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1958)
인간의 본질은 예상치 못한 일을 하는 것이므로, 모든 인간의 탄생에는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 수반된다.
인간은 주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모든 자연과 사물을 알 수는 있어도, 인간 자신에 대해서는 결코 충분히 알 수 없다(아렌트의 말대로 “자신의 그림자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우리가 무엇인지는 우리의 신체로 드러나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우리의 말과 행위에서 드러난다. 어떤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그에게 ‘동조’하거나 ‘맞서지’ 말고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내보면 된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함께 살아가면서 단지 정신적·물질적 지원만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본성이 드러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순전한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행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드러내는 행위 주체이다. 한 사람이 최고로 드러나는 것을 우리는 ‘영광’이라 부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타인에게만 온전히 드러날 뿐 본인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비록 인간사에서 드문 일이긴 하지만 비할 데 없이 강력하게 자기현시를 부추겨 그가 누구인지를 가장 극명히 드러낸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인지에 대해, 즉 상대의 장점과 단점, 업적과 실패, 죄에 대해서는 완전히 초탈한 경지까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정은 우리를 타인과 결합시키거나 분리시키는 중간 영역을 파괴한다.”
우리의 행위 능력은 우리 모두의 삶에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여, 희망과 믿음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하다. 믿음은 왜 정당화될까? 우리가 만일 인간이 행위를 통해 변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깨닫고 나면, 자연히 그들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간 종 전체를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우리에게 남긴 아름다운 역설은 오직 (본질적으로 비세속적이고, 사적이며, 비정치적인) 사랑을 통해서만 공적 영역에 진정한 영향을 미칠 만한 활력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출처]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1958)|작성자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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