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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1일 목요일

정의로운 '구조 조정'은 가능한가?

현재 한국 경제는 장기 침체 속에 구조 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 대규모 해고의 위험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국책 금융 기관의 자본 확충 방안이 마련되면서 구조 조정의 출발을 위한 준비는 시작되고 있지만, 실제 구조 조정이 시작되면 가장 큰 위험 요인은 해고된 근로자들로 인한 일자리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조 조정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할 기본 원칙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재의 상태를 배제한 채로 합의가 가능해야 한다는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철학적 원칙으로 고려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원의 원칙만으로는 구조 조정의 성공을 이끌 수 없기에 성공을 위한 또 하나의 원칙이 필요한데, 이는 회생 가능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을 구분할 수 있는 옥석을 나누기 위한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다. 하지만 사전적인 이성적인 판단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제 구조 조정이 시행되면 계속적으로 평가하고 모니터링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현재와 같이 일부 부실 기업이 정책 금융 기관 산하에서 상황이 악화된 데에는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준수되지 못한 측면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

한국 경제가 세계적인 불황과 내부적인 디플레이션에 따른 경기 침체에 빠져들면서 수익성이 장기간 악화된 부실 기업이 증가한 가운데 '구조 조정'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물론 '구조 조정' 용어 자체는 경기 불황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 환경이 변화하거나 시장 여건이 바뀌는 경우에, 기업과 산업이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며 대응해 나가는 것을 뜻하는 '구조 조정'은 실제로는 일종의 상시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상적인 변화는 반드시 대규모 해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 침체 속에 증폭되는 대규모 해고의 위험

하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 조정은 상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경기가 악화된 이후에 실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직면하는 구조 조정이기에 근로자들이 대규모 해고를 앞두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지고 있다.

더구나 조선업 같이 최근 구조 조정의 첫 번째 대상으로 지적되는 산업 내에는 장기간 국책 금융 기관의 지원을 받으며 생존을 유지해온 기업이 포함되어 있고 이를 지원하던 국책 금융 기관마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어서, 과연 추가적인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지 지원하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하더라도 과연 실제 지원이 가능할지, 지원한다면 해당 기업이 살아날 수는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물론 최근에 국책 금융 기관에 대한 신용을 보강하기 위해 자본 확충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이 마련됨으로써 일단 구조 조정을 시작하기 위한 작업의 단초는 마련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체계가 완벽한 것은 아니고 일부 논란과 문제도 있지만, 구조 조정 과정에서 발생하기 쉬운 신용 경색으로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기 어렵게 되면서 다른 정상 기업까지 부실하게 하거나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 조정 집행은 신속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일단 출발점으로는 비교적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책 금융 기관에 대한 자본 확충은 출발점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국책 금융 기관에 대한 자본 확충은 구조 조정의 여러 단계 가운데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역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구조 조정이 실제 시작되면 근로자들의 해고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준비하는 것이 실제로는 자본 확충 펀드의 설계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구조 조정 대상 기업의 고용 및 해고 문제와 관련해서 일단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구조 조정 대상 기업의 근로자들이 고용된 채로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업에 지원을 계속하거나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왜 국민 부담으로 특정 산업 또는 종사자를 도와야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지금도 어려운 사람이나 계층이 많이 존재하고, 비단 조선업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도 힘든 곳이 많은데 왜 하필 특정한 산업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차라리 그 돈을 국민 개개인에게 공평하게 나눠 주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특정 분야에 대한 구조 조정 지원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사실 이는 미국에서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동차 산업이나 금융 기관에 대규모 구제 금융을 지원할 때도 똑 같이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현재의 처지를 배제해도 합의될 수 있는 원칙이 구조 조정의 철학

이 문제는 하버드 대학교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존 롤스(John Rawls)가 무엇이 공평한 것인지를 논할 때 사용했던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개념을 응용한다면 합리화의 논거는 찾아 볼 수 있다. 사회 계약 이론을 통해 정의(Justice)의 개념을 제시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자신의 현재의 처지를 배제한 상태에서도 합의될 수 있는 법칙이 정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조선업이라는 특정한 산업에 종사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관련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이 공평한 지원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존 롤스가 제시한 것은 일종의 가상적인 상황에서의 '사고 실험(思考 實驗)'이지만, 현실에서도 충분히 적용가능하다. 현실에 적용한다면 흔히 최악의 상황을 최소화하는 원칙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에서 생각한다면 결국 구조 조정 지원의 핵심은 해고를 최소화하되, 불가피하게 해고해야 한다면 해고 근로자들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해고 근로자들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 일반적인 실업 지원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같은 산업 구조 조정에서는 일순간에 대규모 해고로 실업자 풀이 크게 증가하면서 다른 실업자들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어렵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고를 최소화하거나 실업 상황에서 조금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 필요

그렇다면 '해고의 최소화' 원칙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다른 국민들의 부담이 될 수 있는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그 지원을 받는 경제 주체가 지원을 해주는 이들보다 더 나은 봉급을 받으면서 '해고까지 최소화' 된다면, 롤스가 이야기한 현재 처지를 배제 한 상태에서도 합의될 수 있는 법칙에 해당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해고의 최소화'는 '임금의 적절한 감소'와 결합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대규모 해고 사태를 막는 구조 조정 지원을 받기 위한 기초에는 '임금의 적절한 감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가 있다.

이러한 원칙은 미국과 같이 시장 경제가 발전한 국가에서 어떻게 특정한 산업에 대해 정부가 대규모 구제 금융을 제공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과연 어떻게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실 기업에 대한 구조 조정과 함께 이루어진 대규모 구제 금융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재원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제네럴 모터스(GM, General Motors)에 우선주 매입의 형태로 지원된 자금은 130억 달러(한화 15조 원)에 이른다. TARP 지원에 따라 GM보다 더 큰 규모의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 경우는 대부분 금융 회사(씨티, 뱅크오브아메리카, AIG, JP Morgan Chase, Wells Fargo 등)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정 제조 업체에 이렇게 막대한 재원을 투입한 것은 흔한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

구조 조정 지원의 원칙 : 사회적 합의

물론 미국에서도 많은 논란과 비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원이 가능하고 결국 GM을 회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주도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일종의 원칙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고 근로자 지원'은 결국 하나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데, 경영진, 근로자, 그리고 일반 국민 모두가 조금씩 '양보(讓步)'한다는 개념이다.

무지(無知)의 장막이 전제된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라고도 불리는 롤스의 아이디어를 구조 조정 지원의 철학으로 해석한다면 한 경제 내의 모든 주체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십시일반(十匙一飯)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있는 원래의 자리에서 기존에 가졌던 기득권을 양보하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

구조 조정 성공의 원칙 : 옥석(玉石)을 나누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

그렇지만 이렇게 지원을 받아 구조 조정이 이루어진다고 모든 구조 조정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원을 받으면서 이루어지는 구조 조정이 결국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 원칙은 또한 무엇일까? 19세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유명한 경제학 교수였던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이 이야기한 것처럼, 경제학자는 '차가운 이성(cold head)과 따뜻한 감성(warm heart)'을 가져야한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구조 조정의 원칙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구조 조정의 지원을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지만, 결국 구조 조정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차가운 이성도 없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특정 기업에 대한 지원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부가 주도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었던 GM은 결국 지원받은 돈을 갚을 수 있도록 결국 회생하면서 구조 조정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데, 여기에는 살릴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냉정히 구분한다는 옥석을 나누는 이성적인 판단의 기본 원칙이 있었다.

당시 GM은 구조 조정을 통해 회생이 가능한 부분과 회생이 어려운 부분으로 일단 사업을 분리시키는 작업이 있었다. 결국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업의 일부는 떼어내 청산시키고 나머지 부분은 매각해 새로운 회사로 탄생시키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일부를 청산시키고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GM이 탄생했던 것이다.

흔히 조선업 위기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부채 비율에 있어서도 수천 퍼센트에 달하는 채무로 사실상 심각한 정도의 자본 잠식 상태인 곳과 그렇지 않은 회사들이 존재하는 상황이고, 가장 심각한 상황인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도 기술 경쟁력이 확보되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는 부분이 함께 있다. 즉, 세계적인 조건 경기 침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도 서로 다른 이질적인 역량과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결국 정리해야 하는 부분과 끌고 나갈 부분에 대한 옥석을 나누는 작업이 구조 조정의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특히, 지금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산업은 대규모 고정 설비가 들어 있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고 무조건 정리하는 방식으로 구조 조정이 이루어진다면, 후일 경기가 회복됐을 때 다시 한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없다. 물론 우리가 조선업을 넘어서는 더 높은 발전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기술력과 생산성을 갖추고 있다면 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현재로는 그렇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산업 자체를 포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수요가 감소한 상황에서 지금의 과잉 설비 상태를 그대로 끌고 나갈 수도 없다. 그렇기에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배제한 철저히 경제적인 원칙에 따라 옥석을 나누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구조 조정의 성공을 위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

대규모 해고의 위험이 증대되는 형태의 구조 조정이 임박해지고 있다. 대규모 해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경제 전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큰 위험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불가피해지는 구조 조정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필요하다. 먼저 구조 조정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지원의 원칙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이를 이끌기 위한 정부의 주도적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합의의 대원칙은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 그리고 '해고 근로자 지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제주체의 '양보(讓步)'이다. 하지만 지원만으로 구조 조정은 성공할 수 없듯이, 성공의 원칙 역시 필요하다. 그 성공의 원칙은 회생시킬 부분과 청산할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되어야할 것이다.

계속적 평가와 모니터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물론 때로는 사전적인 '냉철한 이성적 판단'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구조 조정의 과정을 계속해서 평가하고 모니터하며 지원 여부를 결정해 가는 계속적 작업의 중요성이라는 또 하나의 원칙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부 부실 기업이 정책 금융 기관 산하에서 현재와 같이 심각하게 상황이 악화된 데는 바로 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측면이 크게 역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8027

2017년 5월 9일 화요일

기본소득 가능케 할 진짜 방법…'불로소득'을 건드리자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는 불평등 해소이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이란 목표는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고 분배를 하지 않으면 성장도 어려운 상황까지 내몰린 것이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한국사회와 경제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부동산을 소득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일까? 부동산 소득을 과소 계산하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이 생산한 패널자료들이 가지는 대표성 문제와 과소기록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기에서는 부동산 취득세 자료를 활용해 부동산 평균 보유기간을 구해서 부동산 소득을 추산해보았다.추산 결과 부동산 소득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369조 원, 즉 GDP 대비 무려 28.5%나 발생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같은 기간 GDP 대비 연평균 43.6%에 달하는 피용자보수 다음으로 큰 비중이다. 부동산 소유 불평등 또한 극심한데,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소득 불평등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부동산 소득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부동산 소득으로 인한 소득불 평등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토지보유세 강화이다. 그리고 강화한 토지보유세를 기본소득과 결합시키면 부동산이 초래한 불평등과 사회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면서 시민들의 기본적인 삶도 보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필자)(원문 바로가기 ☞ : 부동산소득과 소득불평등, 그리고 기본소득)

소득불평등 심화와 부동산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는 불평등 해소이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이란 목표는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고 분배를 하지 않으면 성장도 어려운 상황까지 내몰린 것이다.

오늘날 불평등 심화의 핵심으로 지적되는 것은 노동소득 불평등이다.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에 벌어지는 임금격차, 그리고 노동소득 분배율 하락 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한국 사회와 경제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부동산을 소득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피케티 비율'이라고 불리는 '자본/소득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높고 따라서 자본 소득의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과 우리나라의 피케티 비율이 높은 까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가격 때문이라는 주장은 일반화되어있지만,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소득 불평등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데까지 나아가진 못하고 있다.

왜일까? 부동산 소득을 과소 계산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부동산 소득 추산은 주로 국책연구소에서 생산하는 패널 자료를 활용한다.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활용하여 부동산 소득을 추산한 한 연구는 어찌된 일인지 가계소득 전체에서 부동산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2~3.7%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 또 다른 연구는 재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증거로 시장 소득에서 재산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해야 0.3~3% 수준으로 매우 낮다는 데이터를 제시한다. 부동산을 포함한 재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보다 훨씬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과소평가하기 쉬운 방식으로 주택에서 발생하는 매매 차익을 추산한 연구도 있는데, 그 연구는 2013년에 발생한 주택 매매 차익이 7조8499억 원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서 일반인들은 이해도 수긍도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동산 소유 불평등이 극심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소득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라고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매년 발생하는 부동산 소득의 규모가 GDP의 30% 가까이 된다는 것을 보이려 한다. 또한 이것과 함께 부동산 소유가 극도로 불평등하다는 데이터를 근거로 부동산 소득이야말로 소득 불평등을 낳는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을 밝히고, 나아가서 부동산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하고자 한다.

ⓒ연합뉴스

부동산 소득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추산할 것인가?
여기서는 부동산소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기로 한다.
부동산소득 =매매차익(1) + 순임대소득(2)
(1) 매매차익 = 부동산매각가액 - 부동산매입비용의 현재가치
(2) 순임대소득 = 부동산의 현 임대가치 – 부동산 매입가액의 이자
이 식에서 의문점은 아마도 익숙하지 않은 개념인 '순임대소득'일 것이다. 매매 차익이 부동산 소득의 하나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냥 임대 소득도 아니고 자가 소유 부동산까지 포함된 모든 부동산의 임대 가치를 부동산 소득에 포함시킨 것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타인에게 임대하지 않은 부동산에서 발생한 소득을 '귀속임대소득'라고 하는데, 이것을 부동산 소득에 포함시킨 까닭은 높은 현실 설명력 때문이다. 노동 소득이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부동산을 소유했느냐에 따라서 경제력의 차이가 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가령 갑과 을 두 사람의 임금 소득이 동일하게 연 5000만 원이고 모두 월세 100만 원(연간 임대가치 1200만 원) 수준의 집에서 산다고 해보자.그런데 '갑'은 실제로 월 100만 원짜리 월세에 살고 있고, '을'은 집을 무상으로 취득하여 거주하고 있다. 다른 소득이 없다면, 현재의 소득 이론에서는 두 사람의 소득이 5000만 원으로 같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갑과 을의 임금 소득은 같지만 이들의 경제력 혹은 경제 상황은 다르다는 것이고, 이것은 귀속임대소득도 소득에 포함시켜야 그 현실을 포착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같은 가치의 건물에서 영업하고 연간 사업 소득은 1억 원으로 동일한데 '갑'은 무상으로 취득한 건물에서 영업하고, '을'은 월세(연간 3600만 원)를 얻어서 영업한다고 해보자. 지금의 소득 이론에서는 두 사람의 소득이 1억 원으로 같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제력 혹은 경제 상황은 차이가 나는 것이 분명하고, 이것을 포착해내려면 귀속임대료를 소득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갑의 소득은 1억3600만 원이고 을은 1억 원이 된다. 영업용 건물의 소유 여부가 각 경제주체의 경제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자가 소유 부동산의 임대가치까지 소득에 포함시켜야 현실을 보다 잘 설명해줄 수 있다. 그리고 임대가치에서 매입가액의 이자를 차감해주는 이유는 '이자'가 임대가치라는 수입을 낳는 '비용'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취득세를 통한 부동산소득 추산매매차익과 순임대소득을 제대로 구하려면 매각된 부동산의 매입 시점과 가격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모든 부동산의 매입 가격과 매입 시점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까닭에 기존 연구에서는 국책연구원에서 생산하는 패널 자료를 활용해왔으나 이것은 표본 집단의 대표성과 과소기록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그러면 세금을 통해서 추산해내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매매 차익의 경우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는 국세청이 생산한 양도소득세 통계다.

그런데 양도소득세 통계를 통해서 매매 차익을 추정하는 것은 한계가 크다. 왜냐하면 양도소득세 통계에는 비과세 대상이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1가구 1주택은 비과세 대상이고, 2주택이라도 양도소득세 비과세 대상이 있으며, 그 이외에도 비과세 대상이 상당하다. 그리고 법인이 누린 양도차익은 법인세의 대상이어서 양도소득세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양도소득세를 통해서 양도 차익을 매매 차익으로 간주하게 되면 부동산 매매차익이 축소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한계를 감안하면 우리는 결국 부동산 평균 보유 기간을 구해서 매매 차익을 추산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도 행정자치부가 발간하는 <지방세정연감>의 부동산 취득세에는 비과세·감면 부분까지도 자료를 생산하고 있어 매년 거래가 얼마만큼 이루어지는지 추정할 수 있다. 취득세 통계를 통해 부동산 평균 보유 기간을 산출해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부동산 취득 시 납부하는 취득세액(2010년까지 등록세액도 포함)을 평균 취득세율로 나누어서 그 해에 거래된 부동산 총액을 구한다. 그 다음으로 거래된 총액을 전체 부동산 총액으로 나누면 당해 연도에 거래된 비율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평균 보유 기간을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해에 부동산 취득세액은 1조 원, 취득세율은 2%, 전체 부동산가액은 600조 원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그 해에 거래된 부동산 가액은 50조 원(=1조 원/0.02)이고 연간 부동산 거래 비율은 8.3%(=50조 원/600조 원)가 된다. 그리고 매년 전체 부동산의 8.3%가 거래된다면 부동산 평균 보유 기간은 12년(=100/8.3)이 되는 셈이다.

물론 평균 보유 기간을 통해서 추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연중 거래되는 부동산에는 보유한지 1년도 안 된 부동산도 있을 것이고, 20년 이상 소유하고 있던 상가 건물도 있을 것이다. 투기 열풍이 전국을 휩쓸 때에는 단기 매매가 성행하지만, 투기 열기가 식으면 거래량은 급감하는 경향이 있다. 요컨대 평균 보유 기간에서 멀리 떨어진 단기 보유와 장기 보유로 인한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 보유를 평균으로 간주하는 데에서 나타나는 매매 차익의 과대 계상 문제는 장기 보유를 평균으로 간주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과소 계상 문제로 어느 정도는 상쇄된다고 할 수 있으므로 평균 보유 기간으로 매매 차익을 추산해도 큰 무리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2007년에서 2015년까지 매년 거래되는 비율을 부동산 취득세의 분류 방식인 주택, 일반건축물, 토지로 구분해서 구해보면 주택은 10.5~16.9%, 일반건축물은 4.1~6.7%, 토지는 6.0~8.3%가 매년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통해서 평균 보유 기간을 구해보면 5.9~9.5년, 일반건축물은 14.9~24.5년, 토지는 12.0~16.8년이 된다. 여기에서는 평균 보유 기간을 주택은 8년, 일반건축물은 20년, 토지는 14년 동안 보유한 것으로 간주해서 계산한다.부동산의 현 임대가치는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부동산 임대료는 부동산의 종류에 따라 적용하는 비율이 다르다. 상업용 부동산은 5~8%, 주거용은 4~7%, 공업용은 4~6%, 농지는 2% 내외, 임야는 1% 내외인데, 여기서는 보수적으로 잡아 주택 4%, 일반건축물에는 5%, 토지에는 1%를 적용한다.

GDP의 28.5%에 달하는 부동산 소득이런 방식으로 부동산 소득을 추산하면 얼마나 될까? 아래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2007년에는 292.3조 원, 2008년에는 295.4조 원, 2014년에는 245조 원, 2015년에는 225.2조 원의 매매 차익이 발생한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 하나는 2008년 이후부터 매매 차익이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인데, 그 이유는 2002년에서 2007년 동안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13%를 상회하다가 2008년 이후로 상승률이 3~4%로 감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표 1> 매매차익 추산
단위 조 원
연도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주택
159.0
166.2
168.5
161.8
151.5
131.4
113.8
97.6
77.8
일반건축물
63.1
55.6
54.1
53.2
53.7
56.1
60.7
64.0
64.5
토지
70.2
73.7
72.6
75.2
78.0
85.1
85.6
83.7
82.9
합계
292.3
295.4
295.2
290.2
283.1
272.5
260.1
245.3
225.2
모든 수치는 지방세정연감의 취득세 자료와 한국은행이 생산한 국민계정의
자료를 통해 구했음.

그러면 '순임대소득'은 얼마나 될까? <표 2>에서 알 수 있듯이 순임대소득의 규모는 2007년부터 2015년 까지 연평균 100조 원을 상회한다. 한 가지 갸우뚱한 점은 2008년 11.8조 원이던 순임대소득이 2015년에는 190.4조 원으로 급등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원인은 '비용'을 계산할 때 적용하는 이자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지' 부분의 순임대소득이 마이너스(-)인 까닭은 농지·임야 등의 임대소득은 매우 낮은 반면 매입가격의 이자는 그것보다 크기 때문이다. 
<표 2> 순임대소득 추산
단위 조 원
 연도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주택
26.9
11.0
39.9
47.1
43.9
48.3
76.5
80.1
102.3
일반건축물
44.1
41.2
55.1
62.4
66.0
69.1
78.5
85.6
95.1
토지
-28.5
-40.3
-24.7
-23.0
-27.4
-26.7
-17.9
-15.6
-7.0
합계
42.4
11.8
70.3
86.6
82.4
90.7
137.0
150.1
190.4
                                                 주 : <표 1>과 동일

그렇다면 부동산 소득 전체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표 3>에서 보듯이 부동산 소득은 9년 동안 평균 369조 원, 즉 GDP 대비 무려 28.5%나 되는데, 이것은 같은 기간 GDP 대비 연평균 43.6%에 달하는 피용자보수 다음으로 큰 비중이다.
<표 3> 부동산소득 추산
단위 조 원, %
연도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부동산소득
334.7
307.2
365.5
376.8
365.5
363.2
397.1
395.4
415.6
부동산소득/GDP
32.1
27.8
31.7
29.8
27.4
26.4
27.8
26.6
26.7
피용자보수/GDP
43.9
43.7
43.5
42.4
42.8
43.5
44.0
44.5
44.5
                                               주 : <표 1>과 동일

그 많은 부동산소득은 누가 가져갔나?그러면 이 많은 소득이 누구의 호주머니로 들어간 것일까? 각종 부동산 소유 통계는 부동산을 과다하게 소유한 소수의 개인이나 법인이 차지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해준다. 먼저 개인의 부동산 소유 불평등을 살펴보자. 대한민국에는 무주택가구가 44.0%(2015년 현재)에 이르고 인구의 1%가 민유지의 55.2%를 인구의 10%가 97.6%를 소유하고 있으며, 토지를 한 평도 소유하지 못한 세대가 40.1%(2012년 현재)나 된다. 그리고 2014년 현재 부동산 소유자 상위 10%는 하위 10%에 비해 가액 기준으로 127.36배나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주택에서만 발생한 연평균 189.3조 원의 소득은 인구 절반에 가까운 44%의 무주택 세대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된다. 그뿐 아니라 무(無)토지 소유자들도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거의 누리지 못한다. 토지 소유로만 보면 상위 1% 혹은 10%가 부동산 소득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법인의 부동산 소유 불평등은 개인보다 훨씬 심하다. 2014년 현재 상위 1%의 법인이 전체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의 76.2%(가액기준)를, 상위 10대 기업이 무려 35.3%를 소유하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소유의 편중도가 계속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8~2014년 6년 사이에 상위 1%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은 546조 원에서 966조 원으로 77% 증가했고, 상위 10개 기업의 보유 부동산 가격은 180조 원에서 448조 원으로 무려 147%나 폭증했다. 그런데 법인 소유 부동산에서 발생한 부동산 소득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117.8조 원이나 된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매년 100조 원 정도의 부동산 소득은 상위 1% 기업이 차지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부동산 소득을 제외하고 소득 불평등을 논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부동산 소유 상태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설사 소유가 불평등하더라도 부동산 소득의 규모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소유 상태는 매우 불평등하다. 그뿐 아니라 부동산 소득의 규모는 노동 소득 다음으로 큰데,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지금 한국사회의 소득 불평등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부동산 소득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대책 : 토지 보유세 강화와 기본 소득의 결합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부동산 소득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해법은 간단하다. 부동산 소득의 규모를 줄이거나 환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건은 이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에 있는데, 해법을 찾기 전에 우리가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부동산 소득이 '불로소득'이라는 점이다. 부동산 소득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야 생기는데, 부동산 가격 상승은 개별 부동산 소유자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만들어 낸 산물이다. 즉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토지의 용도변경이나 도로 등의 공공시설 설치와 같은 정부의 정책 변화나 정책 집행, 그리고 인구의 이동 혹은 집중과 같은 사회적 변화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할 점은 불로소득의 진원지가 건물이 아니라 토지라는 점이다. 건물의 가치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하락하나 토지의 가치는 증가(增價)한다. 그러므로 핵심은 토지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인데, 가장 좋은 방법은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미 토지보유세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경제 왜곡이 없는 가장 좋은 세금으로, 투기를 막고 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촉진하는, 즉 경제에 순기능을 하는 세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5%(2014년 현재)로 다른 나라에 비해서 너무 낮다. GDP에서 보유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나라의 경우 0.78%인데, 이는 미국(2.62%), 일본(2.04%), 영국(3.13%), 호주(1.56%) 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이렇게 우리는 부동산 소득 자체가 불로소득이이라는 점에서, 부동산 소득이 소득 불평등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부동산 소득을 환수하는 구체적 수단인 보유세가 주요국보다 크게 낮다는 점에서 보유세를 강화해야 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보유세를 강화하는 방법을 정리해보자. 첫째는 과세 대상을 건물에서 부동산 소득의 진원지인 토지로 전환한다. 둘째는 비과세·감면 비율을 대폭 축소한다. 한국의 비과세 감면 비율은 보유세의 일종인 재산세의 경우 무려 34.7%(2014년)에 이를 정도로 과다하다. 높은 비과세·감면 비율은 방만한 부동산 보유를 조장하고, 보유세의 공평성을 훼손시키며, 과세기반의 협소화를 초래하고, 낭비적인 입법 경쟁을 부추긴다. 세 번째는 용도별 차등과세를 폐지한다. 현행 보유세는 주택, 종합합산토지, 별도합산토지, 분리과세토지로 구분하고 세율과 과표 구간을 각각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1980년대 말 종합토지세를 제정할 당시 주무부서가 종합토지세의 보유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고안한 방식이다. 따라서 용도별 차등과세는 폐지하고 모든 토지를 인별 합산해서 과세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지보유세 강화를 통해서 환수한 것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제안한다. 사실 이해관계를 떠나서 생각해보면 인간이 만들지 않았고 필요하다고 그 양을 늘릴 수 없으며 무엇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토지에 대한 권리는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토지정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동산 소득의 일정 부분을 토지보유세로 환수하여 기본소득의 형태로 모두에게 배분하는 것은 이 정신을 구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토지보유세 강화를 기본소득과 결합시키면 부동산이 초래한 불평등과 사회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면서 시민들의 기본적인 삶도 보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6890

2017년 5월 7일 일요일

한국의 불평등, 4가지 차원에서 악화됐다

불평등'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변화를 대변하는 중요한 핵심어가 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따른 노동시장 유연화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피고용자 내부에서는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자본 부문에서도 변화가 생겨, 소득이 낮은 영세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동안, 수출증가에 힘입어 소수 재벌 기업으로서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강화되었다. 불평등 담론은 이러한 포괄적인 한국 경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등장한 '사회양극화' 담론은 소득 불평등과 관련된 담론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불평등은 주로 '경제적 불평등'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개인이나 가구의 '소득 불평등'을 지칭한다. 소득분배의 악화를 다루는 불평등 심화, 양극화와 빈부격차 등 다양한 용어들이 등장하였다.  

경험적인 분석에 앞서, 먼저 네 가지 소득분포와 관련된 개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들 네 가지 개념은 불평등(inequality), 격차(gap), 집중(concentration)과 양극화(bi-polarization)이다. 소득 불평등은 개개인들의 소득이 같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며, 보통 지니계수나 타일지수 등에 의해서 측정된다. 가장 많이 불평등 측정에 사용되는 지니계수는 개인들 사이의 소득 차이를 분석한다. 소득분포의 양극단의 분포에 민감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격차 분석은 양극의 집단에 초점을 맞추어 소득분배를 분석한다. 격차는 집단 간 소득 비중이나 평균 소득의 차이를 지칭한다. 대표적으로, S80/S20은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비중의 비율이며, P90/P10은 상위 10%의 평균소득과 하위 10%의 평균소득의 비율을 의미한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21>에서 주로 사용한 방법인 집중은 상위 소득 1%, 5%, 10% 등의 상위소득 집단의 소득이나 재산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초점을 맞춘다. 양극화는 소득분포 중에서 임의의 두 개 집단으로 소득이 집중되는 현상으로 보통 중간 소득계층이 줄어들고, 중간 소득 이하와 이상의 소득으로 사람들이 집중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 다음, 분석 대상인 소득과 관련된 논의도 필요하다. 소득이 매우 다양한 형태이기 때문에 어떤 소득을 분석하는 것인가 문제가 된다. 소득은 임금소득(wage), 근로소득(earnings), 경상소득(regular income), 비경상소득(non-regular income), 소득(income), 가처분소득(disposable income), 균등화 가처분소득(equivalised disposable income)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경상소득은 근로소득 이외의 금융소득이나 연금과 이전소득 같은 비근로 소득을 포함한다. 균등화 소득은 가구 가처분소득을 가구원 수로 보정한 소득이다. 정부통계와 OECD 통계는 대체로 균등화 가구 가처분소득 불평등을 싣고 있다.

마지막으로, 분석 단위의 문제가 있다. 소득 불평등의 분석 단위는 개인인가 아니면, 가구인가? 노동시장에서 얻는 임금의 불평등은 대체로 개인을 단위로 하지만, 소득 불평등에서는 보통 가구를 단위로 한다. 경제활동을 통해서 개인들이 얻는 근로소득은 가구 소득과 일치하지 않는다. 1인 가구의 경우는 개인의 소득이 곧 가구소득이지만, 맞벌이 부부나 가구주 이외에 경제활동을 하는 가구원이 있으면, 개인소득은 가구소득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득불평등 논의는 어떤 소득을 어떤 단위에서 분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가구소득 분포

여기에서는 가구를 분석단위로 하여, 균등화 가구소득의 분포를 불평등, 격차, 집중과 양극화 4개 차원에서 분석한다. 분석의 시기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의 <가계동향조사> 자료와 2015년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분석한다. 가계동향조사는 1990년부터 <도시가계조사>라는 이름으로 비농어가 2인 이상의 도시 가구를 모집단으로 하여 조사가 이루어졌다. 2003년부터 농어가가 포함되었고, 명칭도 <가계조사>로 바뀌었다. 2006년부터는 1인 가구가 모집단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2008년부터 명칭도 <가계조사>에서 <가계동향조사>로 바뀌었다. 이 조사는 시간적으로 모집단을 달리하였기 때문에, 정확한 시계열 비교 분석에 사용하기는 어렵다. 2006년 이전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1인 가구를 제외할 수는 있지만, 농어가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농민의 비율도 너무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조사된 자료이기 때문에, 추세를 분석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분석에 사용한 또 다른 자료는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 자료 중 2015년에 조사된 자료를 이용하였다. 이 조사는 <가계동향조사>보다 표본 크기가 2배 정도 커서 고소득자가 더 많이 포함되어 <가계동향조사>보다 불평등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보여준다. 국세청 자료보다는 훨씬 덜 정확하지만, 상대적으로 표본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1만 명 내외의 <가계동향조사>보다는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자료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지니계수를 중심으로 해서 소득분포의 변화를 보면, 균등화 가구소득 지니계수는 1990년 .2664에서 2010년 .3396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2010년대 들어서 증가 추세는 멈춰졌고, 어느 정도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균등화 가구소득 지니계수가 2015년 .3320으로 2010년에 비해서 2.2% 포인트 정도 줄어들었다(<표 1> 참조). 이러한 추세는 모집단의 변화가 있었던 2006년부터 1인 가구를 포함하였다는 점을 고려하여 1인 가구를 제외한 후, 2010년과 2005년의 지니계수를 비교하였다. 이 경우, 지니계수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2015년에는 2010년에 비해서 지니계수가 3.96% 정도 줄어들어서 약간의 불평등 감소가 나타났다.

집단 간 격차를 보여주는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평균 소득은 계속 확대되어 1990년 6.5배에서 2000년 7.7배로 늘었고, 2005년에는 약 9.8배로 더 늘었다. 그리고 계속 격차가 확대되어 2010년에는 13.2배 정도로 더 확대되었다. 1인 가구가 포함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인 가구를 제외한 경우, 2005년과 2010년 사이에 큰 차이는 없었다. 이러한 점은 소득 분위 10%의 소득과 소득분위 90%의 소득을 비교하는 경우에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즉, 2005년까지 격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1인 가구를 추가하는 경우인 2010년에는 격차가 더욱 더 높아졌다. 1인 가구를 제외하면, 2010년과 2015년의 지니계수와 격차지수는 2005년 수준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격차는 주춤한 상태를 보인다고 볼 수 있다.

<표 1> 균등화 소득 지니계수, 1990-2015
-----------------------------------------------------------------------------------------------
     가계동향조사    가계금융복지조사
---------------------------------------------       ------------------------------------------
 년도   가구소득   P90/P10(평균) P90/P10(분위)         가처분소득 P90/P10 (평균)  P90/P10(분위)
------------------------------------------------------------------------------------------------
1990 .2664   - 6.5057 - 3.5473    -
1995 .2634 - 6.7912 - 3.7870    -
2000 .2907   - 7.7064 - 3.9844    -
2005 .3075   - 9.8248 - 4.8498    -
2010 .3396 .3026a 13.1599 9.7600a 5.9423 4.8428a
2015 .3320 .2908a 11.9097 9.1513a 6.0404    4.7816a .3741 16.62 7.894
------------------------------------------------------------------------------------------------
참고: a는 1인 가구를 제외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측정치이다.

<가계동향조사> 자료분석 결과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2015년도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동일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표 1>의 오른 편에 제시되어 있는 지니계수와 격차지수가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 자료 분석 결과이다. 왼편의 <가계동향조사> 자료 분석결과와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불평등과 격차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가계동향조사> 자료가 실제의 불평등과 격차를 과소 추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소득의 집중과 양극화를 살펴보기 위하여, 상위 10% 소득집단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포스터와 월프손(Foster and Wolfson)이 제시한 양극화 지수를 분석하였다. <표 2>에서 볼 수 있듯이, 상위소득 10%의 소득 점유율은 <가계동향조사> 자료에서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여주었다.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1990년 22.81%에서 2015년 25.46%로 25년 사이 2.65% 포인트 높아졌다. 그러나 2010년도와 2015년도 자료에서 1인 가구를 제외하면, 상위소득 10%의 소득 점유율은 오히려 2005년보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가구의 빈곤률이 매우 높고 또한 1인 가구가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1인 가구를 제외하였을 때, 소득집중은 크게 낮아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양극화 지수도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였다. 포스터와 월프손이 제시한 양극화 추정치는 0에서 1까지의 구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양극화 추세가 상당히 심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10년과 2015년 양극화 지수를 비교하면, 약간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첫째, 1인 가구의 문제이다. 1인 가구는 1990년 9%에 불과하였지만, 2015년 현재는 전체 가구의 27%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급격히 증대되었다. 매년 1% 이상의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015년 1인 가구의 빈곤률은 50%를 넘을 정도로 1인 가구 빈곤이 심각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1인 가구를 제외한 분석은 오히려 소득분배의 현실에 대한 왜곡된 분석을 낳는다. 즉, 과거와는 달리 1인 가구를 분석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둘째, <가계동향조사> 자료는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집중도와 양극화 정도를 보이고 있어서,  보완적인 자료의 분석이 필요하다.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 자료 분석결과는 <가계동향조사> 자료보다 높은 소득집중도와 훨씬 더 심한 양극화를 보여준다. 상위 소득집단이 더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소득분배는 훨씬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규모가 더 큰 표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더 심한 소득집중과 더 심한 양극화를 예상할 수 있다.

<표 2> 소득집중과 양극화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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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계동향조사     가계금융복지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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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상위 10%      상위 20% 양극화 지수   상위 10% 상위 20%  양극화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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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22.81  -  .2149     -
1995 22.13  -  .2165     -
2000 23.51  -  .2410  -
2005 23.93  -  .2565  -
2010 24.75 22.88a 39.37  .2887 .2545a
2015 25.46 22.36a 39.06  .2799 .2363a     26.80    42.09   .3331


참고: a는 1인 가구를 제외한 후 분석한 결과

이 글은 <가계동향조사> 자료와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 자료를 가지고, 소득분배의 4가지 차원(불평등, 격차, 집중과 양극화)을 살펴보았다. <가계동향조사>분석 결과는 외환위기 이후 심화 심화되던 소득분배 추세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어느 정도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계동향조사> 자료가 시계열 분석을 하기에는 표본 크기가 작고, 모집단이 동일하지 않은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가계소득의 불평등 흐름을 개략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가계동향조사>에 비해서 표본의 크기가 2배 정도 더 큰 2015년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 자료를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료 분석을 통해서 4가지 차원에서 한국의 소득분배가 악화되었고 현재는 매우 높은 수준의 불평등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증가 추세가 어느 정도 정체를 보여주고 있지만, 불평등 수준은 매우 높은 수준에 달했다. <가계동향조사> 자료에서 나타난 지니계수 .3320는 OECD 35개 국가들 가운데서도 14위로 약간 높은 수준이지만,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 자료에서 나타난 지니계수는 대단히 높아서, 칠레(.480), 멕시코(.450)와 미국(.394), 터키(.393) 다음으로 높은 가계소득 불평등을 보여주었다.

둘째, 소득 상위 집단과 하위 집단 간 격차(P90/P10(평균소득)와 P90/P10(분위소득))도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다. <가계동향조사>보다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에서 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계동향조사> 자료에서 격차는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었지만,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에서는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을 보여주었다.

셋째, 상위 소득 10%와 20%로 소득 집중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상위소득 집단으로서의 소득 집중 수준은 OECD 평균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소득 집중이 심해져서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와 같은 신자유주의 사회들의 뒤를 바로 잇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는 경제적 불평등 가운데 소득 불평등만을 다루어졌다. 재산 불평등은 소득불평등에 비해서 훨씬 불평등이 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산 불평등을 다루지 않고는 경제적 불평등을 제대로 다루었다고 보기 힘들다. 참고로 2015년 소득불평등 지니계수는 <가계동향조사> 자료에서 .3320이었고,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 자료에서는 .3741이었지만, 재산 불평등 지니 계수는 .5797로 대단히 높았다. 한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부하기 위해서는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과의 관계에 대한 추가적인 분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7464


2017년 3월 18일 토요일

대중 경제의존도, 과장돼 있다

2012년 발표된 통계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GDP(국민총생산량)에서 일본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총 무역량에서는 처음으로 미국을 추월해 1위 자리에 올랐다. 조만간 GDP에서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은 201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수출의 24.2%, 수입의 16.8%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 됐다. 대중(對中) 교역규모가 확대되면서 대중 무역수지 흑자는 물론 비중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을 감안할 때 중국과의 교역규모가 크다는 건 중국이 그만큼 중요한 시장임을 시사한다.

이 통계만 놓고 보면 중국이 한국 경제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좌파진영 일각에서는 이를 근거로 외교관계에서 미국보다 중국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수차례 제기된 바 있다.

대중(對中) 교역의 실상, 대부분이 가공무역

그러나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와 관련해서 실상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과 중국의 무역량이 다른 국가들과의 그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가공무역이다. 중국의 인건비가 한국보다 저렴해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생산기지를 건설, 반제품 또는 원자재를 중국으로 수출해서 조립한 후 미국, 유럽 등 제3국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즉 최종 목적지는 중국이 아닌 미국 등 서방국가가 되는 것이다.

반면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수출비중은 적은 편이다. 정부가 지난 2011년 3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중수출 중 제3국으로 수출하는 가공무역의 비중은 75%이고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대중수출은 25%에 불과했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기록하는 수백억 달러의 무역흑자에는 상당부분 거품이 끼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매긴 무역 평가 결과 한국의 실질적인 대중 무역흑자는 대폭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WTO(세계무역기구)는 지난 1월 주요 교역국의 무역을 부가가치(value-added) 기준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OECD와 WTO가 글로벌 공급망의 분화로 총수출액과 총수입액에만 의존하는 기존 총교역량 방식의 무역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해 최종재 생산에 사용된 중간재의 생산국과 부가가치를 추적함으로써 상품들이 어느 정도의 부가가치를 내는지 분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의 대 중국 수출은 2009년 기준으로 총 교역량 방식을 적용할 경우 전체 수출의 27%를 차지하지만 부가가치 기준을 적용할 경우에는 19%로 감소했고 일본은 한국의 두 번째 수입국가에 올랐다. 또한 부가가치 기준에 따르면 대 중국 무역흑자는 약 450억 달러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는 “지난 2009년을 기준으로 할 때 대 중국 무역수지 흑자는 569억 달러였지만 부가가치 기준으로 하면 104억 달러에 불과하다”며 “한국산 제품의 상당부분이 중국에서 가공을 거쳐 미국, 일본, 독일 등 제3국으로 수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의 중국에 대한 실질적인 경제의존도가 단순 무역량에 비해 훨씬 낮음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타국으로 대거 이전할 경우 대중 교역 규모는 자연스럽게 급감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중국의 내수시장은 현재까지는 GDP 규모에 비해 적은 수준이다.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기준으로 중국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로 미국(72%), 일본(60%)에 비해 한참 낮았다. 그 규모도 2조5000억 달러로 일본의 71%, 미국의 24%에 불과했다.

이 같은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민일보는 지난해 사설에서 “중국의 무역흑자는 사실상 미국 기업들이 모두 가져가고 있다”며 “지금처럼 자국 내 모순을 중국에 전가하면 국제무역의 발전을 저해하고 쌍방 모두 손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표면상으로는 중국이 무역흑자를 보고 있지만 대부분 가공무역이고 실제 수출 주체는 외자기업들이어서 중국이 이익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인민일보는 “지난해 중국의 수출에서 외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2.4%에 달하고 그 중 미국 기업의 비중은 60%나 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대미 무역에서 낸 흑자 대부분을 미국이 다시 가져간다”는 주장이다. 이어 “중국은 양질의 저렴한 상품을 수출해 미국인들의 소비 능력과 생활 수준을 높여줬다”며 “이는 미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중국 인건비 상승에 투자기업들 대거 철수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가공무역을 위해 중국에 대거 진출한 이유는 중국의 인건비가 한국에 비해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최근 이 경쟁력마저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생산성을 고려한 중국의 1인당 평균 인건비가 앞으로 8~9년 안에 한국의 인건비를 추월할 전망이다. 또 2008~2010년 중국에 진출해 사업하고 있는 국내 22개 제조업종 가운데 식료품 의복 등 10개 업종은 평균 3년에 한 번꼴로 적자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2021~2022년께 중국과 한국의 근로자가 1달러어치 제품을 생산할 때 받는 시간당 임금(생산성 임금)이 거의 비슷해질 전망이다. 이는 산자부의 의뢰를 받은 회계컨설팅업체 삼정KPMG가 중국에 1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국내 439개 기업을 대상으로 10년간(2008~2017년) 양국의 인건비 상승 추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턴하는 기업들도 최근 급증했다. 중국 칭다오에 진출한 국내 주얼리업체 18개는 지난해 8월 전북 익산으로 생산공장을 이전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신발·전자부품·자동차부품 등 제조업체 10곳이 국내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보다 인건비가 훨씬 저렴한 동남아 국가들이 새로운 생산기지로서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출처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832

2017년 3월 6일 월요일

양극화 심화 원인은 ① “부 세습” ② “노동시장 불평등”

서민층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중산층 “능력따른 보상보다 부 세습따라 지위결정”

국민 10명 가운데 3명은 우리 사회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부의 대물림을 꼽았다.

<한겨레>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 ‘우리 사회에서 심화하고 있는 격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전체의 31.0%가 ‘부의 세습으로 인한 계층이동의 어려움’이라고 답변했다. 그다음으로는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 같은 ‘노동시장의 불평등’(22.2%)과 ‘과도한 학벌사회’(16.5%), ‘부족한 사회안전망’(14.7%)이 뒤를 이었다. 한 집안에서 축적된 부가 여과없이 대물림되는 현상을 사회적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한 셈이다.

격차사회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주로 40대 이하(37.2%), 대학 재학 이상(38.0%), 월평균 가구소득 400만원 이상의 중·상위소득(40.5%), 자영업(40.0%), 화이트칼라(38.4%) 응답자는 부의 세습을 격차 심화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중졸 이하 저학력(33.8%), 200만원 이하 저소득(33.0%), 블루칼라(30.5%) 응답자는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첫째 원인으로 지목했다. 직접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생업을 유지하는 집단이 노동 불평등의 심각성을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계급에 따른 시각 차이가 뚜렷하다. 특히 저소득·저학력자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이 설문 결과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등 서민층은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를 지적하고 있고, 고학력·중산층은 자신의 능력에 따른 보상과 평가보다는 부의 세습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는 ‘귀속주의 원리’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년 세대는 다른 연령층에 견줘 학벌사회의 심각성을 더욱 절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23.7%가 학벌사회를 지목해 평균보다 7.2%포인트 높았다. 특히 대학생 연령대인 19~24살의 27.7%는 학벌사회가 부의 세습(27.2%)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직장생활에 접어든 30대는 모든 세대 가운데 가장 적은 11.0%만이 ‘학벌사회’를 꼽았다.

통상 ‘계급 역전’의 유일한 도구로 인식되는 교육의 기능에 대해서는 비관적 시각이 갑절 이상 많았다. ‘교육이 격차사회 해소에 제 역할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63.8%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31.6%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의 장은숙 회장은 “지난 5년간 교육정책에 의한 상실감이 드러난 결과로 보이며, 앞으로의 정책은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도록’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5년 뒤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58.6%
53.4% “노력만큼 보상 못받아”
61.6% “한국은 폐쇄적 사회”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대다수는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면서도 열에 여섯은 나아질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보고 있었다.

‘5년 뒤 나의 경제적 지위 변화’를 예상해보라는 물음에 58.6%가 ‘지금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고 답한 응답자는 40.6%에 그쳤다. 연령별로는 40대 초반(40~44살), 직업별로는 생산직 종사자가 미래를 가장 어둡게 전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각 71.2%, 71.1% 비율로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의 배경에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사회체제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우리 사회 현실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과 인정을 받는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절반 이상(53.4%)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또 부모의 지위와 자녀의 계층상승 기회와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는 61.6%가 ‘연관이 깊다’고 답해 더 이상 계층 변동의 기회가 열려 있지 않은 폐쇄사회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이 훨씬 우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사회가 개방적 사회에 가깝다는 대답은 34.4%에 그쳤다.

개인의 노력과 부모의 경제적 지위 가운데 자녀의 성공에 더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무엇이냐고 묻자, 54.9%가 ‘부모의 경제적 지위’를 지목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7730.html#csidx4879658957f348ba75b69fdeb4bd093

2017년 2월 28일 화요일

한국, 전세계에서 최악의 소득 양극화 국가

한국이 주요국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소득 양극화가 큰 나라로 조사됐다. 양극화 속도는 가장 빨랐다. '헬조선' 등의 비관적 신조어가 유행하게 된 근본 배경으로 풀이된다.

4일 국회입법조사처가 세계 상위 소득 데이터베이스(The World Top Income Database, WTID)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2년 기준 한국 소득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44.9%였다.

소득집중도는 소득 상위권 특정 구간의 집단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의 경우, 전체 국민 소득 절반 가까이를 상위 10%가 차지함을 뜻한다.

이는 47.8%를 기록한 미국 다음으로 높다. 2012년 미국과 한국에 이어 상위 10%의 소득집중도가 40%를 넘어선 나라는 싱가포르(41.9%), 일본(40.5%)뿐이었다. 영국(39.1%), 프랑스(32.3%), 뉴질랜드(31.8%), 호주(31%)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이 이처럼 소득 양극화 국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1997년의 외환위기다. 이후 한국은 IMF의 지시에 따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여파로 일부 대기업이 세계적 수준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등 경제 구조 재편이 일어났으나, 이에 따라 대기업 직원 등 일부 좋은 직업으로 얻는 소득과 그렇지 않은 소득 수준의 격차가 커졌다.

이와 관련, IMF 체제 이전인 1995년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29.2%에 불과했다. 당시에도 40%를 넘었던 미국(40.5%)은 물론, 싱가포르(30.2%), 일본(34%), 영국(38.5%), 프랑스(32.4%)보다 낮았다. 이때만 해도 탄탄한 중산층이 형성되었음을 추론 가능하다.

하지만 IMF 체제가 안착한 후, 한국의 소득 양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2000년 상위 10%의 소득집중도가 35.8%였고, 2008년에는 43.4%로 크게 벌어져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양극화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문제다. 1995년부터 2012년 사이 미국의 소득집중도는 7.3%포인트 올랐는데, 이 기간 한국의 상승 폭은 15.7%에 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소득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이번 조사 결과가 2012년 자료인 만큼, 이미 미국을 앞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반면 이 기간(1995~2012년) 프랑스의 양극화는 1995년 32.4%에서 2012년 32.3%로 다소 개선됐다. 뉴질랜드(32.6%→31.8%), 말레이시아(27%→22.3%)의 소득 불평등 정도도 개선됐다.

특히 한국의 양극화 문제는 자산 불평등 정도를 고려하면 더 심각하다. 자산 집중도를 쉽게 보여주는 통계 자료는 찾기 어렵지만, 대물림되는 자산 중 가장 중요한 부동산 관련 지표는 한국의 자산 불평등 정도를 쉽게 보여준다.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국세청과 안전행정부가 제출한 2008년~2014년 부동산 소유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9년 상위 1%가 보유한 부동산 가치는 457조 원이었다. 이후 정부의 관련 규제 완화 정책에 힘입어 2011년에는 482조 원으로 늘어났고, 2012년에는 500조 원을 넘었다. 2014년에는 519조 원까지 늘어났다.

상위 10%로 대상을 늘릴 경우, 2009년 1311조 원, 2010년 1381조 원에 이어 2012년에는 1454조 원으로 폭증했다. 2014년에는 1497억 원까지 올랐다.

2014년 기준, 부동산 보유 상위 100명은 1인당 평균 주택 166채(공시가격 158억 원)와 1115억 원 상당의 토지를 보유했다. 반면 최하위 10%의 부동산 보유금액 평균은 500만 원이었다. 상위 1% 개인이 하위 10%에 비해 646배 많은 부동산을 보유했다.

이 때문에, 소득집중도를 어느 정도 개선한다손 치더라도 만연한 양극화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어렵다. 부의 유지와 확대를 위한 중요한 밑바탕인 교육, 취업 기회가 부모 세대의 자산과 소득에 연동되는 점을 고려하면,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지 않는 한 한국의 소득집중도, 자산 불평등 정도는 지속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김영주 의원은 "자산양극화는 소득양극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자산양극화 완화야말로 양극화를 해소하고 공정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0967

2017년 2월 20일 월요일

사실상 백수 450만명이라는데

기사에서 사실상 백수가 늘어나서 큰 문제라는 투로 얘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사실상 실업자'의 증가는 실업률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고용률 상승 폭 둔화로 나타나고 있다. 고용률은 2014년 전년보다 0.7%포인트나 상승했지만 2015∼2016년 2년 연속 0.1%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하지만 고용률이 전년 대비 0.7%포인트 상승한 해는 지난 15년간 2014년이 유일하다. 가장 높았던 해와 비교해서 지난 2년간의 고용률 상승 폭이 크게 둔화된 것 처럼 기사를 쓰면 어쩌라는 건지.

2000년 이후 고용률은 평균을 내면 매년 0.12%포인트씩 상승한다. 2000년에는 인구대비 고용률이 58.5%였는데 2016년에는 60.4%로 늘었다. 고용률로 본다면 2000년 이후 작년이 가장 높았다. 고용률 측면에서 작년이 최고의 해.

고용에 대해서 무조건 부정적인 기사를 쓸려고 하니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전달을 못하는 것이다.

전체 노동시장으로 보면 고용률에 아무 문제가 없다. 2000년 이후 고용율이 약간 상승한 것은 여성의 고용율이 늘었기 때문이다. 남성은 2000년 70.7%에서 2016년 71.1%로 거의 변화가 없지만, 여성은 2000년 47.0%에서 2016년 50.2%로 3.2%포인트 증가했다.

하지만 연령대별로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문제가 드러난다. 아래 그래프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의 고용률 지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50대 고용률의 상승. 2000년에는 50대 고용률이 66.5%였는데, 2016년에는 74.4%로 무려 7.9%포인트 늘었다.

21세기 초에는 40대의 고용률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30대, 50대 순이었다. 연령대별로 고용률의 차이가 명확하다.  그런데 2016년에는 50대와 30대에 차이가 없다. 40대가 여전히 고용률이 가장 높긴 하지만, 30대, 50대와의 차이가 크지 않다. 전반적으로 30,40,50대의 고용률은 늘었다.

50대의 고용률이 8%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는 것은 은퇴 연령이 늦어지고 50대 장년층의 노동시장 상황이 상당히 개선되었다는 의미다. 30-40대의 상황도 나쁘다고 볼 이유가 별로 없다.  

문제는 20대. 2016년에 2000년대 초와 비교해 가장 눈에 띄는 패턴은 20대와 30,40,50대의 고용률의 분리다. 다른 연령층에서는 고용률이 높아졌지만 20대 고용률은 작년이 58.3%로 2000년대비 다소 줄었다. 2012년의 최저점 보다는 약간 높아졌지만 여전히 2000년대 초반 대비 현재의 고용률이 낮다.

위에 링크한 기사에서 문제삼은 자력형 취업준비생과 학원등에 등록해서 취업 준비 중인 인구가 2016년 현재 62.8만명인데 이는 2012년 대비 12%가 증가한 것이다. 취업 준비생의 상당수가 20대일 것으로 추정한다면 이 증가율은 심각하다. 취준생이 늘어난 것이 20대의 인구 증가 때문은 아니다. 취준생이 12% 늘어나는 기간 동안 20대 인구 증가율은 2.0%에 불과하다. 이러한 변화는 예전에 얘기했던 30-50대의 소득은 증가하는데, 20대의 소득만 감소하는 경향과 일치한다.

노동시장 변화가 20대 vs 기타 세대로 양분되는 양상이 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에 20대가 차지하던 쓸만한 일자리를 50대가 가져가는 건지, 20대의 학력이 높아지면서 수요 공급의 불일치가 생긴건지 (50대가 과거 20대가 차지하던 저학력 일자리 차지). 아니면 다른 뭔지.



http://sovidence.tistory.com

2016년 6월 14일 화요일

공짜 점심은 없다! 관심의 경제학




공짜와 공짜가 아닌 두 가지 가격

종이신문은 제작과 배포에 큰 비용이 든다. 반면 블로그를 통해 유통되는 정보는 0에 가깝다. 해당 콘텐츠를 만들어내기까지 수없이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 했겠지만, 온라인에서 제공되는 콘텐츠의 경우 단위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데 드는 비용은 기본적으로 0에 가깝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가격이 0에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정보기술 덕분이다.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다양한 디바이스(Device), 정보를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Platform), LTE와 같은 네트워크(Network)망이 갖춰지면서 콘텐츠(Content)가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어 유통되고 있다.

TV, 신문, 잡지, 라디오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소비했던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생산과 유통에 참여하게 되면서  ‘유료’가 ‘공짜’와 경쟁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크리스앤더슨은 <Free>에서 "세상에는 공짜와 공짜가 아닌 두 가지 가격이 있다"고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공짜와 공짜가 아닌 두 가지 가격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에버노트를 무료로 사용하던 사람이 유료 프리미엄 서비스로 전환할 때, 가격보다는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스마트폰에서 유로 앱을 구매할 경우 '돈을 지불하면서 구매할 가치가 있는가?'를 먼저 고민하는 것과 같다. 구매하기로 결정하면 그것이 1달러인지 2달러인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온라인에서는 0원과 100원의 차이가 100원과 10,000원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공짜로 내놓아야 성공할 수 있다

‘갑’과 ‘을’로 대변되는 수직적 방식에서 ‘파트너’로 대변되는 수평적 방식으로 일하는 방식이 변화되고 있다. 수평적 사회에서 1인기업이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어떤 산업이든 후발주자는 공짜로 시장에 진입하기 마련이다. 공짜가 시장을 공략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것이다. 결과적으로 가격이 0일때의 수요는 아주 적은 비용이라로 받을 때보다 몇 십, 몇 백 배 크다고 할 수 있다.

1인기업이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프리코노믹스(freeconomis)라고 한다. 프리코노믹스는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명성을 벌어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연관산업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Free Business Model 중 하나이다.

정보가 많아지면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소비할 수 없기 때문에 ‘관심’이라는 자원이 중요해진다. 따라서 1인기업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당장의 금전적 수익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블로그, 유튜브 등에 무료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할 것이고,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한 1인 기업은 ‘관심’이라는 자원 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그림과 같이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면 소비자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콘텐츠가 소비될수록 콘텐츠 제공자는 관심과  명성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Free Business Model의 기본 개념이다. 이렇게 쌓인  관심과 명성을 바탕으로 1인 기업은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비즈니스를 전개 할 수 있게 된다. 프리코노믹스는 고객의 인식 변화, 기술의 발전, 자본집중, 혁신적 서비스, 경쟁 등 시장에서 시장을 창출하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는 결국 기존 정보와 콘텐츠의 변화 흐름을 타고 산업의 구조를 변화시킬 것이다

출처: http://oneceo.co.kr/297

2016년 6월 12일 일요일

높은 최저임금의 여러 가지 문제들

 근래 최저임금 관련하여 워낙에 이야기가 많고, 제 블로그에도 최저임금 키워드나 그에 관련하여 찾아오시는 분이 많아 이에 관련한 추가적인 포스트를 작성합니다.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더 높은 최저임금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느냐,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느냐, 그리고 누구에게 도움이 되느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만일 당신이 최저임금 노동자라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싶어서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한다면, 그럴 만한 일자리로 이직을 하거나 사업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건 바람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더 많은 최저임금을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싶다고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면 대단히 곤란합니다.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자면 높은 최저임금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특정 소수에게만 이익이 됩니다. 많은 이들은 더 높은 최저임금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고, 총체적으로는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우선 최저임금은 그 자체로 시장 불균형을 만드는 일종의 규제입니다. 사업자나 회사는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으로는 합법적으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습니다. 해당 노동자의 노동력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와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내년 최저임금이 6030원으로 결정되었는데, 이것은 노동자의 노동력이 시간당 6030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6030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적잖은 경우에 노동자의 노동력이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부가가치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건 쉽게 말하면 어려운 사업자나 기업이 많다는 것이지요. 생계를 위해 사업을 하는 개인 및 영세사업자가 참으로 많습니다. 정책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릴 때는 임금 노동자들과 동등한 정도로 이들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최저임금도 못줄 사업자는 빨리 망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사악하고 모질고 못되어먹은 사람들이지요. 조금이라도 건강한 이성과 감성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대규모의 사업체 및 사업자 도산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이 정말 나쁜 건, 그 방식이 ‘가난한 사람이 또 다른 가난한 사람을 의무적으로 보조하도록’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이 말을 바꾸면 ‘가난한 사람이 다른 가난한 이를 착취하게 한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은 유일하게 훌륭한 재분배 정책도 아니고, 경제학적으로 훌륭한 분배 정책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도 가난한 이를 구제하거나 도와줄 방법은 참으로 많습니다.

 실제 생계형 사업자들은 사업이 망했을 때 재취업이 어려운 연령대인 경우가 많으며, 사례를 보면 50대 사업자들의 다수가 사업에 실패합니다. 그리고 이 망한 50대는 평생 쌓아둔 재산을 잃고, 재취업의 기회도 차단당한 암울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또 대체로 이 연령대는 자녀가 있고, 노부모를 봉양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업자들에게 돈을 빌려준 수많은 사람들이 또 있지요. 그 사람들도 물론 대체로는 가족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저임금제는 평균적인 노동자에게도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빠르게 증가하는 최저임금은 일자리를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 관련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최저임금 인상 시엔 실업률이 다소나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파급은 단순한 실업률 문제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있는 사업체는 보다 규모가 크고, 조직적이며 유사시 손실을 다른 쪽에 떠넘길 수 있는 집단일 확률이 높습니다. 즉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자영업자 비율을 줄여야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골목 상권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더 장악해야한다. 재래시장도 망하고, 음식점도 줄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본인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겠습니다만.

 사업체 숫자의 감소, 독과점화되는 시장은 당연히 노동자에게도 좋을 게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노동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으려면 성공하는 사업체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성공적인 기업이 노동자에게 많은 임금을 주는 건 그들이 천사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기업의 장기적 성공 및 시장에서의 경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은 신규 기업 및 사업자가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문턱을 높여버립니다. 그 어떤 사업체라도 초반에는 힘들기 마련이며, 힘든 시기도 있기 마련입니다. 대다수의 사업자들은 창업 후 한동안은 실질적으로 전혀 수익이 없습니다. 투자원금만 회수하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

 요약하자면 저소득층이 더 많은 소득을 얻으려면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가 생겨야 합니다. 그런데 급속도로 높아지는 최저임금은 그러한 일자리가 생길 가능성을 낮출 확률이 높습니다. 인건비가 매년 6~7% 수준으로 늘어나는데, 그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기란 어렵습니다. 인건비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아마 그런 사람들도 통신비, 가스비, 교통비 같은 게 매년 7%씩 오른다면 미치려고 할 겁니다. 사업자에게 인건비 비중은 저런 것보다 결코 낮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층의 평균 소득을 높여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속적인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10명중 실업자가 1명만 생겨도, 그의 근로소득은 0이 됩니다. 더구나 최저임금 노동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올라서는 데도 가파른 최저임금 상승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책이나 규제를 검토할 때는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 및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합니다. 혹여 어떤 정책이 다수에게 이익을 주더라도, 소수에게 너무 큰 피해를 준다면 그런 정책은 재검토해야합니다.

 또 고려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진짜 빈곤층 가장은 최저임금 일자리에 머무르려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더 많은 임금을 벌기 위해 노력합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런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건 불합리한 일이지요. 현실적으로는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리고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제조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특근, 잔업, 주휴수당 등으로 어느 정도 생계가 가능한 임금을 챙기는 경우가 많은데,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은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한국 최저임금은 21세기 들어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최저임금이 이렇게 올라간다면 그 부작용이 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시간당 5000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노동과, 시간당 10000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은 더 많은 숙련도를 요구할 확률이 높고, 강도도 더 높을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 최저임금이 시간당 10000원이라면 자유 시장에서 시간당 10000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퇴출됩니다. 최저임금제는 사실 저생산성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는 제도가 아니고, 저생산성 노동자를 노동 시장에서 반영구적으로 퇴출시키는 제도일 수 있습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제도와 최저임금제는 본질적으로 다른 제도입니다.

 그리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내수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그건 그야말로 아무런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을까? 라는 가설로는 제안이 가능합니다만, 그 입증은 전혀 다른 문제지요.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인상이 내수경제활성화에 좋은 영향을 줄 확률은 낮고, 그 반대일 확률은 높습니다.

 최저임금이 늘면 최저임금 노동자는 분명 소비를 더 하긴 합니다. 다만 문제는 최저임금 지급자가 그만큼 소비를 덜 하고, 투자자본에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데 있지요.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건 돈의 회전속도가 빠르고, 투자자본이 불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업자가 투자자본 손실을 입게 되면, 그것은 결코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호황일 때 폐업하는 점포가 많은 건 상식적으로 이상하잖아요?

 게다가 최저임금 노동자의 소비양상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최저임금 노동자는 대기업 계열 점포에서 대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생각합니다. 편의점에서 담배 사 피우고 캔맥주나 삼각김밥에 사발면 사 먹는 라이프스타일이 더 많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대기업의 곳간에 돈을 채워 넣습니다. 대조적으로 시장에서 생선, 채소, 과일을 사서 요리해 먹으면 훨씬 복잡한 유통 구조를 거치면서 경기 활성화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됩니다.

 또 임금이 생산성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것은 곧 경제위기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높은 임금은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이 경우 예후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은 제조업 국가라 생산성 향상 이상의 임금상승은 큰 문제가 되기 쉽습니다.

 진정으로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게 하고 싶다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많아지도록 유도해야합니다. 사업체 및 사업자는 결코 노동자가 창출하는 부가가치 이상의 임금을 장기적으로 지급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자동화와 전자화는 사회의 정말 많은 분야에서 인력의 필요성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 인건비의 강제적인 증가는 사업자들에게 자동화 투자 의욕을 높이는 결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 인상론자들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그것이 ‘착한’ 것이라는 성급하고 오만한 결론에서 벗어나십시오. 모든 걸 원점에서 재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진지한 반대론자들이 왜 반대하는지 그 이유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최저임금 인상 말고도 다양한 분배 수단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소액의 기본소득이 낫습니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 정책을 강화하고 경기를 활성화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입니다.

 세상이 단순한 몇 가지 규제로 쉽게 좋아질 수 있는 곳이었다면 이미 이 곳은 거의 유토피아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책은 결코 입안자의 의도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정책의 장단점과 예상되는 결과를 냉정하고 신중히 살핀 후 진행해야합니다. 섣부른 기대와 선의만으로 정책을 입안하게 되면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 열리는 게 정치 및 경제입니다.

출처: 해양장미의 블로그 /http://oceanrose.tistory.com/548

2016년 6월 11일 토요일

화폐의 역사와 자본주의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특히 많은 청년들이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그리고 돈에 관하여 막연하게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이에 본문을 작성합니다.

 우선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게, 자본주의는 사실 ~ism이라 하기 어려운 자연발생적인 현상입니다. 애초에 자본주의라는 말을 발명한 것도 시장경제에 비판적이었던 그 마르크스이며, 그의 자본 및 시장에 대한 파악 및 정의는 불완전하고 작위적인 데가 있었기에 단어 자체가 광범위한 오해의 기원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학자들은 - 좌파 비주류들을 제외하면 - 자본주의라는 말 자체를 거의 안 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언급 자체가 나오는 문서는 아예 보지도 않는다고까지 합니다. 즉 자본주의라는 말은 그 자체로 공산주의자들이 현실 시장-화폐경제에 대해 찍은 일종의 낙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는 시장-화폐경제는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우리 인류는 국가 형성 이전부터 이미 상업 활동을 해왔습니다. 옛 공산주의자들의 비과학적 오인이 현재까지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면이 많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건 긍정하던 관계없이, 시장과 화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먼저입니다.

 이를 위해 선사 시대의 일부터 이야기해보지요. 우리 먼 조상들은 정착 생활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이웃 부족과 자연스럽게 거래를 하게 됩니다. 이런 원시적 상행위는 삶의 질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었는데요, 현대 선진국인들과는 달리 본래 인류의 삶이란 매우 큰 불안정성 위에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안정성의 일차적인 원인은 농사에 있습니다. 농사라는 건 사실 이 동네는 잘 되는데 옆 동네는 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작물은 전멸하는데 어떤 작물은 멀쩡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즉 상업행위는 흉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지요. 산 위의 A 부족은 수수와 조를 키우고 도토리, 밤을 줍고 토기를 굽습니다. 그리고 산 밑 바닷가의 B 부족은 물고기를 잡고, 해산물을 채취하며 신발을 만듭니다. 이 경우 A와 B 부족의 거래는 서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생존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유용한 것입니다. A부족이 농사가 망했을 때는 토기를 팔아 물고기를 사올 수 있고, B부족의 어획이 엉망일 때는 신발을 팔아 수수, 조 등을 사올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는 다양한 부족이 다양한 물품을 거래하게 되기 때문에, 계급 사회 형성 이전의 원시사회에서 상행위란 수렵, 채집, 농사, 목축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중요한’ 생존 행위였습니다.

 실제 상업이 발달하지 못한 지역에선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들어서도 기근 시 대규모의 사망자가 나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런 사례에는 북조선도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 상행위에 대한 인류의 열망은 공산주의자들조차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시장경제를 통제할 수 있었던 옛 동구권 공산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거래는 인류의 본능이고,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생깁니다.

 물론 상행위의 기본은 물물교환입니다. 그렇지만 서로 필요한 물건만을 그 때 그 때 교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각자가 매 순간 원하거나 필요한 건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모두에게 필요하거나 모두가 좋아할 법한 물건이 교환수단이 되게 됩니다. 화폐, 즉 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실물 화폐에는 크게 3종류가 있습니다. 식량, 섬유-피혁, 금속이 그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생존에 중요한 것으로, 한반도에서도 꽤나 최근까지 쌀과 면포를 화폐로 사용했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점차 ‘화폐’의 통상적인 정의에 점차 가까워진 것은 금속입니다. 금속이 식량이나 섬유보다 보존성이 더 좋고 가치에 비해 부피가 작기 때문에 화폐로 보다 더 좋은 기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금속은 식량, 섬유보다 사용이나 거래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원전 7세기경에 우리가 잘 아는 주조화폐, 즉 주화(=coin)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 기원은 순도와 중량을 통일하고, 그것을 군주가 보장하는 금속조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주화는 오랜 기간 동안 화폐의 기본이 됩니다.

 이런 주화는 우리가 잘 아는 금, 은, (청)동으로 주로 만들었고, 청동으로 된 게 주로 유통되다보니 동전이라는 언어가 대표적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청동은 흔한 오해와는 달리 부식되지 않는 한 우리가 잘 아는 구리 색깔이며, 자연적으로는 쉽게 부식되지 않습니다. 부식이 된 후에야 청동 미술품에서 볼 수 있는 청록색이 나옵니다. 그 밖에 연(납), 아연, 철 등으로도 주화를 만들었습니다만, 주화를 만들기에 적합한 소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조화폐 역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동전을 많이 가지고 거래를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건데, 이게 자루 하나에 담길 정도가 되면 꽤 무겁습니다. 양이 좀 많아지면 운동 기구나 무기가 따로 없을 정도지요. 또 화폐를 발행하는 데 자원이 많이 들다 보니 마음대로 발행하기도 힘들고, 테두리를 깎아서 따로 사용한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문제보다 결정적으로 큰 문제는 금속의 시세는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화는 엄연히 액면가가 있는데, 액면가와 실제 금속 조각의 가치가 다르다보니 혼란과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현상은 화폐의 본질과 맞닿아있기도 합니다. 근래에도 10원 동전을 모아 녹여 판 일당이 적발된 사례가 있는데, 10원 동전의 금속 가격이 10원보다 꽤 비싸기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보다 현대적 의미에서 발달한 의미의 화폐는 사실 고대부터 거래되었습니다. 위에 이야기한대로 화폐는 교환의 매개수단이며, 이 매개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크레딭, 즉 신용입니다. 실물이 화폐로 쓰였던 건 그것이 매우 높은 신뢰성, 즉 현물로서의 실효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확실하게 이행을 한다는 신뢰만 있다면, 사실 시간차가 있는 재화교환에 있어 현물이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신용 거래 자체는 사실 매우 일반적입니다. 외상으로 물건을 산다거나, 품앗이를 한다거나 하는 것 모두가 신용 거래입니다. 위의 A, B 부족 이야기로 돌아가 보지요. A부족이 어느 해 흉년이 들어 B부족에게 식량을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B부족에는 이미 A부족이 만드는 토기가 남아도는 상태였고, A부족은 당장 B부족에게 줄 게 없습니다. 그래서 B부족은 A부족에게 ‘내년에 조와 수수 열 자루씩을 받겠다는’ 약속을 받고 물고기를 줍니다. 그런데 그냥 말로만 하는 약속은 안 지킬지도 모르니까, 신의 이름과 조상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증서’를 받아둡니다. 이 경우 이 ‘증서’는 일종의 화폐나 다름없습니다. 수표나 어음과 비슷한 신용화폐지요.

 시장에서 통하는 신용화폐, 지폐는 일종의 지급보증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큰 규모의 거래가 발생할 경우, 그 지불을 주화로 하는 것은 사실 꽤 어렵고 비효율적입니다. 공식적인 최초의 지폐는 (조)송에서 시작되었습니다만, 신용 거래의 특성상 리스크가 있다 보니 실패를 거듭하긴 했습니다.

 지폐가 신용화폐인 건 지폐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크레딭 없는 지폐는 온갖 낙서가 적히거나 인쇄된 작은 섬유조각일 뿐이지요. 이후 지폐는 현물과 연계되는 금, 은본위제와 함께 점차 보편화되게 됩니다.

 화폐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화폐를 이해해야만 크래딭(신용)을 이해할 수 있고, 크래딭을 이해해야만 캐피탈(자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공산사회주의가 얼마나 큰 오해를 사람들에게 주입했는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화폐를 설명하기 위해 유럽사 속의 시장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서로마가 붕괴한 후, 중세는 흔히 이야기하는 암흑시대가 됩니다만 사실 상공업은 도시를 중심으로 계속 발달합니다. 상공업은 토지와 날씨가 주요 변수가 되는 농업과는 달리, 보다 사람과 기술에 의존적입니다. 사람이 모여야 기술이 발달하고, 상행위가 쉽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공간적으로 식량 등을 자급자족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더더욱 상업이 중요해지게 됩니다.

 중세 초기의 도시들은 대체로 봉건 영주들에 속해있었으나, 점차 독립하게 되어 자치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화제는 도시의 제도였고, 그렇기에 ‘시민’이라는 어휘는 공화정과 관련이 깊습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상업이 없으면 데모크라시도 없습니다. 자본을 부정한 모든 체제가 민주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걸 기억하세요.

 한편 근대 이전의 모든 도시는 담수를 가까이합니다. 사람이 살려면 물이 필요한데, 도시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큰 수원이 필요했습니다. 이 수원은 대체로 강이고, 일부 운하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물길을 따라 교역이 이루어지곤 했지요.

 그런데 점차 유럽의 상업이 발달하다 보니, 1300년대쯤에는 주화에 쓸 귀금속이 부족해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 주화가 귀해지게 되지요. 그리고 이후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1500년대에 들어서는 아메리카산 은이 유럽에 대량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는 위에 이야기했던 ‘주조화폐의 해당 금속 시세문제’를 본격적으로 일으키게 됩니다. 비쌌던 은값이 공급증가로 싸지게 된 것이고, 그래서 은화에 대한 문제가 복잡해진 것이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사실 은 유입으로 신나하던 에스파냐 사람들, 즉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중상주의자들이 가졌던 경제와 화폐에 대한 인식 수준은 이 시대의 어린 사회주의자들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 아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 왜 돈 그 자체였던 은을 많이 가졌는데도 충분히 부유해지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시대의 멍청한 사회주의자들을 욕할 수는 있어도, 당시에 중상주의자들이 했던 착각을 욕하긴 힘듭니다. 돈의 본질에 대한 통찰은 그 시대에는 힘든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현명한 현대인이라면 이 문제를 어렵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화폐는 독립된 기준 - 그러니까 액면가 - 을 가지는 것이 시장 경제를 안정적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실물화폐는 해당 실물의 가격이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기준이 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완벽한 신용화폐가 등장하지는 못했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세계에 신용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예시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만일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극도로 억제되어있다면 - 이는 사실 경제성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옛날엔 이런 시대가 길었지요. - 쌀값은 매년 작황에 따라 크게 변화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쌀 20kg에 해당하는 쌀본위제 하의 5만원권 지폐가 있다면 (그러니까 그 지폐를 정부 기관에 가져가면 쌀 20kg랑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액면가에 (5만원이라는 표기와는) 관계없이 지폐의 가치는 신용이 낮은 사회의 경우 쌀 시세에 맞춰 변화하게 됩니다. 이리 설명하자면 어렵지만, 실거래가를 거의 통제하지 않는 상장주식의 경우 액면가는 거의 무가치한 것이니 그에 연관 지어 생각하면 좀 더 쉽습니다.


 화폐가 그 본질인 크레딭으로 이해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 이해의 차이에서 중상주의와 자유주의가 구분되고, 그 유명하고 위대한 1723년생 애덤 스미스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중상주의자들은 귀금속을 부로 생각해 중시하고 귀금속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걸 막으려 했지만, 애덤 스미스는 그것을 반박하고 총생산량과 교환가치야말로 중요한 것이라 주장하며 경제학의 아버지가 되지요. 그렇지만 지폐를 실물인 금과 연계하는 금본위제는 극히 최근인 1970년대까지 계속됩니다. 금본위제 하에서 현금은 본질적으로 신용화폐가 아닌 금화의 변형된 형태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러한 금본위제는 시한부일 수밖에 없었는데, 여러 복잡한 모든 이유들을 생략하고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 원인만을 꼽는다면, 금은 한정적인데 화폐는 점점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걸 꼽아야겠습니다. 가장 선명한 예로, 현 시점에서 전 세계의 GDP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추정 황금 시세의 총합을 초과합니다.

 결국 1970년대에 금본위제는 폐지되고, 신용 화폐의 시대가 열립니다. 신용 화폐는 지금껏 인류의 최대 발명품중 하나일 것입니다. 오랜 오해를 풀고 결국 인류는 돈의 본질을 마주한 것입니다. 이후 많은 오해와 낙인, 그리고 각종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는 꽤 많이 부유해집니다.

 지금껏 설명하였듯 화폐는 재화의 매개수단이며, 이 본질은 크레딭(신용)입니다. 그런데 화폐는 거래의 수단이기 때문에, 거래가 발생하지 않으면 실물이 아닌 신용화폐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결국 유통화폐, 즉 통화는 흘러 다니는 신용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다시 한 번 바꿔 말하면 통화량이 많다는 건 시장에 신뢰가 가득하다는(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시장의 신뢰란 곧 재화에 기대라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호황일 때는 통화량이 많고, 불황일 때는 통화량이 적습니다. 이걸 뒤집으면? 통화량을 늘리면 세상에 신뢰가 늘어나고, 호황이 옵니다. 어지럽나요? 언어유희 같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이런 식으로만 이야기하면 세상이 너무 해양장미빛일수 있으니 또 하나의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많은 경우 과도한 신뢰는 위험합니다. 믿음이 항상 진실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과한 믿음과 기대는 인플레이션을 촉진하고, 버블을 생성하며 그건 곧잘 터지곤 합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위 아나바다 이벤트 시장을 열고, 모든 참가자에게 일정한 액수의 (많은 분들이 한 번쯤 써 보셨을) ‘달란트’ 단위 이벤트 화폐를 나눠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모든 참가자에게 적은 액수의 달란트를 지급한다면, 참가자들은 가장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고 적은 물건만을 사는 경향이 생깁니다. 그 경우 물건이 얼마 안 팔리다 결국 막판에 많은 물건이 떨이로 처리되는 불황 및 디플레이션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가자 모두에게 넘치도록 많은 달란트를 준다면? 보이는 대로 막 사니까 전체 물건이 아주 잘 팔릴 겁니다. 다만 한정적인 물건을 두고 누군가 경매를 시작한다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실제 가치보다 훨씬 비싸게 살 수도 있겠지요. 이런 예시가 너무 간단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만, 현실 시장도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사람 본능과 습성이 거기서 거기거든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맨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시장이란 자연스러운 거래의 필요성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거래의 교환수단인 화폐는 곧 서로간의 신용(현실적으로는 기축통화국의 - 이 시대에는 미합중국의 - 신용)입니다. 누군가 만들어낸 악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만약 돈이 사악하다면, 그것은 인간이 사악한 겁니다. 모든 돈 뒤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해가 어디서부터 빚어졌을까요? 마르크스나 엥겔스 등이 보았던 산업 사회 초기의 온갖 사회 문제들은, 그냥 당시의 사회 문제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자동화 기기의 발달로 인해 기계가 많은 노동력을 대체하게 되면서, 농장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도시로 나온 대규모 인력이 저임금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던 게 당시 시대상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고, 당시의 시대상이 만들어냈던 일자리-노동력 시장 불균형의 문제라 보는 게 맞습니다. 그 문제는 생산성이 향상되고, 경제가 성장하며 개선되게 되지요.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공산주의 계열의 사상은 경제사에서 단순한 잡음이었을 뿐입니다. 자본주의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자연 발생적인 시장경제가 있었을 뿐이며 경제학은 꾸준히 발전하였고, 온갖 실패를 겪고 문제를 고쳐가면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지금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그것을 작위적으로 나쁘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뿐이지요.

 또 좌파들이 주장하는 ‘수정 자본주의’ 역시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주류경제학에 속하는 케인즈주의를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제멋대로 부른 말에 불과합니다. 케인즈 이후 모든 주류경제학은 케인즈의 영향을 받았고, 케인즈를 부정하는 건 비주류들뿐인 게 또 현실이고요.

 세상엔 비교적 자유로운 시장경제활동을 보장했던 정부와, 그렇지 않았던 정부가 있었을 뿐입니다. 어떤 사상 및 체제는 상공업을 통제하고 철저한 농업 중심으로 갔고, 또 어떤 사상 및 체제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는 코뮤니즘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유로운 시장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정부가 성공하였고, 인류의 본성적 생존활동인 상공업 행위를 지나치게 규제하는 시도들은 예외 없이 실패하였습니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수만 년을 쌓아온 본성을 섣부르게 통제하려 드니 결과가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시장 경제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착취적이었고, 시민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출처: 해양장미의 블로그
http://oceanrose.tistory.com/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