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몰락, 오대의 폭풍 (5) 사막의 망명자
880년 11월 25일. 제국의 수도 장안에서는 황소를 막기 위한 황국의 마지막 군단이 출전하고 있었다.
최후의 군단이라고 하면 무언가 시적인 비장미를 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목전까지 당도한 황소의 60만 군대를 막기 위한 이 마지막 부대엔 비장미라고는 없었다. 군단의 이름은 신책군(神策軍)으로 그 지휘관은 장승범(張承范) 이었다. 신책군은 안록산의 난 이후 창설된 근위군단이다. 그러나 이 부대의 실체란 환관들이 장악한 군단으로, 신책군에 소속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각종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군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감투 자리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이 신책군의 병사들은 모두 수도 장안에 사는 고관대작들의 자식이었다. 그들은 부모의 재력과 권력을 이용해 신책군에 소속되어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화려한 의복을 입고 뽐내며 거리에서 말을 달리고 성을 내는 시정잡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작자들이 각지의 쟁쟁한 절도사들과 치열하게 싸운 황소군과의 전투에 나서 싸울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난데없는 출전소식을 들은 신책군의 도련님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들에게 눈물로 애원했고, 그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들을 뒤로 빼돌렸다. 빼돌린다 해도, 황제가 출전 명령을 내린 이상 출전하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 이 부유한 도련님들의 아버지들은 귀한 자식들 대신 나설 소모품들을 병방(病坊)에서 구했다.
절정기의 당나라는 그 시대를 살던 인간들의 인식 아래 있던 세상의 3분의 1에 영향을 미치던 대제국으로, 수도 장안은 끝없는 영광이 가득한 위대한 대도시였다. 그러나, 이 화려한 빛 속에는 병방과 같은 어두운 시궁창도 존재했다. 의지할데 없는 거지들과 병에 찌든 빈민들은 이 병방에 수용되어 있었다. 수용소라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은 인간이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지옥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 병방의 주민들은 조금의 돈을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려 했을 것이다.
결국, 신책군의 이름을 달고 출전하는 이들은 병방의 주민들이었다. 돌림병이 창궐하는 최악의 삶을 보내다가 갑자기 출전한 병사들의 상태가 온전할리 만무하다. 눈은 퀭하고, 몸은 비쩍 마르고, 피부는 반쯤 썩어 문들어진 사실상의 송장 무리들이 무거운 갑옷을 입고 억지로 창대를 밀며 움직이는 것이다. 하물며 그 병력은 겨우 2천에 지나지 않았다.
장안의 신민들은 이 마지막 군단을 지켜보았다. 황소는 이미 동도(東都)라 불린 낙양을 함락시킨 참이다. 8일 전, 낙양에 있던 유수 유윤장(劉允章)은 백관을 인솔하고 황소를 맞이했다. 승리자로서 당도한 황소는 유윤장에게 간단한 안부와 위로하는 말만 물을 뿐, 일체의 약탈을 벌이지 않고 평화롭게 입성했다. 낙양을 점령한 황소는 선봉 부대를 보내 동관을 공략토록 했다. 동관을 지키는 인물은 제극양(齊克讓)으로, 그에게는 일만 가량의 병력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굶주리고 있는 약졸이었다.
부대를 지켜보는 신민들의 눈에도, 미래는 명약관화 해 보였을 것이다. 당나라의 운명은 이제 끝이 난 셈이나 다름 없었다. 황제 희종은 이러한 신책군을 친히 독려하여 내보냈지만, 사령관 장승범은 황제의 독려보다도 원병을 요구했다.
"듣건대 황소는 수십만 명의 무리를 가지고 북을 치며 서쪽으로 진군한다 하는데, 제극양은 주린 병졸 1만명으로 동관에 의지하고 있고, 신이 이를 지원하러 가지만 병력은 2천에 불과하니 이것으로 적을 대적한다 생각하면 마음이 서늘합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여러 도의 정예 병사들을 재촉하여 서둘러 원조하여 주십시오."
희종은 그저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내가 곧 군사들을 보내겠으니, 경들은 차례대로 가시구려."
그렇게 신책군이 떠난 며칠 후, 장승범은 현지의 상황을 장안에 보고했다. 보고라기보다는 차라리 시국에 대한 조롱과 자조에 가까웠다.
"신이 경사를 떠난 지 엿새가 되었는데, 병력은 이후 한 명도 늘지 않았고 군량의 공급은 그림자나 소리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신이 관문에 도착한 바로 그 날 거대한 군세의 도적들이 몰려오니, 2천명으로 60만을 막는 형국이 되었고, 병사들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신에게 동관을 지키지 못한 죄를 물으신다면 팽형도 달게 받겠지만은, 조정에서 꾀를 내던 신하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얼굴을 어디에 기댈 것입니까? 제가 가만히 듣건대 폐하께서 벌써 서쪽으로 순행하는 일을 논의하셨다고도 하는데, 폐하의 수레가 한번 움직인다면 진실로 나라의 위아래는 흙덩이처럼 무너질 것입니다."
장승범의 군대가 동관에 도착한 것은 12월 초하루다. 그는 동관을 지키던 제극양의 병력과 합류했지만 이미 병사들의 군량은 떨어진 상황이었고, 군기 따윌 기대할 수 없었던 신책군의 병력들은 밥 마저 먹을 수 없게 되자 명령조차 듣지 않았다. 황소의 대군단이 도착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천지가 뒤흔들리는 굉음이 울리더니, 이후 저 지평선 멀리에서 거대한 흰 깃발의 물결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황소가 가진 전력의 일부인 선봉대에 지나지 않았다.
제극양은 형편없는 전력으로도 어떻게든 이 대군에 맞서 싸웠다. 한참동안의 전투 끝에 황소 군단은 잠시 밀려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내 전황은 다시 요동치게 된다. 선봉대만으로도 들판을 집어삼킬 만한 전력이었던 황소 군의 후미에서 다름 아닌 총사령관 황소 본인이 본대의 군사들을 이끌고 도착한 것이다.
황소는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물결처럼 진격하는 60만 병력의 이동에는 어떠한 전술이나 전략도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황소의 군단은 사령관의 도착에 맞춰 크게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 60만 대군의 외침이다. 사서에서는 이를,
"황하(黄河)가 뒤집혔고, 화산(華山)이 뒤집혔다."
라고 표현하였다.
제극양은 오전의 끝자락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미친듯이 싸웠다. 밤이 어두워지자 황소의 군단도 잠시 공격을 멈추었다. 그러나 잠깐 한숨을 돌린다고 생각했을 무렵, 장승범과 제극양은 관문의 밖이 아닌 안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깜짝 놀라야 했다. 굶주림에 지치고 황소 군단의 압도적인 위압감에 질린 병사들은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영채에 불을 지른 후 대규모 탈주를 일으켰다. 황소 군단이 몰려올 당시에야 두려움에 움직이기도 힘들고 당장 죽지 않기 위해 싸웠지만, 잠깐 틈이 생기자 오히려 도주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혼란에 정신이 없는 사이에, 황소 군단은 다시 한번 습격해왔다. 단 하루를 넘기는 것만도 생사를 걸어야 했다. 장승범이 보고를 보낸 것은 바로 이 무렵이다. 그가 지평선을 가득 채운 채 끝없이 몰려드는 적을 상대하며 보낸 보고는 이렇게 마무리 되어 있다.
"신이 감히 아직도 살아 있는 몸뚱이를 가지고 분발하여 죽기를 무릎쓰고 말씀을 드리옵나이다. 바라건대, 친밀한 사람과 재신(宰臣)들과 더불어 깊이 논의하시어서 급히 군사를 징집, 관문의 방어를 도와주신다면 저 고조(高祖)와 태종(太宗)의 위대한 위업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황소는 안록산이 망한 뒤를 잇게 될 것이며, 보잘것없는 신은 가서한의 죽음을 넘어서겠나이다."
그 다음날, 장승범은 아침부터 몰려드는 적을 상대로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맞서 싸웠다. 동관의 밖에는 본래부터 있었던 긴 참호가 있었다. 그러나 황소 군은 백성들 천여명을 시켜 흙을 파서 이를 메꾸게 하니, 잠깐의 사이에 참호는 모두 평지로 변하였다. 낮과 밤을 버틴 장승범이었지만 결국 지원병은 오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결국 동관은 함락되고 말았다.
장승범은 천신만고 끝에 도주하여 물러나는 와중, 봉천(奉天)에서 온 2천여 병력이 오는 것을 보고 탄식하여 말했다.
"너희들이 온 것이, 이미 늦고 말았다."
이제 황소의 군단은 낙양에 이어 동관마저 함락했다. 이 와중에 봉상(鳳翔)의 군대 등은 새로 모집하는 병력들이 옷이 깨끗하고 따뜻한 재질인 것을 보자 부아가 치밀어 이들을 죽이고 약탈하고는, 되려 황소 군단의 길잡이 노릇을 자처하기도 했다. 황소 군단은 이를 따라 장안으로 진격하며, 하중 유후 왕중영(王重盈)의 항복을 받았다.
이 시점에 이르자 당나라 조정은 패닉에 빠졌다. 동관이 함락된 다음날, 조정에서는 황소에게 제서를 내려 그를 천평 절도사로 임명했다. 이는 황소가 강남 등지를 떠돌때 요구한 자리다. 조정으로서는 무슨 수라도 써본다고 한 행위겠지만, 장안 지척에 60만 대군이 몰려온 상황에서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씁쓸한 웃음만을 짓게 해줄 뿐이다. 이것이 웃음거리임은 당사자들도 잘 알았을 것이다. 황소에게 천평 절도사 자리를 내준 다음날, 황제 희종은 환관 전령자(田令孜)의 인도 아래 말을 달려 성 밖으로 도주했다. 이는 몇 명의 왕공들과 소수의 비빈들, 그리고 전령자가 이끄는 오백의 신책군 만이 알았던 것으로, 대다수 백관들은 황제가 갑작스레 떠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후 황제의 피난 소식이 전해지자 장안은 아비규환의 장으로 변하고 만다. 병사들과 군사들은 황실과 관청의 부고(府庫)를 털어 금과 비단을 훔치기에 바빴다.
이렇게 약탈의 장이 되어버린 장안에 드디어 황소의 군대가 나타났다. 선봉장 시존(柴存)은 오후 4시에 성에 입성했고, 금오 대장군 장직방(張直方)은 문무관원 수십명을 이끌고 이끌고 나아가 뒤이어 등장한 황소를 영접했다. 황소는 금으로 장식한 가마를 탔고, 황소 주변의 장수들은 모두 머리를 풀어헤치고 붉은 비단 옷을 입었으며, 그 주변의 기병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물 흐르듯 움직였다. 60만 대군의 치중병들 역시 속속 도착하였는데 그 길이 천리에 다다를 정도였다.
장안에 남아있던 백성들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의 심정으로 몰려들어 황소의 입성을 지켜보았다. 황소의 옆에서 행군하고 있던 상양은 그런 백성들에게 소리쳤다.
"우리 황왕께서는 군사를 일으킨 것이 본래 백성을 위한 것이어서, 당나라 이씨가 너희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다. 다만 편안히 살면서 두려워하지 않으면 될 것이다."
과연 황소의 군단은 당분간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동정하여 물건을 나눠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형세가 오래 지속된 것은 아니다.
Seljukid Turk Archer
황소의 군대가 장안에 입성하고 있을때, 독안룡 이극용은 북방에서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충돌을 삭히고 있었다.
878년 2월에 시작된 이씨 부자의 반란은 880년 중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이씨 부자는 사타 무리를 이끌고 지속적으로 중국 북방을 압박했으며, 기록으로 확인되는 최대 규모는 2만에 달하였다. 이 당시에는 황소가 강남을 휘젓고 다니며 북상할 틈을 노리던 형편이었으므로 조정에서는 이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타 무리들 모두가 이씨 부자를 따른 것은 아니다. 당나라는 이씨 부자의 통제하에 있지 않는 사타 추장들을 포섭하여 이를 상대하도록 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이씨 부자의 세력 자체도 흔드는 시도를 했다. 일종의 이간질을 시도한 것이다.
880년 6월 경, 이극용은 자신의 관할 아래 있던 삭주 지역을 휘하 대장인 고문집과 친족 아버지 뻘인 이우금(李友金)에게 맡기고 자신은 병사를 이끌고 웅무군(雄武軍)으로 이동했다. 울삭등주도통 이탁, 노룡 절도사 이가거, 토욕혼 도독 혁련탁을 상대하기 위함이었는데, 게중 이탁의 경우 수천에 이르는 사타 무리를 항복시킨 참이었기 때문에 사타 무리에 대한 영향력 측면에서도 껄끄러운 측면이 있었다. 이극용은 이탁, 이가거, 혁련탁을 직접 상대하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헌데 토욕혼 도독 혁련탁은 이극용이 떠난 삭주에 사람을 보냈다. 대장 고문집을 대상으로 하여 당나라에 귀국하도록 설득한 것이다. 이 작전은 성공하여 고문집은 이극용의 장수인 부문달을 포박하고, 이우금 등과 함께 모두 이탁에게 항복하여 성문을 열고 관군을 받아들였다.
이 배신행위에 이극용이 분개한 것은 당연하다. 웅무군에 주둔하던 이극용은 군사를 거느리고 회군하여 삭주로 귀환, 고문집을 쳤다. 그러나 노룡 절도사 이가거는 행군사마 한현소를 파견하여 이를 공격하게 했다. 갑작스레 군대를 움직이다 공격을 받은 이극용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병력 7천을 잃는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한번 패배를 당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삭주로 귀환하던 병력이 패배한 동시에 웅무군 쪽에서도 공격이 들어와 또다시 1만이 넘는 병력이 죽었으며, 이극용의 부장이었던 이진충, 정회신등도 모두 참살되고 말았다.
이가거가 이극용을 물리치는 동안 이탁과 혁련탁은 울주로 나아가 이국창을 무찔렀다. 이렇게 되자 단번에 모든 영향력을 상실한 이씨 부자는 자신의 종족들만을 이끌고 북쪽으로 이동, 한해사막 남쪽까지 도주해야 했다. 당시 이곳은 타타르의 영역이었다. 수만의 군대를 거느리던 이극용은 졸지에 타타르의 무리들이 있는 사막을 정처없이 배외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이 전투 이후, 혁련탁은 운주 자사 · 대동군 방어사로 임명되었다. 북방을 관할하게 된 혁련탁에게 있어 눈엣가시는 아직까지 이씨 부자가 살아있다는 점이었다. 한동안 상황을 지켜보던 혁련탁은 몇달 뒤 타타르의 무리들에게 몰래 뇌물을 주며 이씨 부자를 사로잡아오도록 했다.
환영받지 못하는 망명자만큼 주변의 기류를 잘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이극용은 자신의 주변의 낌새가 이상해지자, 일부러 타타르의 높은 추장들이나 지휘관들과 어울리며 사냥을 다녔다. 이극용은 사냥을 하며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를 보여주었는데, 이 모습을 본 타타르의 추장들은 크게 감탄을 하게 된다. 한껏 그들과 어울린 이극용은 이후 술자리를 가졌다. 술을 마신 이극용을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천자에게 죄를 지어 충성을 다할 수 없다. 지금 듣건대, 황소라는 자가 중국의 남부에서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다 한다. 그자는 반드시 곧 중원에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어느 날 천자가 나의 죄를 사면하게 된다면, 공들과 함께 남쪽으로 가서 함께 큰 공로를 세우지 않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몹시 유쾌하지 않겠는가? 사람의 인생, 얼마를 살겠는가?"
그렇게 속내를 털어놓은 이극용은 비감이 오른듯 소리쳤다.
"누가 사막에서 늙어 죽을 수 있으랴!"
타타르의 무리들이 혁련탁에게 뇌물을 받고 이씨 부자를 해칠 생각을 했던 것은, 이씨 부자가 자신들의 능력을 이용하여 타타르를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타르의 추장들은 술에 취한 이극용의 말에서, 중원에 뜻을 둔 야심가의 모습을 보았다. 이극용의 뜻이 중국에 있는 한, 그가 사막에서 타타르의 추장 노릇을 할 우려는 없어 보였다. 결국 타타르 무리들은 이씨 부자를 습격하려는 계획을 중단했다.
그 자신의 말처럼, 이극용의 뜻은 중원에 있었다. 그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하 난세가 더욱더 깊어질 그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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