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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8일 목요일

대학 평가 세계 00위? 학생들은 불행하다

대학교 앞을 거닐다 보면 "OO대학교, 대학 평가 세계 △△위"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현수막들은 한국의 대학 교육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렇게 세계적으로 높은 순위를 가진 한국 대학들에 대해 정작 우리 학생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4년제 대학의 교수·학습 역량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전공 수업에 대한 만족도는 2011년 83%에서 2014년 64.3%로 4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 교양 수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기간 78.8%에서 54.5%까지 하락하여 절반가량의 대학생들이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등록금 비싼데, 교육 투자는 절반 

이처럼 대학 평가 순위와 실제 수요자인 학생들의 만족도 간에 괴리가 생긴다는 것은 대학이라는 하나의 교육제도가 수요자 중심이라기보다는 다른 측면들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크게 대학 내부적인 문제들과 정부와 사회라는 대학 외부의 문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대학의 재정 운용에 대한 불신이다. 우리 학생들이 감당해야 하는 등록금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투자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우리나라 대학의 78%는 사립대로서, 이들의 등록금은 8554달러에 이른다. 국공립대 역시 4773달러로 다른 나라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 금액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미국과 영국을 이어 3위이다. 국공립대 비중이 2%에 불과한 전문대학의 등록금까지 감안하면 순위가 더 높아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 <표1> 2012년 국공립대 및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단위 : 달러, 구매력지수 환산액. 출처 : Education at a glance 2015).


이처럼 학생들이 많은 등록금을 내고 있는데도, 교육에 투자되는 돈은 많지 않다. 사립대들이 5년간 건물을 새로 지을 때 들어간 비용들을 추계해보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산인 건축 적립금과 법인에서 들어오는 자산 전입금의 비중은 44.4%에 그쳤다. 즉, 나머지는 다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등록금으로 충당했다.

또한 우리 대학들은 교육보다 연구 실적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국립대의 경우 일 년에 쓰는 논문 편수에 따라 교수의 연봉이 산정된다. 뿐만 아니라 임용 및 승진도 연구실적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교수들이 학생들과의 학습보다 개인적인 연구에 급급하도록 만들었다. 대학 교육의 대부분이 토론식, 쌍방향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여전히 중등교육의 연속선상으로 불릴 만큼 일방향의 주입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러한 영향이 크다.

이처럼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등록금의 상당 부분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대학들의 토건 자산을 늘리는 데 투자되고, 연구 위주의 대학 운영 방식은 학생들의 대학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

대학에 성과 부풀리기 요구하는 정부  

대학의 이러한 운영 방식들은 정부 정책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1990년~2000년대 한국 고등교육 정책들의 목적은 대학들 간 경쟁체제의 확립이었다. 이를 위해 대학의 교육 및 연구 성과를 양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근거하여 공적 자원을 배분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대학 당국들이 '교육'의 관점이 아니라 성과를 양적으로 부풀리기 위한 '경영과 마케팅'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교육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경시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율화·특성화 정책들은 대학들의 경쟁을 가속화시켜 수익성 없는 학문이나 수량적으로 평가될 수 없는 대학의 고유한 가치들을 대학 밖으로 밀어냈다.

우리나라는 지출 구조상으로도 대학 교육의 상당 부분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다. <표2>를 보면 고등 교육에 대한 한국 정부 부담이 OECD 평균보다 작은 반면, 민간 부담은 거의 4배 정도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같이 재정적으로도 정부의 역할이 작은 상황에서 대학에 대한 자율화 및 특성화 정책은 대학들의 목소리만 더 키워왔다.



▲ <표2> 2012년 GDP 대비 교육비 비율(출처 : Education at a glance 2015).

이러한 상황에서 조·중·동 등 각종 언론에서 대학 평가 지표들을 개발하여 대학 서열화를 조장했다. 최근 6년간 전국 4년제 사립대학 홍보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213개 대학에서 언론 홍보를 위한 지출액은 1392억 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세계대학평가 기관의 수입 중 4분의 1은 한국 대학들이 충당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한 대학 간 경쟁이 치열하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적 문화도 한몫했다.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78%에 이르는 고학력 국가이다. 노동시장의 왜곡으로 인해 대학 졸업자와 고등학교 졸업자, 특히 명문대생과의 임금 차이가 커지면서 입시 경쟁이 과열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을 뽑는 위치에 있는 대학들이 갑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대학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인적 자원의 질을 형성하는 데 마지막 단계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중등 교육을 통해 생긴 경험들을 한층 더 심화된 지식으로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함께 공유하고 생산하게 된다. 세계은행에서도 대학 교육을 "국민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국가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고 강조하듯이 사회적 중요성이 크다. 이러한 역할이 있기에 대학 교육은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는 영역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사회로 진출하기 때문에 대학에서의 교육은 사회에서의 '생존'에 관한 교육(직업 교육)과 사회 구성원인 '인간'의 가치에 대한 교육(인문학이나 예술)이 조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재원과 정책의 영역에서 대학에 지나친 자율성을 부여한 결과 공공성이 매우 약하다. 이로 인해 돈이 되지 않는 후자의 교육은 경시되고 전자에만 집중되고 있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보다 공급자인 대학 위주로 성과에 급급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 키우는 교육 위해 대학 공공성 높여야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을 키우는 대학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대학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인 학생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싼 등록금에 허덕이며 교수가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지식에 우왕좌왕하는 수동적인 학생이 아니라, 교수와 다른 학우들과 함께 고민하며 지식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능동적인 학생이 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 진출했을 때 한층 더 발전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학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대학의 사회적 역할이 큰 만큼 정부는 공공 재원을 투자하여 대학들의 무분별한 경쟁을 막아야 한다. 지금처럼 재원 운용에 대학의 자율성이 큰 상황에서 반값 등록금과 같이 재원만 지원해주는 정책은 일정 부분 등록금 인상률은 통제할 수 있겠지만, 등록금 액수를 근본적으로 낮추기 어렵다. 재원의 운용이 전적으로 대학의 손에 맡겨져 있어 불투명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 재원을 투자하되, 대학들의 재정 운용 과정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학들 간의 불필요한 서열화 경쟁을 위한 홍보비, 건축비 등을 통제해서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들이 단기 성과 위주의 연구가 아니라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투자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심도 있는 고려가 필요하다. 대학 수가 포화 상태인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수년간 학생 수가 미달된 학교들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대학들이 취업률과 같은 양적지표에 의해 인문사회계열의 순수 학문 학과들을 통폐합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대학 교육에서 단지 취업을 위한 직업 교육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배우는 인문 철학 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단지 대학들이 양적 지표에만 급급해하지 않도록 정부가 완충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노동 시장에서 대학 졸업 여부에 따른 임금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들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야 과다한 입시 경쟁을 진정시키고 대학들 간의 서열화도 완화시킬 수 있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대학 진학률은 40% 정도로 우리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는 더 심화된 지식을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노동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면서 낭비되는 사회적 자원들이 많다. 따라서 대학 진학률을 낮추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이 노동시장과의 연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많은 대학들에서 경쟁력을 높인다는 미명하에 학과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상 취업률에 보탬이 안 되는 인문 사회계 위주의 통폐합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정책들로 몇 년 공부했던 학과가 없어지는 피해를 본다. 이 학생들의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단지 순위, 취업률 등 성과위주의 양적 지표에 급급해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의 사회 구성원을 양성한다는 관점으로 대학 교육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1939


2017년 6월 6일 화요일

'지·옥·고'를 아십니까? 반지하, 옥탑, 그리고


얼마 전 '청년들은 왜 예쁜 카페에 집착하게 되었나'라는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열악한 주거 상황을 개선할 여력이 안 되니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예쁜 카페를 이용하는 식으로 대리만족을 누린다는 것이다. 나날이 사상 최고를 갱신하고 있는 가파른 고용절벽과 이에 못지않게 높은 주거비 부담 속에서 돈 모아 집 사기를 포기한 청년들로서는 그나마 있는 돈으로 가성비를 높이려는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주거의 의미: 헌법적 기본권

주거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요소인 의․식․주의 한 부분으로 각종 자연재해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물리적 공간의 역할이 일차적인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육체적 안전을 바탕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나가게 되는 정서적 편안함과 안정감이다. 즉, 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지속하고 있는 바탕에는 개인의 신체적․정서적 안정을 만드는 ‘편안한 공간’ 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의 가장 기본적 권리를 천명한 세계인권선언과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에서도 ‘적절하고 안전한 주거’가 모든 사람이 보장받을 기본권이자 정부의 책임임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헌법 제35조에서 언급하고 있고, 2015년 「주거기본법」제정에 의해 주거권과 주거복지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정부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청년들의 열악한 주거 현실

그렇다면 유독 왜 청년들‘만’(중장년층도 일부는 그렇겠지만 상대적으로) 예쁜 카페에 집착하게 되었나? 뉴스를 보면 지금의 부동산 시장이 예전에 비해 위축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매매가격에 버금갈 만큼 높은 전셋값과 월세 부담은 청년들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의 상당수 역시 '예쁜(혹은 적절한) 집'을 갖기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주거권은 더욱더 위험하다. 이는 단지 청년 주거 문제가 높은 부동산 가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와 같이 부동산 시장과 노동 시장의 모든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청년들의 삶 자체를 갉아먹는 암적인 요소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높은 주거비용: 청년의 소득 빈곤

지난 국감에서 나온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청년들의 평균 보증금은 1395만 원으로, 다른 세대(2778만 원)보다 낮았지만 월세는 각각 47만 원, 46만 원으로 청년층이 더 높았다. 아직 모아둔 목돈이 없는 청년들로서는 월세가 높더라도 마련할 수 있는 보증금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하여 순수 월세로 환산 시 청년층의 월세 부담이 다른 세대에 비해 최고 2.7배나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을 보더라도 청년의 주거비 부담이 과도함을 알 수 있다.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이 30%를 넘어서는 경우를 보면, 청년 가구는 20.3%, 노인 가구는 11.2%, 아동 가구는 6.3%로 청년 가구가 월등히 높다.(이태진 등. '청년 빈곤 해소를 위한 맞춤형 주거지원 정책방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6.)

주거비 부담 자체가 청년에게 절대적으로 높기도 하지만 더욱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청년들에게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체감 정도로 보면 최대 청년 3명 중 1명이 실업 상태로 소득이 없다. 이는 통계로도 확연히 드러나는데 유일하게 청년 세대만 2015년 대비 2016년 소득이 줄어들었다. 반면 대학생 시절 연평균 737만 원에 이르는 높은 등록금과 취업준비 비용, 각종 생활비는 고스란히 청년들의 빚이다. 설상가상으로 매달 지출해야 하는 약 47만 원의 높은 월세는 청년들을 빈곤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주거의 질: 지옥고와 청년 난민, 조물주 위의 건물주

1) 주거 수준

'지옥고'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아울러 칭하는 말이다. 지옥고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햇빛이 들지 않고 곰팡이와 습기 등으로 인해 건강에 유해한 반지하방, 드라마 속에서나 낭만적이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 살기 힘든 옥탑방, 그리고 최저 주거기준(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주거생활 기준으로 최소 주거면적, 용도별 방의 개수, 전용부엌, 화장실의 설비기준, 안전성, 쾌적성 등을 고려한 주택의 구조, 성능 및 환경 기준)인 14제곱미터(4.23평)의 절반도 안 돼 서 있기조차 버거울 만큼 비좁은 고시원 등 도저히 적절한 주거 환경이라고 볼 수 없는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 가구에 사는 청년들이 전국적으로 23.6%, 심지어 서울에는 36.3%에 이른다. 전체 평균인 14.8%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특히 <표 1>에서 볼 수 있다시피 전체 평균은 줄어들고 있는 데 비해 청년층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표 1> 전국 가구와 서울 1인 청년 가구의 주거빈곤율 변화(1995 ~2010년)

                      ▲출처 : 최은영. '서울시 청년가구의 주거실태와 정책연구'. 민주정책연구원. 2014.

대학생의 경우에는 더 암울하다.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의 '대학생 원룸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거주 대학생의 68.7%가 고시원 또는 원룸에 살고 있고, 이 중 70.3%가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단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있을 뿐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2) 청년 난민

청년들은 '주거 난민' 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허술한 임대차 보호법은 임대인이 2년마다 임대차 계약을 거절할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2년마다 강제 이사를 가능케 만들었다.

게다가 청년들로서는 더 이상 보증금이나 월세 인상을 감당할 여유가 없어 조금이라도 더 싼 방을 찾느라 고시원 같은 임시 거주지를 전전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주 이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토연구원의 '2016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1인 가구 10명 중 8명이 최근 2년 이내에 집을 옮긴 경험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청년 1인 가구의 평균 거주 기간은 1.3년으로 중장년(4.7년), 노인(11.4년)에 비해 훨씬 짧다. 청년들에게 현 거주지는 길어봤자 고작 1년 머무는 임시 거처로 '내 집' 이라는 인식이 들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예쁜 인테리어는커녕 이사하기 편리하도록 최소한의 짐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3) 조물주 위의 건물주

2~3월 신학기가 시작되는 경우, 대학가에서는 건물주들의 횡포가 청년들을 울린다. 대학가마다 조성된 높은 월세로 인해 공급 과잉 상태가 되면서 집주인들이 계약 기간이 끝나도 다른 세입자가 구해지기 전까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주택 임대차 보호법이나 주거권과 관련된 내용을 잘 모르는 대학생, 사회 초년생의 상태를 악용하여 계약 전의 정보와 실제 환경이 다르거나 정당한 수리 요청을 거절하는 등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이 이런 피해를 입는다.

1) 공공임대주택의 사각지대

민간임대에 비해 낮은 주거비 부담으로 그나마 가성비가 높은 공공임대주택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적다. 대부분의 공공임대주택은 동일한 조건의 대상자가 있을 경우, 1)연장자 2)다자녀 3)해당지역 거주기간 4)부양자가 있을 경우에 더 많은 점수를 받기 때문에 청년 1인 가구는 혜택을 입지 못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행복주택 등 청년의 비중을 높인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되고 있으나 1인 가구가 많은 20대의 공공임대주택 입주 비율은 단지 3%에 불과하다. 30대의 경우 약 18%로 좀 더 높은데,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특별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1인 가구의 비중이 높아지는 사회적 추세를 고려하면 지금의 추이 속에서 청년 1인 가구에 주어지는 정책적 혜택은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2) 공공 기숙사의 부족과 민자 기숙사 활성화

기숙사비가 저렴하다는 것도 옛날의 이야기다. 많은 사립대학들이 민간자본을 끌어들인 민자 기숙사를 비싸게 운영하면서 연평균 기숙사비가 주변의 월세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데 이어 등록금 액수(연평균 737만 원)에 맞먹을 정도로 높아졌다. 연세대 SK 국제학사의 경우 1인실 기숙사비가 연간 786만 원(월 65만 원)에 달하고, 2인실도 연간 531만 원(월 44만3000 원)에 이른다.

주변의 월세 시세 평균(약 42만 원)에 비해 많게는 20만 원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지금 서울 시내에는 기숙사가 부족하여 대학생 10명 중 1명만 겨우 기숙사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높은 기숙사비로 인해 민자 기숙사에 들어가려는 지원자의 수가 모집정원에 미치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청년 주거권 보장 정책의 현황과 문제점

1)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의 LH대학생전세임대주택을 시작으로 2012년이 돼서야 비로소 청년 대상의 주거 정책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시되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청년전세임대주택으로 확대되었고, 행복주택과 사회주택 정책이 실시되었다. 행복주택은 대학생,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공공임대주택이며, 사회주택은 여러 명이 방을 함께 나누어 쓰는 주거의 형태이다. 전세임대주택은 LH가 입주자를 대신하여 전세 계약을 맺고, 이를 임대하는 방식으로서 보증금을 LH에서 지원해준다. 지역 차원에서도 따복하우스, 희망하우징 등의 이름으로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공임대주택이라고 부를 만큼 저렴한 주택인지는 의문이다. 주변 시세의 80% 수준에서 공급하고 있지만 보증금이 4000~6000만 원 정도로 형성되어 있다. 비정규직이 태반인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을 고려하면 사회초년생이 이 정도의 목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또한 행복주택의 경쟁률이 최대 '130 대 1'에 이르는 등 물량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계약 기간 역시 최장 10년까지 살 수 있으나 2년에 한 번씩 입주 자격에 해당하는지 심사를 받아야 한다. 대상이 되는 '청년'에 있어 대학생, 사회초년생, 청년 창업가, 예술인, 프리랜서, 신혼부부 등 조건이 까다롭게 설정되어 있어 애초의 자격 심사에서 배제되는 청년들도 상당하다. 게다가 전세임대주택의 경우, 입주자가 직접 해당 주택을 찾아다녀야 하는데, 절차적 까다로움으로 인해 집주인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다.

2) 대출 지원 정책

공급 측면에서 공공임대주택 제공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청년 주거권 보장 정책의 또 다른 축은 주택 구입 및 전·월세 자금에 대한 금융 지원이다. 신혼부부가 저렴한 이자율로 대출을 이용할 수 있는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 그리고 취업 준비생 및 사회 초년생 등으로 대상을 확대한 월세 대출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방 정부 차원에서도 임대 보증금 이자를 지원하는 등 대출 부담을 완화시키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미래에 갚을 여력이 있다면 현 시점에서 이자 지원을 통해 보증금 혹은 월세 대출을 받아 주거비를 마련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1,34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를 안고 있다. 게다가 청년들은 높은 실업률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인해 소득이 없거나 저임금의 덫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대출을 장려하는 정책이 과연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걱정스럽다.

청년 주거권 보장 정책: 당장 어디로 가야 하나?

사실 현재의 청년 주거 정책들이 이 같은 한계를 보이는 것은 우리 정부가 청년 주거 문제에 대해 단편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주거비 지불 능력이 없다고 하니 돈을 빌리라고 하고, 기존의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정책에 끼워 붙이려고 하니 물량이 너무 적은 것이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형성된 높은 매매 및 전·월세 가격을 모른 척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으로 해결하려 하다 보니 건설 기간과 입주 시점의 차이로 인해 지금 당장의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주거권 보장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할까?

청년들이 '적절하고 안전한 주거'를 보장받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시장에서 형성된 높은 전·월세 가격을 지금의 소득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형편없이 질 낮은 주거로 내몰리고 있다. 따라서 청년들의 주거권 보장 정책은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공급 측면에서 임대료가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의 수를 계속해서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은 5.5%로 OECD 평균(11.5%)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청년공공임대주택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운 점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재원인데, 문재인 후보가 공약한 국민연금의 사회적 투자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작정 새로 짓기보다는 지금 지방정부들이 실시하고 있는 다가구 임대매입주택 사업과 같이 기존의 상가·주택 건물을 매입하고 안전하게 개조하여 소규모로 공급하는 방식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소비 측면에서 민간시장의 과도한 전·월세 가격을 규제하기 위해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현행 부동산 시장의 높은 매매 및 전·월세 가격은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지난 40년간의 주거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결과다. 토건 사업에 골몰하던 70~80년대부터 부동산 시장 띄우기를 경기부양의 핵심 수단으로 사용해온 정책적 실패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해야 할 책임 역시 정부에게 있다. 전월세 상한제를 실시하여 거품이 끼어있는 부동산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과다하게 책정된 전월세 가격은 제어해야 한다. 이 같은 직접적 규제는 가계의 전월세 부담을 크게 덜어줄 것이다.

또한 지금 당장 소득이 없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등 청년들을 위한 주거수당이 도입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높은 전월세 가격하에서는 생애 첫 독립적 출발의 시기이기에 소득이 없거나 빚을 진 청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현금 지원이 한시적으로 필요하다. 실제 사회적 이행기에 있는 청년 시기의 특성을 고려해서 유럽의 복지국가들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35세 미만 청년 가구에 주택수당을 제공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가족수당과 독일의 임대료 보조 제도도 이와 유사하다.

셋째, 임차인 보호 측면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해야 한다. 이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있어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기한을 정하지 않은 임대차 계약이 원칙인 독일,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더라도 까다로운 조건에서만 임대인에게로 주택이 인도되는 영국 등 다수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임차인의 안정된 거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청년들에게도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주거권과 관련된 내용을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육해야 한다.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에 따르면 청년들이 세입자의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이유로 절반 이상이 '알지 못해서'라고 응답했다. 청년들이 대체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진학 등을 이유로 독립해서 한 명의 세입자가 된다.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적절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교과 과정에 주거권 관련 법률적 내용을 포함하는 게 옳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년 주거 문제는 단지 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소득 부족, 나아가 노동시장이나 교육과정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이는 주거 문제를 단순히 주거 정책으로만 한정 지어 보기보다는 노동정책, 소득보장정책, 교육정책 등과 함께 통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주거수당은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의 소득보장정책이 될 수 있고,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청년의 주거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안정적인 주거의 확보는 저출산을 완화할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청년 문제는 한 영역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기에 다차원적 관점에서 청년 문제를 논의하고 정책 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들과 당사자인 청년들이 함께 정책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적 이행기에 불안하게 서 있는 청년들에게는 안정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미래는 청년들만이 아니라 청년의 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청년의 후세대 등 모든 세대가 함께할 것이 분명한 우리 모두의 미래다. 따라서 청년들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우리의 함께 미래도 암울해지는 것이다. '예쁜'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 속에서 보다 발전적이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청년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56732

2017년 6월 4일 일요일

스웨덴 복지가 한국과 다른 이유

"스웨덴에서 다섯 명의 자녀를 둔 직장 여성은 매월 103만 원의 아동수당을 받고, 어린이집을 거의 무료로 이용하며, 7년 6개월간 월급의 80%를 받으면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박승희 외, <스웨덴 사회복지의 실제>, 양서원, 72쪽)

스웨덴복지의 현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의 경우는?

아동수당은 아예 없다. 2006년경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가 주도하여 노ㆍ사ㆍ정ㆍ시민사회가 모여 사회적 합의기구인 '저출산ㆍ고령사회연석회의'를 만들어 이 제도의 도입을 논의하였으나 예의 '재정 조달'의 어려움으로 실제적인 도입 결정을 끌어내는 데 실패한 쓰린 경험만을 갖고 있다.

육아휴직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스웨덴이 80%의 급여를 받으며 390일을 쓰고 나머지는 1일 정액으로 다시 90일을 사용하게 되어있는 데 비해, 우리는 육아휴직이 산전후 휴가를 포함하여 1년이다. 산전후 휴가 90일 동안은 월급을 받지만 나머지 기간은 50만원의 정액을 받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스웨덴의 휴가일수는 노동일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우리는 단순한 월력에 따른 것이어서 스웨덴의 실제 휴가일수는 더욱 길다.

따라서 위에서 본 것처럼 5명의 아이를 출산한 경우 물경 7년 6개월이나 휴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스웨덴은 배우자 중 한 사람(주로 남성)이 60일 이상을 반드시 사용하게 되어있다. 이른바 남성강제휴가사용제이다.

이뿐인가? 스웨덴에서는 아동이 12세가 되기까지는 60일간의 아동간병휴가를 받을 수 있다. 이때 월평균소득의 80%에 해당하는 급여가 지급된다. 대한민국?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스웨덴에서는, 이혼 시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한 부모는 이를 반드시 지급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월 17만원 정도의 양육비를 국가가 먼저 지급하고 추후에 징수한다. 한국? 최근에 양육비 지급을 합의하지 않으면 이혼을 허락지 않는 제도를 겨우 도입했을 뿐이다. 이혼을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문제로 보는 전환의 시발점에 서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국가의 재정적 역할은 없다.

또한, 스웨덴에 살고 있는 장애인과 노인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의 현실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43세의 다운증후군 장애인은 24시간 도우미의 보호를 받으며 그룹 홈에서 생활하고 주간보호소 등으로 출근하며, 월 122만 원의 수당을 받는다."(위의 같은 책, 94쪽)

"스웨덴의 거의 모든 노인은 무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매월 82만 원~926만 원상당의 복지급여를 받는다."(위의 같은 책 108페이지)

우리나라 장애인과 노인의 현실은 역시 비교도 되지 않는다. 장애인의 경우, '중증 빈곤 장애인' 49만 명에게 월 13만 원씩을 지급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바우처 제도를 통해 부분적으로 도우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장애인 연금이나 장애인 장기요양보험은 논의의 시작 단계이다.

우리나라에선 2007년부터 기초노령연금이 발동되어 현재 70%의 노인에게 최대 8만7천원에 해당하는 급여를 지급하지만, 그나마도 소득수준에 따라 6만, 4만, 2만 원 등 차등적으로 지불되고 있을 뿐이다. 장기요양보험은 노인 인구의 3.9%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2004년 실시된 노인실태조사에 의하면, 공적연금에 의해 안정적인 연금급여를 받는 노인들은 13.9%, 결국 노인가구 중 빈곤선 이하가 37.3%에 달한다. 이로써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노인들의 현 주소는 이른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선반 위에 놓인 무가지를 회수하기 위해 펴지지 않는 허리와 팔을 겨우 뻗고 있는 모습으로 함축된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차이는 결과 자체의 차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두 나라의 사회정치적 기반의 차이에 있다.

스웨덴의 사무직노조(TCO)는 스웨덴 모델에 대해 매우 확신에 찬 언급을 하고 있다. 즉, 스웨덴 모델은 결코 "무모한 모델은 아니"라는 것인데, 모든 정치 집단들이 동의하여 작동하고 있는 스웨덴 모델이란 네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첫째, 강력한 노조, 둘째, 유연한 노동법, 셋째, 노동시장과 가족에 대한 사전 예방적 정책, 그리고 넷째, '보편적인' 복지제도가 그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스웨덴은 높은 교육수준, 협력적 관계형성에 대한 사회적 수용, 높은 기술력, 평등한 기회, 투명성을 지닌 공공부문, 견고한 사회기반시설, '우수한' 복지제도, 상대적으로 적은 사회적 격차 등등이 확보되었고, 이것이 스웨덴의 힘으로 자랑되는 것이다.

한국에선 복지국가의 건설을 위한 기반이 아직 멀기만 하다. 노조의 존재는 성장저해 요인으로 치부되고 있고, 해고의 유연성은 있지만 고용의 유연성이나 실업에 대한 안전망은 부재하다. 보편적 복지제도 역시 복지병에 대한 유별난 우려와 성장제일주의의 그늘에 가려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선 복지국가의 추동세력이 명확치 않다는 것이 복지국가 미래에 있어 가장 우려스런 점이다. 노조도, 정치권도, 건전한 시민사회세력도 아직 복지국가 의제에 대해 그리 예민하지도, 높은 우선순위를 두지도 않은 채, 복지정치의 허약한 기반은 상당 정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식 권능형 복지국가(enabling welfare society)로 치달으며, 한국 복지제도의 골격을 민간 중심으로, 잔여주의적으로 더욱 공고히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지만, 이에 대한 강력한 견제 세력이나 대안제시 세력도 뚜렷하게 부상되어 있지 않다.

결국,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는 이러한 미진한 여건 속에서 어떻게 복지국가의 추동세력들을 규합하며, 국민의 의식 속에 복지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스웨덴 모델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위안할 수 있지만, 우리에겐 20세기와 21세기의 모순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서민의 삶이 붕괴되는 정도는 매우 심각하기에 마냥 시간을 방류시킬 수는 없다.

스웨덴 모델과 한국 모델의 차이는 결과에 있어서 보면 매우 크지만, 결국 좁혀보면, 복지국가 추동세력의 유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의 차이'를 보지 말고 '차이의 원인'을 보는 지혜가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한국형 복지국가 그 자체와 복지국가 정치세력을 포함한 모든 복지국가 추동세력에게 국민적 관심과 힘을 모아줄 때가 된 것이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96986


2017년 5월 31일 수요일

“양극화와 편가르기 심각…한국 성취에 자신감 가져야”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대한민국. 지난 70년의 현대사에는 크고 작은 굴곡들도 많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제를 달성하고 세계경제순위 11위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성과는 누가 봐도 눈 부실만 하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다툼의 양상은 이러한 성과를 부정할 만큼의 심각한 수준으로 번지고 있다. 이념과 성별, 경제적 격차, 남북 간 대립 등이 용광로처럼 끓고 있는 현재의 한반도를 한 발 떨어져 본다면 좀 더 냉정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문학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는 재미교포 작가 존 차(한국명 차학성.71)를 만나 최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그는 196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교포 1세대로 영어로 쓴 소설 『안녕, 테레사』(문학세계사)가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것을 기념해 잠시 귀국했다. 지난 1982년 뉴욕에서 살해당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테레사 차(한국명 차학경)의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자전적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테레사 차가 바로 그의 여동생이다. 테레사 차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뒤를 이을 차세대 예술가로 주목받았지만 32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존 차는 동생의 죽음 이후 글을 쓰기 시작했고, 한국 소설을 영어로 번역해 문예진흥원 번역상과 펜문학 번역상을 받았다. 지난 30년 간 구상·집필에 매달려 이번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故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의 만남을 계기로 북한 인권과 통일을 위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만주 용정에서 태어나 서울과 부산에서 한국전쟁을 겪고 4.19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의 삶 자체가 한국의 현대사를 축약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해 설명하려면 역사를 먼저 이해시켜야만 했다면서 현대사를 대변하고 있는 인물들을 다룬 자서전을 쓰고 있다고 했다. 과거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로 탈바꿈한 우리의 역사를 젊은 세대들이 좀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만주에서 출생하셨다고요? 당시 배경을 설명해주신다면

나는 해방둥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석 달 뒤 만주 용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실 원산 사람이었는데 당시 지주였던 할아버지가 일본인들에게 재산도 뺏기고 핍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일본인들과 싸우다가 버틸 수 없어서 만주로 도망을 갔다. 어머니는 용정에서 태어나신 분이다. 두 분 다 만주에서 교사를 하셨다. 같은 학교에서 일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쫓아다녀서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캐나다 선교사들이 만들었던 제창병원에서 행정을 담당했다. 당시 용정은 도시가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도 학교들이 많았다. 만주에서도 이른바 교육도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유학을 많이 왔었다. 병원은 캐나다 선교사들이 했기 때문에 일본군도 들어올 수 없었다. 그래서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다. 당시는 배운 사람들은 다 독립운동 할 때였으니까 우리 외할아버지도 아마 관여하지 않았을까 싶다. 캐나다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할아버지에게 열쇠 뭉치를 줬는데 일본군들이 그걸뺐으려고 고문도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얘기니까 주로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으셨겠네요.

만주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는 어머니로부터 나중에 전해 들었다. 제창병원 원장은 김영 씨라고 의사 출신 독립운동가인 김필순 씨의 아들이었다. 김영 씨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가 거의 운영을 했다고 봐야한다. 당시 용정에는 윤동주 시인도 있었고, 국무총리를 지낸 정일권 씨도 살았다. 어머니 얘기로는 윤동주 시인이 세 집 건너에 살았다고 한다. 정일권 총리는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고 아침마다 신문 배달을 했다. 어머니의 오빠인 그러니까 외삼촌과 윤동주, 송명주 시인 셋이서 같이 술도 먹고 시도 쓰고 그랬다고 한다. 사랑방에서 담배를 피다가 할아버지한테 들켜서 야단을 맞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현대사 비극 속에 만주에서 서울로 목숨 건 남하 

해방이 된 후에는 어디로 가셨나요.

우리 식구들은 해방이 되고 6개월 뒤에 남하했다. 당시 만주 지역에 소련군이 들어왔는데 최초로 들어온 부대의 질이 굉장히 나빴다. 소련군 내에서도 제일 악질적이었다고 한다. 길거리를 떠돌던 부랑아들로 구성한 부대였기 때문에 군인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일본군을 친다고 내려왔는데 막상 약탈에 더 열을 올렸다. 뭐든지 보이는 것은 다 강탈했고, 여자들은 강간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우리 가족도 남하하게 됐다. 일본 때문에 만주까지 쫓겨났는데 이번에는 소련 때문에 만주에서도 쫓겨난 셈이다.

두만강을 넘어 회령에서 기차를 타고 원산까지 왔다. 원산에서 다시 기차를 타기는 했지만 3.8선이 있기 때문에 기차로 넘지는 못했다. 결국 밤중에 한탄강을 몰래 건너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소련이 지키고 있어서 월남자들을 총으로 쐈다. 어머니 얘기로는 한탄강을 건너다가 내가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사람들이 애기를 물에 빠트리라고 얘기했다. 그것 때문에 물에 빠져 죽는 애들도 많았다. 어머니가 안 된다며 사람들하고 싸우는데 마침 내가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그렇게 강을 건너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서 처음 간 곳이 파고다 공원이다. 공원에 앉아서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나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당시 피난민들의 삶은 다들 어렵지 않았습니까. 

다행히 서울에 이모가 살고 있었다. 경복고등학교 교사셨는데 어떻게 하다 이모를 만나게 돼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살게 됐다. 부모님은 만주에서도 교사를 했으니까 교사 자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그러다 6.25가 발발했다. 우리는 그때도 미처 도망을 못 갔다. 사람들은 다 떠나고 그 기숙사에 남아있는 가족은 우리뿐이었다. 인민군들이 북한 출신을 찾을 때여서 아버지는 도망을 다니셨다. 그때 인민군들이 길거리의 어린 아이들한테 노래를 알려줬는데 나도 덩달아 배웠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배워 집에서 부르니 어머니가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더라. 그리고 1.4후퇴 때 서울역에서 기차로 부산을 가는데 사나흘 정도 걸렸다. 지금은 두 시간 반이면 가는 거리지만 그때는 가다 서다 했다. 피난 생활을 생각하면  참 어려웠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피난민 새끼라고 해서 구박도 많이 많았다. 그때 방 한 칸에 두 식구가 살았는데 방 중간에 담이라고 이불을 걸어놓고 저쪽에 한 식구 이쪽에 우리 식구가 잠을 잤다. 그렇게 좁은 방에서 동생 학경이가 태어났다. 다음에는 송도로 이사를 가서 초가집을 하나 얻고 살았는데 거기는 정말 좋았다. 폭탄소리도 안 들리고 밤마다 별이 총총했다.

미국으로 가시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가족들이 같이 떠나셨나요.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다시 왔고 아버지는 남대문 시장에서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미국에 간 건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인데 정확히는 쫓겨난 것이다. 4.19 당시 내가 무슨 끼가 있어서인지 중학생 친구들하고 같이 세종로를 돌아다니면서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쫓아다녔다. 당시 3.15 부정선거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는데 우리 같은 애들이 제일 많이 흥분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 그러다가는 길에서 총을 맞던지 어떻게 될 것 같다며 친척 할머니가 있는 하와이로 가라고 했다. 사실 가기 싫었지만 아버지가 가라니 할 수 없이 갔다.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위스콘신 주에 있는 마켓대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졸업 이후에는 석유개발 하는 회사에서 선박 제작 관련 일을 하게 됐고, 결혼 이후에 샌프란시스코와 오렌지카운티에 살았다.

재미교포 1세대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 하와이에 간 것이 다행이었다. 거기는 인종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별로 없다. 우리 때는 원주민도 있었고 백인도 있었고, 아시아 인종도 많았다. 젊은이들끼리는 싸우기도 했지만 인종 때문이 아니라 그냥 치기어린 싸움이었다. 그런데 미국 본토로 가니까는 다르더라. 하와이에서는 따로 백인이라고 할 게 없었는데 미국 본토에 가니 다 백인이어서 그게 좀 이상했다. 또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달랐다. 우리를 낮춰보고 그런 일이 꽤 많았다. 나는 저 놈들이 틀렸다 정도만 생각했지 서글프고 그런 것은 없었다. 제일 화가 났을 때는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누가 버스에서 ‘야, 이 잽(Jap)’ 하고 날보고 소리를 지를 때였다. 당시 미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을 재패니즈(Japanese)라고 안 부르고 비하하는 표현으로 잽(Jap)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동양인이라고 하면 주로 일본인을 생각하니까. 길을 가다가도 저편에 동양인이 보이면 그렇게 반가웠다. 쫓아가서 한국 사람이라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할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동포사회가 많이 커졌다. 보기 귀찮을 정도로(웃음). 그러나 당시는 미국도 베트남 전쟁과 연관해서 반전운동, 히피운동 등 시대가 혼잡스러웠다.

동생 죽음 계기로 작가로 진로 바꿔… 한국 알리기 위한 문학 활동 

동생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작가로써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는데요.

오빠라서 그런 게 아니고 동생은 천재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실제 당시에는 걔가 뭘 하는지 잘 몰랐다. 나도 학교를 다녔고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70년대에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개념 예술이라는 게 탄생하는데 학경이가 초창기 거기 들어가서 활동했더라. 죽은 다음에 보니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다. 한인계로는 처음으로 버클리 대학에서 주는 상도 받고, 전공도 4개나 할 정도로 공부를 지독하게 했다. 연락을 할 때마다 ‘아직도 학교에 가니’라고 말할 정도였다. 버클리 대학에 작품을 기증해서 가끔 쇼도 열린다. 한국에서도 2003년 회고전이 열렸다. 사고 당시에는 충격이 꽤 컸는데 당시 학경이의 자료를 보면서 나도 과거의 꿈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다보니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학경이의 자료를 보면서 이렇게 사는 게 다는 아니구나 싶어졌다. 당시 일도 재미가 없어지고 내가 뭘 해야 할까 싶었는데 이제는 그쪽으로 가야겠구나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에 주로 한국의 문학이나 문화를 알리는 데 활동을 집중해 오고 계시는데요.

번역을 시작하게 된 건 어머니 때문이다. 한번은 어머니가 신문에서 문예진흥원에서 하는 번역 공모전 소식을 보시고 나에게도 해보라고 권하셨다.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했지만 자꾸 해보라고 권해서 그럼 어머니가 스토리를 골라보시라고 했다. 그래서 골라주신 게 주요섭 작가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였다. 작품을 번역해서 제출하고 난 후에는 잊고 있었다. 어느 날은 뒷마당에서 풀을 깎고 있는데 어머니가 종이를 흔들고 뛰어오시며 내가 상을 탔다고 전해줬다. 당시 상금이 150만 원인데 계산해 보니 왔다 갔다 비행기 표 사고 나면 남는 것도 없을 것 같아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으려 했다. 시상식도 아버지가 원해서 참여하게 됐는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강당도 꽉 차고 규모도 큰 행사였다. 그때부터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같다.

미국에서는 현재 한국책이 거의 안 보인다. 서점에 가도 코리안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었다. 한국 문학이라는 것이 재미도 있지만 한국어 자체에는 굉장히 시적이고 정서적으로 풍부한 면이 있다. 번역을 하면 자세히 분석을 해야 하니까 그러면서도 배우는 것이 많았다.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니 어릴 때와는 또 다른 점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미국에서 너 어디서 왔니 물으면 코리아가 어디인지부터 설명해야 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에 대해 전혀 몰랐다. 한국에 대해 설명을 하다 보니 그게 동기가 된 것도 같다. 사람들이 너무 모르니 알려야겠다. 그래야 나도 좀 편해지겠다 싶었다.

아는 친구 중 한 명이 한국의 옛날 건축 방법을 수업 자료로 쓰고 싶다고 자료를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본 일이 있다. 그래서 구할 수 있다고 답하고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는데 우선 영어로 된 것이 없더라. 워싱턴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연락해서 자료를 받긴 했는데 오자투성이고 형편없었다. 이래 가지고는 뭘 하겠나 싶었다. 진짜 제대로 된 번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물론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그래도 지금은 한국이라고 하면 삼성 휴대폰, 현대 자동차, 케이팝 이런 것들을 알아준다. 그러나 한국의 얼, 정신 같은 것이 제대로 알려지지는 못했다. 그런 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소수이기도 하고 학계의 연구물에 불과하다. 한국을 설명하다 보면 한국의 역사 자체를 이해시켜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노
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번역뿐 아니라 전기도 여러 편 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도산 안창호의 따님인 안수산 여사의 전기도 쓰셨다고요.

안수산 여사의 전기를 쓰게 된 것도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섭 선생님의 소설을 번역해서 상을 탄 게 LA에도 보도됐었다. 하루는 집에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아 보니 주요섭 선생님의 아내 분이었다. 고맙다고 하면서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김자혜 여사라는 분인데 마침 LA에 사셨다. 김자혜 여자는 한국 최초의 여성기자로 동아일보에서 근무했다. 인력거를 타고 취재한 이야기하며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 땄을 때 옆에서 일장기 지우는 작업을 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인연으로 그 분하고 가까워졌다. 그 분이 3.2여성동지회 고문이셨는데 마침 동지회 회장이 안수산 여사셨다. 김자혜 선생님이 안수산 여사에 대한 팸플릿을 내려고 하는데 써줄 수 있냐고 해서 감히 거절은 못하고 승낙을 했다. 그 기회를 통해 안 여사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 분량이 길어져 결국은 책으로까지 나오게 됐다. 안 여사는 인품이 명랑하고 아무것도 감추는 것이 없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많이 배우게 됐다. 안창호 선생도 정직을 강조하셨는데 가족에게도 실천을 시킨 것이었다. 그 분이 지난해 2월 24일 만 100세 나이로 타계하셨는데 그 전날까지도 청소년 모임에서 스피치를 했다고 한다. 그 분 전기를 통해서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 시대, 더불어 2차 대전까지 설명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을 읽은 외국인들도 당시 코리아가 이랬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안 여사가 소개해준 게 백영중 회장이다. 14살 때 평양에서 혼자 도망 나와 남한에 와서 전쟁 치르고 고생하다 미국에 와서 억만장자가 된 분이다. 이 사람의 스토리를 쓰면 6.25전쟁을 포함해 한국 현대사를 담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이 분은 평양을 떠날 때 일주일 뒤에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가족들도 다 두고 왔다. 결국 지금까지 소원이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다 1995년 미국 정부에서 경제원조단을 만들어 평양에 갈 건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백 회장님에게 했다. 그러자 그 분이 어머니를 만나게 해 주면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평양에 가서 마지막 만찬 때까지도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때 어떤 사람이 쪽지를 전해줬는데 이번에는 어머니와 상봉이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다음날 공항에 가려고 숙소 앞에 서 있는데 호텔 앞으로 벤츠 한 대가 섰다. 한 청년이 내리더니 자기 멱살을 잡고 벤츠로 끌고  가길래 나는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청년이 바깥에는 보는 눈이 있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서 어머니에 대한 해결책이 있으니 들어보라며 진정을 시켰다고 한다. 이후에 공항 VIP실에서 기다리는데 그때 황장엽 선생이 방 안으로 들어와 다음에 오면 어머니를 꼭 찾아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북한, 핵문제로만 인식…주민들 삶 이해시키고파 

황장엽 전 비서와의 인연이 이미 여기서부터 시작됐군요.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은 이때부터 생기셨나요.

우리 가족사와도 연관된 부분이 있다. 윤동주 시인과 어울려 놀던 외삼촌이 우리와 함께 남으로 오지 못 하고 만주에 있다 두만강을 넘어 무산으로 갔다. 그때 외할머니가 병에 걸려서 함께 남하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오빠를 계속 보고 싶어 했다. 미국에서는 마만 먹으면 북한과 컨택(연락)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 여러 번 외삼촌을 찾자고 얘기했는데 미국에 친척이 있다고 하면 오빠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돌아가실 때까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니까 자라면서 늘 북한을 의식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또한 책을 쓰면서 한국 역사 얘기를 하려면 북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다 싶었다. 백 회장을 통해서 황 선생님 얘기를 듣고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황 선생은 1997년 망명을 했었고 백 회장하고도 상봉했었다. 그러던 차에 2003년 쯤 비서 역할을 했던 손광주(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씨와 함께 해서 황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솔직히 황 선생님을 만나고 충격을 받았다. (북한에서 300만 명이 아사했다는 얘기를 듣고)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을까 싶었던 거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황 선생도 처음에는 자기도 못 믿었다고 얘기하더라. 그래도 한반도 얘기를 쓰려면 그 분의 스토리를 쓰는 게 좋겠다 싶어서 손광주 씨와 만나 그때부터 책을 쓰게 됐다. 황 선생님은 볼 때마다 나에게 미국에서 뭘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이미 백 회장하고도 북한민주화운동을 같이 하자고 뜻을 모았었다. 결과적으로 제대로 되지는 않아서 나도 참 안타까웠다. 어쨌건 황 선생님을 만나면서 북한인권과 탈북자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본격적으로 생겼던 것 같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이해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사실 북한 사람이나 남한 사람이나 같은 사람 아닌가. 우리가 이렇게 갈라져 있지만 정치적 문제이지 사람하고는 상관없다. 결국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데 6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머리 좋다고 하는데 이 문제만큼은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함경도 지역 사람들은 옛날부터 잘 못 먹었다. 일제 강점기 전부터 감자만 먹고 살았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굶고 있다. 그 사람들이 진짜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미국 사람들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를 않는다.

미국에서도 한창 대북지원을 할 때 교회를 통해 봉사를 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쌀 창고에는 쌀이 쌓여 있는데 아랫부분은 썩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한에는 절대 쌀을 주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 나도 그때는 그 말을 이해 못했다. 알고 보니 정권에서 식량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황 선생이 그런 말을 했다. 김정일은 100만 명이 죽어도 끄떡 안 할 거라고. 우리 친척도 굶어 죽었을지 모른다. 사람을 그렇게 취급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인들이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여론조사가 있었는데 ‘북한 사람들은 크레이지(crazy)하다’는 답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 사람들도 사람이다. 그 사람들도 딴 사람들하고 다를 게 없다’고 얘기한다. ‘다만 그들은 지도자를 잘못 만난 것이다. 지도자가 미친 거지 그 사람들이 미친 것은 아니다’고 얘기하지만 그게 잘 안 통한다. 현재 미국에서 물망초 재단을 통해 탈북자 학생들을 초청해서 진행하는 언어 연수 프로젝트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여기 사람들에게 탈북자 학생들을 자꾸 소개해 주고 이해시키고 싶다. 어쨌건 미국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핵이다. 김정은이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하니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94년 당시 영변을 폭격했어야 했는데 아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대화가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꽤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내걸고 있는데 요즘은 좀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북 제재 내용들을 보면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는 더 속지 않겠다는 그런 생각인 것 같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최근 한국 사회의 모습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외부에서 볼 때는 미국도 같기는 하지만 양극화가 문제인 것 같다. 미국도 양극화가 굉장히 심각하긴 하지만 오래된 문제이기도 하고 중산층이 워낙 두터우니까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양극화의 형태가 중산층이 자꾸 줄어드는 모습으로 가는 것 같다는 우려가 든다. 그리고 학자들이나 교수들이 편 가르기를 먼저 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나를 처음 보는 한국 사람들이 ‘이 사람이 이쪽일까 저쪽일까’ 계산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지 이 당, 저 당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하면 이상해 보이는 것 같더라.

미국에서도 귀향 군인들, 나이 든 사람들은 여기의 아스팔트 우파처럼 적극적으로 나선다. 반대로 젊은 세대는 아무것도 모른다. 결국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한국이라고 하면 삼성, 현대차, 케이팝 문화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옛날에는 낙후했던 국가가 이제는 이런 강국이 됐으니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는 한국 사회가 안보문제에 너무 안이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이 평화를 위협하고 도발을 할 때는 뭉쳐서 대응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다.

또한 요즘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의 불만과 분노가 크다.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살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본다. 음악도 유행에 따라 인기를 끌  듯이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통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자신들의 살 길이 통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통일을 자신들의 패러다임으로 정해서 앞장서서 개척해야 한다. 과거 4.19혁명이나 5.18민주화운동도 다 젊은 세대가 앞장 서지 않았나. 요즘 젊은이들이 일자리 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건 안타깝지만, 불평과 불만에 너무 익숙한 것 같다. 자기의 살 길은 자기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통일 문제에 있어 중국이나 미국을 설득하는 데도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떳떳하게 설명도 하고 설득도 해야 한다. 이런 열정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게 잘 안 보인다. 그것도 역시 우리 세대의 잘못이면 잘못이겠지만 말이다.

http://www.sdjs.co.kr/read.php?quarterId=SD201603&num=915

2017년 5월 23일 화요일

다양성이 만들어낸 창조성과 경쟁력의 흔적들

유대인 품은 빈, 유럽의 문화수도로 
접점에서 나오고 연결로 완성되는 창조성

김용준 생활경제부 차장

서울대, 광운대, 한양대, 경북대.

작년 9월 말 기준 삼성전자 등기이사(사내) 4명의 출신 학교다. 모두 다르다. 임원 1029명도 분류해봤다. 이들의 출신 학교는 국내외 100곳이 넘는다. 처음 들어본 국내 대학도 꽤 된다. 삼성전자의 실력 중심 문화는 결과적 다양성으로 이어졌다. 이건희 회장이 주장한 ‘3불연’ 원칙의 결과다. 학연 혈연 지연을 용납하지 않는 것. 삼성 조직문화가 획일적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거친 환경에서도 다양성은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다양성과 경쟁력(창조성)의 관계를 증언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미국은 자체로 다양성의 보고다. 레바논,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와 그 자식들은 애플 테슬라 구글을 창업했다. 그리고 세계 시장의 지배자가 됐다.

오래전으로 가보자.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은 유럽의 문화 수도가 됐다. 15세기 피렌체와 비슷했다. 모더니즘은 이곳에서 태어났다.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 등이 빈의 공기를 함께 마셨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화려한 시대의 상징이다.

프랑스 파리를 유럽 문화의 변방으로 밀어낸 빈의 힘은 ‘공존’에서 왔다. 19세기 오스트리아는 유대인 차별을 없앴다.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갖고 있는 유럽의 인재들이 빈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들은 골방에 처박혀 있지 않았다. 살롱으로 모여들었다. 서로를 배웠다. 노벨상 수상자 에릭 캔델은 클림트가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를 이런 문화의 상징이라고 평가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 그리고 정자와 난자의 이미지는 의학, 정신분석학,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라는 얘기다. 클림트에 의해 융합이 일어난 셈이다. 다양성이 뒤얽혀 창조성을 낳았다.

17세기 네덜란드도 그랬다. 화가 얀 베르메이르의 ‘델프트의 풍경’이라는 그림. 그림에는 기독교와 가톨릭교회가 나란히 등장한다. 공존과 다양성의 시대였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다양성과 공존의 힘은 자연에서도 나타난다. 한 연구자들이 실험을 했다. 두 개의 닭장을 만들었다. 하나에는 알 잘 낳는 닭만 골라 넣었다. 다른 하나에는 잘 낳는 놈, 못 낳는 놈, 적당히 낳는 놈을 고루 넣었다. 우수한 닭 중 일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생산성은 떨어졌다. 치열한 경쟁심리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해석했다. 골고루 섞인 닭장 안은 평화로웠다.

이렇듯 다양성은 창의성과 경쟁력이 시작되는 샘과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변화는 빠르고, 전략은 미로가 됐다. 장기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 가지 전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생각이 만나는 ‘창의적 접점과 연결’을 찾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은 아닐까.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41925961

2017년 5월 19일 금요일

한국인의 이민자 인식

선생님께서는 다음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외국인 이민자들이 범죄율을 높인다”
  • “외국인 이민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화를 통해 더 좋은 한국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 “외국인 이민자들은 일반적으로 한국 경제에 도움을 준다”
  • “외국인 이민자들이 한국인의 직업을 빼앗아간다”
  • “한국 정부는 이민자들을 돕는데 너무 많은 돈을 쓴다”
  • “한국 정부는 불법 이민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좀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근 외국인의 유입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수용성은 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인의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인식은 각 부문별로 다소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약하면 사회적으로는 유보적, 경제적으로는 긍정적, 정부의 이민자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먼저 사회문화 부문에서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은 긍정, 부정이 섞여 있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외국인 범죄가 보도되면서 외국인 이민자가 범죄율을 높인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과반(53.0%)을 넘었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35.2%였고, 모름/무응답은 11.8%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외국인 이민자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화를 통해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의견은 53.2%로 다수였다. 외국인 이민자가 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한국인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었다.

경제 부문의 경우, 한국인은 외국인 이민자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63.2%의 한국인은 외국인 이민자가 한국 경제에 도움을 준다고 답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은 비율은 24.8%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모름/무응답은 12.0%였다. 또 외국인 이민자가 한국인의 직업을 빼앗아 간다는 주장에는 66.0%가 동의하지 않았고, 이에 동의한 비율은 26.5%였다. 한국인과 외국인 이민자가 주로 종사하는 노동시장이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 이민자를 경제적 위협으로 보는 비율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정부의 이민자 정책에 대해 물었다. 최근 다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정부의 이민자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정책에 대한 평가는 곱지 않았다. 정부가 이민자를 돕는데 너무 많은 돈을 쓴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 비율이 44.5%였으나, 37.5%의 한국인은 여전히 이 주장에 동의했다. 정부의 이민자 정책이 본격화 되지 않았음에도, 한국인 사이에 ‘자국민 역차별’ 의식이 존재했다. 이는 정부의 현행 다문화 정책이 온정적, 시혜적 복지서비스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불법 이민을 방지하기 위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비율은 67.7%로 다수를 차지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외국인 이민자의 강력범죄가 불법 이민자 차단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http://www.asaninst.org/contents/%ED%95%9C%EA%B5%AD%EC%9D%B8%EC%9D%98-%EC%9D%B4%EB%AF%BC%EC%9E%90-%EC%9D%B8%EC%8B%9D/

2017년 3월 26일 일요일

남성 55%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 줄어든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한국 남성들의 왜곡된 인식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은 여성이 조심하면 성폭력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노출이 심한 옷차림에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성폭력에 대한 가부장적 인식은 여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7일 여성가족부가 전국 성인남녀 7천200명을 상대로 한 '2016년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 응답자의 55.2%가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은 줄일 수 있다'고 답했다. '매우 그렇다'가 9.5%, '약간 그렇다'는 응답은 45.7%였다. 여성 응답자 중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42.0%였다.

남성의 54.4%는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고, 56.9%는 '여자가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차를 얻어 타다 강간을 당했다면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도 각각 44.1%, 51.1%가 같은 질문에 동의했다. 남성 응답자의 47.7%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42.5%는 '여자가 처음 만난 남자의 집에 가는 것은 성관계를 허락한다는 뜻이다'라고 답했다.

'어떤 여자들은 성폭행당하는 것을 즐긴다'고 생각하는 남성도 8.7%나 됐다. '수치심이 있는 여자는 강간신고를 하지 않는다'(35.6%)거나 '강간을 신고하는 여성들은 상대에 대한 분노나 보복심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31.3%)는 등 성폭력 신고에 왜곡된 시각을 가진 남성도 셋 중 한 명 꼴이었다.

성폭력과 관련한 인식을 묻는 22가지 질문 대부분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심각한 가부장적 사고를 드러냈다. 다만 '남자는 성충동이 일어나면 이를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여성의 30.7%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22.0%만 동의했다. 설문결과를 종합해 가장 가부장적인 사고를 4점으로 놓고 봤을 때 남성은 평균 2.1점, 여성은 1.9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최근 1년 사이 성추행·강간(미수) 등 신체적 성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여성은 1.5%로 2013년 조사 때 2.7%에서 줄었다. 평생 한번이라도 신체적 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여성 21.3%, 남성은 1.2%였다. 가장 흔한 성폭력은 '성기 노출'로 여성의 30.4%가 피해 경험이 있었다. 성추행이 21.5%, 음란 메시지 등 PC나 휴대전화를 이용한 성폭력은 12.1%였다.

여성에 대한 신체적 성폭력은 가해자가 아는 사람일수록 심각했다. 폭행·협박 없는 성추행은 가해자가 모르는 사람인 경우가 87.8%였다.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피해를 당한 경우(78.1%)가 많은 탓이다. 반면 폭행·협박을 동반한 성추행(70.0%)과 강간(77.7%), 강간미수(60.1%)는 가해자의 3분의 2 이상이 아는 사람이었다. 여성의 1.5%가 피해 경험이 있는 스토킹도 82.3%가 아는 사람에게 당한 경우였다.

여성 피해자의 52.0%는 피해 상황에서 '자리를 옮기거나 뛰어서 도망쳤다'고, 20.5%는 '피해 다녔다'고 답했다. 15.0%는 저항하지 못한 채 그냥 당했고 '힘으로 저항하고 싸웠다'(1.6%)거나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다'(3.1%)는 피해자는 소수였다. 도움을 요청한 상대는 이웃이나 친구가 82.6%로 가장 많았고 가족·친척이 49.5%, 선·후배가 18.8%였다. 경찰은 2.2%, 성폭력상담소 또는 보호시설은 0.1%에 불과했다.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 경찰을 찾지 않았다는 응답이 49.1%로 가장 많았지만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라는 대답도 21.3%나 됐다.

성폭력 피해를 겪은 여성의 20.4%는 정신적 고통을 경험했고 신체적 상처를 입었다는 응답도 0.6%였다. 반면 남성 피해자는 2.6%만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답했다.여가부 관계자는 "여전히 성폭력 피해를 외부에 알리지 않거나 공적 지원체계보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여성과 남성이 모두 참여하는 캠페인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http://v.media.daum.net/v/20170227120145723?f=p

2017년 3월 6일 월요일

양극화 심화 원인은 ① “부 세습” ② “노동시장 불평등”

서민층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중산층 “능력따른 보상보다 부 세습따라 지위결정”

국민 10명 가운데 3명은 우리 사회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부의 대물림을 꼽았다.

<한겨레>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 ‘우리 사회에서 심화하고 있는 격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전체의 31.0%가 ‘부의 세습으로 인한 계층이동의 어려움’이라고 답변했다. 그다음으로는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 같은 ‘노동시장의 불평등’(22.2%)과 ‘과도한 학벌사회’(16.5%), ‘부족한 사회안전망’(14.7%)이 뒤를 이었다. 한 집안에서 축적된 부가 여과없이 대물림되는 현상을 사회적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한 셈이다.

격차사회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주로 40대 이하(37.2%), 대학 재학 이상(38.0%), 월평균 가구소득 400만원 이상의 중·상위소득(40.5%), 자영업(40.0%), 화이트칼라(38.4%) 응답자는 부의 세습을 격차 심화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중졸 이하 저학력(33.8%), 200만원 이하 저소득(33.0%), 블루칼라(30.5%) 응답자는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첫째 원인으로 지목했다. 직접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생업을 유지하는 집단이 노동 불평등의 심각성을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계급에 따른 시각 차이가 뚜렷하다. 특히 저소득·저학력자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이 설문 결과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등 서민층은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를 지적하고 있고, 고학력·중산층은 자신의 능력에 따른 보상과 평가보다는 부의 세습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는 ‘귀속주의 원리’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년 세대는 다른 연령층에 견줘 학벌사회의 심각성을 더욱 절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23.7%가 학벌사회를 지목해 평균보다 7.2%포인트 높았다. 특히 대학생 연령대인 19~24살의 27.7%는 학벌사회가 부의 세습(27.2%)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직장생활에 접어든 30대는 모든 세대 가운데 가장 적은 11.0%만이 ‘학벌사회’를 꼽았다.

통상 ‘계급 역전’의 유일한 도구로 인식되는 교육의 기능에 대해서는 비관적 시각이 갑절 이상 많았다. ‘교육이 격차사회 해소에 제 역할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63.8%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31.6%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의 장은숙 회장은 “지난 5년간 교육정책에 의한 상실감이 드러난 결과로 보이며, 앞으로의 정책은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도록’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5년 뒤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58.6%
53.4% “노력만큼 보상 못받아”
61.6% “한국은 폐쇄적 사회”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대다수는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면서도 열에 여섯은 나아질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보고 있었다.

‘5년 뒤 나의 경제적 지위 변화’를 예상해보라는 물음에 58.6%가 ‘지금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고 답한 응답자는 40.6%에 그쳤다. 연령별로는 40대 초반(40~44살), 직업별로는 생산직 종사자가 미래를 가장 어둡게 전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각 71.2%, 71.1% 비율로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의 배경에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사회체제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우리 사회 현실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과 인정을 받는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절반 이상(53.4%)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또 부모의 지위와 자녀의 계층상승 기회와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는 61.6%가 ‘연관이 깊다’고 답해 더 이상 계층 변동의 기회가 열려 있지 않은 폐쇄사회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이 훨씬 우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사회가 개방적 사회에 가깝다는 대답은 34.4%에 그쳤다.

개인의 노력과 부모의 경제적 지위 가운데 자녀의 성공에 더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무엇이냐고 묻자, 54.9%가 ‘부모의 경제적 지위’를 지목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7730.html#csidx4879658957f348ba75b69fdeb4bd093

2017년 3월 4일 토요일

'청년 실업 국가' 일본의 경고 "무업 사회!"


2015년 11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청년(15~29세) 실업자 수는 34만 명이다. 청년 1000명 중 81명(청년 실업률 8.1%)이 구직 활동을 하고 있지만 직업이 없다. 청년 실업률은 사실 현 상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다. 고시생, 구직 단념자 등은 이 통계에 빠져 있다. 같은 기간 45만 명이 넘는 청년이 구직을 단념한 상태다.

실질 청년 실업률이 20%에 달한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2014년 1월 23만 명이던 구직 단념자 수가 채 2년이 안 돼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서울 소재의 명문대를 나왔다선 치더라도, 특정 전공이 아니면 백수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다. 

한국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일본은 이처럼 청년이 취업하지 못하는 현실을 '무업 사회'라는 신조어로 설명했다. '한 번 직장을 잃으면, 혹은 적정한 시기에 취업하지 못하면 그 상태를 벗어나기 매우 힘든 사회'라는 뜻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업(無業)'의 정의는 뭘까. 실업은 알겠고, 니트(NEET)도 알겠고, 프리터도 익숙한데, 무업이라는 단어를 정의하기란 좀처럼 쉽잖다. 일본 내각부와 후생노동성은 '15~34세의 비노동력 인구 중 가사도 통학도 하지 않는 자'를 무업자로 정의한다. 2013년 현재 일본의 무업자는 63만 명이며, 인구 중 약 2.3%의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는 젊은 비 취업자를 뜻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런 신조어를 정부 공식 통계로 사용한다는 데서 두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청년 실업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본다는 것과, 이른바 '청년'의 연령대를 우리보다 더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늙어가는 일본의 사회 인식(젊은 층의 연령대를 더 넓힘)이 통계에 반영되었고, 프리터 사회가 정착됨에 따라 단순 실업률만으로는 청년층의 어려움을 적절히 통계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무업 사회>(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펜타그램 펴냄)는 2013년 <청년 무업자 백서 : 그 실태와 사회경제구조 분석>이라는 책을 내 무업자 현실의 심각성을 일본 사회에 알린 NPO(비영리기구) '소다테아게넷(길러내는 네트워크)'의 이사장 구도 게이와 니시다 료스케 리츠메이칸 대학교 특별초빙 교수가 공동 저작한 책이다.

면접만 보면 머리가 하얘지는 공포감을 극복하지 못해 히키코모리가 된 청년, 여러 번의 해고로 상처를 입은 후 취업을 포기한 청년, 직원을 물건처럼 부리는 대기업 생활에 환멸을 느껴 꿈을 잃은 청년, 히키코모리 등 소다테아게넷에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의 사례를 수록하고, 이들을 위해 일본 사회, 일본의 비영리기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리했다. 책 후반에는 소다테아게넷의 프로그램 덕분에 일을 시작하게 된 여섯 청년의 이야기도 수록했다. 

책을 읽으면 일본 사회의 심각성이 생생히 보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병든 오늘까지 겹쳐 보인다. 일본이 고민하는 이 어려움은 꼭 우리의 어려움과 같기 때문이다. 거대 재벌마저 신입사원까지 무차별적으로 해고하려는 사태가 이미 우리의 현실임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책에서 진정 배우고,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은 소다테아게넷으로 대표되는 NPO와 같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는 체계화된 조직의 존재, 그리고 이들의 축적된 연구 결과다. 소다테아게넷 사무실에는 매일 같이 1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무업자'들이 온다. 이들 중에는 그냥 대화만 나누고 가는 사람이 있고, 그 중에는 대화에도 참여하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다. 

대신 이들은 정해진 목표를 갖고 움직인다. 취업 트레이닝이 그것이다. 단순 노무부터 시작해 취업 알선 프로그램, 재취업을 위한 전문 교육이 이뤄진다. 그리고, 취업 현장과 이들을 연결해 아르바이트로, 인턴으로 취업시킨다. 

그렇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조직은 있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이 무업자를 분류해, 그들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무업 사회>는 구직형(취업할 의사가 있고, 구직 활동을 하는 이)과 비구직형(취업 의사는 있지만, 구직 활동은 하지 않는 이), 그리고 비희망형(취업 의사도, 구직 노력도 없는 이)의 3가지 형태로 무업자를 구분하고, 이들과의 심층 면접 결과 이들 세 유형의 사람이 원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파악한다. 예를 들어 일본 사회에서 심각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적잖은 히키코모리는 비희망형 유형에 속할 것이고, 이들은 단순 취업보다 '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나 '타인과의 연결'을 더 원한다. 이들에게 곧바로 취업을 알선하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무업 사회>는 강조한다.

이 책이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업자로 분류되는 이 중 적잖은 이가 대학 교육 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거나(비희망형의 고학력자 비율이 가장 낮았다), 일반적인 대인 관계에서조차 어려움을 겪는 이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청년 실업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회 대부분의 관심은 대졸자로 대표되는 고학력자에 집중되어 있다. 고졸 이하의 학력자는 우리 사회에서 아예 관심 밖의 영역에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일본 사회는 이들의 취업을 위해서도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짐작 가능하다. 이 책을 통해 드러난 우리와 일본의 가장 다른 점일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백수가 많다. 현재 취업한 젊은이 중에도 적잖은 이가 미취업 기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우리는 언론에 나오는 히키코모리형 청춘이나 저학력자 혹은 개인의 사유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볼 때마다 '저들에게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이 책은 그런 나쁜 선입견을 깨주는 통계도 실었다. 직업으로 대표되는 사회와의 교류, 타인과의 교류를 누구보다 갈망하는 이들이 바로 무업자라는 점이 통계로 입증된다. 취업을 하지 못하는 이의 문제는 그 개인에게 돌려서는 안 되며,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방증이다.  

새해에는 우리의 청년 실업 대응 체계가 더 정교하고, 더 세심하며, 더 넓은 시야를 가지기를 기원한다. 이 책은 그 시발점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2017년 3월 2일 목요일

노오력!", 탈출구 없는 헬조선 청년의 비명

극장에 간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정부 광고가 태극기를 배경으로 나온다. 거짓이다. '나라를 사랑하자'는 말은 세상 물정 모르는 꼰대나 하는 X소리다. 지난달 한 리서치 회사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4명 중 3명 이상(76.9%)이 이민을 고려했다고 답했다.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 살고 싶다고 응답한 이의 비율은 26.5%에 불과했다. 탈조선(이민)이 해답이다. 국민은 이미 한국을 버렸다.

주위를 돌아본다. 파렴치범이 국회의원이 된다. 돈 많은 집에 태어난 놈만 좋은 대학에 간다. 돈이 많아야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 있고,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다. 꿈을 꿀 수 있는 자는 한정되어 있다. 금수저(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다는 말에서 비롯됐다. '은수저'보다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제공할 여력이 있는 선택받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로 태어나지 않는 한, 한국은 지옥이다. 헬조선이다. 

물론 나보고도 노력하라고 한다. 너는 왜 공부하지 않고 남들만 비난하니? 남 부러워할 시간에 자기 계발에 더 매진해서 좋은 직장으로 옮기면 되지 않니? 이건 마치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땀 흘리며 올라가려는 바보짓과 같다. 죽을 듯 노력해야 겨우 제자리를 지킨다. 그 사이, 금수저는 편안하게 상승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말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의 위치를 얻었어요." 

그러니 '노오력'('노력하라'는 꼰대의 말을 비웃는 조어)하는 건 바보다. 어차피 안 된다. 직장에 들어가 봐야 기다리는 건 직원을 부품 취급하는 군대 문화고, 죽을 듯 일하다 잘릴 미래다. 자영업 해봐야 망한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한다. 대학에 가봐야 남는 건 빚이고, 백수가 된 미래다. 그러니 헬조선이다. 탈조선(이민)만이 답이다.

그러니 비웃음으로 위안한다. '네가 잘 되면 안 된다'는 불안함과 '나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절박함이 뒤섞였다. '~충'이라는 명사는 살려달라는 절규다. 이들은 어차피 안 된다는 걸 안다. 투표해도 안 되고, 시위해도 안 된다. 공부해도 안 되고, 일해봐야 안 된다. 결혼은 능력 있는 자의 사치고, 내 집 마련은 동화 속 이야기다. 그러니 모두가 나처럼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그나마 사람이 평등한 순간은 함께 망할 때뿐이다. 

이들에게 뭔가를 이룩한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는 모두 적이다. 저들은 절대 나를 이해 못하니까. 산업화 세대는 굶지 않는 미래라는 희망을 품었다. 똑똑한 민주화 세대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신념을 지녔다. 지금은 절망밖엔 없다. 그러니 민주화 꼰대, '씹선비'는 '일베충'의 적이 된다. 혐오를 방어 기제로 삼은 버림받은 청춘이 비난할 수 있는 유일한 절대 악이 된다.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민음사 펴냄)는 흔들리지 않는 전선을 요약한다.

"탈조선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디씨위키의 '탈조선' 항목에 등장하는 문구다. 지금의 청년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압축했다. 이들이 기댈 희망은 한국에서 벗어나는 것밖에 없다. 탈조선이라는 단어에는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탈조선에는 율도국을 찾자는 신념도, 체제 저항도 없다. 단지 내가 발을 디딘 한국이 죽도록 싫다는 절규밖에 없다. 그저 '여기서 살기 싫다'는 말이다. 일자리를 마련해준다고, 학자금 대출을 늘려준다고, 신혼부부 주택기금 제도를 개선한다고 이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말이 보통명사화된 건, 오늘의 한국이 처절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우리는 철저히 실패했다.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내놓는 처방은 모두 무용지물이다. 민주화 업적을 자랑하는 586 세대의 대안을 이른바 '보수화한' 청춘이 거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넥타이 부대의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희화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들은 한국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업적을 자랑한다. 그래선 헬조선에 떨어져버린 이들과 소통할 수 없다. 우리는 철저히 실패했다.

<노오력의 배신 : 청년을 거부하는 국가 사회를 거부하는 청년>(조한혜정·나일등·엄기호·이충한·이영롱·최은주·천주희·양기만·강정석·이규호 지음, 창비 펴냄)은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노오력, 노답, ~충, 헬조선 등 지금 인터넷 공간을 뒤덮은 절망적 신조어를 키워드로 뽑아 청년 세대의 절규를 직접 듣고, 왜 그들이 이와 같은 태도를 보이게 되었는가를 파헤친다. 저자들의 이름에서 보듯, 사회학을 공부한 이들이 직접 인터뷰, 연구 등의 조사를 거쳐 공동 참여한 이 책은 우리는 철저히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데 집중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 시간은 가장 길고 수면 시간은 가장 짧은 나라, 아동과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은 수직 낙하하는 나라에서 살아날 방법은 떠나거나, 벌레가 되는 삶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고 강조한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 이르러 이 프로젝트를 묶은 조한혜정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말한다.

"생활을 유지할 직업이 급격히 사라지는 '무업사회', 모두를 고립시켜버린 '무연사회', 사람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무용사회'에서 탈존(脫存)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감지한 청년들이 이제 대대적인 전환을 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곧 '저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과거 학생들의 선언문과 같다는 얘기다.

따라서 책은 청년이 만든 이들 조어로부터 '청년 문제' 해결을 넘어, 한국 사회 기본 설계를 바꿔야 함을 강조한다. 이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이 연결된다. 이제 청년 담론을 대하는 태도도 바꿔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삶의 태도도 바꿔야 한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한국의 A부터 Z까지 모든 게 지옥이라는 뜻이므로, 전체를 다 뒤집어야만 한다.  

책은 섣부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실은 그래야 맞다. 모든 게 잘못된 사회에서 '이것을 해결하면 된다'고 말하는 이는 거짓 선지자다. 그는 헬조선에 새로운 지옥을 더할 적그리스도다. 책은 새롭게 일어나는 청년의 작은 공동체적 대안을 부분 조명하며 '보호를 조직'하는 데서 진정한 탈조선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진정한 학습을 시작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조한혜정 교수는 구체적으로 청년 국민/시민 배당제도, 청년 자치 공간 지원, 갭 이어 제도 등의 구체적 대안을 출발점으로 제시한다. 

이에 꼭 찬성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현실 인식이다. 왜 당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충'이라는 말을 저들이 쓰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왜 당신의 자식이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며 거짓된 꿈을 갖기를 거부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야 출발점이 보인다. 올해 초 소설가 손아람이 써 화제가 된 '망국 선언문'을 복기한다. 이 책에서도 인용했다.

"잠시 청년들에게 물어주십시오. 줄줄이 늘어선 초록색 빈 병으로 어지럽혀진 대학가의 술집 취객에게, 외로움을 둘 공간조차 없이 비좁은 고시원의 세입자에게, 자정의 어둠을 몇 달째 지켜온 무표정한 아르바이트생에게, 이 나라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주십시오. 그들은 서슴없이 멸망을 입에 담을 것입니다. 감히 멸망을 말하지만 악의조차 감지되지 않는 평온한 목소리에 당신들은 경악해야 합니다. (…) 청년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으며, 불공평한 생존보다는 공평한 파멸을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국호를 망각한 백성들처럼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릅니다. () 이 나라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대기업 매출액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을 뿐 기업소득과 개인소득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OECD 최하위권에 머뭅니다. 오로지 기업만이 암세포처럼 무한히 자라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국민소득이 30만 달러를 돌파하고, 세계 100대 기업 명단이 모두 대한민국으로 채워진들, 우리 각각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도 살 수 없는 높다란 탑을 쌓아올린 뒤 먼발치에서 그 웅장한 풍채를 감상하는 게 이 나라 경제의 목표였습니까?" 

2017년 2월 28일 화요일

한국, 전세계에서 최악의 소득 양극화 국가

한국이 주요국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소득 양극화가 큰 나라로 조사됐다. 양극화 속도는 가장 빨랐다. '헬조선' 등의 비관적 신조어가 유행하게 된 근본 배경으로 풀이된다.

4일 국회입법조사처가 세계 상위 소득 데이터베이스(The World Top Income Database, WTID)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2년 기준 한국 소득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44.9%였다.

소득집중도는 소득 상위권 특정 구간의 집단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의 경우, 전체 국민 소득 절반 가까이를 상위 10%가 차지함을 뜻한다.

이는 47.8%를 기록한 미국 다음으로 높다. 2012년 미국과 한국에 이어 상위 10%의 소득집중도가 40%를 넘어선 나라는 싱가포르(41.9%), 일본(40.5%)뿐이었다. 영국(39.1%), 프랑스(32.3%), 뉴질랜드(31.8%), 호주(31%)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이 이처럼 소득 양극화 국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1997년의 외환위기다. 이후 한국은 IMF의 지시에 따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여파로 일부 대기업이 세계적 수준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등 경제 구조 재편이 일어났으나, 이에 따라 대기업 직원 등 일부 좋은 직업으로 얻는 소득과 그렇지 않은 소득 수준의 격차가 커졌다.

이와 관련, IMF 체제 이전인 1995년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29.2%에 불과했다. 당시에도 40%를 넘었던 미국(40.5%)은 물론, 싱가포르(30.2%), 일본(34%), 영국(38.5%), 프랑스(32.4%)보다 낮았다. 이때만 해도 탄탄한 중산층이 형성되었음을 추론 가능하다.

하지만 IMF 체제가 안착한 후, 한국의 소득 양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2000년 상위 10%의 소득집중도가 35.8%였고, 2008년에는 43.4%로 크게 벌어져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양극화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문제다. 1995년부터 2012년 사이 미국의 소득집중도는 7.3%포인트 올랐는데, 이 기간 한국의 상승 폭은 15.7%에 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소득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이번 조사 결과가 2012년 자료인 만큼, 이미 미국을 앞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반면 이 기간(1995~2012년) 프랑스의 양극화는 1995년 32.4%에서 2012년 32.3%로 다소 개선됐다. 뉴질랜드(32.6%→31.8%), 말레이시아(27%→22.3%)의 소득 불평등 정도도 개선됐다.

특히 한국의 양극화 문제는 자산 불평등 정도를 고려하면 더 심각하다. 자산 집중도를 쉽게 보여주는 통계 자료는 찾기 어렵지만, 대물림되는 자산 중 가장 중요한 부동산 관련 지표는 한국의 자산 불평등 정도를 쉽게 보여준다.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국세청과 안전행정부가 제출한 2008년~2014년 부동산 소유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9년 상위 1%가 보유한 부동산 가치는 457조 원이었다. 이후 정부의 관련 규제 완화 정책에 힘입어 2011년에는 482조 원으로 늘어났고, 2012년에는 500조 원을 넘었다. 2014년에는 519조 원까지 늘어났다.

상위 10%로 대상을 늘릴 경우, 2009년 1311조 원, 2010년 1381조 원에 이어 2012년에는 1454조 원으로 폭증했다. 2014년에는 1497억 원까지 올랐다.

2014년 기준, 부동산 보유 상위 100명은 1인당 평균 주택 166채(공시가격 158억 원)와 1115억 원 상당의 토지를 보유했다. 반면 최하위 10%의 부동산 보유금액 평균은 500만 원이었다. 상위 1% 개인이 하위 10%에 비해 646배 많은 부동산을 보유했다.

이 때문에, 소득집중도를 어느 정도 개선한다손 치더라도 만연한 양극화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어렵다. 부의 유지와 확대를 위한 중요한 밑바탕인 교육, 취업 기회가 부모 세대의 자산과 소득에 연동되는 점을 고려하면,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지 않는 한 한국의 소득집중도, 자산 불평등 정도는 지속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김영주 의원은 "자산양극화는 소득양극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자산양극화 완화야말로 양극화를 해소하고 공정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0967

2016년 9월 7일 수요일

시몬 바일스가 전한 '사회적 배려'의 힘

흑인 여자체조선수 시몬 바일스(Simone Biles, 만 18세, 145cm)가 브라질 올림픽에서 금메달 2관왕이 된 것이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된 것은 가족사도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





(여섯살 시몬(왼쪽)과 동생 아드리아/사진=Texas Monthly)

시몬의 스토리는 체류 외국인 200만명 시대를 연 '다문화-다인종사회'이자 조손가정과 한부모 가정이 점증하는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전통적 의미'의 가정이 해체되는 사회변화, 급속한 인구변화를 겪는 한국사회에서 선의를 가진 개인이나 공동체의 배려가 '버려진 아이들'에게 얼마나 결정적인 반려자가 될 수 있으며, 그 아이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지를 짐작케 한다.      

시몬의 유연하고 파워풀한 동작은 타고난 자질이기도 하지만 두 여성의 끈질긴 보살핌과 격려가 없었다면 꽃 피기 힘들었다고 한다. 어린 시몬에게는 외할아버지(론 바일스)와 재혼한 넬리와 동네 체조코치로 있던 에이미 부어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모의 알콜 및 마약 중독으로 시몬과 동생 아드리아는 위탁가정을 전전하고 있었는데, 외할아버지와 의붓 외할머니(넬리)가 두 아이를 거둬 들였다고 한다.

시몬은 유치원 시절부터 동네 체육관에서 체조를 시작했는데, 이 아이의 재능을 알아 본 에이미 코치가 주니어 무대를 향해 키우기 시작했다

시몬은 생모를 인지하고 있지만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외할머니 넬리를 엄마로 인식하고 있다. 넬리가 늘 자신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시몬의 연속동작)


시몬은 지난 4월 CNN 켈리 왈라스(Kelly Wallace)와 주고 받은 이메일에서 넬리 할머니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히 밝혔다

“내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시고 어떤 일에도 오랫동안 울적해지지 않게 하셨어요. 체육관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면 늘 함께 해주셨어요.”

넬리는 145cm의 작은 키를 가진 시몬에게 “작다는 것이 능력을 제한하거나 널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고 격려했고, 시몬도 스스로 힘과 자신감이 넘치는 선수로 거듭나고자 노력했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오늘날 엄마의 역할에 대해 미국 엄마의 75% 가량이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고 응답했으며, 또한 대부분이 모성에 대한 요구를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수긍했다. 응답자의 2/3 가량이 엄마가 된 이후에 보다 커다란 감성적 힘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답했다.

넬리는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손녀가 잠시라도 침울하지 않도록 늘 깨우고 격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몬의 생활 속에 함께 하면서 체조선수로서의 꿈, 올림픽에 대한 꿈에 집중하게 했다는 것이다.


시몬은 CNN에 보낸 이메일에서 자신이 평소 얼마나 준비에 충실했으며 늘 올림픽 현장을 그려 왔는지 전했다. 그녀는 교회에 나가 마음을 내려 놓고, 평소 쇼핑과 손톱미용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18세에 불과한 시몬 바일스는 브라질 올림픽(금 2)과 세계선수권대회, 전미체조대회 등을 통틀어서 모두 16개의 메달(금12·은2·동2)을 기록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추가 획득이 유력해 금메달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나이 어린 여자선수의 올림픽 금메달이나 흑인 여자선수의 체조 금메달은 드물지만, 세 살 때 위탁가정을 전전했던 작고 연약한 흑인 여아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두 여성의 도움으로 성장해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은 더욱 드문 일이다.

외할아버지 론은 위탁가정에 있는 자매 중에서 어린 동생 아드리아만 데려 오려고 했는데, 그와 재혼한 넬리가 여섯살 시몬도 함께 데려 왔다고 한다. 그래서 '흑진주 시몬'의 비상은 '넬리 판타지아'이기도 하다.

인류는 국적과 인종, 종교, 신념을 떠나 나이 어린 흑인선수에 환호하고, 전쟁터에서 살아 남아 열심히 뛰고 있는 '지구촌의 난민' 대표팀에게 갈채를 보낸다. 그리고 동네에서건 하나의 사회에서건 나아가서 전지구적 차원이건 '사회적 배려의 힘'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잘했어!"  

 출처: http://kalee.tistory.com/682

2016년 8월 10일 수요일

교회, 절망과 무기력의 공동체

네 생각은 접어 둬~

교회에서 보게 되는 가장 답답한 상황은 사람들이 교회 구조나 문화, 특별히 목회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거나 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열린 공간에서 하지 못하는 얘기는 대부분 끼리끼리 모인 자리의 뒷담화가 된다. 물론 침묵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그런 일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교회 전체를 혼란과 위기에 빠뜨리는 갈등이 생기곤 한다. 물론 이것은 뒷담화가 그나마 공식 현안으로 등극됐을 때의 얘기다. 그렇지 않은 경우 침묵이나 뒷담화에 지친 사람들은 혼자 포기하거나 교회를 떠나는 결정을 한다. 그냥 개인 사정이라고 얼버무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깊은 절망감과 무기력감, 그리고 패배감이 있다.

교회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뒷담화가 성행하는 곳이다. 그것은 교회 구조와 문화에 대해 공식적으로 비판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목회자 및 당회를 중심으로 한 교회의 운영 구조와 수직 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암묵적 약속이 존재한다. 그것이 곧 '신앙'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고 교회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는, 은연 중에 강조되고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원칙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교회 안의 구조와 문화를 '하나님의 일'을 위한 도구로 포장하고 신성화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고 성서의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딱지 붙이고 소외시킨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살아 남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려면 찍소리 하지 말고 견뎌야 한다.

재밌는 것은 사회에서 아무리 능력을 인정 받고, 비판적 태도로 문제에 접근하고, 창의적 사고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도 교회에서는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가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새로운 해석과 접근을 기존의 교회 구조나 문화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배척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것이 목회자와 관련된 것이라면 절대 수용 불가능한 일이 되곤 한다. 그러니 아무리 똘똘한 사람이라도 교회에 가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각이 없거나 절대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믿음이 좋아진 것인지, 멍청이가 된 것인지 아리송한 가운데 혼란을 겪게 된다.    

묻지도 듣지도 않는 교회

교회의 수직적인 구조와 경직된 문화가 야기하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묻지도 듣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묻기'와 '듣기'가 아닌 일방적으로 '말하기'와 '명령하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것에 '예', 또는 '아멘'이라고 답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만큼 잘 묻고 듣는 곳이 어디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교인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묻고 듣고, 기도하고 지지하는 것이 그야말로 생활화된 곳이 교회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개인의 소소한 고민과 신앙에 대해 묻고 듣는 것은 해도 교회 전체의 운영과 세부 프로그램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견, 비판, 문제 제기, 필요 등은 묻지도 수렴하지도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암묵적인 압력으로 그것을 막는다.

사회 각 영역에서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의 필요를 파악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그리고 바람직한 접근으로 묻고 듣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구성원들의 생각과 필요를 파악하고, 무엇보다 수직적인 구조와 문화에서 생길 수 있는 왜곡된 관계를 건강한 관계로 바꾸기 위한 묻고 듣기가 이뤄지지 않는다. 간혹 폭발 직전에, 또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얘기하는 사람에게 '불만이 있으면 진작 얘기하지 그랬냐'는 말로 또 한번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런데 공식적인 체계나 절차를 통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의견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말할 수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특별히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믿음'의 잣대를 들이대는 교회에서 자신의 주관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이나 필요를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다. 앞뒤 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교회 안에서 자신의 힘을 자각 내지 확인한 사람이거나 눈치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수평적 관계를 위한 구조와 문화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교회가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각자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그 많은 교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 기준은 교회가 구조와 관계 면에서 평화로운 공동체가 될 가능성이 있느냐이다. 좀 더 설명하면 구성원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고 그런 관계를 적극적으로 인정, 수용, 독려하는 구조가 있느냐이다. 관계가 수평적이라는 것은 직책에 관계 없이 교회 구성원들 사이에 자유로운 소통과 교류, 정보교환, 상호존중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목회자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권위나 직책을 내세우지 않고 그것을 이용한 힘의 행사나 강요가 이뤄지지 않으며, 그 결과 모두가 신앙의 친구 또는 동료로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이런 수평적 관계를 인정, 수용, 독려하는 구조는 좀 더 정교해야 한다. 수평적 관계를 맺는 것을 개인의 선택과 능력에 맡겨두지 않고 체계와 절차를 통해 독려하고 관리해야 한다. 직책이 힘이 되지 않도록 모든 구성원들을 결정 과정에 포함시키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무엇보다 누구나 질문을 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열린 체계, 절차,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교회에서 뒷담화가 성행하고 그에 따라 이런저런 편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이런 체계와 절차 그리고 독려하는 환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교회는 수평적 관계나 그것을 독려하고 관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교회는 지나치게 수직적인 구조와 공동체 문화를 가지고 있다. 소수의 교회는 위계질서를 강조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수평적 관계를 독려하는 체계와 환경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래서 불만이 있는 사람은 뒷담화를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반복된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묻고, 그들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는 자유롭고 안전한 체계, 절차,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난 그것이 신앙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교회, 그리고 공동체를 강조하는 교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평화'까지 언급하는 교회라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구성원의 입장에서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자신의 영적 생활을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했고 열심히 헌금 내고 시간과 에너지도 투자하는데 굳이 눈치 보고 억압 받으면서 다닐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를 대자면, 난 교회가 구성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그들이 사회에서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큰 맥락에서 성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당장 그렇게 되지는 못해도 적어도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곳, 절망과 무기력이 지배하는 곳은 아니었으면 한다.  

2016년 8월 8일 월요일

갈등해결 연재 (1) 갈등은 왜 생기는가?

양립할 수 없는 목표와 불충분한 자원
갈등. 듣기만 해도 불편한 단어다. 갈등을 반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성적으로는 갈등이 인간사회에서 생기는 자연스런 일이고 잘 해결하면 개인과 집단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갈등은 영어의 conflict를 번역한 것이다. conflict는 ‘서로 때린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confligere에서 유래했다. 때문에 갈등은 본래 신체적, 물리적 대립을 의미했다. 국가나 무장집단 사이의 무력충돌이나 내전을 통틀어 conflict로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갈등 연구가 진행되면서 갈등은 물리적 대립을 넘어 삶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대립으로 정의됐다.

간단히 설명하면, 갈등은 양립할 수 없는 목표와 불충분한 자원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두 명 이상의 상호의존적인 사람들이 상대의 방해를 인지할 때 생기는 다툼이다. 이 정의를 해체해보면 갈등이 왜 생기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양립할 수 없는 목표와 불충분한 자원’을 살펴보자. 이것은 어떤 현안, 또는 일을 다루는 방식이나 원하는 결과를 두고 생각이 다르거나, 어떤 것을 원하는만큼 얻을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각자 주관적으로 내리는 판단이다. 사람이 다르니 원하는 방식과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고, 방식과 결과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원 또한 꼭 한정적인 것은 아니다.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하는 안전, 가치, 명예, 체면 등은 절대 한정적일 수 없고, 경제적 가치나 이익도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고려하면 한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개인과 집단은 원하는 방식과 자원을 먼저 한정해 놓고 그 안에서 자기만족을 최대치로 뽑아내려 한다. 때문에 상대와 대립하게 된다. 결국 주관적인 판단과 계산이 갈등을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상호의존적인 관계
다음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상호의존적’이란 말이다. 갈등 당사자들은 온 몸으로 거부할 말이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당사자들이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고 갈등이 악화될수록 상호의존성은 강화된다. 아파트 옆 동에 사는 시끄러운 이웃은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 그쪽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음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윗집과 나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이다. 윗집이 나를 배려해 한밤중에 조용히 해줘야 내가 충분히 잠을 잘 수 있고, 윗집 또한 내 항의가 없어야 편안히 살 수 있다. 그런데 갈등이 악화되면 나와 윗집의 관계는 더욱 상호의존적이 된다. 윗집의 판단과 대응에 따라 한 달에 두 번이 아니라 한 번만 다툴 수 있고, 대화의 여지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쪽의 판단과 대응도 같은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각자 편안한 생활을 하려면 다른 누구도 아닌 상대와 문제를 풀고 합의해야 하며, 합의한 것을 상대가 성실히 이행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호의존성은 각종 공공사업 시행이나 공공시설 건설 및 관리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공공기관과 지역주민들의 갈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 갈등 당사자들은 이런 상호의존성을 거부한다.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고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마지막으로 ‘방해를 인지’한다는 말을 생각해 보자. 뒤집어보면 이 말은 상대가 내 문제 제기를 방해로 생각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렇다면 같은 일을 왜 방해로 생각하는 것일까? 바로 관계의 질과 신뢰 때문이다. 관계가 좋고 상호 신뢰가 있으면 논란이 될 수 있는 일도 갈등이 아닌 대화의 계기가 되고, 그렇지 않고 상대에 대한 부정적 판단과 감정만 있으면 사소한 이견도 큰 갈등으로 변할 수 있다. 공공기관과 주민 사이의 이견이 신속하게 갈등으로 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갈등은 결국 주관적 생각과 판단이 충돌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렇지만 주관적 판단은 대부분 상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 이 글은 국민대통합위원회 갈등관리허브의 전문가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2016년 8월 6일 토요일

특성화고 졸업생 현장실습 및 취업의 문제

지난 5월초 경기도 군포에 거주하던 특성화고 졸업생(19)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도됐다. 그는 특성화고에서 전산ㆍ회계ㆍ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5개씩이나 취득했지만, 3학년 말부터 경기도 분당에 있는 모 외식업체에서 일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이 회사의 양식부에서 주로 ‘수프 끓이기’를 담당했는데 출근 첫날부터 숨지기 전날까지 131일 동안 대부분 11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집에서 회사까지 통근시간은 1시간 반이 넘었다고 하니, 충분한 휴식이 이뤄지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몸무게가 10㎏나 빠져 48㎏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이 사건은 졸업을 앞두고 사실상 취업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해당 학교와 담당 교육지원청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성화고 졸업생의 상당수가 졸업 후 취업보다는 진학을 선택하는 추세가 심화돼 왔다. 하지만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취업현장에서 '최하위 노동자'로 편입돼 열악한 처우와 비인간적 대우에 노출되기 쉽다는 우려가 높다.

2011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일주일 동안 70시간 이상 일하던 특성화고 출신 19세 취업생이 뇌출혈로 쓰러져 사회적 공분을 산 바 있다.

2014년에는 특성화고 18세 실습생이 충북 진천 CJ 제일제당 기숙사에서 투신 자살했고, 금영 ETS 공장의 지붕이 무너져 특성화고 19세 실습생이 희생됐다.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이 전공분야에 맞는 취업준비가 아니라 기피되는 일자리에 ‘최하위 노동자’로 편입되는 경로가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이 많다.

특성화고는 교과과정에 인권ㆍ노동권 등을 비롯해 인간으로서 존립할 수 있는 방어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내용을 의무화하고 근로기준법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또한 학교당국과 교육지원청은 각종 교육홍보와 상담코너를 개설해서 사회초년생들을 최소한 취업1년 가량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상담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매년 적잖은 졸업생들이 4대보험도 보장되지 않는 아르바이트, 비정규직에 내몰리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중고생은 물론이고 졸업후 아르바이트도 열악한 근로조건에 노출되기 싶다.

최근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를 전담하는 외주용역업체에 취업한 특성화고 출신 19세 젊은이가 지하철 현장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니며 분투했지만 서울메트로의 어처구니 없는 안전관리로 인해 세상에서 더는 살 수 없었다. 특성화고를 졸업한지 불과 3개월만이었다고 한다.

특성화고를 비롯한 고졸 취업생들의 비정상적 근로조건은 청년인구(15세~29세)가 격감하기 시작한 ‘초저출산국가’ 대한민국의 또 다른 기만과 치욕이 아닐 수 없다.

특성화고 3학년생을 비롯해서 18세 이상 고교생 및 청년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해서 그들의 요구와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된다.

출처: http://kalee.tistory.com/668

2016년 8월 4일 목요일

이성민,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 서평



한국에서 현대인이 철학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양철학이든 동양철학이든 외국의 사상을 수입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선 독자적인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번역'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장벽을 뛰어넘는다 해도, '번역투'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평론가와 철학 전공자들은 이러한 '번역투'를 뛰어넘기 힘들다. '허지웅식 허세투'라고 인터넷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사실은 (대중에게 생소한) '번역투'에 다름 아니다. 나 역시 과거에 그러한 번역투를 애용했던 사람으로서 허지웅을 비난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성민은 과거 슬라보예 지젝의 다수 저작들(<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까다로운 주체>, 등등)을 번역함으로써 번역가의 이력을 쌓았던 사람이다. 신기한 것은 그가 번역한 글은 원문 그대로의 '직역'을 고집했던만큼 '번역투'의 전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평소에 자기주장을 쓰는 글은 '번역투'와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그는 충실한 번역가인 동시에, 번역투에 의존하지 않고 '한국어'로 자기 사유를 전개하고자 한 유일무이한 저자이다.

그가 집필한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바다출판사)은 바로 공식출판물 상에서 '한국어'로 자기 사유를 전개한 최초의 성공적인 시도이다. (솔직히 그의 전 저작인 <사랑과 연합>은 너무 난해했다.) 물론 한국말로 서구철학이나 동양철학을 자기 나름대로 소개하고 소화하려 한 시도들은 없지 않으나 대부분 애초에 자신이 소개하려 했던 철학보다 더 '천박'해지기 일쑤였다. 왜냐하면 애초에 자신이 소개하고자 하는 사상 이외의 자기 사상이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그것은 독일 관념론 철학의 전통에서 흔히 구분되는 '이념(idea)'과 '개념(concept)'의 차이를 해설하는 구절이다. 그는 일상적인 것들, 가령 아이들의 놀이, 직업선택의 자유, 이름과 성명, 언론의 자유라는 일상적이고 작은 주제에 주목한다. 나아가 그는 그러한 일상적인 것들이 '이념'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 원래 그의 책의 제목은 <작은 것들의 이념>이다. 비록 출판사의 상업적인 (동시에 매우 올바른) 판단 아래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그는 우리가 일상의 언어사용에 있어서 왜 우리가 '관념론자'일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가령 우리가 맛있는 순대국밥을 먹을 때 '이 집은 순대국밥을 참 잘 끓여'라고 말한다. 그것은 순대국밥이 순대국밥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헤겔식으로 말하면 '순대국밥의 개념에 부합'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순대국밥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고 개별적인 순대국밥들이 그 '개념'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이상, 우리는 이미 부지불식간에 칸트-헤겔주의자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순간 식습관이 바뀌어서 순대국밥을 찾지 않을 때, 순대국밥이 순대국밥답다는 '개념'은 의미를 잃는다. 그때 순대국밥은 길가에 채이는 돌맹이 같은 것이고 우리는 길가에 채이는 돌맹이를 돌맹이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우리가 순대국밥을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 라캉식으로 말해서 순대국밥이 더 이상 욕망의 대상-원인이 아니게 될 때, 순대국밥은 순대국밥으로서의 '이념'을 잃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독일관념론에서 '이념'과 '개념'의 차이를 이토록 쉽고 직관적으로 설명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순대국밥을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고 순대국밥이 순대국밥으로서의 이념을 잃는다 해도 순대국밥 식당 주인들 외에는 슬퍼할 사람들이 없다. 하지만 순대국밥만큼이나 일상적인 무언가가 자신의 이념을 잃고, 더 이상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을때 슬퍼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이성민이 <작은 것들의 철학>에서 한탄하는 것은 바로 이 작은 것들, 가령 아이들의 놀이, 아버지의 성을 따라 이름을 짓는 관행, 직업선택의 자유, 친구들 앞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유, 등등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세태이다. 특히 인권담론과 페미니즘이 이 작지만 중요한 문제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고 개탄한다는 점에서 이성민은 분명 보수주의자이기도 하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인권담론과 페미니즘은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고 스스로 자처하지만, 사실은 일상의 문화와 관행에 전혀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지금까지 성과 이름의 구분이 있었는지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는 주제에, 그냥 성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것을 번갈아 쓰면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지하고 멍청하다. 그들이 왜 멍청한지를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책을 읽으면 된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말로 다시 한번 스스로 사유해보기를 권한다.

여하튼 이성민이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에서 아이들의 놀이와 교육에 주목하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가 요새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동기간의 또래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문명'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또래 아이들이 서로 자신의 욕망과 아집을 타협하고 공통의 규칙을 세워가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어머니-아이 간의 수직적인 관계로 이야기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문명의 기초로 생각하는 정신분석학은 틀렸다. 오히려 문명이라는 것은 아버지-어머니와의 관계를 떠나,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다름과 같음을 인정하고 같이 놀이를 하면서 공통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성민이 보기에 사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동서양 공통의 황금률도 바로 이 아이들의 놀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공자와 마호메트 그리고 예수의 '황금률'도 바로 이 '아이들의 놀이'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공자와 마호메트를 그리고 예수를 사상적으로 길러낸 것은 그들의 부모가 아니라 그들과 '또래집단'을 형성한 동기-제자들이다. 인류의 문명은 바로 이 "작은 것들" 혹은 "일상적인 것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오늘날 더 이상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놀지 않는다. 피구왕 통키 놀이도, 땅따먹기 놀이도, 고무줄 놀이도 하지 않는다. 골목길과 놀이터에서 사라진 그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메갈과 일베라는 가상의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심증이다. 이것은 문명이 붕괴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출처] 이성민,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 서평|작성자 박가분

2016년 8월 2일 화요일

노동가치론은 낡았는가 - 노동가치론의 수리경제적 모형화에 대하여



0. 들어가며
 최근 류동민 선생의 저작이 출간되었고 미약하게나마 노동가치론과 그 수리경제적 모형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인 것 같다. 아직은 제대로 정독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꼭 제대로 읽어보고자 한다. 수리경제학적 배경지식과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기초교양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볼만 하겠다. 아무튼 이 책이 출간된 것을 계기 삼아 관련해서 몇가지 품고 있었던 생각을 끄적여 본다.


1. 노동가치론은 무엇인가
  노동가치론은 한 마디로 인간의 경제활동을 추상화하는 한 가지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주류경제학의 효용가치론을 보면, 인간이 각자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물건을 교환한다는 이미지로 현실의 경제활동을 포착하고 있다. 한편 노동가치론은 인간과 인간이 물건을 교환하는 것 이면에서 경제적 분업 아래 각자의 사회적 노동을 부지불식간에 교환하고 있다는 이미지로 경제활동을 포착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19세기적인 패러다임이다. 마르크스의 패러다임은 다른 19세기 고전파 경제학자들보다 더 심오하고 질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면 논의가 너무 복잡해지므로 이쯤 해 두자.

  분명한 것은 19세기적인 패러다임이라고 해서 이론적으로, 실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드-필류의 말대로 "마르크스의 저작이 19세기에 씌었기 때문에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주장은 바보 같은 것이다."1 오히려 노동가치론은 일상의 상식 상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나머지 이제는 더 이상 이론적 관심사가 되지 않을 뿐이다. 존 로크의 고전적인 17세기 사회계약론이 오늘날 모든 정치사회적인 토론에서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듯이 말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사회계약론의 가정을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일례로 국가간 생산성을 비교할 때 마치 당연하다는듯이 너도 나도 '노동생산성'을 비교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노동가치론의 패러다임을 전제한다. 나아가 생산활동을 측정하는 척도로 고용을 기준으로 삼는 사고도 노동가치론의 패러다임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에 새삼스레 주목하지 않는다. 정치사회에서 사회계약론이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는만큼 노동가치설이 일상의 사고에 부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노동가치론의 공리를 보다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① 아무리 많은 유무형의 자산이 쌓여 있어도 노동이 투입(혹은 착취)되지 않으면 (기업과 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제순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② 노동의 투입(혹은 고용) 없이는 부가가치 또한 창출되지 않는다. 아래와 같은 마르크스의 언급이 바로 19세기적인 노동가치론의 패러다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국민이나 일년이 아니라 두서너 주일 동안만 노동을 중지해도 죽게 된다는 것은 어떤 어린애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욕망에 상응하는 상품의 양은 다양하고, 양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총노동의 양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사회적 노동을 일정한 비율로 분배해야 할 이러한 필요성은 절대로 사회적 생산의 특정한 형태를 통해서 지양되지 않고 단지 그 현상방식만을 바꾼다는 것은 자명하다.
- 1868년 7월 11일, 맑스가 루드비히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노동을 그만두면 경제가 마비되고 따라서 모두가 죽는다. 이러한 평범한 사실은 자본이 축적되고 기술력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욱 더 첨예해진다. 신고전파의 저속한(vulgar) 언어를 빌려 말하면, 자본이 축적될수록 노동은 희소해지며 노동이 희소해지는만큼 가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이 축적되고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노동을 어떤 영역에 얼마만큼 분배할 것인지는 그만큼 더욱 중요해진다. 또한 자본과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노동력의 사소한 중단과 역기능은 참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노동가치론의 직관이다. 이것은 또한 마르크스이든, 리카도이든, 스미스이든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공통적으로 품었던 직관이다. 이러한 사고를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무적으로는 결국 이런 생각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실제로도 국민계정과 자금순환표를 보면 노동가치론의 사고가 암묵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애초에 고용이 이뤄져야만 비로소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순환이 시작, 혹은 갱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류경제학은 이론적으로 자본과 노동이 생산요소로서 '개별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투입됨으로써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말한다. 이때의 가치를 유용성이나 효용으로 본다면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경우, '가치'와 '사용가치(=효용)'를 엄밀히 구분한다. 사용가치 상에서 자본과 노동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는 마르크스도 엄연히 인정하는 사실이다.2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주체가 생산하고, 교환되고, 분배되는 (화폐화된) '경제적 가치'의 유일한 원천은 노동이다. 애초에 그러한 경제적 가치의 순환은 고용의 갱신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업(자본)이 노동을 고용하지 않으면, 투자와 고용에서 시작해서 상품의 판매와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재구매로 이어지는 경제순환의 사이클은 시작되거나 갱신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바로 이러한 경제순환에 대한 (오늘날에도 자명한) 직관에서 출발한다. 마르크스는 경제순환을 '자본순환(capital circuit)'이라고 말한다. 기계가 쓸모 있느냐 노동이 쓸모 있느냐(=유용하냐)는 문제는 이러한 경제적 (부가)가치가 생산영역에서 출발해서 교환영역과 분배영역에서 순환될 수 있느냐의 문제와 하등 관련이 없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경제순환이 자본가의 고용(=노동력의 구매)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주류경제학자들도 이론에서는 노동가치론을 부정할지는 몰라도 이러한 마르크스와 여타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직관을 결국 실무에서 따를 수 밖에 없다.


△ 마르크스의 자본순환 도식


2. 착취란 무엇인가
  이렇게 보면 착취라는 것도 별 거 아니다. 노동이 투입되어야 경제순환이 시작되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그래야만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이든, 공장이든, 건물이든 유무형의 자산에 돌아갈 소득이 발생한다. 한편 노동이 경제순환과 부가가치의 원천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소득에 별도로 자본소득이 항상 존재한다. 착취론은 힙(hip)하지는 않지만 이처럼 회계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노동이 투입됨으로써 비로소 발생하는 경제적 부가가치는 언제나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으로 나누어진다. 예컨대 스티브 잡스 같은 개인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 노력한 것 이외의 몫이 항상 존재한다. 어차피 한 개인의 아이디어와 건물과 기계 그리고 원료도 과거의 집합적인 노동의 산물인데 단지 자본의 소유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경제적 부가가치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현실. 그것이 바로 착취이다. 물론 이러한 착취론만으로는 가령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후려치는 것,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희생 위에서 고용을 보장받는 것, 국가가 세납자를 기만하는 것 등의 구체적인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로크의 사회계약설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구체적인 갈등, 예컨대 정당간의 갈등, 시민사회 내의 갈등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3. 노동가치론의 비과학성?
  한편 노동가치론의 비과학성을 비판한답시고 노동가치론은 반증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오히려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주류경제학의 효용가치론은 반증가능한가? 인간의 선호패턴이 일관적으로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가? 거기에 대한 무수한 반론이 행동경제학과 인지과학에 의해 주어져도 '어찌되었든 이렇게 보는 것이 얼추 들어 맞는다'고 얼버무리지 않는가? 나는 그것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사회과학의 방법론이 인간실존의 구체를 추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모든 사회과학의 방법론의 근원을 끝없이 캐묻다보면 근거없음(abgrund)의 심연에 도달하는 것 아닐까? 마찬가지로 헌법의 기초를 이루는 사회계약론의 철학도 어떻게 보면은 하나의 소설적 허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4. 노동가치론은 개개의 수리적 모형으로 흡수될 수 없다
  이제 노동가치론의 수리적 모형화로 돌아가 보자. 노동가치론을 엄밀하고 일관된 모형으로 개념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은 것이 있다. 노동가치론을 수리경제적 모형으로 정교화하는 것과 그것으로 현실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 아닌가? 금융위기에서 이미 보았듯이 주류경제학도 전자를 잘한다고 해서 후자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노동가치론을 수리적으로 모형화하면 그래서 뭘 설명할 수 있다는 건가?

  나는 여기서 마르크스의 직관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는 경제과정을 '자본순환'이라는 도식 아래 파악하려 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2권, 3권으로 가면, 자본순환=경제순환은 수 많은 상호연관된 자본의 투입과 회수가 반복적으로, 그리고 비동시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특히 자본순환의 비동시성과 투입 및 회수의 시차가 언제나 현실적인 경제문제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 애초에 수리경제학이 표상하는 왈라스적 일반균형 따위는 있을 리 없다. 노동이 투입된다고 해서 전부 다 가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이 가치화되었다가 그 가치가 파괴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노동가치론을 하나의 일관된 화폐적 모형으로 개념화한 데 성공한 신해석도 논리상으로는 훌륭하지만 이마저도 경제과정의 사후적인 결과를 포착할 따름이다. 그렇게 해서는 공황을 설명할 수 없다. 그걸 설명할 수 없으니 자꾸 일부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이 일반이윤율(뒤메닐, 레비) 타령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이윤율하고 경제위기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뭐 이것도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어쨌든 결론은 이렇다. 노동가치론은 하나의 강력한 직관이자 패러다임이다. 이것을 각자의 방식대로 모형화할 수 있다. 노동가치론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을 폴 사무엘슨의 방식으로, 모리시마의 방식으로, 스티드만의 방식으로, 던컨 폴리의 방식으로, 클리만의 방식으로, 류동민의 방식으로 모형화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가치론은 하나의 직관적인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개개의 모형으로 흡수될 수 없다. 노동가치론의 개별적인 수리적 모형에 대한 시시비비는 노동가치론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직관과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만일 경제학의 한 패러다임이 구체적인 경제모형에 대한 시비로 무너질 거였다면 과거 60-70년대의 자본논쟁으로 주류경제학은 진작에 무너졌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조안 로빈슨 등의 포스트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이 당시 폴 사무엘슨 등이 내세웠던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의 자본이론이 논리적으로 비일관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주류경제학자들을 말 그대로 박살 내 버렸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의 (인간이 물건을 교환해서 각자가 최대의 효용을 얻는다는 이미지로 포착된 경제시스템) 세계관은 아직도 건재하다. 나는 이러한 주류경제학의 세계관을 전복하려는 것도 아니고 전복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20세기적인 주류경제학의 패러다임도 자본주의의 본질을 자본주의의 태동기에서부터 직관적으로 포착한 19세기적인 노동가치치론의 패러다임을 전복할 수 없다. 오히려 주류경제학은 저 19세기적 패러다임을 자기 나름대로 흡수하고 자기화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  *  *

  이 같은 글은 이른바 내생화폐론 중에서 순환학파(circuit school)를 다루기 위한 하나의 작업 노트이다.
  내 생각에 화폐는 '본질적으로' 내생적이다. 화폐는 중앙은행에 의해 외생적으로 공급되는 명목변수가 아니다. 내생화폐론에 따르면, 화폐는 경제주체들이 수요하는만큼 중앙은행이 공급한다. 중앙은행이 이른바 본원통화(M0)를 공급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 화폐유통량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은 화폐의 수량이 아니라 화폐의 가격(이자율)을 통제할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폐는 내생변수이다.
  아무튼 화폐의 본질적인 내생성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화폐 그 자체를 볼 것이 아니라, 화폐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하나의 사이클인 '화폐순환'을 봐야 한다. 즉 화폐순환은 어디서부터 출발하고 어디서 종결되는가, 하는 문제를 해명해야 한다.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마르크스의 '자본순환'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르크스의 사고대로라면, 본격적인 경제순환=자본순환은 자본이 노동력을 구매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자본이 노동력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미리 화폐자본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이 화폐자본은 처음부터 자본가의 수중에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자본론 2권>에서 마르크스가 제기하는 이론적 질문이다. '그렇다면 화폐자본은 맨 처음에 어디에서 오는가?' 마르크스는 금본위제라는 19세기적인 시대적 한계 때문에 이 문제를 끝까지 다루지는 않았다.
  한편 순환학파에 따르면, 그것은 자본가가 필요로 하는 투하자본에 대한 은행대출 및 각종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에서 온다고 대답한다. 따라서 화폐의 본질은 '신용'이다.
  순환학파에 따르면, 주류경제학의 통념처럼 예금이 대출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신용=부채가 대출을 창조한다. 은행은 (신용할만한) 기업의 자본순환에 필요로 한 자금을 대출해준다. 생산영역의 측면에서 자본주의는 노동착취의 경제이지만 교환영역의 측면에서 자본주의는 빚의 경제이다. 이 두 측면은 서로 맞물려 있다. 화폐의 이런 저런 잡다한 기능(교환수단, 회계의 단위, 축장수단, 등등)과 별개로 화폐의 본질에 대한 이론적 고찰은 바로 이러한 이중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1]알프레두 사드-필류, 전희상 역, <마르크스의 가치론>, 2001, 17p.
[2] 칼 마르크스, <고타 강령 비판>

[출처] 노동가치론은 낡았는가? - 노동가치론의 수리경제적 모형화에 대하여|작성자 박가분

2016년 7월 30일 토요일

좌파 시민단체들의 ‘양심수 석방’ 성명과 그 진실에 대하여

 많은 청년들이 좌파에 호의적인 감정을 품곤 합니다. 아무래도 제법 자극적인 말을 하거든요. 이후 많은 사람들은 좌파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대외적 이미지만을 보기 때문에 한동안 그 성향을 유지하다가 점차 인생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돌아서곤 합니다. 그렇지만 좌파의 실체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면 그 돌아서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로 굉장히 심각하거든요.

 마침 이번에 그들의 실체를 알릴 수 있는 사례가 생겨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시민단체가 아니고, ‘민주노총’, ‘참여연대’, ‘전농’, ‘민가협’ 등 주류 중의 주류 단체들입니다.

 일단 이번에 정부가 오래간만에 광복절 특별사면을 하면서, 경제인 등을 사면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좌파 시민단체들이 “비리 재벌 사면 말고 양심수 석방하라!”라고 소리치며 나섰습니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려는 건 이 사건입니다. 관련 기사를 링크합니다.

시민단체들 “비리 재벌 사면 말고 양심수 석방하라” (클릭)

 이 기사만 보면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지요. 정부가 불공평하게 재벌 같은 기득권이나 사면하고, 양심적으로 노동운동 하던 사람들은 차별하는 것처럼 보이기 딱 좋은 기사입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발표하는 공식 보도자료 또한 링크해 드리겠습니다.

비리 재벌 사면 반대! 양심수 석방 촉구! 사회단체 기자회견 (클릭)

 그런데 이 기사 및 성명에 나오는 ‘2012년 화물연대 파업’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보기엔, 이건 참으로 어이없고 비겁한 언론 플레이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착한 척, 정의로운 척 하는 그들의 실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단 이 기사부터 보세요. 당시 파업 전날 보도되었던 KBS의 기사입니다.

화물차 20여 대 방화…화물연대 내일 총파업 (클릭)

 이 사건에 대해 당시 화물연대 울산지부장은 다음 기사처럼 오리발을 내밀었습니다만...

[화물연대파업] 김정한 울산지부장 "차량 연쇄방화는 우리와 무관"

 수사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비조합원들의 트럭을 골라 방화한 것이 드러났고 결국 저 오리발을 내밀었던 지부장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구속되고 몇 명은 실형을 살게 됩니다. 해당 기사 링크해드리지요.

경찰 "차량 연쇄방화는 화물연대 조직적 범행"

 어이없지요? 이번에 좌파 시민단체에서 석방하라는 양희성, 신해건, 김정한 씨가 바로 위의 기사에 나옵니다. 트럭 방화 범죄로 구속 수감 중인 양씨와 신씨 및 당시의 울산지부장 말입니다. 좌파 시민단체식 표현으로는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싸우다 옥고를 치르고 있는 양심수’ 되시지요.

 이제 제가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조금은 충격 받으신 분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울산 노동계의 전적은 정말 화려합니다. 방화, 절도, 도박, 횡령, 집단 폭행, 성폭력 등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과 지난 달에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이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었고, 이후 아니나 다를까 2차 가해까지 빚어지면서 해당 사건에 대해 본부 홈페이지에 사과문이 올라오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래봐야 조만간 또 비슷한 거 터질 테지만요. 워낙 빈번하거든요.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칭 진보라 하는 좌파 시민단체들은 선량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음흉한 행위나 범죄행위를 곧잘 합니다. 그러고 또 언론 플레이로 좋은 이미지를 만들곤 하지요. 물론 그들이 매사에 나쁜 짓만 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들은 자신을 선으로 & 타 세력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런 식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는 데 능하기에 사회적 문제가 됩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비조합원 트럭에 조직적으로 방화를 해서 징역 사는 중인 테러범죄자들이 과연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싸우다 옥고를 치르고 있는 양심수’일까요?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고, 조금이라도 제정신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한 시민단체가 아니고 특정 정치세력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지요.

 사실 진짜로 나쁜 사람들은 언뜻 봤을 땐 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나쁜 짓도 그냥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전후사정을 알고 나서 좌파 시민단체들의 성명을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천지차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본 블로그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착한 척과 호언장담에 속지 마세요. 정치사회 문제뿐만이 아니고, 어떤 경우라도 당신을 속이려는 사람은 좋은 모습으로 - 심지어 때로는 구세주처럼 -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그러한 위선에 속아 넘어가고, 그 후에는 자신의 인식을 합리화하는 식으로 확증편향을 보이게 됩니다. 그런 걸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출처: http://oceanrose.tistory.com/507

2016년 7월 26일 화요일

메갈족 사태의 배경과 안티페미니즘 선언

누군가는 짚고 넘어갈 이야기라 별로 말하고 싶은 화제는 아니었지만 정리합니다.

 근래의 메갈족 (메갈리아 및 워마드 등 메갈리아 파생 카페들과 실질적으로 메갈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여시, 디씨 메갤, 사회갤, 남연갤, 해연갤 등 포함) 사건사고 등을 보면 여성계 및 페미니스트들은 메갈족과 거의 선을 긋지 않고, 오히려 메갈족에 동조하고 찬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요.

 그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자면...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라는 게 이미 좀 가치나 힘을 잃고, 여성학은 학문으로의 가치 또한 잃고 있는 상황이긴 합니다. 한국도 물론 마찬가지고요.

 이게 왜 이렇게 되었냐하면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실질적으로 근 30년 사이에 여성 권리가 많이 올라간 데 있습니다. 적어도 이제 제도적, 법률적, 공적인 면에서는 여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고 현실적으로는 여성이 우대를 받는 면이 많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지난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여성에 대한 제도적인 차별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고요. 오히려 많은 우대만 남았습니다.

 물론 제도적인 차별이 사라졌다 해서 미소지니나 여성이 사회에서 불리한 면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근래에선 판례에서조차 여성에게 유리한 판결이 다수 나오게 되었으며, 결국 이런 현실은 페미니즘의 존재 의의를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근래엔 평균적으로 여성 범죄자의 형량이 더 낮게 나옵니다.

 더 나아가 페미니즘은 오랜 시간 가부장제를 타파할 대상으로 삼아왔는데, 근래 들어 가부장제는 급속도로 붕괴하여 만혼이나 독신이 일상화되었고, 서구 몇 국가에선 아예 결혼이 이례적일 정도로 그냥 동거문화가 발달하는 등 페미니즘이 타켓으로 삼을 대상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사실 결혼제도가 반쯤 붕괴한 데는 페미니스트들 책임이 크긴 한데 이건 일단 넘어가고요.

 실질적으로 이제 페미니즘이 다뤄서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만한 분야는 여성차별과 여성비하, 여성에 대한 범죄 정도만 남은 상황인데요.

 여기서 문제가 된 게, 일단 실제로 다수의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에 대한 비하나 차별발언을 일상적으로 해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기존 페미니즘의 수명은 끝났습니다. 더 나가려면 모든 비하나 차별을 아예 안 하는 쪽으로 가던지 해야 할 상황이 된 거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과 대조적으로 현실 페미니즘은 이미 많은 부분 기득권화 되었습니다. 일단 여성학과가 대학에 있고, 여성학 교수들도 있지요. 이건 TO가 계속 나오는 이상 일종의 기득권입니다. 정부나 공적 기관의 각종 여성계 인물, 단체도 기득권이고요. 이런 건 과거의 배경 때문에 지금도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여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싶어 할 리가 없잖아요?

 더구나 근 수십 년 간 전반적인 학문이 과학화되고 수준이 많이 올라가는 반면, 합리성과 설득력을 잃고 도태되어 가는 분야도 있는데요. 여성학은 명백하게 후자 쪽입니다. 여성학계는 과학적 합리성이 아예 없는 수준을 넘어서, 자료를 날조하거나 답정너식으로 자료를 취사선택하거나 하는 행위를 일상적으로 저질러왔습니다. 이게 고인 물에 기득권이 되어버려서 이런 면이 많은데요. 여성학에 발 담그려다가 떠나거나 담갔다 떠난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첨언하자면 한국에는 좀 드물지만 서구엔 여성학 전공에 남학생들도 좀 있는 편인데, 남학생에 대한 명백한 차별과 공격이 꽤 있다는 게 내부고발로 줄줄이 나옵니다. 질려서 여성학 교수하던 사람이 때려 치우고 나온 케이스까지 있을 정도죠.

 어쨌든 상황은 이런데, 미소지니가 없는 건 또 아니고 덤으로 성범죄 자체는 흔하다보니...

 점차 소위 페미니즘은 극단화되는 경향이 생겨나고, 페미나치 소리 듣는 사람들이 사회문제 일으키는 게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타오던 상황이긴 합니다. 이 사람들은 목적 자체가 폭력적 욕구의 충족과 한풀이, 피해망상에 의한 각종 행위들의 합리화, 집단적 소속감을 얻는 것 등에 있기 때문에 사실 별다른 그럴싸한 목적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막장행위 자체가 목적이라, 쾌락형 범죄자들과 정신구조가 거의 같습니다. 또 문제가 이 사람들은 적당히 피해의식 있는 여자들을 자극해 피해망상 생기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럼 소위 온건 페미니스트들은 어찌되었느냐 하면... 이젠 온건한 페미니스트들끼리 모여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뭐 할 게 있어야죠. 법 바꿀 것도 별로 없고... 여성 더 지원해달라고 하기엔 이미 제도적으로 여성 우대인 게 너무 많을 뿐더러, 그런 쪽에선 보수주의 여성단체들이 더 우세하고, 결국 다른 단체랑 연대해 차별반대나 평등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게 제일 아웃풋이 나은 상황이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페미니즘 자체는 좀 유명무실해지긴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계속 급진 페미니스트... 라고 하기도 뭐한 미친X들이 하도 별 짓을 다하니 요즘 들어서 서구에선 아예 적잖은 여자들이 페미니즘 간판을 포기했습니다. 안티 페미니즘, 안티 페미니스트 간판을 걸고 ‘우린 페미니스트 아니다. 평등주의자다’ 라고 나서게 된 게 근래 트랜드쯤 됩니다. 결국 기존 페미니즘은 목적 이룰 거 다 이뤄서 수명이 다했다는 식으로 정리도 가능합니다.

 실제 성차별 이슈에서도 근래 주로 다뤄지는 건 소득격차라거나 유리천장 같은 거고, 이 블로그에서도 주로 그런 이야기를 해오곤 했지요. 그거 말곤 미소지니밖에 없으니까요.

 사실 합리적으로 보면 이젠 페미니즘 접고 보편적 평등을 이야기하는 게 맞긴 합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옛날에 페미니즘이 주장하던 테마는 시대가 변해서 다 끝났어요. 차별이나 비하 같은 건 싸그리 못 하게 막는 게 맞고요. 소득격차나 유리천장 문제는 산업 구조나 지원, 창업 문제로 다뤄야 해결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성범죄 관련 문제는 범죄학 및 경찰행정 문제고요.

 어쨌든 이런 배경에서 남은 게 메갈족입니다.

 나는 전통적이고 올바른 페미니즘은 차별과 혐오, 폭력에 반대해왔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메갈족은 차별과 혐오, 폭력 모두를 행하고 옹호하며 즐깁니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메갈족은 그릅니다. 이건 현대 자유 국가의 보편적인 판단 기준에 의한 것이지요.

 나는 메갈족과 같은 반사회적 단체를 용인할 수 없으며,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는 것 또한 용납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메갈족은 보편적 인권과 자유주의적 자연권을 무시하고 공격하기 때문에, 관용과 포용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페미니즘 간판을 들고 페미니스트로 의태하며, 더 나아가 자칭 페미니스트와 여성단체의 동조를 받는 상황 또한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 역시 글로벌 유행에 맞춰 안티페미니즘&정치적 평등주의자 간판 걸어봅니다. 사실 페미니즘 분화는 오래 전에 이루어져야 했고, 소위 페미나치와 우머니스트들이 동일 간판을 거는 건 논리적으론 많이 이상했지요. 이제라도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생각이나 사상을 바꾼 게 아닙니다. 간판만 바꾸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메갈족 같은 부류를 서구에서는 페미나치라 부르고, 한국에서도 이 단어는 이제 널리 퍼졌는데 도저히 나는 메갈족과 나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 단어는 나치의 실제 행적보다는 나치의 나쁜 이미지를 차용한 단어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단어를 제안하기엔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르는 게 없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파시즘 같은 표현을 아무 데나 가져다 붙이는 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표현이 없나 고민 중에 있습니다. 꼴페미 같은 전통적인 표현은 메갈족 지칭엔 너무 약한 것 같기도 하고요. 페미나치만큼 입에 짝짝 달라붙은 단어 만들기도 쉬운 건 아니라서요.

출처: http://oceanrose.tistory.com/574

2016년 7월 22일 금요일

신분제 사회와 불평등 사회의 차이점

사회학에서 불평등 과목의 제목은 대부분 "사회 계층과 불평등"이다. 영어로는 Social Stratification and Inequality. 사회의 Strata, 계층과 Inequality, 불평등을 다룬다.

그런데 strata와 inequality는 그 의미가 다르다. Strata로 나누어진 사회는 항상 불평등을 동반한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불평등이 항상 계층화 현상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계층이 없는 불평등도 존재한다. 반면 불평등 정도에 차이가 없는 두 사회가 계층화에서는 큰 차이가 나기도 한다.

교육부 나향욱 기획관이 얘기한 신분제 사회는 계층의 한 형태다. 신분제 사회는 계층 간 이동을 단절시켜 놓았고, 계층이 생득 지위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설사 계층 사이의 격차가 작더라도 (즉, 불평등 정도가 작더라도), 계층 사이에 명확한 갭이 존재하는 사회다.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살펴보자.

테크니컬한 논문이라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지만 Sociological Methodology에 실린 Xiang Zhou의 A Nonparametric Index of Stratification에서 계층과 불평등의 차이를 명확하게 잘 설명해 두었다.


아래 그림은 가상의 사회에서 남녀의 소득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X축이 소득이고, Y축은 비중이다. 두 사회에서 남녀 간의 불평등 정도(평균 임금 격차)는 동일하다. 다른 점은 왼쪽 사회에서 여성(점선)은 모두 남성보다 소득이 작은 반면, 오른쪽 사회에서는 평균 임금은 낮더라도 여성이 남성보다 소득이 높을 확률이 상당히 있는 사회다.

비록 두 사회에서 남녀의 평균 소득 격차(즉 불평등 정도)는 같지만, 왼쪽은 성별 계층화가 심한 사회고 오른쪽은 성별 계층화가 덜 심한 사회다.

신분제 사회란 왼쪽과 같은 사회이다.




이런 사회가 없을 것 같지만, 19세기의 미국 사회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인종에 의해 명확한 계층화가 이루어진 사회. 20세기 초의 센서스 자료로 분석해 보면 흑인의 소득 결정에 교육보다 인종 요소의 설명력이 더 컸다. 지금은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나온 책이 Wilson의 The Declining Significance of Race. 1978년에 나온 책이다. 그 때 이미 미국 사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나 기획관의 얘기한 미국은 한 70-80년 전 쯤의 미국이다. 현실 파악 능력이 완전 낙제점.

대부분의 사회에서 요즘의 불평등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왼쪽 그림보다는 오른쪽 그림에 훨씬 더 가까운 형태다.  

나향욱 기획관의 발언은 개, 돼지로 이루어진 다수 대중의 소득 분포 하한선을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주고, 상위 1%와 나머지 99%의 갭을 명확하게 만들어 세습하자는 얘기다. 사회를 1세기 이상 되돌리자는 헛소리.

출처: http://sovidence.tistory.com/categ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