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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9일 월요일

“韓 전술핵 재배치땐 對北억지력 커져 … 北과 비핵화 협상도 가능”

大選서 쟁점 떠올랐던 전술핵

북한 핵위협 고조로 지난 5·9 대선에서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문제가 쟁점 중 하나로 떠올랐다. 보수진영의 홍준표 자유한국당·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북핵 위기에 맞서 전술핵 재배치를 찬성하자, 선거에서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진보진영 후보들은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지난 3월 중순 ‘전술핵 재배치 서둘러야 하는 까닭’이라는 제목의 글로 주목을 받았다. 최 부원장은 10일 인터뷰에서도 “전술핵 재배치는 가능하다”며 “미국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술핵 재배치를 찬성하는 이유에 대해서 “전술핵이 재배치되면 북한에 대한 억지력이 커진다”면서 “핵무기는 군사 작전적 효용보다 심리적 효용이 크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핵 군축 협상을 하자고 하는데, 만약 미국이 한반도에 핵을 가지고 있으면 북한이 비핵화하는 조건으로 우리 쪽에 있는 핵을 빼는 협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내에서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009년 당시 최고위원으로서 “미국 인사들도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는 미국 측 기류를 소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촉발됐다. 정 전 대표는 지난 2011년엔 대정부 질문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거론했다.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거스르는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공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이 핵개발을 지속할 경우 미군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에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56.8%였고 반대는 33.1%였다. 전술핵 재배치가 공개적으로 거론된 지 6년 만에 국민 여론은 찬성 쪽으로 기울어졌다.

최 부원장은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에 따른 우리의 부담에 대해서 “물론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가 있다”며 “핵무기 저장시설이 있어야 되고 관리하기 위한 체제도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운반 체계도 있어야 되고 주한미군 군사력 구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최 부원장은 “비용에 대해서는 향후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부담을 요구하거나 우리가 같이 부담하는 형태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수용 여부와 관련해 “진보 정부는 비핵화를 주장하지만 북한 핵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며 “북한의 핵 능력만 더욱 고도화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연구기관에 따르면 북한이 오는 2020년대까지 보유한 핵무기 숫자를 최소 20기에서 최대 100기로 관측됐다. 최 부원장은 “현재 미군 내부에서도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상당히 지지하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며 “전술핵 재배치는 북핵 문제 해결에 빨리 나서라고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2017년 5월 21일 일요일

한국인의 미ㆍ중 인식 - “중국이 미래 경제 이끌고, 정치도 미국과 접전”

한국인 제2의 양극체제 실감
현재는 정치ㆍ경제 모두 美
미래에는 경제 中, 정치 美中 접전

여론계량분석센터 강충구 연구원

한국인은 동북아 내 미ㆍ중간 패권경쟁의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미국이 앞서고 있지만, 중국이 따라잡을 것으로 봤다. 동북아 맹주를 자처하며 팽창하는 중국과 ‘아시아 회귀’로 이를 봉쇄하려는 미국 사이 패권 다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1월 10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극적으로 타결된 뒤 역내 미ㆍ중간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처럼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은 한국인의 미ㆍ중 인식을 조사했다.

한국인은 향후 경제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고, 정치에서는 미ㆍ중간 패권 다툼이 가열될 것으로 봤다. 현재로서는 정치ㆍ경제 모두에서 미국을 패권국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향후 전망에서는 정치ㆍ경제 부문별로 예측이 엇갈렸다. 중국이 성장을 지속하고 있어 향후 경제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예견하는 응답이 과반(67%)을 넘었다. 정치 부문 전망은 미국이 앞으로도 맹주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으나(45%), 중국의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보는 비율(39%)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인, 아직은 미국을 패권국으로 인식
한국인은 중국의 영향력 확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의 패권국으론 미국을 꼽았다. 냉전이후 슈퍼파워를 유지해온 미국을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본 것이다. 미국의 패권은 경제(65%)보다 정치(82%)부문에서 뚜렷했다.

이와 달리, 중국을 패권국으로 본 한국인은 경제 25%, 정치 5%에 불과했다. 중국이 고성장으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지만, 정치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특히, 정치에서 한국인의 5%만 중국을 패권국으로 인정한 점은 중국으로선 실망스러운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이후 양국 정상이 다섯 차례나 만나 협력관계 강화에 신경을 썼는데도 결과가 그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한국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정치력에 대한 한국인의 평가는 냉정했다.



향후, 중국의 부상을 전망
그러나 미ㆍ중(G2)에 대한 한국인의 미래 전망은 현재와는 크게 다르다. 중국이 앞으로도 경제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22%)에 비해 중국(67%)이 경제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경제에서 중국의 굴기를 피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중국이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또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으로 경제력 확장에 주력하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운 것과도 연관된다.

정치에서 미ㆍ중 경쟁구도에 대한 예측은 더욱 극적이다. 한국인은 ‘현재는’ 중국의 정치력이 미국에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했지만, 미래에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미국에 근접할 것으로 봤다. 정치에서 미국, 중국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본 한국인은 각각 45%, 39%였다. 현재 시점의 평가가 미국 82%, 중국 5%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은 경제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정치에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미ㆍ중간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 질 것으로 봤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정치력 확장 기대감 높여
한국인은 향후 중국의 경제성장이 정치력 확장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봤다. 그동안 기록적인 경제성장이 중국 사회에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왔다면, 미래에는 미국과의 패권경쟁을 심화시킬 것으로 본 것이다. 정치ㆍ경제적 영향력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미ㆍ중을 패권국으로 선택한 응답자(801명)만 분석했다. 그 결과, 향후 중국을 경제 패권국으로 본 한국인은 59%가 중국이 정치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미국이 미래에도 가장 큰 경제력을 행사할 것으로 본 한국인은 11%만 중국이 정치에서 맹주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ㆍ중(G2)의 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한국인의 전망이 정치부문 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미중관계, 경쟁으로 보는 한국인 증가
한국인은 미중관계를 경쟁으로 정의해 왔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미중공조로 양국 관계를 협력으로 보는 한국인이 40%까지 증가했으나, 이를 제외하면 미중관계는 경쟁으로 인식되어 왔다. 최근 동북아 내 미ㆍ중간 갈등이 잦아지면서 양국 관계를 경쟁으로 보는 시각은 더욱 강해졌다.

앞서 중국의 팽창으로 미ㆍ중 대결이 본격화될 것으로 본 한국인의 우려가 미중관계 인식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특히, 올해 11월에는 미중관계를 경쟁으로 보는 한국인이 7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대로 협력관계로 본 비율은 18%로 가장 낮았다. 그만큼 한국인은 동북아 내 미ㆍ중 대결로 고조된 긴장감을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다.


2017년 5월 19일 금요일

한국인의 이민자 인식

선생님께서는 다음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외국인 이민자들이 범죄율을 높인다”
  • “외국인 이민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화를 통해 더 좋은 한국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 “외국인 이민자들은 일반적으로 한국 경제에 도움을 준다”
  • “외국인 이민자들이 한국인의 직업을 빼앗아간다”
  • “한국 정부는 이민자들을 돕는데 너무 많은 돈을 쓴다”
  • “한국 정부는 불법 이민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좀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근 외국인의 유입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수용성은 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인의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인식은 각 부문별로 다소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약하면 사회적으로는 유보적, 경제적으로는 긍정적, 정부의 이민자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먼저 사회문화 부문에서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은 긍정, 부정이 섞여 있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외국인 범죄가 보도되면서 외국인 이민자가 범죄율을 높인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과반(53.0%)을 넘었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35.2%였고, 모름/무응답은 11.8%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외국인 이민자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화를 통해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의견은 53.2%로 다수였다. 외국인 이민자가 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한국인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었다.

경제 부문의 경우, 한국인은 외국인 이민자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63.2%의 한국인은 외국인 이민자가 한국 경제에 도움을 준다고 답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은 비율은 24.8%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모름/무응답은 12.0%였다. 또 외국인 이민자가 한국인의 직업을 빼앗아 간다는 주장에는 66.0%가 동의하지 않았고, 이에 동의한 비율은 26.5%였다. 한국인과 외국인 이민자가 주로 종사하는 노동시장이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 이민자를 경제적 위협으로 보는 비율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정부의 이민자 정책에 대해 물었다. 최근 다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정부의 이민자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정책에 대한 평가는 곱지 않았다. 정부가 이민자를 돕는데 너무 많은 돈을 쓴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 비율이 44.5%였으나, 37.5%의 한국인은 여전히 이 주장에 동의했다. 정부의 이민자 정책이 본격화 되지 않았음에도, 한국인 사이에 ‘자국민 역차별’ 의식이 존재했다. 이는 정부의 현행 다문화 정책이 온정적, 시혜적 복지서비스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불법 이민을 방지하기 위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비율은 67.7%로 다수를 차지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외국인 이민자의 강력범죄가 불법 이민자 차단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http://www.asaninst.org/contents/%ED%95%9C%EA%B5%AD%EC%9D%B8%EC%9D%98-%EC%9D%B4%EB%AF%BC%EC%9E%90-%EC%9D%B8%EC%8B%9D/

2017년 5월 17일 수요일

참여정부의 한 과오 - 배승일씨 훈장 박탈 사건

 올해도 5월 18일이 돌아왔습니다. 한국사에 비극은 참 많았지만, 5.18은 그 중에서도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비극이었습니다.

 5.18은 불법반역행위로 권력을 점유한 군벌에 의한,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 폭동/학살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이 사건은 지역감정을 자극해, 일종의 약화판 홀로코스트를 유도한 면이 있었습니다. 딱히 민주화 운동이랄 것도 없이 광주 시민들은 생존과 존엄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고, 역사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부당한 권력의 폭력 앞에 자연인이 존엄을 위해 무장하고 맞서 싸우는 건 천부적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다만 향후 이 역사적 비극을 정리하겠다고 나선 참여정부가 어처구니없는 과오를 저지른 게 있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라 한번쯤 언급해보려 합니다.

 배승일씨는 1980년 당시 광주의 한 탄약창고에서 육군전투병과교육사령부 군무원으로 복무 중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폭발물 처리를 맡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5월 24일, 전남도청은 시민군이 점령 중이었지만 곧 계엄군의 탈환작전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군은 도청 지하에 엄청난 양의 폭약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배승일씨에게 제거해주길 부탁합니다. 그에 배승일씨는 목숨을 걸고 2000여개의 다이너마이트와 450여발의 수류탄 뇌관을 제거합니다. 만약 이것이 교전 중 터졌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요. 배승일씨는 이 공적을 인정받아 그해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습니다.

 그런데 2006년, 노무현 정부는 5.18 진압작전 참가자의 서훈을 취소하면서, 배승일씨의 훈장도 함께 박탈해버립니다. 어처구니없는 처사였지요. 당연히 배승일씨는 그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배승일씨는 당시로부터 약 10년 전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언어/시각에 장애가 있는 상황이었고 생계도 수월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렇다 해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온갖 5.18 단체를 찾아다니고, 정부에 소송까지 불사하여 결국 2007년에 명예를 되찾습니다.

 참여정부는 일을 엉터리로 해서 광주사태의 영웅 중 한 명에게 부당한 피해를 끼쳤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 차원의 사과와 보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참여정부는 공권력 행사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에 합당한 보상과 사과를 했던 정부는 아니었습니다.

 그에 본 블로그에서라도 배승일씨의 업적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기념합니다. 그의 활약으로, 어쩌면 발생할 수도 있었던 끔찍한 참사가 예방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폭발물을 제거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국가는 그에게 감사는커녕 훈장을 빼앗아갔었지만, 명예는 회복되었습니다.


출처: http://oceanrose.tistory.com/550

2017년 5월 11일 목요일

정의로운 '구조 조정'은 가능한가?

현재 한국 경제는 장기 침체 속에 구조 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 대규모 해고의 위험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국책 금융 기관의 자본 확충 방안이 마련되면서 구조 조정의 출발을 위한 준비는 시작되고 있지만, 실제 구조 조정이 시작되면 가장 큰 위험 요인은 해고된 근로자들로 인한 일자리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조 조정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할 기본 원칙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재의 상태를 배제한 채로 합의가 가능해야 한다는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철학적 원칙으로 고려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원의 원칙만으로는 구조 조정의 성공을 이끌 수 없기에 성공을 위한 또 하나의 원칙이 필요한데, 이는 회생 가능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을 구분할 수 있는 옥석을 나누기 위한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다. 하지만 사전적인 이성적인 판단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제 구조 조정이 시행되면 계속적으로 평가하고 모니터링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현재와 같이 일부 부실 기업이 정책 금융 기관 산하에서 상황이 악화된 데에는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준수되지 못한 측면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

한국 경제가 세계적인 불황과 내부적인 디플레이션에 따른 경기 침체에 빠져들면서 수익성이 장기간 악화된 부실 기업이 증가한 가운데 '구조 조정'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물론 '구조 조정' 용어 자체는 경기 불황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 환경이 변화하거나 시장 여건이 바뀌는 경우에, 기업과 산업이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며 대응해 나가는 것을 뜻하는 '구조 조정'은 실제로는 일종의 상시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상적인 변화는 반드시 대규모 해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 침체 속에 증폭되는 대규모 해고의 위험

하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 조정은 상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경기가 악화된 이후에 실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직면하는 구조 조정이기에 근로자들이 대규모 해고를 앞두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지고 있다.

더구나 조선업 같이 최근 구조 조정의 첫 번째 대상으로 지적되는 산업 내에는 장기간 국책 금융 기관의 지원을 받으며 생존을 유지해온 기업이 포함되어 있고 이를 지원하던 국책 금융 기관마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어서, 과연 추가적인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지 지원하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하더라도 과연 실제 지원이 가능할지, 지원한다면 해당 기업이 살아날 수는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물론 최근에 국책 금융 기관에 대한 신용을 보강하기 위해 자본 확충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이 마련됨으로써 일단 구조 조정을 시작하기 위한 작업의 단초는 마련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체계가 완벽한 것은 아니고 일부 논란과 문제도 있지만, 구조 조정 과정에서 발생하기 쉬운 신용 경색으로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기 어렵게 되면서 다른 정상 기업까지 부실하게 하거나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 조정 집행은 신속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일단 출발점으로는 비교적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책 금융 기관에 대한 자본 확충은 출발점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국책 금융 기관에 대한 자본 확충은 구조 조정의 여러 단계 가운데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역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구조 조정이 실제 시작되면 근로자들의 해고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준비하는 것이 실제로는 자본 확충 펀드의 설계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구조 조정 대상 기업의 고용 및 해고 문제와 관련해서 일단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구조 조정 대상 기업의 근로자들이 고용된 채로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업에 지원을 계속하거나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왜 국민 부담으로 특정 산업 또는 종사자를 도와야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지금도 어려운 사람이나 계층이 많이 존재하고, 비단 조선업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도 힘든 곳이 많은데 왜 하필 특정한 산업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차라리 그 돈을 국민 개개인에게 공평하게 나눠 주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특정 분야에 대한 구조 조정 지원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사실 이는 미국에서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동차 산업이나 금융 기관에 대규모 구제 금융을 지원할 때도 똑 같이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현재의 처지를 배제해도 합의될 수 있는 원칙이 구조 조정의 철학

이 문제는 하버드 대학교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존 롤스(John Rawls)가 무엇이 공평한 것인지를 논할 때 사용했던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개념을 응용한다면 합리화의 논거는 찾아 볼 수 있다. 사회 계약 이론을 통해 정의(Justice)의 개념을 제시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자신의 현재의 처지를 배제한 상태에서도 합의될 수 있는 법칙이 정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조선업이라는 특정한 산업에 종사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관련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이 공평한 지원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존 롤스가 제시한 것은 일종의 가상적인 상황에서의 '사고 실험(思考 實驗)'이지만, 현실에서도 충분히 적용가능하다. 현실에 적용한다면 흔히 최악의 상황을 최소화하는 원칙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에서 생각한다면 결국 구조 조정 지원의 핵심은 해고를 최소화하되, 불가피하게 해고해야 한다면 해고 근로자들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해고 근로자들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 일반적인 실업 지원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같은 산업 구조 조정에서는 일순간에 대규모 해고로 실업자 풀이 크게 증가하면서 다른 실업자들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어렵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고를 최소화하거나 실업 상황에서 조금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 필요

그렇다면 '해고의 최소화' 원칙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다른 국민들의 부담이 될 수 있는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그 지원을 받는 경제 주체가 지원을 해주는 이들보다 더 나은 봉급을 받으면서 '해고까지 최소화' 된다면, 롤스가 이야기한 현재 처지를 배제 한 상태에서도 합의될 수 있는 법칙에 해당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해고의 최소화'는 '임금의 적절한 감소'와 결합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대규모 해고 사태를 막는 구조 조정 지원을 받기 위한 기초에는 '임금의 적절한 감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가 있다.

이러한 원칙은 미국과 같이 시장 경제가 발전한 국가에서 어떻게 특정한 산업에 대해 정부가 대규모 구제 금융을 제공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과연 어떻게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실 기업에 대한 구조 조정과 함께 이루어진 대규모 구제 금융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재원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제네럴 모터스(GM, General Motors)에 우선주 매입의 형태로 지원된 자금은 130억 달러(한화 15조 원)에 이른다. TARP 지원에 따라 GM보다 더 큰 규모의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 경우는 대부분 금융 회사(씨티, 뱅크오브아메리카, AIG, JP Morgan Chase, Wells Fargo 등)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정 제조 업체에 이렇게 막대한 재원을 투입한 것은 흔한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

구조 조정 지원의 원칙 : 사회적 합의

물론 미국에서도 많은 논란과 비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원이 가능하고 결국 GM을 회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주도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일종의 원칙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고 근로자 지원'은 결국 하나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데, 경영진, 근로자, 그리고 일반 국민 모두가 조금씩 '양보(讓步)'한다는 개념이다.

무지(無知)의 장막이 전제된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라고도 불리는 롤스의 아이디어를 구조 조정 지원의 철학으로 해석한다면 한 경제 내의 모든 주체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십시일반(十匙一飯)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있는 원래의 자리에서 기존에 가졌던 기득권을 양보하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

구조 조정 성공의 원칙 : 옥석(玉石)을 나누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

그렇지만 이렇게 지원을 받아 구조 조정이 이루어진다고 모든 구조 조정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원을 받으면서 이루어지는 구조 조정이 결국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 원칙은 또한 무엇일까? 19세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유명한 경제학 교수였던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이 이야기한 것처럼, 경제학자는 '차가운 이성(cold head)과 따뜻한 감성(warm heart)'을 가져야한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구조 조정의 원칙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구조 조정의 지원을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지만, 결국 구조 조정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차가운 이성도 없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특정 기업에 대한 지원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부가 주도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었던 GM은 결국 지원받은 돈을 갚을 수 있도록 결국 회생하면서 구조 조정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데, 여기에는 살릴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냉정히 구분한다는 옥석을 나누는 이성적인 판단의 기본 원칙이 있었다.

당시 GM은 구조 조정을 통해 회생이 가능한 부분과 회생이 어려운 부분으로 일단 사업을 분리시키는 작업이 있었다. 결국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업의 일부는 떼어내 청산시키고 나머지 부분은 매각해 새로운 회사로 탄생시키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일부를 청산시키고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GM이 탄생했던 것이다.

흔히 조선업 위기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부채 비율에 있어서도 수천 퍼센트에 달하는 채무로 사실상 심각한 정도의 자본 잠식 상태인 곳과 그렇지 않은 회사들이 존재하는 상황이고, 가장 심각한 상황인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도 기술 경쟁력이 확보되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는 부분이 함께 있다. 즉, 세계적인 조건 경기 침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도 서로 다른 이질적인 역량과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결국 정리해야 하는 부분과 끌고 나갈 부분에 대한 옥석을 나누는 작업이 구조 조정의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특히, 지금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산업은 대규모 고정 설비가 들어 있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고 무조건 정리하는 방식으로 구조 조정이 이루어진다면, 후일 경기가 회복됐을 때 다시 한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없다. 물론 우리가 조선업을 넘어서는 더 높은 발전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기술력과 생산성을 갖추고 있다면 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현재로는 그렇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산업 자체를 포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수요가 감소한 상황에서 지금의 과잉 설비 상태를 그대로 끌고 나갈 수도 없다. 그렇기에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배제한 철저히 경제적인 원칙에 따라 옥석을 나누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구조 조정의 성공을 위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

대규모 해고의 위험이 증대되는 형태의 구조 조정이 임박해지고 있다. 대규모 해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경제 전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큰 위험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불가피해지는 구조 조정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필요하다. 먼저 구조 조정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지원의 원칙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이를 이끌기 위한 정부의 주도적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합의의 대원칙은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 그리고 '해고 근로자 지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제주체의 '양보(讓步)'이다. 하지만 지원만으로 구조 조정은 성공할 수 없듯이, 성공의 원칙 역시 필요하다. 그 성공의 원칙은 회생시킬 부분과 청산할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되어야할 것이다.

계속적 평가와 모니터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물론 때로는 사전적인 '냉철한 이성적 판단'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구조 조정의 과정을 계속해서 평가하고 모니터하며 지원 여부를 결정해 가는 계속적 작업의 중요성이라는 또 하나의 원칙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부 부실 기업이 정책 금융 기관 산하에서 현재와 같이 심각하게 상황이 악화된 데는 바로 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측면이 크게 역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8027

2017년 5월 5일 금요일

의원내각제 vs 분권형 대통령제, 무엇이 좋을까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선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공방이 줄기차게 이어져왔다. 그러나 최근의 개헌 논의는 그 어느 때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개헌 추진 집단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국회의원들이 초당적으로 구성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다. 지난 이슈페이퍼 18호에서도 소개한바와 같이, 이 모임의 야당 간사인 우윤근 의원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다수결에 의한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하고 협의 민주주의 형태의 분권형 또는 내각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야 의원 150여명이 서명한 터라 발의 요건은 이미 채워졌고, 따라서 적절한 시기만 오면 이들의 주도로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보다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 예상되고 있다.

사실 승자독식 민주주의를 마감하고 협의제 혹은 합의제형 민주주의로 발전해가길 원한다면 그 최종 단계에선 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를 도입함으로써 연정형 권력구조를 안정적으로 제도화해놓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그 둘 중 어느 쪽이 한국의 합의제형 권력구조로 더 바람직할까? 물론 최종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여기서는 다만 그 선택에 참고가 될 만한 시론적 논의 정도를 전개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통령 직선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가 한국형 권력구조로 적합하리라는 것이다.

의원내각제 도입의 어려움

한국의 의원내각제 도입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몇 가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그 중 두 가지만 언급하자면, 그 첫째는 한국과 같이 왕이 없는 나라가 의원내각제를 도입할 경우,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초당파적 국가원수 혹은 “권위중심체”의 부재로 인해 국가나 사회통합의 안정적인 구심점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1) 이것이 아마도 입헌군주국이 아닌 유럽 공화국들의 대다수가 의원내각제 대신 분권형 대통령제를 택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한국이 만약 의원내각제를 택하면서 이 난점을 해결하고자한다면 독일이 그랬듯이 상징적 국가원수로서 의회에서 선출하는 대통령을 따로 둘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그 대통령에게는 한국적 맥락에서 국가원수로서의 상징적 의미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을 정도의 지위 및 권한이 주어져야할 것이다.

두 번째 고민은 과연 한국의 시민들이 87년 민주화 운동의 ‘쟁취물’인 직선 대통령제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다수의 시민들은 대통령직선제를 한국 민주화의 징표로 여기고 그에 대한 애정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제에 익숙해져있음은 물론이다. 반면, 의원내각제와 관련하여서는, 그것의 제도적 장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한국의 정치현실 속에서 작동 가능한 권력구조인지에 대해서는 미심쩍어 하는 시민들이 다수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시민 대다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의원내각제의 전면 도입보다는 대통령 직선제를 유지하면서 권력의 집중이나 남용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에서 방도를 찾아보자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직선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적 선호가 이처럼 높게 유지되는 한 이를 무시하고 의원내각제를 도입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의 난점과 장점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직은 존치시키되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대통령 권력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총리와 분담케 하는 권력구조이다. ‘분권형 대통령제’(semi-presidential government)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의한 뒤베르제에 의하면, 분권형 대통령제는 다음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된 권력구조이다.2) 첫째,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선거권 행사에 의해 (직선 혹은 간선으로) 선출된다. 둘째,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의 권한과 함께 (국방이나 외교 등 일정한 영역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상당한 실권을 보유한다. 셋째, 대통령과는 별도로 그 직이 전적으로 의회의 선출권과 불신임권에 의해 유지되는 총리 및 장관들로 구성되는 행정부가 존재한다. 결국 분권형 대통령제의 핵심은 국민이 뽑는 대통령과 의회가 선출하는 총리 간의 분권 구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 분권 구조, 즉 권력의 분산 정도와 범위가 어떠한지에 따라 무수하게 많은 형태의 분권형 대통령제가 탄생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가장 일반적인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은 국가원수직과 이른바 외치 영역에 해당하는 외교·안보·국방 정책 등을 담당하며, 총리는 내정과 관련된 그 나머지 정책들을 모두 맡는 형태의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전환 역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권력 배분의 어려움 때문이다. 흔히 외교, 안보, 국방 등의 정책 영역은 대통령이 맡고 사회나 경제 등 국내 정책 영역은 총리가 맡는다고 하지만 그 영역 구분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예컨대, 대외 통상과 금융거래 및 투자는 물론 세계화와 지역통합 그리고 FTA 등과 관련된 대외경제정책은 형식상은 외교정책이라 할지라도 국내 정치경제에 끼치는 효과가 막대함을 고려할 때 그것은 실질적인 국내정책에 해당한다. 안보도 이제는 경제 변수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포괄적 정책 영역에 속한다. 결국 대통령과 총리 간에 정책 영역의 분담 및 권력 배분 문제를 놓고 (제도 성숙에 이르기까지는) 끊임없이 갈등과 대립 상황이 벌어질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다른 문제를 하나 더 든다면 형식만 권력분산형이지 실상은 권력집중형인 분권형 대통령제도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우는, 예컨대, 비슷한 이념과 정책 기조를 공유하고 있는 정당들 간의 연합체 혹은 특정 정당 하나가 의회의 다수파를 구성하고 그 정당이나 정당연합에서 대통령까지 배출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때 대통령에게 프랑스 등에서와 같이 (결국 내각불신임권을 갖고 있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총리 임명권까지 있다면 여기서의 대통령은 사실상 대통령중심제에서의 경우와 유사하리만큼의 거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국가원수직은 물론 자신이 임명한 총리를 통해 실질적인 행정부 수반직도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역시 프랑스에서와 같이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킴으로써 여소야대의 생성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낮출 경우 분권형 대통령제의 의미는 거의 퇴색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운영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합의제적 권력구조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형식이 아니라 거기서 이루어지는 권력분산의 실질적인 양과 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합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권력구조의 개편을 추진한다면 상기한 한국적 현실을 감안할 때 그 지향점은 의원내각제 보다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돼야 하리라고 여겨진다. 일단 분권형 대통령제는 의원내각제와 달리 상당한 실권을 가진 대통령을 지금과 같이 국민이 직접 뽑는 권력구조이므로 그 도입 과정에서의 국민적 반대는 비교적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낸 대통령 직선제는 그대로 유지하되 단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애고 민의 반영에 뛰어난 합의제적 민주체제를 발전시켜가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으로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칠 경우 국민들은 그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조건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위에 기술한 분권형 대통령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우선 분권형 대통령제가 실질적인 대통령중심제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생각해보자. 물론 그러한 우려는 충분히 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 과잉 우려는 삼가야 한다. 분권형 대통령제일지라도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정당(연합)에 속해있는 경우 대통령의 권력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매우 강력해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권력이 대통령제에서의 경우만큼 막강해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분권형 대통령제에서의 총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리의 진퇴는 오직 의회만이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총리는 “일단 임명된 순간부터는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 대해 상대적 독자성을” 갖고 내각 주도권이나 장관 인사권 등의 자기 권한을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3) 총리의 이러한 독립성과 독자성으로 인해 대통령의 권력은 어느 경우든 분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분권형 대통령제의 합의제적 특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대통령이 과도한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조건이나 환경을 애당초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념 및 정책 중심의 구조화 수준이 높은 다정당체계를 구축해 놓아야 한다. 진보, 중도, 보수 등으로 구분되는 다양한 이념 및 가치의 공간마다 각기 유력 정당들이 하나 이상씩 포진해 있는 높은 수준의 정당구조화를 이룬 분권형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단일정당이 의회의 다수파가 되거나 이념이나 가치지향이 유사한 여러 정당들이 정당연합체를 결성하여 그들만으로 다수파 진영을 구축하는 경우는 웬만해선 발생하지 않는다. 유력 정당들이 여럿인 구조에서 어느 한 정당이 홀로 다수파가 될 가능성은 낮으며, 그 유력 정당들이 서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이념 또는 가치 정체성으로 각자 무장하여 서로 다른 정책기조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조에서는 이른바 ‘범진보’나 ‘범민주’ 또는 ‘범보수’연합 따위의 진영정치가 발전할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정당체계의 구조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비례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선거제도는 물론 특히 유력한 중도정당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중도정당이 국회 의석을 그 좌우 쪽에 위치한 정당 혹은 정당연합이 자기(들)만으로는 국회의 다수파를 구성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차지하고 있을 경우엔 언제나 초이념적인 연립정부가 구성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경우엔 대통령과 총리가 동일한 정당(연합)에서 배출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

대통령과 총리 간의 권한배분 문제

분권형 대통령제에 있어 더 심각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는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권한 분배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 둘 간의 역할분담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엔 권한 행사를 둘러싼 잦은 갈등으로 인해 국정운영이 교착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권한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 구성원들의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분권의 합리적 기준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물론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하여 황태연(2005, 49-52)의 제안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는 국가의 원수인 “대통령은 전 국민의 이익과 전체적 가치관을 대변하고 집행하는 초당파적 임무”를 부여받은 헌법기관인바, 그러한 대통령에게는 초당파적인 입장에서의 숙고와 심의, 그리고 판단이 요청되는 영역에서의 결정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선호와 이익이 여러 정당들에 의해 대표되고 경합하는 의회에서 선출되는 총리는 “불가피하게 당파적일 수밖에 없는 내정의 각 부문을 관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한 유럽의 많은 입헌군주국들이 정치적 안정을 누리는 까닭은 상당 부분 “초당적 절대존엄”인 왕의 존재 덕분이라며, 공화국들이 왕 대신 대통령을 세움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고자 한다면 그 대통령은 “당파적 정쟁에 말려들지 않게끔 전국민적 임무만을” 맡게 함으로써 국가원수로서의 권위와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같은 합리적 제안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의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는 통일과 국방 정책만을 대통령에게 맡기고 그 나머지인 외교와 내치 영역은 모두 총리의 소관 사항으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한다. 외교정책마저도 총리에게 넘기자고 하는 것은 그 영역에서는 상기한 대로 국내정치적 파급효과가 큰 대외경제정책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로, 대통령이 그러한 영역을 담당할 경우 그는 계급, 계층, 집단별 이해관계의 갈등과 대립 상황 속에서 자신의 초당파적 위치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에 비하여 국방과 통일은 초당파적, 거국적,  전 국민적 이슈로서의 성격이 매우 뚜렷한 정책 영역에 속한다. 국방과 통일이야말로 당파적 유불리를 초월하여 오롯이 국민적 공감대에 기반을 두어 수립하고 추진해야할, 따라서 전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전담하기에 매우 적합한 정책 영역이라 할 것이다. 실제로도, 분권형 대통령제 국가들 가운데 대통령의 외교권을 인정하는 나라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군통수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나라들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4)

역할분담을 위와 같이 분명히 하더라도 대통령과 총리 간의 체계적인 협의 기제는 별도로 준비돼있어야 한다. 국방과 통일 정책이 여타 영역과 아무리 차별성이 큰 영역일지라도 세부로 들어가면 외교는 물론 경제, 산업, 사회, 복지, 교육, 국토해양 등 거의 모든 정책 영역과 중첩되는 부분이 즐비하기 마련이다. 대통령과 총리는 이러한 부분들에서 권한 충돌 가능성이 상존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그에 대한 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유기적인 협의체계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5)

그와 같은 협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여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잠재적이거나 실재적인 갈등이 적시에 순조롭게 조정될 수 있을 때 분권형 대통령제는 안정적인 권력구조로 정착할 수 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 핀란드, 프랑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의 많은 선진국들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그렇게 성공적으로 운영해왔다. 그 나라들만이 아니다.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대통령중심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미국, 칠레, 멕시코 등 4개국에 불과하다. 나머지 30개국은 의원내각제 15개국과 분권형 대통령제 15개국으로 정확히 반씩 나뉜다. 15개 의원내각제 국가 중 독일과 아이슬란드를 제외한 13개 국가가 입헌군주국이다. 독일과 아이슬란드는 실권이 없는 대통령을 상징적 국가원수로 두고 있다. 그리고 15개 분권형 대통령제 국가들은 모두 왕이 없는 공화국들이다. 선진국들의 모임이라는 OECD 회원국들의 절대다수가 대통령중심제가 아닌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국가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리고 그 절반이 분권형 대통령제 국가라는 점 역시 의미 깊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의원내각제에 못지않게 상당히 안정적인 정부형태임을 웅변하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 결과를 종합해본다면, 공화국인 한국이 현행 대통령중심제에서 벗어나 합의제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권력구조로의 전환을 모색할 경우 선택지는 둘로 좁혀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직선 대통령을 상징적 국가원수로 두고 의원내각제를 전격 도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OECD 국가들의 정부형태 분포가 말해주듯, 어느 경우든 권력구조 자체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선택을 꺼려할 필요는 전혀 없다. 최종 결정은 오직 국민의 선호에 따라 내려지면 된다.

1) 황태연. 2005. “유럽 분권형 대통령제에 관한 고찰.” 『한국정치학회보』 제 39권 2호. pp. 52-53
2) Duverger, Maurice. 1980. "A New Political System Model: Semi-Presidential Government" European Journal of Political Research vol. 8. no. 2. p. 142
3) 황태연(2005, 56)
4) 장영수. 2014.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 의원내각제 혹은 분권형 대통령제.” 동아시아미래재단 신년세미나 발제문. p. 12.
5) 상게논문 p. 14.

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8691

2017년 4월 25일 화요일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동아시아에 대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와의 인터뷰


■ 영토 야심과 맞물린 중국 민족주의 확산에 한·일 공동 대처해야
■ 북한 핵무기 절대 포기하지 않아… 6자회담 무용지물 될 것
■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은 취지만 좋을 뿐 실체 없어
■ 자본주의 양극화 폐해는 민주주의 정치체제 통해 극복 가능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동아시아 민족주의가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하며 다자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한일간 관계 회복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중국의 부상으로 도전받는 나라들은 서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2008년 이후 공세적 외교 정책으로 전환했다. 중국의 부상을 꼭 위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큰 도전이다. 이해가 걸린 국가들 간에 함께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63)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날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중국의 부상(浮上)에 역내 국가들이 경각심을 갖고 대처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중국의 남중국해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분쟁은 경제적, 법적 다툼이 아니라 민족주의 발흥에 따른 영토분쟁이라고 규정했다. 그 연장선에서 북한 체제가 취약성을 드러내며 붕괴하더라도 중국의 개입 가능성 때문에 남북 통일이 여의치 않을 거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미래 정치학자이자 역사철학자인 후쿠야마는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되기 시작한 1989년 ‘역사의 종언’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목받았다. 1992년에 이 논문을 바탕으로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을 출간했다. 공산권이 몰락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한다는 내용을 담아 출간 동시에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키며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출간됐다. 이후에도 급변하는 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으로 세계적인 논객의 자리를 굳혀왔다. 월간중앙은 5월 6일 서울에서 그를 만나 동북아 민족주의 확산, 한일 간 역사 갈등, 북핵 문제 등 한국의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한국은 얼마 만에 다시 찾은 것인가?

“2년 전에 방문했다. 현재 ‘미국 민주주의 재단(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NED는 전 세계의 민주주의 운동 확산, 시민사회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을 활동 목표로 한다. 올 11월 서울에서 총회가 열린다. 민주주의운동 확산에 주력하는 이 기관에 대한 이해도 제고와 총회의 취지를 알리고자 방문했다.”

5월 6일 중앙일보-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에서 특별 연사를 맡아 동아시아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어떤 다자주의를 말하는 것이었나?

“많은 영역에서 다자주의가 필요하다. 경제 부분은 변화가 오고 있다. 중국이 경제분야에서 AIIB(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를 설립하려는 시도는 좋다고 본다. 이는 중국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다자주의적 접근 방식을 반영한다. 하지만 안보 분야에서 중국은 전혀 다른 정책을 구사한다. 다자주의가 아닌 양자 관계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중국은 아시아 영토 문제도 경제 문제와 마찬가지로 다자주의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동아시아 민족주의 고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는데?

“한·중·일 모두 민족주의가 고조되는 시기인데다 서로를 자극하는 바람에 상황은 꼬여만 간다. 일본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아베 일본 총리만 해도 그렇다.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20세기 역사관을 가진 그가 하는 말에 한국과 중국은 반발하고, 또 일본은 계속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식으로 동북아 정세가 악화된다.”

강력한 미·일 동맹 추구, 보수주의적 국가 운영, 과거 역사에 대한 불철저한 반성으로 대변되는 아베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겠나?

“내가 아베였다면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사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피함으로써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가 더 불편해졌다. 역대 일본 정부가 밝힌 사죄의 입장을 유지하고 수정하지 않는 게 일본 이익에 부합한다. 최근 체결된 미·일 간 신(新)방위협정 합의는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중요한 성과다. 하지만 아베의 과거 역사에 대한 해석은 동의할 수 없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나?

“중국은 꾸준히 영토 분쟁을 일으켰다. 중국은 2008년 이후 외교 정책이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부상을 꼭 위협으로만 볼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큰 도전이 될 것이란 사실은 확실하다. 중국은 분명히 영토적 야심을 강화할 것이다. 이해가 걸린 나라들이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중국은 계속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것처럼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올 수도 있다. 남중국해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분쟁은 그 성격이 법적이거나 경제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아니다. 경제 관점에서만 보면, 실제 군사작전을 밀어붙일 합리적인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의 급부상과 중국 민주주의의 장래를 점쳐본다면?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 속도는 앞으로 점차 둔화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엄청나게 빨랐지만 그 속도를 유지할 수 없다. 6.5~7%의 성장률로 둔화됐다. 향후 몇 년간은 성장이 더딜 것이다. 중국식 거버넌스는 1978년 이후 매우 인상적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문제점들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중국식 성장 모델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법치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에 성장에 필요한 동력을 계속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는 시진핑 체제 아래에서 더 권위적으로 변했고 시민의 공론장인 인터넷의 자유도 줄었다. 이런 체제에서 부패를 척결하는 모습은 좋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다지는 결과만 낳는다. 공산당 지도부가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AIIB가 중국의 경제성장에 도움을 줄까?

“AIIB가 금융 분야에서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의 성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는 불확실하다. 중국은 자국 내 인프라 역량을 구축하려 하지만 그 성장 속도는 둔화될 것이고 수요 또한 감소할 수도 있다. 이 은행을 설립함으로써 중국 내부가 아닌 중국 밖에서 성장의 동력을 찾으려 들지도 모른다.”

5월 6일자 <중앙일보> 1면에서는 ‘한국 외교의 활로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전문가(24명), 일반인(1천 명)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전문가들은 또 미·중·일·러 주변 4강과 한국의 정상 중국익을 챙기는 실리 외교를 가장 잘하는 지도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17명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꼽았다. 당신은 누구를 택하겠나?

“지금 언급한 국가 중에 정치적으로 잘하는 국가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시진핑을 가장 잘하는 지도자로 뽑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교적으로 중국은 너무 공격적이고 동남아의 많은 국가에게 소외감을 안긴다. 일본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 시진핑이 외교를 잘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시진핑의 외교 정책과 통치 스타일을 덩샤오핑, 후진타오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중국의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리더들의 외교 전략의 차이를 말하기는 어렵다. 상대적으로 덩샤오핑 때는 저개발 국가였기 때문에 큰 변화가 필요해서 경제개발에 많은 집중을 했다. 후진타오 시절엔 상황이 호전되면서 2008년부터 영토 문제에 손대게 됐다.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영토 분쟁을 이어갈 뿐이라고 본다.”

미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처음에 미국이 아시아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이 정책이 만들어진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오바마의 외교 정책에 대한 주요 연설 중 아시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게 그 방증이다. 그는 ‘회귀’라는 것을 이제 TPP협정으로밖에 살리지 못한다고 보고 있고, 그마저도 FTA 비준으로 이어질지도 불투명하다. 아시아로의 회귀는 아직 실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 이후의 리버럴리즘 미래를 어떻게 보나? 공화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게 없을 거라고 하던데?

“누가 선출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정치 체제라는 것이 언제나 의사결정을 방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공화당 대통령이 선출돼도 의사 결정은 계속 지체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인구 구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수적으로 보았을 때 민주당 지지자들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에는 히스패닉 계가 많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줄어들고 있다.”

“아직은 자유민주주의 대신할 체제 없어”

IS의 과격행동 등 여전히 <문명의 충돌> 논리가 유효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후쿠야마 교수는 “지하드나 IS와 같은 과격단체는 소수에 불과할 뿐 무슬림 국가 전체를 대변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고 새뮤엘 헌팅턴 교수의 논리를 비판했다.

1989년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역사의 종언>에서 후쿠야마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틀렸고,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하는 보다 앞선 사회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26년 동안 이 논제는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에 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역사의 종언’의 논제는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이 논제가 맞다고 본다. 앞으로 50년 후 유럽·미국·한국이 지금의 민주정부 체제를 유지할지 모르지만 중국의 권위주의, 독재체제는 변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정치체제는 안정적이지 않다. 중국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지속할 수 없는 체제를 갖고 있다. 특히 다른 나라들이 중국 모델을 채택하는 건 더 어렵다.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체제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외에 다른 대안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금융위기로 논제가 틀렸다는 비판이 거세졌었다.

“그 관점에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자본주의는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한데 미국이나 영국의 금융 규제로 발생한 위기였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잘못된 정책을 선택함으로써 일어난 것이지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경제적 양극화 심화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주장과 논리(토마 피케티 등)가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

“꼭 그렇게 불가피하지는 않은 것 같다.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치적 수단을 가진다. 복지 국가에는 가난을 구제하는, 임금체계 같은 재분배 시스템이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양극화 문제를 안고는 있지만 자본주의 자체가 민주주의와 연관돼 있어 이런 자정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경제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피케티의 처방, 즉 세제 개혁의 정책적 효용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할 수 있나?

“모든 국가는 부의 재분배를 위해서 부유층에 세금을 매기고 있다. 미국과 같은 경우도 굉장히 심한 누진세가 존재한다. 피케티가 제안하는 부유세 75%는 너무 과하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 돈 벌고자 하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수니파 급진 세력 ‘이슬람국가(IS)’의 과격성과 IS 한국인 가담 등을 보면 ‘문명의 충돌’이란 고(故)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한 개념 아닌가?

“무슬림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을 보면 헌팅턴 교수의 문명 충돌에 대한 성찰은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중국·일본 등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이들은 서로를 하나의 아시아 문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국가로 정체성을 판단하듯 국가는 중요한 단위로 남아 있다. 중동 국가들도 그렇다. 지하드나 IS와 같은 과격단체는 소수에 불과할 뿐 무슬림 국가 전체를 대변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문화가 충돌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논리다.”

후쿠야마 교수는 미국 정치제도가 총체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쇠퇴의 길을 가고 있다며 지난해 발간한 <정치 질서와 정치의 쇠퇴(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에서 기능부전에 빠진 미국 제도를 비판했다. 그는 미국의 분권시스템을 지적하며 “지적인 경직성과 기득권층의 반(反)개혁적 행태로 미국 정치의 자기 수정기능이 정지됐다”라고 진단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 ‘거부권 정치’가 정치 마비시켜

미국의 정치제도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유럽에 견줘 극찬해왔던 모델이다. 어떤 점에서 무너진(쇠퇴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가?

“미국의 헌법은 토크빌이 말했던 것처럼 독재를 예방하는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의 목표가 있다. 하지만 미국 시스템이 ‘견제와 균형’을 벗어나 서로의 발목을 잡는 ‘거부권 정치(vetocracy)’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되기 때문에 어떤 긍정적 결과에 도달하는 걸 저해한다. 국가적 난제에 대한 결정이 지연된다는 게 미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시민의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과 정치제도의 문제들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전반적인 정치의 기능장애 현상이 극에 달했다. 예산, 세금, 이민 부분에서 의회가 결정을 내리는데 힘들게 한다.”

그 문제점을 미국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도 인식하고 있나?

“아주 오래전부터 인식해왔지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자기들의 이익에만 집중하기에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정당과 이익단체는 정치자금과 영향력을 포기하려는 의향이 없다. 이슈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당 체제 때문에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익집단들의 양극화는 더 심각하다.”

외부의 충격만이 진정한 개혁을 강제한다고 했다. 외부의 충격이라 함은?

“아예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미국 제도를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지금 그런 합의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외부의 충격은 일반적으로 국가 개혁을 위해서는 금융위기나 전쟁 같은 시스템을 흔들 만한 쇼크가 필요한데 지금은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2008 금융위기가 외부의 충격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많은 원인을 가진 복잡한 위기였다. 외부 충격이라 함은, 미국 시장에 유입돼 물가를 상승시킨 유동성이 특히 아시아에서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금융위기에 대해 외부 충격이 크다는 시각도 있지만, 내부의 요인도 있었다. 미국의 규제당국이 과도하고 위험한 대출을 구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발달과정에서 이런 분권 시스템의 기능 저하는 역사적으로 불가피한 것인가?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이익집단 내의 파워 엘리트 그룹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부 시스템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첫 번째 책〈정치 질서의 기원〉에서도 중국의 한 왕조, 이슬람 오토만 왕조, 터키나 프랑스의 과거 정권에 대해서 언급했다. 국가의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권의 성격에 따라 시스템이 후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민주주의 체제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질적 평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질적 수준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높일 수 있는 것인가?

“민주주의 체제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경제 성장, 교육 기회 증진, 사회 인프라 확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정치 지배구조를 만들 때 가능하다. 국가의 정부는 이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역량을 가져야 하는 바, 부패 척결은 민주화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민주화를 어떻게 이루는가는 잘 알지만 부패 척결 역량을 갖추는 데는 서툴다. 미국이 정치 제도의 현대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지만 부패 척결은 아직 현대화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다. 민주화 세력도 독재권력을 제압하는 데 초점을 둘 뿐 효율적 국가관리에는 무능을 드러낸다. 내부 이념투쟁에만 지나치게 몰입한 대가라고 본다.”

“북한은 핵 포기 절대 안 해”

그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좌표를 짚는다면?

“1987년 이후 한국은 실로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정착시켰고, 정치에서도 경쟁 원리가 활발하게 작동한다. 언론의 자유나 공론의 장도 잘 형성돼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한국은 민주주의는 높은 수준을 구가한다. 한국의 문화가 변천 과정에 있고, (가부장적) 유교 문화가 일본에서보다 더 큰 도전을 받는 상황이다. 민주주의 측면에서 일본보다 한국이 더 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95년에 발간한 <신뢰(TRUST)>에서 한국사회의 사회구성원간의 상호신뢰가 낮은 것으로 비판한 바 있다. 지금은 어떻게 보고 있나?

“조금 복잡한 문제다. 한국은 민주화 이후 사회의 성격이 바뀌게 됐고 실제 시민사회가 굉장히 발달했다. 예를 들어 미국 같이 한국에서도 교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인 양극화와 지역 갈등은 사회구성원 간의 상호 신뢰를 저해한다.”

후쿠야마 교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1기 때만 해도 네오콘의 대표주자로 분류됐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거치는 출세의 사다리를 올라간 이력부터가 그렇다. 자본주의의 승리가 헤겔식 역사 전개를 종식시켰다고 역설한 ‘역사의 종언’이 네오콘들의 사상적 주춧돌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중동에 민주주의를 확산시켜 한다고 설파했었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전후해 네오콘 비판론으로 돌아섰다.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론을 비난하면서 네오콘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후쿠야마 교수는 당시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노선을 달리한 이유에 대해 “이라크 전쟁은 큰 실수였고 그 이후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해 입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네오콘의 대안으로 ‘윌슨주의 국제적 협조 노선’을 제시했던 그는 6자회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하드 파워를 앞세운 네오콘의 대안으로 윌슨주의 국제적 협조 노선을 제시했었다. 소프트 파워는 당면과제 해결에 유용한가?

“소프트 파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다른 국가에 영향력을 미치는 방법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다른 국가에 경제 발전과 함께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 그 핵심은 군사행동을 외교 정책의 중심에 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소프트 파워를 통해 미국 영향력을 행사하고 민주화와 인권을 촉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 관련해 가능한 시나리오는 정권교체”

북핵 문제를 푸는 도구로서의 6자회담에 대해 후쿠야마 교수는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것”이라며 “북한은 북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데 관심이 없고 중국도 북한을 설득하거나 강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북아의 현존하는 가장 큰 이슈는 여전히 북핵이다. 이 문제를 푸는 도구로서의 6자 회담은 여전히 유효할까?

“아니다. (6자회담은)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것이다. 북한은 북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데 관심이 없고, 중국도 북한을 설득하거나 강제하지 않을 것이다. 핵은 북한이 가진 유일한 자산이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핵’을 사용한다. 북한은 6자회담으로 한국·미국·국제사회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얻어냈을 뿐이다. 이게 없다면 수출도 못하고 통상도 못하는데 왜 포기를 하겠나?”

전 세계 유일의 분단 지역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100년 후 한반도의 미래나 변모상에 대해 언급한다면?

“북한 체제는 취약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붕괴하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럴 때 통일 가능성이 생길 것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이유는 중국의 개입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남과 북이 오랫동안 분단돼 있었다는 점도 순조로운 통일의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세계사적 흐름에서 볼 때 통합을 지향하는 남한과 북한의 당국자들이 갖춰야 할 식견과 철학, 원칙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

“두 나라의 정치 체제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쉽게 이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고 남한도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려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북한의 정권교체다.”

최근 연이은 중·일, 미·일 정상회담은 한국 외교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러브콜을 받는다고 안주하는 사이, 아베 총리는 미·중 모두와 손을 잡는 모양새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평가와 조언을 한다면?

“우선 한국과 일본은 관계 회복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일이 서로 싸운다고 득이 될 게 없고 장기적으로 보면 공동의 이익이 달린 문제도 영향을 받는다. 물론 중국의 도전은 장기적으로 매우 중대한 사안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 문제로 감정의 골이 깊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런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든 중국의 부상으로 도전받는 나라들은 서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독일과 폴란드의 예를 봐야 한다. 전쟁으로 인해 두 나라는 관계가 아주 불편했지만 양측의 역사학자들이 모여 교과서 기술에 합의를 봤다. 이 부분을 일본과 주변국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는 하나의 방안이라고 본다.”

글=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사진=지미연 객원기자

[출처: 중앙일보] 프란시스 후쿠야마 “북한 붕괴시 중국 개입으로 통일 쉽지 않아”

2017년 4월 23일 일요일

87년체제 극복이 먼저다

개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나 역시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진행되는 개헌 논의는 설득력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성사되기 위해선 절차와 진정성이 중요한데, 최근 개헌 논의는 절차도, 진정성도 갖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 행정권력과 입법권력 간의 견제 및 균형을 위해 개헌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에는 헌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정부와 국회로 대표되는 정치사회가 무능한 데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특권 내려놓기 등을 솔선수범하지 않는 국회와 경제민주화 등 여러 공약을 파기한 정부가 개헌을 제안하든 그 제안을 비판하든 일련의 과정은 오히려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비춰지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헌법은 이른바 ‘87년체제’의 핵심을 이룬다. 87년체제란 1987년 6월 항쟁으로 열린 민주화 시대의 사회체제를 말한다. 산업화 시대의 사회체제인 ‘61년체제’가 냉전ㆍ개발독재ㆍ무정형의 시민사회ㆍ공동체주의 문화에 기반해 있었다면, 87년체제는 탈냉전ㆍ시장만능주의ㆍ조직화된 시민사회ㆍ개인주의 문화로 특징지어진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87년체제의 그늘을 극복해야 할 과제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다는 점이다.

87년체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치에 있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체제, 정당정치와 운동정치의 기묘한 공존, 강고한 진영 논리와 이와 연관된 이념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87년체제가 이룬 독재국가에서 정상국가로의 전환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87년체제는 동시에 지역주의 정치의 고착화, 사회ㆍ경제적 민주화 프로그램의 부재, 이념투쟁을 포함한 사회갈등의 과도한 분출을 가져왔다.

여기에 더하여 주목할 것은 87년체제의 리더십이다. 87년체제는 크게 ‘3김(김영삼ㆍ김대중ㆍ김종필) 시대’와 ‘포스트 3김(노무현ㆍ이명박ㆍ박근혜) 시대’로 나눠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반독재ㆍ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화시대의 적자(嫡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산업화시대의 적자,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시대의 적자였다. 특히 포스트 3김 시대의 리더들이 내건 ‘낡은 정치 청산’, ‘경제 살리기’, ‘국민대통합’은 1987년 이후 30년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무엇을 이뤘고 무엇을 성취하지 못했는지의 빛과 그늘을 선명히 보여준다.

87년체제는 길을 잃었다. 아니 87년체제는 자신에게 부여된 역사적 임무를 다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87년체제를 통해 우리사회는 민주주의로의 전환과 공고화를 모색해 왔다. 하지만 이 민주화시대는 현재 국민 다수의 사회ㆍ경제적 삶의 위기라는 역설적이고 낯선 결과에 대면해 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일각의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더라도 우리 민주주의가 처한 엄중한 현실을 생생히 증거한다.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 ‘고용ㆍ교육ㆍ주거ㆍ노후의 불안을 덜어주는 민주주의’야말로 ‘포스트 87년체제’의 과제임은 분명하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헌의 문제제기가 국민적 정당성을 얻으려면 바로 이런 87년체제가 갖는 명암에 대한 성찰적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87년 헌법이 갖는 제도적 약점보다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은 정부와 국회가 자신에게 부여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87년체제가 만든 지역주의 정치와 관성적인 우파 대 좌파의 구도 안에 오히려 안주하고 혁신을 거부해 온 게 우리 정치의 솔직한 민낯이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되든지 개헌은 이뤄져야 한다. 2016년 4월 총선 전까지 당분간 선거 일정이 없는 현재의 시기가 개헌에 적합한 때라면, 느닷없이 개헌 이슈를 꺼낼 게 아니라 우선 어떤 ‘포스트 민주화 시대’를 열 것인지, 이를 위해 어떤 비전과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개헌보다는 정부와 국회의 자기혁신을 포함한 87년체제의 극복이 먼저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17년 4월 5일 수요일

진보주의자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순과 함정

 역사적으로 진보주의는 많은 경우 과격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공산주의가 그랬고, 생디칼리슴과 파시즘이 그랬으며, 좌파 아나키즘도 그러했지요.

 근래는 환경운동가들과 채식주의자들, 여성주의자들, PC를 강조하는 사람들 중 다수도 과격하고 막무가내로 굴다가 시민들에게 나쁜 인상을 안겨주고,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실패를 겪게 되었습니다. 물론 진보주의자들만 우리 지구촌에서 과격하게 구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단 본문에서 나는 각종 진보주의의 원천적 모순과 빠지기 쉬운 함정, 그리고 현실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은 대체로 현실의 부정적인 면을 잘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게 더 옳은가, 어떤 게 더 이상적인가를 생각하고 그 기준을 정립하는 데 능하지요. 대다수의 진보주의자들은 현실을 꿈에 맞추고자 하는 잠재적 욕구가 있으며, 그러한 태도를 오래 유지합니다.

 이러한 진보주의자들이 가장 쉽고 일차적으로 겪는 문제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관념적 조화를 맞추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본래 현실과 이상 사이엔 큰 간격이 있기 때문에, 현실을 이상에 맞춰 개선하려면 이상에 대한 현실적 수정과 검증이 필요합니다. 이는 현실 정치를 고려한다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정이지만, 이 과정을 엄밀하게 거치면 거칠수록 대부분은 진보주의적 경향이 약화됩니다. 현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이것은 모순이라기보다는 난제에 가깝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이 쉽게 부딪치는 모순은 권력의 획득과 행사에 있습니다. 정치적 진보주의는 품은 이상과 목표가 높을수록 그 실현을 위해선 필연적으로 강한 권력이 필요합니다. 약한 권력으로는 큰일을 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렇기에 높은 목표를 가진 진보주의자는 매우 강한 권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막상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뭔가 하려고 하면, 그 변화로 인한 피해자나 손해 보는 사람이 곧잘 나오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들을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여기서 진보주의자들이 선택하는 건 (안타깝게도) 대체로 공공의 이익, 집단의 이익입니다. 많은 경우 진보주의자들은 1명이 다소 부당할 수 있는 손해를 보더라도 3명이 이익을 보게끔 권력자가 조종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지 않으면 이 이야기를 납득 못할 분들도 있을 것 같으니, 최저임금 인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대체로 그로 인해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사업자들에 대해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예를 들면 이해가 쉽지요.

 강한 권력의 추구, 집단주의,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의 허용. 이런 것들이 합쳐지고 세월이 쌓이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그런데 또 현대 선진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심화된 민주정과 개인의 자유, 권리, 소수자에 대한 보호와 의견 존중을 동시에 주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민주정, 개인의 자유와 권리, 소수자의 권리 보호 등이 윤리적이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불완전한 형태로 접합되고 퍼짐으로 나타나는 모순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 모순은 현실 속에선 꽤 곤혹스럽거나 혐오스러운 형태로 발현됩니다. 언더도그마라거나 내로남불 같은 형태 말입니다. 이게 그렇게 되기가 쉬운 게, 결국 개인과 집단 중 어느 쪽을 중시할 것인가. 권력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태도를 일관적으로 유지할 것인가 같은 철학적 원칙들을 정해야 내로남불이나 언더도그마를 피할 수가 있는데, 현대의 대다수 진보주의자들은 그걸 일정 이상으로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지지자들은 본인들을 매우 민주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개인의 자유와 소수자의 권리도 중시한다고 곧잘 주장합니다만, 실제 행동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문재인을 대하는 태도는 거의 철인정치론자들이나 수호자주의자에 가까워 반민주적이고, 문재인이 매우 강력한 권력을 쥐고 ‘정의로운’ 철권 독재 정치를 행하길 바라며,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소수자에 대해선 대단히 공격적이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집단적 공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곧잘 내로남불을 시전하지요. 그런데 이게 문재인 지지자들이 꼭 유별난 인격 파탄자들이라 그런 게 아닙니다. 현대 진보주의의 원천적 모순이 드러난 결과지요.

 위에 이야기한 문제들 때문에 교조화가 나타납니다. 진보주의적 관념, 방법론 등등은 모순점도 많고 우스갯소리 같지만 ‘충분히 진보하지도’ 못했습니다. 21세기 기준에선 구시대적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현실에 맞춰 온건하고 (기존 진보주의 관점에선) 덜 진보적인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더 진보적인) 주장이 대세가 되면, 기존의 진보주의자들은 그 정치적 입지 및 권력을 잃어버리기 쉬운 상황이 됩니다. 여기서 교조화가 이루어지고, 강압과 폭력이 등장합니다. 설명은 어렵지만 현실적 샘플은 간단하지요. 문재인의 비현실적인 주장들을 친문세력 많은 흔한 커뮤니티들에서 비판하면 돌아오는 것들을 보면 됩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진보적 정치세력은 실패를 거듭합니다. 선거에서 잘 이기지 못하고, 집권을 하더라도 금세 또 정권을 내주게 되고, 시민들을 실망시켜 극우파를 집권시키거나 아예 본인들이 극우화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그들은 사회의 많은 것들을 개선하고 싶어 하지만, 그 비현실성과 모순과 교조성 때문에 대체로는 절반의 성공 또는 그 이하에 그치고 맙니다.

 이제 한국도 모순과 교조성을 품은 진보주의자들이 권력을 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권력을 쥔다면, 그들이 잘 하길 바라고 이런저런 조언을 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들이 실패하면 극우파가 집권하거나 그들이 극우화될 수 있으니까요.

2017년 4월 3일 월요일

87년 체제 각 정부 평가

본문에서는, 87년 체제 이후 각각의 대통령과 그들의 정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견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87년 체제의 역사는 결코 오래 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이해관계와 포장에 의해 왜곡이 발생해있다. 여기에 더해 각자 가진 사고방식 및 철학에 의한 평가의 차이도 크다.

 내가 생각하는 관점은 다음과 같다. 정치는 결과로 말해야 하며,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현실적 이익을 줘야 한다. 아집과 불통으로 국민들의 삶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잘 한 정부부터 서술해볼까 한다.

1위) 노태우 정부

: 노태우 정부는 많은 이들이 군사정권의 연장선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노태우 정부가 87체제 최고의 정부였다고 본다. 또한 그는 실질적인 한국 민주정치사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의 피상적인 인식보다 노태우 정부는 훨씬 눈부신 업적을 쌓았다. NLL논란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고, 한반도에서 핵을 없애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끌었으며 (당시 주한미군은 핵을 가지고 있었다.),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가운데 온갖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었다. 공산권이었던 중국 및 러시아와의 수교도 이 때 이루어진 것이다. 대북정책은 북조선을 고립시키는 동시에 관계개선에도 성공하였다. 평시 작전 통제권의 환수도 추진하여 김영삼 때 완료되었다.

 민주주의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일차적인 책무는 외교와 국방에 있다. 원칙적으로 볼 때,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사회를 개선시켜나가는 것은 의회의 몫이 더 크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노태우는 좋은 대통령이었다. 엄청나게 정세가 급변하던 시대에 그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 또한 이 시기에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수준 또한 크게 발전하였다. 노태우의 시대에 한국은 최초로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발돋움한다. 장준하의 명예회복과 지방자치제의 부활도 그 때 이루어졌다. 여성 권익도 신장되었다.

 여러 시대적 불행 위에 있었지만, 노태우는 인품이 훌륭한 편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유순하고 어른스러워 화도 잘 내지 않고, 친구들의 싸움도 중재했다고 한다. 이런 성격은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유지되었던 것 같은데, 그의 그런 성품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87년의 민주화를 결단한 것 또한 그의 공이 크다.

 이른 80년대 초에도 그는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이긴 했지만, 김종필 등 구 군부 세력 등에게 예의를 갖춤으로 추가적인 갈등을 무마하였다. 또한 안하무인인 전두환의 하대와 핍박에도 불구, 인내와 웃음으로 위기를 이기고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장관시절엔 상사 눈치를 보느라 퇴근을 못 하는 관례를 없애도록 한 개혁적 인물이기도 했다.

 비록 불법정치자금 수수 문제로 불명예스레 무기징역까지 선고받고 지금은 병상에 누워있지만, 사실 금융실명상태가 아니었던 그 시대에 불법정치자금은 당연시되었던 관례였고, 실제 후임인 김영삼에 의해 정치적으로 제거된 면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법정치자금에서는 김대중도 노무현도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또한 노태우는 전두환과는 달리 추징금을 꾸준히 납부해오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완납상태다.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역사적으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 본다. 보안사 사찰 사건 등은 분명한 과오이지만, 그로부터 한참 지난 시대에도 그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 시대를 감안하면 꼭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한편으로 인천공항과 1기 신도시 또한 그의 계획이다.

 여담인데 두 명의 노씨 대통령 중 실제 많은 업적을 세운 노태우는 인기가 가장 낮고, 온갖 과오를 저지른 끝에 자살한 노무현은 최고의 인기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치는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노태우가 아니었다면 민주화에 얼마나 더 많은 피가 필요했을지 모르고, 어쩌면 신군부와 기존 군부의 투쟁으로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을 수도 있었으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히기 전에 붕괴할 수도 있었고, 기존 공산권 국가 및 북조선과의 관계도 훨씬 나쁘게 자리 잡을 수도 있었다. 이룬 업적과 행동으로 보면 노태우야 말로 민주화 이후 가장 현실 속에서 진보적이고 상식적인 대통령이었다.

2위) 김대중 정부

: 굉장히 좋지 못한 상황에서 출발하였지만, 나는 김대중 정부가 노태우 정부에 비하면 여러 번 오판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대중은 분명 대정치인이고 국민에 대한 애정을 가졌으며 여러 방향으로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쉬운 말로 김대중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진정성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와 전통적 제도주의에 양다리를 걸쳤다고 평하고 싶다. 내가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제도주의의 면, 즉 IT인프라를 깔고 벤쳐를 육성하며 나름대로 유동성을 강하게 공급한 면 등을 들고프다. 그는 IMF에 대해 충분히 패기 있는 선택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호박씨 정도는 깠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신자유주의적인 사상과는 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망조와 오판 속에서 그나마 국민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 일조하였다. 스스로 강경한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었던 김영삼이나 노무현과는 달랐다.

 김대중의 시대 때, 소기업들은 마지막 꿈을 꿔볼 수 있었다. 현재 큰 기업이 된 신생 기업들이 그 때 탄생하였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와는 분명히 대조되는 점이다. 나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세트로 묶는 게 그릇된 인식이라 본다. 둘은 공통점이 별로 없다.

 그의 한계는 그의 사고방식에 있다.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에 적합한 인물일 것이다. 여성 권리도 크게 신장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그는 다소 통찰력과 과감성이 떨어졌다. 그는 IMF의 요구를 묵살하고,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 같은 카드라도 활용하여 좀 더 배짱 있게 재협상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IMF의 강경한 요구들을 수용하면서 신자유주의적인 흐름으로 나라를 이끌고 만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노력은 충분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내가 보기엔 신자유주의에 대한 오판이 많이 섞인 탓이 크다. 또한 햇볕정책도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이 충분한 인물도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잘 못 받아들인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한편으로 그의 정권을 미화하는 부류들도 많지만, 그 또한 왜곡이 많다. 일례로 그의 정권 때 국정원 불법도청 사태가 터진다거나, 아들인 김홍업이 ‘최규선 게이트’라는 사건에 걸려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는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진영논리에 빠져있는 이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서는 안 된다.

3위) 이명박 정부

: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손해를 안겨준 면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나 김영삼 정부보다는 낫다. 나름대로의 현명한 선택으로 국난을 넘기기도 했고, 어려운 시대에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을 다한 면도 있다. 비록 좀 어설픈 면이 있었지만, 잘 해보려고 한 것에 비해 과도하게 욕먹는 측면도 분명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딜레마 중 가장 큰 것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비록 이명박은 뉴라이트에게 지지를 받아 신자유주의를 말로 앞세우기는 했지만, 그는 사실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고 본다. 또한 극우파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명박은 나름대로 꽤 평화주의적이고 겁이 많았던 것 같다. 다만 그의 그런 성정은 대북관계에 좋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집권 내내 이명박은 자신의 사고방식과 주변 인물들의 사고방식 사이에서 갈등을 빚었던 것 같고, 인사문제에 시달렸다고 본다. 그는 평균적인 정치인보다 꽤 험한 인생을 살아왔고, 현장에서 단련된 감각이 있었다. 그런데 말을 잘 못하고 덕이 부족한 데가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과도한 충성경쟁과 미숙함도 더더욱 문제를 야기했다고 본다.

 사실 그나마 그의 현실 감각 덕에 리먼 위기는 최소화되었다. 그는 관치금융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중소기업을 지원했고, 그 나름대로 진짜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위해 노력했다. 비록 다 잘 된 건 아니고, 일부 오판으로 영생토록 욕먹을 짓도 하긴 했지만 그나마 이명박이 좋은 결단을 내린 탓에 한국은 금융위기를 어느 정도 잘 넘길 수 있었다. 깨시민들은 노무현 정권이 돈을 많이 쌓아놔서 잘 넘겼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명박이 좋은 선택을 해서 잘 넘긴 거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4대강 같은 뻘짓에 더해, 친형인 이상득계를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면서 (여기엔 이재오의 낙선이 큰 영향을 줬다. 괜히 중간에 이재오가 돌아온 후 잡음이 줄어든 게 아니다. 이상득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이재오였기 때문이다.) 측근비리가 심해졌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정국이 꼬인 상태로 5년을 보내는 비극을 겪었다. 그래도 한국은 이명박 집권 시기에 한 단계 더 성장했으며, 비교적 금융위기를 잘 넘겼다는 면에서 차선이나마 다한 정부라 평할 수 있겠다.

4위) 노무현 정부

: 깨시민들에 의해 태평성대였던 것처럼 포장되는 면이 있지만, 노무현 정부는 최악의 정부였다. 그나마 내가 김영삼 정부보다 나은 평을 하고 있는 건 IMF는 안 불러와서다. 그거 빼면 노무현 정부가 87체제 최악의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총체적인 좌충우돌을 저질렀다. 기존 민주당에 대한 공격을 강행하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의 정적들도 너무 처절하게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여당을 파괴하고 삼권분립을 침해하여 탄핵소추를 의도한다거나, 심지어 그렇게 새로 만든 여당도 임기 중 파당으로 치닫게 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그를 지지했던 세력을 배신하고 소위 ‘좌측 깜빡이를 키고 우회전하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고통과 절망을 주었다. 87체제 아래 아마도 유일하게 군부대까지 투입한 과격한 시위진압이 있었고, 폭력진압으로 사망자까지 나왔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시민 노빠들은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덮고, 그를 국민을 위했던 성군으로 역사왜곡을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과정부터 뒷돈 부정을 저질렀던 정부로, 이미지와 실제 사이의 간극이 극단적으로 큰 정부이기도 하다.

 그의 집권 시기 동안 서민들의 삶은 크게 붕괴하였고, 국제적인 활황과 부동산 폭등에 맞물려 GDP는 크게 올랐지만 경기가 가라앉고 잠재성장률이 크게 저하되었으며 기조적인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또한 그는 의도적으로 정적이 속해있던 현대그룹을 제거하고 노골적으로 삼성의 편을 들었으며, 온갖 민영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친재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으며, 통찰력과 소통이 부족했고 오만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의 일화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성품이 바르거나 개념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릴 때 잘 사는 친구의 가방을 몰래 칼로 찢어발긴다거나, 20대엔 지나가는 아낙네에게 성희롱을 한다거나, 노출을 한다거나 하는 문제행동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의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성품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고쳐지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나 공격적으로 행동해서 온갖 적들을 만들 걸 보면. 적어도 정치인은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 고건의 발목을 잡으면서 자신의 편을 거의 모두 잃고 만다. 결과적으로 그는 죽음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후 친노-깨시민-노빠 세력은 근본주의적 종교집단의 행태를 보이며 역사왜곡을 강행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이 너무 흥행하는 걸 보면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5위) 김영삼 정부

 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세 대통령에 대한 별명은 각기 ‘돌, 물, 깡’ 이라고 한다. 셋 다 그들의 언행과 품성을 잘 나타내는 단어다. 깡03은 집안의 재력과 패기와 깡으로 민주화를 이룩하고 그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머리가 나쁘기로 소문나 있기도 하다.

 3당 합당 이후 땡깡으로 민자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평생의 라이벌인 김대중을 꺾은 그는 이후 노태우에게 처절한 칼날을 휘두른다. 이런 뒤통수치기는 이후 한 때 그의 적자 격이었던 노무현이 그대로 반복하기도 하는데, 손을 잡을 때는 미리 상대의 성품을 봐야 하는 법이다.

 흔히들 김영삼의 업적 중 하나회 척결을 높이 평가하는데, 그 속사정은 나름 복잡하다고 알고 있다. 굳이 보자면 경북 기반의 하나회를 제거한 대신 경남 기반의 모 조직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는 식으로 들었다. 물론 그 조직의 문제 정도가 하나회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한국 군대도 문제 많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김영삼이 기존 군부를 제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좋은 군대를 만든 것도 결코 아니다.

 그는 박정희가 한 건 다 문제가 있다는 듯 행동했다. 그래서 매우 강력한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었다. 개방, 개방, 개방... 그의 신자유주의 행보에 견줄 수 있는 정부는 노무현 정부뿐이다.

 그의 무리한 금융경제개방과 치적을 쌓으려는 태도는 결국 IMF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비극을 가져온다. 전후 45년간 한국인들이 피땀으로 일군 자본과 기득권의 정말 많은 부분이 그에 의해 무너졌다.

 IMF는 한국 경제에 어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에 왔던 비극이 아니다. 그저 정부가 관리를 잘못하고, 섣부른 금융개방을 추진하면서 위기에 안일할 때 어느 정도의 비극이 찾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세계적인 사례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IMF를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던 한국 경제에 대한 필연적인 심판’ 정도로 포장하려 들고, 이런 경향은 역시나 신자유주의적인 친노 깨시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IMF가 오기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 경제는 성공신화 속에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시절의 호황기를 한국은 아직도 되찾지 못했다. 한국 브랜드나 기업은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김영삼 이후 한국이 이룬 성과는 한국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 마무리하며

 사실 안타깝게도 민주화 이후 87년 체제에서, 각각의 정부들은 대체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 출신 인사들의 정치가 훨씬 성공적이었다. 물론 군바리 정치가 수많은 문제점과 단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성적표를 놓고 보면 군인들이 더 잘한 면이 너무 많다. 박정희 이전의 이승만과 윤보선은 최악의 대통령들이었고.

 정말 좋아할 수는 없지만, 일베충들이 ‘민주화’를 부정어로 사용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하위 중 하위문화에서 말하는 것들은 대체로 현실을 반영하는 면이 있다. 그것이 바람직하다거나 옳다거나 그런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인 기본 현상 중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익보다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유교 선비스타일 수꼴들이 너무 많은 것을 망쳐 놨다. 민주주의는 그런 게 아니다. 민주주의의 민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자기 맘대로 전용하면서 생겨난 문제가 정말 크다.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주고 돈을 벌게 해줘야, 그리고 재미있게 해줘야만 하는 제도다.

 각 정부들의 실패엔 미국 유학파들이 앞뒤 분간을 못한 탓도 크다. 뭐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배운 대로 하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망쳐 놨다. 그들은 미국에서 배운 걸 한국에서 또 그대로 가르치고 발언하면서 문제를 엄청나게 키워 놨다. 어디에나 공부만 잘 하는 돌대가리 멍청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좋은 제도이지만, 반드시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상 수많은 민주주의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허울뿐인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곳도 있다. 나는 모든 정치체계는 근본적으로 각자의 권익과 안전을 위한 것이라 여긴다. 그것이 잘 지켜지는 체계가 좋은 체계다. 각각의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를 냉정하고 바르게 평가할수록, 정치는 더 성공적으로 나아갈 확률이 높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영논리와 아집과 각종 관념의 울타리들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87체제의 각종 실패들은 시민들의 삶, 특히 젊은 사람들의 희망을 너무 많이 빼앗아갔다. 그 결과 한국은 눈부신 성장을 하는 동시에 큰 잠재성장률 하락을 겪고 낮은 출산율을 가진 국가가 되었으며, 너무 많은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크게 위협받기 마련이다. 깨시민과 일베충이라는, 서로 적대적이지만 너무나 많은 부분이 닮은 파시스트들이 온라인 세계를 온통 잠식한 것도 정치의 실패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정치의 성공이란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2017년 4월 1일 토요일

헌법학자들이 본 개헌 "87년 체제 한계"vs "애꿎은 헌법 탓"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임기내 개헌 추진 발언을 놓고 헌법학자들의 주장은 엇갈렸다. 87년 체제의 한계를 거론하며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에서부터 헌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정치권이 문제라는 상반된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권력구조에만 초점을 맞춘 개헌론에 대한 우려섞인 시각도 상당했다.

◇기본권 강화·권력분산 등 재검토 필요 

개헌에 찬성하는 헌법학자들은 87년 체제의 한계를 거론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현재 헌법에는 정부 기본권에 대한 비전이 없다”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는 기본권의 성격을 띠는 37조1항은 있지만 명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또한 “87년 이후 정보화사회가 급진전됐고,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면서 “알 권리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또한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모성보호에 대한 규정을 구체화하고 아동의 권리, 노인의 권리에 대한 독립적인 기본권 권리를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보다 성숙한 정치문화를 고려했을 때 이제 87년 체제의 낡은 권력구조를 재검토해볼 시점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 김 교수는 “국민들의 의사를 잘 반영하는 게 의원내각제”라면서 “특히 각 지방정부 대표들로 상원의원이 구성되어 있는 독일식 상·하원제의 경우 지방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지방분권 강화 및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정책적 공조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법부의 독립성 강화도 이같은 맥락에서 제기된다. 현행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대통령이 3명, 의회에서 3명, 대법원장이 3명을 추천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9명 중 정부여당 몫이 7.5명에 이른다.

대법관 임명도 마찬가지다. 현행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3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1명을 추려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하게 되어있지만 위원회 10명 중 6명이 당연직으로 구성돼 대법원장 권한이 막강하다. 사실상 대통령이 사법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인 역량 부족 ..‘헌법 탓만’

반면 정치인들이 애꿎은 ‘헌법 탓’만 하고 있다는 쓴소리도 적지 않다 . 제왕적 대통령 문제와 관련, 헌법만 제대로 이행해도 논란은 최소화됐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게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 및 해임건의권이다. 이는 헌법에 명시돼 있지만 형식적인 권한일 뿐 실질적으로는 청와대에서 모든 인사를 결정한다. 또 선거법 개정을 통한 중앙권력 집중 현상을 완화와 지역주의 폐해 해소로 의회에서도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권력 집중 현상의 경우 입법기관인 의회가 제대로 견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정당이 지금과 같이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다면, 의원내각제를 바꾼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대통령제와 다를바 없다”고 비판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정치인들이 정치를 못하면서 책임을 헌법에 미루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처럼 헌법이 정밀하게 잘 되어 있는 곳도 없다. 헌법을 잘 지키고 관행과 정치역량으로 충분히 메워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 개편 방향에도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는 안정된 정당 정치가 필수적”이라면서 “대통령제에서도 이렇게 정치가 불안한데, 국가 전체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7년 3월 30일 목요일

문제는 87년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 체제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대선불출마를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국가적 혼란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대한민국의 실패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본심은 다음날 24일 JTBC뉴스룸에 직접 출연하여 손석희 앵커와 대화를 나누면서 드러났다. 겉으로는 총선불출마, 대선불출마를 외치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면으로는 또 다른 형태로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잡힌 것이다.

손 앵커는 김 전 대표에게 그가 대선불출마와 함께 개헌을 거론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김 전 대표는 이번 사태가 제왕적 대통령 구조 탓에 일어나 일이기 때문에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손 앵커는 그것이 김 전 대표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같다며 개헌을 고리로 탄핵 찬성 의원을 모은다는 소문이 있고, 같은 맥락으로 내각제 개헌으로 가면 총선 불출마도 제고할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는데, 이에 김무성 전 대표는 확실하게 부정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총선, 대선불출마가 결코 순수한 의도만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다른 생각이 있음을 얼떨결에 밝힌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의 허를 찌르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 그것이 얼마나 날카롭고 예리했는지는 현재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소위 '김무성의 동공지진'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 김무성 전 대표는 당황했고, 거듭해서 그건 아직 생각을 안 해봤다고 할 뿐이었다.

허약한 내각제 개헌의 근거

사실 김무성 전 대표가 이야기한 내각제 개헌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정치권 일각에서 끊임없이 주장되어 왔고,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내밀면서 많은 의원들이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근거다.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작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87년 체제는 비록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대통령 한 명에게 권한을 몰아주다 보니 부정부패가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고, 그 극단적인 형태가 이번 사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권력을 좀 더 분산시키기 위해 내각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그들.

과연 그럴까? 현행 대통령제를 내각제로만 바꾸면 작금의 사태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정부패를 벌이는 것은 구조적으로 많이 있어왔지만, 최고 권력자가 일개 민간인을 위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 이번 사건은 결코 대통령제의 한계로 설명될 수 없는 해괴망측한 사건이다.

많은 이들이 황당해하고 외신들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100년 뒤 사극이 만들어지면 2016년이 가장 인기 있는 시대배경이 될 것이라 할까.

따라서 이번 사태를 근거로 내각제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번 사태가 일반적이지 않은 만큼, 그 원인을 현행 대통령제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보다 우리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누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었는지 밝혀야 한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무자격자가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번 사태를 규정짓는 핵심이 되어야 하며 개헌을 하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박정희 체제

대통령으로서의 깜냥을 지니지 못한 민간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세력. 결국 이들은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큰 이익을 봤던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정치인들과 재벌, 보수언론 등이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세운 뒤 그 뒤에서 지금까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다.

지금이야 박근혜 대통령이 이 정도인지 몰랐다고 변명 하지만, 이미 그들은 아주 오래전에 혹은 최소한 2007년 MB와의 경선을 거치면서 이미 박근혜의 실체를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야당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녀를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안위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의 권익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과 국정을 좀 농단한들 어떠한가. 어차피 5년 임기제인 만큼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물러날 것이고, 다음에 또 그들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다른 대통령을 선출하면 되는데.

국가와 재벌, 그리고 언론의 결탁. 영화 <내부자들>에서도 보았듯이 이는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 박정희 시대 때부터 고착화된 시스템이기도 하다. 정부가 근대화를 주장하며 특정 재벌을 키우고, 재벌은 공공의 이름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대신 정권에 비자금을 대주고, 언론은 그 모든 것을 눈감은 채 국민들의 관심을 호도하는 대가로 제4부로서의 권력을 가지는 권력의 카르텔.

따라서 현재 우리가 이번 사태를 맞아 청산해야 할 것은 87년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 체제이다. 비록 박정희는 1979년 죽었지만 그 시스템은 아직까지 굳건하다. 여전히 권력은 소수에 의해 독점되고 있으며, 그것은 앞서 언급한 카르텔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계층 간의 격차가 커지면서 오히려 더욱 견고해 지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기'가 힘든 만큼 그들만의 리그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내각제도 무용지물이다. 혹자들은 내각제가 되면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한이 줄어들고 그만큼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지금처럼 권력과 재벌, 언론이 한 통속이 되어 권력을 나누고 있는 현실에서는 오히려 내각제를 통해 기존 권력의 카르텔이 강화되고 시민들의 목소리가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내각제를 택하고 있는 일본을 보자. 현재 일본은 1945년 패전 이후 몇 년을 제외하고 나서는 계속해서 보수 세력인 자민당이 정권을 잡고 있다. 이는 결코 일본인들이 보수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본이 선택하고 있는 내각제의 특성 상 지방 토호나 정치 엘리트들을 청산하기 어렵고, 따라서 그만큼 사회변혁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는 이 시기에 유독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작금의 사태를 단순히 권력구조 때문이라 호도하면서 기존의 박정희 체제를 고수하고자 하는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책임은 나몰라라 하며 자신들의 살 길을 모색 중이다.

다시 개돼지가 되지 않으려면

개인적으로 현재 우리 눈앞에 드러나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보수 세력들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특히 노무현 대통령을 증오하였는데, 요즘 그들이 해왔던 짓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왜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 싫어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생각해보자. 대통령의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말도 안 되는 짓거리들. 국가의 대사인 올림픽을 사적인 수익구조로 개편하고,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한 무기 거래를 통해 특정인의 배를 불리고, 심지어는 대통령이 재벌들을 불러들여 최순실의 딸, 정유라 친구의 부모 회사까지 챙겨주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 과연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번에만 자행됐을까?

아니다. 그것은 박정희 시대 때부터 쭉 있어왔던, 구조적인 관행이었다. 그들은 국가를 당연히 자기들 것이라 생각하고, 일반 국민들을 진짜로 개돼지 같이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이란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

상고 출신에 변변한 인맥도 없는 이가 이 나라의 최고 엘리트라던 이회창 후보를 꺾고 오로지 국민들의 지지만으로 최고 자리에 올랐다. 김대중 대통령이야 아주 오랫동안 정치를 한만큼 부득불 인정한다고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그것도 아닌, 보도 듣도 못한 인물아닌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자기들 것이라고 철석같이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며 일갈하는 서민 출신 대통령이라니. 그들에게는 노무현 대통령 존재 자체가 최악의 재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돌고 돌아 다시 변곡점에 서 있다. 이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박정희 체제를 청산하여 다시 노무현 대통령 같은 이를 배출할 것이냐, 아니면 기존의 체제 안에서 한 줌도 되지 않는 이들에게 다시금 개돼지 소리를 들어가며 세금을 모아 바칠 것이냐. 지금 우리의 실천이 앞으로의 대한민국 100년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87년 체제를 운운하지 말라. 우리는 현재 박정희 체제라는 구악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2017년 3월 28일 화요일

‘87년 체제’를 넘기 위한 과제

중국에 불파불입(不破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파괴가 없으면 새로운 건설도 없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촛불혁명은 구체제에 균열을 내는 데 성공했다. 불립불파(不立不破)라는 말도 있다. 건설이 없으면 파괴도 없다는 뜻이다. 구체제에 균열을 내어도 새 체제 건설에 실패하면 죽 쒀서 개 주는 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탄핵 결정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음의 질문을 서둘러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체제를 건설할 수 있는가? 여러 측면에서 말기적 증상을 보이는 소위 ‘87년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전환시키는 길은 무엇인가? 87년 체제는 1987년 헌법을 제도적 기초로 하기 때문에 개헌이 이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안이 체제전환은 차치하고라도 정치제도라는 면에서 어떤 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체제전환의 핵심적 내용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수단과 관련한 논의만이 분분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제기되는 개헌론에 정치적 사심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단과 경로에 대한 논의에 앞서서, 체제전환의 목표와 과제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개헌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개헌의 핵심내용은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다. 지금의 87년 체제를 더 인간적이고 활력이 있는 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수구세력의 정치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동안 절차적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서구 정당정치의 모델을 한국정치에 적용시키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분단체제로 인해 우리의 정치현실은 서구와 다르다. 수구세력은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절차도 무시했고, 민주주의는 큰 위기에 빠졌다. 그 위기는 ‘광장의 정치’를 통해 극복되고 있다. 우리가 참여하고 목격하고 있는 광장의 정치는 정치의 낙후성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의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그렇지만 수구세력의 통치기반에 대한 제도적·인적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또 다른 정치적 퇴행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두 번째, 불평등·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실행에 나서야 한다. 경제영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확충은 물론이고, 재벌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시스템 건설을 공론화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재벌이 주도하는 한국경제의 성장모델이 붕괴 과정에 접어들고 있다는 조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중앙집권은 우리나라의 활력을 억누르는 주요 원인이다.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중앙으로의 과도한 권력집중이다. 비대한 중앙권력의 문제가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 문제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연방제 수준으로 분권화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제도개선 없이는 어떤 권력구조를 택하더라도 권력의 과도한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치적 불균등·불균형 해소도 중요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이 시급하다. 국회의원 선출에서 비례성을 강화하고 주요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통해 제도권 정치가 다양하고 폭넓은 민의를 대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87년 헌법 논의가 정치적 독재를 청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앞으로의 개헌논의는 불평등·불균형 해소를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

세 번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및 국제 협력을 진전시켜야 한다. 현재처럼 남북이, 북·미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쉬운 과제는 아니다. 이 의제는 수구세력에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민주개혁세력에 불리하다고 생각할 일만은 아니다. 대북정책에 대한 수구적 노선과 태도가 안보를 오히려 위협하는 상황을 낳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가 국민 여론 속에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기들을 잘 활용하면 안보담론을 평화, 안전, 생명 담론으로 재구성해 갈 수 있다. 이 작업의 진전에 따라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새 체제로의 전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장을 위해 재벌에 의존하거나 분단에 대해 체념하는 태도 등과 같은 구체제 중독에서 벗어날 각오를 다져야 한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전환기에 서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122112015&code=990100#csidxb7dbc1a737feb0591ac43c7d9685f3c

2017년 3월 12일 일요일

문재인을 비롯한 친북세력의 어리석음

 먼저 오해를 줄이기 위해 이야기합니다. 친북은 종북이나 주체사상, 김씨일가 추종 같은 것과는 무관한 지칭입니다. 북조선을 외교 상대로 호의적, 희망적으로 보는 부류를 통칭하는 정도의 언어로 받아들여주십시오.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하여 북조선은 국내 체류 중인 말레이시아인을 출국 금지 조치하였고, 그에 말레이시아도 동일한 조치로 보복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말해 주는 건, 북조선은 언제든 비상식적/비윤리적으로 외국인을 구금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북조선 점령지(영토) 내에 들어가는 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박왕자씨 피살사건이 이를 잘 보여줬지요. 개성공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있어, 민주당 및 진보세력은 대단히 비현실적이며, 몽상에 가까운 동시에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안일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2년에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은 단일화와 관련하여 TV 공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안철수는 금강산 관광 재개 등에 대하여 북조선과 먼저 대화해 안전을 보장받은 후 재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재인은 그 때 안철수의 면전에 대고 ‘그것은 이명박과 같은 방식’으로 공격을 했었습니다. 문재인의 대북인식 및 안철수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지요. 참고로 그 때 문재인 캠프에도 친북인사는 있었고, 2013년에도 문재인은 친북성향의 천주교정의사제구현단과 활동을 함께합니다. NLL논란에 섣부르게 뛰어들어 망신당했던 것도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근래에도 문재인의 북조선 관련 실언과 망언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개성공단도 재개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해왔습니다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현실은 개성공단도 언제나 위험할 수 있었지요. 개성공단 중단에 절차적 문제가 없었던 건 결코 아닙니다만, 개성공단의 리스크를 무시하는 이데올로기적 발언들 또한 국가적으로 볼 땐 그 이상의 문제입니다.

 북조선에 쌀을 지원하고, 그 대신 지하자원을 받자는 발언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건 현재 북조선을 압박하고 있는 유엔 협약 위반이거든요. 여러 소리가 나오니 문재인측은 대화를 먼저 잘 해서 북조선과의 관계가 개선되면 그러겠다는 것이라 참으로 없어 보이는 해명을 했는데, 그 말은 ‘남북대화를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발언과 같은 내용입니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유엔제제가 풀릴 일 없으니까요.

 문재인 지지자들은 맹목적이기 때문에 문재인의 이러한 실언과 망언들에는 눈을 감고, 무조건적인 옹호를 합니다. 그러한 아이돌 팬클럽식 정치가 망쳤던 게 참여정부와 박근혜정부였지요. 둘 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역사가 중명해줍니다.

 사드 반대 역시 그렇습니다. 반미 친북 친중 세력은 옛날부터 F15K, 패트리어트, F35 도입 등에 쭉 반대해왔습니다. 이번에는 그게 사드 차례일 뿐이지요. 그들의 사상적 본질은 민족자주(NL)이기 때문에, 미국산 무기 비싼 걸 들여오면 그들은 언제나 반대하고 봅니다. 연령이 어리거나 정치문제에 근래 들어 관심을 가진 분들은 라팔 도입 운동 같은 걸 잘 모를거라, 사드 문제도 감 잡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F15K 도입할 때 많은 청년들은 그게 더러운 미국자본과의 비리 결탁이라 생각했습니다. 누가 진짜 거짓말쟁이인지 드러나는 데는 몇 년의 세월이 필요했었지요.

범죄자의 행동패턴, 독재자의 행동패턴

 탄핵정국부터 박근혜가 보여온 건 전형적인 범죄자의 행동패턴이었습니다.

 어떠한 의혹이 있을 때, 억울한 사람은 대체로 적극적인 해명이 있고 억울함 표명이 있습니다. 적어도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말이지요.

 대조적으로 그때그때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말을 최대한 줄이고 잡아떼는 건 내가 알기론 범죄자의 행동패턴입니다.

 물론 이러한 패턴만으로 범죄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제라도 피의자 박근혜에 대한 빠른 구속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는 그 동안 수사에 대단히 비협조적이었고, 이미 할 수 있는 한 많은 증거를 인멸했겠지만 앞으로도 추가적으로 인멸할 가능성이 있으며, 도주우려도 아예 없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탄핵된 후에도 청와대에서 칩거 중인 데 대해, 국가는 추징금을 받아내야 합니다. 탄핵 순간 이후 박근혜는 청와대에 거주할 권리가 없으며, 현실적 문제로 인해 강제퇴거를 바로 시킬 것까진 없다 해도 권한 없는 거주에 대한 추징금 정도는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가 바로 퇴거를 못 하고 있는 건 그가 독재자의 사고방식과 행동패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독재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파악을 못하고, 인의 장막 속에 가려져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주변에 아부꾼 예스맨들만 남게 되니까요.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객관적이고 단순한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그에게 바른 말을 해줄 사람은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와대가 국정을 펼쳐나갈 능력 같은 건 한참 전에 잃었다고 봐야겠지요.

 안철수가 탈당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이 깨지던 그 때만 하더라도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이 이렇게 무너질 거라곤 거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박근혜 본인이 그 깽판을 치지 않았더라면, 최소한 당시 대표였던 김무성에게 굴욕까진 주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겠지요.

 한국처럼 민주화가 잘 된 국가에서 죄를 지어가며 오만방자한 독재를 하는 건 제 무덤 파는 일입니다. 이번 사태를 보고 모든 정치인들과 앞으로 정치를 할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기 바랍니다. 당장 다음 대통령이 될 것 같은 사람도 주변이 예스맨 위주일 것 같고, 인의 장막을 주의해야 할 만한 분이 아닐까 우려되어서요.

http://oceanrose.tistory.com/638

2016년 8월 30일 화요일

호남이야말로 친노의 섬노예 신세

페친 한 분이 메신저로 질문을 해오셨습니다. 질문 요지인즉, 친박이나 친이는 사실상 권력 실세의 영향력에 힘입은 것이고, 권력의 비호가 사라지면 소멸됐거나 소멸될 것으로 보이는데, 친노(친문)는 어떻게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당시에도 그렇고 전혀 명대통령이라고 평가되지 않는데, 친노->친문은 어떻게 건재할수 있는 것입니까? ]

다음은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메신저로 답변드리느라 내용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해서 일단 참고용으로 남겨봅니다.

답변 :

결론만 말하자면, 대안세력으로서의 호남의 노쇠화(사회적 낙후 심화)+소위 리버럴들의 대안세력 주류화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안세력에서 리버럴은 사실상 영남(주로 PK) 진보 성향의 시민들이라고 봅니다.

농업에 기반을 둔 호남의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이 계속 감소하면서 호남 유권자와 정치인들은 자연스럽게 그 위상이 축소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남패권 주류(주로 TK)에 대한 대안 정치세력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거든요. 결국 그 자리를 상대적으로 경제적 위상이나 사회적 영향력도 갖추고 무엇보다 현대적 감각(인터넷, SNS, 해외 문물 경험 등)을 갖춘 리버럴(주로 비호남, PK 출신들, 젊은 세대, 486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봅니다.

새누리당 TK는 사실 김대중 세력과 정치적 기반이 겹치지 않습니다. 서로 적대적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정치적 기반을 가져올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인데다, 그거 가져오지 않아도 자신들의 고유한 정치기반(영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누리당 TK와 호남 정치세력은 서로 대립하기는 해도 상대방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욕구는 강하지 않습니다. 승리해서 다수가 되고 정권을 가져오는 것을 목표로 하지, 상대 세력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거죠.

하지만 친노는 다릅니다. 이들은 김대중과 동교동이 장악해온 호남의 표 나아가 진보 개혁 성향의 표를 가져오지 못하면, 즉 뺏어오지 못하면 독자적인 정치 세력으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호남 정치세력을 대하는 친노의 정치적 목표는 승리를 통한 제압이 아니라 완전히 말살/소멸시키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선거에서 승리해 다수를 점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완전히 대체(사실상 인종청소)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정치적으로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아메리카 인디언처럼 만드는 것)이 호남에 대한 친노의 전략적 목표일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중 정치 역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3가지라고 보는데, 그것은 대북송금특검, 민주당 분당, 대연정 제안 등입니다. 저 3가지 정치 이슈의 공통점은 김대중의 격하, 호남정치 폄하, 동교동계의 배척을 목표로 한다는 점입니다.

객관적인 정치적 업적으로 볼 때 김대중과 노무현은 비교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즉, 노무현은 김대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실패한 정치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나 평가는 오히려 노무현이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이게 뭘 말할까요?

이건, 김대중과 호남 정치가 박정희 정권 당시부터 쌓아온 민주화 투쟁 즉 피와 땀의 성과를 친노를 비롯한 리버럴, 486들이 도둑질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즉, 영남패권 1진이 실패해서 생기는 정치적 반사효과를 호남이 아닌 친노가 가로채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라고 봅니다. 피는 호남이 흘리고, 과실은 친노가 챙기는... 이 구조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 농촌, 농민 등으로 상징되는 저개발, 전근대성의 이미지입니다. 이 이미지를 구체화한 것이 바로 호남입니다. 농업 지역에다가 경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낙후돼 있기에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무식하고 야만적이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씌우기 좋습니다.

염전 섬노예, 흑산도 윤간 사건 등도 모두 호남의 이런 저개발, 전근대성, 야만성의 이미지를 강화해주는 사건들입니다. 이런 이미지는 호남에 덧씌워진 일종의 감옥 또는 족쇄와 같습니다. 마치 염전이나 또는 시골 마을에 갇혀서 꼼짝 못하고 시키는대로 노예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처지와 비슷합니다.

저항 능력이 없어서 노예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꼼짝 못하고 갇혀서 시키는대로 해야 하고, 마을 사람들이 공모해서 탈출을 막는 것처럼 호남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남은 친노나 리버럴이 요구하는 노예 투표를 해줘야 하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면 지역주의라는 비난에 집중포화를 뒤집어 씁니다. 저개발/전근대성의 이미지는 호남의 탈출을 가로막는 감옥, 족쇄의 역할을 합니다.

지난 총선에서 호남이 친노 아닌 국민의당을 지지하자 인터넷에서 깨시민(리버럴) 친노들이 개떼처럼 일어나 '5.18 묘지에 시멘트를 부어버려야 한다'느니 하며 호남을 저주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즉, 너희들 고분고분 시키는대로 안하면 죽여버린다는 겁니다. 이게 노예 노동과 뭐가 다를까요?

이런 점에서 사실상 호남이야말로 빠져나올 수 없는 노예노동의 덫에 걸린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좌파들의 논리를 믿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개발과 발전을 거부하고, 호남이 가난하지만 깨끗하게 살라고 강요합니다. 전주에 롯데 쇼핑센터가 들어오면 도시의 개성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소득 3만달러가 뭐가 중요하냐고 떠듭니다. 그래서 현 시장은 전임 시장이 롯데와 맺은 계약도 백지화하며 법정소송도 불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난하면서 깨끗하게 산다는 것은 사기입니다. 청결하고 개성을 갖춘 지역이 되려면 자원이 투입되어야 하고, 삶의 환경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좌파들이 호남더러 가난하게 살라는 것은 사실상 앞으로도 계속 지저분하고, 가난하고, 무식하고, 야비한 이미지를 갖고 가라는 겁니다. 그래야 지들의 영향력이 유지된다는 겁니다. 계속 지들의 노예로 살라는 겁니다.

호남이 이 족쇄를 벗어나려면 계약의 정신을 존중해야 하고, 정신승리가 아니라 냉정한 물질의 법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본주의를 저주하며 기피할 것이 아니라 그 합리성과 생산력을 이해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발목을 옭아매는 반기업/반시장 정서를 벗어던져야 합니다. 주먹보다 법이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호남이 친노/좌파의 섬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출처(ref.) : 정치/경제/사회 게시판 - 호남이야말로 친노의 섬노예 신세 - http://theacro.com/zbxe/free/5257202
by 미투라고라

2016년 8월 28일 일요일

국가의 흥망과 북한

‘강대국의 조건’이란 EBS 다큐를 보았다. 역사 속의 강국인 로마, 영국, 네덜란드, 몽골, 미국, 그리고 실패한 강국인 스페인, 나찌독일, 일본제국주의가 가지고 있거나 결핍하고 있는 공통요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다큐다. 공통요인은 ‘관대함’이었다.

관대함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말과 같은데, 다큐는 상기한 강대국들의 관대함을 여러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가장 성공적인 제국이라는 로마는 적의 포로를 10년간 노예로 부리고 나면 이후는 자유민으로 만들어줬고 그 자손은 시민권자가 될 수 있었다. 심지어 정복한 민족의 후손에서 로마황제가 나오기도 했다.

영국은 종교적 원리주의가 대세이던 유럽에서 신교를 받아들였고, 네덜란드는 스페인에서 쫒겨난 유대인과 상인을 받아들이는 관대한 정책을 폈다. 몽골은 정복한 민족이라도 능력에 따라 대우를 해줬으며, 당시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여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가 몽골 수도에서 함께 생활하며 종교토론을 하기도 앴다. (다큐에 나왔던 전문가 중 하나인 ‘잭 웨더포드’의 책은 읽은 기억이 있다. 제목은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미국은 아시다시피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며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모든 세계인들을 받아들여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를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자유, 평등, 인권 등의 가치를 추구하기에 미국패권은 더욱 지속가능할 것 같다.

요점은, 이상의 나라들은 모두 이웃나라, 이웃시민들에게 관대했기에 성공한 것이다.

반면 한 국가가 배타적, 폐쇄적이면, 즉 관대함을 잃어버리면, 활력을 잃고 쇠퇴한다. 스페인은 카톨릭 원리주의에 빠져 타 종교를 박해했고 유태인들을 탄압하고 내쫒았다. 나찌독일과 일제의 인종주의적, 국수주의적 광신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일본은 아직도 외국에게 폐쇄적이다. 중국도 그런 면이 많고, 북한은 더욱 그렇다. 이런 나라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관대함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으로 초점을 좁혀보자. 북한은 역사상 어느 나라보다도 배타적, 폐쇄적인데다가 극단주의적이기까지 하다. 관대함과는 상극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쇠퇴는 불가피하고 결국 망한다.

경제사학자 이영훈 서울대 교수의 ‘대한민국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다. 이 분은 조선의 쌀 생산량, 물가, 경작면적 등의 각종 경제지표를 도출하여 조선이 망한 원인을 밝힌 분이다. 이 분이 조선시대의 경제지표를 도출한 방법을 예로 든다면 이렇다.

조선 말 안동의 족계(族契, 친족끼리의 계) 활동을 수록한 기록물을 찾으면 쌀 구입비 등이 적혀 있다. 같은 시기 남원의 족계를 뒤져보면 역시 쌀 구입비가 적혀 있다. 만약 두 지역 간의 쌀값이 차이가 없다면 전국적으로 유통망이 잘 갖춰져서 전국의 시장이 통합되었다는 뜻이고, 차이가 많다면 유통망과 시장이 붕괴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전국의 물가, 5일장 수, 경작면적, 임목면적, 재정수지, 인구, 1인당GDP 등을 추론하여 당시의 외국자료와 비교한다.

이 분이 도출한 경제지표의 결론은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마침 이 분이 어느 토크쇼에 나와 같은 내용을 강의해서 주의 깊게 들었다. 이 쇼에는 탈북인 이애란 박사도 방청객으로 참석했다. (이하 수치는 기억에 의존했으므로 부정확함).

조선말에는 산림이 얼마나 황폐했는지, 밭 면적을 비교해보면 조선이, 2배나 넓은 국토를 가진 일본과 유사할 정도였다(이는 1910년대 일제가 조사한 조선의 산림면적 결과로도 증명된다). 그래서 비만 오면 토사가 논밭을 망쳤다. 호랑이도 그 때 사라졌다. 산림이 황폐화된 이유는 왕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왕의 소유란 임자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모두가 나무를 베어내 땔감으로 쓰거나 시장에 내다 팔았다. 게다가 인구까지 증가했으니….

제법 잘 살았던 영,정조 시대의 국가재정(쌀) 보유액도 일본의 일개 다이묘(大名) 수준에 불과했다. 조선말 1인당GDP는 당시 자료가 남아있는 세계 43개국 중 꼴찌였다(아프리카보다 못 살았다). 그렇게 가난한데도 백성들은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렸다. 5일장 수는 급감하여 시장이 붕괴되었다. 매관매직이 얼마나 심했는지 고종 치하 44년 동안 서울시장이 1000명이 넘었다(이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임).

요약하면, 조선 멸망의 원인은 인구증가와 식량부족, 땔감을 위한 벌목으로 인한 산림의 황폐화, 그로 인한 쌀 생산량 감소와 굶주림, 관리들의 착취, 매관매직이었다. 지금의 북한과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그래서그런지 이애란 박사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지금 북한과 너무나 똑같다. 그런데 왜 북한은 조선처럼 망하지 않은가?”

이 교수가 대답했다.
“국가는 쉽게 망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외부충격이 있어야 망한다. 조선은 열강들의 침략이라는 외부충격이 있었다.”

이 교수의 말이 맞다면, 그럼 북한을 망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부모순은 충분하게 쌓여 있다. 마지막 하나는 외부충격이다. 외부충격이란 내가 보기에 1) 북한이 도발하면 강력하게 응징하는 것, 2) 외부정보를 대량으로 유입시키는 것이다. 그럼 북한은 망한다. 그리고 북한주민들은 처참한 인권유린과 기아에서 해방된다.

“조선은 부족함이 없이 평화롭게 잘 먹고 잘 살고 오손도손 사는 착한 순둥이였는데, 열강들이 쳐들어와 망했다. 조선은 싸움질을 할 줄 몰랐던 착한 나라였다. 만약 사악한 열강들이 없었다면 조선은 자체개혁을 통해 아주 잘 나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열강들이 나쁜 놈들이다”.

이게 지금까지의 우리 역사관이었단다. 하지만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아니 망해야 했다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 교수는 그 경제적 근거를 최초로 제시했다고 한다.

2016년 7월 14일 목요일

잠자는 국회에서 일하는 국회로 - 특권 내려놓기보다 국회 개혁이 먼저다


20대 국회가 개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국회 내에선 ‘특권 내려놓기’ 경쟁이 치열하다. 세비를 절반으로 삭감하겠다거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거나, 면책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 사이에 퍼져 있는 정치혐오를 떨치고자 하는 노력의 일단이다.

 하지만 ‘특권 내려놓기’는 의회가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일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국회의원이 어떤 특권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2014년 자유경제원은 국회의원 특권이 200여 가지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의원으로서 책무에 가까운 입법권이나 국정조사권, 국정감사권 등을 특권으로 규정해, 숫자를 부풀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권’으로 볼 수 있는 것들도 있기는 있다. 우선 국회의원은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연봉으로 1억 3천만 원 정도를 받는다. 의원회관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으며, 회기 중에는 체포되거나 구속되지 않는다. 국회 안에서 한 발언 때문에 국회 밖에서 책임을 추궁당하지도 않는다. 비행기나 배, 기차 등을 이용해 출장을 가면 비행기는 비즈니스석을, 나머지는 최고 등급 좌석을 지원받는다. 출입국시엔 별다른 심사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이런 것들을 ‘특권’이라 말할 수 있는가는 의문스럽다. 연봉이 높다고 하지만,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인재를 국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세비가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라도 적정 수준의 임금은 반드시 필요하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에 관해서도 그렇다. 국회의원의 노동은 어디까지가 노동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법안을 만들어야 노동인가? 그렇다면 그 법안 하나를 위해 소비한 입법 연구활동은 노동이 아닌가? 사무실 안에 있어야 노동인가? 그렇다면 현시 시찰 활동은 노동이 아닌가? 의회가 열려야 노동인가? 그렇다면 의회를 열기 위한 협상의 과정은 노동이 아닌가? 국회의원은 본질적으로 ‘협상하는 직업’이다. 일을 하지 않았다고 무작정 임금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의원회관 사무실을 이용하는 것, 출장시 교통비를 지급하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이야기다. 국회의원 300명 각각은 국가를 위해 입법권을 행사하는 헌법기관이다. 그들의 수장인 국회의장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의전서열을 차지하고 있다. 사기업 임원들도 이 정도 혜택은 받는다. 사무실 한 칸, 해외 시찰 교통비 정도는 헌법기관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이다. 국회의원은 관용차도 지급받지 못한다.

 출입국심사 문제도 그렇다. 출입국심사란 나가는 사람, 들어오는 사람의 신분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절차다.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 중인지,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판단하는 순서다. 하지만 국회의원만큼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일이 바쁠 때에는 그 출입국심사로 절약한 한 시간 두 시간이 치명적일 수 있다. 게다가 국회의원도 출입국심사를 받지 않는 게 아니다. 본인이 대기하는 동안 보좌진이 대리해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뿐이다.


 면책 특권이나 불체포 특권의 경우에도 단순히 특권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군사정권 시절, 야당 국회의원을 사상범이나 부패범으로 몰아 정치적으로 숙청하는 수법은 일상에 가까웠다.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이 국가를 위한 의정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였다. 당장 지금이라고 다를까. 노회찬 의원의 사례를 보자. 삼성 X파일 사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그는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갖가지 핑계를 들어 기소를 당했고, 결국 의원직을 상실하고 말았다. 부패 혐의 등에 대해서 일정 부분 손을 댈 수는 있겠지만, 야당 정치인을 향한 정권의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고로 우리가 바라봐야 할 핵심은, 국회의원이 얼마만큼의 돈을 가져가는지, 얼마만큼의 특혜를 가져가는지와 같은 자잘한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이 1억 3천만원 쯤의 가치를 한다면 그 정도 세비는 줄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해외 시찰을 갔을 때 비즈니스석 정도의 가치를 한다면, 비즈니스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아주 명쾌한 자본주의의 원리다. 특권의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특권을 주어야 한다.

 중점은, 지금의 국회의원들이 ‘특권의 가치를 가진 사람들’인가 하는 문제다. 국회가 ‘특권의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양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국회의원 300명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관리하고 책임지고 견제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이 방대한 일을 당연히 300명이라는 적은 숫자가 다 책임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국회의원은 한 명당 최대 아홉 명의 보좌진을 채용한다. 이들의 임금은 세금으로 지급한다. 그리고 국회 개혁의 중심에는 바로 이 보좌진 문제가 있다.

 어느 국회의원이 법안 하나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단순히 법안을 적어서 제출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선 법을 만들기 전에,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론조사를 두세 번은 돌려야 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겠지만, 국고 지원은 없다. 그리고나서 법안의 기초를 잡아야 하고, 그러면서 시민단체나 이익집단과도 꾸준히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공청회도 몇 차례 열어야 하고, 법안을 만든 다음에도 시민들의 의견을 꾸준히 들어봐야 한다. 법적으로 정제된 용어로 법안 문장을 완성해야 하고, 법전을 뒤져가며 이 법안이 다른 법과 충돌하지 않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동료 의원 몇을 모아 법안을 발의해야 하고, 본회의 통과까지 이어지려면 여러 정치인을 만나 법안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 와중에 사건이 터지면 국정조사도 해야 하고, 시즌이 돌아오면 국정감사도 해야 한다. 입법연구도 충실하게 해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시찰도 필수다. 필요가 있으면 해외에도 나갔다 와야 한다. 이렇게 완벽하게 일처리를 한다면, 그는 ‘특권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국회는 그럴 수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여론조사 돌리는 데 드는 수많은 돈은 모두 의원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고, 의원 한 사람이 다뤄야 하는 일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자료 제출도 제대로 하지 않는 정부를 상대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국정감사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일단 국가가 벌이는 막대한 양의 일을 의원 300명이 모두 검토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단순히 검토를 넘어서 사업의 효용성을 면밀하게 연구해야 하고, 그것도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이 일을 모두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정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공부한 뒤에 법안이 만들어지리란 자신을 누가 할 수 있는가. 애초에 국회의원 연봉으로는 여론조사도 제대로 몇 번 돌리지 못한다. 보좌진을 아홉 명이나 둘 수 있다지만, 그 보좌진을 아무리 닦달해도 이 모든 일을 완전하게 처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제대로 일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불리한 구조다. 공부하고 연구하려고 해 봐야 바닥까지 파헤칠 수 없는 구조다. 자기 돈을 의정활동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특권의 가치가 있는 국회의원’이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다.

 이 상황에서 한 국회의원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무엇인가? 법안은 정부에서 청탁한 것에만 적당히 이름을 걸고, 밖에서는 지역 유지들이나 만나면서 선거운동을 하는 게 가장 좋다. 돈이 들어가는 입법 연구활동 따위는 접어두고, 보좌진은 능력이 없어도 친인척이나 지인의 아들딸들 몇 채용하고 표를 긁어가는 게 더욱 현명하다. 주머니는 두둑해지고 당선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바로 이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국회의원에게 아홉 명 씩이나 되는 보좌관은 필요가 없다. 일정 관리하고 바깥에서 오는 연락을 받는 비서 한두 명이면 족하다. 대신 국회 안에 제대로 된 전문인력이 모인 기관이 있어야 한다. 의원이 법안을 만들고자 할 때 이들 전문 인력에게 의뢰를 하고, 의뢰를 받은 전문가들은 각종 연구나 여론조사를 통해 법안의 개선점과 활용 방안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입법 지원 기관이 만들어지고, 입법활동 뿐 아니라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에 있어서도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이 확충된다면, 일하면 일할수록 손해보는 국회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전문가의 채용을 국회의원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서 담당한다면, 보좌관 채용을 둘러싼 비리도 얼마든지 해소될 수 있다.

 국회의원 개인이 아니라, 국회 자체에 투입되는 예산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 전문가가 국회 안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이들이 의원 개인이 아니라 국회라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 이들이 의원의 활동을 보조하고, 의원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회의원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국회의원은 그 한명한명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다. 대의민주제를 실시하는 것은 의견을 들어야 하는 국민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전문 분야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법조계의 전문가지만, 어떤 사람은 IT 업계의 전문가고, 어떤 사람은 경제학의 전문가다. 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국회 안에 들어올 수록, 국회가 다룰 수 있는 업무의 폭이 넓어진다. 국회의 역량이 커진다.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도 있어야 하고, 대리운전기사 출신 국회의원도 있어야 한다. 택시 운전사 출신 국회의원도 있어야 하고, 식당 주인 출신 국회의원도 있어야 한다. 거리에서 배달하는 청년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도 있어야 하고, 가정에서 일하는 전업주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도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사람들을 국회라는 틀 안에 담으려면, 국회의원의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 특히 정치력이 아니라 실력이 있는 의원이 탄생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국회의원의 특권이 과중한지 그 여부가 아니다. 특권을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특권을 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이 ‘특권을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그 여부다. 그리고 지금의 국회는 ‘특권을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을 양산해내지 못하는 구조다.

 일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일할 수 있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일하면 일할수록 손해보는 국회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특권을 누릴 가치가 있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 내 전문 인력의 확충과, 국회의원 수의 확대를 통해서 이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국가를 이루는 3권 중 한 축인 입법권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 국가 존립의 근본을 이루는 이 기관에게 국민이 요구해야 할 것은 ‘특권의 포기’가 아니다. ‘특권의 가치가 있는 국회’를, 일하기 좋은 국회를, 능력 있는 국회를 요구해야 한다.

 망가져가는 정치를, 복원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출처: http://widerstand365.tistory.com/953





2016년 6월 16일 목요일

가덕 신공항은 부산 독자추진이 답이다

가덕신공항과 밀양신공항의 입지논란이나 객관적인 비교분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현실적인 선택의 문제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부산경제권 안의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지자체들이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총대는 부산이 매야 합니다. 더 이상 중앙정부를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부산, 김해, 거제, 양산 등 가덕신공항의 핵심이익을 함께 공유할 지자체들과 신공항추진단을 만들어서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합니다.

중앙정부의 결정은 어차피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방정부는 생존의 문제가 걸린 아주 절박한 사안입니다.

인천국제공항의 개항은 수도권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켰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경기도로 몰리고 신도시가 건설되고 인구가 집중되었습니다. 반면에 부산은 인구순유출을 지속적으로 겪고 있죠. 부산을 떠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이 경기도입니다. 통계가 말해줍니다.

글로벌 경제시대에는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한정된 자원을 뺏기지 않거나 빼앗아오기 위해서는 핵심 인프라를 갖춰야 합니다. 오사카가 간사이공항을 만든 것도, 상하이가 푸동공항을 건설한 것도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죠.

어차피 가덕신공항을 만들지 않으면 부산권의 항공수요는 중국이나 일본에 다 빼앗길 처지입니다. 유럽이나 북미 노선은 상당수의 수요가 이미 중국이나 일본의 주요 공항을 경유해가는 항공사들로 채워지고 있죠. 부산권의 항공수요가 충분하다는 것은 김해공항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형 항공사들이 직항노선을 만들고 싶어도 김해공항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개설을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신공항 건설비용을 정앙정부에서 대기를 바라고 있으니 더뎌지는 것입니다. 안됩니다. 지금은 부산이 독자적으로 신공항 건설에 나서야 할 시급한 상황입니다. 6조원의 돈을 투자하겠다는 외국계 자본도 있지 않습니까. 일부비용은 부산시에서 채권을 발행해서라도 마련해야죠. 360만 부산시민들이 참여하는 신공항 펀드도 가능합니다. 아니면 주식회사 가덕신공항을 설립해 투자자를 모으는 방법도 있습니다.

서병수 부산시장도 신공항에 직을 걸겠다고 약속했죠. 리더십을 발휘할 때입니다. 부산경제권의 미래라는 보단 큰 그림을 보며 결단해야 합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부산과 인근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하고, 문화 예술 관광 등으로 부산을 오고 싶어도 직항편이 없어서 한참을 둘러오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넘쳐나는 항공수요는 곧 돈의 흐름이 부산경제권으로 몰려든다는 의미인데 이 기회를 놓치면 결국 다른 경제권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신속하고 현실적인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입니다. 정치적 소모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최소한 10년 안에는 가덕신공항이 개항하도록 해야 합니다. 밀양신공항이 결정되어도 가덕신공항은 건설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중앙정부의 결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니까요.

부산의 생존전략은 부산 스스로가 결정해야 합니다. 20년 후에나 개항할 중앙정부 주도의 공항이 가덕도나 밀양이나 어느곳에 들어서든 느리고 느린 로드맵을 따라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중국 칭다오에는 이미 김해공항보다 큰 공항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항공수요를 내다보고 또하나의 신공항 건설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많이 늦은거죠. 중국의 속도를 보면 무섭습니다. 그에 비해 부산은 너무 느립니다.

중앙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지역 공항 건설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작은 땅에 파리만 날리는 지방 국제공항이 몇 개나 되는지 잘 알지 않습니까. 밀양신공항이 꼭 필요하다면 원하는 지자체들이 돈을 내어서 만들라고 하십시오. 엄청난 돈을 지방정부가 투자해서 이익을 못내면 파산하도록 그냥 두어야 합니다.

어차피 중앙정부도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발 지방정부의 대형 프로젝트에 개입하지 말기 바랍니다. 스스로 경제적 타당성을 계산해 신중하게 사업을 진행하도록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텅빈 국제공항이나 도로와 항만 등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부산은 스스로가 시급한 문제이므로 서둘러 건설에 들어가야겠죠. 경제적 타당성이나 투자가치 등은 이미 검증되었기 때문에 부산시가 책임있게 독자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2016년 6월 15일 수요일

헬조선, 언제쯤 벗어나나.

2012년 대선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이는 곧 여야를 뛰어넘는 한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담론으로 떠올랐다.

MB 정권의 실정과 경제 수구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던 새누리당조차도 강력한 경제구조개혁을 약속하며 선거는 여야 박빙의 승부 끝에 여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치권의 개혁실천 의지는 실종되었고 한국의 경제는 추락을 거듭하며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

경제발전의 혜택은 최종적으로 국민들이 누려야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최대 수혜자는 대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의 가장 큰 성장배경엔 정치권이 있었고, 이는 곧 성장만이 살길이라 믿었던 극한의 개발도상국 시절을 겪어온 정치와 경제의 깊고도 오랜 유착관계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이 작고, 인구는 많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기에 중소기업이 성장하기에 적합한 나라이지만 현실은 그렇지않다. 영세상인들과 중소기업들은 그들에게 적합한 경제활동을 하면서 대기업은 대기업이 할 수 있는 경제, 사회적 역할을 하면서 상생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대기업의 독식 구조는 중소기업을 크게 위축시켰고, 영세상인들을 고사 상태에 빠트리면서 극심한 경제 양극화를 초래하였다.

권역별 주요 거점상권엔 이미 여러 대형할인점들이 입점해서 재래시장, 영세상인들을 죽여왔고, 그것도 모자라서 동네 골목상권에도 대기업의 소위 ‘슈퍼슈퍼마켓’이 진출해서 싹쓸이 투망을 던지고 있다. 대형할인업체들은 자체 상표를 부착한 제품들을 생산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그 가짓수와 양도 점차 늘리고 있기도 하다.

대기업은 주요 상업아이템들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얼마 전엔 대기업이 2009년에 이어 또다시 미용실 사업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대기업의 프랜차이즈사업 진출도 동네 상권을 위축시키는데 기여했다. 대표적으로 대기업의 편의점, 베이커리 사업들도 동네 상인들의 경쟁력을 빼앗아 갔다. 그나마 그런 프랜차이즈사업조차도 사업본부의 슈퍼 갑 질을 통해 가맹점에게 주기적으로 고급 인테리어를 의무적으로 요구하기도 하고, 소위 ‘밀어내기’로 본사 재고를 대리점에 강제출고시키거나, 반품 규정을 아주 까다롭게 해서 대리점이 재고를 모두 떠안게 한다거나, 대리점의 영업구역을 보호해주지 않고 가까운 위치에 또 다른 대리점을 개설해준다거나 하는 상도덕을 벗어난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반대로 대기업이 직접 판매를 하는 경우에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고의적인 결제금 납부지연이나 불공정 계약서의 위법적 조항 때문에 아예 돈을 받지 못해 도산을 하는 경우도 생기고, 이미 거래 중이거나 신규 거래를 위한 중소기업의 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중소기업의 아이템을 훔쳐서 자체생산을 하는 얌체 짓을 일삼기도 했다. 대기업이 생산업체에서 받은 제품을 궤변적인 사유를 들어 이월상품이나 재고들을 생산업체에다가 대량반품해서 떠넘기는 사례도 있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맞서 값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도 대기업의 독과점적 판매루트와 경쟁하기도 힘들다.

이미 동네상권을 초토화시켜놓고서 뒤늦게 대형할인마트의 의무휴업이나 중소기업 적합업종들을 한시적으로 적용시키고 있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중재에 나섰지만 상인들은 여전히 외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다. 말로만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데 누가 믿겠는가. 모든 대기업이 다 그렇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들은 구조적으로 슈퍼갑의 횡포에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경제는 성장해도 그것은 곧 재벌의 부의 축적으로 이어졌고,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제대로된 일자리를 만들지 않고 인턴제도, 비정규직 제도만 남발하여 노동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중 자영업 비율이 세 번째로 높다. 그것은 자영업자가 살기좋은 나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안정된 일자리가 없다는 의미이다. 자영업자들의 폐업률 또한 살인적이다. 5년간 폐업률은 창업에 비해 84.3%에 달하고 1년에 약 86만명이 폐업을 한다.

직업에 귀천이 있어도 먹고사는 건 지장없던 시절이 지나고 뭘해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한숨들만 들려온다. 이것이 ‘헬조선’의 현실이다.

경제는 곧 정치와 직결된다. 정치와 경제가 유착해서 발생한 문제는 정치가 풀어나갈 수 밖에 없다. 결국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유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선거에서 올바른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경제수구적 정치집단이나 친재벌인사들, 반경제민주화에 앞장서 온 재벌기업출신인사들로 포진된 정당, 대기업의 검은 돈을 만져본 이력이 있는 경제관료출신자가 당의 유력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정당이 아닌, 경제문제에 가장 공을 들이고 중소기업을 위하며, 재벌개혁의지가 가장 강한 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마저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겠지만.

유권자가 정치를 견제하고, 바꾸고, 정치가 경제를 바꾸어야 하는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