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그리고 Minimalist Program
'언어란 무엇인가?'
일견, 너무 장황한 질문, 해서, 구체성이 결여된 그런 질문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 마치,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와 같은 질문들처럼, 거대 담론이 요구되는 그런 큰 질문, 혹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까지 여겨질 수 있을 것인데, 어쨌든 저 질문에 대한 대답/관점에 따라 추구하는 언어학의 종류(?)가 판이해질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이니, 그 끝은 장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시작은 일단 해보자:
What is language?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이런 식으로 대답하지 않을까? -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근데, 이와 같은 대답은, 언어학 비전공자들, 즉, 대다수의 대중들뿐만 아니라, 현직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대답, 혹은, '언어'에 대한 '정의'다. 근데, 저와 같은 '대답의 형식'과 물었던 '질문의 형식'을 비교해 보면, 재밌는 차이가 발견된다:
Q: What is language?
A: Language is a tool for communication.
'재밌다' 함은, 대답에 등장하는 'for' 라는 전치사 때문이다 - 그도 그럴듯이, 원래의 질문은, 언어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즉, what is language for? 가 아니라, 그냥 언어란 '무엇인가(what is it)' 다. 하지만, 그 대답에는 (원래 질문에는 없었던) '위함(=for)'이란 게 첨가돼 있다.
위와 같이 '위함'이 들어가는 대답들을 일러, (언어에 대한) '기능적(functional)' 정의라 부른다, 왜냐면, X 의 '기능'으로써, X '그 자체'를 정의하고 있기 때문. 근데, 언어란 것을 저와 같이 정의해 놓으면, 다음과 같은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 그렇다면 언어는, 그런 의사소통의 효율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전돼 왔을 것인데, 또 그렇다면, 언어의 모습이 이 모양 이 꼬라지(?)인 이유 또한, '의사 소통 효율의 극대화/최적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의사 소통 (효율의 극대화/최적화)'란 '목적'이 언어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이요, 바꿔 말해, 언어의 모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의사 소통 효율의 극대화/최적화'란 것인데, 이와 같은 '기능적/목적론적(teleological)' 관점은 사회 언어학을 비롯한 제 응용 언어학 분야에서 지배적인 관점이라 하겠다.
근데, 사태가 위와 같이 간단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마무리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짐작할 수 있듯이, 언어학에서도, 여느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언어에 대한) 다양한 다른 관점들이 존재하고 또 서로 경쟁하기도 하는데, 그 중에 하나, 지금까지 언급했던 관점과 어쩌면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다른 관점 하나를 소개하도록 하자:
종종 '형식론적(formal)' 관점이라고도 불리는 이 다른 관점은, '무엇인가(= What is X)' 라는 질문과 '무엇을 위한 것인가(=What is X for)'라는 질문은 서로 구분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인간의) 언어는, '위함 혹은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의될 수 있으며, 또 '그 자체'로 정의하는 것이 언어의 '핵심 특성들(core properties)'을 밝히는 데 훨씬 유의미한 관점이라 주장한다.
우선, 기능론적 관점에 대한 형식론적 관점의 반론부터 살펴보자 - 앞서 살펴 보았듯이, 기능론적 관점에서 언어란,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수단'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능론적 정의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첫째, 의사 소통이 언어의 기능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유일무이'한 기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꿔 말해, 우리가 언어를 통해 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이 '오직 의사 소통'이 아니란 말인데, 그도 그럴듯이 언어는, 타인과의 의사 교류가 아닌, 혼자 생각을 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물론, '혼자 생각하는 것' 또한 일종의 '의사 소통'으로 간주할 수 있겠지만, 그건 기능론적 관점에서 말하는 '의사 소통(communication)'과는 사뭇 다른 의미다. 따라서, '혼자 생각하는 것'도 의사 소통의 한 유형으로 간주하려면, 기능론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communication 을 수정하거나, 더욱 명확히 해야 할 부담을 떠안게 된다.
둘째, 의사 소통은, (굳이) 언어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바꿔 말해, 우리 인간은, 언어가 아닌 다른 방법/도구들을 사용해서도 의사 소통을 하고 있다는 말 - 예를 들어, 우리가 입는 옷, 표정, 헤어 스타일, 이 모두가 어떤 모종의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고, 또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셋째, 언어를 통한 의사 소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언어란 놈이 의사 소통에 과연 적합한 도구이기나 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언어에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언어에 만연한) '중의성(ambiguity)' - 한 문장이, 또는 한 단어가 여러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 중의성은, 의사 소통에 도움을 준다기 보다, 오히려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때가 빈번하다. 말인 즉, 기능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언어는 의사 소통에 그다지 최적화 돼 있지도 않고, 되려 의사 소통을 방해하거나, 의사 소통에 지장을 주는 사례까지 빈번하다는 것이다 (말이 잘못 이해되어 생기는 오해들이 얼마나 많고, 또 얼만큼 빈번한지를 생각해 보면 되겠다). 따라서, 언어의 모습을 결정하는데 있어, '의사 소통' 이란 요인이 결정적인 혹은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다/한다/할 것이다는 주장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요인 즉, 언어의 유일무이한 기능이 의사 소통이 아니요, 또한, 의사 소통란 것이 언어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니, 언어의 '핵심' 특성이 의사 소통(의 효율/최적화)에 기인한다는 기능론자의 관점에는 여러가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기능/용도/목적'이 곧 그 물체의 '정체/존재 이유'일 경우도 많지만, 아닌 사례들도 많이 있다. 아울러, 어떤 물체가 여러 기능을 가진다면, 그 여러 기능들 중에 어떤 것이 과연 '중심/핵심' 기능인지, 그 경계가 모호할 경우도 허다하다:
인간의 '손'을 예로 들어보자 - 손의 '핵심' 기능/용도는 과연 무엇인가? 손은, 물건을 집을 때도 사용하지만, 코를 후비는데도 사용한다. 어디 그 뿐인가? (F**k you 라며) 경멸을 표현하는데도 사용된다. 따라서, 생각해 보면, 손의 기능은 수없이 많다 - 그럼, 그 수많은 기능들과 쓰임새 중에 과연 어떤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는가? 이것이 '핵심'이라면, 그것(만)이 핵심이어야 하는 타당한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일견, 기능론적 관점은, 흔히 회자되는 지적 설계론의 논리와 닮은 구석이 있다 (단지, '비유'일 뿐이다). 주위를 둘러 보면, 거의 모든 물체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 진 것, 즉, '설계(design)' 된 것이다 - 시계, 컴퓨터, 안경, 연필, ... 그렇다면, '인간'(을 비롯한 여타 동.식물들)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지적 설계론자들의 논리다. 마찬가지로, 주위를 둘러 보면, 거의 모든 물체들이 저마다의 특수한 '기능/용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언어' 역시, '의사 소통'이라는 기능/용도를 통해 설명하는 게 사뭇 당연한 일, 상당히 '직관적인' 관점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시계의 탄생 배경과 인간이란 생명체의 탄생 배경이 다르듯이, '언어'(의 핵심 특성) 역시 그것의 기능과 용도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의사 소통의 용도로 자주 사용된다 할지라도 (Note: '그다지' 상관 없다지, '아예 무관'하다가 아니다).
바로, 이와 같이 출발하는 것이, 언어에 대한 또 다른 관점, '형식론적(formal)' 관점이라 불리는 것인데,'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들의 관점은 대략 아래와 같다:
언어란, 인간이란 동물에게서 발견되는 생물학적 특성, 즉, 인간이란 동물이 보유한 하나의 인지 능력/체계(Cognitive Faculty/Capacity/System)이다.
앞서 언급했던 기능론적 정의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위와 같은 형식론적 정의에는 '위함/목적'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즉, What is X 라는 질문에 대해 'X is FOR Y' 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X "IS" Z' 라 답한다는 것이다.
이에, 위와 같은 정의/관점에 기반해서 언어(능력)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로 다양할 수 있다 - 생물학적 특성이라 하니, 유전자, 혹은 (언어능력의) 진화와 관련된 이슈들을 중점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도 있고(Biolinguistics), 인지 체계라 하니, 뇌 신경망 연구를 통해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Neurolinguistics). 그리고 또 가능한 접근법은, 언어 능력과 관련된 인지 체계가 '어떤 원리들'에 기반해서 작동하는 것인지, 그 원리들을 밝히고자 하는 이론적 연구들인데, 그러한 연구가 바로, 나를 비롯한 소위 Minimalist 라 불리는 언어학자들의 전공/관심 분야라 하겠다.
이에, Minimalist 들은, 언어 능력이 기반하는 원리들에 대한 이론을 지난 50 여년에 걸쳐 수정.발전시켜 왔으며, 그 이론을 일러 오늘에 부르는 이름이 바로 Minimalist Program(MP)다.
출처:언어, 그리고 Minimalist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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