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자들은 왜 진화론이 나쁘다고 할까? 진화론은 그냥 평범한 과학이론에 불과하다. 공산주의도 히틀러도 모두 진화론 탓이라는 식의 주장을 반복하지만 실제로는 어설프고 황당한 착각이나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종교 전쟁이 역사의 거의 전부인 유럽의 역사는 뭐가 되는지? 왜 텔레비전의 모든 고대 역사물에 대부분 ‘전쟁 이야기’가 등장하는지? 진화론만 없어지면 전쟁이 없어지고 세상에 평화가 이루어질 것 같이 허풍을 떠는 창조론자들은 사실 조금 우습기까지 하다.
진화론을 비난하면서 왜 천문학은 비난하지 않을까? 지구가 둥글다거나, 하늘의 별이 사실은 태양계나 은하수를 형성하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이론은 나쁘지 않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건 우리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생각하게 해서 존재가치를 낮추지 않을까? 중세 유럽성직자들은 실제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지만 당연히 그런 종교관과 과학비난은 틀렸다는 게 밝혀졌고, 이런 어떤 과학이론에 대해서 좋고 나쁘고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검색으로 찾아낸 어느 창조론자의 허접한 진화론 비난 주장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http://visionch.com/bbs/board.php?bo_table=edu_qna&wr_id=15
“과학에서 가치, 존엄성 등은 논외의 대상이다. 논외의 대상이란 과학이 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역시 논외의 대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학이 그것을 논외(論外)로 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러한가치와 존엄성이라고 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데에 이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수많은 세월이 지나는 동안 어찌어찌하다보니 변화된 변화의 산물이다. 뾰족한 돌맹이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둥그런 조약돌이 된 것과 같이 인간은 그저오랜 세월의 산물일 따름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가치나 존엄성이 저절로생기는 법은 없다 .. 아, 진화론자들이여!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있으며, 인권은 어디서 나오는가?”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대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창조론자들의 ‘무작위한(랜덤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나쁘다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1.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우연의 산물로 오랫동안 진화한 끝에 나타났다.
2.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존재목적도 가치도 없다.
---> 그러니까 이런 결론을 내리는 진화론은 틀렸거나 나쁘다.
사실은 1에서 2로 연결이 안 된다. 전제가 빠졌기 때문이다. 위 논리가 성립되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가 먼저 필요하다.
0. 우연으로 출현한 것에는 존재목적도 없고 가치도 없다.
그런데 이 전제는 과학이 아니다. ‘존재목적’이라든가 ‘가치’는 과학에서 따지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창조론자도 주장할 정도의 상식이다. 즉, 무슨 말인가 하면 위 전제는 종교 이야기이지 과학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창조론의 진화론 비난은 전제까지 포함해서 0-1-2 로 이어지지만, 실제 진화론(과학)에서 말하는 건 1 하나에 불과하다.
0. 우연으로 출현한 것에는 존재목적도 없고 가치도 없다. (종교)
1.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우연의 산물로 오랫동안 진화한 끝에 나타났다. (과학)
2.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존재목적도 가치도 없다. (종교)
그렇다면 위 전제는 정말 그렇게도 확실한가? 이런 전제는 어떨까?
0-1.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우연의 결과가 한 번도 아니고 수 없이 겹쳐진 결과 나타난 것은 그것만으로도 존재의의가 있고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이 전제가 맞으면 당연히 위 2는 틀린 게 된다. 물론 이 전제가 절대로 맞으며 따라서 진화론은 좋다는 (창조론 같은) 멍청한 주장은 하지 않겠다. 단지 창조론자들이 생각하는 전제 외에 이러한 전제도 가능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건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인간과 생명의 소중함을, 존재가치를 주장할 것이고 거기에 무슨 과학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주가 탄생해서 지금까지 ‘나’라는 존재는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다는 과학적 ‘사실’이 있다. 안드로메다은하가 너무도 거대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더라도 우주 전체에서 본다면 먼지 한 알에 불과하고 있어도 없어도 티도 나지 않는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 존재에 불과하지만 결국 잘 생각해 보면 안드로메다은하나 ‘나’나 마찬가지로 미미한 존재이고 또 마찬가지로 우주에 단 하나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은하가 거대하고 지구가 조그맣다는, 또 인간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정한 ‘크기’의 기준이다. 플랑크톤이든 세균이든 바이러스든 인간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것들로 다 똑같이 여겨지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런 걸 생각한다면)
인간의 소중함을, ‘나’의 소중함을 ‘진화론 공격’으로만 확인 할 수 있다는 창조론자들의 생각은 사실 너무 슬프다. 자기와 침팬지가 다르다는 걸 그렇게도 납득하기가 어려운가? 진화론을 믿으면 (머리에 든 게 없는) 요즘 젊은이들은 다 타락하고 정체성을 잃어서 동물같이 행동한다고? 청소년과 젊은이를 위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핑계로 댈 뿐 모두 타락하기 쉬운 머리에 든 게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이들의 가식과 건방짐도 용서하기 어렵다. 진화론이 없으면 아이들이 해파리나 생쥐나 고양이나 거북이처럼 행동하고 인간이란 사실을 잊을까? 해파리나 생쥐나 고양이나 거북이는 ‘창조론’을 믿기 때문에 다들 자기 정체성을 깨닫고 다른 동물로 혼동하지 않는가?
창조론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은 뭔가 그럴듯하게 어려운 용어들을 섞어가며 일반인들을 세뇌하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너무나도 ‘슬프고 허전한’ 내용이다. 아무런 깊이도 고뇌도 진실도 느껴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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