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30일 토요일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 헝가리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를 겪었던 나라가 어디냐는 물음에 아마 대부분은 독일이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하이퍼-인플레가 가장 유명한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이 마침내 하이퍼-인플레에 종지부를 찍었던 1923년, 새로 발행된 1 렌텐마르크(Rentenmark; 1923-31년간에 독일 정부가 통화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에 발행케 한 지폐)를 얻기 위해서는 구 마르크화로 1조 마르크가 필요했다. 이런 독일의 인플레만큼 엄청났던 하이퍼-인플레는 1946년 헝가리, 1992-1993년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2004-2009년 짐바브웨에서 일어난 것으로, 독일의 인플레를 아마추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셋 중 헝가리의 하이퍼-인플레가 가장 심각했다.

헝가리에 하이퍼-인플레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차 세계 대전 의 패전국으로, 전후 붕괴되었다. 이후 새로 세워진 헝가리는 적절한 정부 구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예산 구멍을 메우기 위해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1차 세계 대전 이전 미화 1달러 당 5크로넨(Kronen)이었던 것이, 1924년 7만 크로넨으로 뛰어 올랐다. 그로 인해 1926년 헝가리는 크로넨을 펜괴(Pengo; 1925년부터 1946년까지의 헝가리의 통화 단위)로 바꾸고, 교환비율을 1크로넨 당 12,500 펜괴로 했다.


헝가리는 2차 세계 대전에서 피해를 그리 크게 입지 않았지만, 1944년 러시아와 독일 간의 전쟁터가 되자, 산업 시설의 절반이 파괴되고, 90%가 피해를 입었다. 대부분의 철로와 기관차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수송 또한 어려웠다. 남아있던 것들조차 나치가 독일로 가져갔거나 러시아가 배상금으로 압수해 갔다.

전후 헝가리의 물가는 생산 설비의 파괴로 인한 생산 능력 감소로 이미 상승해 있었다. 헝가리 정부는 의존할 만한 세금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돈을 인쇄해 경제를 부양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기반으로 해 은행에 저금리로 자금 대출을 해주었고, 은행은 다시 그 자금을 기업에 대출해 주었다. 정부는 노동자를 직접 고용했으며, 소비자들에게 직접 대출을 해주기도 했으며, 국민들에게 돈을 나눠주었다. 정부는 말 그대로 온 나라에 돈을 풀었으며, 이로 인해 경제는 다시 제 궤도에 올랐다.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분명 인쇄기에서 흘러나왔다.

그 당시 헝가리의 통화 공급량이 얼마나 빠르게 증가했는지 알려면, 통화 유통량을 보면 된다. 헝가리에서 유통되고 있던 통화량은 1945년 7월 250억 펜괴에서, 1946년 1월 1.646조 펜괴로 증가했으며, 1946년 5월 6.5경 펜괴로 증가했고, 1946년 7월 다시 47자(1024, 조*조) 펜괴로 증가했다.

인플레가 얼마나 심했는고 하니, 1945년 9월 379펜괴로 살 수 있던 것이, 1945년 1월 72,330펜괴, 2월 453,886펜괴, 3월 1,872,910펜괴, 4월 35,790,276펜괴, 5월 31일 112.67억 펜괴, 6월 15일 8,620억 펜괴, 6월 30일 954조 펜괴, 7월 7일 300억*억 펜괴, 7월 15일 110조*억 펜괴가 필요했고, 1946년 7월 22일이 되자 1조*조 펜괴가 필요하게 되었다. 분명, 이런 인플레는 수학으로 계산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인플레가 절정에 이르자, 물가는 일간 150,000% 비율로 올랐다. 이렇게 되자, 헝가리 정부는 세금 징수를 완전히 중단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단 하루만 세금 징수를 지연해도 이제까지 징수한 세금의 가치가 전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전쟁 전인 1941년 3월, 환율은 미화 1달러당 5펜괴였던 것이, 1944년 6월 33펜괴가 되었고, 진정한 하이퍼-인플레가 시작되었던 1945년 8월 1,320펜괴가 되었다. 이윽고 펜괴가 붕괴되었다. 미화 1달러 당 1945년 11월 100,000펜괴가 되었고, 1946년 3월 175만 펜괴, 1946년 4월 590억 펜괴, 1946년 5월 4.2경, 그리고 1946년 7월 460자가 되었다.

물론, 헝가리는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일부 문제가 있는 조치를 취했다. 1945년 12월, 정부는 국민들에게 400펜괴를 받아, 법정 화폐 표시 은행권 도장이 찍힌 100펜괴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75%의 자본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정부는 돈 인쇄를 중지하지 못 했다. 하이퍼-인플레는 정부로 하여금 세금 징수를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었고, 그에 따라 인플레와 연동시킨 아도펜괴(Adopengo)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인플레 연동 아도펜괴 조차 인플레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1946년이 되자, 1펜 당 20경 아도펜괴가 되었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이런 돈의 공격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그리고 돈을 인쇄한 정부는 가치가 없어진 돈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해결책은 간단했다: 통화의 이름을 바꾼 것이다. 펜괴를 밀펜괴(Milpengo; 1백만 펜괴)로 바꾸고, 다시 빌펜괴(Bilpengo; 1조 Pengo)로 바꾸었으며, 이를 다시 인플레 연동 아도펜괴로 바꾸었다.

사용된 지폐는 동일한 문양에 색상만 바꾸었다. 10억 펜괴는 라벤더 색이었고, 10억 밀펜괴는 파란색이었으며, 10억 빌펜괴는 녹색이었지만, 색상만 빼고 다른 문양은 모두 같았다. 하이퍼-인플레에서 살아남은 누군가가 말하길, 지폐의 액면가를 살피는 것은 포기하고, 현금으로 뭔가를 살 때는 “파란색 두 장과 녹색 한 장”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아래 10억 빌펜괴 지폐는 지금까지 발행된 최고 액면가의 지폐였으며, 이는 10억*조 펜괴와 같았다. 유감스럽게도, 인플레가 막바지에 이르자 이 지폐의 가치는 미화로 단돈 12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1946년 8월 펜괴는 포린트(Forint)로 대체되었다. 교환율은 1포린트 당 400,000경 펜괴였다. 이로 인해 안정화 효과가 발휘되어, 물가는 1960년대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모든 구권 펜괴는 아무 쓸모도 없었기 때문에 버려졌다.




그렇다면 이런 인플레의 대가를 치른 것은 누구일까? 누구보다 노동자들이었다. 인플레 결과 실질 임금은 80% 이상 하락했고, 하이퍼-인플레로 인해 직업을 가진 노동자들조차 가난으로 굴러떨어졌다. 채권자들은 파산했다. 하지만 생산은 회복되었고, 1946년 8월이 되자, 펜괴는 포린트로 대체되었고, 이는 아직도 헝가리에서 통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플레는 생산을 자극한다는 목표를 달성했을까? 하이퍼-인플레는 헝가리의 산업 생산 능력을 상승시켰고, 철도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으며, 자본금 대부분을 회복시켜 주었다. 하지만 노동자의 임금 손실분은 80%에 달했으며, 채권자들은 파산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헝가리의 운명은 결국 권력을 장악했던 공산당에게 쥐어졌고, 1949년 헝가리 공화국은 소련 헌법을 모델로 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헝가리 인민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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