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의 난은 기본적으로 당나라의 복합적인 문제가 만들어낸 사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사태를 일으키게 된 것과 이를 해결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황소의 난은 조금 더 빨리 진압될 수도 있었고, 더 커지기 전에 일이 마무리 되었을 수도 있었다. 유적 군단이었던 황소 부대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생명력을 유지했지만, 장안에 입성한 시점에서는 군량 보급의 곤란과 유민들을 한데 모으기 힘든 어려움으로 붕괴되어가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당초에 황소에게 협력적이었던 일부 절도사들조차 황소의 수탈에 질려 손을 때었으며, 각지에서의 전투도 그리 형세가 좋지 못했다.
당나라 말기의 환관은 극히 사악한 존재로 악명을 떨쳤고, 실제로 대부분의 환관은 연대기적 구성에선 '악' 그 자체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다만, 그런 환관들 중에서도 양복광은 좋은 평가를 받는 몇 안되는 인물인데, 이 양복광은 황소에게 항복한 충무 절도사 주급을 직접 만나 설득하여 다시 당나라의 편으로 만드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채주를 점거하고 있는 진종권(秦宗權)이라는 사람을 찾아 유세하여 지원을 요청하여 군단을 모았는데, 이 부대의 부장 중에서는 훗날 전촉(前蜀)의 개국 군주가 되는 왕건(王建)도 있었다. 양복광이 소집한 이 연합 병력을 상대한 황소군의 대장은 주온으로, 주온은 적과 싸우다 열세에 몰려 패배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애시당초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황소군의 형세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고 있었다곤 해도, 수도 장안이 도적들에게 함락된 굴욕이란 과거 절도사들이나 토번의 무리들에게 장안이 함락된 상황과는 또다른 치욕이었다. 일을 이렇게까지 만들어버린 사람은 물론 고변이다.
국내에서는 최치원이 당나라에 있던 시절 잠시 몸을 맡기던 인물로 잘 알려진 고변은, 막강한 세력을 거느렸던 절도사로 당나라 역시 황소의 난 제압에서 그 힘을 여러차례 빌리려고 했으나, 앞서 보았듯 고변은 계속 몸을 사렸을 뿐이다. 황소 군대가 장안을 향해 진격하게 만든것이 그의 책임이라는것을 생각하면 이는 무책임한 태도였다. 천하에 돌린 격문에 호응하여 수만의 군대가 모였지만 고변은 싸우러 나갈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고변은 황소보다도 이웃한 진해 절도사 주보(周寶)의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판이었다.
고변과 주보는 모두 당나라 신책군 출신의 인물들이다. 먼저 언급했듯 신책군은 환관들이 장악한, 실제적인 전투력보다는 감투 자리에 가까웠던 군사 집단이었다. 이 두 사람 중에는 주보가 조금 더 기수가 높았던 모양인지 본래 고변은 주보를 형으로 섬겼었다. 헌데 두 사람 중에서 조금 더 빨리 출세를 하게 된 사람은 되려 동생뻘인 고변이었다. 이렇게 되자 고변은 주보를 점차 우습게 보았고, 이후 주보가 절서의 땅을 관할하게 되어 서로 이웃하게 되자 사소한 일로 다투기 시작하여 계속 틈이 벌어졌던 것이다.
서로가 매양 다투기만 하는 가운데, 주보에게도 고변이 천하에 돌린 황소 토벌의 격문이 왔다. 이를 거절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기에 주보는 이에 합류하려 했지만 아무리 시간이 기다려도 고변의 황소 토벌군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에 주보는 휘하의 막료들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다.
"고변은 조정에 변고가 있는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그 자의 진짜 속내는 오히려 이 틈에 강동을 병합할 작정입니다. 말로는 장안으로 가서 황소를 토벌하겠다고 하지만, 그 실체는 우리를 치려는 것이니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주보는 그 말을 듣고 긴가민가 하면서도 사람을 보내 고변을 염탐하게 했다. 당연하지만, 아무리 첩자를 보내도 고변이 북벌할 기미는 없어 보였다. 실제로 고변은 단지 점쟁이의 말 때문에 수만의 대군을 소집했을 뿐이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맞아 떨어지자 주보는 고변이 정말로 북벌하는 체 하며 자신을 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때마침 고변은 사람을 보내 주보를 소환했다. 같이 군사 문제를 의논하자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서로가 의심만 가득한 상황이 되자 주보는 몸이 아프다며 이를 거절하고, 대신 사자를 보내어 노골적으로 고변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나는 이강이 아니다. 고변 공 께서는 가문의 공훈을 세워서 조정을 속이려고 하는가?"
이 시기로부터 거의 70여년 전 무렵, 고변의 할아버지인 고숭문은 당시 동천 절도사 이강을 죽인 일이 있었다. 주보는 고변의 할아버지가 이강을 죽인 것처럼 자신을 죽이려는게 아니냐고 역정을 낸 것이다. 이에 화가 난 고변은 사람을 보내 따져 물었다.
"그대는 어찌 감히 대신을 가볍게 보고 모욕하는가?"
장군 멍군이라고, 이 말을 들은 주보는 또다시 고변을 꾸짖었다.
"피차 장강을 사이에 두고 절도사 된 처지다. 너는 대신이고 나는 문지기를 하던 졸병이라더냐?"
이렇게 어린아이들의 말다툼 같은 대립을 벌인 주보와 고변은 앙숙이 되어 으르렁 대었다. 조정에서는 이런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제발 빨리 고변에게 황소 토벌군을 움직이라고 권했지만, 고변은 되려 "진짜 위험한 것은 주보다. 주보는 후환이 될 것이다." 라며 당나라 조정의 입장에서는 삼천포로 빠지고 있었다. 마침 고변이 함께 움직일 것을 권할 인물 중에는 진장(鎭將) 동창(董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황소 토벌의 이야기를 들은 동창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그의 부하 장수였던 전류(錢鏐)는 이를 반대했다. 이 전류야 말로, 훗날 오월(吳越)의 개국군주가 된 인물이다.
"고변의 행동을 보건대 그는 도적을 토벌할 마음 따위는 없습니다. 그를 떠나는 편이 낫습니다."
이렇듯 당대인들에게 고변의 행동은 가식적이며 눈속밈에 불과하다고 악평을 받았다. 고변은 대체 어찌하여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였을까? 이는 그의 측근들이 사기꾼들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사들에게 미혹된 고변
고변은 신선술을 좋아했다. 신선술에 대한 고변의 선호는 약간 광적인 수준이었고, 그의 주변에는 여용지(呂用之), 제갈은(諸葛殷)과 같은 사기꾼들이 가득했다. 기실 여용지는 본래 차를 파는 상인의 아들로 여러 물정에 밝아 상인의 재주로 고변에게 조언을 해주었는데, 고변은 이를 여용지가 신선술의 묘한 재주로 꾀를 내는것이라 여겨 그를 신기하게 여겼다. 제갈은의 경우에는 이렇게 지껄여대기도 하였다.
"옥황상제는 공을 돕기 위해 하늘의 높은 대신을 보내 공을 돕게 했는데, 공은 그를 잘 대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오래 머물게 하려면 역시 사람들 사이에 힘 있는 직책을 맞겨야 세상에 얽매이게 할 수 있을 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에서 보낸 대신이란 제갈은 본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즉 제갈은은 자신을 잡고 싶으면 고변이 높은 직책을 줘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렇게 말한 다음날, 제갈은은 고변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사기술로 바람을 일으키니 고변은 과연 제갈은을 신으로 여기고 돈이 쏟아져나오는 염철 업부의 아주 중요한 직책을 맡겼다.
고변은 오락가락한 본인의 태도는 어찌되었건, 그 자신의 몸가짐은 아주 단정하고 깨끗하며 엄격한 사람이라 주위 사람들은 함부로 그의 옆에 안지도 못했다. 그러나 피부병이 있던 제갈은은 매양 피부를 긁어대느라 진한 피고름이 손톱에 가득한 더러운 모습이었지만, 고변은 늘 제갈은과 한데 붙어 다니며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과 그릇을 권하며 밥을 먹었다. 보다 못한 주위 사람이 이를 지적했지만, 이미 홀릴 대로 홀린 고변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신선은 본래 이런 것으로 사람을 시험하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개를 좋아하던 고변은 많은 개를 키웠는데, 제갈은의 피부에서 나는 더러운 고름 냄새를 맡은 개들은 제갈은에게 몰려왔다. 고변은 갑자기 개들이 제갈은을 찾아오자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제갈은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저 제갈은은 일찍이 옥황 상제의 옆에서 이 녀석들을 보았는데, 이별한지 수백년이 지났거늘 이 녀석들은 저를 알아보는군요."
이렇게 신선놀이에 빠져 도저히 황소 토벌을 하려고 하질 않으니, 자연히 고변은 반 황소 세력의 핵심격 인물로 부상하고 있는 봉상 절도사 정전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런 기색을 살핀 여용지는 어느날 고변에게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전했다.
"재상 정전이 근자에 어떤 검객을 암살자로 고용해서 공을 찌르려 했는데, 그것이 오늘 입니다!"
"뭐라구요?"
난데없는 말을 들은 고변은 크게 놀라 여용지에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여용지는 자신의 주위 사람인 장수일(張守一)이 법술을 배웠으니 이를 퇴치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는, 고변은 부인의 옷을 입고 다른 방에 숨어 있으라고 말했다.
물론 정전이 보낸 암살자 따위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고변이 여장까지 하고 다른 방으로 간 사이에 장수일은 고변의 방에서 강철 소리를 일부러 내고, 주머니에 돼지 피를 담아 놓았다가 뜰과 집안 곳곳에 뿌려넣어 치열한 격투를 벌인양 수작을 부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웃으면서 고변에게 말하는 것이다.
"까딱했으면 그 종놈 같은 놈의 손아귀에 떨어질 뻔 했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사기술이었지만, 고변은 그저 장수일과 여용지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할 뿐이었다.
"선생은 나 고변에게 다시 살게 해준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주위에 이런 무리들 밖에 없자 고변은 갈수록 이상해져갔다. 여용지의 말을 듣고 정원 한 가운데 나무 학을 조각해놓는가 하면, 갑자기 그 위를 뛰어 다니기도 했으며, 밤낮으로 제사를 지냈다. 여용지는 고변과 함께 있다가 갑자기 바람과 비를 꾸짖거나 하늘에 대고 절을 하며 신선이 구름 밖으로 지나갔다는 소리를 했는데, 그때마다 고변은 번번히 그곳을 향해 절을 했다.
물론 고변을 이전부터 따르던 장수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찬, 진공, 풍수, 동근, 유공초, 요귀례 등은 평소에 고변이 후하게 대접하던 용사 중의 용사들이었다. 그러나 여용지는 고변의 주위를 완전히 매수하여 고변의 시야를 가두어놓았으며, 조금이라도 다른 논의를 하던 사람을 발견하면 중상모략을 해서 죽여버렸다. 이렇게 되어 양찬은 모든 군사를 빼앗겼고, 진공의 집안사람들은 족멸 당했으며, 나머지 장수들은 모두 고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에 모든 사람들은 이 사기꾼들에 대해 분통함을 참지 못했다. 그러자 여용지는 고변에게 부탁하여 무려 2만의 병사를 모집해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고 감시했으며, 반항하는 자들은 반역자로 몰아 참수했다. 이렇게 파멸된 사람들은 수백 집에 이르렀으며, 백성들은 길거리에서 서로 눈짓으로 말했고 숨을 죽여야 했다.
이런 엉터리 같은 행위를 수만 병력으로 할 수 있었다는건 그만큼 고변의 세력 자체가 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기가 들통날까 계속 염려하뎐 여용지는 급기야 "신선이 되려면 세속의 일을 모두 끊어버려야 한다." 고 고변을 충동질했고, 고변은 결국 모든 빈객을 전부 내보냈고 사람들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부득이하게 다른 사람을 만날때면 목욕하고 제계를 하고 푸닥거리를 한 후에야 만났을 정도다. 이렇게 시간이 점점 지나자, 고변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모든 전권은 여용지의 손에 들어가 있었고, 고변이 있다는것을 사람들이 점점 잊을 정도였다.
당나라 조정은 고변이 이렇게 도저히 움직이려 하지를 않자, 결국 재상 왕탁을 내보내서 권지 의성 정도사로 삼아 대신 군사행동을 맡겼다. 이제 필요한것은 반쯤 미친 고변을 대신할, 쓸만한 '패' 의 존재들이었다.
이 무렵, 사막에서 돌아온 이극용은 중국의 북방에서 눈치를 보며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비록 이극용을 불러달라는 이우금의 요청을 당조가 받아들였기는 하나, 이극용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어느정도의 공신력을 가진 이야기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또한 하동 지역등의 절도사들에게 이극용의 존재란 과거의 불순분자가 다시 귀환한것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에 이극용은 휘하 사타 무리를 이끌고 한동안 이곳저곳의 절도사들과 소규모 교전을 벌이거나, 약탈 행위를 벌이며 때를 기다리면서 조정에 사람을 보내 항복을 받아달라고 줄기차게 청했다.
그런 이극용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황소는 분명히 계속해서 수세에 몰려 있었지만 어찌되었건 수십만 군대를 거느린 그를 완전 격멸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고변은 자신의 대세력을 형편없이 낭비하던 참이다. 하중절도사 왕중영은 전력의 차이를 염려하여 양복광에게 이를 푸념했다.
"도적의 신하가 되는 것은 나라를 저버리는 일이오. 하지만 도적을 토벌하려니 힘이 모자라는데 이를 어찌해야 하겠소?"
잠시 고민하던 양복광은, 곧 이극용의 이름을 꺼냈다.
"안문에 있는 이극용을 부릅시다. 그는 용감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집안하고 저는 잘 아는 사이기도 하니, 이극용이 오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진실로 조정의 뜻을 잘 알려서 타일러 부른다면, 이극용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극용이 온다면 저 도적때를 평정한다는 말 같은것은 꺼낼 거리도 못 됩니다."
이 안건은 받아들여져, 황제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도통 왕탁은 북방을 배회하는 이극용에게 칙서를 보냈다. 기다리던 연락을 받은 이극용은 1만 7천의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하중절도사 왕중영에게도 한 통의 서신이 찾아왔다. 뜻밖에도, 이는 왕탁이나 정전이 보낸 사람이 아닌 황소군에서 보낸 서신이었다. 그것도 황소군의 유력 부장, 주온의 이름으로 말이다. 왕중영이 이를 확인해보자, 실로 놀라운 내용이 실려 있었다.
주온은 황소가 장안에 입성한 이후부터 양복광, 탁발사공, 이효창, 왕중영등과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며 치열하게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주온은 황소에게 여러차례 지원 요청을 했으나, 황소의 주변에 있던 측근 맹해(孟楷)는 주온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를 거부하며 지원병력을 주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재빠른 주온의 계산으로는 황소의 세력은 날로 위축되고 있어서,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언젠가 토벌되는것은 자명해 보였다.
결국 주온은 마침내 자신이 지키고 있던 주와 함께 왕중영에게 항복하여, 그를 외삼촌으로 섬겼다. 이에 왕탁은 주온을 동화 절도사로 삼았고, 조정에서는 주온에게 우금오대장군, 하중 행영초토부사의 직위를 내림과 동시에 당나라에 진충보국하라는 의미를 담아 전충(全忠)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이제 드디어 주전충이라는 이름이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시대의 가장 거대한 이름들이,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올라서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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