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5일 일요일

[선비욜롱의 1차대전쯤 이야기] 프랑스의 명장, 인디언 이름을 하사받다

Plenty Coups (1848-1932)

까 마귀족 추장  Plenty Coups("수많은 성공"혹은 "수많은 성취")는 수많은 서부의 북미 원주민들이 몰락해가는 상황에서 뛰어난 통찰력, 혜안과 지도력을 선보이며 미국을 싸우기보다는 협력하는 방향을 통해서 상당한 영토를 보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외에도 뛰어난 성품과 지혜덕에 원주민과 미국인 모두에게 존경받게됩니다.

1921 년, Plenty Coups은 북미 원주민들의 대표로 알링턴 국립묘지에 새로 안치된 무명용사의 묘지의 헌정사에 참석해서 자국어로 짧게 연설한 뒤 원주민 전투모와 쿠 시틱을 헌정했습니다. 이 헌정사에 여러 1차대전의 유명인사들이 참석했는데 그중 연합군 총사령관 페르디낭 포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Plenty Coups의 연설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은 포슈는 Plenty Coups를 직접 만나서 자신도 원주민 이름을 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제의에 Plenty Coups는 "만약에 우리 땅에 발을 딛는다면 마땅히 원주민 이름을 주겠다 (You step foot on my land and then you will be given an Indian name.)"라고 답했습니다.

Plenty Coups은 얼마못가 이 만남에 대해 잊어버렸지만 포슈는 잊지 않고 Plenty Coups에게 직접 까마귀족 보호구역을 방문해서 원주민 이름을 받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악수하는 포슈와 Plenty Coups.

듣보잡으로 전락한 오늘날과 달리 당시 포슈는 그야말로 "주의의 수호자""현대 문명의 파수꾼""지금껏 가장 큰 규모의 군사를 지휘한 남자"등 수많은 찬사를 듣는 져명한 유명인사였습니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포슈가 죽은 1929년에는 포슈의 역사적 위치를 논하는 컬럼은 아예 율리우스 시저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언급했으며 엥발리드에 안치된다는 기사에서는 나폴레옹과 포슈를 프랑스의 영웅으로써 거의 동수로 놓고 논했습니다.

"현대 문명의 파수꾼"이 서부 까마귀족 보호구역을 직접 방문해서 인디언 이름을 받겠다는 이색적인 소식은 당대에는 꽤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21년 11월 28일, 까마귀족 보호구역에 도착한 포슈일행은 먼저 리틀빅혼 전투가 벌어진 커스터 전장을 둘러보고 그후 Plenty Coups가 지도하는 까마귀족 환영식을 참석해서 "추장중의 추장 (Chief of all chiefs)이란 뜻의 이름을 받은 것은 물론 명예추장으로 인정받아 까마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포슈는 환영식에 흔쾌히 응하며 당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음에도 모든 이벤트들을 참석하는 의욕을 보였습니다. 위의 담뱃대는 평화의식의 Plenty Coups와 포슈가 서로 3번 빨았다고 합니다.

기차역에서의 포슈와 Plenty Coup의 만남. 화질로 봐선 당대 영상의 일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까 마귀족 원주민들도 포슈의 방문을 좋게 봤는지 포슈가 이벤트를 참석한 자리를 포슈 공원(Foch Park)으로 개명해서 환영식을 기념하도록했으며 (다만 지금은 잊혀지거나 없어진 모양입니다), 1971년에는 까마귀족이 관광객 유치차원에서 유럽을 방문했을 때 환영식 50주년을 기념해 엥발리드를 찾아가서 포슈의 무덤도 방문했습니다.

 
둘이서 찍은 투샷. 표정이 굳어보이지만 당대 영상을 보면 원주민 전투복을 받고 웃는등 신기해하는 모습이 다수입니다.

포 슈가 젊었을 시절 수단의 유명한 통치관 갈리에니나 마다가스카르에서 공병대로 활약한 조프르와 달리 식민지복무를 거부한지라 인종차별주의자였는지 알길이 없지만 (사실 처칠보다 20년이나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인데 최소한 지금 기준으론 인종차별주의자에 속한다고 보는게 당연합니다) 이때 Plenty Coups와 흔쾌히 안수하거나 환영식의 일부라지만 거리낌없이 같은 담뱃대를 빠는 의식까지 거행한 것을 보면 최소한 인종문제를 가지고 악수를 거부하는 부류는 아니라는게 확실합니다.

그외에도 다른 포슈의 일화들을 찾아보면 이러한 호탕한 면모가 상당히 돋보이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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