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최치원
물론 쇠락한 조정이 몇가지 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고변의 세력이 삽시간에 무너지는것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건 여러 이권을 놓친 고변으로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분노한 고변은 소매를 떨치고 크게 욕을 하더니, 이내 자신의 막료 중 한 사람을 불러들였다.
"고운(孤雲)을 부르거라!"
저 동방 신라 출신의 지식인이었던 고운 최치원은 이 시기 고변의 막료로 있었던 참이다. 고변으로서도 최치원의 글 재주는 꽤 인정하고 있었는지, 그는 조정에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는 항의의 표문을 최치원에게 맡겼다. 이 표문은 최치원이 썻지만 대체적인 내용의 초안은 고변의 의지일 터이다. 표문의 말들은 신하가 임금에게 하는 말이라기엔 하나하나가 겸손하지 못했다. 실상 내용의 핵심은 고변의 불만을 늘어놓는 것에 불과했다.
"폐하께서는 보잘것 없는 신을 채용하지 않으셨는데, 이는 진실로 보잘것 없는 신이 폐하에게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고변을 쓰지 않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당나라 조정의 잘못이지, 고변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 말하였다.
"간신은 아직 깨닫지 못했고, 폐하께서는 아직도 미혹되셨으며, 종묘가 타서 없어지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셨고, 황실의 능묘가 파헤쳐져서 훼손되는 것을 아파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또 말하였다.
"왕탁은 패한 군사의 장군일 뿐이며, 최안잠(崔安潛)으로 말하자면 촉에서 탐욕으로 이름을 더럽힌 인사일 뿐입니다. 어찌 이 두명의 문관이 강한 적군을 그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말하였다.
"오늘날 페하게서 채용한 사람들은 신의 생각으로는 우두머리의 신하로부터 아래로는 그 비장들까지, 모두 소신이 앉아서 사로잡을 수 있는 작자들입니다."
또 말하였다.
"백 세대를 두고 한을 품은 신하를 갖거나 손톱으로 자리를 긁어댄 수치를 남기지 마십시오. 도둑떼가 동쪽 땅에서 일어나고, 유씨가 다시 일어선다면 어찌 예전의 재앙이 다만 지난 일이겠습니까?"
손톱으로 자리를 긁는다는 것은 옛날의 경시제(更始帝) 유현(劉玄)이 나약하여 신하들을 조회에서 보지 못하고 손톱으로 자리를 긁었다는 이야기를 말함이고, 유씨로 인한 재앙은 진나라의 마지막 군주 자영(子嬰)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선 직접적으로 황제를 협박하는 수준이었다. 또 말하였다.
"오늘날 현명한 인재들은 들에 있고 되려 사악한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하여 폐하를 망국의 임금이 되게 하고 있는데, 이들이 세우는 계책이 장차 어떻게 되어 버릴 것입니까?"
이 오만불손한, 사실상의 협박을 받은 희종은 정전에게 명령하여 반박하는 조서의 초안을 잡게 했다. 이 조서는 최치원이 올린 표문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형식이었다.
"이익에 얽매이기로 한다면 소금에서의 이익이 그대의 손 안에 있었고, 군사를 주관하는 일을 말하자면 도통으로 권력을 담당하여 수도의 북쪽, 수도의 서쪽, 신책군에 속한 여러 진이 그대의 손에 있었다. 모두 그대가 지휘하는 아래에 있었으니 그 통제하는 권한을 알 것이고, 또 귀하기로는 사도 노릇을 했고, 영광스럽기는 태위 노릇을 했는데, 지금 그대를 채용하지 않았다고 말하다니, 그렇다면 어떤 것을 일컫어 '채용했다' 고 할 것인가?"
또 말하였다.
"짐이 경에게 병권을 오래 맡겼지만 으뜸 되는 흉악한 도적을 소탕하지 못했고, 천장에서의 싸움에서는 포위망에서 황소 무리를 놓쳐 장안이 공격당하게 했다. 그대의 군사는 아직까지도 출정하지 않았으니 충신들이 희망을 잃었고, 용사들은 이를 비웃었으니 그러므로 나라에서 으뜸가는 신하를 발탁하여 저 거대한 도적을 죽여 없애려는 것이다."
또 말하였다.
"종묘가 불타 없어지고, 황실의 능묘가 파헤쳐져서 훼손된다면 이것은 과연 누구의 허물일 것인가?"
또 말하였다.
"그대가 말한 '간신이 깨닫지 못하였다' 는 말을 누가 납득하겠는가? '폐하가 오히려 미혹되었다' 는 말은 짐으로써는 감당하지 못하겠다."
또 말하였다.
"경은 오히려 황소를 천장에서 놓쳤을 뿐인데, 어떻게 앉아서 제장들을 사로잡겠다는 말인가?"
또 말하였다.
"경이 말하기를 유씨가 부흥한다고 하였는데, 누가 그 괴수인지를 모르겠다. 경은 짐을 유현과 자영에게 비교하였으니 얼마나 유감스러운 일인가?"
또 말하였다.
"하물며 하늘의 걸음걸이가 아직은 기울어지지 않고, 황실의 기강은 오히려 반듯하며, 해와 달과 별이 어둡지 않고 백 가지의 법도가 아직 존재하며, 군신 간의 예의와 위아래의 명분은 의당 준수되어 아직은 무너지지 않았다. 짐이 비록 부족한 사람이지만, 어찌 이리도 가벼이 모욕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정도로 강도 높은 언사가 오고갔다면,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반역자' 로 선포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적으로 고변은 반역자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이후 고변은 형식적으로 조정에 바치던 여러 물품마저 바치지 않고 거리를 두게 된다. 어찌되었건, '황소를 잡는 칼' 로써의 고변의 역할은 이렇게 끝나게 되었다.
다만 결전을 앞두기 전에, 당나라로써는 찜찜한 부분이 한 가지 있었다. 장안의 황소를 토벌을 하려면 후방이 든든해야 하건만, 서천절도사의 치소가 있는 공주(邛州) 지역에서는 천능(阡能)이라는 인물이 반란을 일으켜 1만이 넘는 세력이 약탈을 자행했던 것이다. 이에 조정의 진경선 등은 수하 양행천을 파견하여 이를 제압하도록 했으나 오히려 양행천은 전공을 올리지 못했다. 공을 세우지 못해 벌을 받을까 두려워진 양행천은 멀쩡한 양민들을 수백여명이나 습격하여 전쟁 포로라 속이고 조정에 바쳤다. 조정에서는 그들의 사정을 묻지도 않고 모두 베어렸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 중에서는 노인과 아이, 그리고 여자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죽어가면서 절규를 내질렀다.
"나는 바야흐로 밭갈이를 하고 삼베를 쌓고 있었는데, 관군이 갑자기 촌으로 들어와 우리를 포로로 묶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들은 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사태가 이런 판이니 조속한 해결이 날 리가 없었다. 결국 조정에서는 또다른 인물을 파견헀다. 그의 이름은 고인후(高仁厚)로, 1만 반란군을 상대하기 위해 조정에서 고인후에게 딸려보낸 병력은 겨우 500명에 불과했다.
그 고인후의 병력이 아직 출발하기 전의 일이다. 비록 수백이라 하여도 군대가 모여 있으면 군영이 만들어지기 마련인데, 그런 군영 주변에는 여러 장사치들도 있었다. 이들은 군인들에게 국수나 죽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팔았는데, 게중 어떤 장사꾼은 새벽부터 한낮에 이르기까지 서너차례에 걸쳐 끊임없이 군영을 들락날락 했다. 아무리 장사를 위한 행보라고는 하지만, 슬쩍 보기에도 수상쩍어 보이는 작자였다. 이에 병사들은 그 장사꾼을 잡아서 조사를 했고, 과연 이 사람은 천능이 보낸 첩자였다.
적의 첩자라면 고문하여 정보를 얻어내고 목을 베어 죽이는것이 일반적인 행보일 것이다. 그러나 고인후는 이 첩자의 결박을 풀고 따뜻한 말로 위로를 했는데, 처참하게 죽을 뻔한 상황에서 이런 대접을 받은 첩자는 감동하여 말했다.
"저는 촌에 사는 백성일 뿐인데, 천능이 제 부모와 처자를 옥에 가두고 말하기를, '네가 정탐을 하고 돌아온다면 너의 집안 사람들은 살 것이고, 그렇지 아니하면 모두 죽이겠다.' 고 했습니다. 본시 저는 이런 짓을 하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고인후는 이 첩자를 다독이며 말했다.
"너의 사정을 알게 되었으니 어찌 내가 차마 너를 죽일 수 있으랴? 지금 너를 풀어줄 것이니 가서 네 부모와 처자를 구하거라! 다만 천능에게는 이렇게 말하거라. '고인후는 내일 출발하는데, 거느리고 가는 병사는 고작 500명에 그칠 뿐이고 많은 병사는 없었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말한 고인후는 다시 뒷말을 덧 붙였다.
"그러나 내가 너의 집안 사람들을 살려 주었으니 너도 마땅히 나를 위해 영채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거라. '고인후 공은 너희들을 불쌍히 여기시는데, 너희들은 모두 양민이거늘 도적들에게 통제를 받아 부득히 이러는 것으로 생각하시는다. 고인후 공은 너희들을 구원하여 죄목을 깨끗하게 씻어주려고 하니, 공이 오면 너희들은 무기를 던저버리고 영접하며 항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공은 너희들의 등에 '귀순' 두 글자를 쓰게 하여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게 해줄 것이다. 공께서 죽이고 싶어하는 자는 오직 천능, 나혼경, 구호승, 나부자, 한구 다섯 사람 일 뿐이다.' 라고 말이다."
첩자는 헐레벌떡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모든 백성들의 마음에 있는 일이온데, 공께서는 이를 모두 헤아리시고 우리를 사면하려 하시니, 감히 누가 그 명령을 듣지 않겠습니까? 한 입이 말하면 그것이 백으로 전달 될 터이고, 백이 천으로 전하면 냇물이 솟구치고 바닷물이 끓어서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공께서 이를 때즘 되면 백성들은 반드시 전부 나와 어린아이가 자상한 어머니를 보는 것 같이 할 것이고, 천능은 외롭게 되어 있을 것이니 그를 쉽게 사로잡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첩자를 보낸 고인후는 이튿날 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현지에 도착하였다. 현지의 사령과은 고인후를 영접했는데, 이를 본체 만체한 고인후는 군대의 참호와 목책을 둘러다 보고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천능은 본래 수자리를 서던 인물일 뿐이고, 그 무리는 모두 밭을 갈던 백성일 뿐이다. 헌데 한 부의 군사를 다 쓰고도 1년이 걸리도록 잡을 수 없었다. 지금 이 곳의 참호와 목책을 보니 겹겹으로 만들어 우리처럼 빽빽하니, 너희들은 이를 이용해서 편안히 먹고 자며 일부러 도적을 키워 공로를 채우려고 하였구나!"
그렇게 말하며 현지 지휘관을 처형시키려 하자, 같이 따라온 감군이 애를 써 좋은 말을 하여 간신히 이를 말렸을 뿐이다. 고인후는 이 참호에는 자신이 데려온 불과 500명의 병사들을 남겨 놓아 지키게 하고는, 현지의 병사들은 모두 모아 천능을 토벌하러 이동했다.
이 무렵 천능은 고인후가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수하 나혼경을 파견하여 병사 1천명을 매복하여 고인후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인후는 이 복병을 눈치채 오히려 이들을 역으로 포위하고는, 수하 부하 중에 한 사람을 적지에 파견하여 어제 고인후가 첩자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하게 하였다.
반란군의 병사라고 하지만, 그 태반은 억지로 끌려나온 농부들 일 뿐이다. 귀순을 받아주겠다는 말을 들은 농부들은 크게 기뻐하며 서로 다투어 갑옷을 내던져 버리고 항복을 받아 달라고 절을 했는데, 그 행렬이 마치 산이 무너지는 듯 했다. 고인후는 나아가서 이들을 타이르고 어루만져 주면서 등에데 '귀순' 이라는 글자를 써 주어 아직 항복하지 않은 무리들에게 소식을 전하게 하니, 결국 모든 무리들은 서로 항복하지 못해 안달이 날 정도였다. 4천명에 가까운 병사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귀순하자 군대를 이끌고 온 나혼경은 서둘러 도망쳤지만 결국 잡히고 말았다.
전투 한번 제대로 치루지 않고 나혼경을 사로잡은 고인후는 다음날에는 또다른 부장 구호승을 공격하러 나섰다. 고인후는 나혼경 부대의 깃발을 내걸고 나혼경 부대의 사정을 말하며 귀순을 권했고, 이에 구호승의 부대도 산이 무너지듯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놀란 구호승은 그들을 칼로 찌르며 탈주를 막으려 했지만 백성들은 되려 기왓장과 돌을 던져 구호승을 사로잡아 고인후에게 바쳤다. 이렇게 되어 항복한 숫자가 5천여명이었다.
또 다음 날에는 부장 한구에게도 비슷한 작전을 구사했다. 한구의 부대도 삽시간에 탈주자가 발생하여 무너져 내렸는데, 한구는 참호에 들어가서 숨었지만 결국 끌려나와 살해되고 말았다. 전투 이후에 관군이 한구의 영채에 불을 지르려 하자, 고인후는 이를 잠시 제지했다.
"항복한 사람들이 먹을 양식이 있을 것이다."
고인후는 영채에서 물자와 양식을 전부 꺼내와 항복한 병사들에게 나누어 준 후에야 불을 질렀다. 반란군의 오명을 벗고 양식까지 받은 백성들은 서로 웃고 즐기며 흥겨워 했다.
그 다음날, 고인후는 항복한 백성들을 앞 세워 나부자를 향해 쳐들어갔다. 이미 소식을 들은 나부자는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영채를 버린 채 천능에게로 도주했다. 천능과 나부자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응책을 고심했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고, 고인후는 기세를 놓치지 않고 강행군을 하여 천능의 영채를 포위했다. 놀란 천능은 급한대로 우물에 몸을 던지려 하다가 수하 병사들에게 사로잡혔고, 나부자는 자살을 했는데 수급이 베어지고 말았다. 병사들은 나부자의 수급과 포로로 잡은 천능을 데리고 고인후에게 귀순하며 말했다.
"백성들은 억울함을 짊어진 지 오래 되었으도 이를 호소할 곳이 없었습니다. 첩자가 돌아오면서부터 백성들이 목을 길게 늘이고 공이 오기를 기다린 것이 마치 1년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공을 만나니 마치 구천에서 해를 본 것과 같고, 이미 죽었다가 살아난 것 같습니다."
그러자 승리에 기쁨에 도취된 관군, 항복하여 목숨을 건진 천능의 병사들,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헤아려주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한 농민들은 모두가 얼싸앉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환호성은 그칠 줄을 모르고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고인후는 지난 1년간 극심했던 반란을, 단 한번의 제대로 된 전투도 없이 6일만에 진압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심을 읽어 무력을 제압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제 모든 준비는 마무리 되었다. 882년 12월, 마침내 이극용이 이끄는 군단은 하중에까지 도달했는데, 혈혈단신의 몸으로 타타르 땅으로 도주했던 이극용의 군단은 이 시점에 이르러 무려 4만으로 불어나 있었다. 이는 혼란한 시기의 군벌 세력으로서 이극용의 존재감을 말해주고 있다.
이 이극용의 군대는 특이하게도 모두가 검은 옷을 입었다. 수만에 달하는 병사가 검은 옷을 입고 말에 탄 채 이동하는 모습은 상대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는데, 사람들은 이 이극용의 군단을 아군(鴉軍), 즉 갈까마귀 군단이라고 불렀다. 황소의 무리들은 이 갈까마귀 군단의 위용을 보자 겁에 질려 이렇게 말하는 판이었다.
"갈까마귀 군단이 도착했으니, 우리는 마땅히 그 칼끝을 피해야 할 것이다!"
코 앞인 하중에 나타난 4만의 병사란, 장안의 황소 입장에서도 대단히 부담스러운 전력이었다. 황소는 생각 끝에 자신의 칙사를 파견하여 이극용에게 뇌물을 주었고, 내심 배신을 종용했다. 이극용은 황소가 준 이 막대한 뇌물은 선뜻 받아들여 여러 제장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렇지만 이극용이 황소 군단에 항복한 것은 아니다. 뇌물은 뇌물대로 받은 그는 황소의 조서를 불태워 버린 것이다.
이극용은 무너져가는 황소에게 항복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남의 아래에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한달 뒤인 883년 1월, 황소는 자신의 동생이었던 황규를 파견하여 이극용 세력을 한번 쳐보도록 했지만, 황규는 처절하게 패배를 당하고 도망쳤을 뿐이다.
이렇게 황소를 압박하던 이극용은, 곧 결전의 순간이 도래했음을 깨달았다. 장안에서 숨을 죽이며 계속된 압박을 당해봐야 황소에게는 아무런 미래가 없었다. 그런 황소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번의 승부 뿐이었다. 이에 이극용은 하중, 역정, 충무군 등 여러 병사들과 힘을 합쳐 대규모 병력으로 주둔하게 되었다.
883년 2월 15일, 과연 황소의 군단은 장안의 두꺼운 문을 열고 개미들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엄청난 숫자의 군단을 이끄는 인물은 황소 집단의 최측근, 상양이었고 그 총 병력은 무려 15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이 15만의 군대는 양전피(梁田陂)에 주둔하게 된다.
다음날, 15만의 황소 군단과 이극용이 이끄는 연합군은 마침내 만당(晩唐) 시기의 가장 거대한 전투 중 하나를 치루게 되었다. 압도적인 숫자의 황소 군단 위를 무시무시한 갈까마귀 기병대가 가로질렀고, 천지가 요동치는 듯한 장렬한 전투가 오후 4시에 이를 무렵, 15만에 달하던 엄청난 숫자의 병력 대부분은 처참한 시체가 되어 땅에 쓰러지거나 혹은 포로로 잡혀 참수되고 있었다. 그 시체들은 무려 10km가 넘게 늘어져 있을 정도였다.
이 시점에서 황소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저 사타의 이극용이 마침내 300년 당조를 구원하게 된 것이다. 그가 언제까지 구원자로서의 책무를 짊어질 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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