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8일 월요일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Understanding Power(2002))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언어의 오남용을 통해 반대의견을 잠재운다.


촘스키는 단순히 정부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을 보라.

“우리 사회에서 진짜 권력은 정치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간경제에 있습니다. 무엇을 생산하고, 얼마를 생산하고, 무엇을 소비하고, 투자를 어디에 하고, 누가 일자리를 가져가고, 누가 자원을 통제하는 등등의 중요한 결정을 민간경제가 하고 있는 겁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진정한 민주주의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은 다수가 아닌 소수의 손아귀에 있고 우리 사회의 중심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돈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우리 경제가 곧 우리 사회이므로 사회는 ‘부유한 자들을 계속 행복하게 만들자’는 기조 아래 돌아간다.

촘스키는 개인적으로 고전적 자유주의의 신봉자임을 자처하며 자본주의 이전에 생겨난 고전적 자유주의가 다음에 초점을 두었음을 상기시킨다. “사람은 자신의 일을 통제할 권리를 가져야 하고 자신의 통제 하에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이 획득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 노동은 부도덕하다는 말이 된다. 스스로 자신의 일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은 임금 노예이기 때문이다.

촘스키에 따르면 경제는 실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본 자체를 위한 최선의 방식으로 구조화된다. 그렇다고 촘스키가 단순히 권력을 국가 관료제의 손에 넘기는 산업 국유화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시장 체제 안에서 실제 노동자들이 기업을 소유하고 자본을 통제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그럴 경우에만 민주 제도가 경제권력으로까지 확대될 것이고 그때까지는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권력이 대단히 제한된 형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뉴욕 월가 ‘점령’ 시위보다 몇 년이나 앞질러 이렇게 말했다.

“미국 인구의 약 절반이 미국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몇몇 거대 이익 단체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들은 스스로 정책결정에 참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별 상관 없는 강력한 이익단체가 정책을 주무른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촘스키는 또 환경에 관한 논의에서 생명을 지키고 삶을 향상시키려는 사람들의 욕구와 기업의 이윤 동기가 상충된다고 지적한다. “제너럴일렉트릭 CEO의 일은 이익을 올리고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이지 환경보전이나 근로자의 복지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목표들은 분명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촘스키는 낙관할 근거를 찾는다. 언론이 진실을 은폐하고 기업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엘리트와 제도권의 상업 및 권력의 이해관계에 대단히 회의적이다. 그의 말대로 환멸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복음전도사, 환경운동가, 더 최근의 예로는 점령 시위대와 티파티 운동 등 대중을 동원하려는 어떤 대의나 집단도 이런 환멸을 활용할 수 있다.

[출처] 놈 촘스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Understanding Power(2002))|작성자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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