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국어학계의 쇄국
한반도용 진화 이론이 따로 있고, 캐나다용 진화 이론이 또 따로 있다면 어떤가? 일본의 중력 현상을 설명하는 중력 이론이 따로 있고, 호주의 중력을 설명하는 중력 이론이 또 따로 있다면, 그건 또 어떤가? 즉, 서로 다른 체계에 기반한, 한반도용 물리학이 따로 있고, 프랑스용 물리학이 따로 있다면 어떠한가? 어떠하긴 뭘 어떠해?! 말도 안되는 소리지 - 물리학이면 다 같은 물리학이지, 한반도용 중력 이론이 뭔 말이당가요?!
그럼 이건 어떤가? - 한국어를 위한 국어학이 따로 있고, 영어를 위한 영어학이 따로 있다. 위의 진화/중력 이론들과는 달리, 왠지 그럴듯하게, 혹은,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여겨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언어학을 모르는 것이고,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가 언어학 전공자라면, 언어학을 뭔가 잘못 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아니 ... 그거랑 그거랑은 다른 것 아닌가요? 지구상엔 서로 다른 언어들이 많잖아요, 그니깐, 서로 다른 언어학들이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요? 흠 ... 그럼, 지구상엔 생명체가 하나뿐이라서 공통된 진화 이론이 있는건가? 모르긴 몰라도, 언어의 갯수보단 생명체의 종류가 훨씬 더 많지 않나?
물론, 한국어는 국어학 이론으로, 영어는 영어학 이론으로, 이렇게 각기 다른 이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하나의 이론으로도 그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은 이론일 것이다. 그럼, 문제는, 그런 이론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런 이론이 (실제로) 있는가 하는 것인데.
생물학의 보편성이란 것이, '모든 동물은 코구멍이 두 개, 모든 식물은 잎이 있다' 식의 표면적/현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DNA 를 일컫듯이, 언어학에서 말하는 '언어 보편적'인 것 또한, '모든 언어에는 전치사가 있다' 식의 현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원리'들을 일컫는데, 그런 보편 원리들을 추구하는 '이론'을 일러 Universal Grammar (UG) 라 부르고, 그 UG 의 최신(?) 틀을 일러 Minimalist Program (MP) 라 부른다. 해서, 위에서 던졌던 질문, '그런 이론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런 이론이 있는지' 에 대한 답은 Yes 가 되며, 따라서, UG/MP 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어를 위한) '국어학', (영어를 위한) '영어학'이라는 말과 개념은, 한반도 전용 중력 이론, 독일 전용 중력 이론과 진배없는 어불성설이 된다.
허나, 국어학계, 즉, 주시경, 최현배로 대표되는, 소위 '전통' 국문법의 맥을 잇(는다 하)는 이들 가운데는, 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UG/MP 를 배격/거부하는 이들도 제법 있다. 그 이유인 즉, UG/MP 는, (한국어에는 맞지 않는) 서구 언어에 기반한 '외래' 이론이요, 따라서, 영문과에서나 하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비유컨대, 상대성 이론은 독일 태생 물리학자의 이론이니, 한국 고유의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고, 따라서, 거부/배격하는 꼴과 매한가지니, 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라 했다 - 학문의 쇄국 정책인가?
무릇 학자라면, UG/MP 의 존재를 두고 두 가지 방법을 취할 수 있다. 그 첫째는, MP 원리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어 현상을 보여 MP 를 비판하는 것이요, 더 나은 두 번째 방법은, (MP 가 그러하듯이) 한국어를 너머 다른 언어들에도 공히 적용될 수 있는, 그런 보편적 원리에 기반한 다른 이론 틀을 선보이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이론 틀의 설명력은, 최소한 MP 만큼이거나, 더 뛰어나야 할 것이다. 이에, 전자에 해당하는 시도들은 제법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후자에 대한 노력은, 현재까지도 그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다 - 그들이 말하는 '전통 국문법/국어학'이란, 그 시작부터 현상의 서술을 목표로 하는 '기술(descriptive) 작업'이었고, 지금 현재까지도 그러한 '기술' 수준에서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으며, 또, 나아 가고자 하는 의지의 싹 조차도 찾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에겐 나아갈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 왜냐면, 애초에 '기술'이 '목표'니까)
국어학에 몸담은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위와 같은 인식과 풍조가 국어학계에 만연하고, 또 그와 같은 학문의 쇄국이 후학에게 대물림 되는 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언어학 선수의 등장은 둘째치고, 국어학의 미래 또한 지금과 마찬가지로 줄곧 어두울 것이라 사료된다.
* 위와 같은 언어학 쇄국, 그리고 기술 언어학(Descriptive Linguistics) 중심 경향은 중국 언어학계에도 만연하다. 겉으로 보기에 '언어학'이라는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실은 근본적인 목표가 서로 다른 두 언어학, 즉, 기술 언어학과 설명 언어학을 하고 있는 셈이다.
Mentalese// 출처:국어학계의 쇄국(http://mprogram.egloos.com/583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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