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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0일 일요일

과학과 종교간의 대화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과학과 종교간의 대화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그동안 미국사회에서 과학 對 종교라고 하는 폭 넒은 주제 아래 논의 되었던 것들을 정리해 보면 두가지 중요 과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지난 수십년간은 "과학이 과연 진화론이 창세기의 창조기사와는 상치되는 것이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의 비난을 견디어 낼 수 있을것인가?" 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였다. 지난 수년동안에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 또는 I.D.라고도 함)이 대두되면서 창조론은 새로운 각광을 받아 왔다. I.D.란 진화과정에서 분명하게 나타난 부분들 보다도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과학적인 용어로 설명하려고 시도 한 것으로 지난 12월 연방재판소가 학교에서 가르치기에는 부적절한 의사(疑似pseudoscience)과학이라는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는 혜성처럼 언론매체의 각광을 받아 왔었다. 그리고 미국 과학계는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같이 가르쳐야 한다는 보수적인 크리스쳔들의 주장에 무척 시달려 왔든게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상황이 바뀌면서 공수(攻守)의 역활이 비뀌었다는 것이다. 요즈음의 화두는 " 종교가 과연 과학의 발전을 견디어 낼 것인가?"하는 것이다. 종교와 과학간의 이러한 논쟁은 물론 다윈 이전부터 있어 왔지만 지적설계론에 반발하는 과학자들과 인간경험의 본질을 지도로 그려내고 수치로 측정하며 한발 나아가 아에 바꾸어 놓을수 있는 능력까지도 그들의 과학적인 훈련(discipline)을 통해서 향상시킬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과학자들에 의하여 反 종교적인 입장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뇌촬영 사진들이 정신(영혼)은 분비선이나 연골등과는 독립되어 있다고 보는 종교적인 개념들에 도전하면서 의지나 감정의 생리적인 위치를 선명하게 그것도 칼러까지 곁들여 보여주고 있다. 뇌 화학자들은 환상을 보는 성자(聖者)들과 심지어는 예수의 어떤 황홀경의 상태에 영향을 끼쳣을 수 있는 어떤 내적 불균형상태를 추적하고 있다. 이전의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진화론적 심리학 분야에서는 신(神)이 개입되지 않은 이타심과 심지어는 신과는 관계가 없는 종교심에 대한 이론까지도 만들어 내고 있다. 우주론에 대한 다양한 가설등은 우리가 사는 우주는 한 무리의 우주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수 있으며 운좋게도 환경이 갑자기 좋아져서 신의 섭리 없이도 생명체가 갑자기 생겨났을수도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만약 그 가능성이 1억분지 1이라고 하드라도 300억의 우주가 존재한다면 그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는가?)

로마캐토릭의 Christoph Schonborn추기경은 신앙에 도전하는 이들을 '과학(지상)주의' 또는 '진화론'의 열렬한 추종자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학이 하나의 세계관과 하나의 시금석으로 종교를 대치할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험관을 흔드는 사람들이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기독교 극우파들이 행사했던 부시행정부의 과학정책에 대한 영향이나 9/11에서 표출된 테로리스트들의 극단적인 신앙과 '지적설계론자'들의 주제넘은 주장에 그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멸감을 느끼고 '전례없는 분노'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과학과 종교는 서로 보완하기 보다는 서로 대치되어 왔다고 주장하며 Yale대학의 심리학자 Paul Bloom은 '종교와 과학은 항상 충돌할것이다"고 말할만큼 격화되어 가고 있다.

요즈음 서점에는 신과 과학과의 사생결단의 싸움에서 과학의 승리를 선포하고 신앙 가운데 내재하는 진실성마저도 무시해 버리려는 과학자들의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The God Delution(하나님 망상)이란 책을 출판한 Richard Dawkins를 들 수 있다. 지금 5주째 New York Times 베스트셀러(11월 현재 8위)에 올라있는 이 책은 제목 자체가 그의 입장을 분명하게 들어내고 있다. 신앙이라는 것을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비판하는 저자는 다윈의 이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의 이번 저서는 최근 출판된 일련의 무신론자들의 저서들 가운데 하나일뿐이다. 2004년에는 Sam Harris라는 신경과학 전공의 대학원생이 쓴 The End of Faith(신앙의 종식)라는 책이 출판(40만부 인쇄)되었으며 그 후속편으로 쓴 96페이지짜리 Letter to a Christian Nation(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이란 소책자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봄에는 Tufts대학 철학교수인 Daniel Dennett가 쓴 Breaking the Spell:Religion as a Natural Phenomenon(魔力 깨부스기-자연현상으로서의 종교)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는데 베스트셀러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공공분야에서 많은 논란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들에게 정면으로 반대하여 신학적으로 분명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반대론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사실상 과학에는 별 관심이 없는자들이 대부분이며 그들의 성경에 대한 입장은 확고부동하여 양자간에 거리를 좁힐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TIME지에 의하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우리는 양쪽 입장을 다 원한다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의 장족의 발전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도 안식일에는 과학도 겸손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MRI와 기적을 동시에 원한다. 우리는 입장 차이가 본질적으로 너무 적대적이어서 토론에서 아무런 결론을 얻을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줄기세포와 같은 어려운 문제들에 대하여 토론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Dawkins와 같은 거장과 균형을 맞추기위해 종교적인 확신을 가지면서 과학계에서도 괄목할만한 업적을 이루어서 과학과 신은 조화를 이루며 사실은 과학도 하나님의 것(도구)이라고 권위있게 주장할수 있는 과학자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과학자들중 한 사람으로 Stanford대학의 생리학자인 Joan Roughgarden교수를 들수 있다. 그는 최근 Evolution and Christian Faith(진화론과 가독교 신앙)란 책을 출판하였는데 그녀는 진화생태학의 개념을 성경의 구절들을 곁들여 설명하면서 크리스쳔의 입장에서 강력하게 옹호하고 있다. 전형적인 종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곤충학자 Edward O. Wilson은 The Creation:An Appeal to Save Life on Earth(창조-지구위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호소)란 책을 썼는데 그는 신을 믿건 안 믿건 자연을 보존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과학과 신앙의 공동의 광장을 강조하는데 누구보다도 유명한 학자는 Francis Collins라 하겠다.

Collins가 유전학에 바친 공헌은 Dawkins보다 더 지대한 것이다. 1993년이래 국립 인간제놈연구소의 소장으로 2,400여명의 과학자들을 지휘하여 3억개의 생리화학 문자로 되어 있는 생리학 청사진을 만들었으며 그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하여 당시 Clinton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그들의 공로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Collins는 그 후에도 계속하여 제놈연구와 그것을 의료분야에 활용하는 방법을 탐구하는데 앞장서 왔다.

그는 27세에 무신론자에서 크리스챤으로 개종하였고 지금은 젊은 복음주의 과학자들에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不可知해지는 과학분야에서 어떻게 자신의 신앙을 개진할것이냐에 대한 조언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활용하는 분명한 크리스쳔이다. 그는 지난 여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The Language of God:A Scientist Presents Evidence for Belief(하나님의 언어-과학자가 제시하는 신앙의 증거들)란 책을 출판하였다.

TIME지는 Richard Dawkins와 Francis Collins의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고 대화내용을 계재하였다. 과학에는 문외한으로서 현대의 두 첨단 과학자들의 대화를 번역한다는 것은 능력밖이라고 생각하여 약하고 그들의 결론부분만 소개하면

Collins:지난 4반세기가 넘게 과학자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살아 오는 동안 저는 Richard Dawkins 교수가 주장하는 자연세계에 대한 모든 결론들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아무런 갈등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고 싶은것은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과학이 대답을 제공할 수 없는 것들-어떻게?라는 질문 대신 왜냐?하는 의문에 대해서-이 있을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왜?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많은 대답들은 영(靈;spiritual)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과학자로서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 보아야 나의 능력으로 절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Dawkins: Francis Collins교수께서 대화중 가끔 저를 마음이 꽉 막힌 사람으로 시사하셨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저의 마음은 저도 감히 꿈 꿀수 없고 교수님도 상상할 수 없으며 어는 누구도 감히 생각해 볼 수 없는 훌륭한 것들이 미래에 가능하리라고 하는데 활짝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래에 얼마나 경이로운 발견들이 이루어 지든지간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어떤 특정한 역사적인 종교 가운데서 그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생각에는 회의적입니다. 대화를 시작하여 우주의 기원과 물리적 상수(常數)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을때 저는 설득논리로 하나의 초자연적인 지적 설계자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만 그것은(지적설계자이론) 가치가 있는 생각이라고 봅니다. 논박할수 있는 여지가 많은 이론이지만 그럼에도 존중할 가치가 있는 웅대하고 거대한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올림피아 신전의 여러신들이나 이 세상에 내려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예수이야기는 그렇게 웅대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런것들은 지엽적인것 이라고 생각됩니다. 신(神)이 존재한다면그는 어떤 종교의 신학자가 이미 설명한 그 어떤것 보다도 훨씬 더 크고 더 불가해(不可解)한 분일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교계나 학계-에서는 신과 과학에 대한 논란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창조과학이나 젊은 지구 이론을 가지고 성서의 무오성이나 교리의 절대성을 주장하며 진화론이나 현대첨단 과학의 이론을 저주받을 마귀의 이론아라고 매도하고 있지나 않는지? 신앙을 가졌다는 과학자들은 아에 과학자로서의 자격 미달자고 간주하거나 과학에서 신의 자리는 없다며 자신의 신앙생활과 힉문하는 것은 아예 별개의 것으로 생각지는 않는지? 많은 크리스쳔 과학자들이 최근 과학계의 도전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 들이고 그 의미를 음미하고 있는지?

TIME지에 실린 Richard Dawkins와 Francis Collins의 대담을 읽으며 떠오른 의문들이다.

(정리 김상신)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논문을 읽는법, 그리고 읽었다는 것의 의미

논문을 읽었다는 것은 최소한 그 전체 의미를 이해했고, 그게 무슨 말인지를 알았다는 뜻입니다. 창조설자들의 경우, 과학자들과는 달리 논문을 읽지 않고, 대충 부분만을 가져온 후에 읽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스켑티즈의 글에서 그들이 이렇게 논문을 읽지 않고 하는 이상한 주장의 예 하나를 다루었습니다. 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게도, 논문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논문에 대해 물어보면 됩니다. 이렇게 되었을때 입닫고 가만 있거나, 내용과 관련없는 틀린소리를 하면 논문을 안 읽은 것입니다.

저널클럽이나 랩 미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문 읽었다고 말하고 내용 이해 못하면 그 저널클럽의 거짓말쟁이는 바로 그 사람이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솔직하게 논문 안 읽었으니 내용을 설명해달라고 말하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요. 그래서 저널클럽 갈때는 반드시 논문을 읽어보고 가거나, 아니면 안 읽었다고 고백을 하고 알려는 자세가 있는 사람들만을 초대합니다. 사실상은 그래도 예의상 스킴이라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부분의 신문기사나 다른정보들은 논문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왜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실수하는 기자들도 수두룩하고, 이른바 악마의 편집을 사용해서 인터뷰를 과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진짜 과학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면 논문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제가 배운, 쉽게 논문 읽는 법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다음 순서로 읽으면 빨리 이해할 수 있다고 저희 교수님이 그러시더군요. 물론 이것은 제가 읽는 방법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이 방법이 통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다양한 방법들을 존중합니다.

1.Abstract(초록)을 읽는다.

어느 논문이든 기본이지만 Abstract(초록)은 논문의 개략적인 내용을 나타냅니다. 물론 논문에 따라 초록이 모든 내용을 함축하는 경우도 있고, 너무 뼈대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으며, 뭔가 잘못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쓰여진 초록의 경우 내용을 함축해서 정리해 놓았기에 사실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이라면 초록만으로 대략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이거나, 초록이 잘 쓰여지지 않은 경우, 제한적인 길이만이 허용될 경우, 초록만으로는 전체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즉, 여기까지 읽는 것으론 논문을 읽었다 할 수 없습니다. 같은 분야의 다른 사람의 방법론을 연구하거나, 시간이 부족할 경우에 많은 논문의 초록만을 대략 스킴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서 이를 논문을 읽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창조설자들의 경우 여기까지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논문이 링크된 다른 기사를 보는 방식을 취하는 황당한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Figure과 Figure legend를 읽는다.

일단 그림은 사람들이 글보다 이해하기 쉬운 경우가 많습니다. 즉, Figure을 이해하고, 그 Figure 내용을 분석해보다보면 대략의 뼈대가 완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메인 데이터와 실험 과정에 관련된 Figure이 많으므로 대략적으로 논문이 무슨 실험을 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기부터 사람마다 갈리는 경향이 있는데, 글이 편하신 분들은 3으로 바로 넘어가시는 것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단지 Figure만을 보고 내용을 대부분 유추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같은 분야에 있을 경우에는 대체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것만으로는 논문을 읽었다고 말하기가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상대의 방법론을 이해할 때나, 결정적인 데이터를 보고자 할때에는 여기까지만 읽는 사람도 있으며, 저널 클럽에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 때 일부 대학원생들이 여기까지 읽는 경우도 있…(으나 그랬다가 대부분 털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3.Introduction부터 Result (Method는 제외)까지 스킴한다.

이제 메인 논문을 읽을 차례입니다. 하나하나 단어에 집착하면 전체 내용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빠르게 한번 스킴하면서 대략적인 내용을 봅시다. 위에서 맞춘 뼈대와 비교하면서, 만약 충돌하는 부분이 있을 경우 표시해둡시다. 스킴은 속독이며, 시간이 없을 때 빠르게 논문을 읽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대체로 저널클럽에 오는 사람들은 논문 전체를 스킴하고 오는 경우가 많으며, 같은 분야이거나 훈련이 많이 되어 있을 경우에 스킴만으로 전체 내용을 어느정도는 이해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틀릴 수 있으므로 정독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4. Result를 읽는다.

여기부분에 대해서는 사람들사이에 논란이 좀 있는데 저는 이 방법을 선호합니다. 그들 실험이 무엇인지 대충 알았으니, 결과를 읽는 것입니다. 이부분이 논문의 핵심이 되는 데이터에 해당하므로, 꼼꼼히 읽고, 위에서 표시한 부분들을 확인해서 연결된 Figure도 보면서 제대로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부분이 가장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부분입니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적어둡시다. 앞의 2와 3에서 읽은 것들과 잘 연결되는지 보는 것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운 시간이 바로 Result를 정독할 때입니다.(이건 개인적 취향)

5. Method를 제외한 논문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이제부터가 진짜 논문 읽기입니다. 앞에서 스킴하면서 표시해둔 부분과 Result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되었던 부분을 다 정리해가면서 읽습니다. 4에서 Result를 읽긴 했지만, 다시 읽어보면서 자기가 읽은 내용이 맞는지 확인합시다. 때때로 아무리 정독을 해도 대체 Result가 왜 이렇게 나온건지 이해가 안될 때가 있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궁금증은 해소되게 됩니다. 이때에 이들의 Biological Question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고, 비슷한 분야를 연구할 경우 비판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가 논문을 읽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포인트입니다. 보통 대부분의 논문은 여기까지 읽으면 대부분의 논문의 내용을 매우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6. Method를 읽고, 아직도 확실치 않은 부분의 Reference를 찾아본다.

사실 Method를 다 읽지 않는다 해도 이정도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정도는 이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Method를 읽으면서 그 방법의 디테일을 컨펌하고, 앞에서 잘못 이해했던 것들을 발견해서 그 섹션을 다시 읽어봅시다. 이부분은 자기의 분야에서 좀더 상대의 방법론을 이해하고 싶고, 상대의 protocol을 일부 도입하고 싶을 때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비니다. 마지막으로 Introduction이나 Discussion에 나온 이전의 연구나 이후 연구에 대한 Reference논문을 찾아 1부터 6까지 반복한다면, 이 분야에 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게 됩니다. 논문을 읽을 때 즐거운 부분은 바로 이렇게 Reference를 찾아가면서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발전해왔나 보는 부분입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대략 논문을 읽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논문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처음으로 논문을 읽거나 자기 분야가 아닌 분야 논문을 읽을때, 매우 편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기 분야 논문의 경우 대략적인 스킴만으로도 어느정도 이애할 수 있게 됩니다.

논문을 처음 읽을때는 시간이 오래(저는 거의 24시간이 걸렸습니다.)걸리고, 찾아볼 것도 많지만, 읽다보면 나름 빨리 읽는 요령이 생기게 되고, 이전에 쌓은 지식들이 이해에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창조설자에게 이것을 알려준다고 해도 그들은 1도 안 하거나 1을 해놓고 자기가 논문의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며, 오류투성이인 신문기사를 끌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창조설자들에게 이거 알려줘봤자 걔넨 안 읽습니다.


출처: http://skepties.net/p/2542저자:  Neurosum

2016년 3월 29일 화요일

누구나 쉽게 빠질 수 있는 양비론의 함정

때때로 사람들은 양비론적인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고 나도 모르니 뭐 두가지의 의견을 다 들어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은 창조설이나 지구 온난화 부정과 같은 비과학적 주장을 과학과 같은 위치에 두고 보려는 경향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비론이 생기는 원인은?

과학계에서 수많은 논쟁들이 있을때, 편견을 갖지 않고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맞는 말이며, 양쪽의 주장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뉴런 이론(Santiago Ramon y Cajal의 이론)과 신경망 이론(Camilo Golgi의 이론)의 경우 과학계에서 상당한 논쟁이 있었고, 결국 뉴런이 발견되면서 뉴런 이론쪽으로 대부분의 주장은 기울었습니다. 다만, 후의 신경세포들의 시넵스 연구를 통해 신경망이론도 단지 뉴런이론과 대립하는 것이 아닌, 또다른 의미로 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논쟁을 진행하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있는 과학자들이며, 서로의 발견에 대한 수많은 논문들을 통해 진행이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과학의 가장 기본중 기본은 치우침이나 편견 없이 열린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그것은 그 주장들이 어느정도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을 때이고, 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최소한 논문을 써서 피어리뷰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고, 상대가 가져오는 데이터를 신뢰하면서 상호간에 논쟁을 주고 받는 것이 과학의 방식이죠. 반면에, 이미 이런 과정을 통해 과학계에서 이미 결론이 났거나, 더이상 논쟁중이지 않은 사안들, 예를 들자면 진화라던가, 기후변화와 같은 것들은 이런 수많은 논쟁과정과 검증을 통과한 상태로서 사실상 이미 결론이 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뒤집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까지 저기에 관한 모든 논문을 읽고, 그 결과를 뒤집을만한 논문을 내야 하겠죠.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이런 과학계의 방식을 이해한다면 과학계의 입장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상황인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 입장이 아닙니다. 그만큼 전문가들이 논쟁하고, 서로 비판해서 얻어낸 결과니까요. 물론 어떤면에서, 일반인들이 과학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tool같은 것을 일반인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필요한 교육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이해를 하지 못하고 한 방향에 입장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럴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모른다”라는 점을 전제하고, 이런 모든 발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겠죠. 그러므로 이 분야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들이 어떤 연구를 했는지를 신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양비론은 이를 거부하는 것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 생각 가운데에는 “내가 전문가보다 많이 알 수도 있어!”라고 하는 교만한 마음이 베이스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유사과학을 같은 높이에 놓고 “양쪽”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주장은 마치 의사의 처방과 지하철 약장수의 만병통치약을 같은 위치에 놓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실상 여기서 두개의 “입장”을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그것을 할 수 있으며, 전문가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현재 진화나 기후변화에 대해서 과학계의 생각이 두개로 쪼개지거나 대립되거나 하지 않고, 95~98%의 과학자는 이점에 동의합니다. 이는 과학계의 입장을 분명히 나타내줍니다. 그 “과학계의 입장”이라는 것 자체가,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서로 비판해가며 이른 현재의 합의이기에 의미가 있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 합의를 이루기까지의 전문적 토론을 논문이라는 방식을 통해 계속 진행해야 하는데, 그정도 수준이 되지도 않는 사람들은 대중들에게 다가갑니다. 이들의 최초 소스는 대부분 뉴스 기사나 유투브 등의 그다지 믿을만한 소스가 되지 못하는 것들 뿐입니다. 그들이 정말로 이런 것들에 대한 의문이 있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논문부터 써야 하고, 그만큼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논의로 끌어올려야 할텐데, 지금 대중을 대상으로만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사기나 다름이 없습니다. 양비론의 경우 이런 믿을 수 있는 소스와 믿을 수 없는 소스를 같은 위치에 놓음으로서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물론 과학 자체에서는 모든 주장에서 열린 마음을 갖고, 편견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이것은 자신이 그것을 판단할 자격이 있을 때의 문제입니다. 아침 축구회에 가끔 나가는 아저씨가 전문 축구 감독에게 전술이 문제가 있다고 훈수를 두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것과 비슷합니다. 제가 박사과정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모르는 것”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적 지식을 갖지 않았다면,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므로 95-97%의 과학자들이, 그리고 과학계가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지를 NCSE 혹은 실제 리뷰 논문들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스켑티즈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기에 이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본인의 힘으로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추천합니다.

(1) 모든 주장에 대한 원본 소스를 찾아보십시오. 실제 연구 논문이 있다면 그것을 읽어봐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자기네들 주장일 수밖에 없거든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유투브가 첫 소스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학술 논문의 경우 다양한 상호 비판을 통해 출판되므로 그 내용은 기사나 유투브에 비해 몇십배는 믿을만 합니다. 애초에 대부분의 기사들은 논문의 일부분을 토대로 해서 기자들이 쓰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경우 실수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유투브 영상이나 기사에 나오는, 과학계에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전공을 찾아보십시오. 대부분의 경우 생물학, 혹은 기상학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그들도 이 분야에 대한 비전문가라는 것이고, 그들의 PhD 역시 이 발언에 대하서는 전혀 전문성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또한 그들이 쓴 논문들이 최근까지 얼마나 있는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최근에 쓴 논문이 정말 그들의 발언과 일치하는지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도 없이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아무런 전문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3) 내 머릿속에 이해된다고 해서 그게 맞는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창조설자들이나 온난화 부정하는 자들은 정말 알아듣기 쉽게 축소시켜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대단한 것”을 깨달은 것처럼 만들어서 혼란을 주고, 그 혼란을 틈타서 그들의 거짓말을 전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내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라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유투브와 같은 곳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과학자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건 뭔가 잘못됬다”따위의 소리를 할때, 생각해보십시오. 과학자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당신보다 이 분야에 관해 전문가이고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단순한 의심같은건 하루에 수십번 해보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그들이 아는 것을 전부 알기 위해선 그 분야 PhD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과학계에 대한 음모론은 말 그대로 “전부” 거짓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5) 만약 잘 구분이 안된다면, 왜 이 사람들은 과학계에 가서 이야기를 안 하고 대중에게 와서 이야기하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과학자들은 과학자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전문적 용어에 대한 이해가 있기에 대화가 통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한 Camilo Golgi와 Ramon y Cajal은 사제지간이기도 했고, 그랬음에도 끊임없이 논쟁했습니다. 과학계에서 정말 옳다고 생각되면 먼저 과학계에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러지는 못하고 대중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의심해보시기 바랍니다.

양비론에 빠지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판단능력이 떨어졌다는 신호이자, 스스로 점검해봐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정보화 시대에 넘쳐나는 쓰레기 정보들 때문에 누구나 이런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혼란속에서 벗어나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출처: http://skepties.net/p/2602
저자: neurosum

2015년 5월 13일 수요일

창조설 VS 진실(1): 창조설에 진실은 없다.


*인용구는 이탤릭으로 표시합니다.

2013년 9월 21일, 존 맥아더 목사는 줄리안 헉슬리의 1954년 글(진화론은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하며 포괄적인 사상이다 ) 을 인용하면서 자기도 여기에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줄리안 헉슬리는 같은 책에서 이런 말을 쓰기도 했죠.

Evolution is a process, of which we are products, and in which we are active agents.There is no finality about the process, and no automatic or unified progress; but much improvement has occurred in the past, and there could be much further improvement in the future (though there is also the possibility of future failure and regression). Thus the central long-term concern of religion must be to promote further evolutionary improvement and to realise new possibilities; and this means greater fulfilment by more human individuals and fuller achievement by more human societies.

해당 존 맥아더 목사의 발언을 정리한 글중 하나입니다. 이 글의 대상이 될 글입니다.

http://gracetokorea.org/2013/09/21/003g%EC%B0%BD%EC%A1%B01_%EC%A7%84%ED%99%94%EB%A1%A0-%EC%B0%BD%EC%A1%B0%EC%9E%90%EB%8A%94-%EC%97%86%EB%8B%A4/


일단 헉슬리 자신이 강한 무신론적 사상을 갖기도 했었고, 그 당시 교회의 탄압을 생각할때, 저런 주장을 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진화론과 진화주의의 차이를 구분 못한 창조설자의 무지함이 드러나기 시작하는군요. 그는 이것을 진화가 사상이라고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음 문단에서는 "다윈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거짓입니다. 다윈은 처음에 종의 기원을 썼을때는 이는 신의 창조의 범위를 이야기해준다는 식으로 썼으며, 창조설자들의 말도 안되는 공격을 받은 후 말년에는 이것을 넣은 것을 엄청나게 후회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여기서 잠깐 "다윈은 여러분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괘념치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히틀러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뭘까요? 아무 관련 없는 히틀러를 끼워서 파는 군요. 종의 기원이 처음 나왔을때 출판이 쉽지 않았던 점은 당연한 것이, 교회가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과 다를바 없는 공격을 해댔으니까요.

"진화를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  미안하지만 우리는 과학 이론을 "믿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온 말이 가관입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쓴 말을 잘못 이해했네요. 다윈이 아주 작은 것도 자신의 이론을 뒤엎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한 것은 간단히 말해, 그게 바로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아주 작은 증거 하나만 가지고도 급변할 수 있는 학문이고, 그당시의 진화이론은 오늘날과 같은 유전학이 없었기에,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런식으로 극히 일부분만 왜곡해서 인용하는 행동은, 그야말로 사기를 치는 것이며, 거짓말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 다윈의 전기를 다른 사람이 쓴 것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저자의 말을 인용한 행위는 우습기 그지 없군요. 다윈이 고생을 했던 이유는 창조설자들의 공격 때문이었으며, 이러한 공격의 책임은 이 글을 쓴 존 맥아더목사의 선조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그가 편지에서 언급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제가 확인해본바로는 그런 내용은 없었습니다. 좀더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있었다 할지라도, 이는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창조설자들의 무분별한 공격 때문이었을 것이며,

그리고 마지막 문장으로, 문자주의자의 폐단을 절실히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누구도 창세기 1장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고 말할 자유는 없다고 믿습니다. "

개그입니다. 눈곳간 우박창고는 왜 안 믿으시는지요?

첫 시간이라 짧게 끝났지만, 창조설자들의 주장은 마치 진화학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양 매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는 진화학은 그냥 과학이론이고, 그러므로 형이상학인 신의 존재를 건드리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는 진화적 유신론자이고 기독교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진화학은 사실로 증명된 과학이론이죠. 이 둘은 충돌하는게 아닙니다.


오늘의 토의주제:

다윈의 저서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진화라는 것이 얼마나 긴 시간동안의 연구로 이루어진 성과였으며, 이런 발견을 해낸 다윈은 천재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창조설자들의 공격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했던 점을 볼때, 창조설자들은 이 역사속에서 오랫동안 존재해온 거짓교사였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문자주의적 창조설자들의 폐단을 위 글의 질문을 통해 되짚어보자 "눈곳간 우박창고는 왜 안 믿으시는지요?" 일부는 문자로 해석하겠다고 하고 일부는 자기 멋대로 문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저 교만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분명히 할 것은, 사람이라면, 최소한 자기 양심은 있어야 하는데, 창조설자들은 대부분 거짓말을 한다는 점이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창조설자들의 거짓말에 속을지 생각해보자.


작성자: 신경합 (한국창조학회,반창조과학연합)



2015년 2월 18일 수요일

창조주의가 기독교에 미치는 악영향

창조주의는 안식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근본주의자들 중에 성서무오설/축자영감설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주장되는 창세기의 문자적인 해석만을 고집하려는 생각입니다. 사실 이 설명으로는 조금 모자란 게,성서무오설/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전체 맥락이 아닌 각 장과 절 단위로 성서를 분해해서 그것이 오류가 없으며 사실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일부입니다.

이러한 창조주의자들의 주장은 필연적으로 과학과 충돌하게 되는데, 이러한 충돌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들은 음모론을 양산하게 됩니다. 그들의 음모론들을 살펴보면 "외계인을 연구하기 위해서 세워졌다는 51구역의 공군기지"나 "NASA의 달착륙에 대한 음모론"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음모론은 환단고기의 역사적 사실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했던 행동양식과 매우 흡사한 행동을 보입니다. 음모론은 항상 적이 있어야 하고, 그 적의 이름을 지어줘야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환단고기를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류 역사학자들을 "강단사학자"라고 부르는 것과 흡사하게 주류 과학자를 "진화론자"라고 부르게 됩니다. 물론 이 "진화론자"의 범주 안에는 진화생물학자 뿐만 아니라 주류에 속하는 사회과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지질학자 등이 포함됩니다.

 이들의 첫 번째 문제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바로 음모론으로 세를 불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지요. 음모론자들이 세를 불려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는 순간 그들은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니라 사회문제가 됩니다. 음모론에 머물고 있는 창조주의자들은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단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연구하지도 않고, 그들이 진화론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주류과학에 맞서서 그들만의 연구를 수행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주류과학에 대한 반대의견을 제외하면 그들의 아카이브는 텅텅 비어버리죠. 가지고 있는 반대의견만으로 사회에 영향을 주려고 했던 "교진추"의 계속되는 실패사례들을 살펴보면, 이들의 음모론만 커질 뿐 ("정부 관료들도 다 진화론자들이다! 사탄의 수하들!") 영향력이 커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실패는 응원하는 이들을 떠나가게 하지요. 팀이 매번 패하는데 팬이 늘어날 리가 없습니다.

 이 창조주의자들은 스스로 과학을 적으로 삼고, 과학적으로 틀린 주장들을 계속해서 하면서 그것을 신 존재의 근거로 삼게 되는데,  이러한 행동은 기독교 전반에 커다란 손실을 입혀주는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과학적인 반론이 가능한 주장을 펼치게 됨으로써 무신론, 특히 일부의 전투적 무신론자들에게 "과학적 방법으로 신이 부재함을 밝힐 수 있다."는 무신설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버렸지요. 이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 고등학교 교과서로도 반박이 가능할 내용들을 주장한다는 것은 고등학교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먹히지 않을 이야기를 한다는 소리와 같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창조주의자들의 논리를 이용해서 그들의 무신설로 기독교 전반을 공격할 것이며, 이 빌미를 제공한 것은 창조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의 "해석(해석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라고 주장하긴 하는데, 알고보면 나름의 해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전반이 무신론자들에게 맹공격을 당한다는 사실은 창조주의의 등장이 기독교 전반에 얼마나 악재로 작용하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게 됩니다.

개신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언론들의 기사를 살펴보면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간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교회 목사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교회에서는 우주가 6,00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데, 막상 밤하늘을 보면 수백만 광년 떨어진 성운이 보이는 모순을 보며 지금의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한걸음 떨어져서 창조주의자들을 보세요. 과학계에서 어떤 것을 발표하면 허겁지겁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이 반박하려고 애쓰는 그들의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 그 자체를 위해서 사역하는 사람들이지 "믿음의 대상"을 위해서 사역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필자: 진승완 (물리학 석사과정)
https://www.facebook.com/soma0sd


2014년 8월 30일 토요일

김명현 교수 창조론 강의의 허구성

인터넷의 창조론 강의 하나를 살펴봤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창조론자들의 전형적인 실수와 착각, 무지가 어떻게 나오는지 잠깐 알아보자.
http://blog.naver.com/dj_chae?Redirect=Log&logNo=60029245892

=왜 창조인가? 김명현 교수 (KAIST 재료공학 석,박사, 전 한동대학교 교수)=

학교에서는 진화론만 가르친다. 학생들이 설마 교과서가 틀렸다고 생각하겠느냐? 하지만 진화론은 증거가 없다. 학교가 진리를 가르치는 곳이라면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 (사실 이런 부분이 위험하다. 교과서 집필자, 학교 선생님들을 전부 범죄자로 몰고 있다. 선량한 학생들을 세뇌시키고 신을 멀리하게 한다는 식인데 이러한 비난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착각인지 알게된다.)

진화가 맞는다면 모든 생물은 A에서 B로 변할 때 그 연속적인 중간단계 화석들이 나와야 한다. 즉 A화석이나 B화석보다 훨씬 더 많은 중간단계 화석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 진화론의 진화계통수에서는 연결고리 화석들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즉, 이 말은 그런 중간 고리는 없었고 모두 우리가 아는 A와 B라는 모습으로 처음부터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도마뱀이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팔을 흔들었더니 새처럼 되었고 그러다가 젖을 먹이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포유류가 된 게 박쥐일까? 그렇게 변해왔다는 중간단계 화석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없다. 시조새 화석은 많이 나오지만 도마뱀과 시조새의 중간단계 화석이 없다. 즉 원래 시조새만 있었다가 멸종되었다. (언제는 시조새 화석이 가짜라서 공개되지 않고 은폐되어 있다더니?) 쥐에서 박쥐로 변한 화석도 없다.
(실제로는 Archaeonycteris속, Palaeochiropteryx속, Hassianycteris속 등으로 알려진 박쥐의 선조 화석들이 70년대부터 발견되었고, 최근인 2008년 2월에 결정적인 중간화석인 5000만 년 전의 Onychonycteris가 네이처지에 보고되었다. Nature, Vol. 451, Pages 818-821; February 14, 2008)

창조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창조의 증거를 성경이라고 하면 안 된다. (맞는 말)

사실은 생명체가 바로 창조의 증거이다. 생명체는 너무나도 정교하고 섬세한 훌륭한 작품이다. 모기 얼굴을 봐도, 모기 눈을 봐도, 모기 발가락 발톱의 전자현미경 사진을 봐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동대 건물은 누군가가 만든 거다. 저절로 생겼을 리 없다. 잠자리를 보라. 잠자리가 저절로 생겼겠는가?

건물이나 비행기 엔진은 모두 ‘설계도’가 있다. 그리고 ‘설계도’가 있으면 반드시 ‘설계자’가 있다. 그렇다면 우린 어떨까? 인간에게도 설계도가 있을까? 설계도가 있다면 설계자는 반드시 있으므로, 우린 설계도만 확인하면 된다.

인간은 설계도가 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게 아니라 바로 우리들 인간의 모든 세포에는 게놈이 있으며 그 게놈의 DNA가 바로 설계도다. 그 설계도 DNA에 단백질 설계정보가 있고 용량은 백과사전 1000권에 해당된다. 이것은 요즘 최신 반도체 칩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거대 용량이다. 최신 반도체 칩은 하이테크라고 하면서 인간의 설계도는 하이테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이러한 설계도가 있다는 건 반드시 설계자가 있다는 것이다.

우린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허무한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 사실은 이렇게 누군가가 설계해서 만들었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 난 재료공학 전공의 과학자로 앞뒤가 맞아야만 믿는다는 훈련을 받았던 사람이라 목사의 아들이면서도 성경을 믿을 수 없었는데, 이렇게 세포에 설계도가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 때 네 글자의 첫 번째 고백을 했다. “계셨군요.”
진화가 틀렸다고 창조가 맞는 건 아니다. (맞는 말)


상당히 재미있게 진행되었고 마지막에서 약간의 감동을 느끼도록 구성된 창조론 강의이다. 하지만, 발표하신 선생님과 그 강의를 듣고 감동을 느낀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철저하게 내용이 틀렸다. 이날 이 교회에서는 아무런 진실도 진리도 없었고 그냥 자칭 한 과학자의 착각이 발표되었을 뿐이었다. 요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 봤다.

1. 진화론은 틀렸다. 연속적인 중간단계 화석이 없다.

A에서 B로 진화되었다면 그 중간에 연속적인 중간단계 화석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건 없고 A, B만 많다는 주장이다. 이 말은 많은 연속적인 중간단계 화석 뉴스를 전부 무시했다. 왜 뉴스를 안 볼까? 왜 논문을 안 읽을까? 침팬지만 있고 인간만 있고 중간단계 화석이 없단다. 인간의 진화 단계에선 이미 20종이 넘는 중간단계 화석들이 나왔고 계속 나오고 있다. 시조새 주위로 깃털이 확인된 공룡 화석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이젠 이름도 외울 수가 없고 시조새는 아예 곁가지로 취급될 정도이다.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할까? 중간단계도 너무 많고 곁가지도 너무 많아서 과학자들은 그걸 분류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할까?

http://blog.naver.com/iiai/36125602 (인류의 진화)
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0612280121 (영국 가디언 선정 2006 과학계 10대 뉴스의 '틱타알릭 로제')
http://100.naver.com/100.nhn?docid=822020 (네이버 백과사전, 틱타알릭)
http://blog.naver.com/iiai/71547111 (박쥐의 중간종 화석 발견)

발표에선 침팬지에게 옷 입힌 사진을 보여주며 아무리 이래봤자 침팬지는 침팬지이고 인간은 인간이란다. 침팬지는 고등학교에 갈 수 없단다. 진화론에서 누가 간다고 그랬나? 진화론에선 침팬지와 인간이 600만 년에서 700만 년 전에 갈라져 서로 독자적인 진화를 해 왔다고 한다.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는 이 정도로 길다. 따라서 침팬지는 앞으로 수백만 년이 지나도 인간으로 진화할 수는 없다는 게 진화론이다. 왜냐하면 이미 600만 년 이상이나 갈라져 왔으며, 따라서 확률적으로 원래대로 되돌아가 다시 합쳐질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론자들의 착각이 대개 여기 있다. 원숭이는 진화해서 언제 인간이 되냐는 질문. 진화의 정도를 재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한 기준으로 따지면 침팬지가 인간보다 더 진화되었다는 보고가 나올 정도이다. 진화론이라면 침팬지가 저절로 인간이 된다는 오해는 아무리 창조론자라도 창피하니까 이젠 그만 해야 한다.
http://blog.naver.com/iiai/36738984 (침팬지가 인간보다 더 진화됐다?)

이렇게까지 침팬지와 인간이 다르다고 강조하는 진화론이지만 다른 생물과 비교했을 때는 정말 가까운 사이라는 것뿐이다. 인간을 침팬지와 비슷한 부류로 타락시키기 위한 진화론자들의 음모? 아니다. 창조론 강의에서도 마지막에 나오는 DNA 유전정보 분석결과가 침팬지와 인간은 유전정보의 99% 정도까지 일치한다고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건 엄연한 과학 관찰 결과이며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30억 DNA 염기서열에서의 1% 차이이기 때문에 엄청난 차이 (600만 년 이상의)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더 중대한 오류가 있다. A는 많고 B도 많고 중간만 없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A화석이 가장 적고 중간이 좀 적고 B가 많다. 창조론자들은 늘 A까지 현대생물종으로 갖다 놓고 이야기하는 오류를 범한다. 도대체 진화론에서 언제 쥐에서 박쥐가 만들어진다고 했나? 누가 침팬지에서 인간이 된다고 했나? 그게 말이 되나? 쥐도, 침팬지도 인간과 똑같은 세월을 거쳐 21세기까지 진화한 생물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A, B만 많은 게 아주 당연하다. 실제로는 쥐와 박쥐의 공통조상이 되는 생물,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이 되는 생물이 따로 있고 이 생물들이 진짜 A가 되어야 한다. 다시 묻겠다. A화석이 많은가? 아니 거의 없다. 중간단계 화석들은 조금씩 나와 있지만 그것보다 더 오랜 화석은 (당연히) 더 적고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그리고 ‘연속적인’ 중간단계 화석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이러한 논리는 진화론에서도 믿기 힘든 슈퍼울트라(!)연속점진진화 이론을 전제로 한다. 먼저 화석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진화속도를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연속적으로 살살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게 틀렸다. 실제로는 유전자 하나 차이로 큰 변화가 올 수도 있고 많은 유전자가 변했어도 별다른 차이가 없을 수 있다. DNA 수준에서는 ‘분자시계’라는 개념까지 사용될 정도로 어느 정도 일정한 변화가 계속 이어져 온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단백질 종류에 따라 다 다르며 더구나 화석의 모양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가 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늑대와 같은 크기의 키가 큰 개에서 작은 개로의 변화가 매 세대 1cm씩 작아지면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실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작은 종류의 개들은 유전자 하나의 차이가 크게 기여했다는 게 밝혀졌다. 유전자에 따라서 변이의 종류가 다르다. 짧은 세월은 작은 변이, 큰 세월은 큰 변이란 생각을 모든 진화과정에서 그렇게 획일적으로 기계적으로 적용해선 안 된다.
http://blog.naver.com/iiai/36258979 (개의 크기를 결정한 하나의 유전자 변이)

또 하나의 문제점은 ‘자연선택’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진화에서 어떠한 변이가 선택되는 건 그 변이가 그 조건에서 자손을 더 남겼기 때문이다. 만일 어떠한 안정적인 환경에 생물들이 놓이면 어떻게 될까? 우연히 생긴 여러 가지 변이들이 특별하게 득이 될 일이 없다면 그러한 조건에서는 오랜 기간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천적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지각변동으로 주위 환경이 확 바뀐다면? 갑자기 어떤 새로운 섬이나 대륙에 정착하게 된다면? 그런 경우에는 그 새롭게 바뀐 환경에 더 적합한 변이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러한 변이가 안정될 때까지 계속 진전될 것이다. 왜 따로 떨어진 섬이나 대륙엔 새로운 종의 생물들이 많은지, 왜 다른 요인들과의 상호작용이 적은 안정된 지역에선 진화가 멈춘 것처럼 보이는지, 왜 지구상의 어떤 거대한 지질변화가 일어난 시기와 화석 종들 변화가 일치하는지 등이 그래서이다. 진화 속도는 절대 그런 슈퍼울트라연속점진이 아니다. 이렇게 진화속도가 그때그때의 환경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오랜 기간 안정되게 유지된 종은 화석이 많이 나오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단계에 있던 종들은 화석이 적게 나오는 차이도 생긴다. 이러한 것을 다 무시하고 무조건 A에서 B로의 연속적인 중간단계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건 진화론을 모른다는 뜻이다. 진화론을 이해한다는 창조론자들이 모두 빠지는 함정의 하나이다.

화살을 쏘았는데 1m를 가기 전에 50cm를 가야 한다는 걸 언급하라고? 50cm 전에는 그 중간단계인 25cm를 거쳐야 한다고? 아니, 그 사이의 중간단계도 중간중간단계도 중간중간중간 단계도 언급하지 않고 과녁을 겨누는 화살과 명중된 화살을 논하면 안 된다고? 역시 논리적(?)으로 따져서 화살의 출발과 도착 사이에는 무한대의 중간과정이 있는 게 틀림없으니까 과녁을 겨누는 화살과 과녁에 명중된 화살이 점진적인 이동으로 위치가 변했다는 건 터무니 없는 이론이 될까? 아무 곳에나 그렇게 '슈퍼울트라연속점진'을 적용하면 안 된다.

화살을 쏘는 사람 수백 명을 10초 간격으로 찍은 사진들이 있다고 치자. 사진(과거의 지층)에서 화살들(화석들)은 주로 어디에 많을까? 창조론 주장대로라면, 겨누고 있는 화살들과 과녁에 꽂힌 화살들보다는 그 중간의 굉장히 먼 거리를 날아가는 연속적인 중간단계의 화살들이 더 많이 보여야 한다. 정말 그럴까? 실제로는 과녁을 노리고 있는 활의 화살과 과녁에 꽂힌 화살들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날아가는 순간의 화살들보다, 겨누는 동안과 과녁에 꽂힌 화살들(안정된 상태의 생물종들의 화석)이 더 많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종의 100%가 다 같은 수의 화석들을 남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안정된 상태의 생물종들은 더 많은 화석을 남길 가능성이 높고, 새로운 변이가 허용되는 조건에 놓여진 중간단계의 생물종들은 (많은 연속적인 과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많은 화석을 남길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2. 창조론의 증거는 생명체의 설계도이다.

이 분은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대체적으로 창조과학 계통의 낮은 수준의 창조론을 주장하는데, 창조론 증거를 논하는 부분에서 약간 지적설계론 쪽이 섞인 논리를 전개했다. 진화론을 부정했다고 창조론이 맞게 된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든가, 성경은 창조론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설명은 맞다. 그렇다면 이 분이 말하는 창조론의 증거는 어떨까? 순수하게 과학적인 연구만으로 창조론의 증거를 찾았다는 식인데, 다시 한 번 미안하지만 전형적인 착각이다.

먼저 간단한 예로 한동대 건물을 보여주며 이건 누군가가 만들었지 저절로 생긴 게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잠자리를 보여주며 따라서 이 잠자리도 저절로 생겼을 리 없다는 식으로 비유한다. 하지만 잠자리 사진이 틀렸다. 잠자리는 잠자리 알에서 저절로 생겨난다. 여기서의 ‘저절로’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되지 누군가가 해 주는 게 아니란 뜻이다. 커다란 제트비행기가 저절로 조그만 부품에서 커다랗게 성장하지는 않겠지만 잠자리는 조그만 알에서 그렇게 훌륭한 날개를 가진 멋진 성충으로 스스로 성장한다. 생명체를 함부로 건물이나 비행기로 비유해서 빠지는 함정이다.

이것은 또한 잘못된 ‘비유’를 들고 그 ‘비유’에 빠져 엉뚱한 증명을 했다고 착각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지적설계론 지도자인 베히도 저서에서 오토바이를 비유하면서 그 부품(구부리거나 자르기 힘든 금속 부품들이 많다!)들이 저절로 변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냐며 진화론을 조롱했다. 자칭 생화학자가 그런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순간이다. 생물의 부품들은 변하기 위해 특수도구가 필요한 게 아니다. DNA 설계도의 염기서열 순서만 바뀌면 된다. 그건 생물학 기초에서 나오는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며 온갖 다양한 재질과 다양한 모양의 오토바이 부품 변하기와는 완벽하게 다르다. 모든 생물의 부품 정보는 DNA라는 한 가지 재질과 이중나선이라는 한 가지 모양에서 생기는 변화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설계도가 있다면 반드시 설계자가 있으며 따라서 우린 생물의 설계도만 찾으면 다 해결된다는 생각인데 역시 또 자기 비유에 자기가 빠진 착각이다. 물론 생물엔 설계도가 있다. DNA로 이루어진 게놈이란 것이다. 하지만 이 설계도는 건물이나 비행기 엔진 설계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단지 알기 쉬운 ‘비유’일 뿐이다. 건물 설계도에서 선이나 그림이 저절로 바뀔까? 당연히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DNA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난다. 설계도를 복사한다고 그 안에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당연히 생길 수 없다. 하지만, DNA에서는 그런 일이 늘 일어난다. 즉 설계자가 없어도 저절로 여러 가지 변화가 늘 일어나는 게 DNA의 본질이다. 설계자가 없어도 점점 더 복잡해지거나 점점 더 간단해지는 또는 서로 합쳐지거나 나눠지기도 하는 대담한 변화가 일어나는 설계도이다. 분자생물학이나 유전학, 생화학 아니면 그냥 기본생물학도 좋으니까 전공서적을 찾아서 직접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DNA가 생명의 설계도라는 비유만 단편적으로 이해한 창조론자들이 저지르는 실수에 불과하다. 미안하지만 거기엔 아무런 ‘창조의 증거’도 없다.

3. 우린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허무한 존재가 아니다.

진화론에서는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허무한 존재라고 하나? 아니다. 진화론은 ‘기적’을 제외하고 자연의 법칙만으로 설명이 가능한 현상들을 확인하고 이 자연을 이해하려는 것뿐이다. 태양의 주위를 지구가 빙빙 도는 것이 ‘저절로’ 된다는 걸 확인했는데 왜 이건 괜찮나? 핵융합반응으로 ‘저절로’ 빛과 열을 내는 태양 주위를 ‘저절로’ 도는 지구가 있는데 거기에서 번성하는 생물들이 ‘저절로’ 변화하면 안 되는 타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아주 낮은 수준의 원시창조론에서는 태양과 지구가 도는 것도 다 하나님이 손으로 돌리고 계신 것이고 지구의 달도 다 목적이 있어서 거기에서 돌게끔 하신 거란다. 그럼 목성의 수십 개 위성들은 왜 있을까? 이러한 원시창조론은 위성을 가진 행성이 지구밖에 없는 줄 알았던 시대의 이야기인데 아직도 우리 주위 ‘창조론 증거’ 이야기로 돌아다닌다.


우리 삶을 얼마나 보람되게 살아갈지 또 우리 죽음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우리 마음가짐에 달렸지, 어떤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해서 정할 문제가 아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우린 허무한 존재가 되나? 그렇게 되었나? 모두 기독교를 버렸나?

우리 설계도는 이렇게 창조자에 의해서 다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졌다는 창조론 강의 결말은 아주 위험한 사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차별과 무시다. 설계도에 처음부터 이상을 가지고 태어나 힘겨운 고생을 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목적인가? 이런 말은 사고를 당해 고통 받는 사람에게 그건 하나님의 손길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저절로’가 아닌 하나님의 설계도 변경(돌연변이)으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생하여 어린이들이 죽어가도 그건 ‘하나님의 목적’인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7년 7월호에서 '말라리아'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약 3000명의 아이들이 모기 때문에 말라이아에 걸려 죽는다. 열대열말라리아 때문에 아프리카 잠비아의 아기들 중에서 거의 20%가 5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창조론에서 모기의 얼굴과 발톱 확대사진을 슬라이드로 강연하면서 '창조의 증거'라고 감탄하고 기뻐하고 있을 때 아프리카에서만 30초에 1명씩 아이들이 그 모기 때문에 죽고 있다. 말라이아에 걸린 아이들을 이불로 싸매고 잠비아의 부모들이 수십 km씩 걸어와 다 쓰러져가는 벽돌건물인 칼레네 선교병원에서 치료를 기다리며 가슴이 다 무너져 가고 있을 때 창조론자들은 모기 사진을 '창조의 증거'라고 선전하며 과학자와 현대과학, 의학을 조롱하고 적대하고 있는 셈이다.

모기의 복잡한 머리와 발톱 모양이 정교한 창조의 증거라고? 하나 더 가르쳐 줄 수도 있다. 모기의 주둥이는 겉보기에 단단한 하나의 침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 두 연장, 날카로운 날과 작은 펌프 한 쌍으로 작동되는 빨대가 있는 놀랍도록 정교한 구조이다. 물론, 말라이아 원충이 모기 침을 통해 인간에게 들어와 순환계를 돌면서 정교하게 인간을 죽이는 메커니즘도 훌륭한 '창조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지적설계론'에서 주장하는 정교한 설계라는 것들이 다 그런 식이다.

흔히 창조론자들은 위와 같은 창조론 강의에서 파란 하늘과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러한 자연을 설계해 창조하신 하나님이란 이미지를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연재난으로 파괴된 환경과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아름다운 숲 안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생물들의 먹고 먹히는 모습은 무시한다. 없었던 걸로 한다. 현실과 완전하게 동떨어진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게 창조론 기독교의 본질이다.

2014년 8월 27일 수요일

아인슈타인과 창조론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론 같은 ‘과학’으로 신의 창조를 설명하겠다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실제로는 부정하는 게 아니라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신이 개입하는 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태도)을 비난할 때, 아인슈타인이 신과 창조론을 믿었다든가 또는 말년에 신앙이 없었음을 크게 후회했다는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하곤 한다. 옛날 창조과학에서부터 사용하던 전술인데, 역사상의 위대한 과학자가 자기들 편이었다고 하면서 (진화론 나오기도 전의 위인전에 나오는 옛날 위인들 다 인용하면서) 너희가 이런 위대한 과학자보다 뛰어나지도 않은 주제에 잠자코 창조론을 믿으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이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다면 좀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In response to the telegrammed question of New York's Rabbi Herbert S. Goldstein in 1929: "Do you believe in God? Stop. Answer paid 50 words." Einstein replied "I believe in Spinoza's God, Who reveals Himself in the lawful harmony of the world, not in a God Who concerns Himself with the fate and the doings of mankind." Note that Einstein replied in only 25 (German) words. Spinoza was a naturalistic pantheist.

1929년 뉴욕의 랍비인 Herbert S. Goldstein이 전신으로 한 질문인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50단어로 답해 주십시오.”에 대해서 아인슈타인은 “나는 인류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이 아닌, 세계의 질서 있는 조화로 나타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습니다.”라고 답했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어 25단어만으로 대답했다. 스피노자는 자연주의의 범신론자였다.
http://en.wikipedia.org/wiki/Albert_Einstein

실제로, 창조론을 주장하면서 아인슈타인을 언급하는 것은 (창피하니까) 피해야 할 사항의 하나로 창조론 사이트에서도 나올 정도이다.

“Einstein held unswervingly, against enormous peer pressure, to belief in a Creator.” in “Arguments we think creationists should NOT use”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aq/dont_use.asp

즉, 창조론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초보 창조론자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의 하나인 셈이다. 위 사이트에 말하려는 것은 물리학자가 정통적인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그건 원래 의미가 아니며, 그 과학자들 대부분은 무신론자라는 것이다.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3/i1/einstein.asp“Einstein, the universe, and God” by Russell Grigg
Creation ex nihilo 23(1):50?53 December 2000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7/i3/god_talk.asp“Physicist's God-talk" by Don Batten
Creation 17(3):15 June 1995

물리학자 대부분이 무신론자라는 건 좀 과장된 느낌이 들지만, 이들 지적에서 정확한 부분이 있다. 즉, 위에서 언급하는 과학자들 외에도, 아인슈타인, 칼 세이건,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도킨스 등 대부분의 과학자가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주장하는 신인 ‘인격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완전히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사고방식 한계 내에서 만들어진 ‘인격신’이다. 딱 사람처럼 좋아하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화내고 성질을 내는,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신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 신은 인간처럼 탐욕을 가져서 그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하고, 인간처럼 성질을 낼 때가 있으니까 그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다른 인간에게 하듯이 신에게 잘 보이고, 아첨해야 한다는 설명들. 신의 존재를 간단히 증명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를 완벽하게 부정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아인슈타인이 창조론에 힘을 실어줄 인격신을 믿는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며, 자꾸 아인슈타인을 인용하려는 창조론자들은 정확히 언제 어디서 아인슈타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자신들의 ‘인격신’을 믿지 않는다고 과학자들 대부분과 그 외 신앙인들을 전부 ‘무신론자’로 밀어붙여 비난하는 풍조가 있는데, 그들만의 착각이다. 단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딱 유치원 수준의 ‘인격신’, 딱 유치원 수준의 ‘세상 창조’ 이야기를 납득할 수 없을 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정말로 계시다면, 하나님은 그것보다는 훨씬 더 깊이 있는 아마도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존재이고, 이 세상의 생명 창조도 단순히 진흙으로 빗었다란 식의 유치원 수준이 아닌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이 글을 쓰고 난 후, 2008년 5월 19일 중앙일보에서 4억원에 낙찰된 아인슈타인의 편지가 소개되었다. 아인슈타인은 1954년 철학자 에릭 굿카인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게 신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과 산물에 불과하다... (성경은) 고결하지만 상당히 유치하고 원시적인 전설들의 집대성... (유대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가장 유치한 미신들이 현실화된 것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150339)

아인슈타인의 무신론적 소신을 본받자는 게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실제 어떠한 생각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창조론자들과 지적설계론자들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라는 게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는 점을 확인한다.

2014년 8월 23일 토요일

창조론의 허구성 - 인간의 존재가치



창조론자들은 왜 진화론이 나쁘다고 할까? 진화론은 그냥 평범한 과학이론에 불과하다. 공산주의도 히틀러도 모두 진화론 탓이라는 식의 주장을 반복하지만 실제로는 어설프고 황당한 착각이나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종교 전쟁이 역사의 거의 전부인 유럽의 역사는 뭐가 되는지? 왜 텔레비전의 모든 고대 역사물에 대부분 ‘전쟁 이야기’가 등장하는지? 진화론만 없어지면 전쟁이 없어지고 세상에 평화가 이루어질 것 같이 허풍을 떠는 창조론자들은 사실 조금 우습기까지 하다.

진화론을 비난하면서 왜 천문학은 비난하지 않을까? 지구가 둥글다거나, 하늘의 별이 사실은 태양계나 은하수를 형성하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이론은 나쁘지 않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건  우리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생각하게 해서 존재가치를 낮추지 않을까? 중세 유럽성직자들은 실제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지만 당연히 그런 종교관과 과학비난은 틀렸다는 게 밝혀졌고, 이런 어떤 과학이론에 대해서 좋고 나쁘고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검색으로 찾아낸 어느 창조론자의 허접한 진화론 비난 주장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http://visionch.com/bbs/board.php?bo_table=edu_qna&wr_id=15

“과학에서 가치, 존엄성 등은 논외의 대상이다. 논외의 대상이란 과학이 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역시 논외의 대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학이 그것을 논외(論外)로 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러한가치와 존엄성이라고 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데에 이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수많은 세월이 지나는 동안 어찌어찌하다보니 변화된 변화의 산물이다. 뾰족한 돌맹이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둥그런 조약돌이 된 것과 같이 인간은 그저오랜 세월의 산물일 따름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가치나 존엄성이 저절로생기는 법은 없다 .. 아, 진화론자들이여!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있으며, 인권은 어디서 나오는가?”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대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창조론자들의 ‘무작위한(랜덤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나쁘다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1.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우연의 산물로 오랫동안 진화한 끝에 나타났다.
2.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존재목적도 가치도 없다.
---> 그러니까 이런 결론을 내리는 진화론은 틀렸거나 나쁘다.

사실은 1에서 2로 연결이 안 된다. 전제가 빠졌기 때문이다. 위 논리가 성립되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가 먼저 필요하다.

0. 우연으로 출현한 것에는 존재목적도 없고 가치도 없다.

그런데 이 전제는 과학이 아니다. ‘존재목적’이라든가 ‘가치’는 과학에서 따지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창조론자도 주장할 정도의 상식이다. 즉, 무슨 말인가 하면 위 전제는 종교 이야기이지 과학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창조론의 진화론 비난은 전제까지 포함해서 0-1-2 로 이어지지만, 실제 진화론(과학)에서 말하는 건 1 하나에 불과하다.

0. 우연으로 출현한 것에는 존재목적도 없고 가치도 없다. (종교)
1.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우연의 산물로 오랫동안 진화한 끝에 나타났다. (과학)
2.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존재목적도 가치도 없다. (종교)

그렇다면 위 전제는 정말 그렇게도 확실한가? 이런 전제는 어떨까?

0-1.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우연의 결과가 한 번도 아니고 수 없이 겹쳐진 결과 나타난 것은 그것만으로도 존재의의가 있고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이 전제가 맞으면 당연히 위 2는 틀린 게 된다. 물론 이 전제가 절대로 맞으며 따라서 진화론은 좋다는 (창조론 같은) 멍청한 주장은 하지 않겠다. 단지 창조론자들이 생각하는 전제 외에 이러한 전제도 가능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건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인간과 생명의 소중함을, 존재가치를 주장할 것이고 거기에 무슨 과학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주가 탄생해서 지금까지 ‘나’라는 존재는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다는 과학적 ‘사실’이 있다. 안드로메다은하가 너무도 거대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더라도 우주 전체에서 본다면 먼지 한 알에 불과하고 있어도 없어도 티도 나지 않는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 존재에 불과하지만 결국 잘 생각해 보면 안드로메다은하나 ‘나’나 마찬가지로 미미한 존재이고 또 마찬가지로 우주에 단 하나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은하가 거대하고 지구가 조그맣다는, 또 인간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정한 ‘크기’의 기준이다. 플랑크톤이든 세균이든 바이러스든 인간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것들로 다 똑같이 여겨지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런 걸 생각한다면)

인간의 소중함을, ‘나’의 소중함을 ‘진화론 공격’으로만 확인 할 수 있다는 창조론자들의 생각은 사실 너무 슬프다. 자기와 침팬지가 다르다는 걸 그렇게도 납득하기가 어려운가? 진화론을 믿으면 (머리에 든 게 없는) 요즘 젊은이들은 다 타락하고 정체성을 잃어서 동물같이 행동한다고? 청소년과 젊은이를 위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핑계로 댈 뿐 모두 타락하기 쉬운 머리에 든 게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이들의 가식과 건방짐도 용서하기 어렵다. 진화론이 없으면 아이들이 해파리나 생쥐나 고양이나 거북이처럼 행동하고 인간이란 사실을 잊을까? 해파리나 생쥐나 고양이나 거북이는 ‘창조론’을 믿기 때문에 다들 자기 정체성을 깨닫고 다른 동물로 혼동하지 않는가?

창조론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은 뭔가 그럴듯하게 어려운 용어들을 섞어가며 일반인들을 세뇌하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너무나도 ‘슬프고 허전한’ 내용이다. 아무런 깊이도 고뇌도 진실도 느껴지질 않는다.

2014년 8월 22일 금요일

창조론 질문과 답

창조론을 믿는 분들이 진화론을 비웃으면서 흔히 하는 질문 중 몇 가지를 간추려 봤다. 이미 내가 블로그에서 작성한 여러 글들에서 설명한 것들이 많다. 질문 자체는 지식iN 등에서 직접 인용했다.

1. 이렇게 완벽하고 적절한 지구에서 우리들이 산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적설계자인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맞겠죠?
우연히 태양이 있습니다. 태양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어요......우연히 지구가 회전을 합니다. 그것도 사람이 살수 있는 아주 적절한 기울기로 기울어져서 아주 적절한 속도로 돌고 있습니다. 아주 약간의 오차만 있어도 사람은  살 수 없어요.

약간 덜 기울어지고 회전속도가 덜 적절해도 상관없습니다. 실제 지구의 자전속도는 계속 변합니다. 심지어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도 변하고 있죠. 천문학 전공인 분이 옆에 있으면 여쭤보세요. 이런 말씀 하실 때마다 천문학 전공자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그리고 지구 외 다른 예들은 고려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지구가 그렇게도 적절하다면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적절하지 못한 건 어떻게 하죠? 하나의 은하엔 수천만에서 수조 개의 태양 같은 항성들이 있죠? 우리 은하계엔 2000억 개 정도의 항성들이 있습니다. 그 항성들에도 지구나 화성 같은 행성들이 있겠죠? 창조과학에선 이 우주에서 지구 이외엔 그 어떤 생명도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성경에 씌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자, 그 많은 항성의 모든 행성들은 다 적절하지 못하게 만들어졌네요.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경우의 수에서 지구 단 하나가 적절한 게 그렇게 신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증거인가요? 그렇게 따진다면 신의 능력이 참 형편없다는 게 됩니다. 우주 전체에 그렇게 많은 행성들을 만들어서 겨우 하나 성공한...... 저는 신의 능력을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창조과학 식의 비논리적인 설명으로 신의 능력을 찬양할 필요가 없으며, 반대로 신의 능력을 형편없게 만드는 역효과를 낸다는 점을 좀 제대로 알라는 것입니다. 창조론자들의 문제점은 이렇게라도 해서 신의 무슨 초능력을 꾸며내 믿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원인과 결과가 반대입니다. 지구가 적절하니까 인간이 있고 또 적절한 걸 깨닫는 거죠. 인간이 먼저 나타나고 나중에 지구가 적절하게 된 게 아닙니다. 적절하지 않게 위치한 행성에서는 아무런 생물도 없으니까 당연히 아무도 자기들이 적절하지 못한 곳에서 산다고 말을 안 하겠죠.


2. 자동차나 비행기는 정말 정밀하고 복잡합니다. 우리 몸은 더 정밀하죠? 그런데 이런 복잡함이 우연히 생겼을까요? 그러니까 진화론은 틀렸습니다.
우리 몸은 자동차나 비행기보다 정밀합니다. 누가 자동차와 비행기가 저절로 우연히 생겼다고 말합니까? 그런 사람은 미치광이 취급이나 받습니다.

맞습니다. 미치광이 취급 받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에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화론에선 예를 들자면, 복잡한 자동차나 비행기가 있다면 그 전의 모델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즉 갑자기 점보제트기를 누군가 설계할 순 없고 그 전의 역사가 있을 거라는 거죠. 종이비행기 같은 간단한 장난감에서 시작해 점점 복잡해지고 기능이 추가, 또는 변경되면서 커다란 것들도 가능하게 됐고,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져 사용되던 부품들이 들어와 활용되기도 하면서 더 크고 복잡한 비행기가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최초의 고무 타이어가 처음부터 비행기 바퀴를 목적으로 설계됐다고 하진 않죠? 창조과학에선 모든 부품들이 모두 그 목적을 위해 설계됐다고 하는데 그 전 단계들을 무시하는 게 문제인 겁니다. 비행기나 자동차 한 대의 복잡성을 보지 마세요. 그 모델들이 나오기 전까지 어떤 다른 모델들이 있었는지 그 역사를 보셔야 합니다. 진화는 '역사' 이야기입니다. 즉 비유 자체가 틀렸습니다.

그리고 모델에서 모델로의 변화, 그걸 누가 했을까요? '자연의 법칙'이 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됐다는 게 아니라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안 변하고 끈기 있으며 차별이 없는 엄밀한 '자연의 법칙 (진화론)'이 이러한 변화 (진화)의 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은 거기까지 밝혀낸 겁니다. 신을 믿는 과학자들은 바로 그 자연의 법칙이야말로 신의 작품이라고도 생각하겠죠. 그런데 창조과학은? 그런 자연의 법칙조차 없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흔히 창조과학에서는 자전거가 어떻게 오토바이로 변신되겠느냐고 하죠. 생각해 보면 그들 말이 맞는 것 같죠? 그 쇠 부품들을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구부리고 자르고 연결해서 진화시키겠습니까? 하지만 비유 자체가 틀렸죠. 엉뚱한 비유를 들고 그 비유를 증명(?)하고는 그래서 진화가 틀렸다는 허술한 착각입니다. 생물의 변화(진화)는 설계도인 DNA의 변화에 불과합니다. DNA는 A, T, G, C라는 네 가지 염기가 진주목걸이처럼 한 줄로 늘어선 끈이죠. 그 진주목걸이 알들의 순서가 이리저리 바뀌는 조건만이 필요하지 쇠 부품을 구부리고 자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DNA 염기서열의 다양한 변화는 여러 가지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이미 많이 밝혀져 있습니다. 생화학이나 유전학, 분자생물학의 두꺼운 책들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3. 진화론을 지지하는 화석증거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진화론은 틀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진화의 증거로 확실하게 채택이 된 화석은 아직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윈이 주장한 100년 안에 모든 증거가 나올 것이라는 라고 한 말을 했는데도 아직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쪽 분야를 전혀 모르시니까 창조과학회에 속으셨죠. 고생물학 관련 서적을 한 번이라도 찾아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가끔 신문에서 나오는 진화 관련 과학뉴스라도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유명한 과학저널인 네이처나 사이언스를 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느 연도 어느 달, 어느 주라도 좋으니까 찾아보세요. 그리고 화석이나 진화론 관련 논문이 실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거의 없습니다. 미싱 링크의 경우도 최근엔 너무 많은 화석들이 발견돼 오히려 과학자들이 혼란스러울 지경입니다. 증거가 너무 많아서 과학자들이 ‘혼란’스럽다고 하면 창조과학에서는 또 꼬투리를 잡아서 과학자들이 혼란스러운 것은 진화론이 틀렸다는 증거라는 코미디를 하기도 합니다.


4. 캄브리아기 폭발에서 모든 생물이 다 나타나서 진화론이 무너졌다죠? 
큰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 생물학적인 캄브라아기 폭발입니다. 캄브리아기는 대략 5억4천만년 이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멸종한 생물과 현재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생물들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전에는 해파리나 벌레와 같은 화석만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윈의 진화이론과 맞지 않는 말입니다.
 
아니죠.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란 표현이 뭔지를 모르시네요. 그 전까진 화석으로 남을 정도의 딱딱한 몸통을 가지지 못했던 생물들이 그때가 되자 비로서 화석으로 잘 남을 수 있게 돼서 여러 가지 신비한 또는 괴상한 디자인들을 갑자기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또한 다양한 생물의 출현 그 자체가 서로간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만들어 다시 그 진화 자체를 촉진시켰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제한이 있습니다. 물 속에 사는 아주 조그만 생물들 뿐-! 그 후 시기의 지층에서 나오는 화석에 비하면 100% 너무나도 조그맣고 간단한 생물들일 뿐입니다. 거기서 코끼리 화석이라도 나왔다면 (개구리라도 상관없지만) 진화론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었는데 그렇게 되진 않았죠. 비록 다 조그맣고 간단한 생물들이었지만, 그래도 과학자들은 그 다양한 디자인에 경탄했고, 나중에 각각 다양한 생물 종으로 진화될 것이란 의미를 포함해 '폭발'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창조과학'이 맞는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왜 캄브리아기에서 눈이 5개나 되는 괴상한 생물 등을 만들었다 멸종시키셨을까요? 진화론에선 여러 가지 다양한 디자인들이 시도됐다가 자연선택에 의해 사라지고 변화되어 지금은 없다고 합니다. 창조과학으론 어떻게 설명하죠? 창조과학에선 캄브리아기를 포함해서 화석으로만 남은 생물이 지구상에서 모두 사라진 것을 뭐라고 하나요? 성경 어디에 하나님께서 생물들을 멸종시키셨다고 했나요? 노아의 홍수는 생물 전체를 멸종시킨 게 아닙니다. 노아의 방주에 최소한 한 쌍씩은 살려 놓으셨죠. 성경에 따른다면 단 하나의 생물 종도 멸종시킨 적이 없습니다. 노아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그 많은 생물 종들을 방주에 싣지 않았나요? 노아의 홍수 후에 수많은 생물들을 하나님이 따로 골라 멸종시키셨다고 성경에 나오나요? 아니면 하나님의 설계는 보잘것없었기 때문에 생물들이 저절로 다 멸종했나요? 창조론으로는 아무 것도 설명이 안 됩니다.

그리고 창조과학에서 캄브리아기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100% 말이 안 됩니다. 창조론에 따르면 캄브리아기 자체가 없죠. 모든 지층과 화석이 노아의 홍수로 (4000년 전) 한꺼번에 만들어졌다고 하니까요.

5. 유명한 교수님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진화론은 무너지고 창조론이 맞는 건 이미 선진국에서는 상식인데 한국만 진화론이 사실인 것처럼 교육되어서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연세대의 이영욱 교수님이라는 아주 유명한 분이 오셔서 창조론이 맞다고 했다면서) 그 분께서 말씀하시길 진화론이 우리나라처럼 사실인 것처럼 교육되는 현실이 우리나라의 기독교와 과학 사이의 괴리를 낳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현재 미국에서는 창조론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는 주(州)가 많이 있으며 진화론과 더불어 창조론을 배우는학교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제일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정말로 그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제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런 새빨간 거짓말이 교회에서 그것도 교수님이란 분이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미국에서 창조과학 교육은 헌법에 위배되는 '위헌'이라서 모든 주에서 87년부터 금지됐습니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그때 몇 살이었나요? 이미 얼마나 오래 된 이야기인지 좀 생각해 보세요. 제 오픈사전 글을 읽으시면 잘 아실 수 있습니다.

- 오픈백과: 창조론의 변신과 관련재판 결과들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205&eid=p0JIPIT2tBl+m5Il8Ws9WxLpKiar6BsZ&state=R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요?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진화론을 버리고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씀일까요? 이런 식으로 터무니 없게 대한민국을 엉터리 비난까지 하는 사람은 참 난감합니다. 혹시 그 교수님과 연락이 되시면 위의 제 오픈사전 글을 보여주시고 답변해 보시라고 여쭤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사실이라면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걱정스럽습니다. 이렇게 뻔뻔스럽게 거짓말 하는 분께서 유명대학 교수시니까요. 그리고 그런 거짓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교회 성단에서 기독교 교인들을 속인다는 게 우리나라 기독교의 현실인 것 같기도 해서 씁쓸합니다. 어떻게 교회에서 거짓말이 나오고 유언비어가 퍼질 수 있는지, 어떻게 그게 어떻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인지 설명이 가능한가요?

쓰신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 교수님은 자기도 모르면서 아는 척 했던가, 아니면 자긴 알면서도 교인들은 아마 미국 갈 일도 없고 과학논문 같은 걸 읽지도 못할 거라고 얕잡아 보며 뻔뻔스런 거짓말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천문학에서 훌륭한 업적을 내셨다는 분께서 왜 이런 거짓말을 하셨는지 정말 이상하네요. 이처럼 과학과 종교의 괴리는 바로 창조과학에서 만듭니다. 옛날의 창조과학식 기독교에서 지동설을 탄압하면서 종교와 과학은 서로 싸우는 것이란 이미지를 만들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창조론을 교육시키자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유일하게 난리 치는 미국에서조차 창조론 교육은 헌법상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고, 그러자 눈물겹게도(?) 그렇다면 '진화론이 진실은 아닙니다.'란 내용의 스티커 한 장만이라도 교과서에 붙여 보자고 어느 시골 마을에서 시도하다가 그것마저도 위헌 판결을 받아 좌절됐습니다. 대부분 창조론을 가르친다는 미국에서 왜 창조론자들이 이런 눈물겨운 노력들을 해야 하는지 이것도 창조론이 맞다고 주장하는 분들께 여쭤보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iiai/12025501 (서양 선진국에서는 창조론 교육을 한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는지를 떠나서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선진국에선 창조론 교육을 하는데 미개한 한국은 억지로 진화론만 가르친다는 거짓말까지 해야 하는 진짜 이유가 궁금합니다.

KAIST 석박사이며 교수(정확히는 전직 교수)라는 어떤 분의 창조론 강의 내용을 분석한 글을 덧붙입니다. 어떠한 식의 거짓 증언들이 창조론강의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 분 강연이 맞는지 제 글이 맞는지 차분하게 스스로 조사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http://blog.naver.com/iiai/36975678 (어느 창조론 강의 분석)

6. (추가) 다윈이 죽기 직전에 진화론은 틀렸다고 했다면서요? 다윈이 옛날에 대충대충 만든 이론이고 본인도 부정했다는데 그걸 왜 지금 정설로 받아들이죠?
 너희가 인터넷상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봤자 창조론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있다는 것과,길거리에서 기독교인을 만나면 말 한마디 못하는 건 사실이다. ... 다윈이 죽을 때, 진화론은틀렸다~!라고 말하고 죽었다는 거 몇십년간 비공개 였다지?지금의 과학도 밝히지 못한 거 수십개의 영역인데. 몇백년전의 한 인간이 갈라파고스라는섬에서 딩가딩가 놀다가 아. 자연의 무섭구나. 생명체는 이에 맞추어서 진화해왔을꺼야.라는 가설에 의해 진화론을 만들었고, 그 시덥지도 않은 이론이 지금은 정설로 받아진다.

다윈이 죽었을 때 진화론이 틀렸다고 했다는 말은 창조론자들도 부끄러워하는 '사악한 유언비어'로 유명합니다. 이 글을 내게 남기신 '기드온'님께서는 도대체 어느 위인전, 어느 문헌에 다윈의 그런 기록이 남겨져 있는지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게다가 거기에 살이 덧붙어 '몇십년간 비공개'였다는 새로운 충격적인 사실(?)은 어디에서 알아낸 것인지도 참 궁금합니다. 이렇게 '유언비어'란 자기 맘대로 살이 덧붙여지면서 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이 되곤 하죠.

그리고 현재 21세기의 진화론은 '다윈'이 혼자 만든 게 아닙니다. 다윈은 결정적으로 '자연선택'이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나를 한다는 것을 평생에 걸친 증거수집과 연구를 통해 밝혀낸 것이고 그 후 수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다윈이 미처 몰랐던 새로운 생물학적, 지질학적, 천문학적, 통계학적, 고생물학의 신발견들이 추가되면서 치밀하게 검증되고 보강된 게 '현대 진화론'입니다. 이미 이 진화론은 다윈 혼자만의 업적이 아니며 다윈이 죽기 직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0.01%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학이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는 창조론자들 수준의 과학이라면 모든 과학이론은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만일 상대성이론이 틀렸다고 아인슈타인이 죽기 직전에 남긴 유언이 밝혀진다면? 언제 그런 사실이 밝혀질지 모르니까 상대성이론은 영원히 맞는지 틀린지 알 수 없겠네요? 뉴턴이 죽기 직전 남긴 만유인력이 틀렸다는 쪽지 메모가 극적으로 발견된다면? 이 지구상에 뉴턴이 남긴 쪽지가 100%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없죠? 언제 어떤 고문서가 발견될지 모르죠? 자, 그렇다면 만유인력의 법칙도 함부로 맞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과학이론이란 어떤 사람의 생각이 처음에 나온 후,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검증되며 정설로 굳어지는 것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다윈의 마지막 말' 운운하는 기드온 같은 창조론자 분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낮은 수준인지 사실 말하기도 안타깝습니다. 아마 앞으로는 다른 창조론자분들께서 앞장서서 이런 허접한 주장을 막아주시리라 기대해 봅니다.



2014년 8월 20일 수요일

인류의 진화


The Last Human: A Guide to Twenty-Two Species of Extinct Humans
Esteban Sarmiento 외 (Yale University Press, 2007/5)

닛케이 사이언스 2007년 4월호에서 소개한 책이다.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춘 22종의 인간의 선조를 복원했다고 한다. 미국자연사박물관 고인류학자와 예술가가 많은 연구자들의 협력을 얻어 실현시킨 기획이라고 한다. 사실 최근 수년 동안 인류 진화에 관해서 상당히 많은 사실들이 밝혀졌고 5년 전이나 10년 전과도 내용이 상당히 달라진 부분들이 많다. 이제서야 일반인들을 위해서도 이러한 최신 내용이 들어간 서적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이 책을 소개한 김에 인류 역사에 관해 현재 알려진 내용들을 좀 정리해 본다. '인류진화의 700만년 by Makoto Mitsui 2005'가 많은 참조가 되었다.

일반인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인류 진화의 최근 성과가 알려져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나도 일반인이지만), 사실은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하기까지를 밝혀주는 증거들은 많다, 위 책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20여 종의 중간종 화석들이 나왔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발견들이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현대 생물학은 아프리카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런 화석들만이 아니라 유전자분석으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분석하는 방법들을 발전시켰고 그러한 연구결과들이 서로 맞물려져서 인류 진화의 역사는 더욱 정교하게 밝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현재 쏟아지는 최신 연구 성과 분석에 바쁜 셈이다. 침팬지로 진화되는 길과 갈라진 후, 인간의 진화 역사를 가리키고 있는 중간종들은 대충 다음과 같다. 물론 이 중에는 인류의 진화로 직접 연결되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침팬지 같은 원숭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갖추고 진화의 역사에서 갈라진 후였던 것들이다. 즉 원숭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인류의 특징에 조금 더 가까웠던 종들이다. 그리고 물론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중간종 화석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Sahelanthropus tchadensis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700만~600만년 전)
2002년 프랑스 등의 연구팀이 보고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인류 (Nature 418 (2002) p145-151, A New Hominid from the Upper Miocene of Chad, Central Africa). ‘생명의 기원’을 뜻하는 ‘투마이 (Toumai)’란 애칭이 있다. 거의 완전한 두개골이 발견됐고 뇌 크기는 360~370cc로 침팬지와 비슷했다. 인류의 기원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게 했을 뿐 아니라, 발견 장소가 아프리카 중앙부 차드였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그 전까지 인류 선조의 화석들은 모두 아프리카 동부에서만 발견되었었기 때문이다. 700만년 전에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조상에서 인류가 갈라진 직후에 나타난 가장 오래 된 인류의 화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정보를 제공했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 정말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종의 화석인가에 대해서 신중하게 검토되었는데 후속 연구들에 의해 거의 확실한 것으로 굳어진 듯하다. 초기 보고가 SCIENTIFIC AMERICAN 2003년 1월호 'An Ancestor to Call Our Own'에서 상세하게 이루어졌다(닛케이 사이언스 2003년 4월호).

Orrorin tugenensis (오로린 튜게넨시스, 600만~580만년 전)
400만년보다 오래된 인류 화석 중에서 유일하게 대퇴골 화석이 나와 초기 인류가 두발로 걸었다는 걸 밝혀줬다.  프랑스 파리의 국립자연사박물관 연구팀 (Martin Pickford)에 의해 2001년 발표되었고 장소는 북케냐. 대퇴골 특징은 침팬지와도 현대인과도 달라서 독특한 2족 보행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Science 2008년 3월 21일호, 조지워싱턴대학 Brian G. Richmond의 보고에 따르면 오로린 튜게넨시스는 320만 년 전의 루시와 비슷한 형태로 걸었다고 한다. 대퇴골 상부 8곳의 계측치를 현생인류, 현생유인원, 화석인류의 합계 약 300개체에서 비교했는데 초기 호모속과는 달랐다는 의미이다. 현대인과 비슷한 걸음이 된 골격구조 변화는 약 200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속 이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Ardipithecus ramidus (아르디피데쿠스 라미두스, 440만년 전)
92년에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어 94년 Nature에서 발표됐다. 같이 발견된 동물 화석으로부터 초기 인류가 살았던 환경이 넓게 펼쳐진 초원이 아니고 오히려 숲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단서를 제공했다.

Australopithecus anamensi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 420만~39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중에서는 가장 오래 된 종. 케냐에서 발견되었는데 치아 등에서 라미두스와 아파랜시스의 중간적인 특징이 있다. 최근에 새롭게 치아와 대퇴골 화석 등이 발견되었고 아파랜시스의 직접적인 선조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됐다. (Nature 440 (2006) p883- , Asa Issie, Aramis and the origin of Ausralopithecus)

Australopithecus afarensi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380만~300만년 전)
대표적인 원인 화석인 ‘루시 (Lucy, 320만 년 전)’ 등으로 유명한 종. 루시는 에디오피아에서 발견된 여성 화석으로 몸 전체의 40%가 나왔다. 탄자니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발자국 화석 (350만 년 전)의 주인공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2000년 12월에는 330만 년 전 사암에 묻혀있던 3살 아기 화석이 발견됐다. 사암을 치과용 드릴로 긁어내는 섬세한 골격분리 작업이 5년 동안 이루어졌고 2006년에 발표됐다. (Nature 443 (2006) p296-301, A juvenile early hominin skeleton from Dikika, Ethiopia) 아기의 양 어깨는 새끼 고릴라와 비슷한 형태로, 나무에 기어오를 수 있었겠지만, 대퇴골 각도는 현생 인류와 흡사하여 두 다리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걸을 수 있다는 걸 시사했다. 만약 이 아기가 성인까지 자랐다면 뇌는 침팬지보다 조금 더 컸을 것이고 이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시기부터 뇌 성장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판 2006년 11월호에서도 자세하게 다루어졌다.

Kenyanthropus platyops (케냔트로푸스 플라티옵스, 400만년 전)
Australopithecus africanu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300만~250만년 전)
1925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최초의 원인. 남쪽으로 이동한 아파렌시스가 진화한 집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Australopithecus garhi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250만년 전)
처음으로 석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뇌의 크기는 450cc로 작지만, 호모속을 향한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석기를 사용한 흔적이 아닌 실제 인류 최초의 석기는 260만~250만 년 전의 것이 발견되어 있다. (Nature 385 (1997) p336)

- 다음 3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이 아니라 파란트로푸스속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270만~120만년 전)
Australopithecus aethiopicu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에티오피쿠스)
Australopithecus robustu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
Australopithecus boisei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위 3 종은 ‘강건한 원인’에 속하는 강력한 턱 근육과 큰 어금니가 특징이다. 호모 에렉투스 등과 시대를 공유하지만 뇌는 그다지 발전되지 못하고 절멸했다.

Homo habilis (호모 하빌리스, 240만~170만년 전)
1964년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모속의 최초의 인류로 뇌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것도 옛날 과학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부분인데 인류의 가장 뛰어난(?) 특징을 ‘우수한 두뇌’로 생각하기 쉬우므로 인류의 진화는 먼저 뇌가 커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발로 걷는 것이 먼저 시작되었고 뇌 용량이 커지는 것은 이렇게 훨씬 뒤에 와서다.

Nature 2007년 8월 9일호 보고에 따르면 케냐의 144만년 전 지층에서 호모 하빌리스의 화석이 발견됐다. 이 시대는 같은 지역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가 약 50만 년 정도를 함께 살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냥 단순하게 호모 하빌리스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진화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건 어려워졌다는 의미로 인류진화의 계통수가 더욱 복잡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Homo georgicus (190만~180만년 전)
프랑스와 그루지아 과학자들로 구성된 팀에 의해 그루지아 공화국에서 발견되어 2002년 보고되었다 (Science 297 (2002) p85-89, A New Skull of Early Homo from Dmanisi, Georgia). 뇌용량이 600cc에 불과한 것이 놀라웠는데 이는 인류의 선조가 뇌와 체형이 현생인류와 거의 비슷하게 된 다음에 아프리카를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아프리카를 출발해서 유라시아에 도착했었음을 증명했다. 물론 이것을 가지고 간단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이 시기에 아프리카를 출발해 진화한 그룹이 아니라 나중에 새롭게 아프리카를 나온 그룹이 현생인류로 전 세계에 퍼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아프리카를 출발한 집단이 역사에서 여러 번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또 반대로 아프리카로 돌아간 집단도 있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관련 내용은 SCIENTIFIC AMERICAN 2003년 11월호 'Stranger in a New Land'에서 소개됐다 (닛케이 사이언스 2004년 3월호).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들 외에도 계속 새로운 화석들이 나오고 있어서 공식 보고서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Homo erectus (호모 에렉투스, 180만~10만년 전)
키가 커지고, 현대인과 거의 비슷한 체형이 되었다.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로 알려진 자바원인과 시난트로푸스 페키넨시스로 불리는 북경원인은 현재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된다. 180만~150만 년 전의 아프리카에 있던 그룹을 호모 에르가스터 (Homo ergaster)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호모 에렉투스 관련으로 인류의 선조가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진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Nature 423 (2003) p692-695 'Out of Ethiopia'에서 언급되었다.

Homo ergaster (호모 에르가스터)
Homo antecessor (호모 안테세소르)
Homo heidelbergensis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하이델베르크인), 60만~20만 년 전)

뇌 크기가 1200cc를 넘어 현생인류와 거의 다르지 않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보도인(60만~50만 년 전), 카브웨이인 (50만~20만 년 전) 등이 대표적인 화석들로 아프리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었다.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분화되기 전인 것은 거의 확실한 듯 하다.

Homo neanderthalensis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네안데르탈인), 20~3만 년 전)
하이델베르겐시스의 그룹이 유럽해서 진화한 것으로 여겨지는 그룹. 뇌는 현생인류보다도 큰 편에 속하지만 눈썹 부분의 두개골 융기나 머리 형태 등에서 원시적인 특징이 남아있다. 현재까지는 이들이 현생인류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현생인류에 의해 진화에서 주인공 자리를 바꾼 것으로 여겨진다. Nature 2006년 11월 16일호와 Science 2006년 11월 17호에 의하면 현시점까지는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에서 얻은 DNA 분석 결과를 본다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재 인류가 교배를 했었다는 증거는 얻어지지 않았다. 38000년 전 네안데르탈인 대퇴골 화석의 DNA 분석결과에 의하면 현대인과 99.5% 이상 게놈이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침팬지와 인류는 99%가 일치)

Homo floresiensis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2만~1만 년 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에서 발견되어 2004년에 보고되었다. 뇌 크기는 침팬지 정도이고 신장도 1m정도로 소형인 것이 특징이다. 인류도 다양하게 갈라진 진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인데, 혹시 무슨 병에 걸린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을까 등의 의문점들이 있었지만, 결국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다른 새 종이라는 것으로 2007년에 추가연구들을 통해 밝혀졌다. (연합뉴스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1533933§ion_id=001&menu_id=001)
이에 따라 초기 호모 사피엔스 시대에 살고 있던 호미니드 수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사피엔스의 4종류로 늘어났다. 닛케이 사이언스 2005년 4월호에서 관련된 내용을 다뤘다.

Homo sapiens (호모 사피엔스, 20만~현재)
여기 소개한 것들은 인류종의 이름이지 화석 이름이 아니다. 화석 그 자체는 예를 들면 AL288-1 (루시 화석), KNM-WT15000 (오리오코토메 보이 화석) 등과 같은 기호로 불린다. KNM이란 것은 케냐 국립박물관의 명칭이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다른 생물종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인류의 진화만큼은 뭔가 순서대로 알기 쉬운 하나의 길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화되었을 거라고 예상했다. 원숭이와 아주 비슷한 종, 중간쯤 되는 종, 현대인류와 비슷한 종으로 사다리처럼 진화되었을 거라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모습. 하지만, 나오는 증거들은 완전히 예상을 뒤엎는 것들이었다. 원숭이와 인류가 서로 갈라진 후에 엄청나게 많은 중간종들이 지구에 출현했고 각각 살던 시기도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구 생명의 역사 40억 년을 1년짜리 달력으로 만들면 인류가 탄생한 700만 년 전이란 12월 31일 오전 8시 30분 정도가 된다. 조금 앞으로 가서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침팬지나 고릴라도 포함된 유인원이 탄생한 것은 약 3천만~2천5백만 년 전이며, 이것은 12월 29일 오전 7시 경에 해당된다.

=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지지하는 최신 연구보고의 하나 =
Nature 448, 346-348 (19 July 2007)
'인류 선조집단의 병목효과가 현생 인류의 표현형 변이에 끼친 영향'
'The effect of ancient population bottlenecks on human phenotypic variation'

= 뉴스위크 한국어판 2007년 4월 25일,
DNA가 들려주는 인류 기원의 비밀(Beyond Stones & Bones) =
위에서 소개한 인류 조상 화석을 포함해 20여 종류의 화석을 소개하며 인간의 진화 과정은 일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형태라고 소개되었다. 화석 연구만이 아니라 DNA 연구를 통해서도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는 최근 연구내용들이 소개되었다.

2014년 8월 19일 화요일

지적설계론의 허구성 -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ID론 (지적설계론)의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것에는 ‘편모의 진화’가 있다. 베히가 'Darwin's Black Box (1996)' 에서 소개한 것인데, 편모처럼 복잡한 기관이 진화로 생겼을 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베히는 몇 가지 실수들을 저질렀는데 일부만 살펴보자.

지적설계론이란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단지 ‘무지’에 근거한 이론이라는 걸 알 수 있으며 아무리 잘 포장하더라도 결국 요점은 이렇다.

‘그게 어떻게 진화되었다는 건지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니까 진화일 리가 없다.’
이해가 안 되면 공부를 해야지 무조건 틀렸다고 주장하는 건 물론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베히는 그럴듯하게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한단계 한단계 부품이 덧붙여진다는 점진적인 진화로는, 어떤 기관이 완성될 때까지, 그 중간단계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므로 안 된다는 이야기다. 반쯤 조립된 쥐덫은 아무런 기능도 없고 그런 식의 진화로 쥐덫이 완성될 리 없다는 비유까지 들어가며. 베히는 무슨 공부를 안 했을까? 지적설계론자들이 모르는 부분을 살펴보자.

1) 진화로 생긴 변화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더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창조론자들이 정말 잘 틀리는 부분이다. 진화론에서는 A, B, C 순서로 진화가 일어났으면, 아예 없는 것보다는 A가 그나마 낫고 또 그것보다는 B가 조금 더 낫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가 후손에 넓게 남겨져 다음 진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이론을 검토하고 싶다면,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정말 A가 생존에 유리한 특징을 가질 수 있는지, 또는 A보다 B가 정말 나은지를 살펴야 한다. 하지만, 창조론자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지금 놀라운 구조의 C가 있는데 그게 A라면 다 죽지 살아남겠어요? 정교한 기관인 C가 아닌 것들은 다 쓸모없어요.’

이들은 곧잘 수많은 부품으로 정교하게 구성된 인간의 눈을 예로 들며 여기 부품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눈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고 따라서 점진적인 진화였을 리 없다고 한다. 자, 눈을 구성하는 몇 가지 부품에 이상이 생긴 사람들은 다 죽어야 하나? 안경 쓴 사람들은 뭔데? 눈이 거의 다 멀어 빛만 겨우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 ‘그런 눈 가져서 뭐 해요? 그냥 장님이 되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창조론자들은 모두 그렇게 눈이 완벽한가? 그리고 모든 생물이 다 인간과 똑같은 복잡성의 눈을 가졌나? 인간처럼 정교한 눈을 가지지 못한 다른 생물들의 눈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베히는 한 번도 언급하질 않았다.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 그나마 낫다는 것이 진화의 중요한 시작임을 이해해야 한다. 베히는 쥐덫에서 부품 하나만 빠져도 아무 소용없다고 저서에서 그림까지 그려가며 주장했는데 나무판 하나만 있어도 그나마 아무 것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 쥐를 잡지는 못해도 쥐구멍을 막을 순 있으니까. 쥐를 완벽하게 잡지는 못해도 잠깐 붙잡아 둘 수 있다든가, 방해할 수만 있어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앞과 비교해야지 왜 뒤와 비교하나? 그리고 베히에게는 안 됐지만 그 쥐덫비유마저도 철저하게 틀렸다. 쥐덫마저도 '환원가능한 복잡성'이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쥐덫이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비유마저도 틀렸다는 걸 설명하는 사이트
http://udel.edu/~mcdonald/mousetrap.html

2) 진화한 기관과 그 전 단계 기관은 똑같은 기능을 가질 필요가 없다.

어떤 생물에서 어떤 특정 기능의 기관이나 유전자가 다른 생물에서 전혀 다른 기능을 가지는 경우가 수 없이 많다. 즉 진화의 각 단계에서 한 가지 부품이 여러 가지 다양한 기능을 가지며, 그게 각각 생존에 유리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뜻이다.

베히는 쥐덫이 되는 진화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꼭 쥐만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쥐를 잡지 않고 방해만 해도 된다), 오토바이 부품들은 모두 꼭 오토바이 기능에만 쓰여야 한다는 식이었지만 비유조차도 틀렸다. 오토바이 부품들 중에 정말 오토바이를 위해서 탄생한 것들이 얼마나 될까? 고무타이어? 거울? 가죽의자? 엔진? 쇠 받침대? 핸들? 미안하지만 모두 다른 제품들에서 사용되던 것들이 조금씩 변형되고 모아져 오토바이의 완성으로 이어졌지 완전히 처음부터 오토바이만을 위해 모두 창조된 것들이 아니었다. 여기서 지적설계론 지도자인 베히는 오토바이를 비유하면서 그 부품(구부리거나 자르기 힘든 금속 부품들이 많다!)들이 저절로 변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냐며 진화론을 조롱했다. 자칭 생화학자가 그런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순간이다. 생물의 부품들은 변하기 위해 특수도구가 필요한 게 아니다. DNA 설계도의 염기서열 순서만 바뀌면 된다. 그건 생물학 기초에서 나오는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며 온갖 다양한 재질과 다양한 모양의 오토바이 부품 변하기와는 완벽하게 다르다. 모든 생물의 부품 정보는 DNA라는 한 가지 재질과 이중나선이라는 한 가지 모양에서 생기는 변화에서 출발한다.

자, 편모가 진화로는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졌다는 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지적설계론자라면 위 1)과 2)를 고려한 진화로도 불가능한지를 일단 검토하겠다. 하지만, 지적설계론자들은 연구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베히의 책이 나오고 10년이 지났지만, 당혹스럽게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검토한 게 연구한 게 없다.

그들이 과학자라면 철저한 연구로, 다양한 기관에서 다른 기능에 쓰이지만 편모의 부품으로 사용될 수 있는 비슷한 종류의 (상동) 단백질(부품)들이 없나 조사하고 도저히 편모 기관의 진화로 연결되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일단 확인해야한다. 편모의 부품인 단백질들의 아미노산 서열(설계도에 해당된다)은 모두 밝혀졌고 다른 수많은 기관들의 다양한 단백질 서열들도 밝혀졌다. 유전자 서열 데이터베이스, 단백질 서열 데이터베이스라는 것들이 그러한 것에 해당하며 그런 서열들을 컴퓨터로 비교, 분석하는 것은 생물정보학 (bioinformatics)의 발달과 함께 이젠 전공 학부생들도 가능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히는 생화학 전공 교수라면서도 그러한 연구를 전혀 하지 않았고 그 가치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는 저서에서 서열비교 연구를 살짝 언급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연구가 소용없는 짓이라는 무식한 주장을 했다. 8장에서 비유하기를 같은 회사에서 나온 컴퓨터 매뉴얼들을 비교한다면 많은 똑같은 단어나 문장이 있고 심지어는 단락이 같을 수도 있으므로 같은 곳에서 나왔다는 걸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컴퓨터가 타자기로부터 단계적으로 제작될 수 있다는 걸 알 수는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완전한 착각이다. 매뉴얼을 비교하면 추가된 기능과 삭제된 기능을 알 수 있고 어떻게 단계적으로 개선되어 왔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매뉴얼 여러 권이 섞여 있을 때 내용을 검토해서 그 순서를 알아내는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 않나? 같은 회사 것이라는 것밖에 알 수 없다고?

과학자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깨달았고, 이러한 서열비교 분석은 생물정보학 (bioinformatics), 비교유전체학 (comparative genomics) 등의 새로운 학문들이 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정도이다. 창조론자들의 진화론 공격에 과학자들이 어이없어 하는 이유는 진화론이 단순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나 '옛날 다윈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생물학, 생화학, 의학, 약학 등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Youtube에서 편모의 진화에 대한 동영상이 나왔다. 베히가 철저하게 틀렸음을 보여준다. 편모는 단순히 세포막에 구멍만 뚫려있던 시작에서 점진적으로 진화할 수 있고, 그 각 과정이 다 제대로 기능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 모델은 2003년에 발표되었고 실험에 의해 확인되었다. 편모를 만드는데 필요한 42개의 단백질(부품) 중 40개가 다른 기관에서 상동단백질로 존재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베히와 창조론자들이 공부를 안 해서 모를 뿐이다. 즉, 그들의 강력한 증거였던 세균의 편모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 아니라 '환원가능한 복잡성'이다.

== The Evolution of the Flagellum ==  Youtube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SdwTwNPyR9w

베히가 주장한, 그래서 지적설계론자들이 숭상하고 있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예들인 혈액응고, 세포내 단백질 수송, 인간의 면역계, AMP합성을 위한 대사경로들은 결국 100% 다 '환원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은 환원가능한 복잡성'이라는 게 이미 밝혀졌다.

http://www.talkorigins.org/indexcc/list.html
(CB200. Some systems are irreducibly complex.)

2014년 8월 18일 월요일

히틀러와 진화론



미국의 우익논객으로 알려진 Ann Coulter라는 사람이 최근 “Godless: The Church of Liberalism”라는 책을 냈다고 한다. 난 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 논객은 자기 책의 8~11장을 생물학의 진화론에 대해서 썼다. 문제는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주장하는 전형적인 현대 사이비과학인 지적설계론의 이론가인 Dr. William Dembski가 ‘내용에 자신을 가진다’고 주장하면서 뒷받침했다는 사실.

(http://www.uncommondescent.com/index.php/archives/1071)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나 한심해서 다른 창조론자들조차 이미 창피해서 부정한 이야기들 (예를 들어 중간화석이 없다 등)을 과학적인 내용이라고 조언했단다.

(Arguments we think creationists should NOT use;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aq/dont_use.asp)

뎀스키라는 사람은 창조론의 새로운 형태인 지적설계론에서는 가장 숭배하는 이론가의 하나인 듯 한데, 처음 예상보다 상당히 형편없는 이론가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에서 Ann Coulter는 전형적인 창조론 수법으로 진화론 공격에 나선다. 예를 들면 히틀러와 진화론 연결시키기 등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진화론은 강한 자가 이긴다는 것이고 히틀러는 진화론 신봉자라서 다른 민족을 말살하려 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타당한 주장일까?

물론 진화론에서는 강한 자가 이긴다고 하지 않는다. 자손을 더 많이 남기면 더 번창하리라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 뿐. 그건 강하지 않고 빠르지 않고 크지 않아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손을 더 많이 남기는데 성공하는 자연의 생물들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게르만 민족이 생물학적으로 뭐가 강한지가 진화론으로 어떻게 설명이 된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Ann Coulter의 주장을 살펴보자.

“Hitler’s world-view was based on Darwinism, not God,”

히틀러의 세계관은 신이 아니라 다위니즘에 기반을 둔단다. 창조론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히틀러나 공산당의 악랄한 만행은 다위니즘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착각. 그렇다면 가톨릭을 위해 기독교를 위해 유대교를 위해 다른 민족과 다른 종교인 사람들을 전쟁으로 죽이던 (창조론자들은 출애굽기도 읽어보지 않나?) 인류의 역사는 다 무엇인가? 그건 그러한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나쁜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참혹한 만행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다면 어떤 이론이든지 갖다 댈 사람들이지 어떤 이론이 100% 모든 책임을 질 수는 없는 것이다. 진화론이 생기기 전에 해당하는 인류의 역사 대부분이 전쟁으로 물들어있는 것을 창조론자들은 도대체 뭐라고 설명할 생각인가?

그런데, 사실은 여기서도 창조론자들의 금방 들통나게 될 뻔한 거짓말이 드러난다. 히틀러의 세계관이 진화론이었다는 게 어디 씌어 있을까? 누구나 다 아는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을 검색해 보면 ‘다위니즘’이 나올까? 여기 1권 2장이 인터넷에 있다.

(http://www.hitler.org/writings/Mein_Kampf/mkv1ch02.html)

본문을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대신 히틀러는 이러한 주장을 했다. 맨 마지막 문장이다.

“Hence today I believe that I am acting in accordance with the will of the Almighty Creator: by defending myself against the Jew, I am fighting for the work of the Lord.

히틀러는 전능하신 창조자의 뜻을 따르고 있으며, 신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이래도 모든 게 진화론 탓인가? 히틀러는 착한 사람인데 단지 진화론이 나빠서 그랬나? 그런데, 그런 증거는 없는 것 같고 히틀러가 기독교 신앙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주장은 위와 같이 증거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 2차 세계대전의 히틀러의 만행은 창조론 방식대로 따져서 (이젠 증거도 있으니까) 기독교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해야 될까?

물론 아니다. 인간의 바보같은 끔찍한 만행들은 인간의 행동이며 인간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지 어떤 사상이나 종교에 모든 원인이 있고 그것만 없애면 '평화'가 찾아오기라도 할 것 같은 생각은 너무 단순한 게 아닐까? 창조론자들은 진화론만 없어지면 이 세상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숭고한(?)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는 어느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기독교나 신을 앞세워서 하는 행위는 그만 두는 것이 좋다고 여겨진다.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황제펭귄과 지적설계론



2005년 9월 13일 The New York Times는 ‘March of the Conservatives: Penguin Film as Political Fodder’라는 기사에서 황제펭귄을 다룬 ‘펭귄 - 위대한 모험(March Of The Penguins, La Marche De L'Empereur, 2005)’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미국 일부 보수층에서 어떠한 식으로 받아들였는지 논했다. 기독교계 뉴스 잡지인 World Magazine 평론가는 깨지기 쉬운 펭귄 알이 남극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다는 사실 자체가 ‘지적설계론의 흔들릴 수 없는 증거’라고 했다. 보수파 평론가 Michael Medved는 이 영화가 일부일처제나 희생정신, 아이를 키우는 전통규범을 전면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자연을 통해 우리 인간이 어떤 아름다움이나 위대함, 숭고함을 느끼고 그것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는 것은 좋지만, 여기서는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들이 전부 드러났다. 대개 어떤 종교관이나 정치관, 도덕성 등을 강조하면서 어떤 사실을 억지로 자신들에게 편하게만 갖다 맞추는, 그리고 그 사실조차 비전문적이고 잘못된 엉터리 관찰과 착각으로 만들어진 경우이다.

황제펭귄이 왜 지적설계론의 흔들릴 수 없는 증거일까? 황제펭귄이 혹독한 남극 환경에서 잘 살아간다는 사실이 증거라고 한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자식을 낳고 키워서 번성할 수 있는 몸 구조와 생활습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론에서도 펭귄이 그러한 환경에 적응해 몸의 구조와 생활환경이 바뀌어 왔다고 하며 마찬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즉, 남극환경에서 잘 사는 펭귄은 얼핏 보기엔 지적설계론과 진화론 양쪽 모두의 좋은 ‘증거’이다. 다짜고짜 황제펭귄이 지적설계론의 흔들릴 수 없는 증거라는 주장은 ‘진화론’이 뭔지 모른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실은 여기서 중요한 차이점이 나타난다. 진화론에서는 혹독한 남극환경에 어느 날 갑자기 펭귄이 짠 나타났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원래는 다른 조상인 조류가 있고 그 일부가 남극으로 점차 이동하며 거기에 맞게 진화되었을 거라고 여긴다. 즉 조류로서 원래 하늘을 날기까지 했던 몸 구조와 생활습관을 가지면서 그걸 근본부터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고 기본구조 위에 여러 가지 변형과 추가옵션을 달면서 남극 환경에 적응했다는 게 진화론이다. 즉, 진화론에서는 남극 환경에 정말 잘 적응된 펭귄의 모습(나중에 추가되고 변형된 부분)이 있고 또한 불합리적이고 잘 이해가 안 되는 기본 모습(원래 조상에서 이어져 온)이 함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적설계론은 완전히 다르다. 지적설계자가 남극 환경에 맞게 펭귄을 처음부터 분자단위로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세균 편모 모터까지 지적으로 설계할 정도니까) 완벽하게 설계한다. 따라서 모든 것 또는 대부분이 남극 환경에 적합하게 지적으로 되었지 일부러 다른 조류와 무슨 연관성을 가진 특징을 남길 필요가 없다.

자, 다시 황제펭귄을 살펴보자. 펭귄이 하늘을 날지도 않으면서 다른 새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속이 빈 뼈 구조를 가졌다는 건 지적설계론에서 어떻게 설명할까? 펭귄은 알을 품을 때 발 위에서 힘들게 균형을 맞추며 따뜻한 몸으로 눌러서 덥힌다. 만약 알이 몇 초만이라도 얼음 위에 굴러 떨어지면 얼어서 깨지기 때문이다. 지적인 설계라면 몸 안에서 발육시키거나 알 껍데기을 더 두껍게 하거나, 아니면 따뜻한 곳에서 살게 하면 되지 않나? 그리고 왜 황제펭귄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암수 교대로 100km 이상이나 걸어서 바다까지 갔다 올까?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지만, ‘지적설계론’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새답게 날아서 금방 갔다 오면 될 걸 왜 걸을 수밖에 없는지 지적설계론에서는 어떻게 대답할까?

즉, 지적설계론자들은 늘 자기들이 종교적이 아니고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며, 구체적으로 황제펭귄을 강력한 증거라고까지 내세우면서도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전혀 고민하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어설픈 관찰과 착각으로 엉뚱한 (과학적?) 결론을 내린다.

비슷한 예로, National Geographic 2006년 7월호의 ‘직립 보행, 그 허와 실’을 읽어보자. 인류의 조상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이래, 민첩해지고 지능도 얻었고 섬세한 동작이 가능한 손을 가지게 되었다. 지적설계의 증거일까?

인간은 네 발로 걷던 동물의 구조가 그 기본인 탓에 발에 통증을 느끼고 나이가 들면 대부분 무릎을 다치기 쉽고, 정말 많은 사람이 요통에 시달린다. 큰 뇌를 가진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현대 의학을 총동원하면서도 아직 엄청난 위험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100년 전만 해도 가임 여성의 주 사망 원인은 출산이었다. 두 발로 걷는 데 필요한 골격 구조를 얻는 대신 큰 머리와 넓은 어깨를 가진 아기가 통과하기 어려운 골반을 갖게 된 것이다. 침팬지와 다른 영장류는 인간이 비해 출산이 훨씬 쉽다. 또한, 손목 관절의 특별한 진화는 섬세하고 교묘한 손 기술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수근관증 같은 손목 질환에 취약하게 되었다. 누군가 지적인 존재가 설계한다면 분명히 이렇게 만들지는 않는다. 진화는 명백하게 땜질을 할 뿐, 기술자 역할은 못한다는 게 National Geographic 의 요점이었다.

사실 지적설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연을 좀 더 정확하게 관찰한다면, ‘완벽한 설계’를 내세우는 지적설계론과 ‘조금씩 땜질 방식으로 적응시킨 설계’를 내세우는 진화론 중에서 맞는 건 진화론이라는 걸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마치 성경처럼 숭상하며 늘 인용하는 베히의 ‘다윈의 블랙박스’는 필사적인 변명을 늘어놓았다. 제10장에서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디자이너의 정신분석에 의존하는 게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한다. 설계자가 확실하게 가르쳐 주지 않는 이상 설계자가 뭘 어떻게 하든 말든 그 이유를 알아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식한테 늘 가장 비싸고 좋은 장난감만 사주지 않는다는 걸 비유라고 들어서 겨우 한 변명이다. 뛰어난 지적설계론 이론가라는 뎀스키도 너무 ‘완벽’을 요구하지는 말라고 주장한다. 정리해 보자.

1. 어떤 생물을 관찰하면서 완벽한 설계라는 식의 허풍은 떨지 말자. 어느 경우에서도 (황제펭귄, 인간의 눈, 인간의 직립 보행) 그런 관찰 결과는 없다. 지극히 편협하고 어설픈 관찰에 근거한 주장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설계론에서 가장 숭상하는 책에서조차 설계자가 꼭 모든 걸 완벽하게 설계하지 않는다는, 그건 설계자 맘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을 정도이다. (지적설계론을 주장할 때는 최소한 자기들 이론에 대해서라도 잘 알아보고 나서 하는 게 좋다고 여겨진다.)

2. 결국, 그렇다면 ‘(환원 불가능이 어쩌고저쩌고) 완벽한 설계’로부터 지적설계를 증명하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디자이너는 자기 맘 내키는 대로 불완전하고 지적이지 못한 설계를 여기저기 해 놓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뭘 어떻게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이론을 세우겠다는 것일까? 지적설계론이 제대로 된 증거도 없고 과학논문도 못 내면서 빙빙 도는 말장난에 그치는 이유는 여기 있다고 여겨진다.

마지막에 황제펭귄으로 다시 돌아와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 Michael Medved는 황제펭귄의 일부일처제를 찬양했다. 그런데 그가 인용한 바로 그 영화에서 황제펭귄의 일부일처제는 ‘계절 한정’이라고 가르쳐 준 것은 왜 무시했을까? 우리 인간이 매년 상대를 바꿔가면서 부부가 되는 게 옳다는 뜻인가? 펭귄이 그렇게 도덕적으로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가?

그리고 지적설계론에 의지하려는 기독교인들에게 궁금한 점. 펭귄이 일부일처제가 아니면 일부일처제를 포기할 생각인가? 인간이 진화한 존재라는 게 밝혀지면 그 다음 날부터 인간의 존엄에 대한 모든 도덕성을 버리고 살인과 약탈,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갈 생각인가? 우리가 자연을 아끼고 서로 존중하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을 스스로 못 하고 꼭 무슨 과학이론이 뒷받침되고 뭔가를 증명해 주어야만 하나? 곧잘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며 과학을 비난하고 진화론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모든 걸 ‘머리’로 해결하고 ‘이론과 증거’가 없으면 자기는 ‘인간’을 포기하고 ‘신앙’을 버리겠다는 식으로 주장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도대체 진화론자와 창조론자 어디가 더 과학맹신주의이고 과학과 증거에 매달려서 모든 걸 ‘머리’로만 해결하려 하는 걸까?

이건 기본적인 과학자의 태도도 아니고 기본적인 신앙인의 태도도 되지 못한다고 여겨진다.

2014년 8월 5일 화요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지적설계론



창조론의 최신 변형이론인 지적설계론의 총본부는 Discovery Institute라는 곳이고 그 연구소 소속의 통일교신자인 Dr. Jonathan Wells가 2006년 새로운 책을 냈다. 제목은 “The Politically Incorrect Guide to Darwinism And Intelligent Design". 최신 과학이론을 담은 정말 과학적인 지적설계론 책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결국은 정치적인, 또는 종교적인 편견에 빠지면 이런 거짓말과 속임수를 쓸 수도 있다는 예를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The University of Iowa의 조교수인 Dr. Tara C. Smith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 책의 내용을 일부 인용해 비판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간단히 정리했다.

관련 블로그 : “Influenza viruses = evidence for design” by Dr. Tara C. Smith
(http://scienceblogs.com/aetiology/2006/08/influenza_viruses_are_intellig.php)

Dr. Jonathan Wells는 자신의 저서에서 “일부 과학자들은 새로운 가설을 만들기 위해 지적설계론을 사용한다.”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로 브라질의 대기권학자인 Forrest M. Mims III의 연구를 인용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주장했다.

1. 다위니즘에서는 병원성 바이러스가 태양의 적외선 방사(UV)에 대한 저항성을 아득한 과거에 진화시켰다고 시사한다.
2. 하지만, Mims의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공기감염세균이 UV에 약하다고 밝혀졌으며, 그는 이걸 지적설계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Mims는 지적설계론이 맞는다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햇빛의 UV 영향을 받기 쉬울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Wells writes (page 204-5, emphasis mine):
...some scientists are using ID heuristically to develop new hypotheses. For example, Darwinism suggests that pathogenic viruses should long ago have evolved resistance to solar ultraviolet radiation (UV). Yet studies in Brazil by atmospheric scientist Forrest M. Mims III show that most airborne bacteria are quickly suppressed by even small doses of UV, and he regards this as evidence for design. Mims reasons that if ID is true, flu viruses should also be susceptible to UV from sunlight, and he published a prediction that avian influenza could be "controlled by a substantial reduction" in smoke from regional burning in Southeast Asia that would allow UV from natural sunlight to "suppress the virus before infection occurs."

일단 내용을 읽어보면 Wells는 바이러스와 세균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면서 뒤죽박죽으로 책을 쓴 것으로 보이지만 그건 넘어가고, 아무튼 위 주장을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들을 알 수 있다.

1. 처음 전제부터 틀렸다. 마치 다위니즘에서는 UV 내성을 가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진화되었어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UV가 세균 등에서 병원성 DNA를 변화시켜 살균효과를 가진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일부 세균에서 내성을 가지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만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UV내성을 진화시키지 않았더라도 이건 여러 가지 세균이 항생제 내성을 진화시키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자연스러운 것에 불과하다. 인플루엔자 감염은 대개 직접 접촉이나 공기 중의 비말을 통해서이다. 오랫동안 공기 중에 머무를 필요도 없으므로 높은 UV 내성은 진화 상 바이러스에게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UV 내성이 진화되지 않았더라도 진화론으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

2.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의 전형적인 속임수가 또 드러나는데 Wells가 지적설계론이 맞는다는 걸 증명하는 과학자가 있다며 인용한 Mims의 연구결과를 보자. 전부 다 읽을 수 있다.
http://www.ehponline.org/docs/2005/113-12/correspondence.html
“Avian Influenza and UV-B Blocked by Biomass Smoke”

과학 전체의 거대한 음모(?)인 진화론을 무너뜨리고 이번에야 말로 과학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는 지적설계론을 증명하는 중요한 연구논문인 셈인데, 직접 보면 알 수 있지만 사전 심사도 없는 이 짧은 글이라도 찾아서 ‘증거논문’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지적설계론이 생각보다 절박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전 심사를 받는, 상세한 근거를 제시하는 길고 좋은 논문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왜 겨우 이런 논문일까? 물론 사전 심사를 받지 않은 짧은 글이더라도 내용이 정확하면 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렇질 못하다.

이 논문에서는 1995년 1997년의 브라질 화산활동으로 UV가 약해졌을 때 바이러스를 측정한 결과는 없지만, 병원기록에 따르면 인플루엔자 발생률이 늘었다든가, 타이와 베트남의 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는 식으로 인플루엔자가 UV에 약하다는 근거를 들었다. 먼저 이 논문은 논리상의 약점이 있어서 여기서 논한 데이터만으로는 인과관계를 밝힐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겨울에 사람들이 두꺼운 털옷을 입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과 겨울에 감기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는 두 가지 데이터를 가지고 ‘두꺼운 털옷은 감기 바이러스의 활동을 활성화시킨다.’라고 결론 내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순히 A의 수치와 B의 수치가 같은 시기에 함께 높아졌다고, 너무 쉽게 A는 B의 원인이라는 식으로 결론 내리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다. 논문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Mims는 논문의 어디에서도 "지적설계론"이라고는 한마디도 안 했다. Wells는 지적설계론이 맞는다면 UV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죽는다는 예측을 가설로 세울 수 있고 Mims는 그렇게 지적설계론을 근거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한 것처럼 주장했다. 하지만, UV가 온갖 미생물을 죽일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고 새삼스럽게 가설로 세울 것도 되지 못한다(Wells는 이것조차도 몰랐던 걸까?). 그리고 물론 이 사실이 진화론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더더욱 중요한 건 논문을 쓴 사람은 지적설계론이 맞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커녕 아예 한마디 언급도 안 했다는 것이다. 즉, Mims의 논문은 내용상으로 따져서 지적설계론과 눈곱만큼의 관계도 없으며, 형식상으로 문구를 따지더라도 지적설계론이라고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연구 결과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게 지적설계론을 지지하는 논문?

결국, 지적설계론 총본부의 자칭 과학자에게서 나온 2006년 최신 서적은 사이비과학의 전형적인 특징인 ‘엉터리 인용’으로 마치 자기들 이론에 무슨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는 것에 불과했다. 참고로 이 Dr. Jonathan Wells라는 사람은 지적설계론 숭상자들이 자기들 이론이 아주 과학적인 주장이라며 근거로 내세우는 ‘진화론이 의심스럽다는 주장을 한 과학자 100인의 서명’에 들어있다. 그 100인이라는 게 대부분 생물학이나 진화론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문가들인 가운데, 이 Wells는 그나마 ‘분자, 세포생물학 박사’로 소개된 사람이었는데 겨우 이런 수준의 책을 냈다는 걸 알고 조금 실망스러웠다.

시간들여 논문까지 다 읽기 싫거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간단한 검증방법을 알려드린다. 네이버에서 'UV 바이러스'라고 검색해 보시고 어떤 내용들이 나오는지 확인해 본다. 그리고 Wells가 지적설계론 (Intelligent Design)의 증거라고 제시한 Mims의 논문을 찾아가 내용을 읽지 않더라도 문자검색으로 "Intelligent Design" 또는 그걸 의미하는 그 어떤 단어 하나라도 본문 중에 나오는지 확인하면 된다.

2014년 8월 3일 일요일

진화론의 '우연'에 대한 오해




진화론의 '우연'에 대한 오해

진화론은 다른 모든 과학이론과 마찬가지로 100% 진리로 완전하게 정립된 이론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진화’가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난다는 걸 사실로 확인했으며 단지 그 정확한 메커니즘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진화론의 기반을 구축한 다윈에 의해 이미 두 가지 중요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하나는 유전정보에 ‘우연한 변이’가 생긴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적합했던 변이가 더 많이 선택되어 자손을 더 남긴다는 ‘자연선택 (적자생존)’이다. 물론 이것으로 진화가 완전히 설명되는 건 아니며 지금도 새로운 추가설명들이 나온다. 그런데 진화론의 가장 기본인 이 두 가지 설명이 대부분 잘못 받아들여져 심각한 오해를 일으킨다. 이건 우리가 자기는 상대성이론이나 소립자이론은 잘 모르지만 진화론은 잘 안다는 착각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진화론과 현대과학 자체를 부정하려는 반진화론자들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1. 과학이나 수학, 통계에서 말하는 ‘우연’

어떤 사건이 우연히 일어났다는 건 왠지 어쩌다 보니까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과학에서 말하는 ‘우연 (무작위,  랜덤)’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우연’과는 약간 다른 의미가 있다. 즉, 어떤 편견이나 선입관도 들어가지 않은 가장 공평하고 객관적인 조건을 가리키는 것이다. 유전정보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유전자가 늘어선 게놈에 돌연변이 등으로 DNA 서열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냥 DNA 염기 몇 개만 변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가 통째로 증폭 (gene duplication) 되거나 융합되는 현상 (gene fusion), 특정염기의 반복이 마구 늘어나거나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중간에 끼어드는 등의 수많은 현상이 생물학에서 발견됐고 여기에 어떤 ‘필연’은 없다. 어디에서 어떤 변이가 일어날지는 그 누구도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현상’이다.

진화론에서 ‘우연한 변이’가 생겼다는 말은 그 유전정보의 변화를 누가 옆에서 조정한 것도 아니고, 누가 열심히 정신 집중해서 된 것도 아니고, 또 누가 미리 다 정해놓은 순서에 따라 일어난 게 아니라, 공평하고 무작위한 변화가 유전정보에 생겼다는 뜻이다. 사실은 여기서 진화의 놀라운 창조성이 드러난다. 변이란 어떻게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며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처 상상도 못 했던 수많은 신기한 생물들이 있고, 지금도 계속 발견되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또한, 미생물에서 시작한 생물이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이어지는 믿어지지 않는 변화를 이룬 것도 미리 누가 유전정보 변화에 어떤 제한이나 틀을 정한 게 아니기 때문에 가능했다.

2. 우연과 우연이 겹쳐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의 생물이 만들어졌다는 게 말이 되나?

“진화론이 주장하는 바는 이 세포가 진화하여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이 저절로 만들어졌어야 하는 것이다.” (의학을 전공했다는 어떤 창조론자님의 글, 중간의 강조표시는 원문 그대로임.)
“당신 같은 진화론 추종자들에겐 "우연"이 '영웅'이지요~ 무조건 "우연"이라고 우기면 되니까요...” (진화론을 연구했다는 어느 목사님의 글)

우연히 저절로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우연히 저절로 어류가 생기고 우연히 저절로 양서류, 파충류가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질문이 많다. 당연히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 질문 자체가 바로 진화론의 가장 중요한 핵심 2개조차도 모른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자칭 진화론 전문가라는 창조론자들이 이런 비난을 하며 진화론을 비웃을 때, 반대로 그들이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개나 4개도 아니고 겨우 2개의 기본 핵심마저도 모르면서 어떻게 자기가 진화론을 잘 검토해 봤는데 그건 엉터리라고 할 수 있는가?

2개의 기본핵심은 처음에 설명했다. ‘우연’으로 수많은 변이가 생기고 그 변이 중 그때 그 환경에 가장 적합한 변이만이 엄밀하게 자연선택이란 ‘필연’으로 선택되어 그것만이 자손을 늘려나간다. 즉 ‘우연’만으로는 당연히 진화가 일어날 수 없다. ‘우연’이란 건 어디까지나 수많은 가능성을 테스트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 ‘우연’들이 전부 선택되는 게 아니다. 아미노산이 우연히 모여 여러  가지 복잡한 입체구조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어떤 기능성을 나타낸 입체구조의 단백질만이 선택된다. 물 속에서 생물은 수많은 변이를 거쳤고, 물 속에 가장 적합한 생활이 가능했던 어류가 탄생했다. 육지로의 생활환경 변화가 이루어진 곳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변이 대부분은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멸종됐고, 그 물가라는 환경에 적합한 양서류 형태만이 선택되어 자손을 남겼다. 파충류, 조류로의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변이가 우연히 만들어져 시도됐고 그 중에서 적합했던 극소수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진화론 어디에서도 ‘우연’만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 않는다. 자연선택이라는 ‘필연’이 반드시 그 뒤에 붙어있다!

3. 그래도 ‘우연’이 개입된 진화로 우리가 만들어졌다는 건 기분 나쁘지 않나요?

먼저 이건 과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우리가 기분 나쁘다고 거부하고 기분 좋다고 받아들이는 게 과학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모든 별들이 돈다는 천동설이 훨씬 기분이 좋으므로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첫 번째도 아니고!) 3번째 행성에 불과하다. 우리 태양은 은하 안에서 수천만 또는 수조 개가 있는 별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우주 전체에는 이런 거대한 은하가 또 1000억 개 정도가 있다. 여기의 어디가 기분이 좋아서 이 현대 우주론은 사실로 받아들이고 진화론은 받아들이지 못할까? 진화론자든 창조론자든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또 우리 인간이 뭔가 더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목적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엉터리 이론을 만들어 믿을 수는 없다. 어떻게 엉터리 이론을 만들어 믿는 것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만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정말로 믿는다면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진실을 하나하나 찾아가야지 자기 맘에 드는 것만 취해서 진리에 도달하게 될까?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얕은 지식에 매달린 인간의 교만이 아닐까?

그리고 ‘우연’이 개입된 것은 진화론만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 자체에 ‘우연’이 개입되어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만일 그때 거기에 그 위인이 없었다면, 그때 그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그때 그런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거기서 그녀가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을 거라는 건 누구나 안다. 어렵게 역사를 따지지 말고 바로 자신의 탄생에 대해 생각해 보자. 부모님의 수많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 가능성이 있었는데 어떤 한 시기에 어떤 한 특정 정자가 어떤 한 난자를 만남으로써 자기가 태어났다. 그 정자와 난자가 우연히 만났다는 표현이 틀렸나? 물론 그걸 신이 개입하신, 또는 운명이었다고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과학적인 설명으로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결혼하게 된 일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 일은? 그 모든 일은 우연히 그 시기에 그곳에서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던 우연한 사건들이 계기이지 거기에 무슨 정해진 계획이 있어 선조는 아무런 생각이나 자유의지 없이 만났다는 게 아니다. 자, 이제 자신의 탄생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우연함과 우연함이 엮어있었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그 이유로 이제 자신의 존재라는 건 별 가치가 없고 기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까? 우연과 우연이 겹쳐 현재에 이른 것이 너무나도 기적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는가?

4. 진화론은 목적성을 무시하고 그냥 우연히 인간까지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니까 문제다. 왜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다고 우기는가?

모든 자연현상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한 것이므로 그 사건으로부터 하나님의 뛰어난 능력과 목적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이전의 유럽인들 믿음이었다. 최근 창조론의 새로운 변신형태인 지적설계론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너무나 귀엽고 신비스러운 아기의 탄생,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자연에서 신의 손길을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 죄 없는 아기의 죽음, 끊임없는 고통과 죽음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먹고 먹히는 실제 모습에 대해서는 신의 손길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을 못 했던 이론이다. 아름다운 꽃의 달콤한 꿀은 곤충을 끌어들이는 목적을 가지고 세심하게 설계되었으며 거기서 신의 손길과 목적성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바퀴벌레와 온갖 병원균의 정교한 설계와 그 목적성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못 하는 이론이다. 바퀴벌레약 회사사람들을 위한 목적성이라는 식의 설명만이 있었을 뿐......

진화론의 기본 생각은 특별히 진화론만의 어떤 고집이 아니라 모든 과학이론이 가진 평범한 생각일 뿐이다. 모든 자연현상은 자연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우주 전체를 운행하는 메커니즘은 신이 직접 손으로 행성을 돌리고 은하를 회전시키는 게 아니라 만유인력의 법칙과 상대성이론 같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정교하게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탄생과 진화에도 엄밀한 자연법칙에 따라 정교하게 조정되는, 그 어떤 예외도 허락되지 않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 메커니즘의 주된 부분들이 현재 진화론으로 설명된다. 여기서 신의 손길이 개입되지 않는다고 그 메커니즘의 질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오해이다. 이미 정교하고 엄밀한 자연법칙이 준비되어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진화론이란 어쩌다 저절로, 어쩌다 저절로 진화한다는 거라는 잘못된 인식 (2번 답변) 을 가진다면 당연히 신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지겠지만 그런 진화론은 없다. 진화론에서는 엄밀하고 예외없는 자연법칙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는 자연법칙에 의해 이 우주와 이 세상 전체가 운행된다는 건 믿으면서 생명의 진화에서만 그렇게 믿을 수 없다는 이유를 아직 못 찾았다.


5. 과학적으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했다는 건 도덕성 상실을 가져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므로 진화론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건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과 타락한 진화론 세계관의 대결이다.

창조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은 진화론에 무슨 과학적인 결함이 있다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비과학적인 심리적인 이유로 진화론에 원초적 두려움을 가진다는 게 바탕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원숭이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 타락할 것이란 주장이다 (지적설계론자 낸시 피어시의 워싱턴 청문회 증언 등). 최근에는 과학적인 토론이나 증거제시가 불가능해지자 어느 쪽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냐는 논쟁으로 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다. 창조론 논쟁을 마치 (고귀한) 종교적 세계관과 (타락한) 세속적 세계관의 갈등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려는 시도이다 (박희주, 한국과학사학회지, 24권 (2002), 121-146).

물론 이건 조금도 과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적인 걸 따질 필요 없이 도덕성으로 결정하자는 주장이니까. 그렇다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기는커녕 자기가 속한 은하계에서조차 외곽 변두리 태양계에 속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도덕성의 상실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되나? 우린 그냥 흔하고 흔한 행성의 하나에, 그것도 은하 변두리에 사는 촌놈에 불과하니까 젊은이들이 타락할 거란 주장. 이건 말이 안 되고 저건 말이 되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점은 인간이 고귀한 존재인지 아닌지, 자신이 귀중한 존재란 세계관을 가질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우리 마음, 우리 결정에 달렸지 그게 어떤 조건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니란 것이다. 자신이 원숭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걸 꼭 무슨 과학자들이 증명해야 하나? 자신이 인간이며, 고귀한 존재라는 건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도 마찬가지로 고귀한 존재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 자신은 양반 상류계급 자손이 아니라 사실은 백정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부터 자신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백정의 자손이니까 타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새롭게 재출발하는 것이 옳은가?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을 소중하게 꾸며갈지 말지는 자기가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원숭이란 동물과 가까운 친척관계라는 진화론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 재미있는 점은 원숭이와 인간이 완전히 다르다며 차별화하려던 당시 유럽인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흑인 노예들과 유색인종들을 백인과 차별화시켰다는 사실이다. 18세기나 19세기 예를 들 것도 없이 21세기 직전까지 진화론이 철저하게 금지됐던 나라가 있다. 라디오 과학 프로그램에선 ‘진화’ 대신 ‘발전’이란 말을 사용해야 했고, 고대인류의 화석은 악마의 짓이라고 비난받았으며,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금지됐었다. 어느 나라였을까? 21세기 직전까지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정책을 추진하던 그 악명 높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진화론이 없어지면 모두의 도덕성이 향상되고 인종차별도 없어진다는 창조론자들 주장은 착각이다. 문제는 이론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다.

진화론을 탄생시킨 과학이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한 존재라는 걸 알게 해서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그건 창조론자들만의 생각이다. 자기는 괜찮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진화론에 얽매여 자기 세계관을 형성하고 타락할 것이란 착각. 하지만, 과학은 다른 것도 알게 해 줬다. 지구가 중심이 아니지만 그 대신 그 누구도 상상 못 했던 머리로는 이해되지도 않는 광대한 우주가 우리 위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 너무나도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지구라는 한 행성 위에서 인간은 더더욱 보잘 것 없는 조그맣고 힘없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바로 그 미미한 존재인 인간이 우주 전체의 모습을 관찰하고 우주의 역사를 해명하며, 자기들 지구 생명의 역사 전체도 밝히려는 존재로까지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당신은 우주 전체의 역사 137억 년 (COBE의 후속기인 관측위성 WMAP에 의해 확인되었음. 창조론이 주장한 초라하고 빈약한 6000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장대한 역사) 에서 최초로 나타난, 그 어떤 별이나 은하와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도 소중한 단 하나의 존재라는 것이다.

2014년 8월 2일 토요일

기독교 근본주의의 천문학 탄압

he Warfare of Science, 1876 / Andrew Dickson White
A History of the Warfare of Science with Theology in Christendom, 1896
 
본문은 위 책의 내용을 먼저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천문학에 관련된 내용만 따로 이곳에 옮겨 봤다. 기독교에서 갈릴레오에게 가해졌던 탄압은 유명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과장되기도 했다고 전해지지만) 그 후 갈릴레오가 맞다는 게 밝혀진 후 어설픈 변명들이 쏟아졌었다는 건 잘 몰랐었다.
 
물론 현재 가톨릭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했으며 갈릴레오가 맞았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기독교에서도 거의 없다. 하지만 아직도 현대과학, 현대천문학이 성경과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선 이 내용과 관련된 현재 21세기의 기독교 근본주의 창조론자들의 글을 소개한다.

=== 천문학
16,7세기의 신학자였던 프로문두스(Fromundus)는 ‘성서는 코페르니쿠스파와 싸운다.’고 선언하면서 지동설을 공격했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시편 19편15절. 지구의 정지를 증명하는 건 ‘대지는 영구히 정지한다.’는 전도서 제1장4절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성서의 여호수와기 제10장 12절을 보면 여호수와는 태양에게 정지하라고 명령했지 지구에는 명령하지 않았다.’며 지동설을 비판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메란히톤(Melanchton, 1497-1560)은 온건한 사람이었지만 지동설 비난은 심각했다. 그는 저서 ‘물리학원론’에서 지동설을 믿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시편과 전도서를 인용해 지구는 정지했고 태양은 그 주위를 돌며, 만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면 지구는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갈릴레오(Galileo, 1564-1642)에 대한 최초의 공격은 그가 목성의 위성을 망원경으로 발견했을 때였다. 목성의 위성은 코페르니쿠스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망원경을 보여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게 불경스럽다며 망원경으로 보인 위성은 악마가 만들어 낸 환영이라고 비난했다. 그라디우스 신부는 목성의 위성이 보이려면 인간이 그 위성을 창조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야만 할거라고 비난했다. 성서의, ‘대지의 토대는 굳게 고정돼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태양은 하늘의 한끝에서 다른 한 끝으로 달린다’는 성구들로 다 증명된 거라고 판정됐다.
 
도미니크 교단의 신부 캇치니는 사도행전 제1장11절을 인용해 지동설을 비난하며 기하학은 악마의 것이며 수학자들은 모든 이단의 장본인이라고 공격했다. 이러한 설교의 공적으로 교회는 그를 승진시켰다. 신부 로리니는 지동설이 이단일 뿐만 아니라 무신론적이라며 이단심판을 요구했다. 피렌체의 대사교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이론을 성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정식 판결을 내렸다.
 
이탈리아 가톨릭 신학자, 대사교인 벨라르미노(Bellarmino, 1542-1621)는 갈릴레오의 엉터리 발견이 크리스트교의 인류구제계획 전체를 위험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가 어느 한 행성에 불과하다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일부러 한 행성을 위해 만들어졌을 리도 없고, 만일 다른 행성들이 있다면 신은 아무 의미 없이 창조하시지는 않으니까 거기에도 인간들이 살아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아담의 자손이 되는가? 그들의 기원을 어떻게 노아의 방주와 연결시킬 수 있나? 또한 그들이 어떻게 구세주에 의해 죄의 사함을 받았겠냐고 했다.
 
갈릴레오의 조그만 망원경은 달에 산과 계곡이 있다는 걸 보고했다. 이 발견은, 달은 태양의 빛을 반사해 빛난다는 설과 함께 공격당했다. 창세기에 나오는 달이 위대한 빛이라는 서술과 모순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망원경이 태양의 흑점과 태양 자전을 의미하는 흑점의 운동을 밝혀내자 또다시 공격이 쏟아졌다. 피사대학 학장 에루치는 천문학 교수 카스테리에게 흑점에 대해 가르치는 걸 금지시켰다. 이스탄불대학 브사에우스신부는 이 발견을 학생들에게 전하지 말도록 천문학자 샤이너에게 명했고, 이러한 금지령은 유럽의 가톨릭계 대학들 전체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학적인 이론을 가르치는 게 허가된 건 1822년 교황 비오(Pius)7세에 이르러서였다.
 
1615년 갈릴레오는 교황 바오로(Paulus)5세 하에서, 로마의 이단심판(종교재판소)에 소환되고 태양의 흑점에 관한 갈릴레오의 서간에서 나온 두 가지 명제가 11명의 종교재판소 신학자들에 의해 연구됐는데, 두 가지 명제란 ‘1,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지 않는다. 2,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 였다. 여기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지 않는다는 건 신학적으로 틀렸고 성서에 위배되는 이단이며, 지구가 우주 중심이 아니고 태양 주위를 돈다는 건 철학적으로 불합리하고 틀렸으며 신학적으로도 올바른 신앙에 위배된다고 판정했다.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어떤 방법으로도 주장하면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아들여 퇴정을 허락 받았으며 이 재판은 비밀로 처리됐다. 1616년 3월 5일에는 교황 바오로5세에 의해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를 포함한 지동설을 주장하는 모든 책들이 금서가 됐다.
 
교회 결정에 순종하던 갈릴레오는 우호적으로 생각되던 추기경 바베리니가 우르바노(Urbanus)8세로서 교황이 되자 희망을 품고 코페르니쿠스설 지지를 암시하는 논문을 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고 다음 논문은 포기했다. 예수회 신부 메르키올 인코페르는 지동설은 모든 이단 중 가장 증오해야 하며, 가장 위험하고 창피하다고 했다. 영혼불멸이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론들보다 이 지구의 운동을 증명하는 이론이 훨씬 더 나쁘다고 공격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신중한 대화형식으로 쓴 ‘천문대화(두 세계에 관한 대화)’에서 코페르니쿠스설을 지지하고 프톨레오마이우스설을 부정하는 이론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논문의 인쇄는, 1616년 종교재판소에 의해 확인된 프톨레오마이오스설의 진리에 조금도 반대하는 게 아닌 그냥 한 장난스런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굴욕적인 서문을 붙이고서야 허가됐다. 그런데 반대로 이 서문은 오히려 반어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 교회 쪽이 전 유럽의 조소를 받았다. 1633년 70세의 노인 갈릴레오는 피렌체에서 로마로 끌려나와 재판을 받고 다시는 지동설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바로 여기 로마에서 1600년 조르다노 브루노는 과학적, 철학적 이단이라는 이유로 화형 당했었다. 그 전에는 대사교  도미니스(Dominis, 1566-1624)가 이단이라는 이유로 체포돼 감옥에서 죽었던 배경이 있다.
 
투옥(자택 연금?)된 갈릴레오는 가족, 친구, 일에서 추방당하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를 거쳐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자, 비로소 특별위원회에서 교회당국에 보고돼 자유의 몸이 되지만 그것도 엄격한 감시 하에서였다. 그에게 호의를 품었던 사람들이 가혹하게 처벌받았다. 사랑스런 제자였던 카스테리 신부(Castelli)는 추방됐고 친구였던 로마 종교재판소 장관 리카르디와 교황비서 치암폴리는 그 지위에서 쫓겨났다. 어느 과학논문에서 어쩌다가 그가 ‘명성높은’이라고 소개되자 종교재판소는 그걸 ‘악명높은’이라는 형용사로 바꾸게 명령했다. 박해는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됐다. 갈릴레오는 산타 크로체의 집안 대대로 이어오는 묘지에 묻히기를 원했지만 거절됐다. 친구들이 기념비를 세우려 했지만 허가 받질 못 했다. 교황의 희망과 종교재판소 명령에 의해 갈릴레오는 가족으로부터도 떨어져 기념비나 단 한 줄의 비석 글도 없이 굴욕적으로 매장됐다. 피에로체가 그를 위해 묘비명을 쓴 것은 40년 후였고, 유골이 산타 크로체로 옮겨져 그럴듯한 묘석이 세워진 것은 100년 뒤였다.
 
=== 교회의 기만적 패전처리
갈릴레오를 굴복시킨 사람들은 결국 갈릴레오가 옳았다는 진실이 밝혀짐에 따라 다음과 같은 방식의 총퇴각을 시도했다.
 
1. 갈릴레오가 벌을 받은 건 지동설을 주장해서가 아니라 성서를 근거로 그걸 주장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종교재판에서 갈릴레오의 두 가지 명제는 성서에 위반되거나 신학적 견지에서 진실인 신앙에 반대된다는 것이었고 교황 우르바노에 의해 금서로 된 책들은 ‘지구의 운행을 긍정하는 모든 서적’이었므로 말이 안 된다.
 
2. 갈릴레오는 이단 때문이 아니라 명령무시 때문에 벌을 받았다.
-- 판결문에서는 ‘이단’에 대해 논하고 있지 ‘명령무시’는 언급하지도 않았다는 걸 생각한다면 근거가 없다.
 
3. 갈릴레오는 교황에 대한 존경이 없었기 때문에 단죄 받았다.
-- 증거문헌들은 갈릴레오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참을성 있게 교황에 대해 순종적이었음을 나타낸다. 만일 이 변명이 옳다면 공식적으로는 전혀 다른 이유로 벌을 내린 교황과 신학자들, 종교재판소 관련자들 모두가 거짓을 범했다는 게 되며 재판 전체의 품위를 추락시킨다.
 
4. 갈릴레오에 대한 박해는 아리스토텔레스파 교수들과 실험적 방법을 주장하는 교수들간의 반목에서 생긴 것이며 교황 우르바노는 처음엔 갈릴레오 편을 들려고 했다.
-- 이건 교회의 신성한 지도권이 학자들간의 논쟁에 휘말릴 정도로 어이없는 것이며, 또한 교황이 명백한 진리에 아주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데 당파를 이용했다는, 오히려 교회를 어떤 세속단체로 전락시키는 변명이다.
 
5. 갈릴레오의 단죄는 잠정적인 것이었다.
-- 이 변명은 어떤 논리가 ‘성서에 위반하는 것’이며 ‘진실된 신앙에 위배된다’고 정식으로 선고된 경우 그 선고가 ‘잠정적’인 것이라는 말이 된다. 교회에서 말하는 진리라는 것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는 점이 간과됐다.
 
1850년 교황청의 공약에 의해 갈릴레오에 관한 재판 기록원본들이 공개됐다. 하지만 공표담당 마리니는 공식공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헌은 빼고 어떤 부분은 내용을 덧붙여 갈릴레오는 이단 때문이 아니라 명령무시 때문에 단죄된 것이란 거짓말을 퍼뜨렸고 이를 인용한 문헌들도 나왔다. 하지만 교활한 마리니와 달리 교회에 헌신적이면서도 거짓말을 할 줄 몰랐던 레피노와는 1876년 아무런 수정 없이 중요 문헌 전부를 공표 했고 마리니의 거짓말들이 탄로 났다.
 
6. 마지막으로 나온 변명은 교황이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의 학설을 단죄한 건 교황으로서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였으며, 따라서 교회 자신은 그 학설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이었다.
-- 아무 근거 없는 변명에 불과했다. 교황 우르바노 시대 이후 17세기 교회에서 이 판결이 교황과 교회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고 교황 우르바노 자신이 1616년 선고는 교황 바오로5세와 교회에 의해, 1633년의 것은 그 자신과 교회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었다. 또한 당시 교회의 검문을 통과한 추기경, 대사, 역사가들의 많은 서간, 책들에서도 교회에 의한 단죄임을 말했고, 거의 200년 동안 이 판결을 등재해 온 금서목록이 있었고, 이 판결을 지키는 것은 전교회의 양심적 의무라는 교황교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편협하고 시끄러운 무리들이 자신들의 교리와 성서를 짜집기하고는 그걸 종교 대용품으로 한 근시안적 생각의 죄였다.
 
=== 성운설
우주의 별들이 자연법칙에 따라 형성되며 그러한 과정을 나타내는 가스상태의 성운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문자해석주의 기독교에게 공격받았다. 창세기에 따르면 우주의 별들은 창조주가 직접 신의 손으로 지상에 유리하게끔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서 근본주의에 바탕을 둔 기독교는 철저하게 패했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그건 다름 아닌 인간들의 빈약한 우주관이었다. 얻은 것은? 우주 만물의 안에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절대 자기 맘대로 이러저리 바뀌지 않는 거대한 힘이 있다는 지극히 귀중한 관념을 얻었다.
 
이 책들이 세상에 나온 건 1876년, 1896년이었다. 하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우린 아래와 같은 글들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16세기, 17세기의 위 주장들과 너무 흡사해서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성경 시편을 인용하며 천동설은 틀린 게 아니란 주장과 성운설이 완전히 틀렸다고 주장하는 글이다.
 
창조과학 홈페이지 [질문과 답]의 85번
지동설에 관한 성경구절을 찾는다는 질문에 대해서...
> 성경에 지동설을 정확히 말하는 귀절은 없습니다. 하지만 천동설은 틀린게 아니예요.
> 시편 19편 6절에 보면 "태양은 하늘 이 끝에서 나와 하늘 저 저끝까지 운행함이여,
> 태양의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가 없도다" 
> 이 말씀은 태양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과거에 그렇게 믿게 되었던 것인데
> 갈릴레이 등에 의해 지구가 움직이고 태양은 멈춰있는 것이 옳다는 지동설이 제시되었고
> 그래서 결국 성경은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죠. 이렇게 오랜세월 결론이
> 났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태양도 엄청난 속도로 우리 은하계 안에서
> 돌고 있는것이 밝혀졌습니다. 즉 태양도 다른 기준으로는 도는 셈인데 과거의 지식과
> 과학의 한계로 사람들이 단지 태양계 내로 국한시켜 해석했기 때문에 성경이 틀렸다고
> 결론을 지은 것이지요. 
 
진화론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반진화론 단체인 창조과학회의 글이다. 인용한 성경 말씀은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움직여 지구상의 누구도 피할 수 없다란 뜻이지, 태양이 은하계에서 도는 건 지구상에서 아무도 태양을 피하지 못 한다는 것과 물론 아무 상관이 없다.
 
성경에는 지동설을 정확히 설명하는 구절만 없는 게 아니라, 태양계를 설명하는 구절도 없고 은하계를 설명하는 구절도 없고 수많은 은하를 포함한 광대한 우주를 설명하는 구절도 없다. 이건 전부 과학으로 밝혀진 것들이지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취급해 얻을 지식이 아니다. 그리고 왜 성경에서 그런 지식을 얻어야만 할까? 그리고 왜 그런 지식이 안 적혀 있으면 성경이 버림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렇게 억지 천동설 옹호까지 하는 걸까? 창조과학에서는 성경을 과학 참고서 정도로 수준을 낮춰 버렸는데 그러자 그 내용이 과학 참고서로 보기엔 너무나도 부실하므로 그걸 감추기 위해 이렇게 억지설명까지 지어낸 걸로 보인다. 하지만 보통 기독교인들이라면 굳이 성경에서 그런 지식을 찾을 이유가 없을 거다. 성경은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게 아니었던가? 물론 천동설이란 어디까지나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하늘이 돌았다는 뜻이다. 태양이 은하계를 도니까 천동설이 맞다면 지동설도 맞고, 천동설도 맞고, 모두 의미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창조. 제 108호. 1998년 5~6월. 
과학자와 외계생명체 
- 권 진 혁 (영남대 교수, 물리학) -
> 며칠전 신문에 태양에서 가까운 어느 별 주위에 회전하는 먼지가스의 천체 사진이
> 실렸다. 그리고 이것은 별 주위에 새로이 혹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는
> 해설도 곁들여졌다. 그리고 이 먼지가스가 혹성이 되면 생명체가 저절로 진화하여
>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과학적 의견"도 부가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희미한
> 먼지이지 혹성이 아니며, 이 먼지가 점점 농축되어 지구와 같은 혹성이 된다는 증거도
> 전혀 없다. 이 먼지는 그 별과 함께 처음부터 먼지로 존재하여 왔고, 앞으로도 먼지
>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많다. 
 
혹성과 행성도 구별 못 하는 물리학자의 글이다. 우주의 그 먼지가 먼지 그대로 남아있을 거라는 증거야말로 전혀 없다. 그렇지 않은가? 이 사람은 우주에서 절대로 박테리아 하나 찾아내지 못 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천문학자들은 다 바보, 멍청이들이고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는 내용으로 읽힌다. 어떻게 이렇게 교만할 수 있을까? 
 
바로 위 글은 내가 전에 창조론의 허구성을 지적하던 어떤 글에서 썼던 내용의 일부이다.
(지식iN 지식Q&A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창조론을 믿나요? 진화론을 믿나요?')
그런데 어쩌다 내 글이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 소개됐고 이 부분에 대해 창조과학회의 반론이 있었다.
 
창조과학 홈페이지 [질문과 답]의 108번에서
> (혹성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었죠. 40, 50대 분들은 다 이렇게 배웠고, 같이 혼용해서
> 사용했습니다. 이 글을 비판한 사람이 교만해 보이는 군요. 서울대를 비롯하여
> 우수한 대학에 계시는 많은 창조과학회 교수님들을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바보
> 멍청이로 몰고 있군요.)
 
지금 '과학'을 논한다는 사람들이 되도록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은 안 하고 겨우 영화제목 핑계를 대면서 사과 한 마디 없이 넘어간다. 그리고 더더욱 황당한 건 내가 우수한 대학의 많은 창조과학회 교수님들을 바보 멍청이로 몰았다며 비난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용을 왜곡해도 될까? 난 창조과학회 관련 교수님들을 바보 멍청이로 몬 적이 없다. 위 창조과학회 글은 욕만 안 했을 뿐이지, 이 세상의 모든 천문학자들을 바보, 멍청이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내용이란 것을 강조한 것이다. 서점에 가서 어린이용도 좋고 교양서적 수준도 좋고 천문학을 소개하는 책을 펼쳐 보자. 우주의 먼지들로 부터 인력에 의해 항성과 행성이 형성된다는 이야기는 기본의 기본이다. 그걸 부정한다는 것은 지금 천문학에서 말하는 항성과 행성의 탄생, 진화, 은하계의 형성과 구조 등 모든 내용이 다 엉터리라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아주 굉장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우수한 대학의 많은 천문학 교수님들의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창조과학회의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는 지금 자기들이 하는 말이 얼마나 대단한 내용인지(맞고 틀리고를 떠나), 얼마나 관련된 분야 사람들을 욕하고 조롱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양 선진국에서는 창조론 교육을 한다?

창조과학에서 나온 악질적인 거짓말의 하나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서양의 선진국들은 과학자들을 포함해 80%가 창조론을 믿으며 지금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은 없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심지어 한국같은 미개한 나라에서만 국가에서 강제로 오직 진화론 가르치는 게 문제라고도 한다. 어린 학생들한테서 한국의 학교와 선생님들은 엉터리라는 의견들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이 엉터리 이야기는 그대로 일본에서도 기독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퍼져있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들은 모두 창조론을 가르치든가, 창조론과 진화론을 모두 가르쳐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일본에서만 이 모양이라는 비난들이다. 이 모든 것들은 미국 창조과학회의 엉터리 주장과 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급급한 한국과 일본의 창조과학회, 또 거기에 완전히 속은 종교인들과 일부 교사들이 퍼뜨리는 유언비어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전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정식으로 진화론이 틀렸다고 하지 않으며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론이란 창조론을 교과서에 넣지 않았다. 미국에서조차(만?) 기독교 근본주의에 빠진 일부 교사나 강사가 자기 수업시간에 멋대로 넣는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의 '생물과학 Volume 56, No. 1(2004년 10월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각 나라별로 인간이 하등한 종에서 진화되었다는 진화론 이론에 찬성하는 국민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였다. 순위별로 소개하면,

1. 독일 91.5%
2. 일본 90.1%
3. 덴마크 89.1%
4. 스웨덴 86.4%
5. 오스트레일리아 83.6%
6. 포르투갈 83.1%
7. 불가리아 79.4%
8. 영국 78.3%
9. 체코 76.8%
10. 슬로바키아 75.9%
11. 스페인 73.5%
.
.
미국 46.2%

문제는 '미국'이다. '창조론'이 과학적이라느니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창조과학회와 기독교 근본주의, 원리주의가 뿌리깊은 미국에서 특이하게 나오는 현상이며 다른 나라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창조과학 숭상자들은 어떻게해서든 자기들이 다수라는 허풍으로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진화론'이 이 세상에 나오기 전의 위인전에 나오는 과학자들 이름은 다 인용하면서 그들이 전부 '창조론 과학자'라고 우기고 '선진국에서는 이미 진화론이 버려졌고 창조론을 가르친다.'는 거짓말까지 하는 것이다. 그것도 '기독교'와 '신'의 이름을 앞세워서.

최근 미국의 창조론 숭상자들은 도저히 교과서에 과학이란 이름으로 창조론을 넣는 게 불가능해지자 작전을 바꿔 '진화론은 사실이 아닙니다.'란 내용의 스티커를 생물 교과서에 붙이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문제가 된 곳은 조지아주의 Cobb(콥) 군이라는 시골이었는데(2002년), 아무튼 그 군 교육위원회에 의한 스티커 활동은, 강력하게 항의하는 학부모들에 의해 재판으로 연결됐고(2004년 11월 뉴스), 결국은 수업시간에 특정종교를 강요하는 것임으로 위법이라는 판결이 2005년 1월 13일 연방지법 판사 클래런스 쿠퍼에 의해 내려졌다고 한다(2005년 1월 뉴스).

스티커의 내용은 얼핏 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인다. '진화는 이론이지 사실이 아니다...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고...' 하지만 문제는 왜 그게 진화론만이냐는 것이다. 과학이란 사실 모든 것이 그렇다. 모두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고 고려하며 새로운 증거에 의해 새롭게 고쳐져 나가는 과정이 바로 '과학'이다. 하지만 스티커는 특별하게 '진화론'만 공격하고 마치 엉터리인 것처럼 학생들을 혼란시키면서 자기들의 사이비과학 '창조과학 또는 지적설계론'을 강요하려 한다는 게 너무나도 뻔하게 드러난다.

'중력의 법칙이란 눈에 보이는 게 아니고 이론이지 사실이 아니다... 열린 마음으로... ' 라고 해야 할까? 실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무너졌다. 당연히 모든 과학이론은 '완벽한 진리'가 아니다. 단지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관찰되는 현상들을 가장 적절하게 모순없이 설명해 주는 것에 불과하며 과학자들은 늘 모든 과학이론을 '열린마음으로 맹신하지 않고 의심하면서' 지켜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반대로 현대의 과학이론들이 이러한 엄격한 검증과정을 거쳐 현재 우리들에게 소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모든 과학자들이 당연히 모든 과학이론에 대해 가진 당연한 자세를, 마치 자기들이 무슨 새롭고 대단한 주장을 하기라도 하는 듯이 스티커까지 만들어서 나온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즉 이들은 '과학'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는 마치 공정하게 공평하게 학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철저하게' 창조론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들의 설명을 잘 들어보면 한편에선 창조론도 진화론도 '론'이다. 아직 진화론이 맞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또 한편에선 '진화론은 악이고 창조론이 선이다. 창조론을 믿어야만 천국에 간다.'고 아이들을 선동한다. 이들의 설명 어디에서 순진한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으로 보이는가?

기독교 근본주의가 이렇게 기독교와 과학을 황페화시키는 미국에서조차 결국 공식적으로는 창조론이 비판받으며 소수의견에 불과하다는, 그래서 재판에서 무너진 과정은 여기서 참조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더이상 '창조과학'을 주장하지 못하고 '지적설계론'으로 이름을 바꾼 뒷사정으로도 연결된다.
창조론의 변신과 관련재판 결과들

Nature 2005년 4월 28일호에서 창조론의 새로운 변신인 '지적설계론'을 다뤘다.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사이비과학이라고 상대도 하지 않는 사이에 청소년과 대학생들 사이에 지적설계론이 많은 관심을 모으는 현상이 벌어졌다는 내용이다. 기사에선 다음과 같은 내용의 조사결과도 소개됐다. 위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다.

-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지지율은 교육레벨의 높이에 비례해 상승한다. -
진화론은 증거에 의해 충분히 확인된 과학이론이라고 대답한 성인의 비율

대학원졸 - 65%
대졸       - 52%
회답자 평균 - 35%
대학중퇴 - 32%
고졸이하 - 20%

(내용 추가)
이 글에 대해 지적설계론 지지자인 어느 목사님이 마치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맹신에 사로잡혀 진화론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반박해 오셨는데 실제 2005년 현재 '지적설계론'이라는 게 이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최근 뉴스들을 모아보고 또 지적설계론의 주장이 왜 과학적이지 못하고 사이비과학에 분류되는지를 나름대로 정리해 봤다.
http://imaginemadang.blogspot.com/2014/08/6-id.html
(지적설계론(ID론)의 허구성)

지적설계론자들이 영국에서 지적설계론을 가르친다는 거짓말로 학생들을 속이나본데 마침 영국 정부의 공식입장이 나왔다. 요즘 영국에서 창조론 자료가 무작위로 학교에 배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게 계기였던 것 같다. 2007년 9월에 발표된 영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다음과 같다.
"Creationism and intelligent design are not part of the National Curriculum for science"
(http://www.teachernet.gov.uk/docbank/index.cfm?id=11890)

지적설계론이 과학이 아니고 따라서 연구할 대상도 없으며 (모든 생물의 탄생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그냥 나타나게 했다는 지적설계자를 무슨 수로 연구하겠는가?), 당연히 연구는 하지도 않고 또 당연히 학교에서 지적설계론을 과학시간에 가르친다는 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는 걸 스스로 고백하기도 한다. 한국의 지적설계론 지지자들은 이 사실을 알까?

“GALESBURG - The father of intelligent design says his child is not ready for school.
The hypothesis of intelligent design, while being developed, is not complete enough to be taught in the classroom, Phillip Johnson, professor emeritus of law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said during a lecture at Knox College Friday. Johnson is widely recognized as a founder of the intelligent design movement. “
http://www.register-mail.com/stories/021806/MAI_B9132EFQ.GID.shtml

“지적설계론의 아버지가 자기 자식은 아직 학교에 갈 준비가 안 됐다고 말했다.
지적설계론 가설은 발전도상이라 수업에서 가르칠 정도로 충분히 완성된 건 아니라고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법학명예박사인 필립 존슨은 금요일 Knox College 강의에서 발언했다. (2006/02/18) “

필립 존슨은 아예 더 나아가 현재 진화론에 필적할만한 지적설계론이란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슬쩍 고백하기도 했었다. 미국의 도버 교육위원회에서 지적설계론을 옹호하며 진화론 비난 문구를 교육과정에 넣으려던 시도는 너무나 나쁜 아이디어였단다. 자긴 그게 처음부터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다나? 너무 뻔뻔하지 않나? 그런 것도 모르고 지적설계론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뭐가 되나?

“I considered [Dover] a loser from the start,” Johnson begins. “Where you have a board writing a statement and telling the teachers to repeat it to the class, I thought that was a very bad idea.”

"I also don’t think that there is really a theory of intelligent design at the present time to propose as a comparable alternative to the Darwinian theory, which is, whatever errors it might contain, a fully worked out scheme. There is no intelligent design theory that’s comparable. Working out a positive theory is the job of the scientific people that we have affiliated with the movement. Some of them are quite convinced that it’s doable, but that’s for them to prove…No product is ready for competition in the educational world."
= BERKELEY science review =
http://sciencereview.berkeley.edu/articles.php?issue=10&article=evolution

지적설계론은 진화론에 비교할 정도로 완성되지도 않았고 (자기 책임은 없고 그건 지적설계론을 믿는 과학자들이 할 일이라는 투의 변명으로 넘어간다. 자긴 법학자니까 책임 없다는 식?), 지적설계론은 교육과정에 넣을 그 어떤 결과물도 없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지적설계론의 아버지란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데, '선진국에선 지금 지적설계론을 학교에서 가르친답니다. 한국은 후진국입니다.'란 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