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몰락, 오대의 폭풍 (1)
'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유명한 격언은, 그 반대의 상황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제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하물며, 그것이 한때 세계제국이라 일컫어질 정도의 대제국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당나라가 무너진 이유는 무엇인가? 정확히 '어느 시점' 부터 무너진 것인가? 주전충이 환관들을 학살하고 관리들을 강에 던져버렸을 때? 황소의 반란군이 장안에 입성했을때? 안록산의 군대가 동관을 돌파하였을때? 율령제가 무너져 내렸을때? 당나라가 건국된 바로 그 순간?
대당(大唐). 북으로는 돌궐을 물리치고, 동쪽으로는 발해, 신라와 국경을 맞이했으며, 서쪽의 경계선에선 지난 세기 동안 중원의 인간이 다다르지 못한 땅들을 밞으며 그 중화의 세계를 날로 확장시킨 나라. 수도에는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고, 수백의 나라에서 몰려온 인종들이 가지각색의 문화를 만들어낸 국가. 호방한 시인들은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태평성대를 이야기하고, 강물처럼 반짝이는 거리에선 춤과 노래, 영광과 환희가 끊이지 않았던 제국.
그러나 아마 옛 사람들의 말이 맞을 것이다.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 천하라는것은 뭉치면 다시 흩어지고 흩이면 다시 뭉치게 된다. 번영이 끊이지 않자 쇠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나라를 물리치자 사방에서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영광은 찬란해지자 나태와 방종으로 바뀌었으며 한때 넉넉한 풍요로움으로 보였던 모든 것들이 탐욕의 씨앗이 되었다. 가장 빛나던 순간이 무너짐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당나라 의종(懿宗) 연간(859~873). 제국은 이미 타성으로 움직이는 듯 보였다. 밖으로는 남조(南詔)가 사천을 침략하고, 당항(堂項), 회골(回鶻), 토욕혼(吐谷渾)이 북방 변경을 교란하였다. 나라 안으로는 대규모의 한해와 충해가 계속되어 873년 하남 · 산동에서는 쑥과 홰나무잎을 식량으로 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환락에 빠져있고 재상들은 상호 질시하였으며 관료귀족과 환관은 심각한 반목을 보였다. 뇌물이 공공연히 오가는 한편 농민에게는 가렴주구가 그치지 않았다.
의종이 죽고, 고작 12세의 희종(僖宗)이 즉위하자 형세는 더욱 더 늪에 빠진듯한 모습이 되었다. 874년, 한림학사(翰林學士) 노휴는 주현의 가혹한 세금 독촉과 농민의 궁핍을 호소하였다. 같은 해 대규모의 메뚜기 무리가 나타나는 이변이 발생했다. 메뚜기는 동에서 서까지 뒤덮어 해를 가렸고, 무리가 지나가는 곳은 붉은 땅이 되었다. 그런데 귀족들은 메뚜기가 작물을 먹지 않고, 가시나무를 둘러싸 죽였다고 상주하였으며 재상들도 이를 축하하였다.
기만의 조정을 떠나, 지방에서는 끊임없는 폭력의 대결이 이어졌다. 광주 백성은 자사 이약옹이 부도하다 하여 그를 축출했고, 상주 백성은 자사 왕추가 시세를 조작한다 하여 몽둥이를 그를 구타하였다. 백성들은 떠돌다가 굶어 죽었으며, 호소할 길이 없게 되자 서로 모여 도적이 되었다. 주현에서는 군사가 적었고, 그 위에 거짓된 평화는 오래 흘러 사람들은 싸움을 익히지 못하니 매번 도적과 만나면 관군은 대부분 패퇴하였다.
반란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강전태(康全泰), 구보(汨甫), 그리고 방훈(龐勛)의 이름은 전중국을 뒤흔들며 제국을 몰락의 길로 이끌어갔다. 그러나 이들은 다음에 일어날 대반란의 전주곡일 뿐이었다.
왕선지(王仙芝)의 난이 정확히 언제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구당서(舊唐書)에서 이 반란의 실체가 처음 확인되는것은 874년 5월이다. 그러나 활동 자체는 이보다 더 빨리 시작했을 수도 있다. 자치통감에서는 그저 874년에 반란이 일어났다고 서술하고 있다. 가시나무를 먹는 메뚜기의 존재를 믿었을 정도이니, 당나라 조정은 정보의 흐름에서 완전히 막혀 있었다. 그 시작이 정확히 언제가 되었건 이 해, 왕선지는 장원(長垣)에서 3,000여명의 무리를 이끌어 복주(濮州)를 함락했고, 운주 절도사 이종을 패배시켰다.
같은 시기, 황소(黃巢)라는 인물이 있었다. 더러는 그를 조주(曹州) 원구(寃句) 사람이라고 하고, 더러는 그를 복주 사람이라고 한다. 어찌되었건 그는 본래 왕선지와 더불여 사염(私鹽) 파는 것을 직업으로 살았으며,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하고 임협(任俠)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는 책도 대충 읽었으나 누차 진사 시험에서 합격하지 못하자 드디어 도둑이 되어 왕선지와 더불어 행동하게 되었다. 그의 이력을 보자면, 그는 통상적으로는 염상으로 부유해지고 관료가 되어 더욱 부귀를 얻고자 했던 신흥계급으로 보인다. 그러나 체제의 낙오자로 떨어졌던 그는 결국 그 체제를 자신의 손으로 부수기 위해 나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란한 상황에 한두번쯤 일어날만한, 바로 그러한 난리였다. 허나 불꽃은 기름을 먹고 미친듯이 타올랐으며, 그들이 발을 한번 구르자 태산이 뒤집혔다. 무능해진 조정의 병사들은 제대로 된 싸움조차 벌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자 황소는 자신이 이끄는 병사가 무려 60만명에 달한다고 말했으며, 하남(河南) ·산둥, 강서(江西) ·복건(福建) ·광동(廣東) ·광서(廣西) ·하북(湖北) 전 지역을 휩쓸면서 파죽지세로 진격하였다. 당나라 황제는 겁을 집어 먹고 대당제국의 수도, 장안을 버리고 깎아지른 계곡이 이어진 사천의 땅으로 도망쳤다. 황소는 장안에 들어가 스스로를 새로운 황제라고 부르게 했다.
그 시대, 탕산(案山)의 한 농가에 오기로 가득찬 꼬마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주온(朱溫)이었고, 아이의 아버지는 소년이 어린나이였을때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되었다. 여러 자식들의 입과 아녀자 혼자 남은 집안은 빈곤해졌고, 주온의 어머니와 네명의 형제는 지역의 유지인 유숭의 집에서 머슴 살이를 하며 지냈다. 속에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주온이었지만, 그는 늘 자신을 게으르게 여기는 주인 유숭에게 욕과 매질을 당하며 지내야만 했다.
그 아이가 자라났을때, 세상에서는 황소와 왕선지의 이름이 요동치고 있었다. 주온은 그 열광하는 목소리들의 뒤를 따라, 역사의 전면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지금의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시대의 이야기다. 세상은 어지롭고, 백성들은 분연히 농장기를 들고 관병을 습격하며, 진짜 황제는 겁이 나 책임을 회피하고, 가짜 황제는 엉터리 노릇을 하며 협잡질을 하던 시기. 그리하여 야망을 가진 인물들이, 탐욕을 가진 인물들이, 숭고한 뜻을 가진 인물들이 모두 칼자루를 잡고 일어서던 그런 시기, 영웅들의 시대이자 난세(亂世)의 시작이며 차가운 겨울의 때이자 태동하는 봄이 약동하는 소리가 꿈결같이 들려오던, 바로 그런 시대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876년 12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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