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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3일 일요일

87년체제 극복이 먼저다

개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나 역시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진행되는 개헌 논의는 설득력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성사되기 위해선 절차와 진정성이 중요한데, 최근 개헌 논의는 절차도, 진정성도 갖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 행정권력과 입법권력 간의 견제 및 균형을 위해 개헌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에는 헌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정부와 국회로 대표되는 정치사회가 무능한 데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특권 내려놓기 등을 솔선수범하지 않는 국회와 경제민주화 등 여러 공약을 파기한 정부가 개헌을 제안하든 그 제안을 비판하든 일련의 과정은 오히려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비춰지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헌법은 이른바 ‘87년체제’의 핵심을 이룬다. 87년체제란 1987년 6월 항쟁으로 열린 민주화 시대의 사회체제를 말한다. 산업화 시대의 사회체제인 ‘61년체제’가 냉전ㆍ개발독재ㆍ무정형의 시민사회ㆍ공동체주의 문화에 기반해 있었다면, 87년체제는 탈냉전ㆍ시장만능주의ㆍ조직화된 시민사회ㆍ개인주의 문화로 특징지어진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87년체제의 그늘을 극복해야 할 과제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다는 점이다.

87년체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치에 있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체제, 정당정치와 운동정치의 기묘한 공존, 강고한 진영 논리와 이와 연관된 이념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87년체제가 이룬 독재국가에서 정상국가로의 전환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87년체제는 동시에 지역주의 정치의 고착화, 사회ㆍ경제적 민주화 프로그램의 부재, 이념투쟁을 포함한 사회갈등의 과도한 분출을 가져왔다.

여기에 더하여 주목할 것은 87년체제의 리더십이다. 87년체제는 크게 ‘3김(김영삼ㆍ김대중ㆍ김종필) 시대’와 ‘포스트 3김(노무현ㆍ이명박ㆍ박근혜) 시대’로 나눠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반독재ㆍ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화시대의 적자(嫡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산업화시대의 적자,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시대의 적자였다. 특히 포스트 3김 시대의 리더들이 내건 ‘낡은 정치 청산’, ‘경제 살리기’, ‘국민대통합’은 1987년 이후 30년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무엇을 이뤘고 무엇을 성취하지 못했는지의 빛과 그늘을 선명히 보여준다.

87년체제는 길을 잃었다. 아니 87년체제는 자신에게 부여된 역사적 임무를 다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87년체제를 통해 우리사회는 민주주의로의 전환과 공고화를 모색해 왔다. 하지만 이 민주화시대는 현재 국민 다수의 사회ㆍ경제적 삶의 위기라는 역설적이고 낯선 결과에 대면해 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일각의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더라도 우리 민주주의가 처한 엄중한 현실을 생생히 증거한다.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 ‘고용ㆍ교육ㆍ주거ㆍ노후의 불안을 덜어주는 민주주의’야말로 ‘포스트 87년체제’의 과제임은 분명하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헌의 문제제기가 국민적 정당성을 얻으려면 바로 이런 87년체제가 갖는 명암에 대한 성찰적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87년 헌법이 갖는 제도적 약점보다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은 정부와 국회가 자신에게 부여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87년체제가 만든 지역주의 정치와 관성적인 우파 대 좌파의 구도 안에 오히려 안주하고 혁신을 거부해 온 게 우리 정치의 솔직한 민낯이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되든지 개헌은 이뤄져야 한다. 2016년 4월 총선 전까지 당분간 선거 일정이 없는 현재의 시기가 개헌에 적합한 때라면, 느닷없이 개헌 이슈를 꺼낼 게 아니라 우선 어떤 ‘포스트 민주화 시대’를 열 것인지, 이를 위해 어떤 비전과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개헌보다는 정부와 국회의 자기혁신을 포함한 87년체제의 극복이 먼저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17년 4월 3일 월요일

87년 체제 각 정부 평가

본문에서는, 87년 체제 이후 각각의 대통령과 그들의 정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견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87년 체제의 역사는 결코 오래 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이해관계와 포장에 의해 왜곡이 발생해있다. 여기에 더해 각자 가진 사고방식 및 철학에 의한 평가의 차이도 크다.

 내가 생각하는 관점은 다음과 같다. 정치는 결과로 말해야 하며,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현실적 이익을 줘야 한다. 아집과 불통으로 국민들의 삶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잘 한 정부부터 서술해볼까 한다.

1위) 노태우 정부

: 노태우 정부는 많은 이들이 군사정권의 연장선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노태우 정부가 87체제 최고의 정부였다고 본다. 또한 그는 실질적인 한국 민주정치사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의 피상적인 인식보다 노태우 정부는 훨씬 눈부신 업적을 쌓았다. NLL논란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고, 한반도에서 핵을 없애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끌었으며 (당시 주한미군은 핵을 가지고 있었다.),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가운데 온갖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었다. 공산권이었던 중국 및 러시아와의 수교도 이 때 이루어진 것이다. 대북정책은 북조선을 고립시키는 동시에 관계개선에도 성공하였다. 평시 작전 통제권의 환수도 추진하여 김영삼 때 완료되었다.

 민주주의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일차적인 책무는 외교와 국방에 있다. 원칙적으로 볼 때,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사회를 개선시켜나가는 것은 의회의 몫이 더 크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노태우는 좋은 대통령이었다. 엄청나게 정세가 급변하던 시대에 그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 또한 이 시기에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수준 또한 크게 발전하였다. 노태우의 시대에 한국은 최초로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발돋움한다. 장준하의 명예회복과 지방자치제의 부활도 그 때 이루어졌다. 여성 권익도 신장되었다.

 여러 시대적 불행 위에 있었지만, 노태우는 인품이 훌륭한 편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유순하고 어른스러워 화도 잘 내지 않고, 친구들의 싸움도 중재했다고 한다. 이런 성격은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유지되었던 것 같은데, 그의 그런 성품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87년의 민주화를 결단한 것 또한 그의 공이 크다.

 이른 80년대 초에도 그는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이긴 했지만, 김종필 등 구 군부 세력 등에게 예의를 갖춤으로 추가적인 갈등을 무마하였다. 또한 안하무인인 전두환의 하대와 핍박에도 불구, 인내와 웃음으로 위기를 이기고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장관시절엔 상사 눈치를 보느라 퇴근을 못 하는 관례를 없애도록 한 개혁적 인물이기도 했다.

 비록 불법정치자금 수수 문제로 불명예스레 무기징역까지 선고받고 지금은 병상에 누워있지만, 사실 금융실명상태가 아니었던 그 시대에 불법정치자금은 당연시되었던 관례였고, 실제 후임인 김영삼에 의해 정치적으로 제거된 면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법정치자금에서는 김대중도 노무현도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또한 노태우는 전두환과는 달리 추징금을 꾸준히 납부해오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완납상태다.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역사적으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 본다. 보안사 사찰 사건 등은 분명한 과오이지만, 그로부터 한참 지난 시대에도 그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 시대를 감안하면 꼭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한편으로 인천공항과 1기 신도시 또한 그의 계획이다.

 여담인데 두 명의 노씨 대통령 중 실제 많은 업적을 세운 노태우는 인기가 가장 낮고, 온갖 과오를 저지른 끝에 자살한 노무현은 최고의 인기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치는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노태우가 아니었다면 민주화에 얼마나 더 많은 피가 필요했을지 모르고, 어쩌면 신군부와 기존 군부의 투쟁으로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을 수도 있었으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히기 전에 붕괴할 수도 있었고, 기존 공산권 국가 및 북조선과의 관계도 훨씬 나쁘게 자리 잡을 수도 있었다. 이룬 업적과 행동으로 보면 노태우야 말로 민주화 이후 가장 현실 속에서 진보적이고 상식적인 대통령이었다.

2위) 김대중 정부

: 굉장히 좋지 못한 상황에서 출발하였지만, 나는 김대중 정부가 노태우 정부에 비하면 여러 번 오판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대중은 분명 대정치인이고 국민에 대한 애정을 가졌으며 여러 방향으로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쉬운 말로 김대중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진정성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와 전통적 제도주의에 양다리를 걸쳤다고 평하고 싶다. 내가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제도주의의 면, 즉 IT인프라를 깔고 벤쳐를 육성하며 나름대로 유동성을 강하게 공급한 면 등을 들고프다. 그는 IMF에 대해 충분히 패기 있는 선택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호박씨 정도는 깠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신자유주의적인 사상과는 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망조와 오판 속에서 그나마 국민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 일조하였다. 스스로 강경한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었던 김영삼이나 노무현과는 달랐다.

 김대중의 시대 때, 소기업들은 마지막 꿈을 꿔볼 수 있었다. 현재 큰 기업이 된 신생 기업들이 그 때 탄생하였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와는 분명히 대조되는 점이다. 나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세트로 묶는 게 그릇된 인식이라 본다. 둘은 공통점이 별로 없다.

 그의 한계는 그의 사고방식에 있다.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에 적합한 인물일 것이다. 여성 권리도 크게 신장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그는 다소 통찰력과 과감성이 떨어졌다. 그는 IMF의 요구를 묵살하고,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 같은 카드라도 활용하여 좀 더 배짱 있게 재협상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IMF의 강경한 요구들을 수용하면서 신자유주의적인 흐름으로 나라를 이끌고 만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노력은 충분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내가 보기엔 신자유주의에 대한 오판이 많이 섞인 탓이 크다. 또한 햇볕정책도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이 충분한 인물도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잘 못 받아들인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한편으로 그의 정권을 미화하는 부류들도 많지만, 그 또한 왜곡이 많다. 일례로 그의 정권 때 국정원 불법도청 사태가 터진다거나, 아들인 김홍업이 ‘최규선 게이트’라는 사건에 걸려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는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진영논리에 빠져있는 이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서는 안 된다.

3위) 이명박 정부

: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손해를 안겨준 면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나 김영삼 정부보다는 낫다. 나름대로의 현명한 선택으로 국난을 넘기기도 했고, 어려운 시대에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을 다한 면도 있다. 비록 좀 어설픈 면이 있었지만, 잘 해보려고 한 것에 비해 과도하게 욕먹는 측면도 분명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딜레마 중 가장 큰 것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비록 이명박은 뉴라이트에게 지지를 받아 신자유주의를 말로 앞세우기는 했지만, 그는 사실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고 본다. 또한 극우파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명박은 나름대로 꽤 평화주의적이고 겁이 많았던 것 같다. 다만 그의 그런 성정은 대북관계에 좋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집권 내내 이명박은 자신의 사고방식과 주변 인물들의 사고방식 사이에서 갈등을 빚었던 것 같고, 인사문제에 시달렸다고 본다. 그는 평균적인 정치인보다 꽤 험한 인생을 살아왔고, 현장에서 단련된 감각이 있었다. 그런데 말을 잘 못하고 덕이 부족한 데가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과도한 충성경쟁과 미숙함도 더더욱 문제를 야기했다고 본다.

 사실 그나마 그의 현실 감각 덕에 리먼 위기는 최소화되었다. 그는 관치금융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중소기업을 지원했고, 그 나름대로 진짜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위해 노력했다. 비록 다 잘 된 건 아니고, 일부 오판으로 영생토록 욕먹을 짓도 하긴 했지만 그나마 이명박이 좋은 결단을 내린 탓에 한국은 금융위기를 어느 정도 잘 넘길 수 있었다. 깨시민들은 노무현 정권이 돈을 많이 쌓아놔서 잘 넘겼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명박이 좋은 선택을 해서 잘 넘긴 거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4대강 같은 뻘짓에 더해, 친형인 이상득계를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면서 (여기엔 이재오의 낙선이 큰 영향을 줬다. 괜히 중간에 이재오가 돌아온 후 잡음이 줄어든 게 아니다. 이상득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이재오였기 때문이다.) 측근비리가 심해졌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정국이 꼬인 상태로 5년을 보내는 비극을 겪었다. 그래도 한국은 이명박 집권 시기에 한 단계 더 성장했으며, 비교적 금융위기를 잘 넘겼다는 면에서 차선이나마 다한 정부라 평할 수 있겠다.

4위) 노무현 정부

: 깨시민들에 의해 태평성대였던 것처럼 포장되는 면이 있지만, 노무현 정부는 최악의 정부였다. 그나마 내가 김영삼 정부보다 나은 평을 하고 있는 건 IMF는 안 불러와서다. 그거 빼면 노무현 정부가 87체제 최악의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총체적인 좌충우돌을 저질렀다. 기존 민주당에 대한 공격을 강행하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의 정적들도 너무 처절하게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여당을 파괴하고 삼권분립을 침해하여 탄핵소추를 의도한다거나, 심지어 그렇게 새로 만든 여당도 임기 중 파당으로 치닫게 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그를 지지했던 세력을 배신하고 소위 ‘좌측 깜빡이를 키고 우회전하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고통과 절망을 주었다. 87체제 아래 아마도 유일하게 군부대까지 투입한 과격한 시위진압이 있었고, 폭력진압으로 사망자까지 나왔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시민 노빠들은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덮고, 그를 국민을 위했던 성군으로 역사왜곡을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과정부터 뒷돈 부정을 저질렀던 정부로, 이미지와 실제 사이의 간극이 극단적으로 큰 정부이기도 하다.

 그의 집권 시기 동안 서민들의 삶은 크게 붕괴하였고, 국제적인 활황과 부동산 폭등에 맞물려 GDP는 크게 올랐지만 경기가 가라앉고 잠재성장률이 크게 저하되었으며 기조적인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또한 그는 의도적으로 정적이 속해있던 현대그룹을 제거하고 노골적으로 삼성의 편을 들었으며, 온갖 민영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친재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으며, 통찰력과 소통이 부족했고 오만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의 일화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성품이 바르거나 개념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릴 때 잘 사는 친구의 가방을 몰래 칼로 찢어발긴다거나, 20대엔 지나가는 아낙네에게 성희롱을 한다거나, 노출을 한다거나 하는 문제행동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의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성품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고쳐지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나 공격적으로 행동해서 온갖 적들을 만들 걸 보면. 적어도 정치인은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 고건의 발목을 잡으면서 자신의 편을 거의 모두 잃고 만다. 결과적으로 그는 죽음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후 친노-깨시민-노빠 세력은 근본주의적 종교집단의 행태를 보이며 역사왜곡을 강행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이 너무 흥행하는 걸 보면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5위) 김영삼 정부

 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세 대통령에 대한 별명은 각기 ‘돌, 물, 깡’ 이라고 한다. 셋 다 그들의 언행과 품성을 잘 나타내는 단어다. 깡03은 집안의 재력과 패기와 깡으로 민주화를 이룩하고 그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머리가 나쁘기로 소문나 있기도 하다.

 3당 합당 이후 땡깡으로 민자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평생의 라이벌인 김대중을 꺾은 그는 이후 노태우에게 처절한 칼날을 휘두른다. 이런 뒤통수치기는 이후 한 때 그의 적자 격이었던 노무현이 그대로 반복하기도 하는데, 손을 잡을 때는 미리 상대의 성품을 봐야 하는 법이다.

 흔히들 김영삼의 업적 중 하나회 척결을 높이 평가하는데, 그 속사정은 나름 복잡하다고 알고 있다. 굳이 보자면 경북 기반의 하나회를 제거한 대신 경남 기반의 모 조직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는 식으로 들었다. 물론 그 조직의 문제 정도가 하나회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한국 군대도 문제 많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김영삼이 기존 군부를 제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좋은 군대를 만든 것도 결코 아니다.

 그는 박정희가 한 건 다 문제가 있다는 듯 행동했다. 그래서 매우 강력한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었다. 개방, 개방, 개방... 그의 신자유주의 행보에 견줄 수 있는 정부는 노무현 정부뿐이다.

 그의 무리한 금융경제개방과 치적을 쌓으려는 태도는 결국 IMF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비극을 가져온다. 전후 45년간 한국인들이 피땀으로 일군 자본과 기득권의 정말 많은 부분이 그에 의해 무너졌다.

 IMF는 한국 경제에 어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에 왔던 비극이 아니다. 그저 정부가 관리를 잘못하고, 섣부른 금융개방을 추진하면서 위기에 안일할 때 어느 정도의 비극이 찾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세계적인 사례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IMF를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던 한국 경제에 대한 필연적인 심판’ 정도로 포장하려 들고, 이런 경향은 역시나 신자유주의적인 친노 깨시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IMF가 오기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 경제는 성공신화 속에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시절의 호황기를 한국은 아직도 되찾지 못했다. 한국 브랜드나 기업은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김영삼 이후 한국이 이룬 성과는 한국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 마무리하며

 사실 안타깝게도 민주화 이후 87년 체제에서, 각각의 정부들은 대체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 출신 인사들의 정치가 훨씬 성공적이었다. 물론 군바리 정치가 수많은 문제점과 단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성적표를 놓고 보면 군인들이 더 잘한 면이 너무 많다. 박정희 이전의 이승만과 윤보선은 최악의 대통령들이었고.

 정말 좋아할 수는 없지만, 일베충들이 ‘민주화’를 부정어로 사용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하위 중 하위문화에서 말하는 것들은 대체로 현실을 반영하는 면이 있다. 그것이 바람직하다거나 옳다거나 그런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인 기본 현상 중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익보다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유교 선비스타일 수꼴들이 너무 많은 것을 망쳐 놨다. 민주주의는 그런 게 아니다. 민주주의의 민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자기 맘대로 전용하면서 생겨난 문제가 정말 크다.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주고 돈을 벌게 해줘야, 그리고 재미있게 해줘야만 하는 제도다.

 각 정부들의 실패엔 미국 유학파들이 앞뒤 분간을 못한 탓도 크다. 뭐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배운 대로 하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망쳐 놨다. 그들은 미국에서 배운 걸 한국에서 또 그대로 가르치고 발언하면서 문제를 엄청나게 키워 놨다. 어디에나 공부만 잘 하는 돌대가리 멍청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좋은 제도이지만, 반드시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상 수많은 민주주의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허울뿐인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곳도 있다. 나는 모든 정치체계는 근본적으로 각자의 권익과 안전을 위한 것이라 여긴다. 그것이 잘 지켜지는 체계가 좋은 체계다. 각각의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를 냉정하고 바르게 평가할수록, 정치는 더 성공적으로 나아갈 확률이 높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영논리와 아집과 각종 관념의 울타리들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87체제의 각종 실패들은 시민들의 삶, 특히 젊은 사람들의 희망을 너무 많이 빼앗아갔다. 그 결과 한국은 눈부신 성장을 하는 동시에 큰 잠재성장률 하락을 겪고 낮은 출산율을 가진 국가가 되었으며, 너무 많은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크게 위협받기 마련이다. 깨시민과 일베충이라는, 서로 적대적이지만 너무나 많은 부분이 닮은 파시스트들이 온라인 세계를 온통 잠식한 것도 정치의 실패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정치의 성공이란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2017년 4월 1일 토요일

헌법학자들이 본 개헌 "87년 체제 한계"vs "애꿎은 헌법 탓"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임기내 개헌 추진 발언을 놓고 헌법학자들의 주장은 엇갈렸다. 87년 체제의 한계를 거론하며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에서부터 헌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정치권이 문제라는 상반된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권력구조에만 초점을 맞춘 개헌론에 대한 우려섞인 시각도 상당했다.

◇기본권 강화·권력분산 등 재검토 필요 

개헌에 찬성하는 헌법학자들은 87년 체제의 한계를 거론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현재 헌법에는 정부 기본권에 대한 비전이 없다”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는 기본권의 성격을 띠는 37조1항은 있지만 명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또한 “87년 이후 정보화사회가 급진전됐고,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면서 “알 권리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또한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모성보호에 대한 규정을 구체화하고 아동의 권리, 노인의 권리에 대한 독립적인 기본권 권리를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보다 성숙한 정치문화를 고려했을 때 이제 87년 체제의 낡은 권력구조를 재검토해볼 시점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 김 교수는 “국민들의 의사를 잘 반영하는 게 의원내각제”라면서 “특히 각 지방정부 대표들로 상원의원이 구성되어 있는 독일식 상·하원제의 경우 지방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지방분권 강화 및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정책적 공조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법부의 독립성 강화도 이같은 맥락에서 제기된다. 현행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대통령이 3명, 의회에서 3명, 대법원장이 3명을 추천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9명 중 정부여당 몫이 7.5명에 이른다.

대법관 임명도 마찬가지다. 현행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3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1명을 추려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하게 되어있지만 위원회 10명 중 6명이 당연직으로 구성돼 대법원장 권한이 막강하다. 사실상 대통령이 사법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인 역량 부족 ..‘헌법 탓만’

반면 정치인들이 애꿎은 ‘헌법 탓’만 하고 있다는 쓴소리도 적지 않다 . 제왕적 대통령 문제와 관련, 헌법만 제대로 이행해도 논란은 최소화됐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게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 및 해임건의권이다. 이는 헌법에 명시돼 있지만 형식적인 권한일 뿐 실질적으로는 청와대에서 모든 인사를 결정한다. 또 선거법 개정을 통한 중앙권력 집중 현상을 완화와 지역주의 폐해 해소로 의회에서도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권력 집중 현상의 경우 입법기관인 의회가 제대로 견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정당이 지금과 같이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다면, 의원내각제를 바꾼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대통령제와 다를바 없다”고 비판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정치인들이 정치를 못하면서 책임을 헌법에 미루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처럼 헌법이 정밀하게 잘 되어 있는 곳도 없다. 헌법을 잘 지키고 관행과 정치역량으로 충분히 메워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 개편 방향에도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는 안정된 정당 정치가 필수적”이라면서 “대통령제에서도 이렇게 정치가 불안한데, 국가 전체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7년 3월 30일 목요일

문제는 87년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 체제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대선불출마를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국가적 혼란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대한민국의 실패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본심은 다음날 24일 JTBC뉴스룸에 직접 출연하여 손석희 앵커와 대화를 나누면서 드러났다. 겉으로는 총선불출마, 대선불출마를 외치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면으로는 또 다른 형태로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잡힌 것이다.

손 앵커는 김 전 대표에게 그가 대선불출마와 함께 개헌을 거론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김 전 대표는 이번 사태가 제왕적 대통령 구조 탓에 일어나 일이기 때문에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손 앵커는 그것이 김 전 대표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같다며 개헌을 고리로 탄핵 찬성 의원을 모은다는 소문이 있고, 같은 맥락으로 내각제 개헌으로 가면 총선 불출마도 제고할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는데, 이에 김무성 전 대표는 확실하게 부정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총선, 대선불출마가 결코 순수한 의도만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다른 생각이 있음을 얼떨결에 밝힌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의 허를 찌르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 그것이 얼마나 날카롭고 예리했는지는 현재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소위 '김무성의 동공지진'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 김무성 전 대표는 당황했고, 거듭해서 그건 아직 생각을 안 해봤다고 할 뿐이었다.

허약한 내각제 개헌의 근거

사실 김무성 전 대표가 이야기한 내각제 개헌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정치권 일각에서 끊임없이 주장되어 왔고,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내밀면서 많은 의원들이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근거다.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작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87년 체제는 비록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대통령 한 명에게 권한을 몰아주다 보니 부정부패가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고, 그 극단적인 형태가 이번 사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권력을 좀 더 분산시키기 위해 내각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그들.

과연 그럴까? 현행 대통령제를 내각제로만 바꾸면 작금의 사태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정부패를 벌이는 것은 구조적으로 많이 있어왔지만, 최고 권력자가 일개 민간인을 위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 이번 사건은 결코 대통령제의 한계로 설명될 수 없는 해괴망측한 사건이다.

많은 이들이 황당해하고 외신들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100년 뒤 사극이 만들어지면 2016년이 가장 인기 있는 시대배경이 될 것이라 할까.

따라서 이번 사태를 근거로 내각제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번 사태가 일반적이지 않은 만큼, 그 원인을 현행 대통령제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보다 우리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누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었는지 밝혀야 한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무자격자가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번 사태를 규정짓는 핵심이 되어야 하며 개헌을 하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박정희 체제

대통령으로서의 깜냥을 지니지 못한 민간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세력. 결국 이들은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큰 이익을 봤던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정치인들과 재벌, 보수언론 등이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세운 뒤 그 뒤에서 지금까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다.

지금이야 박근혜 대통령이 이 정도인지 몰랐다고 변명 하지만, 이미 그들은 아주 오래전에 혹은 최소한 2007년 MB와의 경선을 거치면서 이미 박근혜의 실체를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야당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녀를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안위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의 권익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과 국정을 좀 농단한들 어떠한가. 어차피 5년 임기제인 만큼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물러날 것이고, 다음에 또 그들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다른 대통령을 선출하면 되는데.

국가와 재벌, 그리고 언론의 결탁. 영화 <내부자들>에서도 보았듯이 이는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 박정희 시대 때부터 고착화된 시스템이기도 하다. 정부가 근대화를 주장하며 특정 재벌을 키우고, 재벌은 공공의 이름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대신 정권에 비자금을 대주고, 언론은 그 모든 것을 눈감은 채 국민들의 관심을 호도하는 대가로 제4부로서의 권력을 가지는 권력의 카르텔.

따라서 현재 우리가 이번 사태를 맞아 청산해야 할 것은 87년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 체제이다. 비록 박정희는 1979년 죽었지만 그 시스템은 아직까지 굳건하다. 여전히 권력은 소수에 의해 독점되고 있으며, 그것은 앞서 언급한 카르텔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계층 간의 격차가 커지면서 오히려 더욱 견고해 지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기'가 힘든 만큼 그들만의 리그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내각제도 무용지물이다. 혹자들은 내각제가 되면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한이 줄어들고 그만큼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지금처럼 권력과 재벌, 언론이 한 통속이 되어 권력을 나누고 있는 현실에서는 오히려 내각제를 통해 기존 권력의 카르텔이 강화되고 시민들의 목소리가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내각제를 택하고 있는 일본을 보자. 현재 일본은 1945년 패전 이후 몇 년을 제외하고 나서는 계속해서 보수 세력인 자민당이 정권을 잡고 있다. 이는 결코 일본인들이 보수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본이 선택하고 있는 내각제의 특성 상 지방 토호나 정치 엘리트들을 청산하기 어렵고, 따라서 그만큼 사회변혁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는 이 시기에 유독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작금의 사태를 단순히 권력구조 때문이라 호도하면서 기존의 박정희 체제를 고수하고자 하는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책임은 나몰라라 하며 자신들의 살 길을 모색 중이다.

다시 개돼지가 되지 않으려면

개인적으로 현재 우리 눈앞에 드러나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보수 세력들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특히 노무현 대통령을 증오하였는데, 요즘 그들이 해왔던 짓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왜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 싫어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생각해보자. 대통령의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말도 안 되는 짓거리들. 국가의 대사인 올림픽을 사적인 수익구조로 개편하고,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한 무기 거래를 통해 특정인의 배를 불리고, 심지어는 대통령이 재벌들을 불러들여 최순실의 딸, 정유라 친구의 부모 회사까지 챙겨주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 과연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번에만 자행됐을까?

아니다. 그것은 박정희 시대 때부터 쭉 있어왔던, 구조적인 관행이었다. 그들은 국가를 당연히 자기들 것이라 생각하고, 일반 국민들을 진짜로 개돼지 같이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이란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

상고 출신에 변변한 인맥도 없는 이가 이 나라의 최고 엘리트라던 이회창 후보를 꺾고 오로지 국민들의 지지만으로 최고 자리에 올랐다. 김대중 대통령이야 아주 오랫동안 정치를 한만큼 부득불 인정한다고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그것도 아닌, 보도 듣도 못한 인물아닌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자기들 것이라고 철석같이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며 일갈하는 서민 출신 대통령이라니. 그들에게는 노무현 대통령 존재 자체가 최악의 재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돌고 돌아 다시 변곡점에 서 있다. 이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박정희 체제를 청산하여 다시 노무현 대통령 같은 이를 배출할 것이냐, 아니면 기존의 체제 안에서 한 줌도 되지 않는 이들에게 다시금 개돼지 소리를 들어가며 세금을 모아 바칠 것이냐. 지금 우리의 실천이 앞으로의 대한민국 100년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87년 체제를 운운하지 말라. 우리는 현재 박정희 체제라는 구악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2017년 3월 28일 화요일

‘87년 체제’를 넘기 위한 과제

중국에 불파불입(不破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파괴가 없으면 새로운 건설도 없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촛불혁명은 구체제에 균열을 내는 데 성공했다. 불립불파(不立不破)라는 말도 있다. 건설이 없으면 파괴도 없다는 뜻이다. 구체제에 균열을 내어도 새 체제 건설에 실패하면 죽 쒀서 개 주는 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탄핵 결정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음의 질문을 서둘러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체제를 건설할 수 있는가? 여러 측면에서 말기적 증상을 보이는 소위 ‘87년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전환시키는 길은 무엇인가? 87년 체제는 1987년 헌법을 제도적 기초로 하기 때문에 개헌이 이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안이 체제전환은 차치하고라도 정치제도라는 면에서 어떤 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체제전환의 핵심적 내용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수단과 관련한 논의만이 분분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제기되는 개헌론에 정치적 사심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단과 경로에 대한 논의에 앞서서, 체제전환의 목표와 과제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개헌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개헌의 핵심내용은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다. 지금의 87년 체제를 더 인간적이고 활력이 있는 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수구세력의 정치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동안 절차적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서구 정당정치의 모델을 한국정치에 적용시키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분단체제로 인해 우리의 정치현실은 서구와 다르다. 수구세력은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절차도 무시했고, 민주주의는 큰 위기에 빠졌다. 그 위기는 ‘광장의 정치’를 통해 극복되고 있다. 우리가 참여하고 목격하고 있는 광장의 정치는 정치의 낙후성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의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그렇지만 수구세력의 통치기반에 대한 제도적·인적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또 다른 정치적 퇴행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두 번째, 불평등·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실행에 나서야 한다. 경제영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확충은 물론이고, 재벌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시스템 건설을 공론화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재벌이 주도하는 한국경제의 성장모델이 붕괴 과정에 접어들고 있다는 조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중앙집권은 우리나라의 활력을 억누르는 주요 원인이다.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중앙으로의 과도한 권력집중이다. 비대한 중앙권력의 문제가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 문제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연방제 수준으로 분권화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제도개선 없이는 어떤 권력구조를 택하더라도 권력의 과도한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치적 불균등·불균형 해소도 중요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이 시급하다. 국회의원 선출에서 비례성을 강화하고 주요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통해 제도권 정치가 다양하고 폭넓은 민의를 대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87년 헌법 논의가 정치적 독재를 청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앞으로의 개헌논의는 불평등·불균형 해소를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

세 번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및 국제 협력을 진전시켜야 한다. 현재처럼 남북이, 북·미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쉬운 과제는 아니다. 이 의제는 수구세력에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민주개혁세력에 불리하다고 생각할 일만은 아니다. 대북정책에 대한 수구적 노선과 태도가 안보를 오히려 위협하는 상황을 낳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가 국민 여론 속에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기들을 잘 활용하면 안보담론을 평화, 안전, 생명 담론으로 재구성해 갈 수 있다. 이 작업의 진전에 따라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새 체제로의 전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장을 위해 재벌에 의존하거나 분단에 대해 체념하는 태도 등과 같은 구체제 중독에서 벗어날 각오를 다져야 한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전환기에 서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122112015&code=990100#csidxb7dbc1a737feb0591ac43c7d9685f3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