며 즐깁니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메갈족은 그릅니다. 이건 현대 자유 국가의 보편적인 판단 기준에 의한 것이지요.

 나는 메갈족과 같은 반사회적 단체를 용인할 수 없으며,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는 것 또한 용납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메갈족은 보편적 인권과 자유주의적 자연권을 무시하고 공격하기 때문에, 관용과 포용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페미니즘 간판을 들고 페미니스트로 의태하며, 더 나아가 자칭 페미니스트와 여성단체의 동조를 받는 상황 또한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 역시 글로벌 유행에 맞춰 안티페미니즘&정치적 평등주의자 간판 걸어봅니다. 사실 페미니즘 분화는 오래 전에 이루어져야 했고, 소위 페미나치와 우머니스트들이 동일 간판을 거는 건 논리적으론 많이 이상했지요. 이제라도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생각이나 사상을 바꾼 게 아닙니다. 간판만 바꾸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메갈족 같은 부류를 서구에서는 페미나치라 부르고, 한국에서도 이 단어는 이제 널리 퍼졌는데 도저히 나는 메갈족과 나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 단어는 나치의 실제 행적보다는 나치의 나쁜 이미지를 차용한 단어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단어를 제안하기엔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르는 게 없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파시즘 같은 표현을 아무 데나 가져다 붙이는 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표현이 없나 고민 중에 있습니다. 꼴페미 같은 전통적인 표현은 메갈족 지칭엔 너무 약한 것 같기도 하고요. 페미나치만큼 입에 짝짝 달라붙은 단어 만들기도 쉬운 건 아니라서요.

출처: http://oceanrose.tistory.com/574

2016년 7월 18일 월요일

대학문제와 학생운동

들어가며

  어느 사회문제에 대해서든 마찬가지로 대학문제에 관해서도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중립적인’ 접근이란 있을 수 없다. 사회문제를 사고할 때 그 문제인식의 지평 자체가 대중운동의 경험과 역사적 기억에 의지하여서만 환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학문제에 접근할 때에도 ‘학생운동’이라는 맥락을 제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현행의 국가장학금제도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일정한 양보와 타협을 얻어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역시 2011년에서 2012년 사이의 대중적인 반값등록금 운동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학생운동의 맥락을 제거하고 대학문제에 접근한다면 그것은 대개 지엽적이고 말단적인 행정적, 제도적인 개선으로만 그치고 말 것이다. 그 안에서는 대학의 재원은 어디에서 나오며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학생운동 담론 내에서 대학문제가 어떻게 제기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긴 준비 없이 행해진 탓에 다소간에 주관적인 비평이 된다 해도 양해해 주길 바란다.


학생운동과 학원민주화투쟁의 기간


  신군부독재 시기 이후 처음으로 대중화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 학생운동은 80~90년대의 격렬한 전사회적 투쟁을 펼쳤는데, 이 기간 동안 (등록금 문제, 재단비리, 정권유착 문제 등) 학내사안에 관한 투쟁은 ‘학원민주화투쟁’이라 불렸다. 군사독재의 질곡을 청산하기 위한 국민적인 차원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대학 자체 내에도 이와 같은 종류의 ‘민주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운동의 고조기에는 학생사회를 억압하는 장치들, 예를 들어 학내에서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사복경찰 등 캠퍼스에 암약하는 공권력을 축출하며 보다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학생회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이와 같은 학생회 건설 시도는 노동현장에서 이른바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유비’로 취해지기도 했다. 이렇듯 80년대 이후의 학생운동을 통해서 비로소 대학사회 내부의 억압적인 권력구조를 해체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수립하려는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이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대학사회는 한국사회 내의 모순과 이를 지양하는 운동 양자를 압축적으로 반영하는 일종의 ‘소우주’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90년대 이후 ‘분신정국’과 ‘연대사태’ 등을 통해 학생운동 자체의 질곡을 겪으면서 학생운동의 대중적, 정치적 영향력이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이행한 87년체제 이후 학생운동을 ‘폐륜아’, ‘극단주의자’, ‘몽상가’ 등등으로 낙인찍는 전방위적인 공세가 시작되자 이에 따라 학원민주화 담론 역시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현상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학생운동이 (학생)대중 사이에 영향력이 있었던 당시에는 학생사회가 대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민주적 통제력을 가졌다. 가령 재단비리에 연루된 학교인사를 퇴출시키고, 부당해임된 교수를 복직시키고, 학생에 대한 부당징계를 철회하고, 등록금 인상을 저지하는 등의 사례를 열거할 수 있다. 그런데 학생운동이 대중적인 영향력과 사회적인 지지를 상실할 때 이에 비례하여 대학에 대한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통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문제가 불거졌다. 프랑스와 같은 유럽대학에서는 68혁명 이후 ‘대학평의원회’와 같은 견제기구가 ‘제도화’된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대학내부의 학생운동이 대학외부의 사회운동 및 정당과의 제도적인 연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80~90년대의 학생운동 및 학원민주화운동은 운동의 성과를 제도화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학생운동은 대학마다 ‘학생회’와 각종 ‘특별자치기구’라는 유산을 남겼지만 그와 같은 학생회는 대개 ‘민주집중제’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학생대중을 동원하는 능력을 상실할 때 그 정치적 힘을 급속히 상실할 수밖에 없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최근 (두산자본에 의해 인수된) 중앙대학교의 비이성적인 학생자치 탄압의 사례에서 엿보이듯이, 학생운동이 무너진 대학들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정치적 견제도 받지 않게 된 대학당국이 사실상 사문화되었던 ‘학칙’을 동원하여 비판적인 학생의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학생운동이 통일운동, 노동운동, 민주화 운동 등의 사회적 대의를 지향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수단으로서 정권을 상대로 한 투쟁에 집중했기 때문에 대학 내의 (교수와 학생의 관계 등) 비민주적인 사회적 관계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주변화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대학문제가 사회적 모순을 반영하는 이상, 대학문제가 그러한 사회적 모순과 치열하게 대결하였던 학생운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학생이라는 정체성

  뚜렷한 이념적 지향을 지닌 대중적 학생운동이 퇴조한 2000년대 이후, 대학생들은 사회적 대의 이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비로소 자문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학생운동의 쇠퇴 이후 대학 내의 청년학생 담론은 ‘학생자치 담론’이나 ‘소수자/인권 담론’ 그리고 ‘생존권 담론(88만원세대론)’ 등으로 변용되었다. 이와 같은 담론들에는 일정한 의의가 있지만 대학 자체의 불평등하고 비민주적인 권력관계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상대적으로 주변화 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학생운동의 퇴조 이후) 자치권이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현실, 대학 내에서 (소수자) 인권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미비한 현실, 마지막으로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학생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현실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이유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2000년대 이후에도 살아남은 급진적 학생운동 세력은 이와 같은 청년학생 문제를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와 연결 지으며 노동자운동과의 연대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부류에는 첫 번째로는 사회적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노동자연대의 중요성을 그 자체로 역설하는 집단, 두 번째로는 예비노동자로서의 대학생의 정체성을 강조하여 노동자연대의 당위를 역설하는 집단, 마지막으로는 아르바이트 등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는 ‘청년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집단이 있다. 이와 같이 차별과 억압을 재생산하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조에 주목하는 청년학생운동이 행한 커다란 역할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학사회 자체 내에서 차별과 억압이 재생산되는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 환언하자면 학생운동 세력은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적 구조(불평등한 권력관계, 경제적 착취, 등등)에 대해 올바르게 문제제기했지만, 그와 같은 모순적 구조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이라는 공간 내에서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에 대한, 그 구체적인 사태연관을 파악하는 데에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한편 대학문제에 관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라는 단체가 주도했던 반값등록금 운동이었다. ‘반값등록금’은 대학생들에게 가장 민감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려서, 많은 대중을 동원하고 정국을 주도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반값등록금 운동은 선거정국에서 대학의 소유구조 및 운영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우회한 채, 정권에 대한 투쟁일변도로 흐르면서 정권배후에 있는 구체적인 이해관계자와 책임당사자(대학자본 세력)를 호명하는데 실패하고, 정치색에 대한 소모적인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후일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지지세력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한편 반값등록금에 대해 ‘대학생 중심’의 운동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와 같은 학생운동의 지형은 (학벌주의와 대학생중심주의라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학생이라는 현실적인 정체성을 우회한 채 자본과 권력에 대한 대항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대학 자체의 부와 권력에 대한 대항운동은 힘을 잃게 되었다. 이렇듯 대학 내의 대항운동이 퇴조하는 현상에 조응하여 대학 내의 담론은 주로 좁은 의미에서의 ‘자치’ 담론으로 후퇴하게 되며 대학자본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력의 상실은 더욱 더 고착화되었다. 또한 학생운동이 대학자본, 대학권력 자체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지 오래됨으로써 변혁운동의 ‘이론적 빈곤’이 재생산되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점차 비판적인 목소리가 발붙일 곳이 사라짐으로써 학생운동의 이론적 자원은 대개 대학이라는 공간을 우회한 외부의 자치적인 연구소와 학술단체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물론 자치적이고 대안적인 학문의 공간을 모색하는 시도는 언제나 소중하다. 그러나 비싼 돈을 내놓고 대학이라는 물적토대를 만들어놓았는데 왜 그 안에서 ‘비판적’인 학문과 연구를 할 권리를 포기하고 그 바깥에서 자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와 같은 어려운 현실은 향후의 학생운동이 ‘대학인’이라는 정체성에 기반하여 광범위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방향의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를 상대로, 왜 싸우는가?

  결국 대학문제에 접근할 때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크게 봐서 (1) 대학을 실제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누구이냐는 질문인 동시에, 또한 (2) 대학을 앞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질문은 ‘대학운영의 재원은 어디서 나오는가’라는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등록금 문제 등의 교육권 문제, 연구환경문제, 강사문제, 학내노동자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그와 같은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국가지원, 사학재산환수, 등등)도 대학문제에 접근할 때 반드시 물어야 할 지점이다. 재원마련의 방법에 따라(고등)교육공공성을 추구하는 방향성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대학의 소유권 문제이다. 대다수 사립대학은 재단이 소유하고 있고, 국공립대학도 법인화되어 가면서 대학이라는 공간은 점차 사적소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대교연 통계에 따르면 대학의 운영비용에 대해 재단이 기여하는 법인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5%이다. 그에 비해서 운영비용에서 등록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인 등록금 의존율은 2012년 기준으로 66%이다. 재단이월적립금 규모는 상위 45개 대학 합계 6조원가량의 천문학적 규모이다. 그 돈이 도대체 누구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재단이 대학재정에 책임지는 바는 적으면서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치부행위를 해왔다는 ‘사실들’이 보여주듯, 더 이상 대학은 재단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렇듯 대학의 소유권에 정면으로 문제제기 하지 않으면 비싼 등록금 등 각종 대학문제들은 해결이 요원하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대학자본의 소유권에 타격을 가하지 않으면, 대학자본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점차 신자유주의화/기업화되어가고 있는 대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 자본권력에게도 학생들이 타격을 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전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는) 삼성자본에 타격을 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균관대 사학자본과 그것이 뒤얽혀 있는 각종 대학비리(대학병원 운영문제 등등)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대학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전국적 학생조직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대중 사이에서 정치적 대표성을 상실한 이후, 대학생의 공통된 의제와 문제를 공유할 전국적인 연대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상황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한 학교의 학내구조조정 사안은 한 학교 안에서의 운동만으로는 풀어내기 어렵다. 대학정원감축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 이슈 자체가 정부차원의 정책실패(무분별한 사립대학 인허가)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구조조정 자체가 정권과 대교협 차원에서 정치적인 의지를 가지고 추진되는 일이기 때문에 학내에서 대학으로부터 어떤 (서면상의, 구두상의) 양보와 타협을 얻어나든 똑같은 일이 어디서든 몇 번이고 반복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대학의 3대 주체인 학생, 직원, 교원 사이의 연대가 이뤄지지 않는 한 대학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예를 들어 청소노동자, 시간강사, 학생과 같은 대학의 위계질서의 맨 아래에서 착취당하는 주체들의 공통의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기반하여 맞서야 할 ‘공통의 적’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다면 대학문제에 대한 접근 자체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대학문제를 야기한 책임당사자가 가시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어려운 조건을 형성한다. 세 번째 문제는 특히 중요한데, 누구를 책임당사자로 지목하고 궁극적인 책임을 요구할지가 모호하다면, 아무리 올바른 문제제기라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은 결국 ‘대중(학생)운동’의 맥락에서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지금까지의 상황은 단지 한 ‘정권’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냈다. 예컨대 ‘실질적인 반값등록금’을 달성했다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장학금 정책의 기만성도 문제이지만, 설사 본연의 반값등록금 정책을 입안하더라도 대학자본은 그것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얼마든지 찾아낼 것이다(교육의 의도적인 질 저하, 임금동결, 등등). 요컨대 대학을 학생과 시민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반값등록금의 실현도 불가능하다.


대학원생의 역할을 물으며

  학부생과 별개로 전국에는 30만 명의 대학원생들도 존재한다는 현실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상황이 더욱 열악하여 반값등록금운동 이후에도 높은 등록금과 열악한 장학금 및 대출제도에 고통 받고 있다. 학부차원의 교육공공성은 정권마다 일보전진 일보후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2000년대 이후 국가의 대학원생에 대한 정책인식은 한마디로 ‘취직도 못하는 놈(?)들이 춥고 배고픈 것은 당연하다’는 기조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원생을 ‘반백수’ 취급하는 이와 같은 인식은 현실에 비춰볼 때 이율배반이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의 상당수는 장학금을 벌기 위해 조교 및 연구원 등으로 일을 하고 있고, 이들이 제공하는 연구노동은 교수 개개인의 연구실적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학재정지원사업과 기업으로부터 수주 받는 연구실적의 상당부분에 기여하고 있다. 이른바 ‘연구중심대학’에 대해 행하는 정부와 기업의 재정지원사업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원생이 행하는 연구노동 자체도 점점 자본주의적 특성을 띠게 되었다.

  이렇듯 대학원생은 반백수가 아니라 (장학금 등을 불모로 잡힌) 연구노동자이다. 대학원생이 멈추면 대학의 연구활동도 멈춘다.

  한편으로 대학 자체가 대학자본으로 기능하며 이윤의 논리를 좇아가는 데 비해 대학원생 및 시간강사들은 대학 내의 권력관계 안에서 그야말로 봉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신적 구속관계에 종속되어 있다. 무엇보다 대학이라는 공간 내에서 연구/교육활동을 자신의 진로로 삼은 대학원생이야말로 앞서 상술한 대학문제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학생운동의 성과가 대학원이라는 공간에 계승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조교노조가 결성된 미국 동북부의 대학들과 달리 한국의 대학원생들은 전혀 조직되어 있지 않고, 소수의 대학원총학생회가 결성되어 있다 해도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빌미로 조직력과 협상력이 떨어지는 대학원생에게 (국가장학금 제도 등에 발이 묶인) 등록금 인상분을 전가하는 행태가 반복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부 학생운동 정파에서는 활동가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 자체가 ‘운동의 휴지기’로 간주되는 관행은 여전하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대학원이라는 공간도 대학 내에서 재생산되는 현실의 정치적, 역사적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물론 대학원생이 학부생의 수준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대학원생이 대학문제를 올바른 방식으로 제기하고, 그 문제를 ‘전국적인 문제’로 담론화하는 활동에 일정한 방식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즉 대학원생이 대학문제에 관해 운동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지 않는 한 대학문제가 지속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대학원생이 조직되어 있지 않은 문제를 지적했지만 기실 대학원생들은 현재의 학사제도 내에서 과사무실, 랩실, 연구실의 일상공간을 중심으로 이미 조교, 연구원 등의 신분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 같은 공간 안에서 대학원생의 의제를 찾아내고 대학문제를 담론화하는 돌파구를 찾아내야만 대학문제를 한 캠퍼스 내의, 학부생 사이에서의, 협소한 시야를 넘어서 보다 보편적인 사회문제의 일부로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대학문제와 학생운동|작성자 박가분
http://blog.naver.com/paxwonik/40210270412

2016년 7월 16일 토요일

시민과 선비

한국사회에서 과연 '시민사회'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가사회와 구별되는 광의의 (시민)사회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419, 518, 6월항쟁을 거치며 어찌되었든 국가사회, 정치사회와 변별되는 어떤 기저의 사회적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좋든 싫든 강력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진보적 식자들이 상정하는, 유럽식 시민윤리, 씨빌리테라는 것이 결핍되어 있다는 불평은 여기저기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런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일단 억울한 일, 피해를 당하면 목소리를 내고 항의하는 것에는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대한항공 박창진씨처럼 모두가 거기에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규칙이 있다. 피해자는 어디까지 피해자로 남아 있어야 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권력'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일정한 사법적 권환을 진상조사위에 부여하도록 요구했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너무 정치적이다'는 둥의 이중잣대에서 엿보이듯이.

또 한가지, 피해자에 대한 동정여론은 강해도, 각자는 그 자신이 가해자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은 절대로 상정하지 않는다. 등심위에서 학생들이 막되게 굴면 우리가 보이콧하고 피켓 들어야 한다, 는 교직원의 발언에서 인상적이었듯이 권력을 가진 사람도 종종 자신을 피해자의 입장에 놓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나도 학생 때 운동해봐서 아는데"는 단골메뉴이다. 책임 질 사람은 없고 문제상황이 되면 스스로를 피해자나 불쌍한 위치에 놓고 말하는 한국사회를 가만히 보면 피해자만 존재하고, 아무도 스스로 가해를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위치에 스스로를 두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역으로 말해서 그 누구도 권리의 주체,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전전 일본사회를 두고 말한 "무책임의 체계"에 가깝다. 물론 한국에서는 일본사회와 달리 공적 도덕성, 명분우위의 지사적 태도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정치인'은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다.

결국 한국 시민사회의 미성숙이란 절대적 정의, 대의명분에 대한 유교적 관념은 강하지만, 권력관계에 대한 감수성의 결여로 특징지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가해자가 된다는 것과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추문(scandal)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나는 그에 관한 적절한 여성주의적 문제제기를 '일다'에서 방금 보게 되었다. 예컨대 성폭력 예방교육은 피해방지 중심이 아니라 가해방지 중심으로 가야 하는데, 그 경우 공동체에 긴장을 (예컨대 남자아이를 둔 부모)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여성주의 이데올로기 전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타자에 대한 괴롭힘은 성적 교섭의 본질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괴롭힘의 가능성들을 끝없이 폭로만하는 것은 성인에게나 아이에게나 바람직하지 않다. 여자아이들 치마를 들추고 아이스께끼를 하지 말라고 꾸중을 할 수 있어도, 그것을 일종의 성폭력이라고 불러야 할까? 애매하다. 아이들 세계의 순진무구한 잔인성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는 근대적 인권개념과 별개의 척도가 필요하다. 나는 동기간의 '성폭력' 고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성인이 된 이후 고정된 상하간의 권력관계 아래서 그런 일이 일어날 때의 그 함의를 생각할 때 여성주의적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컨대 대학원사회의 교수 학생간 성폭력은 실수나 아이들끼리의 장난이나 싸움이 아니라, 한쪽의 일방적 폭력이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반복'되는 구조에서 폭발하는 문제이다.

한편 여성주의와 무관한 나름의 입장을 정위해보자.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것은 남녀노소를 떠나서 내가 그만한 권력관계의 우위에 있다는 점을 상정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그만한 이니셔티브가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원리상 은밀하게 가해자가 될 가능성과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때 가해자로 있을 수 있는 위치임을 상정하는 것은 권력의 주체 혹은 담지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자신이 그러한 권력을 의욕하는 당사자라는 자각이 결여되어 있으면 이 모든 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피해자 담론만이 횡행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피해자로도, 가해자로도 양쪽에 놓고 볼 수 있는 시점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여성주의가 받아들여질 리도 만무하다.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남자가 남자다운 사회에서만, 마쵸이즘이 일종의 미덕으로 통용될 수 있는 사회에서만, 예컨대 여성을 유혹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문제제기를 (실제로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거리낌 없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수용하는 사회에서만 여성주의는 근거를 가질 수 있다. 성적 차원에서 '유혹' 혹은 '추파던짐'이 하는 역할을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권력의지로 치환해서 생각해 보자.

남녀구도를 넘어서 말한다면, 결국 시민성, 씨빌리테 시민윤리는 권력이라는 폭력적 수단 그 자체를 흠모하는 미학적 전통(딱히 마키아벨리즘으로만 돌릴 수 없는, 발터벤야민과 데리다의 '게발트' 논의)이 희박하고, 행위의 정당화의 원천으로서 유교적 대의명분관이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양자에 각인된 지금 이 실정에서, 오히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들어서기 힘든 지점이 있다. 즉 공론에서 발언한다 해도 봉건적인 의미에서의 '선비'와 '우국지사'만 있고, 실제 생활세계 내에서 권력의지의 주체와 대상으로 스스로를 표명하는 '시민'은 없는 셈이다.

따라서 나는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시민운동 혹은 교육과, 계몽 등이 아니라(사실 그러한 자기교육, 자기계몽이라는 민간의 전통은 서양보다는 한국의 유교적 전통이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그 필요성을 인식하는 당사자들이 직접 행정권력을 잡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그 스스로가 시민사회로서 조직되기 위해서라도 강한 권력을 필요로 한다. 재벌, 거대언론, 사학, 공직부패 등의 혁파도 필요하지만 기존의 혈연, 지연, 종교, 학교 중심의 사회적 연관을 단절시키는 데에는 일정한 폭력과 강한 국가의 힘이 필요하다. 당장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은 과거 브라질 룰라정권이 사업장에 노동조합을 설립하도록 의무화한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그러 종류의 강제력이 필요한 사회적 영역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최저임금 문제도 그렇지만, 노사관계법도 손 볼 게 한 두개가 아니고, 학생회도 의무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그러한 필요성을 위해서는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지상명령이 선거기간마다 진보진영에서 강박처럼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해악과 폐단은 물론 두 말할 나위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할 현장'으로 생각하는 기층의 시민사회에 대한 관념을 일정부분 다시 돌아볼 필요는 있다.

무엇보다 한국사회에서의 시민교육은 결국 권력의지를 고취시키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것을 우회한 착한시민 만들기, 이 모든 것이 만악의 근원이다.

[출처] 시민과 선비|작성자 박가분
http://blog.naver.com/paxwonik/220321931492

2016년 7월 12일 화요일

교회, 평화로운 공동체?

'평화'를 선언하면 평화가 이뤄지는가?
지난 주말 교회청소년들에게 평화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을 훈련하는 워크숍을 했다. 거기서 얘기한 것을 조금 더 정리해 쓰기로 했다. 워크숍의 목적에 맞지 않아서 현장에서 다루지 못한 얘기를 좀 더 해보기 위해서다. 내가 평화학자, 평화교육자임과 동시에 기독교인인 관계로 종교공동체인 교회와 평화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사실 기독교인이 아니거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이 이슈에 제법 관심이 있다. 종교인들의 집합체인 교회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뒤섞이는 경험을 시시때때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회와 평화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은 기독교적 관심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내 하나의 구성 영역 내지 주체인 교회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관심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평화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인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당연히 '평화가 이뤄져야 하는 곳'으로 생각한다. 또는 교회가 곧 '평화의 공동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평화를 선언하면 평화는 자동적으로 이뤄지고 교회 안에서 평화는 보장되는가? 다시 말해 구성원들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와 그것을 지원하는 평화로운 구조와 문화가 형성되는가? 답은 한 마디로 'NO!'다. 평화는 결코 선언을 통해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선언은 자기 합리화를 강화하고 비평화의 상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평화를 왜곡하거나 평화적 성찰과 행동을 도외시하는 심각한 부작용도 낳는다. 평화를 이루는 과정은 지난하고 치열하고, 때로 갈등이 불가피한데 그 과정을 모두 거부해도 된다는 오만에 사로잡히게 만들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대부분의 교회는 평화와는 거리가 있다. 평화가 이뤄지려면 폭력이 없어야 하는데 교회의 구조와 문화가 폭력성을 내포하는 근본적 한계가 있음에도 대부분의 교회가 그것을 묵인 또는 부인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변하지 않고 여전히 수직적 구조와 위계질서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집단 중 하나가 교회다. 가장 큰 이유는 종교공동체라는 것, 그리고 공동체의 핵심에 여전히 절대 권한을 행사하는 성직자, 그리고 소수의 결정권자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구조는 외적으로는 선명한 피라미드 구조, 내적으로는 소수의 상층(성직자 집단이나 당회)과 중간층(집사, 여신도회/남신도회 임원 등), 그리고 하층(직책이 없는 평신도, 청년, 청소년 등) 사이에 평등한 관계와 소통이 아니라 힘에 의한 명령과 복종이 이뤄지는 수직문화가 형성돼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하는 일은 거의 다 하향식이다. 그런데 피라미드 구조와 수직문화에 근거한 이런 하향식 접근은 성직자를 '하나님의 종'으로 섬겨야 하고 '믿음의 공동체'를 '은혜롭게' 운영하기 위한 핑계로 정당화되고 어떤 문제 제기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와 문화는 억압적인 공공기관이나 기업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더 견고하게 유지된다. 어떤 집단의 것이든 이런 구조와 문화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평화를 '선언'하는 교회의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구조와 문화가 소수의 일방적 결정과 다수의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고, 소수가 공동체를 움직이고 다수를 결정에서 소외시키며, 문제 제기를 '믿음이 없는 행동'으로 비난하며 억압한다면 말이다.

평화로운 공동체, 왜 만들어야 하나?
어떤 기독교인들은 교회는 원래 그렇다고 말한다. 성직자를 중심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움직이고 다수는 '믿음'을 가지고 따라가는 것이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미덕이고 그렇게 해야 교회공동체가 별 탈 없이 유지된다고 말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인정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폭력적인 구조와 문화로 보여도 문제를 제기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런 구조와 문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고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거나 꾸역꾸역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 자체가 교회 안의 강요와 억압의 폭력을 보여준다. 현재 대부분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와 문화의 폭력성을 규명하고 제거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신앙에 근거해 생각해도 그런 구조와 문화를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수용하는 자신이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 그래서 교회에 가는 것이 힘들고 끊임없이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모른 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폭력의 문제를 지적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폭력에 의한 피해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더 이상 폭력에 희생당하면서 비통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교회 구조와 문화에 내포된 폭력성에 대해 얘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편안하고 밝아야 할 교회공동체 안에서 하찮은 자신의 존재를 억지로 자각하게 되고, 용기를 내어보려다 다시 엎어지고, 결국 신앙에 대한 회의 때문에 자신에게 잘못을 돌리고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힘든 사람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들 중 대부분은 나이가 어리고, 직책이 없거나 낮고, 결정권이 없는 상대적 약자들이다. 그들은 세상 갖가지 폭력의 희생자들과 놀랍도록 닮은 모습이다. 약자의 희생 때문에 평화를 얘기해야 하는 것처럼 교회의 평화도 그렇게 약해서 말도 행동도 할 수 없는 사람들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폭력을 교회와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 껄끄러워 한다. 마치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할 집단에게 도덕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교회가 '평화'를 선언하면서도 교회를 진정한 평화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제대로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고 당연히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희망은 있다. 교회는 결코 평화를 포기할 수 없다는 당위성이다. 비록 아직 걸맞은 변화와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아도, 그리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도 평화를 얘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앙꼬 없는 찐빵처럼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교회의 건강한 생존이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평화롭지 못한 교회공동체'라는 껄끄러운 문제를 다루는 아주 사적인 이유는 교회 안의 폭력적인 구조와 문화 때문에 힘들어하고 상처를 입는 기독교인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절망감과 무기력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도 같은 일을 겪었다. 사실 나는 그런 문제를 너무나 잘 분석하고 있고 현실적 도전이 있지만 최소한 돌파할 이론과 방법까지 나름 정리해 가지고 있다. 이런 나도 힘든데 문제를 제기하는 자신이 '정상'인지부터 점검해야 하는 그 사람들은 얼마나 절망적이고 막막하겠나. 교회가 진짜 평화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이다. 뭐 더 할 말이 있겠나.

출처: http://peaceconflict.or.kr/187 

2016년 6월 12일 일요일

왜 자유는 소중한 가치인가?

자유와 권위는 지속적으로 충돌해왔고 지금도 충돌하고 있습니다만 정부의 권위를 옹호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생활에 간섭하고 명령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확산되고 있고 자유를 수호하는 목소리는 약해지고 설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우리정부의 성생활에 대한 간섭부터 단통법/도서정가제, 마트 의무휴뮤 등 경제활동에 대한 간섭, 이젠 먹는 것에 대한 간섭 등이 새로 시행되고 있고 이런 정부의 폭주에 여론은 무관심하고 오히려 정부를 옹호하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자유의 축소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도대체 왜 자유라는 가치가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소중할까요? 왜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인간들의 지식은 유한하기 때문에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이 최선인지 확신할 수 없으며 우리들중에 누가 특정상황에 대해서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제한되면 나보다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의 행동이 불가능해지고 보다 나은대안을 실행할 수 있는 인류의 또는 우리 국민의 기회는 상실됩니다. 이것이 자유가 제한되었을때 발생하는 가장 큰 폐해입니다.

우리 사회가 시도할 수 있는 어떤 행위의 선택가능한 대안의 숫자가 하나밖에 없는 경우와 100가지인 경우 어느것이 우리사회의 발전가능성을 높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유가 제한되면 될수록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옵션의 수는 줄어들고 예측치 못한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찾는 것도 불가능해 집니다.

성생활의 자유가 제한되면 인류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어떤 체위 또는 새로운 성행위의 형태(텔레파시를 활용한 성행위 등)가 발견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설탕에 대한 규제가 생기면 혹시 인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건강에 기여하는 설탕의 효과를 찾을 가능성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단통법 등 가격규제가 있으면 새로운 판매형태나 할인형태의 발견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새로운 시도의 기회가 무한히 열려있는 사회와 새로운 것을 시도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사회중에 어느 사회가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새로운 것을 찾을 기회를 그리고 이에 따른 발전가능성을 줄이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모든 가능성이 실험되고 혹시 실패하더라도 실패의 경험이 축적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후손들을 위한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정치집단중에서 자유의 확대에 관심이 있는 집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분노하게 됩니다.

물론 자유가 확대되면 필연적으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많은 나쁜일들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가 결국은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을 위한 힘을 줄것이라는 믿음에서 저는 자유를 신봉합니다. 통제는 사회를 무기력하게 만들뿐입니다. 경제적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우리는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마지막으로 존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 적은 논변입니다.

<<한사람을 제외하고 전 인류가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고 오직 한 사람만이 반대의견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전 인류를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그 한사람을 침묵시키는 것도 부당하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인류는 오류를 진리와 교환할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만일 그것이 틀리다면, 진리가 오류와 충돌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진리에 대한 더욱 명백한 인식과 더욱 선명한 인상을 상실하게 되는 엄청난 혜택의 손실을 입게된다.>>

출처(ref.) : The Acro - 추천게시판 - 왜 자유는 소중한 가치인가? - http://theacro.com/zbxe/refer/5250989
by 바스티아

2016년 6월 8일 수요일

여성의 안전과 남성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를 자세하게 하면 밑도 끝도 없어서 조금 러프하게 이야기합니다.

 과거의 남성과 현재의 남성을 비교해보면, 의외로(?) 현재의 평균 남성이 압도적으로 평화적입니다. 현대 한국 소년 중 랜덤한 한 명을 200년 전의 세상에 던져 놓는다면, 굉장히 높은 확률로 계집애 같다는 소리를 듣기 알맞을 겁니다.

 현대화된 남성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많이 여성화되었습니다. 문화적/정서적인 면만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신체적으로도 옛날 남성에 비해 작은 턱, 체격대비 더 약한 근력, 보다 여성화된 얼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평균 이야기입니다만, 인류의 수명 대비 꽤 빠른 속도의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추세대로 수백 년쯤 지나면 미래 남성들은 현재와는 꽤 다른 모습 및 문화양식을 지닐 확률이 낮지 않습니다.

 이런 변화가 왜 일어났을까요? 사견으로는 적어도 많은 부분은 여자들의 작품입니다. 과거에 비해 남자아이들은 어머니, 여성 교사 등 여자와 매우 오랜 시간을 보내고 교육받습니다. 이 기간에 두뇌 시스템의 대부분이 자리 잡고, 후성유전적인 많은 것들도 결정됩니다. 그리고 산업 사회 이후 여성들의 남편 선택 권한이 증가함에 따라, 그리고 근래 들어 사회가 평화롭고 풍요로워짐에 따라 여성들이 보다 예쁘장하게 생기고 가정적인 남자를 선택하는 양상이 생겼습니다. 유전적인 단계에서도 일종의 자연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과거대비 여성화된 남자들, 남녀는 평등하다고 교육받은 남자들은 옛날 남자들 같은 소위 기사도 같은 게 별로 없습니다. 옛날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더 계산적으로 굴고, 쉽게 여자를 무서워하며, 성차로 인해 손해 보는 것 같은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실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남성에게 자연 선택적 압력을 가하는 것은 여성이었습니다. 인간 특유의 특질 중 많은 부분은 양성 중 여성에게서 기인하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인류 특유의 부성애와 미래예측, 종교적 행위 등은 여성에게서 시작되어 남성에게로 전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에 비해 애매하고 불분명하게 표출되곤 하는 여성의 성욕과 구애 행동은 여성의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되었고, 남자를 여성의 공간인 가정에 끌어들였습니다. 부성애는 친자확인 문제 때문에 일부(일처 또는 다처) 가부장제가 정착된 후 자리 잡혔다고 할 수 있지요.

 과거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를 여성에 대한 억압 체계로 인식했습니다. 이런 인식은 지금까지도 다수의 여성주의자들에게 이어지고 있지요.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자연적으로 남성은 가부장적 특성이 강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강한 부성애는 포유동물 중에서도 이례적인 편이지만 그래도 통상 모성애만큼 강하지는 않고, 대부분의 남자는 여러 여자와 관계 맺길 원하지 한 여자에 평생 정착하는 것에 완벽하게 만족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일처 가부장제 모델을 좋아하는 것은 여성 쪽입니다. 믿음직스럽고, 돈 잘 벌고, 문제 해결 능력이 좋으면서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들에게 잘하는 남편을 원하잖아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가부장제 코르셋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여자들이 남자를 저런 데 협조적으로 만드는 데는 최소 수천 년, 아마도 수만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상당한 수준으로 있긴 했습니다만, 그 모델은 딱히 남성이 만든 건 아니며 남성들이 가부장제에서 받아온 압박도 상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근래 들어 생긴 성 갈등 양상은 오히려 가부장제의 파괴에서 시작된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가부장제의 파괴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여러 외부적 요인들을 후순위로 제치고 이야기하자면 이젠 여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들도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있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가부장제의 거부의 한 요인으로 저는 남성성의 약화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 남성성이 그 동안 여성들이 남자를 가부장제에 묶어둘 수 있었던 주된 이유였다면, 남성성이 약화됨으로 남자들이 가부장제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 수 있는 게 초식남이지요.

 나는 초식남 현상에 대해 좋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도덕적인 문제라는 게 아니고, 그 배경과 원인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초식남 현상으로 대표되는 남성의 여성화가 여성들에게 상당한 진화적 압력을 넣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여성도 기존 체계에서 누리던 일련의 권리를 상당 부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무가 줄어드는 대신 말입니다.

 한편으로 나는 여성주의 활동 가운데서도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누리던 특권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종종 발견합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만, 페미니즘이라는 큰 범주에서 보면 논리적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잘 정리된 일련의 가치 체계가 아니긴 합니다만, 이권을 추구하기 위한 모순이 반복되는 한 페미니즘 이미지가 좋아질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이건 나름의 대안이 필요하겠지요. 이 이야기는 자세히 풀면 복잡하니 나중에.

 여하튼 현재의 상황은 대략 이렇습니다.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고 덜 차별당하고 더 안전해지는 만큼, 다수의 여성이 기존의 남성들에게 원했던 만큼의 믿음직스러움과 강인함, 가정에 대한 책임감, 호혜적 태도 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모든 걸 얻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남자들은 점점 더 예쁘장해지고 다정다감해지는 동시에 (어머니를 포함한) 여자에게 더 의존하려 들 겁니다. 물론 평균적인 이야기고요. 소위 찌질남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겁니다. 줄어들 일 없을 거예요. 그래도 여자들이 겪을 평균적 위험성은 낮아지겠지요. 아직도 많은 여자들은 남자에게 바라는 수많은 로맨스들이 있지만, 그것을 충족하기란 확률적으로는 점점 어려워질 겁니다. 추세가 유지되는 한은 말입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는 남성이 받는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겁니다. 현재 제도적으로는 여성이 우대받는 부분은 많고, 손해 보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이 상황은 소위 역차별의 여지가 많아서, 계속 이어질 거라곤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남성들의 반발은 시작된 지 오래고, 상황이 돌아가는 추세를 고려해보면 아직은 수면 밑에 있는 남성차별 논란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 전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이긴 합니다. 미래의 인류는 과거의 인류에 비해 많이 진화할거고, 더 나은 생활양식과 삶을 가져야 할 테니까요. 개개인의 독립성과 자유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는 기존에 가졌던 걸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모두들 생각해볼 필요정도는 있겠지요.

http://oceanrose.tistory.com/552
해양장미의 블로그

2016년 6월 3일 금요일

이제, 우리의 차례다: 혐오 사회의 중심에서, '일베 조각상'에 대한 단상

이제, 우리의 차례다
혐오 사회의 중심에서, ‘일베 조각상’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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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대학교 정문에 거대한 조각상이 등장했다. 극우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하 ’일베‘)’를 상징하는 손모양을 조각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조소과 4학년 홍기하 씨가, ‘환경조각연구’ 수업의 과제로 제작해 출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30일 설치된 이 작품은 6월 20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조각상은 설치 직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인터넷 상에서도 논쟁이 벌어졌고,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계란이나 음료수를 던지기도 했다. 자진 철거를 요구하고 조각상을 비판하는 종이쪽지도 붙었다. 홍익대학교 총학생회는 “작가는 작품의도를 설명해주기 바란다”며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홍기하 씨는 곧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홍 씨는 “‘일베’를 옹호하려는 것이냐, 비판하려는 것이냐 논란이 있는데 그런 단편적이고 이분법적 해석을 위한 작품은 아니”라며, “‘일베’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현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실재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재하지만 실체를 보이지 않는 ‘일베’를 실체로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처음 작품이 설치된 직후, 설치 뒤에 부수는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홍 씨는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학생들이 철거를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작가로서 작품을 철거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은 어떨까. ‘일베’가 어떤 커뮤니티인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일베는 여성에 대한 혐오, 특정 지역에 대한 폄하, 정치적 평향성, 민주화 운동에 대한 모욕, 역사 왜곡이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심지어 이런 행동이 범죄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베를 상징하는 거대한 조각상은 그 존재만으로도 불쾌감을 일으킨다.

 사람들에게 일베는 불쾌한 존재다. 드러내서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캠퍼스 한복판에 세워진 작품을 보고 얼마든지 불쾌해할 수 있다. 큰 피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작품에 계란과 음료수를 던지는 행위도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홍익대학교 학생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철거하라는 요구도 가능하다.

 흔히 이 작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표현에 대한 비판을 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쾌하면 불쾌하다고, 옳지 않으면 옳지 않다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또한 ‘표현의 자유’와 ‘공연의 자유’는 다르다. 이 작품이 설치된 곳은 홍익대학교 교정 한복판, 지나가는 사람 모두가 ‘봐야만 하는’ 공간이다. 공공장소다. 이런 경우, 다수의 불쾌감이 유발된다면 공동체 차원에서 얼마든지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그것이 사회 공동체의 역할이고, 그것이 윤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작가는 이것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베’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일베’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렬하다. 불쾌감에 가려 작가의 의도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일베’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대중 앞에 세울 때는, 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어쨌든 감상자의 몫이다. 그리고 감상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작품은 불쾌하다. 작가가 불쾌감이 아니라 성찰을 의도했다면, 이 작가는 무능하다. 작품 앞에 서서 성찰할 수 있는 기제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작품은 불쾌하며, 무능하고, 모욕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다른 시선을 선택해 보자. 작품이 사회에 던져진 이상 작품은 감상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 느껴지는 불쾌함은 온당하지만, 그 불쾌함을 조금 억누르고 작품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조금 더 진행해 보자.

 말했듯, 사람들에게 일베는 불쾌한 존재다. 지역 폄하, 정치적 편향성, 혐오발언 등은 누구에게나 불쾌감을 일으킨다. 특히 이것이 범죄로 이어지며, ‘실재하는 공포’로 확대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베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우리 곁에 있는 일베”를 부정할 수 있을까. 일베 회원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것은 사법 당국에 의해 처벌받아야 한다. 일베 회원이 혐오발언을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비판받아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안의 일베’를 부정할 수 있을까.

 우리 ‘안’에는 혐오가 존재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성찰하고 반성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를 혐오하고 있다. 언제나 혐오하는 자는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여성에 대한, 소수자에 대한, 약자에 대한 차별을 우리는 은밀하게 자행하고 있다. 무의식에 깔려 있는 혐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각하고 인정해야 할 문제이며, 늘 고민하며 고쳐가야 할 문제다.

 우리 ‘곁’에도 혐오가 존재한다. 그렇지 않아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혐오를 자행하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일베는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우리 곁에선 그 민낯을 감춘다.

 대체 왜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혐오의 늪에 빠질까. 그들은 어째서 누군가를 증오해야만 삶의 만족을 얻을까. 대체 어디에서 분노의 에너지가 기인하는 것일까. 우리는 제대로 질문조차 던질 수 없다. 그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흔적조차 알 수 없으므로.

 ‘우리 안의 일베’와 ‘우리 곁의 일베’는, 타인과 함께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선 반드시 성찰해봐야 할 문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지 않았는가, 내 곁의 누군가가 실은 혐오범죄의 가해자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만 한다.

 성찰하지 않는다면 일베와 우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게 보면 작가가 일베를 옹호하느냐 옹호하지 않느냐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이 작품은 일베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일베를 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상대에 대한 혐오, 그리고 그 왜곡된 분출에 관한 문제다.

 일베 사이트에 아이디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며, 어디 있는지 알 수조차 없는 혐오범죄의 가해자가 주변에 있을 수 있다는 반성이 중요하다. 일베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말했듯 우리는 얼마든지 이 작품을 보고 불쾌할 수 있다. 일베의 상징이 대학 캠퍼스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대단히 모욕적이기도 하다.

 불쾌함을 느끼고, 이 작품을 비판하고, 계란을 던질 수 있다. 철거를 요구하는 것도 온당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이 작품에 대해 고민해볼 수도 있다. 우리 안의 일베에 대해서 불쾌해볼 수도 있다. 우리 곁의 일베에 대해서 모욕감을 느껴볼 수도 있다. 작품 자체가, 그런 고민을 끌어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방향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지만 말이다.

 일베가 실재하는 상황에서, 일베의 상징을 교정 가운데 세운다는 것은 일베 회원들에게는 오히려 응원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오히려 조장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일베가 실재하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이 탄생할 이유도 없다. 결국 그것조차 그 작품을 바라보는 공동체가 껴안아야 할 문제다. 단지 일베 회원이 작품을 보며 인증샷을 찍고 낄낄대며 즐긴다면 작품의 의미는 딱 거기까지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일베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품을 보며 일베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성숙해진다면, 작품은 거기까지의 의미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일베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이 된다.

 작품의 의미는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결정한다. 이 작품이 그 정도의 역량을 가졌는지는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이다. 일베란 어디에 있는가. 대체 이 사회에 만연한 ‘일베성’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일베는 대한민국 인터넷 사이트 중 30위권의 트래픽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 중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 증오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탄생했는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베의 에너지를 진지하게 분석하려는 시도가 우리 사회에 몇 번이나 있었는가. 그런 의미에서라면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작품의 제목이 일베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석일 수 있다.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더 많은 고민과 분석이 필요하다. 일베의 원천을 알아야 대책을 세운다. 폐쇄든, 처벌이든, 보다 장기적인 해결책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 제대로 된 분석과 대책을 통해야만 일베와 그 뒤에 숨겨진 사회 전반의 혐오를 해소할 수 있다.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내려도 좋다. 고민과 성찰을 할 수도 있고, 불쾌해할 수도 있다. 계란이나 음료수를 던질 수도 있고, 책임을 질 수 있다면 망치로 부술 수도 있다. 학교 입장에선 공식적으로 철거할 수도 있다. 혹은 그저 일베 회원들이 사진이나 찍고 즐기기나 하는 작품으로 남을 수도 있다.

 감상자가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작품의 의미를 규정한다. 규정하기에 따라 이 작품은 대단히 불쾌한 작품이 될 수도, 일베를 상징하는 작품이 될 수도, 혹은 사회적 논의를 성숙시키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감상이 작품을 완성시킨다.

 이 작품이 가진 그릇은 대단히 작다. 하지만 그 위에 넘치도록 성숙한 논의를 부어내는 것도, 대중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무능하고 불완전한 작품을 어떻게 완성시킬지는, 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회의 몫으로 남아 있다.


출처: http://widerstand365.tistory.com/947

2016년 5월 24일 화요일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라는 말의 의미

그녀들의 외침을 무시하는…범죄만큼이나 치명적인

심란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17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낯선 남성에게 여러 차례 칼로 찔려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라고 진술했다. 사건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혐오’ 범죄의 희생양이 된 피해자를 추모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과 살인을 멈추라고 사회를 향해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향해, 이 사건은 여성혐오와 관련 없으며 젠더 문제로 몰고 가지 말라는 여론도 거세다. 오늘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가진 정신분열증 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했다. 정신질환에 의한 범행이니까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논리다.


▶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는 이번 살인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많은 행렬이 이어지고 있으며,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의견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사회적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페이스북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지

나는 강남역 살인사건과 이에 대한 반응들을 살펴보던 끝에, 내가 왜 자식의 사생활까지 글의 소재로 삼으면서 이 칼럼을 시작했던가 하는 질문으로 향했다.

초딩아들 성교육!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내 손으로 어설픈 제목을 지어 올렸다. 나는 왜 ‘아들’이라는 대상을 놓고 ‘성적인 것’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결심했던가, 겁도 없이. 잘 소화하지도 못하면서 이 틀을 밀어붙였다. 여러 우려를 제쳐버릴 정도로 어떤 절실함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성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이어야만 한다는 절실함. 일단 밀어붙이자. 날것 그대로인 고민이더라도 공유하는 게 그나마 낫다.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아들 하나씩만 맡아 가르치면 뭐라도 바뀌겠지’ 이런 생각을 한 셈이다.

직관적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남성’과 ‘여성’라는 생물학적 집단이면서 혹은 재현된 주체들이면서 혹은 상징적인 가치들인, 그 무엇이건 이 짧은 두 음절인 남성/여성 사이의 젠더 문제에 대한 엄청나게 다른 시간차, 무지막지한 온도차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소통이 될 수 없는 대화들을 누적시켰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한국의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여성혐오, 솔직히 그 무엇이라 부르든 비슷한 의미지만 일단 최대한 가볍게 젠더 문제라고 부를 만한 거의 모든 것들의 민낯과 그 결과들이 그늘 하나 없는 한낮의 아스팔트 광장 위에 등장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를 응시하면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과거 속, 여성이어야만 했던 경험들을 불러오고 인식을 새롭게 해가고 있다. 그리고 화를 내고 있다. 여성들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다. 나는 화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싶지 않다. 세상을 바꾸려면 잘못된 사회에 대해 제대로 화를 내는 것이 필수적이니까.

현재, 그녀들의 감정을 부인하는 일들이 화를 더 돋운다. 하물며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며 적은 포스트잇에 그녀들이 화를 내는 다양한 이유를 명징한 말들로 기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이마저도 부인한다. 젠더 문제를 ‘명징한 언어’로 기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남성적 지배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추측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해내고 있는데, 그녀들의 그 명징한 언어마저 부인당해야 하는 이유는 ‘여성이 화를 낸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하고 싶지 않아서일 테다. ‘화는 미친 가해자에게나 쏟아 부으라’는 회피적인 생각이나, ‘이런 식의 화가 남녀 대결구도를 만든다’는 게으른 인식 등, 그 노력들은 실로 강력하다. 모두 화의 근원은 보지 않겠다는 의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여성들은 어느 개인 남성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다. 이 사건을 가능하게 한, 누적된 젠더 불평등과 문화 전반을 문제시하고 있다. 여성혐오라는 개념까지 불러오지 않았나. 그러므로 그녀들의 외침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려는 시선 속에서 불평등한 젠더 체계의 공범자들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그 논리를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젠더 위계가 어떻게 공고해져 왔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실제 이 사건에서 받는 충격이라면 살인 행위만큼 치명적인, 공범자들의 강고함이다. 이들을 보며 나는 다시금 성교육의 절실함을 느낀다.

젠더 권력의 파괴력을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자신이 불평등한 젠더 관계와 잘못된 성문화, 여성혐오에 해당하는 인식들을 생성하고 유통시키는 공범자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면죄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마도 여성차별이나 여성혐오라는 것을 하나의 체계라고 여기고 싶지 않아서는 아닐까? 그런 것은 그저 어떤 개인의 속성, 기질, 한 명의 가치관 정도에 불과하다고. 나는 좋은 사람이므로 무관하다고.

우리는 성교육을 받은 일도 흔치 않지만, 대부분 개인과 개인의 만남 속에서 참으로 자유롭고 권력과 무관한 인간들의 만남을 상상하고 배웠다. 그나마 젠더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할 만한 교육에서조차 권력 관계는 삭제되기 쉬웠다. 성교육이라면 다들 그들에게 주어진 어떤 성별에 고착하여 그것을 완수하기 위한, 대개는 재생산 기능을 완수함으로써 끝이 나는 그런 식의 완수를 상상한다. 성을 체계라고 배우지 않고 그저 개인의 특질처럼만 배웠다는 말이다. 만약 체계라면 그것은 인류 재생산을 위한 기능적 체계로서만 이해되었던 것 같다. 그럴 때 요구되는 것은 그저 에티켓 정도일 뿐이다.

정말이지 이제부터는 성교육에 대해 매우 진지한 자세를 취할 때이다. ‘성’이라는 단어의 굴레와 경계를 의심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는 일, 그런 질문들에 대한 포용력을 배양하기 위해 성교육이 필요한 것 아닐까. 제대로 된 성교육이라면 성을 완수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성적 체계를 의심하라는 메시지를 줘야 하지 않을까.




▶ 여성혐오, 성차별, 여성폭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자유발언대. ⓒ페이스북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지

내가 성교육을 이성애 남녀 간의 성관계와 그때 필요한 에티켓 정도로만 여겼다면 나는 이 문제를 이렇게 어려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인간이 어떤 성별/젠더 테두리 안에 갇혀야만 인간이거나 반대로, 그래서 부족한 인간이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인류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성관계에서의 에티켓은 매우 중요하고 반복해서 강조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라면 우리는 영원히,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여성이거나 혹은 남성으로서만 인간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에티켓을 설정하려면, 관계를 맺는 성적인 인간들 사이를 흐르는 권력에 대해 고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근거로 에티켓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오로지 성 관계의 순간에만 현미경을 들이대는 성교육은 실제 그 교육이 어떤 모래 위에 지어져 있는지 고심하지 않는 셈이다. 아들에게 성교육을 하려했을 때 그제서야 나는 성교육이 서있는 그 ‘모래’의 성질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그저 외우고 따르면 될 뿐인 ‘강간하지 말라’, ‘성관계시 피임하라’, ‘상대를 성적 대상화시키지 말라’, ‘NO는 NO를 의미한다.’ 같은 성관계 에티켓은 왜 그리 지켜지지 않는가? 왜 어떤 집단은 이 지침들을 무시할 수 있는데, 어떤 집단은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요구하기도 힘든가. 에티켓을 요구하는 집단과 무시하는 집단은 어쩜 이리도 일관되게 성별/젠더에 따라 나뉘는가. 그리고 이런 간단한 지침도 지키지 않아 일어나는 결과들은 얼마나 파괴적인가. 왜 그 파괴력은 한쪽 집단에만 거의 일방적으로 치명적인가.

실제 한 집단의 생사를 가늠할 정도의 파괴력을 지금 보고 있지 않나. 하물며 이번 사건은 일면식도 없던 ‘관계’에서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으니, 에티켓을 요구할 수 없는 집단은 그 존재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집단이 되었다. 가해자는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말했지만 정확히 하자면 자신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부터 무시를 받았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딸들은 대개 에티켓을 요구하는 입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아들을 가르치려 보니 이 녀석이 이 지침들을 배운들 그런 것을 요구하는 입장이기보다 ‘무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런 말을 무시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에게는 더욱이, 성관계 지침의 중요성을 넘어 요구와 무시를 가르는 권력의 지대를 강조해야만 했고, 네가 그 지대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인지시켜야만 했다.

젠더 체계 내 면면히 흐르는 힘의 무게를 인정하지 않고 그 전체를 의심할 수 없다면 성교육이라는 것은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특히 아들에게! 게다가 그 유리함이란 정말이지 환상과도 같아서, 그걸 위해 타인을 짓눌러야 하는 쓸모없는 일에 얼마나 많이 동참해야 하는지도 알려야 한다. 그러니까 아들더러 더 인기 좋은 남자나 되라고 성교육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가부장제 사회의 대기 속에서 예기된 살인

어떤 살인자가 자신의 행동의 이유이자 그 대상으로 여성을 언급하기까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일조했다. 그들은 대개 남성이지만, 남성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숨 쉬듯이 남녀의 젠더 위계를 옹호하고, 남성성을 정상성이라고 여기고, 피해여성에게는 피해를 당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우리의 사회적 대기는 정말이지 그렇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대기를 형성하는데 최소 하루 한 숨 이상씩 기여한다. 그동안 충분히, 건실히, 튼튼하게 짜여 온 이 대기 속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예기되었던 사건이다. 그러니 묻지마 살인사건이라고, 우발적 범죄라고 치부할 수 없다.



▶  20일 저녁, 서울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는 한국여성민우회가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 < 나는 OOO에 있었습니다>를 진행했다.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이것은 명백히 젠더 체계에 대한 고민없음과 성차별 인식의 포화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결과이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내가 주목하는 바는 젠더 위계에서 안정성을 얻기 쉬운 자들의 무지와 게으름이다. 그들은 유독 자신들의 공모 자체를 부인하고 싶어 한다. 아마도 남성성의 위치가 주는 안정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남성성의 위치에서 그런 안정감을 보상받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현실에 대한 화풀이를 애먼 곳에 하는 것이다.

지금, 더는 참지 않겠다며 화를 내고 있는 사람들은 남성성의 논리 안에서만 안정감을 얻으려는 사람들로부터 타자화된 사람들이다. ‘타자화된 경험이 없어 공감하기 어렵다’는 말도 슬슬 지겹다. 한국남자라면 군대에서 고생하고 온다고 늘 강조하지 않나. 남성성 논리 한가운데에서 쉬이 인권이 무시되고, 타자화되는 모멸감을 겪었음이 틀림없다. 이러한 경험을 권력을 사유하고 남성성을 의심하며 타자에 대해 공감하는 원초적 경험으로 이용할 법도 하건만, 어째 ‘나는 복종과 모멸을 견뎠으니 너도 견뎌라’는 식의 논리들이 더 많은가.

이 사회는 바뀌어야만 한다, 젠더를 성찰하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붙은 포스트잇 중에서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는 굉장히 직관적으로 작금의 젠더 체계를 똑바로 응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문구에서 사내 남(男) 글자가 쓰인 것은 살인자는 남자들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내 남(男) 자는 살인의 대상으로서, 어떤 분노의 타자로서 설 일이 없던 이들의 총칭이다. 젠더 권력의 안정적 점유라는 신기루 속에서, 무차별한 타자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들의 총칭이다.

더불어 이 말은, 그런 남성성의 논리를 수긍하고 전파할 때만 살아남은 자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성혐오 발언을 유통시키는 자가 ‘단지’ 성별적 남자만을 지칭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말은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그들이 저지르는 ‘인식’들이 누군가를 생사의 공포 속으로 몰고 있다고.

우리가 젠더 권력이나 그 위계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수시로 이를 의심하고, 젠더라는 이름의 억압과 규범에 대하여 다양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배웠으면 어땠을까? 타자를 만날 때 늘 상호간의 힘의 차이가 있다는 걸 배웠으면 어땠을까? 타자에 대한 태도가 성적 윤리를 구성한다고 배웠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일일이 성관계 에티켓을 외우라고 시키는 일이 도리어 거추장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자를 억압하면서까지 남성성에 열광하도록 만드는 사회가 모두에게 족쇄임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해냈지만 나는 성별이 남자인 내 자식이 남성성을 지향하기 위하여 자신의 너무 많은 것들을 버리기를 원치 않고, 사람들을 쉬이 타자화하지도 않기를 원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너 역시 자존감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남성성으로서의 ‘남성’이라는 명명을 쫓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고 말할 거다.

만약 가능하다면 나와 녀석의 우습고, 미숙한 일상들이 서로를 좀 더 성찰적인 인간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즉, 어떤 젠더의 완수를 위한 성교육이 아니라 젠더 자체를 성찰할 수 있는 성교육을 고민한다. 현재로서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무조건 최선을 다해 ‘해야만 한다’는 긴급함이 더 크다. 나 역시 더는 이런 불평등한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무리 봐도 이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 나에게도, 아들에게도, 물론 딸에게도.

마지막으로 그녀의,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채 젠더 폭력으로 인해 생을 달리했을 무수한 그녀들의 명복을 빈다.

▣ 김서화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2014년 8월 9일 토요일

누가 국가에게 시민을 탓할 권한을 주었나?


한 트위터리안이 유언비어를 퍼뜨렸나보군요.
http://www.hktimes.kr/read.php3?aid=139933440151197003

사실관계에 대한 출처도 없는 원글을 보면 판단능력을 다같이 비웃고 넘어가면 되는데 왜 굳이 이런 말이 화제가 되고, 그렇다고 수사까지 하는지 모르겠네요.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생각들을 정리해보죠.


국가가 시민을 대하는 태도

착석사과, 대국무위원사과, 사과예고를 통해서 유감표명의 신기원을 열어가는 청와대가 며칠전 유언비어 타령을 반복했어요. 저는 다시 원칙을 묻고 싶습니다. 잘못된 정보가 야기하는 피해는 걱정거리가 맞습니다. 적절한 지적이고요. 그 파급효과로 사고수습에 지장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야죠. 그렇기 때문에 민간단체의 공신력과 정부의 공신력을 비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정부가 압도적이죠.

무엇을 더 조심해야 하는지는 뚜렷해요. 정보혼란은 사실 자체의 오류도, 사실 간 관계맺기의 오류도, 기술평가나 가치판단의 오류도 모두 포괄합니다. 잘못된 생각은 올바른 생각으로 대체하는 일을 정부가 맡아야죠. B가 아니고, C가 아니고, D가 아니라고 할 것이 아니라, A가 맞다고 그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부연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런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까? 도리어 많은 의혹에 대해서 일단 부정 후 인정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죠. 저들이 잘못된 정보를 경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담이 되는 정보를 경계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면 진실은 점점 멀어집니다.

상식을 묻습니다. 책임은 어디서부터 따져야 합니까? 권력으로부터 주변부로, 공직으로부터 민간으로, 다수로부터 소수로, 책임은 그렇게 묻는 것이죠. 나로부터 이웃으로 향하는 건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공무원의 정보왜곡을 반성하는 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아이들이 선체 밖으로 나왔다는 보고체계, 유언비어의 당사자들을 시급히 문책해야 합니다. 허위정보를 유포한 관료와 정무직들을 경질해야 맞습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의무가 아니며, 권력에 대한 견제는 권리입니다. 국가권력이 할 일은 스스로 의심을 해소하여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지, 반대를 처벌하므로써 의문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죠. 정보제공이 의무인 국가와 의견표출이 권리인 국민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충분치 못하니 불신하고, 불신하니 비판에 동조하는 매커니즘을 모릅니다. 이게 현 정권의 수준이에요. 우리는 책임을 대리할 위임자를 선택했지, 떠받들고 모실 국모를 추앙한 게 아닙니다. 대통령 주제에 건방지게 시민 탓을 하고 있습니다.

실종자와 대화했다거나 실종자이니 구출해달라는 명백한 거짓말은 비호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의문을 통해 다뤄지는 문제제기는, 그것이 해명될 때까지 저는 그들의 편입니다. 당국이라고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제공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노력은 보여야 했습니다. 기존에 보았던 공공부문의 고압적 자세의 근거 -성취에 기반한 자부심, 전통적인 권위주의, 무의식적 경로의존성- 는 저절로 변화하지 않죠. 대통령이 먼저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내 탓이오가 먼저고, 내 잘못이다가 먼저고, 내 책임이다가 먼저입니다.

전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민주정부 두 지도자의 자세였고, 본받아야 마땅할 태도입니다. 그렇게 국가에 대한 신뢰는 축적되었죠. 그렇게 얻은 신뢰를 이젠 권리라고 말하고 있네요. 철학이 없는 것인지, 양심이 없는 것인지 둘다 없어보이는 무능정부 2기에 걸쳐서 우리는 도리어 시민을 감시하고 단속하는 행패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채증을 하고 고발을 합니다. 입을 막고 불이익을 주죠. 권력의 행태가 이렇다면 나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의심하고 의심하라.


시민이 국가를 대하는 태도

일부에선 이렇게 형편 없다는 이유로 탄핵이나 하야를 요구합니다. 시민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죠. 정치가 어디에나 있듯, 정치적 목적도 어디에든 있습니다. 그건 그냥 그래도 됩니다. 책임 있는 공직자가 조심하면 될 일이죠. 그러나 직위해제 주장에 동의하진 않습니다. 그것은 이치에도 실리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대통령 하나 해고하는 걸로 책임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니, 우리에게 할당된 책무는 그보다 큽니다. 박근혜는 공직자이며 대통령이기에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또한 보통의 한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외면해선 안됩니다. 박근혜를 제쳐두어도 또다른 박근혜는 나옵니다. 이명박을 제쳐두어도 또다른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듯이. 그들의 권력이 어디서 오는가를 보십시오. 아직도 많은 시민은 저들에게 힘을 실어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마주친 상대를 직시해야 합니다. 물론 국민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죠.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통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책임을 지고 살아갑니다. 이들에게 정치적 의무까지 따질 순 없어요. 그저 소통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선거 전엔 박근혜가 무지하고 새누리당이 무능하고 기득권 세력이 무책임한 줄 왜 몰랐습니까? 우리는 알았어야 했어요. 참사는 저들의 역량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헌법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가 없다면 저런 역량 부족은 국민이 견뎌야 할 몫이죠. 그것이 투표용지란 계약서의 조항이었습니다. 이 정부는 시작부터 무능했고, 끝까지 무능할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은 짓을 해도 어리석은 사회가 되진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눈 부릅뜨고 잊지 말고 정말 시스템을 바꾸도록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집권하면 어떻게 바꿀 것인지 새정치민주연합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끌어내리고 민주진영의 지도자를 세운다고 바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또다른 김대중, 또다른 노무현은 더 불안하게 되어 있어요. 훨씬 더 작은 일에도 훨씬 더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늘 승리할 순 없지만 정의는 약자의 편이죠. 기득권에 대항하는 이들에게 원칙은 무척 유용한 무기입니다. 규칙을 확고히 할수록 강자의 임의성은 제한될 것이고, 그렇게 저들의 힘은 축소되어 갈 것입니다.


2014년 8월 7일 목요일

[오피니언] 7.30 재보선의 단상




7.30 재보선이 새누리당의 압승이라는 예상 외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 실패와 세월호 참사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둔 것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이고 특히 새민련의 텃밭인 전남에서 새누리당의 이정현 후보가 당선된 것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다른 지역에서 전패를 했더라도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전남에서 이정현 후보가 당선된 것만으로도 새누리당은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아 아닌가 할 정도로 이정현 후보의 승리는 새누리당으로서는 의미있고 값진 승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반대로 새민련으로서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전남 순천곡성의 패배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며 처절한 반성과 환골탈태, 그리고 당의 창조적 파괴를 요구하는 선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7.30 재보선은 새민련으로서는 자성(自省)의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현재 드러나고 있는 사실만 보면 파괴와 혁신을 통한 재창조가 아니라 선거 패배의 책임소재를 놓고 친노와 비노라는 구태의연한 당권투쟁이 재연될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김한길 전 대표는 '이겨야 할 선거에서 졌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일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실패는 차지하고라도 세월호 참사라는 엄청난 호재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11:4라는 어처구니없는 패배를 당했다는 것은 새민련의 선거전략이 근본적으로 잘 못 되었다는 반증입니다. 많은 논자(論者)들이 지적하듯이 공천해서는 안 될 권은희를 공천한 것이나 많은 무리를 동원하면서까지 전략공천을 단행한 것 등은 새민련의 오만과 방종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러한 오만과 방종이 새민련 지도부의 눈과 귀를 멀게함으로써 선거젼략의 실패를 가져온 것으로 보여집니다. 특히 세월호 사건에 올인함으로써 스스로 족쇄를 만든 점도 무시못할 패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새민련 박영선 원내 대표가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 다른 법률안 입법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세월호 특별법이 먼저 처리되지 않으면 국회에 계류 중인 경제법안과 민생법안 등의 처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중도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든 실책으로 판단됩니다. 새민련이 세월호에 매몰돼 민생경제와 국가개혁을 외면시 한다는 인상을 준 것은 경기침체로 삶이 더욱 팍팍해진 국민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이 점은 이정현 후보를 당선시킨 순천곡성의 한 유권자가 "세월호 특별법도 중요하지만 경제를 살리고 국가개혁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 것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결국 새민련이 세월호 참사를 지나치게 정략적 의도로 이용할려고 했던 점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번 재보선의 패배로 새민련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근래에 재보선 선거 패배로 당 지도부가 총사퇴 한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위기의식이 크다는 뜻이겠지요. 박영선 원내 대표가 비대위원장이 되어 당을 혁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만, 얼마만큼의 성과를 이룰지는 미지수입니다. 벌써부터 사퇴한 안철수 전 대표의 측근들을 배려해야 한다느니, 강력한 대여투쟁을 위해 친노의 재등장이 필요하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혁신을 향한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오직 당권을 잡기 위한 권력투쟁만 벌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고 있습니다. 친노 실세인 문재인 의원이 당 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리는 것을 보니 새민련은 아직 재보선 패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7.30 재보선에서 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경고는 야당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통해 근본적인 변화를 하라는 명령인데 당의 얼굴만 바뀌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차기 총선은 물론이고 대선에서도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새민련은 7.30 재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경고를 더욱 심각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동작을에서 나경원에게 패한 노회찬은 야권의 패배에 대해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 진것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7.30 재보선이 비록 박근헤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적이 성격이 있었고 재보선 선거구가 많았기는 하나 , 재보선은 엄연히 지엽적인 선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재보선 승패 한번으로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새민련을 비롯한 야권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이정현 후보의 당선에서 나타났듯이 그동안 야권의 주 지지층이었던 호남의 민심이 과거와 다르게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견고한 콘크리트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번 금이 가기 시작한 구조물을 임시땜방식으로 처리하면 멀지 않아 와르르 무너져 모두 깔려 죽을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재보선을 통해 전남 순천곡성 주민들이 대단히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호남의 정치의식이 높다는 얘기를 했습니다만 솔직히 부정적이었습니다. 경상도의 지역 출신 후보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비판하지만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경남이나 부산만 해도 일찍이 야당 출신의 국회의원이나 도지사가 탄생되었지만 호남에서는 소선거구제가 실시된 이래 여당 출신의 그 누구도 국회의원이 되거나 도지사가 된 경우가 없었습니다. 아니 국회의원이나 도지사의 당선은 고사하고 30~40%의 의미있는 투표율조차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정현 후보가 50%에 가까운 지지율로 당선되었습니다. 순천곡성의 주민들이 이정현 후보가 그토록 싫어하는 새누리당의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50%에 가까운 지지로 당선시켜 주었다는 것은, 순천곡성 주민들의 정치의식이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이정현 후보의 당선이 단 한번으로 끝날지 다음 총선에서도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순천곡성 주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졌다는 것은 분명하고 인정할만 합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다음 총선에서도 이정현 후보가 당선되어서 지역갈등이 더욱 완화되는 데 순천곡성의 주민들이 앞장섰으면 합니다. 또한 새누리당도 과거의 포기전략에서 벗어나 좀더 겸허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진정성있게 호남에 다가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